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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3. 2. 26. 선고 2001도1314 판결
[살인·현주건조물방화][공2003.4.15.(176),946]
판시사항

[1] 간접증거를 모두 종합하더라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 사례

[2] 파기환송 판결의 기속력

판결요지

[1]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직접증거가 없고,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간접증거의 증명력이 환송 뒤 원심에서 새로 현출된 증거에 의하여 크게 줄어들었으며, 그 밖에 나머지 간접증거를 모두 종합하여 보더라도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명력이 부족한 경우,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더하여 보아도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 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 사례.

[2] 상고심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기속되는 것이지만, 환송 뒤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어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에 변동이 생기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변호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이돈명 외 9인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아내인 망 공소외 1의 독단적인 성격과 피고인 부모형제와의 불화 등으로 그와 좋지 아니한 관계에 있던 중 망 공소외 1이 공소외 2와 불륜 관계에 있는 것을 눈치 채고 그가 출산한 망 공소외 3이 피고인의 친자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등 망 공소외 1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악화된 상태에서 1995. 6. 11. 23:30경부터 1995. 6. 12.(다음부터 '사건 당일'이라고 한다) 06:30경까지 사이에 피고인의 집에서 망 공소외 1과 다투다가 그 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하여 거실 베란다의 커튼 줄을 잘라 그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이어 다른 줄로 망 공소외 3의 목을 졸라 살해한 다음, 사건 당일 07:00경 안방 장롱 안의 옷에 불을 놓아 주거로 사용하는 건조물을 소훼하였다는 것이다.

2. 원심은, 피고인이 망 공소외 1과의 성격 차이, 망 공소외 1과 피고인 형제부모의 갈등, 망 공소외 1과 공소외 2 사이의 관계 등으로 망 공소외 1과 원만하지 아니한 관계에 있었고, 망 공소외 3도 잘 돌보지 아니하고 있었던 사실, 망 공소외 1이 1995. 6. 11. 22:30경 언니와 전화를 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사실, 피고인은 사건 당일 07:00경 집을 나와 그날 08:05경 당일 개업할 예정이었던 피고인의 외과의원에 도착한 사실, 그런데 사건 당일 08:50경 피고인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 발견되었고 소방관이 출동하여 불을 끈 뒤 화장실 욕조 안에서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의 사체를 발견한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이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을 살해하고 불을 놓았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직접증거가 없고 피고인이 일관되게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이 사건에서 ①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은 1995. 6. 11. 22:30경까지 살아 있었음이 분명하고 피고인이 사건 당일 07:00경 집을 나올 때까지 피고인의 집에는 피고인과 망 공소외 1, 3만 있었으므로,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이 사건 당일 07:00 이전에 사망하였다면 피고인을 범인으로 볼 수 있고, 의사 또는 법의학자인 권일훈·이정빈·황적준이 망 공소외 1의 사체에 나타난 시반, 시강 및 위 내용물에 대한 감정결과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이 사건 당일 07:00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고 있으나, 스위스 법의학자인 토마스 크롬페처의 증언 등 환송 뒤 원심에서 새로 제출된 증거들까지 모아 보면, 시반과 시강 및 위 내용물의 상태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것은 오차의 범위가 매우 넓고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많아 정확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서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의 사체가 발견된 상황이나 그 사체의 상태 등을 종합하여 보더라도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이 사건 당일 07:00 이후에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위 권일훈 등의 사망 시각 추정에 따라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고, ② 환송 뒤 원심에서 피고인의 집 안방과 유사한 구조물을 세워 이 사건과 비슷하게 불이 나는 과정을 실험한 결과 옷에 불을 붙인 뒤 불과 5∼6분 안에 밖에서 연기가 관찰되었는데, 실제 화재현장과 실험 구조물의 차이 등을 감안하더라도 피고인의 집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이 발견된 시각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집 안에 불이 붙은 시각은 사건 당일 07:00 이후라고 보이는데, 그렇다면 피고인이 출근한 뒤 누군가 불을 놓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며, ③ 피고인과 망 공소외 1 사이의 갈등과 불화는 사건 당일 무렵 많이 해소되었고 무엇보다 망 공소외 1의 도움으로 자신의 병원을 개업하게 된 피고인이 병원을 개업하기 직전 갑자기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을 살해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④ 사건 직후 피고인의 팔에 남아 있던 손톱자국이나 피고인의 집에서 발견된 망 공소외 3을 위한 우유병과 1회용 분유통의 상태 또는 식기세척기 등 식탁 주변의 상황 등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간접증거로 삼기에 부족하며, ⑤ 한편, 피고인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피고인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도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을 살해한 범인에게만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 나오는 등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지만, 이 사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다른 간접증거들의 종합적인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이상, 비록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의심할 수 있는 정황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3. 범죄사실의 증명은 반드시 직접증거만으로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논리와 경험칙에 들어맞는 한 간접증거로도 할 수 있으며,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하여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음은 환송판결이 지적한 바와 같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보면,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직접증거가 없고,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간접증거인 망 공소외 1과 망 공소외 3의 사망시각에 관한 여러 증거의 증명력이 환송 뒤 원심에서 새로 조사된 스위스 법의학자의 증언이나 화재재현실험결과 등에 의하여 크게 줄어들었으며, 그 밖에 사건 직후 피고인의 팔에 남아 있던 손톱자국이나 피고인의 집에서 발견된 망 공소외 3을 위한 우유병과 1회용 분유통의 상태 또는 식기세척기 등 식탁 주변의 상황, 피고인과 망 공소외 1의 갈등관계 등 나머지 간접증거를 모두 종합하여 보더라도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명력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여기에 피고인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 등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더하여 보아도 이 사건에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것은 옳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든 주장과 같이 채증법칙을 위배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한편, 상고심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기속되는 것이지만, 환송 뒤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어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에 변동이 생기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므로 ( 대법원 1996. 12. 10. 선고 95도830 판결 참조), 원심이 환송 뒤 제출된 새로운 증거를 받아들여 사실인정을 한 이 사건에서 상고이유로 든 주장과 같이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도 없다.

4.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한다.

대법관 배기원(재판장) 서성(주심) 이용우 박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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