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2]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조 제1항 제3호 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같은 항 제4호 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에 민법 제766조 제2항 에 따른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는지 여부(소극)
[3]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한 3년의 단기시효기간은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더하여 민법 제166조 제1항 에서 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여야 시효가 진행하는지 여부(적극)
[4]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체포·구속되었다가 항소심에서 구속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된 후 면소판결을 받은 갑이,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 국가를 상대로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 또는 이에 근거한 수사 및 재판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국가배상청구를 하였다가, 갑이 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함으로써 같은 법 제18조 제2항 에 따라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각하판결이 내려지자, 상고심 계속 중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여 위 조항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받은 다음, 위 국가배상청구 중 위자료 청구 부분에 관하여 재심을 청구한 사안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소 제기 당시까지도 갑이 국가를 상대로 긴급조치 제9호에 기한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인한 불법행위로 발생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2]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민법 제166조 제1항 , 제766조 ,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조 제1항 제3호 , 제4호 [3]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민법 제166조 제1항 , 제766조 제1항 [4] 구 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53조 (현행 제76조 참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민법 제166조 제1항 , 제766조 제1항 ,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 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2015. 5. 18. 법률 제13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8조 제2항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조 제1항 제3호 , 제4호
참조판례
[1]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공2022하, 1965) [2]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33686 판결 (공2020상, 16)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48, 162, 219, 466, 2015헌바50, 440, 2014헌바223, 290, 2016헌바419 전원재판부 결정 (헌공263, 1394) [3] 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33754 판결 (공2012상, 759)
원고(재심원고),상고인
원고(재심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김형태 외 1인)
피고(재심피고),피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조철호 외 2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20. 1. 8. 선고 2019재나20122 판결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재심원고) 본인의 위자료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뒤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 기재는 이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사건의 개요
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재심원고, 이하 ‘원고’라 한다)는 1977. 11. 11.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 한다) 위반 등 혐의로 체포된 후 1977. 11. 16. 구속영장 집행으로 구속되어 그 무렵 기소되었다.
2) 원고는 1978. 1. 28.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에서 긴급조치 제9호 위반죄 및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1년 6월 및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 77고합341, 346 ). 이에 대하여 원고 및 검사가 각 항소하였는데,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되어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고는 1980. 1. 11. 면소판결을 선고받아( 서울고등법원 78노292 ), 그 판결이 1980. 1. 19. 확정되었다. 원고는 위 항소심 계속 중이던 1978. 5. 15. 구속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되었다.
3) 원고는 2013. 9. 17.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 또는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 및 재판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재심피고, 이하 ‘피고’라 한다)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구하였다.
4) 제1심법원은 2015. 6. 5. 원고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보상심의위원회’라 한다)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다는 이유로 소를 각하하였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가합544362 ), 위 판결에 대한 원고의 항소( 서울고등법원 2015나2031290 )와 상고( 대법원 2016다207768 )가 모두 기각되어 그대로 확정되었다.
5) 원고는 상고심 계속 중 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2000. 1. 12. 법률 제6123호로 제정되고, 2015. 5. 18. 법률 제13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 제18조 제2항 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고( 헌법재판소 2016헌바64 ), 헌법재판소가 2018. 8. 30. 위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위자료 청구 부분에 관하여 이 사건 재심을 청구하였다.
나. 원심은 위헌결정의 계기가 되었던 당해 사건으로서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7항 이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불법행위의 성립을 부정하고, 설령 수사과정 등에서 개별적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재심청구를 기각하였다.
2. 국가배상책임 성립(상고이유 제1점, 제2점, 제3점)
가.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제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앞서 본 사실관계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되어 수사를 받았고 나아가 기소되어 제1심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기도 하는 등으로 입은 손해에 대하여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원심판결에는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소멸시효(상고이유 제4점)
가. 헌법재판소는 2018. 8. 30. 민법 제166조 제1항 , 제766조 제2항 중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 제3호 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같은 항 제4호 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등 전원재판부 결정 ). 따라서 과거사정리법상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민법 제766조 제2항 에 따른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33686 판결 등 참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유지에서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불법행위로 인한 기본권침해 관련 사건은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에 대하여는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단기소멸시효만이 문제된다.
나. 민법 제166조 제1항 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라고, 제766조 제1항 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라고 정한다 .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한 3년의 단기시효기간 기산에는 민법 제766조 제1항 외에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일반규정인 민법 제166조 제1항 이 적용된다. 따라서 3년의 단기시효기간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더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여야 비로소 시효가 진행한다 ( 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33754 판결 참조).
다. 원고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 혐의로 체포·구속되었다가 석방되고 이어 면소판결이 선고·확정되었지만 면소판결은 재심대상이 아니어서 형사재심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청구에 이른 경위,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적 심사가 이루어져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고 판단된 시기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도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긴급조치 제9호에 기한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인한 불법행위로 발생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이하 ‘긴급조치 제1호’라 한다)는 1974. 1. 개헌 요구를 억압하기 위해 헌법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발령되었다.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이하 ‘긴급조치 제4호’라 한다)는 1974. 4.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과 그 배후 조직으로 지목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대응하여 관련 단체 및 학생들의 활동을 금지하는 등의 목적으로 발령되었다. 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1974. 8. 해제되었고 대통령긴급조치 제7호(이하 ‘긴급조치 제7호’라 한다)가 1975. 4. 발령되었다가 고조되어 가는 유신반대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긴급조치 제1호부터 제7호의 내용을 하나로 모은 긴급조치 제9호가 1975. 5. 13. 발령되어(긴급조치 제7호는 같은 시각에 해제되었다) 4년여 지속되다가 1979. 12. 8. 해제되었다.
긴급조치 제9호는 구 대한민국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 한다)에 근거한 것으로, 유신헌법 제53조 제1항 과 제2항 은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거나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제4항 은 이러한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정하였다.
원고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되어 제1심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 계속 중 구속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되었고, 면소판결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1980. 1. 19. 확정되었다. 면소판결이 확정된 원고로서는 재심 등으로 위 판결의 취소를 구할 수 없었다.
원고가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되어 수사를 받고 기소되어 제1심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기까지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는 사법적 판단이 없었다. 오히려 대법원 1977. 5. 13. 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 은 긴급조치 제9호가 유신헌법에 근거한 것으로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긴급조치 제9호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 제53조 에 대해서도 위헌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 과거사정리법은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하여 2005. 5. 31. 법률 제7542호로 제정되어 2005. 12. 1.부터 시행되었다.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해방 이후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2007. 10. 및 2009. 8. 긴급조치 제1호, 제4호, 제9호 피해자들에 대하여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 에 규정된 ‘권위주의 통치 시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는 진실규명결정이 비로소 이루어졌다.
3) 대법원은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로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하여,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으로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하여, 2013. 5. 16. 선고 2011도2631 전원합의체 판결 로 긴급조치 제4호에 대하여 위헌·무효라고 판단하였고, 헌법재판소는 2013. 3. 21. 선고 2010헌바70 등 전원재판부 결정 으로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로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였던 종전 대법원판결을 변경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게 되었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4) 위와 같은 법률적·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는 원고가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를 한다는 것이 전혀 실익이 없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라. 따라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원심판결에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원고 본인의 위자료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