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이적표현물의 판단 기준
[2]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내용이 담긴 모내기 그림이 이적표현물에 해당된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1] 표현물의 내용이 구 국가보안법의 보호법익인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고 표현물에 이와 같이 이적성이 있는지 여부는 표현물의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제작의 동기는 물론 표현행위 자체의 태양 및 외부와의 관련사항, 표현행위 당시의 정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2]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내용이 담긴 모내기 그림이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판결을 채증법칙 위배 등을 이유로 파기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검사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구 국가보안법(1991. 5. 31. 법률 제4373호로 개정되기 전의 법률, 이하 같다) 제7조 제5항의 규정은 각 그 소정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적용되는 것이라 할 것인데, 첫째 그림이 표현하는 사상이나 이념이 구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에 위반되는 이적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시대의 상황에 있어서 사회일반인이 갖는 건전한 상식과 보편적인 정서에 기초하여 그림을 해석하여야 할 것이고, 둘째 미술품이 실정법위반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획일적, 일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매우 신중하고 섬세하여야 하며, 셋째 회화의 이적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어떤 특정부분을 전체 그림에서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이적성을 띠는 것인가 여부를 판단하여서는 아니되고 각개의 구성 부분은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작품전체의 구성과 관련하여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고, 넷째 헌법 제22조 제1항에서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위하여 이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에 그쳐야 할 것이어서 그 제한 법규는 가능한 한 한정적으로 엄격하게 축소해석하여야 할 것이라는 해석방법을 기초로, 거시 증거에 의하여, 이 사건 모내기 그림의 하반부에 관하여는, 전체적으로 원작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대로 통일에 장애가 되는 요소로서의 외세와 저질외래문화를 배척하고 우리 사회를 민주화하여 자주적, 평화적 통일로 나가야 한다는 조국통일에의 의지 및 염원을 나타낸 것이고, 하반부의 그림 중에 탱크, 미사일 등 무기를 써래질하는 모양은 비인간적이고 평화와는 상치되는 무기의 배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고, 위 모내기 그림의 상반부에 관하여는 통일이 주는 기쁨과 통일 후의 평화로운 모습을 이상향으로 묘사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를 배척하여 무죄를 선고한 제1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표현물의 내용이 구 국가보안법의 보호법익인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고 표현물에 이와 같이 이적성이 있는지 여부는 표현물의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제작의 동기는 물론 표현행위 자체의 태양 및 외부와의 관련사항, 표현행위 당시의 정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 1992. 3. 31. 선고 90도2033 전원합의체 판결, 1997. 2. 28. 선고 96도1817 판결, 1997. 6. 13. 선고 96도2606 판결 등 참조).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모내기 그림은 130.3㎝×160.2㎝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이용하여 1986. 7. 20.경 제작에 착수하였다가 개인사정으로 일단 중단한 뒤 1987. 6.경 다시 작품제작을 재개하여 같은 해 8. 10. 완성한 작품으로서, 그림의 상단 우측에 백두산을, 하단에 파도가 이는 남해바다를 그리는 등 전체적으로 보아 한반도를 묘사하고 있고 상반부와 하반부로 나누어 각각 다른 광경을 그리고 있는바, 그림 하반부는 모내기를 하는 농부가 황소를 이용하여 써래질을 하면서 소위 미·일 제국주의 등 외세를 상징하는 이.티(E.T), 람보, 양담배, 코카콜라, 매트헌터, 일본 사무라이, 일본기생, 레이건 당시 미국대통령, 나카소네 당시 일본수상, 군사파쇼정권을 상징하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 미군을 상징하는 탱크, 핵무기 등은 물론 지주 및 매판자본가 계급을 상징하는 사람들을 황소가 짓밟으면서 남해 바다 속으로 쓸어버리고 삽으로 분단을 상징하는 38선의 철조망을 걷어내는 형상을 묘사하고 있고, 그림 상반부는 상단에 잎이 무성한 나무숲에 천도복숭아가 그려져 있고 그 나무숲 좌측상단에 두 마리 비둘기가 다정하게 깃들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 나무숲 우측 아래에 북한에서 소위 '혁명의 성산'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이 그려져 있으며 그 바로 밑 좌측 부분에는 꽃이 만발한 곳에 초가집과 호수가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 부분에 농민들이 무르익은 오곡과 풍년을 경축하며 각종 음식을 차려놓고 둘러앉거나 서서 춤을 추며 놀고 주변에는 어린이들이 포충망을 들고 행복하게 뛰어 노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사실, 피고인은 위 그림을 자신이 1986. 2.경 회원으로 가입하여 1987. 3.경에는 공동대표를 역임한바 있는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이라고 한다) 주최의 '통일전'에 출품하여, 통일의 저해요소인 외래저질 퇴폐문화와 미·일 외세, 군사독재정권, 지주 등 자본가 계급 등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농민 등 민중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것으로서, 제작한 후에 1987. 8. 중순경 실제로 민미협 주최의 제2회 통일전에 출품하였고, 그 후 1988. 10.경 민미협 발행의 1989년도 달력에 게재케 한 사실, 민미협은 민족미술운동 또는 민중미술운동을 추구하고 있는바 민중미술운동에 대하여 민족역량의 한 부분이며 민족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힘이라고 자평하고 있으므로 민중미술은 순수미술이 아니라 이른바 민족과제에 복무하는 미술로서 민중들의 통일의지를 심어주고 민중의 민족해방의지를 구체화한 작품을 창작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사실, 위 그림의 제작 당시인 1986∼1987년경에는 소위 운동권에서 주체사상이 널리 확산되면서 북한의 주장을 좇은 남한혁명이론으로서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론(NLPDR)이 득세하였는데 동 이론은 남한을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보고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사독재정권과 매판자본가들이 남한의 민중을 억압, 착취하고 있으므로 남한의 노동자, 농민, 애국적 청년, 학생, 지식인 등이 연합하여 미제를 축출하고 민중의 정권 이른바 민주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는 이론이었고, 아울러 통일에 관하여도 남한에서 위와 같은 민주정부를 수립한 후 북한과의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이론이 주장되기 시작하였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위 인정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림 상반부는 북한을 그린 것으로서 통일에 저해되는 요소가 전혀 없이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풍요로운 광경으로 그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그림 하반부는 남한을 그린 것으로서 미·일 제국주의와 독재권력, 매판자본 등 통일에 저해되는 세력들이 가득하며 농민으로 상징되는 민중 등 피지배계급이 이들을 강제로 써래질하듯이 몰아내면 38선을 삽으로 걷듯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된다는 내용을 그린 것이라 할 것이므로, 결국 이는 피지배계급이 파쇼독재정권과 매판자본가 등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일으켜 연방제통일을 실현한다는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위에서 본 제작동기, 표현행위 당시의 정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위 그림은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의 활동에 동조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물로서 구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소정의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달리, 이 사건 모내기 그림의 하반부는 통일에 장애가 되는 요소로서의 외세와 저질외래문화를 배척하고 우리 사회를 민주화하여 자주적, 평화적 통일로 나가야 한다는 조국통일에의 의지 및 염원을 나타낸 것이고, 그 그림의 상반부는 통일이 주는 기쁨과 통일 후의 평화로운 모습을 이상향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인정하여, 피고인이 위 그림을 제작·반포한 행위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한 제1심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하였거나 구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고, 이와 같은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 명백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