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배상(기)]〈긴급조치 제9호위반 혐의로 수사 및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 또는 그 유족들이 대통령과 수사기관, 법원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안〉[공2022하,1965]
판시사항

구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다수의견]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때에 국가배상법 제2조 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는지는 행위의 양태와 목적, 피해자의 관여 여부와 정도, 침해된 이익의 종류와 손해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되,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가 부담할 만한 실질적 이유가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구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1975. 5. 13.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고 한다)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제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고,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에 대해서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은 변경되어야 한다. 이때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수사와 재판, 그리고 그 집행으로 발생한 손해도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서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경우 법관의 재판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독자적으로 인정할 필요는 없고, 위와 같이 재판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법관의 재판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엄격히 제한하는 판례와 모순되지 않는다.

[대법관 안철상의 별개의견] 헌법 제29조 의 국가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율하는 공권이고, 국가가 공무원 개인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위책임이 아니라 국가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부담하는 자기책임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이해하는 것이 법치국가 원칙에 부합한다.

국가배상을 자기책임으로 이해하는 이상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인 공무원의 고의·과실에는 공무원 개인의 고의·과실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공적 직무수행상 과실, 즉 국가의 직무상 과실이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국가배상법을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 긴급조치 제9호는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발령하고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집행한 것이므로,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로서 이루어진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강제수사 및 공소제기라는 불가분적인 일련의 국가작용은 대통령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직무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의 심사 없이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대통령의 위법한 직무행위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을 구성하고, 이를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와 그 집행에 포섭된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참조조문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헌법 제29조 , 구 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8조 (현행 제10조 참조), 제10조 제3항 (현행 제12조 제3항 참조), 제53조 (현행 제76조 참조), 구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1975. 5. 13.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1979. 12. 8. 대통령공고 제67호로 해제) 제1항, 제2항, 제5항, 제7항, 제8항

참조판례

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공2000하, 1403)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0다29905 판결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47290 판결 (공2001하, 2464) 대법원 2004. 12. 9. 선고 2003다50184 판결 (공2005상, 78) 대법원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공2013상, 978) 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변경)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변경) 대법원 2018. 5. 2. 자 2015모3243 결정 (공2018상, 1111)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7다249219 판결 (공2021하, 1356)

원고,상고인

별지 원고 명단 기재와 같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김형태 외 1인)

피고,피상고인

대한민국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8. 1. 10. 선고 2015나2026588 판결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 45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 대한 부분 및 원고 45 본인의 위자료와 상속분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원고 45의 나머지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건의 개요와 쟁점

가.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 5는 1979. 10. 25.「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 한다)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1979. 11. 21. 구속취소로 석방되었다.

2) 소외 1(사망, 원고 38, 원고 39, 원고 40, 원고 41, 원고 42, 원고 43, 원고 44가 그 가족들이다), 소외 2(사망, 원고 55, 원고 56, 원고 57, 원고 58이 그 가족들이다) 및 원고 1, 원고 6, 원고 13, 원고 18, 원고 23, 원고 28, 원고 33, 원고 45, 원고 59, 원고 68(이하 원고 5까지 포함하여 ‘이 사건 본인들’이라 한다)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피고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되어 기소되었고,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었으며, 형을 복역하다가 형 집행정지 등으로 석방되었다. 원고 5를 제외한 이 사건 본인들은 유죄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청구를 하여 재심개시결정을 받았고, 이에 따라 개시된 재심절차에서 이들에게 적용된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으며, 그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3) 원고들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 또는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 및 재판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구하였다.

나. 원심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이 그 자체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며,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였다(원고 45의 소 각하 부분은 아래에서 별도로 판단한다).

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와 이를 적용·집행한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직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이다.

2.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가. 종전 대법원 판례

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은, 긴급조치 제9호가 그 발령 근거인 구 대한민국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 한다) 제53조 에서 정하고 있는 요건 자체를 결여하였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위헌·무효라고 하더라도, 당시 시행 중이던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이 “ 제1항 제2항 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고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아니하였던 이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은, 긴급조치 제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나.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때에 국가배상법 제2조 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는지는 행위의 양태와 목적, 피해자의 관여 여부와 정도, 침해된 이익의 종류와 손해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되,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가 부담할 만한 실질적 이유가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 대법원 2004. 12. 9. 선고 2003다50184 판결 ,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7다249219 판결 등 참조).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제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와 그 발령행위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상 발령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유신헌법은 제53조 제1항 , 제2항 에서 긴급조치권 행사에 관하여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 극복을 위한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될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 및 사회상황이 긴급조치권 발령의 대상이 되는 비상사태로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 내지 국가적 안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참조).

긴급조치 제9호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다. 긴급조치 제9호는 ① 제1, 2, 7항에서 유언비어 날조·유포 및 사실왜곡·전파 행위, 집회·시위 또는 표현물 등에 의하여 대한민국헌법을 부정·비방하거나 개정·폐지를 청원·선동하는 행위, 학교 당국의 감독이나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은 경우를 제외한 학생들의 집회·시위·정치관여 행위 등을 금지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 하도록 정하여 표현의 자유와 청원권 등을 제한하고, ② 제8항에서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함으로써 법치국가 원리를 부정하고 신체의 자유와 주거의 자유를 제한하며, ③ 제5항에서 주무부장관은 이 조치 위반자·범행 당시 소속 학교 등 또는 그 대표자에 대하여 해임 또는 제적, 휴업·휴교·정간·폐간·해산 또는 폐쇄의 조치 등을 할 수 있도록 정하여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은 유신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것으로,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여 긴급조치권의 목적상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위 대법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참조).

위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이고 그 위헌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이상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는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보기 충분하다. 다만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만으로는 개별 국민에게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긴급조치 제9호를 그대로 적용·집행하는 추가적인 직무집행을 통하여 그 손해가 현실화될 수 있다.

2)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행위

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는 사정만으로 형벌에 관한 법령을 제정한 행위나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되기 전에 그 법령에 기초하여 수사를 개시하여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 및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는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함으로써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나 법치국가의 사법질서 확립을 포기하였다. 영장주의는 제헌 헌법(제9조) 이래 현행 헌법(제12조 제3항) 에 이르기까지 모든 헌법에 채택되어 확립된 원칙으로, 유신헌법 제10조 제3항 역시 영장주의를 천명하고 있었다. 영장주의는 강제처분의 남용으로부터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제도이다. 긴급조치 제9호와 같이 영장주의를 완전히 배제하는 특별한 조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도 최대한 피하여야 하고, 그러한 조치가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예외적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긴급조치 제9호 발령 당시가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 내지 국가적 안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예외적 상황에 해당하였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4년 7개월이라는 장기간 영장주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긴급조치 제9호와 같은 조치는 허용될 수 없다.

수사기관이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체포·구금을 한 경우 비록 그것이 형식상 존재하는 당시의 법령에 따른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법령 자체가 위헌이라면 결과적으로 그 수사에 기초한 공소제기에 따른 유죄의 확정판결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8. 5. 2. 자 2015모3243 결정 참조).

나)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영장 없이 이루어진 체포·구금, 그에 이은 수사 및 공소제기 등 수사기관의 직무행위와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한 법관의 직무행위는 긴급조치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서 전체적으로 보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무에 반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

영장주의를 전면적으로 배제한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무효이므로, 그에 따라 영장 없이 이루어진 체포·구금은 헌법상 영장주의를 위반하여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직무집행이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었음에도 수사과정에서의 기본권 침해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채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적용하여 내려진 유죄판결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다)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해당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0다29905 판결 ,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47290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독립적인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상 직무행위를 포함한 긴급조치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이 전체적으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때에는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인한 손해 전보의 필요성

가)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에 대하여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에 대하여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할 수 있으며, 긴급조치를 위반한 사람을 징역형에 처하도록 정하였다. 대통령은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면서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에 따라 영장 없는 강제수사와 이에 기초한 재판 그리고 형의 집행이라는 절차까지 예정하였다고 보아야 하고,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집행하는 일련의 직무집행을 통하여 그 집행의 대상이 되었던 피해자들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즉,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한 기본권 침해는 침해의 근거가 되는 일반적·추상적 규범의 발령과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집행하는 일련의 직무집행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나) 이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위법한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와 긴급조치의 형식적 합법성에 기대어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집행하는 다수 공무원들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모여 이루어졌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가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그 발령행위 자체만으로는 개별 국민에게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과정에서 개별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거나 개별 공무원의 고의·과실을 증명 또는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이처럼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충분하다. 만약 이러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에 개별 공무원의 구체적인 직무집행행위를 특정하고 그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을 개별적·구체적으로 엄격히 요구한다면 일련의 국가작용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오히려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어려워지는 불합리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부담하고( 헌법 제10조 제2문), 이는 유신헌법 아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신헌법 제8조 ).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인하여 신체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었다면 국가는 그 자신이 부담하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권 침해에 따라 국민에게 발생한 손해가 남아 있다면, 국가에 그 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뒤늦게나마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이행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에 손해의 전보책임을 부담시킬 실질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4)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의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요건 및 규정 내용에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관련한 위헌성이 명백하게 존재함에도 그 발령 및 적용·집행 과정에서 그러한 위헌성이 제거되지 못한 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는 등 구체적인 직무집행을 통하여 개별 국민의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적용·집행에 관한 국가작용 및 이에 관여한 다수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은 법치국가 원리에 반하여 유신헌법 제8조 가 정하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정당성을 결여하였다고 평가되고, 그렇다면 개별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어 현실화된 손해에 대하여는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다. 판례 변경

이와 달리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 및 적용·집행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3. 이 사건에 대한 판단

가.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앞서 본 사실관계를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본인들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되어 수사를 받았거나 나아가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형을 복역함으로써 입은 손해에 대하여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원심판결에는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나. 원고 45의 소 각하 부분

1) 원고 45는 원심 소송계속 중 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2015. 5. 18. 법률 제13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 제18조 제2항 에 대하여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하였다가 기각되자 헌법재판소 2018헌바94호 로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위 사건을 2014헌바180호 등에 병합한 다음, 2018. 8. 30.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2) 위 위헌결정은 원고 45가 헌법소원을 청구하여 그 결정의 계기를 부여한 당해 사건인 이 사건에 미치고, 구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등을 받더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볼 근거가 사라진 이상, 원고 45 본인의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없다.

3)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소 중 원고 45 본인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부분에 대해서, 원고 45가 2005. 9. 26.경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생활지원금 지급결정을 받아 보상금 지급동의 및 청구서를 위원회에 제출하고 생활지원금을 수령함으로써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에 따라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다고 보아,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이러한 판단에는 권리보호의 이익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이 사건 소 중 원고 45의 재산상 손해를 청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에 따라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 부분 소를 각하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

4.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원고 45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 대한 부분 및 원고 45 본인의 위자료와 상속분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원고 45의 나머지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대법관 안철상의 별개의견,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이 있다.

5.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가. 별개의견의 의미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고,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에 대해서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은 변경되어야 한다. 이때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수사와 재판, 그리고 그 집행으로 발생한 손해도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서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사건에서 법관의 재판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독자적으로 인정할 필요는 없고, 위와 같이 재판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법관의 재판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엄격히 제한하는 판례와 모순되지 않는다 .

이 의견 중에는 다수의견의 결론을 보강하는 내용도 있지만, 이 사건 쟁점을 판단하고 판례 변경의 근거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다수의견과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므로, 별개의견으로 개진하고자 한다(다만 다수의견에서 긴급조치 발령으로 인한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의견이 다수의견과 명시적으로 배치되지는 않는다).

나.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1)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은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이라는 연쇄적 행위에서 이러한 행위에 부분적으로 관여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이 사건 국가배상책임 성립에 개별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반드시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국가배상책임과 다른 측면이 있을 뿐이다.

가) 긴급조치는 비상사태로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이나 국가적 안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발령한다.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령한 때에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하고,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긴급조치의 해제를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유신헌법 제53조 , 제66조 ). 또한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에 대하여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에 대하여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할 수 있으며,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한 사람을 징역형에 처하도록 정하였다.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에는 다수 공무원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행위가 관여된다. 긴급조치 제9호 규정을 입안한 사람, 긴급조치를 발령하기 위한 국무회의 심의에 참여한 국무위원, 그 시행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 등 다수가 관여되어 있으며, 대통령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였다. 아울러 처벌법규의 제정행위는 수사와 재판 그리고 형의 집행이라는 절차를 예정한 것이었고, 실제 다수의 공무원이 긴급조치 제9호에 따른 수사와 재판을 담당하였다. 국회는 긴급조치 제9호의 해제를 건의한 적도 없다.

나) 이 사건과 같이 다수 공무원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묻는 경우에는 개별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특정하여 증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경위나 규정 내용, 그로 인한 기본권 침해 상황 등에 비추어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이라는 국가작용에 관여한 다수의 행정공무원들이 그 과정에서 존재하는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적인 요소를 인식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고의 또는 과실을 인정할 수 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정한 고의 또는 과실의 의미에 대해서 일반 불법행위책임에서 말하는 고의 또는 과실 개념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법리에 따르더라도 위와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나아가 국가배상법상 피해자 구제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학계에서 주장되는 ‘객관화된 과실’ 관념이나 ‘조직 과실’ 이론 등의 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위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에 대통령을 비롯한 다수 공무원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행위가 관여된 이상 개별 공무원의 구체적인 위법한 직무집행을 특정하여 개별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민법 제760조 제1항 은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정하고, 제2항 은 “공동 아닌 수인의 행위 중 어느 자의 행위가 그 손해를 가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때에도 전항과 같다.”라고 정한다. 위 제2항 은 여러 사람의 행위가 경합하여 손해가 생긴 경우 어느 행위가 손해의 원인이 되었는지가 불명인 경우에도 모두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민법 규정을 유추하여 보더라도 다수 공무원의 관여 행위가 존재하는 경우 관여 공무원의 개별적 고의 또는 과실을 특정하여 증명하지 않더라도 불법행위가 성립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다) 다수의견이 일련의 국가작용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여러 불법행위가 연속되어 하나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이해되고,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각각의 불법행위에 위법성과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일련의 국가작용에 대해 특별한 근거 없이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위와 같은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관여 공무원들의 개별적 고의·과실과는 어떤 관계인지, 무관한 것이라면 누구를 기준으로 어떻게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한다는 것인지 알기도 어렵다. 이 사건에서 일련의 국가작용에 대하여 모호한 책임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국가배상법 제2조 의 요건에 따라 그 책임을 인정하되, 다수 공무원의 관여 행위가 결합되어 국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불법행위의 경우에는 공무원의 개별적 고의 또는 과실을 특정하여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하면 충분하다.

2)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만으로는 현실적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긴급조치 제9호가 예정한 대로 영장 없는 강제수사, 이에 기초한 재판과 형의 집행이라는 절차가 이어졌고 이로 말미암아 개별 국민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되었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비로소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되었더라도 그 손해는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와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라고 할 수 있다. 긴급조치 제9호는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과 함께 그 위반자에 대한 강제수사와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을 둠으로써 대통령 이외의 국가기관을 통한 수사와 재판 그리고 형의 집행이라는 절차를 예정하고 있었다. 더욱이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에서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었던 이상 수사와 재판 그리고 형의 집행에 따른 손해의 결과 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도 인정된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국가기관에 소속된 여러 공무원들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모여 불법행위가 이루어졌다는 현실에도 부합한다.

3)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에 대하여 법적인 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은 타당하지 않다.

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그 집행은 일반적인 입법행위의 경우와는 달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1)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에 대해서 국회의원의 입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성립 문제와 같이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라고 하면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 발령은 일반적인 입법행위와 같게 보아서는 안 된다. 긴급조치 발령행위에 대해서 법적 책임이 부정되고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만 남는다고 보는 이분론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은 입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제한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회민주주의에서 국회는 다원적 의견이나 각가지 이익을 반영시킨 토론과정을 거쳐 다수결 원리에 따라 통일적인 국가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으로서 그 과정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입법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입법행위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은 합의체 입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가진다. 반면 대통령은 독임제 기관으로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한 필요최소한으로 긴급조치를 발령할 수 있다. 국회의 입법 절차에서는 법률안이 제출되어 국회의원들이 심사와 토론을 거쳐 자유위임에 근거하여 표결을 하며 그러한 과정이 공개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 과정에는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요구되는 민주적 절차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절차는 국회의 입법 절차와 다르기 때문에, 입법행위에 대해서 국가배상책임을 제한하는 논리가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2) 긴급조치 제9호가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대상이 되는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불특정 다수인을 규율하는 일반성·추상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법률과 유사하고 법률과 같은 효력이 있다는 관점에서, 입법행위에 적용되는 기준에 따라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살펴보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은 배제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국회의원의 입법행위에 대해서 그 입법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되는데도 국회가 굳이 입법을 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정한 위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긴급조치 제9호의 규정 내용은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된다. 다수의견에서 보듯이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이 정한 발령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국가긴급권의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다.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 등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전면금지함으로써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봉쇄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대법원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참조).

이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이 명백한데도 대통령은 유신체제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굳이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였으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정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입법행위의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대법원 2004다33469 판결 에 따르더라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국가배상책임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

나) 통치행위라는 이유를 들어 긴급조치권 행사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에 대해서는 이른바 ‘통치행위’라 하여 법원 스스로 사법심사권의 행사를 억제하여 그 심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영역이 있지만, 통치행위 개념을 인정하더라도 사법심사의 과도한 자제가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할 법원의 책무를 게을리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지극히 신중하게 해야 한다( 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도7878 판결 등 참조).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 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이를 수습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사하는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긴급권은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하였을 때 그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제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국가긴급권의 행사는 헌법상 발동 요건과 한계에 부합하여야 하고, 이 점에서 유신헌법 제53조 에 규정된 긴급조치권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으로서는 마땅히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하여 사법심사권을 행사함으로써,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나아가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부정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책무를 다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등 참조). 이는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는지를 판단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는 사정만으로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다. 법관의 재판행위가 독립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으로 말미암아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법관의 재판행위가 위와 같은 국가배상책임과 구분되어 독립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를 반드시 판단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법부 또는 법관의 독립성에 비추어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와 이를 적용한 재판행위가 하나의 조직체에서 일어난 불법행위처럼 볼 수는 없지만, 긴급조치 제9호 관련 재판으로 인한 손해는 그 발령 등의 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서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법관의 재판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독자적으로 인정할 필요는 없다. 위와 같이 재판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법관의 재판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엄격히 제한하는 판례와 모순되지 않는다.

한편 법관이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 없이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것이 독립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는 견해는 다음에서 보듯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점이 있다.

1)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되었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그 형을 복역한 사람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당시 예정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와 법관의 재판행위를 통해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처럼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이라는 국가작용에 따른 손해의 범위에는 법관의 재판행위로 인한 손해도 포함된다. 그러한 손해에 대하여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이상 독립적으로 법관의 재판행위가 불법행위가 되는지 여부를 따져 볼 실익이 없다.

2)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해서 매우 제한적으로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례(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0다29905 판결 ,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16114 판결 ,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47290 판결 , 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 판결 등 참조)에 따를 때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행위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가)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인정 여부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는 명문 규정이나 판례를 통해서 법관의 재판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배제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그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독일 민법 제839조 제2항은 “공무원이 소송사건의 판결에서 직무상 의무에 위반한 때에는 그 의무 위반이 범죄행위인 경우에만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직무의 집행을 의무에 위반하여 거절하거나 지연한 때에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법관이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였고 그것이 범죄가 되는 경우에만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미국에서는 Stump v. Sparkman 판결[435 U.S. 349, 55 L.Ed.2d 331, 98 S.Ct. 1099 (1978)] 등을 통하여 판사가 재판권이 없음이 명백한데도 재판을 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는 판례가 확립되었다. 위 사건에서 정신박약증세가 있는 딸의 어머니가 딸에게 불임시술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신청을 하자 법원은 딸에게 아무런 통지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절차를 진행하여 어머니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딸은 맹장수술인 줄 알고 불임시술을 받았고, 이에 대해서 적법절차에 관한 권리 침해를 주장하면서 담당 법관 등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다. 연방대법원은 스텀프 판사가 사법면책의 원칙에 따라 절대적으로 면책된다고 판단하였다. 프랑스는 사법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1972. 7. 5. 법률을 제정하여, 정상적으로 노력하는 법관이 저지르지 않았어야 할 매우 큰 과오로 저지른 과실 또는 타인을 해칠 의사를 드러내는 과실 또는 비정상적으로 결함 있는 행위 양태를 드러내는 과실이나 재판거부의 경우에 한정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법관이 위법·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위배되어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되는 것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 국가배상책임을 진다고 함으로써 법관의 재판에 대한 위법성을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에 관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이외에 다른 법률상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법관 역시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이고 법관의 재판 역시 국가배상법상 직무행위에 해당하므로 국가배상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법관의 재판에 법령 규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더라도 이로써 바로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위법한 행위로 되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오판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0다29905 판결 ,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16114 판결 ,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47290 판결 , 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법관의 책임에 관하여 국가배상법 등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데도 여러 차례에 걸쳐 원칙적으로 재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관의 책임을 면제하거나 제한하는 근저에는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확보하여 분쟁을 종결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고 법관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소신껏 재판할 수 있도록 하려는 사고가 깔려 있다.

나) 법원의 판결이 재심 등을 통하여 오판이었음이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바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행정처분이 나중에 항고소송에서 위법하다고 판단되어 취소되더라도 그것만으로 행정처분이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7다249219 판결 등 참조), 이는 법원의 재판이 오판으로 밝혀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오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판결을 한 법관에게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하고, 나아가 위에서 보았듯이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한 법관에게 고의·과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1)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한 법관에게 고의·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국가배상책임에서 공무원의 과실 유무는 보통 일반의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객관적 주의의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등 참조). 법관의 직무수행상 과실은 평균적 법관으로서 가져야 할 주의의무이다. 평균적 법관을 기준으로 주의의무를 정한 것은 규범적으로 사회공동체의 기대 수준의 최소한을 설정한 것으로서, 법관에게 무조건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은 “ 제1항 제2항 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정하였다. 유신헌법에서 긴급조치 제9호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었던 이상 법관에게 그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전제로 위헌성 심사 없이 유죄판결을 한 것 자체가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성이 명백하여 긴급조치의 실질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유신헌법 제53조 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어서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이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 문제 된다. 긴급조치의 형식으로 발령되었는데도 위헌성으로 인하여 긴급조치의 실질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보아 문언과 달리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제한적으로 축소 해석하는 것을 평균적 법관으로서 주의의무의 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다.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을 위헌이라고 판단하여 재판하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개별적 헌법규정 상호 간에 효력상 차등을 인정할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규범 상호 간의 우열이 헌법의 어느 특정규정이 다른 규정의 효력을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 있을 정도의 개별적 헌법규정 상호 간에 효력상 차등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헌법재판소 2001. 2. 22. 선고 2000헌바38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개별적 헌법규정 상호 간에 효력상 차등을 인정할 여지가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재판에서 이를 판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평균적 법관으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 1977. 5. 13. 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 은 긴급조치 제9호가 유신헌법에 근거한 것으로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아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이 전원합의체 결정은 대법원장과 15명의 대법원 판사가 참여하여 전원일치로 나왔다). 그 후 긴급조치 제9호가 합헌이라고 하면서 유죄판결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으로는 대법원 1978. 5. 23. 선고 78도813 판결 , 대법원 1978. 9. 26. 선고 78도2071 판결 , 대법원 1979. 10. 30. 선고 79도2142 판결 등이 있다. 긴급조치의 사법심사를 배제했던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에도 불구하고 당시 재판을 담당했던 법관들이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평균적 법관으로서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이 활성화되어 있는 현재에도 대법원에서 위헌제청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과연 당시의 대법관이 헌법을 올바로 준수하여 재판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2) 이 사건에서 법관의 오판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법관의 오판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관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행사하였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설령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 없이 유죄판결을 한 것이 평균적 법관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하더라도 법관의 재판작용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

긴급조치의 위헌성에 비추어 적극적으로 위헌심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한 법관의 직무행위라고 볼 수도 있고 이것이 이상적인 법관상을 구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법관이 그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해서 위법한 직무행위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를 배제한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이나 헌법규정 상호 간에 효력상 차등이 없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을 담당한 법관이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사법심사를 하지 않고 긴급조치 제9호를 그대로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하였더라도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에도 불구하고 헌법 명문규정을 초월한 헌법적 책무를 법관에게 요구할 수는 없고, 이를 근거로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더욱 타당하지 않다.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한 법관에게 이상적인 법관상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윤리적, 도덕적 비난을 할 수 있을지언정, 위법한 직무행위를 하였음을 전제로 법적인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다.

다)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 없이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일률적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긴급조치 제9호 위반에 대해 유죄판결을 한 재판이라 하더라도 각각 사안의 내용이나 재판 과정 등은 매우 다양하다. 구금 기간 등 강제수사로 인한 피해 정도,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 피해 유무, 피고인으로서 재판상 자백 여부, 긴급조치의 합헌성을 긍정하던 대법원 판례의 하급심에 대한 사실상 구속력, 합의부 재판에서 합의에 관한 담당 법관의 의견, 재판 결과 등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일률적으로 위법하다거나 고의·과실이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

라)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해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던 대법원판결과 비교하여 볼 때 평가모순이 발생하고 이는 사실상 판례 변경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경매법원이 잉여의 가망이 없음에도 그 통지와 경매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경매절차가 진행되어 우선채권자의 저당권과 지상권이 소멸된 사안(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0다29905 판결 ), 근저당권설정을 오인·누락한 배당표 작성행위로 실체적 권리관계와 다른 배당표가 확정된 사안(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16114 판결 ), 법관이 압수수색할 물건의 기재가 누락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사안(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47290 판결 ), 적법한 제소명령 기간 내에 제소를 하였는데 재판부가 제소기간의 만료일을 오인하여 가압류취소결정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배당을 받지 못한 사안(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19다226975 판결 ) 등에서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였다.

평균적 법관을 기준으로 볼 때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에서 그 위헌성 심사를 해야 할 주의의무 위반보다 위 사안들에서 주의의무 위반을 용이하게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위 사안들에 대해 법관의 책임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평가모순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해 온 확립된 판례의 입장과 실질적으로 상충된다.

마) 법관의 오판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제한하는 근거 중 하나는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확보하여 분쟁을 종결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소송이 확정판결로 종료되었는데도 다시 소를 제기하여 법원이 새로운 재판을 하여야 한다면 법적 평화와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확정판결에는 원칙적으로 기판력이 있기 때문에 그 판결의 정당성에 대하여 더 이상 다툴 수 없다. 법관의 오판으로 인한 책임을 인정한다면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문제가 된 종전 판결의 위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 확정판결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다시 심리하여야 하므로, 판결의 기판력을 인정한 취지가 몰각될 수 있다.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분쟁의 끝없는 순환을 의미할 뿐이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하여 위헌·무효라고 선언하였고( 대법원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참조),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한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다수 선고되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긴급조치 제9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하였고, 그 결과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하는 판결을 받아 확정된 피해자도 많다. 이러한 판결을 한 법관에게 과오가 있는지 따지고 그 과오가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한 법관의 과오와 우열을 가려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가? 현재의 대법원이 유신시대에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자기모순에 빠질 우려는 없을까? 시대나 사회가 변하고 법리가 바뀌어 가면서 이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론도 옳지 않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때 또 다시 오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면 확정판결을 둘러싼 분쟁은 끝없이 반복될 수 있다.

바)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독립적인 불법행위라는 견해는 사법권의 독립을 중요한 이유로 들지만, 사법권의 독립은 법관의 오판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제한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일정한 수준의 과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법관이 소신껏 재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다. 법관의 재판에 대해서 국가배상책임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라. 이 사건의 검토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사실관계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행위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이 사건 본인들이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되어 수사를 받았거나 나아가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형을 복역함으로써 입은 손해에 대하여 피고는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긴급조치 제9호 발령·적용·집행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에는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마. 결론

이 사건은 민주주의가 정착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예외적인 국가불법행위 사건에 속한다. 국가배상법은 이러한 예외적인 사건을 예상하지 못하고 제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는 결론은 국가배상법의 해석을 통하여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이 위에서 보았듯이 현재의 법체계를 깨뜨린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예외적 현상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법체계이고, 그것은 법해석을 통하여 좀 더 완결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판결로써 우리 사회가 긴급조치 제9호로 발생한 불행한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상과 같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결론은 다수의견과 같이하나, 그 이유와 논거가 다르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둔다.

6. 대법관 안철상의 별개의견

가. 이 사건 쟁점과 별개의견의 요지

1) 다수의견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 등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이에 따라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에 관한 국가작용이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한다. 다만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은 ‘공무원의 고의·과실’을 국가배상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에 관여한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책임요소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문제 된다. 이와 관련한 이 사건 쟁점은 헌법 제29조 제1항 에서 정한 국가배상청구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특히 이를 구체화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국가배상의 요건으로 정한 ‘공무원의 고의·과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이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 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규정한 것이 헌법 제29조 에서 규정한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바395 전원재판부 결정 , 헌법재판소 2020. 3. 26. 선고 2016헌바55 등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따라서 법원으로서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없는 이상, 국가배상의 본질에 부합하도록 헌법합치적으로 위 조항을 해석하여야 한다.

2) 별개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헌법 제29조 의 국가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율하는 공권이고, 국가가 공무원 개인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위책임이 아니라 국가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부담하는 자기책임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이해하는 것이 법치국가 원칙에 부합한다 .

둘째, 국가배상을 자기책임으로 이해하는 이상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인 공무원의 고의·과실에는 공무원 개인의 고의·과실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공적 직무수행상 과실, 즉 국가의 직무상 과실이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국가배상법을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

셋째, 다수의견이 이 사건에서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으로 공무원 개인의 고의·과실을 엄격히 새기지 않은 것은 자기책임적인 국가배상책임으로 진일보한 의미가 있지만, 기존의 대위책임적인 입장을 극복하지 않은 채 그와 같은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철저하지 못하다.

그 구체적 이유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다.

나. 공법적 자기책임으로서 국가배상

1) 헌법 제29조 제1항 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라고 정하여 국가배상청구권을 헌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국가배상청구권이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점에 더하여 행정청의 처분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인 이상 공법상의 법률관계라고 보아야 하고, 공무수행 중에 발생한 사인의 피해를 전보하는 공익과 사익의 조정 수단이라는 점에서도 국가배상청구권은 공권으로서 공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2) 헌법 제29조 제1항 을 입법화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이 경우 헌법 제29조 제1항 에서의 ‘불법행위’나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의 ‘공무원의 고의·과실’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가 문제 된다. 이는 국가배상책임의 성질·구조와 관련된 문제이다.

대법원은 국가배상법 제2조 제2항 에서 정한 공무원에 대한 구상책임이나 공무원 개인에 대한 선택적 청구권의 문제와 관련하여,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경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그 직무수행상 통상 예기할 수 있는 흠이 있는 것에 불과하여 여전히 국가 등의 기관의 행위로 보아 전적으로 국가만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고, 고의·중과실에 기한 경우에는 기관행위로서의 품격을 상실하여 공무원 개인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키되 직무행위로서 외형을 갖춘 경우에는 공무원 개인과 국가가 중첩적으로 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다시 말해,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이 경과실인 경우에는 공무원의 직무행위를 국가기관으로서의 행위로 볼 수 있어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자기책임적 입장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고의·중과실인 경우에는 기관행위로서의 품격을 상실하였다고 하여 자기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이 기저에 있다. 이는 국가배상법의 대위책임적 구조, 즉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으로 공무원의 고의·과실을 명시하고 있음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국가배상청구권이 헌법에서 보장되고 있는 만큼 그 해석도 헌법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먼저 헌법 규정을 문언적으로 본다. 헌법 제29조 제1항 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라고만 규정할 뿐 명문으로 ‘고의·과실’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불법행위’라는 용어가 통상 민법 제750조 에서 정한 고의·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헌법 해석에서 반드시 이러한 법률상 의미에 구속될 필요가 없고, 민법 자체에서도 법인의 불법행위능력( 제35조 )이나 불법행위로 인한 점유의 경우 유치권의 배제( 제320조 제2항 ) 등에서 반드시 고의·과실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헌법 제29조 제1항 제2문에서 ‘공무원 자신의 책임’이라고 규정하였으므로 이에 대응하는 제1문은 ‘국가 자신의 책임’에 대해 규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헌법 제29조 제1항 은 독일 기본법 제34조 및 독일 민법 제839조와 달리 국가의 대위책임으로 확정하고 있지도 않다.

헌법을 체계적으로 보더라도 헌법 제29조 제1항 의 국가배상청구권은 기본권의 장에서 제23조 재산권(특히 제3항 의 손실보상청구권), 제24조 선거권, 제25조 공무담임권, 제26조 청원권, 제27조 재판청구권, 제28조 형사보상청구권, 제30조 범죄피해보상권 등과 함께 국가공동체적 권리로서 보장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배상청구권은 손해의 전보, 당사자 사이의 이익 조정 등 순수한 개인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행정활동에 대한 적법성 통제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공무원의 국민에 대한 책임과 국가배상책임을 함께 규정하고 있었던 제헌 헌법 제27조 와 달리 1962. 12. 26. 헌법 개정 이후에는 국가배상청구권과 별도로 공무원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공무원의 불법행위는 국가의사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그 효과가 국가에 귀속될 수 없다는 국가무책임사상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국가가 불법을 행할 수 없지만 재정적 이유로 대신 책임을 진다는 대위책임설로, 이후 국가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진다는 자기책임설로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대위책임설은 국가가 스스로 불법을 행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는 위헌법률심사, 헌법소원, 항고소송 등 사법제도를 통해 국가의 불법이 인정되고 그 법적 효과도 직접 국가에 귀속되는 헌법구조와 조화되지 않는다. 항고소송 등과 달리 불법행위책임에서만 법적 효과가 국가에 직접 귀속되지 않는다고 볼 이유가 없다. 국가가 행정작용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오늘날의 민주적 법치국가 원리에도 부합한다.

국가배상청구권을 보장한 헌법 규정의 문언적, 체계적 해석이나 역사적, 이론적 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국가배상은 국가의 자기책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4) 헌법상 국가배상을 자기책임으로 보는 이상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공무원의 고의·과실’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국가배상을 국가가 공무원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수하는 대위책임으로 이해한다면 공무원의 불법행위 성립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책임요소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자기책임은 공무원 개인의 책임을 필요로 하지 않고, 국가 자신이 행정을 운영하면서 범한 잘못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다. 실제 행정은 공무원 개인의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고 행정운영상의 잘못도 공무원 개인의 행위를 통하여 발생하는 것이지만, 공무원 개인의 책임을 매개로 하지 않고 행정 조직이나 운영상의 결함에 따른 공무원의 공적 직무수행상 과실, 즉 국가의 직무상 과실에 대하여 국가 스스로 책임을 진다.

공적 직무수행상 과실에는 하나의 공무원 또는 여러 공무원의 책임이 문제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공무원 개인에게 책임을 귀속시키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특정 공무원의 행위에 의한 것이지만 해당 공무원을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나 직무 전체의 집합적 과실이 문제 되어 과실을 범한 공무원을 특정하는 것이 불필요한 경우에도 행정 조직이나 운영상의 결함으로 국가의 직무에 요구되는 결과를 얻지 못한 때에는 공적 직무수행상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이 실천적인 의미를 가지는 국면이 바로 공무원의 개인적인 잘못이 인정되기 어려울 때에도 그것이 직무상 과실에 해당하여 국가의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공무원의 과실’은 기본적으로 공무원 개인의 과실을 의미하지만 그 판단에 있어서는 행정 조직이나 운영상 결함을 기준으로 할 수 있다고 보아, 국가배상법상 과실에는 전통적인 사법상 불법행위에서의 주관적 책임 요소보다는 약화된 의미로서 직무상 과실이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공법적 자기책임으로서 국가배상에 어울리는 헌법합치적인 법률해석이다.

5)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나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 등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살펴본다.

유신헌법 제53조 제1항 은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때’에도 긴급조치를 발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그 발령 요건이 완화되어 있었다. 또한 유신헌법 제53조 제1항 , 제2항 은 긴급조치를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거나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대통령에게 포괄적이고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제9호 발령 이전에 긴급조치 제4호가 합헌이라는 취지로 판시하였고, 긴급조치 제9호 시행 당시에도 그 합헌성을 여러 차례 인정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에게 주관적 책임요소로서 개인의 고의·과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집행하는 과정에 관여한 수사기관과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유죄판결을 한 법관의 직무수행은, 당시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하여 위헌·무효가 선언되지 않았고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조차 배제되어 있었던 이상(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 그 직무수행이 위법하더라도 거기에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개인적인 고의·과실이 인정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한 행위와 이를 적용·집행한 행위는 공무원의 공적 직무수행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행정 조직이나 운영상의 결함으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저버린 것이고( 헌법 제10조 제2문 및 유신헌법 제8조 ), 그것이 국가의 직무에 요구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한 것임은 명백하므로 공적 직무수행상 과실, 즉 국가의 직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보기 충분하다. 관여 공무원의 개인적인 잘못이 있는지는 국가배상책임 인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6) 다수의견은, 이 사건과 같이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의하여 기본권이 침해된 사안에서는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이다. 다수의견이 이 사건에서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고의·과실을 엄격히 요구하지 않은 것은 타당하지만, 국가배상을 자기책임으로 파악하지 않으면서 그와 같이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책임요소를 완화하여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철저하지 못하다. 국가배상책임의 성질이나 성립 요건에 대한 판례 변경 없이 주관적 책임요소를 완화하여 해석할 근거가 없다. 그러한 해석은 국가배상을 공법적 자기책임으로 파악하여 국가의 직무상 과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또한 이는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이 문제 되는 특수한 사안에 한정하여 볼 것도 아니다.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고의·중과실에 기한 경우 그 행위는 본질에 있어서 기관행위로서의 품격을 상실하여 국가 등에 그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는 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 공무원의 직무집행상의 과실을 주관적 과실만을 의미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1987. 9. 22. 선고 87다카1164 판결 등의 취지는 모두 변경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법적 불법행위책임과 달리 국가배상책임에서는 공법적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사건과 같은 국가배상사건은 원칙적으로 공법상 당사자소송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밝혀둔다.

다. 이 사건의 검토

다수의견이 설시한 바와 같이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사실관계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이 사건 본인들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되어 수사를 받았거나 나아가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형을 복역함으로써 입은 손해에 대하여 피고는 자기책임으로서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한다.

라. 소결론

이상과 같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결론은 다수의견과 같이하나, 그 이유와 논거가 다르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둔다.

마. 여론

1) 권위주의 시절에 인권침해를 받은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자성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과거를 언제까지나 논란의 대상으로 삼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긴급조치가 위헌성이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무효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선언되었으므로, 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더 강하게 무효라고 판시하더라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판결에 따라 비로소 구제받을 수 있게 된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같은 사안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원고 청구 기각판결을 받음으로써 구제받지 못한 다수의 피해자들도 있다. 이들은 실제로 더 크고 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판결의 기판력에 따라 재판상 구제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또 다른 형평의 문제를 일으킨다.

2) “과거는 여는 것이 아니라 닫는 것이다. 여는 것은 미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미래를 아름답게 열기 위해서는 과거를 제대로 닫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이 부여한 사법의 역할은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고 법적 평화를 통해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사법의 저울로 과거를 제대로 닫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여기에 입법적 해결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긴급조치 제9호는 잘못된 입법이고, 잘못된 입법으로 인한 국가배상 문제는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은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가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해당하는 경우 일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규정 내용에 비추어 그 보상금에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같은 이유에서 헌법재판소도 재판상 화해 간주를 규정한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80 등 전원재판부 결정 ).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 국가배상청구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시간·비용의 소요나 소송결과의 불확실성, 패소판결의 기판력에 따른 피해구제의 불균형 등을 고려하면,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입법적인 해결이 바람직하다. 이것이야말로 과거를 닫고 미래를 여는 진정한 치유와 화해의 길이다.

3) 현대 복지국가는 국민의 복지증진과 행복추구를 국가의 중요한 사명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민주화를 이루며 법치국가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국가이다. 이제 그 수준에 걸맞게 실질적 국민의 삶의 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로 국가배상 시스템의 개선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국가배상제도에 공법적 관점을 보강하는 것이다. 공익과 사익의 조정이라는 큰 틀 아래서 공적 부담과 위험을 평등하게 분배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도개선은 절차적 권리가 확보되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실체적 권리는 절차적 권리인 소송제도가 완비되어야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현행 행정소송법은 1984. 12. 15. 전부 개정이 이루어진 이래 여러 차례 개정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해묵은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외면한 것이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목마름을 해소하면서 선진 국가에 부합하는 책임 행정을 확보하는 바람직한 길은 행정소송법의 선진화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행정소송법의 개정은 시급한 과제이다. 이에 대한 각계각층의 많은 관심이 있기를 기대한다.

7.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

가. 별개의견의 요지

다수의견은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그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로 현실화되었으므로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평가되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한다.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과 견해를 같이하지만 이에 이르는 이유를 달리하므로 별개의견을 개진한다. 그 요지는 아래와 같은바, 이 사건의 쟁점은 공무원 개개인의 손해배상책임 인정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국가배상책임 인정 여부에 관한 것임을 강조하여 둔다.

첫째, 긴급조치 제9호는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발령하고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집행한 것이므로,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로서 이루어진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강제수사 및 공소제기라는 불가분적인 일련의 국가작용은 대통령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직무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 .

둘째,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의 심사 없이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대통령의 위법한 직무행위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을 구성하고, 이를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와 그 집행에 포섭된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

나.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로 인한 불법행위

긴급조치 제9호는 다수의견에서 적절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유신헌법이 정하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되어 목적상 한계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으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정도로 중대하고 명백하게 헌법에 위반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함과 동시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이를 집행하면서 긴급조치 제9호의 중대하고 명백한 위헌성을 인식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긴급조치를 발령·집행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이로 인하여 현실적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은 국가에 대한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

1) 유신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8조 ).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의 제정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한다( 제32조 제2항 ).”라고 정한다. 또한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한다( 제46조 ). 이와 같이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부여한다.

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될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 및 사회상황은 긴급조치권 행사가 필요한 비상사태, 즉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 내지 국가적 안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 내용도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청원권 행사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면서 이를 강제하기 위하여 그 위반 시 영장주의를 배제한 채 수사하도록 하며 장기간의 징역형을 부과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 제한이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이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공익을 상정하기도 어렵다. 긴급조치 제9호가 1975. 5. 13. 발령되어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1979. 12. 8. 해제되기까지 4년 7개월간 존속한 것은 국가긴급권의 시간적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 급박한 국가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조치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사정과 함께 당시 대통령은 1963년부터 장기간 계속하여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여 오면서 국정운영의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사람으로서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과 기본권 보호 의무의 내용, 긴급조치권의 행사 시 법치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과 한계,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따른 위기대응 방식의 적절성 등에 관하여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더하여 보면, 대통령으로서도 당시 긴급조치의 발령, 집행이 필요할 정도로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협이나 그러한 우려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인다.

2)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에 대하여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고, 그 위반자에 대한 강제수사와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을 둠으로써 국가기관을 통한 수사와 재판 등 일련의 집행절차를 예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1975. 5. 13.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면서 부칙으로 당일 15:00부터 즉시 시행하도록 하였고, 이어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무총리를 통해 국무위원인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등에게 명하여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긴급조치 제9호를 집행하도록 지휘하여 위반자에 대한 강제수사절차에 착수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는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의 지위를 함께 갖는 대통령에 의하여 발령과 동시에 집행된 특수성이 있는바, 그 둘을 분리하여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고찰이다. 수사기관의 긴급조치 제9호 집행행위는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서 긴급조치 제9호를 집행하도록 명령, 지휘한 결과이므로 국가배상법상 대통령의 직무행위의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긴급조치 제9호로 인한 국가배상법에 따른 책임을 판단함에 있어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와 집행행위는 독임제 기관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행한 연속적 국가작용으로서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직무행위를 구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3)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으로 말미암아 명백히 예정되어 있던 국민 개개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대통령의 집행행위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장기간 대통령의 직무를 계속적으로 수행하며 다양한 국정운영의 경험을 축적해 온 대통령으로서는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한 수사와 공소제기 등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의도하였거나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유신헌법 제정 직후부터 사회 각계각층에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의 위헌성이나 그로 인한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거듭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헌정질서의 회복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와 집회가 유신시대 내내 끊임없이 펼쳐졌음에도, 대통령은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긴급조치를 계속 발령, 집행하면서 이러한 정당한 요구를 긴급조치 위반행위로 규율하여 행위자들을 대규모로 구속하고 형사처벌을 받게 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 상황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통령은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이나 그 집행으로 중대한 인권침해적 피해가 발생하였음을 충분히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권자 및 그 집행의 최고지휘·감독자로서 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4) 긴급조치 제9호의 처벌규정은 집행을 예정하고 있고 실제 그 집행을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현실화되었다는 점에서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와 수사 및 공소제기의 형태로 이루어진 집행행위는 불가분적인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은 헌법상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고 집행함으로써 국가긴급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그 발령과 수사 및 기소행위라는 불가분적인 일련의 국가작용에 대한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과 그 집행은 일련의 국가작용으로서 국가배상법 제2조 요건에 해당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직무집행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

다. 법관의 유죄판결로 인한 불법행위

1) 다수의견은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한 긴급조치 제9호로 인하여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었음에도 수사과정에서의 기본권 침해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채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한 법관의 재판행위는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고, 그 책임은 재판행위가 독립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와는 관계없다.’고 한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된 피고인에 대하여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 없이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이하 ‘이 사건 법관 직무행위’라 한다)는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 및 집행행위와 함께 일련의 국가작용에 포섭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 헌법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권을 법원에 두고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면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하고 있다(현행 헌법 제101조 , 제103조 , 제106조 유신헌법 제100조 , 제102조 , 제104조 ).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은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함은 물론 입법권과 행정권을 견제할 헌법상 권한과 의무가 있다. 특히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법관은 긴급조치 제9호를 집행하는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독립적인 판단에 따라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가 가능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법관 직무행위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와 함께 일련의 국가작용으로서가 아니라 이와 별개의 독립적인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법 제2조 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을 구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2) 일반적으로 형벌에 관한 법령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된 경우,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되기 전에 그 법령에 기초하여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곧바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에 해당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법관의 재판에 법령의 규정을 따르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이로써 바로 그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위법한 행위로 되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 판결 참조).

그러나 영장주의를 배제한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정도로 중대하고 명백하여 여느 일반 법령이 내포한 통상적인 위헌성과는 차원이 다른 특수성이 있다. 이러한 사정과 함께 긴급조치 제9호의 장기간 집행과 구속재판 등으로 발생한 기본권 침해의 내용 및 규모와 정도, 법관에게 부여된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헌법상 의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이 사건 법관 직무행위는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배하여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직접적이고 종국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한 것으로, 헌법과 법률이 법관에게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여 법관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영장주의는 강제처분의 남용으로부터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자 근대 민주주의 헌법의 요체 중 하나이다. 이는 신체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데에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요구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에 의해 중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는 법관으로 하여금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필요한지 먼저 심사하게 하여, 국가기관이 범죄수사 등과 관련하여 신체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제헌 헌법(제9조) 이래 영장주의가 채택되어 왔고, 유신헌법 제10조 제3항 역시 영장주의를 천명하고 있었음에도 긴급조치 제9호는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하였다.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하는 조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도 가급적 회피하여야 하고,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지극히 한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영장 없이 이루어진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에 대하여는 사후적으로 조속한 시간 내에 법관의 심사를 통해 시정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법관은 영장 발부의 주체로서 수사절차를 사법적으로 통제할 권한과 의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법관이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한 사건에서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하여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 명백한 불법적 수사절차를 그대로 묵인한 채 법관의 영장 없이 구금되어 있던 피고인에 대하여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유죄판결을 선고한 것은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책무인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에 명백히 반하는 위법한 직무행위에 해당한다.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이 시행되고 있는 동안 수사기관이 그 법령에 따라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하였다면 법체계상 그러한 행위를 곧바로 직무범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법령 자체가 위헌이라면 결국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반하여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한 것이고, 그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결과는 수사기관이 직무범죄를 저지른 경우와 다르지 않다. 즉 수사기관이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체포·구금을 한 경우 비록 그것이 형식상 존재하는 당시의 법령에 따른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법령 자체가 위헌이라면 결과적으로 그 수사에 기초한 공소제기에 따른 유죄의 확정판결에는 수사기관이 형법 제124조 의 불법체포·감금죄를 범한 경우와 마찬가지의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8. 5. 2. 자 2015모3243 결정 참조). 따라서 영장주의를 배제한 위헌적인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된 사람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공소제기를 한 경우 여기에는 수사기관이 형법 제124조 의 불법체포·감금죄를 범한 경우와 마찬가지의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하자는 수사기관이 불법체포·구금 이후 사후적으로 법관의 영장을 받았다 하여 치유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장 업무를 담당하는 법관은,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체포·구금된 사람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사후적으로 영장을 청구하였을 때 신체의 자유가 침해된 그 사람을 석방하는 등 적극적인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해당 법관이 위와 같이 불법체포·구금된 사람에 대하여 적극적인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영장을 발부하였다면 이는 그 자체로 위법한 직무행위가 될 수 있다.

나) 헌법은 권력분립의 원칙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국가기관에 그 기능에 합당하게 국가작용을 분배하고 이를 관장하도록 하여, 그들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으로부터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한다. 이를 위하여 헌법은 법관의 자격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한편,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여 법관이 어떤 국가기관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하도록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사법권의 독립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재판하는 데에서뿐만 아니라 행정부, 입법부에 대한 견제역할을 수행하는 데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법원의 명령·규칙에 대한 위헌·위법심사는 법원이 행정부의 위헌·위법행위를 견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헌법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긴급조치 제9호로 공소제기된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은, 법관의 독립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 및 집행행위에 내포된 위헌·위법성을 심사함으로써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를 견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 아래 놓이게 된다.

다) 유신헌법 제105조 제1항 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때에는 법원은 헌법위원회에 제청하여 그 결정에 의하여 재판한다.”라고 정하고, 제2항 은 “명령·규칙·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때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라고 정하여, 법원에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을 시정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다. 명령·규칙에 대한 법원의 위헌·위법 심사권한은 제헌 헌법(제81조) 이래 현행 헌법(제107조 제2항) 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고유한 권한으로 인정되어 왔다. 법원이 이러한 위헌·위법 심사권한을 행사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핵심인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민주적 가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법원에 부여된 헌법적 책무이기도 하다.

긴급조치에 대한 법원의 사법심사는 당시 긴급조치로 발생한 인권침해를 합법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그 위헌성을 바로잡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여러 형사사건에서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논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배척하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특히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수많은 사건에서 재판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계속적·반복적으로 사법심사를 해태하였고, 이는 대법원조차 마찬가지였다.

라)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은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였지만, 이는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헌법상의 발동 요건을 갖추고 정당한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법원이 그 결단에 대한 사법적인 심사를 자제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실제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가 유신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발령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고 그 내용도 위헌성이 명백하여 긴급조치의 실질을 전혀 갖추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유신체제의 연장을 위한 시대적 상황에서 발령된 것이어서 유신헌법 제53조 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인 이상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여전히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사법적 심사의 권한을 갖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의 담당 법관은 긴급조치의 위헌성에 대한 사법심사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 법률 또는 명령·규칙에 대한 법원의 위헌심사를 인정하였던 유신헌법 전후의 헌법에 비추어 본다면,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를 원천적으로 제외한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은 우리 헌정사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기형적인 것이었다. 위 조항을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사법심사를 완전히 배제하는 효력을 갖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그 자체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극단적인 위헌 조항임을 역설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오히려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은 그 위헌성을 해소하기 위하여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법관의 사법심사권한 발동을 적극적이고 긴급하게 요청하는 모순적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의 형식적 문언을 방패로 삼아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의 심사 없이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법관이 기본권 수호라는 헌법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마) 긴급조치 제9호가 1975. 5. 13. 발령되어 4년 7개월간 존속하는 동안 사회 각 계층에서 그 중대한 위헌성과 인권침해의 심각성에 대하여 다양한 형태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시민사회단체나 학생들의 집회와 시위 및 출판행위에서부터 문인의 작품 발표나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사적인 의견교환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정당한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행위에 해당하였고, 수사기관은 그들의 행위를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의율하여 영장 없이 체포한 다음 공소제기하였다. 긴급조치 제9호의 존속기간 동안 900여 명의 피고인들이 법관의 재판을 통해 그 위반행위에 대한 판결을 선고받았고 그중 상당수가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하였다. 긴급조치 제9호의 이러한 장기간 집행과 강제수사, 영장 없는 구속 등으로 발생한 기본권 침해의 규모와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피고인이 수사기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였다는 주장이나 긴급조치가 위헌·무효라는 주장을 하였음에도, 법관은 이를 묵살하거나 배척하고 종국적으로 영장 없이 체포된 피고인에 대하여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유죄판결을 함으로써 신체의 자유를 최종적으로 박탈하는 중대한 피해를 야기하였다.

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은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해 위헌·무효를 선언하면서,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으로서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로 인하여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나아가 우리나라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부정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책무를 다하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법관의 유죄판결은 형사사법에서 종국적인 절차로서 유죄판결이 선고·확정된다면 재심과 같은 특별소송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원칙적으로 구제의 방법이 없고, 재심이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불법체포·구금으로 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한 손해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결국 이 사건 법관 직무행위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법적인 책무(책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나 사법권의 담지자(담지자)인 법관의 역할에도 부합하는 해석이다.

바) 오늘날의 법치주의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써 정해야 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의 목적과 내용 또한 기본권 보장의 헌법이념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실질적 적법절차를 요구하는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헌법재판소 1994. 6. 30. 선고 93헌바9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정도로 중대하고도 명백히 위헌인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이 사건 법관 직무행위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위반하여 긴급조치의 위헌성 심사에 관한 정당한 사법권 행사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고, 이들 직무행위에 대해서 공무원 개인의 법령준수의무와 같은 일반적인 법 논리를 내세워 국가의 면책을 용인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요체로 하는 헌법의 기본 이념이나 기본권의 수호자인 법관의 헌법적 위상과 양립할 수 없다. 영장주의에 반하여 불법체포·구금된 피고인에 대하여 인신보호조치를 취해야 하는 법관의 주의의무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기반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최소한을 설정한 ‘평균적 법관’의 규범적 주의의무로서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들어 ‘이상적 법관상’ 또는 ‘지사(지사)형 법관상’을 전제로 법관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의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이하 ‘별개의견 1’이라 한다) 중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을 제한적으로 축소 해석하여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 평균적 법관으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는, 헌법에서 부여한 법관의 책임과 권한에 따른 규범적 관점에서의 평균적 법관의 주의의무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개의견 1에서 밝힌 내용과도 모순된다. 별개의견 1은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으로서는 마땅히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하여 사법심사권을 행사함으로써 그 책무를 다하여야 한다.’고 하여 긴급조치 제9호가 헌법상 요건과 한계에 부합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도, 당시의 법관은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심사권한이 없어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영장 없이 체포·구금된 피고인에 대하여 위헌성 심사 없이 유죄판결을 한 것이 평균적 법관의 주의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갖는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사법심사권 행사권한’과 ‘법원을 구성하던 개별 법관이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 재판에서 부담하는 평균적 주의의무’가 규범적으로 별개라고 볼 수 없다.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법원의 기본권 보장 및 헌법 수호의 책무는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허상의 개념이 아니다. 이는 사회 현실의 맥락 속에 존재하는 개별 법관이 구체적 사건 하나하나에서 사건 당사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았는지 세세히 살펴 위헌, 위법행위로부터 국민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달성된다. 개별 법관이 구체적 사건에서 중대·명백하게 위헌인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 심사를 하지 않는다면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사법심사권한이라는 헌법상 책무는 누가, 어떻게 수행하여 달성할 수 있겠는가? 우리 헌법은 제정 이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권력분립의 원칙과 법관의 독립, 기본권의 보장과 영장주의 등을 일관되게 천명하여 왔다. 재판상 직무행위를 통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기본권을 옹호함에 있어 유신시대 법관의 헌법상 책무와 평균적 주의의무는 오늘날 법관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고, 국가배상법 적용 여부에 관한 법률적 평가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여야 한다.

3) 정상적인 재판제도가 작동될 때 재판의 오류는 예정된 불복절차에 따라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법관의 재판작용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함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야 한다. 형사사법절차는 실체적 진실발견과 적법절차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관여자의 오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수사와 공소제기 과정에서의 오류는 법원의 판결 등으로, 재판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는 상소절차 등을 통해서 시정할 수 있고 그것이 형사사법절차 또는 재판제도가 갖는 본질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통상적인 재판과정에서 절차상·실체상 판단의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상소절차 등 법에서 정한 불복절차에 따라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재판사무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재판제도가 본래 예정한 방식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대법원은 경매법원이 잉여의 가망이 없음에도 그 통지와 경매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경매절차를 진행하는 바람에 우선채권자의 저당권과 지상권이 소멸된 사안에서, 법관의 재판에 법령의 규정을 따르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0다29905 판결 ). 이후 대법원은 같은 법리를 적용하여 근저당권 설정을 오인·누락한 배당표 작성행위로 실체적 권리관계와 다른 배당표가 확정된 사안(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16114 판결 ), 법관이 압수수색할 물건의 기재가 누락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사안(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47290 판결 ), 적법한 제소명령 기간 내에 제소를 하였음에도 법관이 제소기간 만료일을 오인하여 가압류취소결정을 한 사안(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19다226975 판결 ) 등에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였다. 한편 법관의 재판사무와 유사한 헌법재판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와 관련하여 청구기간 내에 제기된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청구기간 오인으로 인하여 각하하는 결정을 한 것은 그에 대한 불복절차 내지 시정절차가 없는 경우로서 국가배상 이외에는 그 손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으므로 위 법리에 따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 판결 ).

이러한 법리는, 입법자가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민사집행법 등 관련 법령을 통해 통상적인 재판상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각종 이의제도와 상소제도 등을 세심하게 구비하여 둠으로써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의나 상소를 제기하여 상급심 법원의 재판 등으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부여한 것을 근거로 하여, 재판제도가 예정한 범위 내의 일반적인 법률 적용의 오류는 그에 대한 불복절차 또는 시정절차가 마련되어 있는 이상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만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집행된 시기는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에 따른 정상적인 사법시스템이 작동을 멈춘 시기였다. 영장주의를 배제한 긴급조치 제9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으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정도로 중대하고 명백한 위헌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장기간에 걸쳐 위헌심사를 해태하였고, 영장 없이 체포된 피고인들에 대하여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불법적인 구금상태가 지속되게 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유죄판결의 선고로 징역형을 복역하게 함으로써 피고인들의 신체의 자유가 돌이킬 수 없이 침해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이러한 법관의 재판행위는 통상적인 재판과정에서의 절차상·실체상 판단 잘못과 달리 헌법과 법률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여 법관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하기 충분하다. 이는 재판의 주재자이자 사법권의 수호자로서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에 따라 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할 헌법적 책무를 부여받고 있는 법관이 그러한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이다. 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 판결 등 확립된 판례의 법리에 따를 때 법관의 이러한 직무수행에 대하여 국가배상법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판단이 확립된 판례의 입장과 실질적으로 상충된다거나 판례 변경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이 사건 법관 직무행위는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배하여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직접적이고 종국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는 점에서 재판제도가 예정한 범주 내에 있는 일반적인 법률 적용의 오류에 관한 사안과 비교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사후적으로 재심절차를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고, 실제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에 대한 유죄확정판결 중 상당수는 긴급조치의 중대한 위헌·무효를 선언하는 대법원판결이 거듭 선고된 이후 재심청구를 통하여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재심 무죄판결 선고로 종전 유죄확정판결은 이미 그 확정력을 상실하였으므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에 관한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보호하여 분쟁을 종결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이 사건 법관 직무행위의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재심절차는 유죄의 확정판결을 소거하고 무죄판결을 선고하는 작용을 하는 것일 뿐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구금되었던 사람이 그러한 불법행위로 침해당한 신체의 자유 그 자체를 회복시키는 것은 아니다. 불법체포·구금되었던 사람이 입은 인신구속의 피해는 확정적이고 종국적이다. 그들이 재심 무죄판결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사정을 들어 사후적으로 재판상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불복절차나 시정절차가 있으므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대법원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사안들은 재산권의 침해와 관련된 사안이거나 해당 재판절차 내에 예정된 불복방법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음에도 피해자가 불복에 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피해가 확정된 경우였고, 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에서 시정 가능한 오류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긴급조치 위반 사건은 영장주의를 위반한 불법체포·구금에 따른 신체의 자유 침해가 문제 되는 사안일 뿐만 아니라, 긴급조치가 갖는 위헌·무효성의 중대·명백함이나 행정부, 입법부의 국가권력 행사를 견제해야 하는 법원의 사법시스템이 위헌성 심사를 해태함으로 말미암아 유신시대 내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였다는 사정 등에서 대법원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사안들과는 완전히 다른 평가요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재판상 직무행위에 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앞선 대법원의 선례와 비교하여 평가모순이 있다고 할 수 없다.

4) 별개의견 1은 많은 국가에서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독일,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평상시 상황에서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는 위 국가들의 태도는 우리나라 대법원이 현재 취하고 있는 태도와 크게 다를 바 없고, 그러한 태도가 타당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영장제도를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긴급조치가 발령되어 장기간 집행된 비상상황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하여 재판한 법관의 직무행위에 대해 위 국가들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위 국가들에서는 긴급조치와 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법령이 발령되거나 그로 인해 신체의 자유를 빼앗기는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이 국가배상을 청구하여 법원의 판단이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상상황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에 대하여 판단하면서 평상시를 전제로 한 외국의 예를 근거로 해석론을 전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사건과 바로 비교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니지만 나치 전범 재판에서는 법관이라는 이유로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한 책임 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5)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 별개의견에서 긴급조치 제9호와 관련한 재판상 직무행위에 관하여 주목하는 부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영장주의의 전면적인 배제와 그에 따른 피고인에 대한 불법체포·구금의 문제이다. 영장주의에 위배된 강제수사로 불법체포되어 구금된 피고인에 대하여 위헌성 심사 없이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직무행위는 단순한 오판의 문제가 아니고, 그로 인한 피해는 심급제도에 의하여 시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영장주의에 위배된 불법체포 및 구금에 따른 국가배상책임 문제와 심급제도에 의하여 시정되리라 기대될 수 있는 통상적인 오판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 문제를 같은 평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개인에 대한 불법체포 또는 구금으로 인한 신체의 자유 침해는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이고, 그것이 설령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기인한 것일지라도 이에 대한 엄정한 법적 판단을 통한 피해구제가 요구된다. 별개의견 1과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으로 불법체포·구금된 피고인에 대하여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법관의 직무행위가 갖는 이러한 중대한 인권침해적 특성에 주목하지 않은 채, 이를 평상시의 단순한 오판의 문제와 동일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어 수긍하기 어렵다. 또한 대법원이 1977. 5. 13. 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 으로 긴급조치 제9호가 유신헌법에 근거한 것으로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고 하여, 대법원판결이 갖는 선례로서의 사실상 구속력 등을 들어 하급심 법관이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불법체포·구금된 피고인에 대한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직무행위에 평균적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고 보는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불법체포·구금의 문제는 재판에서 이루어지는 사실인정이나 법리 판단의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위 전원합의체 결정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피고인에 대한 불법체포 또는 감금행위나 신체의 자유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가 위 전원합의체 결정으로 사후적으로 하자가 치유되어 적법하게 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위 전원합의체 결정이 있었다고 해서 그 이후에 새롭게 이루어진 피고인에 대한 불법체포 또는 감금행위나 신체의 자유 침해행위가 더 이상 위법한 것이 아니라거나 해당 불법행위자가 면책된다고 볼 수도 없다.

라. 이 사건의 검토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이 사건 본인들은 ○○대학교 학생의 신분이던 1977년경부터 1979년 사이에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제9호의 반민주성과 위헌성을 비판하는 내용의 집회·시위를 하거나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행위 등을 하였고, 이러한 행위를 이유로 수사기관에 의해 영장 없이 체포·구금된 채 수사를 받았으며, 원고 5를 제외한 나머지 이 사건 본인들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죄로 공소제기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본인들이 위헌·무효임이 명백한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된 채 수사를 받고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입은 정신적 고통을 비롯한 손해는, 대통령의 고의·과실에 의한 위헌적 국가긴급권 행사와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 없이 이루어진 법관의 유죄판결로 인하여 발생한 것으로서 그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에 관한 긴급조치권 행사와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에는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마. 마무리

이상과 같이 사건의 결론에 관하여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하지만 그 이유는 다르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 둔다.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은 민주주의 체제와 사법권의 수호자이며 인권의 옹호자로서 헌법에 의하여 숭고한 권한과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이와 같은 법관의 존귀함과 긍지는 헌법이 선언한 법관의 독립을 통하여 드러나고, 개별 법관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헌법상 부여된 권한과 책임을 다하여 인권옹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완성된다. 법관이 인권옹호의 굳건한 의지로 개별 사건에서 재판행위를 통해 행정부, 입법부에 대한 견제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을 제대로 구현하는 길이다. 이는 법관의 도덕적, 윤리적 소임일 뿐만 아니라 헌법적 책무이기도 하다. 유신시대에 법령의 형태로 나타나 극단적인 인권침해의 결과를 가져온 긴급조치의 경우처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어두운 시대 상황일수록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수호의 책무를 다할 것을 더욱 절실히 요청한다. 법관이 그 요청에 부응하여 행한 인권옹호조치는 헌법적 가치가 현실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여 헌법이 보장한 다양한 권리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속에서 꽃 피울 수 있게 한다. 이와 반대로 법관이 헌법수호의 요청을 묵살하고 위헌적 법령의 테두리 안에 안주할 때 인권침해의 양상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법관의 독립은 얼마나 위태로워지는지, 우리는 긴급조치 사건의 재판을 통해 목도하였다. 법관은 통치권자나 지배권력이 위헌·위법한 국가권력 행사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도구로 전락되어서는 결코 아니 되고,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권한과 책임을 다하여 위헌·위법한 국가권력 행사를 견제하여야 한다. 국가권력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회전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법관은 바퀴에 달린 톱니 하나에 불과하여 외부적 요인으로 톱니바퀴의 회전이 멈추지 않는 한 톱니바퀴와 함께 회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톱니바퀴의 외부에 존재하는 제동장치로서 필요한 경우에는 톱니바퀴의 회전을 멈출 수 있는 존재인가? 법관이 톱니바퀴의 외부에 존재하는 제동장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긴급조치 사건에 관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과 반성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법적 평가의 문제가 아니며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사법부상이나 법관상은 어떤 모습인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미래를 위하여 법관에게 요구되는 헌법적 책무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사법부와 법관의 위와 같이 중차대하고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재확인하고 다짐하는 차원에서 이 별개의견을 밝힌다.

8.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

가. 보충의견의 요지

다수의견은, 위헌·무효임이 명백한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손해를 입은 국민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논거를 밝히고 이에 배치되는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결론에 일치한 점 역시 뜻깊은 일이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이 선고에 이르기까지 47년의 긴 경위를 요약하고 그 의미를 짚어 보고자 한다. 아울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데에 견해를 같이하지만 이유를 달리하는 세 개의 별개의견에 대하여도 살펴봄으로써 다수의견의 논거를 보충한다.

나.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변경대상 판결에 이른 경위

1)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이하 ‘긴급조치 제1호’라 한다)는 1974. 1. 개헌 요구를 억압하기 위해 헌법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발령되었다.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이하 ‘긴급조치 제4호’라 한다)는 1974. 4.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과 그 배후 조직으로 지목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대응하여 관련 단체 및 학생들의 활동을 금지하는 등의 목적으로 발령되었다. 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1974. 8. 해제되었고 대통령긴급조치 제7호(이하 ‘긴급조치 제7호’라 한다)가 1975. 4. 발령되었다가 고조되어 가는 유신반대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긴급조치 제1호부터 제7호의 내용을 하나로 모은 긴급조치 제9호가 1975. 5. 13. 발령되어(긴급조치 제7호는 같은 시각에 해제되었다) 4년여 지속되다가 1979. 12. 8. 해제되었다.

2)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은 반민주적·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 통합에 기여할 목적으로 제정되어 2005. 12. 1.부터 시행되었다. 과거사정리법은 국가에 대하여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위 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가 권고한 사항을 소관 국가기관이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3)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 10. 및 2009. 8. 긴급조치 제1호, 제4호, 제9호 피해자들에 대하여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 에 규정된 ‘권위주의 통치 시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는 진실규명결정을 하고, 긴급조치로 처벌받은 피해자들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상 재심과 더불어 인권침해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한 별도의 입법 등 국가에 대하여 관련 조치의 이행을 권고하였다.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가 2010. 12.부터 2013. 5.까지 긴급조치 제1호, 제4호, 제9호에 대한 위헌 판단을 하였고, 피해자들이 제기한 재심의 소에서 긴급조치 위반 부분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선고·확정되었다.

4) 그러나 긴급조치로 처벌받았던 피해자들의 손해에 대한 전보는 원활하게 이행되지 못하였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른 형사보상금은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와 병존할 수 있음을 전제로 같은 원인에 대한 국가배상과 형사보상이 상호 공제되도록 규정되어 있고( 제6조 제1항 , 제3항 ), 보상의 범위도 구금일수에 일정 액수를 곱한 금액에 불과하다. 또한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들이 구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받더라도 30일 이상 구금일수에 최저생계비 등을 곱하여 산정된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뿐이어서 정신적 손해배상에 상응하는 보상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이러한 까닭에 다수의견 중 원고 45에 대한 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에 대한 위헌결정에 이르게 되었다).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외에는 달리 손해의 전보 방안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5)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주장·증명할 책임을 피해자에게 부담시킬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입법으로 국가배상법상 인정되는 배상범위에 상응한 손해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안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를 비롯하여 긴급조치를 둘러싼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에 대하여는, 손해전보를 통한 피해자 구제보다 긴급조치 판결의 효력 상실 등 과거 청산에 중점을 두고 입법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정치적·이념적 대립으로 피해자들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실효성 있는 피해 전보에 관한 입법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변경대상 판결들은 이러한 가운데 선고되었는데, 법률이 위헌으로 선언되지 아니하였던 이상 관여 공무원의 직무수행을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원칙적인 법리를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하여도 그대로 적용한 결과였다. 위 대법원판결이 선고되자 이를 원용하면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는 판결들이 다수 선고되었다. 이 사건 원심판결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법원이 긴급조치 제9호를 위헌으로 판단하였음에도 오히려 피해구제가 제한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다. 다수의견의 의미

1) 다수의견은 긴급조치 제9호의 현저한 위헌성과 인권침해 결과, 피해자들에 대한 절실한 구제 필요성을 재인식하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의 결단의 표명이다.

전통적인 국가배상법리는 직무를 수행한 개별 공무원의 주의의무 위반, 즉 공무원 개인의 고의·과실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여 왔다. 그러나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법률의 제정과 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구성된 경우 개별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대한 증명을 요구한다면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또한 위헌 법률일지라도 원칙적으로 법률이 위헌으로 선언되지 아니하였던 이상 관여 공무원들의 직무행위를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원칙은 법치국가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각 기능을 독립된 국가기관이 수행하는 구조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는, 대통령에게 발령 권한이 부여되어 의회에 의한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였고 법관의 재판에 의하여야 하는 영장주의가 배제되는 등, 법치국가의 원리가 형해화되는 상황을 야기하였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국가배상 법리를 답습하여 긴급조치 제9호에 그대로 적용한 기존 판례의 부당함과 변경 필요성은 이미 다수의견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2) 일련의 국가작용이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 전체적으로 위법하다는 법리는 이미 일련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문제된 사건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근거로 채택되어 왔다.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에 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8. 21. 선고 2006가합92412 판결 등을 시작으로 긴급조치 위반뿐 아니라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계엄법 위반 등 다수의 판결에서, 수사과정에서 불법연행, 변호인 접견 방해, 가혹행위를 수단으로 하여 증거를 취득하여 기소에 이르고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던 경우 관여 공무원의 개별적인 불법행위에 더하여 수사부터 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 전체에 대하여 국가배상을 명하였다.

3) 다수의견이 밝힌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여 위법하다고 평가되는’ 경우의 구체적인 의미와 범위 확정은 향후 재판실무에서 계속적으로 적용·발전시켜 나갈 과제라 할 것이다.

라. 대통령의 독립적인 불법행위에 의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1) 별개의견 1 및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이하 ‘별개의견 3’이라 한다)은 긴급조치의 발령, 수사 및 공소제기가 대통령의 위법한 직무행위로서 독립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견해이다. 긴급조치 제9호 발령에 대하여는 국가원수로서, 긴급조치 제9호에 기한 수사 및 공소제기의 형태로 이루어진 집행에 대하여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별개의견 1의 견해 중 다수 공무원의 집단적·조직적 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청구에서는 구체적인 위법행위와 고의·과실을 특정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위 별개의견의 전체 맥락상 대통령의 독립적인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견해로 이해된다).

2)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가 독립적인 불법행위를 구성하려면 대통령의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별개의견 1, 별개의견 3은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이 중대하고 명백하며, 긴급조치 발령 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장기간 존속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대법원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등이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근거로 삼은 사정들로서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근거는 되지만, 이를 넘어 대통령으로서 직무집행의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독립적인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유지가 가능하였던 이유는 유신헌법 제53조 가 긴급조치 발령권을 대통령에게 전속적으로 부여하고 사전적·사후적인 국회의 통제권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신헌법 제53조 의 부당성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아직까지도 대법원 또는 헌법재판소가 위 헌법 규정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바는 없다. 오히려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개별 규정에 대한 위헌심사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견해를 반복하여 표명하여 왔다( 헌법재판소 2018. 5. 31. 선고 2013헌바22, 2015헌바147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3) 별개의견 3은 대통령이 수사 및 기소에 대하여도 행정부 수반으로서 불법행위책임을 진다고 한다. 이미 다수의견이 밝힌 바와 같이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만으로는 개별 국민에게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에 의하여 비로소 그 집행의 대상이 되었던 이 사건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손해가 발생하였다. 별개의견 3은 이를 회피하기 위하여 긴급조치의 적용·집행행위까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포함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 헌법 제66조 제4항 , 유신헌법 제43조 제4항 )를 갖는다. 그 의미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라고 해석될 뿐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에 의하여 대통령에게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 2017. 3. 10. 선고 2016헌나1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또한 공무원들이 개별적으로 직무를 수행한 법적 효과, 특히 사법적(사법적) 효과가 대통령에게 귀속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별개의견 3의 논리에 따른다면, 대통령의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로 인하여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모든 위법한 직무수행의 법률적 효과가 대통령에게 귀속되어 대통령의 독립적인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부당한 결과가 된다.

4) 그 밖에 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일 즉시 시행되었다는(대통령은 긴급조치 제7호를 해제함과 동시에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시행하였다) 사정만으로 대통령이 ‘집행권자’의 지위를 취득하였다거나 위 긴급조치가 발령과 동시에 집행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5) 국가에 대한 배상책임을 묻는 이 사건에서 관여 공무원의 행위는 다수의견에서와 같이 국가의 배상책임을 충족하는 행위의 범위에서 평가되면 충분하다. 다수의견이 ‘진실을 밝히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과거사정리법의 입법 취지에 보다 부합하는 해석 방법이다.

마. 법관의 독립적인 불법행위에 의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1) 별개의견 3은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이 독립적인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에 의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견해이다. ‘위헌성의 심사 없이’ ‘영장 없이 체포된 피고인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2) 가) 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 판결 등 확립된 판례는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정한 위법한 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이 발생하는 요건에 관하여 판시하여 왔다. 별개의견 3 역시 위 판례의 적용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먼저 확립된 대법원 판례의 인정 기준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나)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고( 헌법 제101조 제1항 유신헌법 제100조 제1항 ), 사법권의 중핵에 해당되는 것은 재판권의 행사이다. 재판권의 행사는 과거의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이와 관련된 법령의 의미·내용·적용 범위를 밝힌 다음 해당 사건에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 본질이 있다. 이는 곧 과거의 법률관계를 둘러싼 분쟁을 제3자인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한 국민적 합의이자 헌법적 결단이다.

그러나 법관은 해당 사건에 관한 과거의 사실관계를 알지 못하는 ‘제3자’라는 점에서 사실관계의 확정 및 이를 전제로 한 법령의 해석·적용 과정에 본질적으로 오판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다만 법관의 판단 작용에 대한 오류를 최소화하거나 판단 기준을 마련하기 위하여 법령에서 증명책임을 중심으로 한 소송절차를 정하였고, 불복절차를 통하여 오류를 시정할 수 있도록 심급제도를 마련하였으며, 이러한 절차를 거친 후에는 법령에서 예외적으로 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심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재판절차를 통하여 확정된 사실관계와 법률관계에 관하여 법률상·사실상의 구속력을 부여하고 있다.

즉 이러한 사법제도는 법관의 재판권 행사의 무오류성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오류가 내재될 수밖에 없는 한계와 속성을 전제로 하여 마련된 것이고, 이는 법관으로 하여금 법령에서 정한 재판절차를 통해 법률 분쟁에 관한 결론을 도출하도록 하고, 당사자들은 이에 승복하거나 구속되도록 함으로써 과거의 사실관계와 법률관계를 확정하여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새로운 법률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법치주의의 기본적 토대이기도 하다.

다) 이러한 측면에서 법관이 재판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대한 고의·과실 등의 위법성을 전제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이는 명시적 입법 또는 해석론이나 판례 등 구체적인 방법만 다를 뿐 여러 선진국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이는 단순히 법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이론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기본적 토대인 사법제도의 운영과 사법권의 중핵에 해당하는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의 역할과 한계를 공통적으로 인식한 데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이다.

또한 헌법은 법관으로 하여금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것을 정하였고( 헌법 제103조 유신헌법 제102조 ), 이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초가 되는 사법부 독립의 핵심인 ‘법관의 독립’에 해당한다. 법관의 독립은 그 자체로 실현하여야 할 가치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재판권의 행사와 관련하여 법관에게 헌법·법률·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함으로써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며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법관의 판단을 핵심으로 하는 재판권의 행사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쉽게 인정한다면 재판절차·심급제도 등을 통해 확정된 사실관계와 법률관계에 대하여 재심절차를 우회하는 사실상의 불복절차를 허용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상실하게 하고, 분쟁의 무한반복이라는 결과를 낳게 할 우려가 클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의 실현을 방해하여 국민의 권리와 기본권 보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라) 법관은 어떤 법률 조항에 대하여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한 경우, 가능하면 입법권을 존중하여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이 존속하고 효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 즉 합헌적 법률해석을 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6두41071 판결 , 헌법재판소 1990. 4. 2. 선고 89헌가11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법관이 재판권을 행사하면서 법률의 해석·적용에 관하여 합헌적 법률해석의 방향을 선택하였으나, 사후적으로 해당 법률이 위헌으로 선언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재판권의 행사가 소급적으로 위법해진다고 평가할 수 없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도 선험적으로 명백하거나 명료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대적·사회적 상황은 물론 국민들의 의식 변화 등에 따른 사후적·결과적인 것이어서, 본질적으로 유동성·탄력성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재판은 법관이 스스로 절차의 개시를 결정할 권한이 없고, 개시된 재판절차를 법관의 주관적인 견해만으로 임의로 종료시킬 권한도 없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소극적·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특성과 한계를 지닌다. 법관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범위에 한정하여 검사가 주장하는 해당 법령이 증거를 통해 인정되는 구체적인 사실관계하에서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공판절차를 거쳐 심리·판단할 법령상 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검사가 공소사실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법률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관이 재판절차의 진행을 거부하거나 임의로 재판절차를 종료시킬 수 없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법관은 합헌적 법률해석의 원칙에 따라 해당 법률의 합헌적 해석·적용을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법률이 사후적으로 위헌으로 판단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그 법률의 적용 여부가 문제 된 형사재판의 위법성을 추단하여서는 안 된다.

마) 결국 법관의 재판작용은 위헌인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을 구성함으로써 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뿐이라는 다수의견은 타당하다. 법관의 재판작용은 구체적인 단계·절차의 정도, 종결된 사유·경위 등에 따라 원고들의 기본권 침해의 종료 시점을 판단하고 국가배상책임의 범위를 정할 때 고려되는 사정에 포함되게 된다. 그러나 법관의 재판작용 자체가 이와 구분되어 독립적인 국가배상책임을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

3) 가) 별개의견 3은, 법관이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가 가능하였으므로 위헌성을 시정할 권한으로 유신헌법 제105조 에 따라 헌법위원회에 대한 위헌심판제청권을 행사하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관이 위헌성의 심사 없이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한 재판작용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본다.

나) 헌법 제107조 제1항 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라고 규정하며, 유신헌법 제105조 제1항 에서는 헌법위원회에 제청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위 규정의 의미는, 법관은 그 재판에 적용될 법률조항이 위헌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다는 것이므로( 대법원 2007. 6. 18. 자 2007아12 결정 등 참조), 법관에게, 재판에서 적용 대상인 법률조항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할 직무상 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

또한 법관이 위헌성을 심사한 결과 합헌으로 판단하면 그 재판을 계속하여 판결을 선고하면 충분하다. 명시적으로 합헌이라고 판단한 경우는 물론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 여부에 관한 명시적인 판단 없이 유죄판결을 하였다고 하여 그 재판의 담당 법관이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을 심사하지 않았다고 속단할 수 없다.

다) 별개의견 3은 위헌성 심사에 관하여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을 심사할 의무’라는 개념을 통해서 ‘긴급조치를 위헌으로 판단할 의무’ 내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할 의무’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관에게 그러한 의무가 인정되지 않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이는 법원과 유신헌법상 헌법위원회의 관계 및 재판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헌법과 법률의 명문에 부합하지 않는다.

4) 가) 별개의견 3은 ‘법관의 개별적인 재판작용’을 독립된 불법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본인들이 피고인이었던 재판에서 그 재판을 담당한 특정 법관을 기준으로, 그 법관이 처리한 구체적인 재판을 대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 사건 본인들에 대한 1, 2심 유죄판결은 1978. 1. 28.에서 1979. 10. 24. 사이에 선고되었다. 이미 그로부터 3년여 전에 대법원 1975. 1. 28. 선고 74도3492 판결 이 긴급조치 제1호의 합헌성을 판시한 이후 긴급조치 제1호, 제4호 등에 대하여 같은 취지의 대법원판결이 선고되었고 대법원 1977. 5. 13. 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 은 긴급조치 제9호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나) 대법원 판례의 법원성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대법원 판례의 법리가 법관에게 유용한 판단 지침을 제공하여 자의적 판단을 통제하고 법률해석을 균등화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며 재판관계인들에게도 행위 지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법원 판례에 어떤 의미에서이든 구속력이 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대법원 판례의 구속력이 갖는 의미에 관하여 법관의 재판은 국가의 사법제도를 통일적으로 운영하는 일환으로 행하는 것이므로 하급심 법관으로서 판례를 존중하여야 하는 것은 법관의 직업윤리에 그치지 않고 법적인 의무라는 견해, 심급제도상 대법원 판례는 하급심 법관들에게 사실상 강한 구속력이 있다는 견해, 대법원 판례가 직접 하급심 법관을 구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급심 법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법원 판례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견해 등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어떤 견해에 의하더라도 다수의 대법원 판례가 있는 상황에서 하급심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으로서 그러한 확립된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따른 것이 위법하다거나, 나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 이 사건 본인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되던 당시에는 긴급조치 제9호를 합헌으로 판시한 대법원 판례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담당 법관이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였지만 헌법의 문언, 확립된 대법원 판례 법리와 위에서 본 판례의 구속력에 따라 심리와 판결을 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담당 법관은 부득이 유죄판결을 선고하되 양형에서 재량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하였을 수도 있고, 실제 이 사건 본인들 중 원고 23은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별개의견 3은 구체적인 재판 결과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 없이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일률적으로 재판을 담당한 법관의 고의·과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타당하지 않다.

라) 특히 별개의견 3에 따르면 이 사건 형사재판 1, 2심 담당 법관의 경우, 그 법관이 따랐어야 할 대법원 판례의 구속력 등을 도외시한 채 오히려 합헌성을 선언한 대법원 판례의 부당성을 위 1, 2심 재판 담당 법관의 잘못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5) 다음으로 별개의견 3은 영장주의가 전면적으로 배제되어 불법적인 수사절차를 그대로 묵인한 채 법관의 영장 없이 구금되어 있던 피고인에 대하여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유죄판결을 선고한 것을 불법행위라고 보고 있다.

피해자들은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헌법상의 영장주의가 배제된 채 영장 없는 체포·구금으로 수사절차가 개시되었으나, 이후 계속하여 영장 없는 구금상태에서 재판에 이른 것은 아니다. 원심판결 이유에 따르면 이 사건 본인들이 긴급조치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되었지만, 그 후 법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영장이 집행된 것으로 보이고, 이는 제1심에서 증거로 제출된 국가기록원 보관 ‘재소자신분카드(갑 제5호증 내지 갑 제12호증, 갑 제22호증)’의 ‘영장집행’란 기재에 비추어 명백하다. 원고 45에 대하여는 원심 인정 ‘영장집행일’ 자에 법관에 의하여 발령된 구속영장도 증거로 제출되었다(갑 제10호증의 2).

즉 이 사건에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수사 초기 영장 없이 체포가 이루어졌더라도 공소제기 전 구 형사소송법(1980. 12. 18. 법률 제328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01조 에 따라 법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였고, 이 사건 본인들 모두 구속영장에 따른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다수의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영장주의가 배제된 채 영장 없는 체포로 수사가 개시되고 그 위법상태가 이어져 기소 및 재판까지 받게 된 이상 위 수사절차의 위법성은 단절되지 않고 재판과정까지 이어졌다. 즉 긴급조치 제9호에 따른 수사절차의 위법성은 형사절차 전체 과정에서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이로 인하여 유죄판결이 선고·확정되어 형의 집행에 이르게 되는 일련의 국가작용이 위법성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법관의 구속영장 발부나 재판이 독립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바. 국가 자신의 불법행위에 의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1) 대법관 안철상의 별개의견(이하 ‘별개의견 2’라 한다)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은 국가의 직무상 과실로 인한 국가 자신의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한다. 국가배상청구권의 해석은 헌법에서 출발하여 국가배상을 국가의 자기책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점을 논거로 들고 있다.

2) 헌법이 법률해석의 출발점이라는 법리에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다. 또한 헌법 제29조 제1항 이 국가배상청구권을 헌법상 보장하면서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국가배상책임의 요건·내용·절차 등은 이를 구체화한 국가배상법에 따라야 한다는 점 역시 법률유보에 비추어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3) 국가배상을 국가의 자기책임으로 이해하는 해석은 이미 대법원 판례에 수용되어 있으며 다수의견도 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연혁적으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제도는 이론적 발전과 사회 변화에 따라 대위책임설에서 자기책임설로 발전하였고 허용범위 또한 확대되어 왔다. 국가배상책임은 법치국가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고, 사회공동체의 배분적 정의의 실현 또는 사회적 공평의 확보에 이념적인 기초를 두고 있다. 사법 영역에서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원칙만을 고집해서는 손해 및 희생의 공평한 사회분담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어 이를 완화하는 해석이 나오게 된 것처럼, 공법 영역에서도 사회적 공평을 확보할 수 있는 책임윤리에 입각한 국가책임이 필요하다.

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에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은 국가가 그의 기관의 지위에 있는 공무원을 통하여 행위를 하며 공무원이 그 직무상 한 행위의 효과는 국가 등에 귀속되지만 공무원의 직무수행 중 위법행위가 국가기관의 직무수행상 예기된 흠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도 전적으로 국가에만 귀속시킴으로써 자력이 있는 국가의 배상책임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공무수행의 안정성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킨다는 점에 그 입법 취지가 있다고 판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4) 별개의견 2는 대통령·수사기관·법관의 개인적인 고의·과실을 판단할 필요 없이 국가의 직무상 과실로 평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이해되고, 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1987. 9. 22. 선고 87다카1164 판결 의 변경을 주장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다수의견과 큰 틀에 있어서 책임 인정의 구조가 유사하다고 이해된다.

5) 그러나 별개의견 2 중 국가배상청구를 공법상 법률관계로 보고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공법상 당사자소송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견해는 수십 년간 판례를 통해 확립된 공법과 사법의 구별, 국가배상청구권을 사법상 권리로 보고 민사소송으로 취급해 온 대법원 판례를 전면적으로 변경하기 전에는 채택하기 어렵다. 다만 위 별개의견이 기존 판례의 대위책임적인 입장을 극복하고 국가배상체계를 전체적으로 새롭게 파악하는 해석의 지향점을 제시한 것은 경청할 만한 내용이고, 그 방향성 측면에서 다수의견과 입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 후속쟁점에 관하여

1) 원심은 수사과정에서 폭행, 가혹행위, 불법구금 등 개별적인 불법행위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5년의 장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였다(피고는 민법 제766조 제1항 에 따른 단기소멸시효는 주장하지 않았다).

다수의견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불법행위에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원심에서 문제 된 개별적인 불법행위의 소멸시효에 대하여는 굳이 판단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또한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48 전원재판부 결정 등 위헌결정으로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서 위헌결정 당시 법원에 계속되어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하여는 민법 제766조 제2항 ,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의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위헌결정의 영향으로 앞으로 민법 제766조 제1항 에 따른 주관적 기산점과 이를 기초로 한 단기소멸시효가 쟁점으로 되는 경우,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 및 ‘피해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 민법 제166조 제1항 )’의 해석이 문제 될 것이다.

2) 대법원 1989. 9. 26. 선고 89다카6584 판결 이후 현재 확립된 판례는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 사건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 전혀 실익이 없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손해를 알았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1996. 8. 23. 선고 95다33450 판결 , 대법원 1997. 2. 14. 선고 96다36159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어떤 법률적 원인으로 손해를 청구하는지에 관하여 법리상 의심이 있어 귀일되지 못한 경우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면, 그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일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음을 알았다고 해석된다( 대법원 1977. 3. 22. 선고 76다256 판결 , 대법원 1977. 6. 7. 선고 76다2008 판결 등 참조).

3) 긴급조치 제1호, 제4호, 제9호가 역사적 배경, 발령 요건, 내용에서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는데 대법원이 2010. 12. 16. 긴급조치 제1호를 위헌으로 판단한 후 긴급조치 제9호 및 긴급조치 제4호를 위헌으로 판단하기까지 2년 6개월이 소요되었다는 점, 대법원은 그로부터 5개월여 후 변경대상 판결들을 선고하여 긴급조치의 위헌성에도 불구하고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여 오다가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로 위 판결들을 변경하고 비로소 국가배상청구를 인정하게 된 경위를 고려할 때,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일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의 실효성을 반감시키거나 변경대상 판결들로 인하여 그동안 소송을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피해자들에게 거듭 좌절을 안기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아. 맺음

원고들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자행되었던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맞서 저항하다가 큰 시련과 옥고를 겪었거나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함께하였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에도 이들에 대한 적절한 명예회복이나 보상·배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있어 최후의 보루이어야 함에도 과거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미흡하였다.

대법원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사건에서 피해 전보의 길을 열고 나아가 향후 유사한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가배상에 의한 구제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깊은 사과와 위로를 전하고 법원이 다시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외면하지 않고 역사적 소명을 다할 것을 표명한다. 이러한 결의를 담아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별 지] 원고 명단: 생략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대법관   김재형(주심) 조재연 박정화 안철상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노태악 이흥구 천대엽 오경미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