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회사가 상인으로 의제된다고 하여 그 기관인 대표이사 개인의 상인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소극) 및 대표이사 개인이 회사의 운영 자금으로 사용하려고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은 경우, 그것만으로 상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 상인이 영업과 상관없이 개인 자격에서 돈을 투자하는 행위를 상인의 기존 영업을 위한 보조적 상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
[2]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한이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및 부관으로 정한 사실의 실현이 주로 채무를 변제하는 사람의 성의나 노력에 따라 좌우되고 채권자가 사실의 실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 합리적인 기간 내에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 때에도 채무의 이행기한이 도래한다고 보아야 하는지 여부(적극)
[3]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승인’의 방법 및 묵시적인 승인의 표시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
판결요지
[1] 상인은 상행위에서 생기는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상행위를 하는 것이고, 영업을 위한 행위가 보조적 상행위로서 상법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행위를 하는 자 스스로 상인 자격을 취득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
회사가 상법에 의해 상인으로 의제된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기관인 대표이사 개인이 상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이사 개인이 회사의 운영 자금으로 사용하려고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더라도 그것만으로 상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상인이 영업과 상관없이 개인 자격에서 돈을 투자하는 행위는 상인의 기존 영업을 위한 보조적 상행위로 볼 수 없다.
[2]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실이 발생한 때뿐만 아니라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한은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아가 부관으로 정한 사실의 실현이 주로 채무를 변제하는 사람의 성의나 노력에 따라 좌우되고, 채권자가 사실의 실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사실이 발생하는 때는 물론이고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기간 내에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 때에도 채무의 이행기한은 도래한다고 보아야 한다.
[3]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승인은 시효이익을 받을 당사자인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권리를 상실하게 될 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권리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한다. 표시의 방법은 아무런 형식을 요구하지 않고,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상관없다. 묵시적인 승인의 표시는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와 액수를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자가 채무를 인식하고 있음을 표시를 통해 추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면 충분하다.
참조판례
[1] 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다7948 판결 (공1993상, 74)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다43594 판결 (공2012하, 1491) [2] 대법원 1989. 6. 27. 선고 88다카10579 판결 (공1989, 1147)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16643 판결 (공2009상, 842) [3] 대법원 1992. 4. 14. 선고 92다947 판결 (공1992, 1595) 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4다59959 판결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2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준이 외 1인)
피고, 피상고인
피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원일 담당변호사 박석민 외 1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채권이 상사채권인지 여부(상고이유 제1점)
가. 상인은 상행위에서 생기는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상행위를 하는 것이고, 영업을 위한 행위가 보조적 상행위로서 상법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행위를 하는 자 스스로 상인 자격을 취득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 .
회사가 상법에 의해 상인으로 의제된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기관인 대표이사 개인이 상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이사 개인이 회사의 운영 자금으로 사용하려고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더라도 그것만으로 상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 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다7948 판결 ,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다43594 판결 등 참조).
또한 상인이 그 영업과 상관없이 개인 자격에서 돈을 투자하는 행위는 상인의 기존 영업을 위한 보조적 상행위로 볼 수 없다 .
나. 원심판결 이유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피고는 주식회사 덕성건설(이하 ‘덕성건설’이라 한다)의 대표이사였고, 소외인은 ‘○○○○○○’라는 상호로 콘테이너 제조·판매·대여 사업을 하였다.
(2) 피고는 1999. 2. 8.(다만 피고가 작성한 확인서에는 2000. 1.경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주식회사 태백엔지니어링(이하 ‘태백엔지니어링’이라 한다) 공장의 설립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소외인으로부터 4억 5천만 원을 지급받았다. 이후 피고는 1999. 11. 18. 태백엔지니어링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위 공장을 완공하였다.
(3) 소외인은 2003. 7. 21. 사망하였고, 상속인으로는 소외인의 처인 원고 1과 자녀인 원고 2, 원고 3이 있다.
(4) 피고는 2004. 12. 29. 원고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해 주었다.
‘피고가 소외인으로부터 공장 설립과 관련하여 투자금 4억 5천만 원을 지급받았으나 소외인이 사망하여 쌍방 계약이 상실되었으니 위 4억 5천만 원을 2005. 5. 31. 시흥시 △△동에 있는 주상복합공사와 관련하여 □□□□□□로부터 지급받을 예정인 금액을 받으면 받은 금액의 1/3을 지급하고, 부족분은 피고의 사업 재기 시에 지급한다.’
(5) 원고 1은 원고들을 대표하여 2015. 2. 27. 피고에게 내용증명으로 위 돈의 반환을 촉구하고, 2015. 8. 21.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다. 원심은 피고와 소외인이 모두 상인으로서 피고가 태백엔지니어링 공장의 설립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소외인으로부터 투자금 4억 5천만 원을 지급받았다고 보이므로, 소외인이 피고에게 위 투자금을 지급한 것이 피고와 소외인의 영업을 위한 보조적 상행위에 해당하므로, 원고들의 투자금 반환채권은 상사채권으로서 5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
라.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1) 원심판결과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따르면, 피고는 덕성건설이나 태백엔지니어링의 대표이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소외인으로부터 돈을 지급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원심이 인정한 것과 같이 그 명목이 피고가 태백엔지니어링의 공장 신축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소외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를 상인으로 볼 수 없다.
(2) 소외인이 콘테이너 제조·판매·대여업을 하던 상인이었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소외인 또한 개인 자격에서 피고에게 자금을 투자하거나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보조적 상행위로 볼 수도 없다.
(가) 소외인은 피고와 같은 고향 선·후배 관계로 친분이 두터웠다.
(나) 피고는 소외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태백엔지니어링 공장을 설립하였는데, 태백엔지니어링은 ‘가연성 쓰레기를 이용한 고체연료를 만드는 기계생산 및 판매업’, ‘고체연료 및 조연제생산 및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 소외인의 콘테이너 제조·판매·대여업과 관련성이 없다.
(다) 소외인의 자금 지급과 관련하여 투자약정서가 작성되거나 자금 투자에 따른 이익이나 손실의 배분, 투자금의 반환에 관한 사항 등 구체적인 약정이 없다.
(3) 따라서 소외인이 피고에게 4억 5천만 원을 지급한 것은 피고의 상행위로 인한 것이라거나 소외인의 보조적 상행위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결국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채권은 민사채권으로서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소외인이 피고에게 4억 5천만 원을 지급한 것을 소외인과 피고의 영업을 위한 상행위로 보아 상사채권에 관한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판단에는 상인과 상행위, 보조적 상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원고들의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2. 부관의 해석에 관한 심리미진, 법리오해 등 주장(상고이유 제3점)
가.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사실이 발생한 때뿐만 아니라 그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한은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대법원 1989. 6. 27. 선고 88다카10579 판결 등 참조). 나아가 부관으로 정한 사실의 실현이 주로 채무를 변제하는 사람의 성의나 노력에 따라 좌우되고, 채권자가 그 사실의 실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사실이 발생하는 때는 물론이고 그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기간 내에 그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 때에도 채무의 이행기한은 도래한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16643 판결 참조).
나. 피고가 소외인으로부터 받은 4억 5천만 원을 소외인의 상속인인 원고들에게 지급하기로 하면서 위 4억 5천만 원을 지급하는 시기에 관해서 ‘2005. 5. 31. 받기로 한 시흥시 △△동에 있는 주상복합공사와 관련하여 □□□□□□로부터 받을 금액이 영수되면’(이하 ‘제1 부관’이라 한다) 영수금액의 1/3을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은 ‘사업 재기 시’(이하 ‘제2 부관’이라 한다) 지급할 것을 약속한 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다. 제1 부관은 피고가 2005. 5. 31. □□□□□□로부터 시흥시 △△동에 있는 주상복합공사에 관하여 대금을 받기로 되어 있는데 그 대금을 받으면 그 금액의 1/3을 변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2005. 5. 31.’은 피고가 □□□□□□로부터 돈을 받기로 한 예정일로 보이고, 달리 부관에서 정한 사건 발생 여부의 기준이 되는 시점을 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즉 제1 부관은 ‘피고가 □□□□□□로부터 대금을 받을 것’을 불확정기한으로 정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제2 부관은 위 대금 중 지급받지 못한 나머지 돈을 피고의 ‘사업 재기 시’에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피고가 사업을 재기하지 않는 경우에는 언제까지나 돈을 변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 재기가 확정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기간이 지났는데도 피고의 사업 재기가 없었다면 그때 비로소 나머지 대금에 대한 변제기가 도래한다는 뜻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피고가 □□□□□□로부터 받기로 한 돈은 얼마이고, 그 1/3은 얼마인지, 피고가 실제 □□□□□□로부터 돈을 받았는지 여부와 그 액수, 만일 □□□□□□로부터 받기로 한 돈을 확정적으로 받지 못하였다면 그 사유와 시기, 2004. 12. 29. 약정 당시 ‘피고의 사업 재기 시’라는 불확정기한을 정하게 된 경위와 피고의 당시 사업 현황이나 사업 재기를 준비한 사항이 있었는지, 사업 재기 여부 등을 추가로 심리해서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금전지급채무의 변제기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
라.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가 2005. 5. 31. □□□□□□로부터 지급받을 예정인 금액을 지급하지 못한 이상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서는 해당 금액의 수령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되었다고 보아 이 사건 약정에 따른 금전지급채무의 이행기가 2005. 6. 1.경 도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판단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고 부관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들의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3. 소멸시효 중단사유에 관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위반 주장(상고이유 제2점)
가.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승인은 시효이익을 받을 당사자인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권리를 상실하게 될 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권리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한다. 그 표시의 방법은 아무런 형식을 요구하지 않고,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상관없다. 묵시적인 승인의 표시는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와 액수를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자가 채무를 인식하고 있음을 표시를 통해 추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면 충분하다 ( 대법원 1992. 4. 14. 선고 92다947 판결 , 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4다59959 판결 등 참조).
나. 원고 1이 작성한 메모(갑 제7호증)에는 피고가 2007. 1. 2. 원고 1을 2007. 1. 5. 방문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 원고 1이 2007. 1. 5. 피고로부터 자기앞수표 1,000만 원을 받아 국민은행에 입금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고, 위 원고의 국민은행 통장 사본(갑 제5호증)에는 같은 날 실제 1,000만 원의 자기앞수표가 입금된 것이 확인된다. 나아가 원고 1이 2015. 8. 21. 피고와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한 녹취록(갑 제6호증)에 따르면 위 원고가 피고에게 당초 주기로 한 4억 5천만 원 중에서 2천만 원은 받았지만 나머지 4억 3천만 원을 달라고 하자 피고가 여유가 없어서 주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가 2007. 1. 5.부터 2015. 8. 21.까지 원고 1에게 채무를 일부 변제하고 2015. 8. 21. 위 원고에게 4억 3천만 원의 채무가 남아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 무렵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승인’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도 원심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가 채무를 승인하였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승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들의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4. 결론
원고들의 상고는 이유 있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