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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8도507 판결
[살인·사체은닉][미간행]
판시사항

[1] 군사법원법 제296조 제4항 의 규정 취지와 공소사실의 특정 정도 및 살인죄의 일시ㆍ장소와 살해방법을 개괄적으로 판시하는 것의 적법 여부

[2] 살인죄에 있어서의 범의의 인정 기준

[3] 형사재판에 있어 유죄의 인정을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 및 간접증거의 증명력

[4] 피해자의 시신을 심각하게 훼손하여 그 살해방법을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없더라도 간접증거를 상호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하면 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고정한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피고인과 국선변호인의 상고이유를 함께 본다.

1. 군사법원법 제296조 제4항 에서 범죄의 일시ㆍ장소와 방법을 명시하여 공소사실을 특정하도록 한 취지는 법원에 대하여 심판의 대상을 한정하고 피고인에게 방어의 범위를 특정하여 그 방어권 행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데 있다고 할 것이므로, 공소제기된 범죄의 성격에 비추어 그 공소의 원인이 된 사실을 다른 사실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일시·장소·방법·목적 등을 적시하여 특정하면 족하고, 그 일부가 다소 불명확하더라도 그와 함께 적시된 다른 사항들에 의하여 그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있고, 그리하여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다면 공소제기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다 ( 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도82 판결 , 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도8675 판결 등 참조). 또한, 살인죄에 있어 범죄의 일시ㆍ장소와 방법은 범죄의 구성요건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개괄적으로 설시하여도 무방하다 ( 대법원 1986. 8. 19. 선고 86도1073 판결 참조).

원심판결 이유를 이와 같은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과 같이 피고인이 살인의 범행을 부인하고 직접적이고 유일한 단서인 피해자의 시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볼 수 있을 정도로 피해자의 시신을 심각하게 훼손함으로써 그 살해방법을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공소사실의 특정의 정도를 완화하여 해석하지 않으면 현저히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에 관한 피고인의 변소에 원심 판시와 같이 그 합리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에 의한 피해자의 살해 이외에 다른 방법에 의하여 피해자가 사망하였을 가능성 또한 없어 보이므로, 원심이 ‘2005. 1. 28 03:00경부터 05:20경 사이에 피고인의 집에서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내용의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의 기재가 특정되었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

원심판결에는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공소사실의 특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끼친 위법이 없다.

2. 살인죄에 있어서의 범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족한 것이고 그 인식이나 예견은 확정적인 것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소위 미필적 고의로도 인정되는 것이다 ( 대법원 2000. 8. 18. 선고 2000도2231 판결 , 대법원 2001. 9. 28. 선고 2001도3997 판결 등 참조). 또한, 형사재판에 있어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이 유죄라는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나, 그와 같은 심증이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한 간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도 되는 것이며,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하여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 대법원 1999. 10. 22. 선고 99도3273 판결 , 대법원 2001. 11. 27. 선고 2001도4392 판결 등 참조).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한 판시 증거들을 종합하여 인정되는 여러 간접사실, 즉 ① 피고인이 범행을 은폐하기 위하여 선택한 방법은 피해자의 사체를 80여 조각으로 훼손하여 살점을 잘라 끓이고 믹서에 갈고 사체를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 10여 곳 이상의 장소에 유기한 것인바, 이는 경험칙상 피해자를 살해한 자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점, ②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서 불과 30분에서 1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범행은닉의 방법에 대하여 고민이나 갈등을 하지 않고 피해자를 화장실로 옮겨 곧바로 과도를 숫돌로 갈면서 피해자의 동맥을 잘라 피를 빼려고 하였고, 범행 후 사체손괴 과정과 손괴한 사체와 피해자의 유품을 서울역, 야산, 부대주변 인근 아파트 등에 치밀하고 신속하게 유기하였으며, 범행을 은폐하기 위하여 범행 직후 인터넷을 검색하여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피해자의 행적을 조작한 점, ③ 피해자의 머리 뒤통수 부위 상해는 바닥에 부딪히거나 도구에 의한 물리력이 가해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처이고, 이로 인해 출혈이 계속된 흔적이 있어 생전에 발생한 것이며, 피해자의 이빨이 하늘로 꺾인 것은 손가락을 넣었다 단순히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서는 생기기 어려우므로, 피해자가 유형력의 행사에 의해서 사망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생전에 일정한 유형력의 행사에 의하여 상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는 점, ④ 피고인은 피해자와 2004년 말경부터 알고 지냈으며 서로 간에 결혼을 생각하며 교제를 하는 사이였으나 피고인은 피해자의 피부문제 등으로 관계를 청산하려고 하였으며 평소에도 피해자에게 심한 욕설을 하였을 뿐 아니라 피해자를 짜증스럽게 생각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와 다투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살해할 충분한 동기가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피고인이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뒤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80여 조각으로 손괴하여 유기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원심은 ‘피해자가 자살하기 위해 그 판시 약물을 복용하였고 그 부작용으로 구토·발작·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피해자를 의료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채 인공호흡 및 심폐소생술을 실행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취지의 피고인 주장에 대하여, 그 판시 증거에 인정되는 여러 사정에 비추어 그 판시 약물의 복용이 직접적인 사인이 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원인에 의한 사인과 결합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판단하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물에 타서 피해자에게 마시게 하였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투약하였는지 구별이 불가능하고, 약물과량 노출에 의한 사망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하여 사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나아가 그 판시와 같은 여러 사정, 즉 피해자가 자살하기 위해 약을 먹었다면 오히려 사인이 분명한데 위와 같이 사인이 분명하지 않은 점, 피고인 주장과 같이 피해자가 발작하여 혀를 깨무는 것을 막기 위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빼거나 또는 발작이 멈춘 상태에서 손가락을 빼는 과정에서 치아 2개가 하늘방향으로 꺾이는 현상은 극히 이례적인 점, 치아가 꺾인 이유나 과정에 대한 피고인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점, 손가락을 빼는 과정에서 치아가 꺾였다면 피고인의 손가락에 상당히 심한 상처가 발생하였다가 보는 것이 경험칙상 타당한데, 원심 판시와 같이 피고인의 손에는 긁힌 정도의 상처만 있는 점, 피해자가 발작을 하면서 자신의 혀를 깨물 정도의 의식불명인 상태인데 피고인이 자신의 손가락을 피해자의 입에 넣는 행동은 경험칙상 반하는 점 등을 종합하여, 피고인의 위 주장은 신빙성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허위주장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를 배척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이와 같은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이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 원심판결에는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채증법칙 위배 내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3. 나아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후 피해자의 시신을 과도와 식칼 등으로 80여 조각으로 토막을 내어 살점을 믹서에 갈고 물로 끓이고 화장실 및 인근 야산에 사체를 유기하는 등 사체훼손의 방법이 극히 잔혹하고 엽기적인 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은폐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행동하였던 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피해자의 유족들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임에도 아무런 피해보상도 하지 아니한 점을 비롯하여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이 사건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양형조건을 고려하여 보면, 상고이유에서 내세우는 여러 사정을 참작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하여 무기징역의 형을 선고한 원심의 양형이 현저히 부당한 것으로는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양형부당에 관한 상고이유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4.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차한성(재판장) 고현철 김지형(주심) 전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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