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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8도11921 판결
[해양오염방지법위반·업무상과실선박파괴·선원법위반][공2009상,795]
판시사항

[1] 예인선단과 대형 유조선의 충돌로 초래된 ‘태안반도 유조선 기름누출사고’에서, 예인선단 선원들의 충돌방지를 위한 주의의무 위반과 대형 유조선 선원들의 충돌 및 오염 방지를 위한 주의의무 위반을 이유로, 기름누출에 관한 구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죄를 인정한 사례

[2] 형법 제187조 선박파괴죄에서 말하는 ‘파괴’의 의미

[3] 대형 유조선의 유류탱크 일부에 구멍이 생기고 선수마스트, 위성통신 안테나, 항해등 등이 파손된 정도에 불과한 것은 형법 제187조 에 정한 선박의 ‘파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4] 실체적 경합범에 대하여 이종(이종)의 형을 부과한 경우, 일부에만 파기사유가 있는 때 그 파기 범위

판결요지

[1] 예인선단과 대형 유조선의 충돌로 초래된 태안반도 유조선 기름누출사고에서, 예인선단 선원들의 충돌방지를 위한 주의의무 위반과 대형 유조선 선원들의 충돌 및 오염 방지를 위한 주의의무 위반을 이유로, 기름누출에 관한 구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죄를 인정한 사례.

[2] 형법이 제187조 를 교통방해의 죄 중 하나로서 그 법정형을 높게 정하는 한편 미수, 예비·음모까지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정에 덧붙여 ‘파괴’ 외에 다른 구성요건 행위인 전복, 매몰, 추락 행위가 일반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손괴를 수반할 것이 당연히 예상되는 사정 등을 고려해 볼 때, 형법 제187조 에서 정한 ‘파괴’란 다른 구성요건 행위인 전복, 매몰, 추락 등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교통기관으로서의 기능·용법의 전부나 일부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파손을 의미하고,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는 단순한 손괴는 포함되지 않는다.

[3] 총 길이 338m, 갑판 높이 28.9m, 총 톤수 146,848톤, 유류탱크 13개, 평형수탱크 4개인 대형 유조선의 유류탱크 일부에 구멍이 생기고 선수마스트, 위성통신 안테나, 항해등 등이 파손된 정도에 불과한 것은 형법 제187조 에 정한 선박의 ‘파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4]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및 선원법 위반(일부)을 실체적 경합범으로 보아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에 대하여는 하나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선원법 위반에 대하여는 이와 별개로 벌금형을 병과한 경우, 하나의 징역형이 선고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은 소송상 일체로 취급되어야 하므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에 관한 원심판단에 위법이 있는 이상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부분까지 함께 파기를 면할 수 없으나, 별개의 벌금형이 병과된 선원법 위반 부분은 소송상 별개로 분리 취급되어야 하므로 이 부분은 파기 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

피 고 인

피고인 1외 5인

상 고 인

피고인들

변 호 인

법무법인 새날로외 8인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인 2에 대한 부분, 피고인 1에 대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및 소송비용부담 부분, 피고인 3, 4에 대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 부분을 모두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대전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피고인 1, 3, 4의 나머지 상고 및 피고인 삼성중공업 주식회사, 허베이스피리트선박 주식회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및 선원법 위반 부분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피고인 1, 2, 삼성중공업 주식회사의 상고이유 부분

(1)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고 또 그것을 회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의 주의의무를 태만히 함으로써 결과 발생을 야기하였다면 과실범의 죄책을 면할 수 없고, 위와 같은 주의의무는 반드시 개별적인 법령에서 일일이 그 근거나 내용이 명시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결과 발생에 즈음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제반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결과 발생에 대한 예견 및 회피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아 그 결과 발생을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예인선단이 준수하여야 할 선내안전운항수칙에 항해 중 특히, 비상상황 발생시 선단장인 피고인 2의 지시를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사정과 피고인 2의 회사 조직 내에서의 지위 및 항해 경험, 실제 항해에 있어서의 개입의 정도 및 그 영향력 등 판시와 같은 여러 이유를 들어, 원심이 피고인 2도 이 사건 예인선단의 안전한 운항에 관하여 판시와 같은 여러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과실범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

(2) 구 해상교통안전법(2007. 1. 19. 법률 제8260호로 개정되어, 2008. 1. 20. 시행되기 전의 것) 제46조 제2항 은 조종제한선이 표시하여야 할 등화나 형상물에 관하여 규정한 다음, 제3항 에서 “동력선이 진로로부터 이탈능력을 매우 제한받는 예인작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에는 제43조 제1항 에 따른 등화나 형상물에 덧붙여 제2항 제1호 제2호 에 따른 등화나 형상물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예인선이 진로로부터 이탈능력을 매우 제한받는 예인 작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에는 예인선 자체에 위와 같은 등화나 형상물을 표시하여야 하고, 예인 대상인 다른 선박 또는 물체에 위와 같은 등화나 형상물을 표시하는 것은 위 조항에 의한 적법한 등화나 형상물 표시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주예인선과 부예인선에는 조종제한등화를 표시하지 아니하고 예인 대상인 부선에 조종제한등화를 한 것은 구 해상교통안전법에 의한 적법한 등화 표시 방법이 아니고 이 역시 이 사건 충돌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조종제한등화 표시방법,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3) 형법 제17조 는 “어떤 행위라도 죄의 요소되는 위험 발생에 연결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결과로 인하여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는바, 자신의 행위로 초래된 위험이 그대로 또는 그 일부가 범죄 결과로 현실화된 경우라면 비록 그 결과 발생에 제3자의 행위가 일부 기여하였다 할지라도 그 결과에 대한 죄책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대법원 1984. 6. 26. 선고 84도831, 84감도129 판결 등 참조).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이 사건 예인선단과 허베이 스피리트호(아래에서는, ‘허베이호’라고 한다)의 충돌로 허베이호 좌현 1, 3, 5번 유류탱크에 각 한 군데씩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으로부터 이 사건 기름이 누출되었는데, 그 누출 정도는 위와 같은 탱크 파손으로 인하여 추가 요인이 없는 경우에도 물리 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현실화될 것이 예상되는 범위 내의 것일 뿐 허베이호 선원들의 추가적인 행위로 인하여 통상 예상되는 범위를 초과하는 정도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 사실이 인정된다. 그렇다면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비록 허베이호 선원들이 유류탱크 파손 이후 오염 방지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 충돌로 인한 기름 누출의 정도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예인선단이 허베이호의 유류탱크에 구멍을 내어 이 사건 기름 누출의 위험을 초래한 행위와 실제 발생한 이 사건 기름 누출이라는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4) 형법 제22조 제1항 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첫째 피난행위는 위난에 처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어야 하고, 둘째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하여야 하며, 셋째 피난행위에 의하여 보전되는 이익은 이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해야 하고, 넷째 피난행위는 그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일 것을 요하는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대법원 2006. 4. 13. 선고 2005도9396 판결 등). 또한, 직장 상사의 지시로 인하여 그 부하가 범법행위에 가담한 경우 비록 직무상 지휘·복종 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범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을 기대가능성이 부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 1999. 7. 23. 선고 99도1911 판결 등 참조).

원심이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예인선단의 무리한 운항이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거나 상사의 항해 지시에 따라야만 했기 때문에 적법한 운항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을 모두 배척한 것은 위 법리에 비추어 모두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긴급피난, 기대불가능성 등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5) 구 해양오염방지법(2007. 1. 19. 법률 제8260호로 해양환경관리법이 제정되어 2008. 1. 20. 시행됨에 따라 폐지되기 전의 것) 제77조 는 “법인의 대표자 또는 법인이나 개인의 대리인·사용인 기타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제71조 내지 제76조 의 위반행위를 한 때에는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 대하여도 각 해당조의 벌금형을 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양벌조항의 취지는 법인 등 업무주의 처벌을 통하여 벌칙 조항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 있는 것이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법인의 사용인에는 법인과 정식 고용계약이 체결되어 근무하는 자뿐만 아니라 그 법인의 업무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수행하면서 법인의 통제·감독하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2도2298 판결 , 대법원 2006. 2. 24. 선고 2003도4966 판결 등 참조).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 1, 2가 비록 공소외 주식회사 소속 직원이기는 하나, 위 회사는 피고인 삼성중공업 주식회사의 협력업체로서 이 사건 예인선단 용역관리위탁계약에 따라 피고인 삼성중공업 주식회사를 위하여 이 사건 예인선단을 관리·운영하는 외에는 다른 영업을 전혀 하지 아니하는 회사였고, 위 피고인들은 피고인 삼성중공업 주식회사 소속 직원들의 통제·감독을 받으면서 이 사건 예인선단을 운항하는 방법으로 피고인 삼성중공업 주식회사의 이 사건 예인선단 사용 업무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수행해 온 사실이 인정되므로, 원심이 피고인 삼성중공업 주식회사에게 위 양벌조항을 적용한 것은 위 법리에 비추어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양벌조항의 적용범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6) 원심이 판시와 같은 여러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주예인선의 선장인 피고인 1은 기상 상태를 수시로 면밀하게 파악하고 기상 악화로 예인능력이 제한 또는 상실되는 경우 피항, 비상투묘, 조정제한등화 등 적절한 비상조치를 협의하여 시행함과 동시에 근접 거리에 있는 위험 선박을 발견할 경우 선내에 설치되어 있는 초단파 무선전화기(VHF)를 이용하여 관제소 및 상대 선박과 신속하게 교신을 취하여 충돌의 위험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충돌을 피하는 조치를 강구하여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하고 뒤늦게 충돌을 피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대각도 변침한 과실 등이 인정되고, 이 사건 예인선단의 선단장인 피고인 2는 기상 상태를 수시로 면밀하게 파악하고 기상 악화로 예인능력이 제한 또는 상실되는 경우 예인선단 내 통신 설비를 이용하여 예인선 선장들과 수시로 교신하여 예상되는 위험요소들을 미리 파악하고 피항, 비상투묘와 같은 비상조치 등을 협의하여 적절한 시점에서 시행하도록 하여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하고 주예인선의 예인줄이 끊어진 뒤에는 부선의 닻을 충분한 파주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투묘하여야 함에도 이를 그르친 과실 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조치에, 증거에 의하지 아니하거나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지 아니하였음에도 공소사실을 인정한 위법 또는 증거평가에 관한 논리법칙·경험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의 한계를 넘어선 위법은 보이지 아니한다. 이는, 원심이 피고인 1이 대산지방해양수산청 해상교통관제센터와의 교신에 관하여 항해일지를 거짓 기재하였다고 인정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밖에 피고인들이 원심의 사실인정에 관하여 내세우는 사유들은 결국 구체적인 논리법칙·경험법칙 위반 사실을 특정하지 아니한 채 원심의 사실인정을 다투는 취지에 불과하므로 이는 적법한 상고이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또, 피고인 1의 양형부당 주장은 징역 2년 6월 및 벌금형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는 적법한 상고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7) 결국,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및 선원법 위반 부분에 관한 피고인 1, 2, 삼성중공업 주식회사의 상고이유는 모두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나. 피고인 3, 4, 허베이 스피리트선박 주식회사의 상고이유 부분

(1) 형사소송법 제298조 제1항 은 “검사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공소장에 기재한 공소사실 또는 적용법조의 추가·철회 또는 변경을 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허가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바, 공소사실의 동일성 여부는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법률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 피고인의 행위와 그 사회적인 사실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그 규범적 요소도 고려에 넣어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1996. 6. 28. 선고 95도127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소송기록에 의하면, 검사는 이 사건 예인선단과 허베이호의 충돌로 초래된 다량의 기름 누출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기 위하여 피고인 3, 4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의 상상적 경합범으로 공소제기하면서(허베이스피리트선박 주식회사에 대하여는 해양오염방지법 위반만 적용), 처음에는 충돌방지를 위한 주의의무 위반만을 공소사실로 특정하였다가 원심에 이르러 위 두 죄의 관계를 실체적 경합범으로 변경하면서, 충돌방지를 위한 주의의무 위반의 구체적인 내용을 일부 변경하고 충돌 후 기름 누출을 막기 위한 오염방지 관련 주의의무 위반을 공소사실로 추가하였고, 이미 이 사건 수사 및 제1심 심리 과정에서도 오염방지 관련 주의의무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되어 상당 부분 심리가 진행되어 온 사실이 인정되는바, 위와 같이 이미 공소제기된 수개의 죄에 대한 죄수 평가를 변경하는 것이나 단순일죄인 과실범의 주의의무 위반 내용을 일부 보완하는 것은 기존의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같은 취지의 원심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공소장변경 허용범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2) 해상교통안전법 등에 의하면, 선박은 주위의 상황 및 다른 선박과 충돌할 수 있는 위험성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각·청각 및 당시의 상황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적절한 경계를 하여야 하고, 원칙적으로 정박선이 항행선과의 충돌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먼저 적극적으로 피항조치를 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충돌 위험이 발생한 상황에서 항행선이 스스로 피항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면 정박선으로서도 충돌 위험을 회피하는 데 요구되는 적절한 피항조치를 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인정되는 것이다( 대법원 1984. 1. 17. 선고 83도2746 판결 등 참조). 또, 과실범에 관한 이른바 신뢰의 원칙은 상대방이 이미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경우에는 적용될 여지가 없는 것이고, 이는 행위자가 경계의무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상대방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미리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결과 발생에 즈음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요구되는 정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규나 내부지침 등에 나열되어 있는 사항을 형식적으로 이행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결과 발생을 회피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원심이 판시와 같은 여러 이유를 들어, 기상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박의 통항이 빈번한 차폐되지 않은 해상에 원유 약 302,640kl(약 263,994t)를 실은 단일선체 선박인 허베이호를 정박시킨 이상, 1등 항해사이자 사고 당시 당직사관이던 피고인 4로서는 육안 및 알파레이다 등 항해 장비를 이용하여 근접하여 진행하는 선박이 있는지를 잘 살펴 허베이호와의 충돌 위험성 등을 파악하고 교신을 통하여 상대 선박으로 하여금 충분한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통과하도록 하거나 상대 선박이 항해능력을 잃거나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의심될 경우에는 신속히 허베이호의 기관을 가동하고 닻을 올려 정박 장소로부터 이동하는 등 충돌을 피할 수 있도록 즉시 선장을 호출하여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고, 선장인 피고인 3으로서는 정박중에도 주기관을 준비상태에 두도록 조치하고 당직사관의 적절한 임무 수행을 독려하며 호출을 받아 선교에 올라온 후에는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 선박과의 교신 등을 통하여 충돌을 막기 위하여 협력하여야 함은 물론, 상대 선박의 항해능력 장애로 인하여 충돌 위험이 발생한 때에는 신속히 강한 후진 기관을 사용하는 등 충돌을 피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여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으며, 위 피고인들의 위와 같은 과실이 이 사건 예인선단 선원들의 과실과 경합하여 예인선단과 허베이호가 충돌하기에 이르렀고, 다시 위 피고인들은 충돌 이후 기름 누출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손상된 탱크의 기름을 손상되지 않은 탱크로 최대한 이송하고 기름유출탱크의 내부압력을 강하하며 평형수조절 등으로 기름의 추가 유출방지를 위한 최적의 상태를 조성하여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한 과실 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위 법리에 비추어 정당하고, 거기에 증거에 의하지 아니하거나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지 아니하였음에도 공소사실을 인정한 위법 또는 증거평가에 관한 논리법칙·경험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의 한계를 넘어선 위법은 보이지 아니한다. 그 밖에 피고인들이 원심의 사실인정에 관하여 내세우는 사유들은 결국 구체적인 논리법칙·경험법칙 위반 사실을 특정하지 아니한 채 원심의 사실인정을 다투는 취지에 불과하므로 이는 적법한 상고이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3)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이 판시와 같은 피고인 3, 4의 오염 방지조치 소홀을 인정하면서 다만 그로 인하여 누출된 기름의 양이 정확히 얼마인지 산정하기는 어렵다고 설시하고 있을 뿐, 오염 방지조치 소홀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는 없음을 알 수 있다. 원심이 오염 방지조치 소홀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음을 전제로 하여 원심판결에 이유 모순이 있다고 하는 주장은 원심판결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나머지 원심판결의 이유 모순을 지적하는 주장들도 모두 원심판결을 잘못 이해한 것이거나 원심의 사실인정 및 판단과는 다른 전제에서 원심을 비난하는 취지에 불과하여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

(4) 이 사건 소송기록에 의하면, 원심의 증거조사 과정에서 일부 증거능력 없는 증거가 현출된 것은 대부분 이 사건 예인선단과 허베이호 측이 방어권 행사의 방법으로 이 사건 충돌 및 해양오염의 주된 책임이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고 상대방에게 불리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으므로 그러한 사정만으로 바로 원심의 심리 절차에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나아가, 원심의 사실인정 중 일부는 검사가 작성한 쉬양에 대한 진술조서 등과 같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증거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이를 제외하고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나머지 증거들만에 의하더라도 피고인 3, 4의 충돌 및 오염 방지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한 원심 결론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므로, 이는 원심판결에 영향을 미친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나머지 원심 심리 절차의 위법을 다투는 주장은 모두 그 채부나 실시 여부가 원심의 재량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 당부를 지적하는 취지에 불과하므로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5) 양형의 기초 사실에 관하여 사실을 오인하였다거나 양형의 조건이 되는 정상에 관하여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하였다는 주장 등은 결국 양형부당을 주장하는 것이어서 이 사건에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

(6) 결국,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부분에 관한 피고인 3, 4, 헤베이 스피리트선박 주식회사의 상고이유 역시 모두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2.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 부분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형법 제15장 교통방해의 죄에 속하는 형법 제187조 는 “사람의 현존하는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또는 항공기를 전복, 매몰, 추락 또는 파괴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하고, 제190조 는 미수범을, 제191조 는 예비 또는 음모한 자를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형법제187조 를 교통방해의 죄 중 하나로서 그 법정형을 높게 정하는 한편 미수, 예비·음모까지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정에 덧붙여 ‘파괴’ 외에 다른 구성요건 행위인 전복, 매몰, 추락 행위가 일반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손괴를 수반할 것이 당연히 예상되는 사정 등을 고려해 볼 때, 형법 제187조 에서 정한 ‘파괴’란 다른 구성요건 행위인 전복, 매몰, 추락 등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교통기관으로서의 기능·용법의 전부나 일부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파손을 의미하고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는 단순한 손괴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 대법원 1970. 10. 23. 선고 70도1611 판결 , 대법원 1983. 9. 27. 선고 82도671 판결 등 참조).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허베이호는 총 길이 338m, 갑판 높이 28.9m, 총 톤수 146,848t, 유류탱크 13개, 평형수탱크 4개인 대형 유조선인데, 이 사건 충돌로 인한 손상은 좌현 1, 3, 5번 유류탱크에 각 한 군데씩 구멍(1번 탱크 0.3m×0.03m, 3번 탱크 1.2m×0.1m, 5번 탱크 1.6m×2m)이 생기고 선수마스트, 위성통신 안테나, 항해등 등이 파손된 정도에 불과한 사실이 인정된다.

앞서 본 법리에 위 인정 사실을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충돌로 허베이호에 발생한 손상은 형법 제187조 에서 정한 선박의 ‘파괴’에 이를 정도라고 보기 어렵고, 이는 유류탱크에 생긴 구멍에서 기름이 누출되어 이를 수리할 때까지 기름을 운송하는 유조선으로서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고 하여 달리 볼 것도 아니다.

이와 달리, 이 사건 충돌로 허베이호에 발생한 손상이 형법 제187조 에서 정한 선박의 ‘파괴’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은 위 조항의 해석·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 1, 3, 4의 상고이유는 옳고, 위와 같은 원심판결의 위법사유는 함께 상고한 공동피고인인 피고인 2에 대하여도 공통되므로 피고인 2에 대한 이 부분 원심판결 역시 파기를 면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 1, 2, 3, 4에 대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나 위 죄가 성립함을 전제로 한 나머지 죄들과의 죄수 및 처단형 산정방법 등에 관한 원심의 다른 판단 부분에 대하여 다투는 취지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하여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위 피고인들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를 인정한 원심 판단 부분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3. 파기의 범위

원심은 피고인 1의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및 선원법 위반(일부)을 유죄로 인정한 다음, 이들을 실체적 경합범으로 보아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에 대하여는 하나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선원법 위반에 대하여는 이와 별개로 벌금형을 병과하였다. 이 경우 하나의 징역형이 선고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은 소송상 일체로 취급되어야 하므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에 관한 원심판단에 위법이 있는 이상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부분까지 함께 파기를 면할 수 없다. 다만, 별개의 벌금형이 병과된 선원법 위반 부분은 소송상 별개로 분리 취급되어야 하므로 이 부분은 파기 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 (원심은 피고인 1에 대한 제1심판결 중 본안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면서도 소송비용부담에 대한 부분은 파기를 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소송비용부담 부분은 본안 부분과 한꺼번에 심판되어야 하고 분리 확정될 수 없는 것이므로, 1심 본안 부분을 파기하는 경우에는 마땅히 소송비용부담 부분까지 함께 파기하였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 1에 대한 소송비용부담 부분까지 함께 파기하기로 한다).

원심은 피고인 2의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에 대하여도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으므로, 피고인 2에 대한 원심판결은 모두 파기를 면할 수 없다.

한편, 원심은 이 사건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이 실체적 경합범이라고 판단하고, 피고인 3, 4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에 대하여는 금고형을,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에 대하여는 벌금형을 각 선택한 다음 이를 병과하였다. 이 경우 두 죄는 소송상 별개로 분리 취급되어야 하므로 파기 범위는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에 한정되고,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에 대하여는 미치지 아니한다.

4. 결 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인 2에 대한 부분, 피고인 1에 대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와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및 소송비용부담 부분, 피고인 3, 4에 대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 부분을 모두 파기하여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고, 피고인 1, 3, 4의 나머지 상고 및 피고인 삼성중공업 주식회사, 허베이스피리트선박 주식회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홍훈(재판장) 김영란 김능환 차한성(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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