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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0. 11. 10. 선고 2000도2524 판결
[선박매몰(인정된 죄명 : 재물손괴)·선원법위반][공2001.1.1.(121),79]
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 있어 유죄의 인정을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 및 간접증거의 증명력

[2] 화재가 발생한 선박을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내용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1]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나, 다만 그와 같은 심증이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한 간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도 되는 것이며,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여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는 그에 의하여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2] 화재가 발생한 선박을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내용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법무법인 세경 담당변호사 최종현 외 5인

주문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부산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재물손괴의 점에 대하여

가.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공소외 주식회사(이하 ' 공소외 회사'라고만 한다) 소속 원양트롤어선(35.68톤, 이하 ' 이 사건 어선'이라 한다) 의 선장으로서, 1998. 7. 29. 09:20(현지시각으로 한국시각은 같은 날 21:20, 이하 현지시각으로 표시)경 포클랜드 북방 해상에서 조업 중 선실에서 원인 불상의 화재가 발생하여 같은 날 10:30경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한 제201 우양호(이하 '우양호'라 한다)에 대피하고 있다가 이 사건 어선의 화염이 약해지자, 이 사건 어선이 선실과 조타실 등 선수 부분이 화재로 소실되어 자력운항이 불가능한 데다 그 수리에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므로 차라리 피해자 회사로 하여금 이 사건 어선의 선체보험금 약 34억 원(미화 250만 달러)을 수령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사건 어선을 침몰시키기로 마음먹고, 같은 날 11:00경 기관장 정익주와 1기사 이학춘을 데리고 이 사건 어선으로 다시 가 그들로 하여금 이 사건 어선의 기관실 바닥의 패널을 들어내고 킹스톤밸브를 열어 킹스톤밸브 파이프라인의 볼트를 느슨하게 푼 다음 선외변밸브를 잠가 킹스톤밸브를 통하여 들어온 해수가 기관실로 유입되게 하여 같은 날 14:32경 이 사건 어선을 해저로 침몰시켜 선박의 효용을 해하였다는 것이다.

나.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이 사건 어선의 선수에서 09:20경 화재가 발생한 뒤 화재진압에 실패하고 10:30경 구조하러 온 우양호로 선원들과 함께 대피하였다가 11:00경 다시 이 사건 어선으로 기관장 및 1기사와 함께 건너간 사실은 있으나, 이는 화재진압가능성, 피해상황 및 선박구조 가능성 등을 살펴보려던 것이고, 공소사실과 같이 보험금을 노리고 기관장과 1기사를 시켜 고의로 이 사건 어선을 침몰시킨 것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부인한다.

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그 채용한 증거들에 의하여

① 화재가 선실 등 선수에서만 진행되고 기관실 등으로 확산되지 않아 소화전을 사용하고 선원들을 지휘하는 등 화재진압을 위하여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으면 이 사건 어선이 침몰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다른 선원들을 선박에 남겨둔 채 제일 먼저 구명정에 뛰어 내리는 등 화재진압에 무관심했던 피고인이 우양호에 구조된 이후 새삼스럽게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다시 이 사건 선박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점, ② 피고인은 선수 부분의 화재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이 사건 어선으로 넘어가면서도 선미 부분에 위치한 기관실의 구조를 잘 아는 정익주와 이학춘을 대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소 사이가 극히 좋지 않았던 피고인과 정익주가 이 사건 선박침몰 이후 갑자기 친밀해진 점, ③ 수석 1항사 이기철이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정익주와 이학춘을 데려오기 위하여 이 사건 어선으로 넘어갔을 때 이학춘은 주기관의 우측 중앙 약간 앞부분의 위치에서 기관실 아래를 향하여 엎드린 채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있었고, 당시 이기철은 선박 안으로 해수가 유입될 때 나는 소리인 '쉭'하는 소리를 들었던 점, ④ 이 사건 어선은 선수 부분에 화재가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기철이 정익주와 이학춘을 데려올 때에는 그 화재가 상당 부분 자연진화된 상태였고 더욱이 당시까지도 이 사건 어선의 좌현이 기울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약 2시간이 지난 다음 먼저 발전기가 작동을 멈추고, 이어 30분 내지 40분 후 기관실이 있는 선미 좌현부터 가라앉기 시작하여 결국 침몰하게 된 점, ⑤ 이 사건 어선의 침몰 당시 기름탱크의 폭발 등 선박침몰의 원인이 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어선의 제원이나 복원성, 사고 당시의 해양상태, 이 사건 어선의 침몰시간 등에 비추어, 투망, 파도와 이로 인한 선체운동, 그리고 처리실(factory space)의 grazing line을 통하여 유입된 해수와 기관실 bilge의 적재량 등에 기인하는 선미흘수의 변화량만으로는 선박침몰에 이를 수는 없고, 적어도 킹스톤밸브와 연결된 파이프라인으로부터 유입되는 정도의 해수에 의해서만 선박침몰에 이를 수 있는 점, ⑥ 이 사건 어선의 침몰 후 피고인은 갑판장인 정재효에게 "갑판장을 믿고 말이 새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사고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학춘은 정익주, 정재효, 통신장 고석윤 등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내가 킹스톤밸브를 열었다."고 진술한 점, ⑦ 피고인은 이 사건 어선 침몰 후 그 소유자인 회사의 하동건 부장과 함께 침몰원인에 대하여 기관실의 침수로 침몰된 것을 마치 갑판 창고에 보관 중이던 신나통과 페인트통의 폭발로 침몰한 것처럼 조작하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침몰시각에 대하여도 14:32경 침몰된 것을 마치 15:32경에 침몰한 것처럼 조작하려 한 점, ⑧ 이 사건 어선 침몰 후 선장과 기관장 등 일부 간부선원들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피고인 일행의 고의적인 선박침몰을 의심한 점, ⑨ 이 사건 어선의 시가는 4억 원 내지 5억 원에 불과함에도 그 보험금은 약 35억 원에 이르는 점 등을 인정할 수 있고, 이러한 인정 사실 및 기타 기록에 나타난 모든 정황을 종합하면, 피고인과 정익주, 이학춘이 킹스톤밸브와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통하여 기관실로 해수를 유입시킴으로써 선박을 매몰시킨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라. 이 법원의 판단

그러나 이러한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① 피고인이 구조된 우양호에서 이 사건 어선에 재승선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하여

피고인이 화재가 발생한 뒤 1시간만에 화재진압을 포기하고 선원들을 모두 우양호로 대피시킨 뒤 11:00경 이 사건 어선에 재승선하였는데, 그 이유에 대하여 피고인은 화재상황과 진압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고 변소하고, 실제 이 사건 어선으로 건너간 뒤 갑판에서 기관실로 들어가는 통로를 따라 처리실을 둘러 보고 선원침실로 들어가는 통로를 갔다가 열기가 심하여 더 들어가지 못하고 거주구역만 들여다 보고 이어 기관실로 들어가 기관실 내부를 살펴보고 처리실을 통하여 갑판에서 조타실 및 거주구역 등의 화재진행상태를 본 다음 우양호로 돌아왔고(수사기록 331쪽, 이하 '수 몇쪽'이라고 표시한다), 당시 화재진압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였다는 것인데(수 334쪽), 피고인이 재승선한 이유에 대하여는 함께 간 정익주의 진술(수 294, 384쪽), 이학춘의 진술(수 131쪽)이 이에 부합한다.

원심은 화재가 선실 등 선수에서만 진행되고 기관실 등으로 확산되지 않아 소화전을 사용하는 등 선원들을 지휘하여 화재진압을 위하여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으면 이 사건 어선이 침몰할 가능성이 없었고, 화재진압에 무관심했던 피고인이 새삼스럽게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다시 이 사건 어선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보았으나, 피고인이 소화전을 사용하는 등 화재를 진압하려는 노력을 끝까지 하지 않고 일찍 화재진압을 포기한 뒤 선원들과 함께 구조선으로 퇴선한 점에서 선장으로서 위급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잘못하고 그 대처에 미흡하였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아니하나, 피고인이 조타실에 있다가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알고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인 우양호에 구조요청을 하고 비상벨을 울리게 한 뒤 화재현장으로 내려가 일부 선원들이 방독면을 쓰고 소화기로 화재진압을 하는 것을 보고 조타실로 돌아와 기관의 속도를 줄이고 선미에 매달린 어구를 양망하도록 지시하였다가 화염과 연기로 중단하고, 더 이상 화재진압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퇴선준비를 하였다는 것으로(수 330쪽), 피고인이 화재진압에 무관심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화재가 초기에 진압되었다면 선박이 침몰할 가능성이 적겠지만, 피고인이 화재진압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으면 침몰할 가능성이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선원들을 구하여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 먼저 선원들을 모두 구조선으로 대피시키고 난 뒤 화재가 아직 선박 전체로 번지지 않은 상황이므로 선장으로서 화재진압 가능성, 피해정도, 선박구조 가능성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고, 회사에 그 내용도 보고하여야 할 처지이므로, 피고인이 구조된 뒤 재승선하였다고 하여 반드시 이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② 피고인이 기관장과 1기사를 데려간 점과 기관장과 친해진 점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이 선수 부분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재승선한 것으로 보았으나, 피고인은 화재진압보다도 화재진압의 가능성과 피해상황 및 선박구조 가능성 등을 살피기 위하여 재승선하였다는 것이고, 항해에 대한 책임은 피고인이 부담하지만, 기관장은 선장 다음의 서열에 있고 기관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으며, 선미에 있는 기관실에까지는 화재가 번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박구조의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기관장을 대동할 필요가 있었고, 1기사는 피고인이 동행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따라갔다는 것이므로(수 134쪽), 기관실 구조를 잘 아는 기관장과 1기사와 함께 재승선하였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이 선박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선박을 침몰시키려고 기관장과 1기사를 데려간 것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피고인과 기관장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동건의 원심 증언(공판기록 507쪽, 이하 '공 몇쪽'이라고 표시한다)과 공판기록에 첨부된 통신문(공 519쪽)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인정되고, 한편 그들이 선박침몰 후 갑자기 친밀하여졌다는 점에 대하여는 고석윤과 1항해사 김용수가 경찰에서 이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있으나(수 518, 157쪽), 피고인은 기관장과 함께 보험회사 및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다녔는데 다른 선원들이 오해한 것 같다고 변소하는바, 선박침몰 후에 피고인과 기관장이 종전과 달리 친밀해진 점과 이 사건 재물손괴의 공소사실을 관련짓기는 어렵다. 피고인이 고의로 기관실을 침수시켜 선박을 침몰시키려 하였다면 기관장만을 불러 함께 가거나, 또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기관장보다 1기사만을 데려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③ 이기철이 목격하거나 들었다는 내용에 대하여

이기철은 경찰에서, 피고인이 우양호로 다시 넘어 오면서 기관실에 있는 기관장과 1기사를 데려오라고 지시하여 자신이 이 사건 어선으로 건너갔더니, 누군가 기관실 아래를 향하여 엎드린 채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있었고, 선박 안으로 해수가 유입될 때 나는 것같은 '쉭'하는 소리(수 142쪽) 또는 연속적으로 '싹, 싹'하는 소리(수 210쪽)를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기철의 진술은 자신이 직접 목격하였다는 내용이어서 대부분 추측이나 자신들의 생각을 진술한 것에 불과한 다른 선원들의 진술과 구별되지만, 화재 당시 기관실 당직근무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기관실을 빠져 나간 2기사 김대운의 진술을 보면, 그가 퇴선할 당시 주기관을 정지시키고 발전기 등을 그대로 작동시켜 두었다는 것이므로(수 171, 172쪽), 적지 않은 소음이 있었을 것이고, 이기철은 왼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청력이 좋지 않고(정재효의 제1심 증언, 공 93쪽), 이기철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자신의 시력이 0.1미만이고 당시 안경을 착용하지 않아 4m거리를 두고 작업중인 사람이 기관장인지 1기사였는지 모르지만(수 209쪽) 체형이나 옷색깔, 머리모양으로 보아 1기사가 아니라 기관장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나(수 210쪽), 한편 이학춘은 킹스톤밸브를 연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정익주의 지시를 받아 잠갔다고 주장하고(수 131쪽), 정익주의 진술도 이에 부합하여(수 385쪽), 이기철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이 기관장과 1기사를 시켜 킹스톤밸브를 열고 파이프라인의 볼트를 느슨하게 풀게 했다는 공소사실 부분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기철은 피고인이 우양호로 다시 건너오면서 이기철에게 기관장과 1기사를 데려오라고 지시하였다는 것인데(수 142쪽),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그들에게 기관실을 침수시켜 선박을 침몰시키도록 지시하였다면, 그 작업이 끝난 뒤 함께 돌아오거나 먼저 와 기다리면 될 터인데, 굳이 이기철에게 기관실로 가서 기관장과 1기사를 데려오라고 지시하여 그들의 범행현장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④ 피고인 일행이 재승선하였다가 돌아온 뒤 선미 좌현부터 가라앉기 시작하여 침몰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이 재승선하였다가 돌아온 뒤 약 2시간이 지난 다음 먼저 발전기가 그 작동을 멈추고, 이어 30분 내지 40분 후 기관실이 있는 선미 좌현부터 가라앉기 시작하여 침몰하게 되었다는 점을 피고인이 고의로 선박을 침몰시킨 근거로 들고 있는바, 침몰되기 30-40분 전에 굴뚝에서 흰 연기를 내뿜었다는 사실은 고석윤의 진술(수 225쪽)이나 정재효의 진술(수 233쪽)로 뒷받침되고, 이는 발전기가 물에 잠기면서 꺼지는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지만(정재효의 제1심 증언, 공 93쪽 및 박외태의 원심 증언, 공 392쪽), 그런 현상은 다른 이유로 기관실이 침수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⑤ 킹스톤밸브와 연결된 파이프라인으로부터 유입되는 정도의 해수에 의해서만 선박침몰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원심은 이 사건 어선 침몰 당시 기름탱크 폭발 등 선박침몰의 원인이 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고, 투망, 파도와 이로 인한 선체운동, 처리실의 grazing line을 통하여 유입된 해수와 기관실 bilge의 적재량 등에 기인하는 선미흘수의 변화량만으로는 선박침몰에 이를 수 없으며, 적어도 킹스톤밸브와 연결된 파이프라인으로부터 유입되는 정도의 해수에 의해서만 선박침몰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고, 이는 원심 법정에 이르러 제출된 한국해양대학교 부설 해양연구소장 명의의 보고서(공 426쪽 이하)에 터잡은 판단으로 보이나, 이는 증거로 채택되어 증거조사를 거친 바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보고서에 의하더라도, 킹스톤밸브와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통한 해수유입이 아니더라도 다른 원인에 의하여 기관실 안에 같은 정도의 해수가 유입된다면 역시 침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고(공 487쪽), 피고인이 기관장, 1기사와 함께 우양호로 재승선하였을 때부터 이 사건 어선이 실제 침몰하기까지 공소사실에 의하더라도 3시간 30분이 넘는 시간적 간격이 있고 그 사이 화재가 계속되었던 점 등에 비추어 그러한 개연성만으로 피고인이 기관장과 1기사를 시켜 선박을 침몰시켰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⑥ 선박침몰 후 피고인이 갑판장 정재효에게 흔적을 없애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는 점과 이학춘이 술자리에서 킹스톤밸브를 열었다고 말한 점에 대하여

정재효는 경찰에서 피고인과 대질조사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선박침몰 다음날 20:30경 우양호에 마련된 피고인의 임시침실에서 "갑판장을 믿고 말이 새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사고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피고인이 말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어(수 164쪽), 당시 피고인이 고의로 이 사건 어선을 침몰시켰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되는데, 제1심 법정에서 "당시 피고인의 말뜻이 무엇인지 몰랐다."(공 94쪽)고 하여 그 신빙성이 다소 의심스럽다.

그리고 원심은 이학춘이 정익주, 고석윤, 정재효 등과 몬테비데오 항구에 있는 식당에서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내가 킹스톤밸브를 열었다."고 말하였다는 점을 들고 있고, 이는 고석윤, 정재효의 진술이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학춘은 선박침몰 당일 이 사건 어선에 재승선하였다가 우양호로 돌아온 다음, 고석윤이 식당안 창고로 데리고 들어가 "밸브를 왜 함부로 열었느냐."고 추궁하기에 오히려 밸브를 잠그고 왔다고 반박할 일이 있을 뿐이고(수 134, 135쪽), 몬테비데오 식당에서 그와 같은 말을 한 여부에 대하여는 아무런 조사도 되어 있지 않아 실제 그런 말을 하였는지 분명치 아니하다.

⑦ 피고인이 회사의 하동건 부장과 함께 침몰원인을 조작하고 침몰시각을 1시간 늦추려고 한 점에 대하여

피고인이 회사에 화재발생보고를 하면서, 처음에는 유창에 불이 번져 선수가 폭발하였고 동시에 브리지가 화염에 싸이고 불꽃이 치솟았다고 보고하였다가(수 6, 465쪽), 다시 유창이 폭발하였다는 부분은 삭제하고 선수창고에 있는 화학물질(페인트, 신나 등)이 조그마한 폭발음을 냈다는 내용을 추가하여 보고한 사실은 기록상 인정되고(수 5, 466쪽), 이러한 보고는 하동건과 전화통화를 한 뒤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화재발생으로 선박이 침몰하였고 인명 피해는 없다는 내용만 전화로 확인하였다는 하동건의 원심 증언(공 501쪽)에도 불구하고, 화재발생보고의 구체적인 내용을 상의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그와 같은 폭발은 화재발생 초기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선원들을 모두 퇴선시킨 다음에 그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이고, 피고인의 보고서 내용도 침몰원인에 대하여는 결국 화재 및 폭발로 인하여 선박이 좌현으로 기울고 선미와 슬립웨이로 해수가 넘어 들어가 결국 침몰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피고인은 폭발음을 들었기 때문에 최초 유창이 폭발한 것으로 보고하였다가, 유창이 폭발한 경우에는 선박 자체가 폭발하게 되므로 신나통 등이 폭발한 것으로 추측하여 그와 같이 정정하였다고 변소하고 있으며(수 467쪽), 피고인으로서는 선원들은 안전하게 대피시켰으나 화재를 진압하고 선박을 구조하여야 하는 선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소화전을 이용하여 화재진압을 하였다는 등 실제와 달리 화재상황을 과장하여 보고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한편 고석윤은 하동건이 몬테비데오로 온 다음 사고보고서의 유창폭발은 있을 수 없으니 해수가 선미로 넘어 들어와 침몰한 것으로 말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하나(수 509쪽), 정확한 침몰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보고서 내용 중 유창폭발 부분은 잘못이고 해수가 선미를 넘어 들어와 침몰한 것으로 판단하여 그와 같이 말하였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고, 고석윤은 피고인에 대한 불만과 일찍 하선하게 됨으로써 입게된 개인적인 손해 등의 배상 문제로 회사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공 507쪽)에서 이러한 진술만으로 피고인과 하동건이 함께 침몰원인을 사실과 달리 조작하려고 하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정재효는, 실제 침몰시각이 14:30경인데 피고인이 침몰시간이 너무 빠르니 1시간 늦추어 보고한다고 한국선원들에게 주지시켰고, 우양호 식당의 시계를 보아 정확한 침몰시각을 알게 되었다고 하고, 하동건도 몬테비데오에 있는 호텔에서 그와 같은 지시를 하였다고 진술하고(수 550쪽), 고석윤도 같은 내용으로 진술하고 있으나(수 225, 509쪽), 오히려 우양호 선장으로 이 사건 어선 선원들을 구조한 박외태는 선박침몰시각이 15:30경이라고 하고 있고(공 391쪽), 하동건도 포클랜드 수산청 비행기가 침몰을 목격하고 자국에 보고한 시각이 15:30이라고 하여(공 502쪽), 이 사건 어선의 정확한 침몰시각이 피고인이 사고보고서에 기재한 15:30경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피고인과 하동건이 침몰시각을 늦추려고 조작하였다면, 고의로 선박을 침몰시킨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일 것인데 침몰시각을 1시간 뒤로 늦추는 것만으로 가능한 일인지도 규명되지 아니하였다.

⑧ 선장, 기관장 등 일부 간부선원들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피고인, 기관장 및 1기사를 의심한 점에 대하여

이 사건 어선에 승선하였던 한국선원 10명 중 전기사 김태완, 조기장 윤금중은 고의로 침몰시킨 것이 아니라고 진술하는 데 반하여(수 72, 74쪽), 나머지 고석윤, 정재효, 김용수, 김대운, 이기철은 피고인, 기관장 및 1기사가 고의로 침몰시킨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고, 이는 당시 침몰현장의 기상이 좋고 파도도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선원들이 구조선으로 퇴선할 당시까지 선미 슬립웨이로 해수가 넘어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결국 선박이 침몰하였고, 그 이전에 피고인이 기관장, 1기사와 이 사건 어선에 재승선하였다가 돌아온 사실 등을 연결지어 그와 같이 추측된다는 것이지만, 피고인은 1997년 11월경 당초 선장으로 승선하기로 되어 있던 공소외 김종선이 선원들을 이미 모집한 상태에서 김종선 대신 선장으로 승선한 탓으로 선원들과 면식이 없어 선원들을 지휘, 통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화재발생 후 구명정에 먼저 뛰어내린 일로 선원들의 신뢰가 떨어진 데다 화재를 조기진압하여 선박을 구하였더라면 승선계약기간 동안의 수입은 물론 8개월 남짓 동안 잡은 어획량에 대한 30% 정도의 수입도 얻을 수 있었을 터인데 이를 손해보게 된 선원들의 원망을 받게 된 사정도 기록상 드러나고 있어, 일부 선원들의 위와 같은 추측진술은 그 신빙성이 떨어진다.

⑨ 선박의 시가에 비하여 과다한 보험에 가입된 점에 대하여

고액의 보험금이 피고인이 고의로 선박을 침몰시킨 배경으로 보일 여지가 있지만, 공소사실과 같이 회사에 보험금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고의로 선박을 침몰시킨 것으로 인정하려면, 피고인과 회사 사이에 사전에 유사시 선박을 침몰시키기로 한 밀약이 있었다거나, 적어도 화재가 발생한 후 회사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그와 같은 지시를 받거나, 아니면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위하여 고의로 선박을 침몰시킬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선 피고인이 사전에 회사로부터 화재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차라리 배를 침몰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거나, 통상 선장과 선주 사이에 그와 같은 밀약이 있다고 볼 자료는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회사에 보험금을 타게 하려고 선박을 침몰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당시 이 사건 어선에는 8개월 동안 포획하여 저장 중인 많은 양의 어획물 외에 연료와 사고 직전에 받은 보급품 등이 상당량 있었다는 것인데(공 394쪽), 피고인이 이러한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선박침몰의 범행에 나아갈 뚜렷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고, 한편 피고인이 이 사건 어선에 승선하기 전인 1996. 3. 14. 다른 회사의 원양어선의 선장으로 승선하다가 그 선박이 화재로 침몰한 일이 있다는 점은 피고인 스스로 인정하지만(수 325쪽), 그 선박의 침몰이 피고인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피고인에게 보험금을 노리는 의도가 있었다면, 화재발생 직후에 공소사실과 같이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실행을 하였다는 기관장이나 1기사의 동의를 받아야 할 것인데, 화재발생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이러한 모의가 이루어진다거나, 특히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기관장 정익주가 피고인의 지시에 순응하여 범법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마.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와 같은 심증이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한 간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도 되는 것이며,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여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는 그에 의하여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대법원 1993. 3. 23. 선고 92도3327 판결, 1999. 10. 22. 선고 99도3273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 사건 어선이 선실과 조타실 등 선수 부분이 화재로 소실되어 자력운항이 불가능한 데다 그 수리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이 사건 어선에 거액의 선체보험이 가입된 점, 피고인이 선장으로서 화재발생 초기에 화재진압 등의 조치를 다하지 않은 점, 피고인이 선박침몰 직후에 한국선원들을 모아 놓고 침몰원인과 침몰시각에 대하여 따로 설명하였고, 이에 따라 선원들이 최초 경찰진술 당시 선미 슬립웨이로 넘어 온 해수가 기관실을 침수시켜 결국 선박이 침몰한 것이라고 일치하여 진술한 점, 앞서 본 바와 같이 갑판장 정재효, 통신장 고석윤 등이 피고인과 이학춘으로부터 그들이 선박을 침몰시켰음을 시인하는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 등 피고인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들이 없지 않고, 이 사건 어선이 약 200m 바닷속으로 침몰하여 공소사실과 같이 킹스톤밸브가 열려 파이프라인의 볼트가 풀어지고 선외변밸브가 실제로 잠겨 있다는 물증을 제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의심점 및 직접적인 물증 제시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피고인은 물론 실제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하였다는 기관장과 1기사가 이를 부인하고 있고, 그들에 대하여는 공범이나 종범으로 공소제기조차 되지 않은 점에 비추어 앞서 본 바와 같은 합리적인 의심점들이 해소되지 아니하는 한, 원심이 들고 있는 증거들 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선박침몰에 의한 재물손괴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위법이 있고,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하다.

상고이유 중 이 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이유 있다.

2. 선원법위반의 점에 대하여

원심판결과 원심이 채용한 증거들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판시 선원법위반의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수긍이 가고, 거기에 선원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이 점을 다투는 상고이유는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3. 결론

따라서 원심판결 중 재물손괴의 점에 대한 부분은 파기되어야 할 것인바, 원심은 이를 선원법위반의 점과 함께 유죄로 인정하여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으로 처벌하였으므로, 원심판결의 유죄부분 전부를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규홍(재판장) 송진훈(주심) 윤재식 손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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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부산지방법원 2000.5.18.선고 99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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