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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6. 6. 30. 선고 2006도1895 판결
[살인][미간행]
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의 소재(=검사) 및 유죄의 인정을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

[2] 살인죄의 공소사실이 과학적 검사에 의하거나 현장 조사에 의해 습득한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일부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고, 여러 가지 간접증거들과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의 자백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피고인의 범행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죄의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이백수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1.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1983년경 피해자 공소외 1(여, 71세)의 아들 공소외 2와 결혼한 피고인의 딸인 공소외 3이 피해자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피해자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던 중, 2005. 4. 20. 피고인의 남편 공소외 4가 피고인과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간 후 귀가하지 않자 다음날인 2005. 4. 21. 오후경 강원도 평창읍에 거주하는 피고인의 큰아들 공소외 5와 남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하여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을 경유하여 평창으로 가기 위해 주천면에 도착하였으나 평창으로 가는 차가 이미 출발한 후라 생각을 바꾸어 제천시에 거주하는 공소외 3의 집으로 가기로 하고 영월군 서면 신천리에서 제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신천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렸으나 제천 가는 버스가 이미 출발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생각을 바꾸어 신천리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피해자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고, 신천리 버스정류장에서 같은 리에 있는 피해자의 집까지 걸어가 같은 날 20:00경 피해자의 집에 도착하여 집안에서 나오는 피해자에게 “안녕하세요, 공소외 6( 공소외 3의 딸 이름) 외할머니입니다”라고 말하였으나 피해자가 “ 공소외 6 외할머니는 무슨 외할머니야, 네가 도둑년이지”라고 소리치자 자신을 몰라보고 도둑으로 취급하는 것에 화가 나 “사돈, 내가 공소외 6 외할머니 맞습니다, 정신 차리세요”라고 했는데도 피해자가 “도둑이야, 도둑이야”라면서 소리를 지르기에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다시 “도둑이야”라고 소리치며 양손으로 피고인의 가슴을 밀쳐 출입문 입구에 넘어뜨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려고 하자 순간적으로 도둑으로 몰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방안에 있던 가위로 피해자가 들고 있던 전화기의 전화선을 절단하고, 피해자가 재차 “도둑이야”라고 소리치면서 악을 쓰자 순간적으로 화가 나 피해자의 양쪽 팔을 잡고 방바닥에 쓰러뜨린 다음 방안 바구니 안에 있던 청색 테이프로 반항하는 피해자의 양발을 묶고, “도둑이야”라고 소리치는 피해자의 입에 테이프를 붙였으나, 피해자가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 내자 테이프로 피해자의 양 손목을 묶어 피해자의 배 위에 올려놓은 채 등 뒤로 테이프를 둘러 감고, 계속 피해자가 “도둑이야”라고 소리치자 다시 테이프를 피해자의 입과 코에 붙인 다음 피해자를 방바닥에 옆으로 눕힌 후, 옆방으로 가 그곳 장롱 속에 있던 이불 여러 채를 가지고 와 피해자의 얼굴과 몸 위에 덮어 그 무렵 피해자를 비구폐색으로 사망하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2. 피고인의 변소 및 원심의 판단

피고인측은 제1심 이후 일관하여, 우연히 사돈인 피해자를 찾아갔다가 청테이프에 결박된 채 이미 사망한 피해자를 발견하고 당황한 나머지 신고하지 않고 즉시 피해자의 집을 나왔을 뿐이고, 용의자로 의심받을까봐 피해자를 찾아간 사실을 부인하는 한편, 그 때 신고 갔던 신발을 태워버리는 등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게 된 것이며, 수사과정에서 딸인 공소외 3이 혐의를 받게 되고, 피해자의 집 근처 기지국에서 피고인 휴대전화의 발신 흔적이 포착되었음이 드러나자 혹시 위 공소외 3이 범행을 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머지 위 공소외 3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사 당시 자백을 하였을 뿐이라고 변소하며, 객관적인 정황에 비추어 어느 한 사람의 단독범행이라고 볼 수 없는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공범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반항이 거세었을 것임에도 피고인에게 전혀 그 흔적이 없으며, 현장에서 피고인의 지문이나 모발 등 유류물이 전혀 발견되지 아니하였고, 범행 동기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그 채택 증거들을 종합하여, 피해자는 신장 148㎝, 체중 42㎏의 왜소한 체격에 71세의 고령으로 오랫동안 앓고 있는 중풍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상태였던 데 비하여 피고인은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농사일과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할 정도의 체력을 갖고 있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이 검찰에서 진술한 범행 방법과 같이 먼저 피해자를 밀어 넘어뜨린 상태에서라면 굳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필요 없이 혼자서도 테이프로 피해자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은 다음 이불을 덮어씌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는 보이지 아니하고, 이와 같이 혼자서도 피해자를 제압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반항으로 인한 흔적이 없다고 하여 크게 이상할 것이 없으며, 사건 현장에 반드시 범인의 유류물이 남아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므로 이러한 점들을 들어 피고인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는 한편, 나아가 피해자는 피고인 딸인 공소외 3의 시어머니로서 공소외 3과 20여 년 동안 고부간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있어 왔고, 특히 근래에는 피해자가 폐결핵을 앓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아니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치매까지 그 정도가 심해져 부양에 어려움을 더해 왔으며, 피고인은 사건 며칠 전 공소외 3으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위와 같은 불만사항을 전해 듣고 “시어머니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너가 편해지는데”라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사건 전날에는 남편이 부부싸움 후 가출하여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마침 문병차 10여 년 만에 찾아간 피해자가 치매로 인하여 사돈인 피고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도둑 취급을 하면서 가슴을 미는 등 폭행까지 하게 되자 흥분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렀을 가능성도 상당한 것으로 보이므로 범행의 동기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3. 당원의 판단

가.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피해자를 결박한 청테이프는 물론 피해자의 주거 내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수사기록 제245면), 청테이프 부착면에서 채취한 모발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 분석 결과에 의하더라도 모발 중 1점은 피해자의 것이고, 나머지 1점은 피해자 및 피고인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졌고(공판기록 제30면), 위 청테이프에 부착된 섬유 중 피해자의 의복 섬유와 같은 것을 제외한 섬유는 모두 피고인의 주거에서 압수한 비슷한 색상의 의류의 섬유와 그 색상 및 성분이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수사기록 제1507면), 공소사실에 본 바와 같은 전화선의 절단면도 감정 결과 피해자의 주거에서 발견된 가위에 의한 절단면과는 상이하고 오히려 날면이 거친 두 날 공구에 의하여 절단된 것으로서, 현미경 관찰 결과 공구흔이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음을 알 수 있으므로(공판기록 제307면 참조. 위 절단면에 부합하는 도구는 발견된 바 없다), 결국 공소사실은 과학적 검사에 의하거나 현장 조사에 의해 습득한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일부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 한편, 피해자가 쇠약한 노인이고 중풍을 앓은 바 있다 하여도 위 주거지에 혼자 거주하면서 식사나 빨래, 청소 등을 손수 하였으며, 1주일에 2, 3회 정도는 2km 정도 떨어진 노인정에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은 채로 걸어서 다녔고, 200평 규모의 텃밭을 직접 경작하여 마늘, 고추, 감자 등을 재배하기까지 하였으며(공판기록 701, 702면, 피해자의 아들인 공소외 2의 증언 참조), 사건 당일 이웃 주민과 함께 병아리를 사러 장에 다녀올 때에는 리어카를 꺼내어 끌고 가려고 하였던 점(수사기록 218면, 공소외 7에 대한 진술조서 참조) 등에 비추어 일상생활에 지장 없을 정도의 체력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이 체력이나 체격조건이 피해자보다 비록 우위에 있다고는 하나 피고인 역시 관절염 등을 앓고 있는 61세의 부녀자로서, 서로 간에 별다른 상처나 흔적(모발 등) 없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여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를 결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청테이프의 절단면이 매끄러워 가위나 칼 등을 이용하여 절단한 것으로 보이는바, 공소사실에 의하면 한편으로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청테이프를 가위나 칼 등을 이용하여 잘라 가면서 결박을 하였다고 밖에 볼 수 없는바, 피해자에게 별다른 외상(유일한 것이 팔꿈치에 나타난 표피박탈 정도이다. 공판기록 37면 참조)을 가하지 아니할 정도로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위와 같은 범행을 하는 것은 건장한 성인 남성으로서도 쉽지 않아 보인다(특히 수사기록 제14면의 사진을 보면 피해자는 시계를 차고 있었던바, 공판기록 제38면의 사진의 영상과 대조해 보면, 시계를 찬 손목에도 결박과정에서 아무런 상처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다. 뿐만 아니라, 원심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시피 판시와 같이 고부간의 갈등을 토로하면서 대화를 나눈 정도만으로는 그로써 범의를 일으켰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며, 치매증세가 진행되고 있어 피해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정을 잘 아는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신을 도둑으로 오인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여 격분하여 범행에 나아가게 되었다거나 실제 도둑으로 몰릴 것이 두려운 나머지 전화선을 자르고 피해자를 결박하기까지 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우므로(피해자의 이웃 주민들은 모두 피해자의 증세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웃 주민들이 나서거나 경찰이 출동하더라도 피고인으로서는 쉽게 의혹을 벗을 수 있는 처지에 있다), 범행의 동기에 관하여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피고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족적이 피해자의 주거 안팎에서 발견되었다거나 피해자의 집에 신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을 집에서 소각하는 등의 의심스러운 행동들은 피해자의 위 변소와 반드시 어긋난다고 볼 수 없어 이를 유죄 인정의 근거로 삼기에도 부족하다고 할 것이며, 그 밖에 검찰에서 범행을 자백한 동기에 관한 피고인의 주장 역시 쉽게 배척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라. 형사소송에서는 범죄사실이 있다는 증거는 검사가 제시하여야 하는 것이고, 피고인의 변소가 불합리하여 거짓말 같다고 하여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 없고 범죄사실의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갖게 하여야 할 것이다 ( 대법원 1991. 8. 13. 선고 91도1385 판결 등 참조).

마. 이러한 법리를 염두에 두고 위에서 본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이 거시하는 여러 가지 간접증거들과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의 자백만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피고인의 범행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아니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결국, 채증법칙 위반이나 심리미진으로 인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논지는 이유 있다.

4. 결 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재윤(재판장) 이규홍 김영란 김황식(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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