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 그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한이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및 부관으로 정한 사실의 실현이 주로 채무를 변제하는 사람의 성의나 노력에 따라 좌우되고 채권자가 사실의 실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 합리적인 기간 내에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 때에도 채무의 이행기한이 도래한다고 보아야 하는지 여부(적극)
[2]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 의사를 해석하는 방법
참조판례
[1]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16643 판결 (공2009상, 842) 대법원 2018. 4. 24. 선고 2017다205127 판결 (공2018상, 947) [2]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5336, 5343 판결 (공2003상, 677)
원고, 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광화문 법무법인 담당변호사 박종대)
피고, 피상고인
피고 1 외 2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곽도형)
주문
원심판결 중 정산금 지급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원고의 나머지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정산금 지급청구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사실이 발생한 때뿐만 아니라 그 사실이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확정된 때에도 이행기한은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아가 부관으로 정한 사실의 실현이 주로 채무를 변제하는 사람의 성의나 노력에 좌우되고, 채권자가 그 사실의 실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사실이 발생하는 때는 물론이고 그 사실이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기간 내에 그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 때에도 채무의 이행기한은 도래한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16643 판결 , 대법원 2018. 4. 24. 선고 2017다205127 판결 등 참조).
한편 처분문서는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문언의 내용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객관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나,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그와 같은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5336, 5343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와 소외 1(이하 이들을 함께 지칭할 때는 ‘원고 측’이라 한다)은 피고 1 및 소외 2(이하 이들을 함께 지칭할 때는 ‘피고 측’이라 한다)가 각 1/2 지분씩 공유하는 평택시 (지번 1 생략) 전 4,680㎡(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를 매수하여 그 지상에 주택을 신축하여 분양하기로 하는 동업약정을 체결하였다.
2) 이에 원고는 2002. 10. 28. 피고 측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매대금 5억 5,600만 원에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고(이하 ‘이 사건 매매계약’이라 한다), 계약 당일 피고 1에게 계약금 5,000만 원을 지급하였다. 이 사건 매매계약에서는 잔금지급에 관하여 원고 측이 피고 측에게 이 사건 토지 위에 신축 예정인 다가구주택 6개 동(A~F) 중 한 동을 다른 모델과 동일하게 건축하여 주고 나머지 잔금은 2003. 6. 30.까지 정산하기로 약정하였다.
3) 원고는 2002. 10.경 이 사건 토지를 원심판결문 별지 가분할계획도(이하 ‘가분할계획도’라고만 한다) 표시와 같이 ⓐ~ⓖ의 7개 필지로 분할하여 ⓐ~ⓕ 부분에 다가구주택을 신축하고 ⓖ 부분은 진입도로로 개설할 계획을 세운 다음, 2003. 4. 11. 원고, 피고 1 등 6명의 명의로 각 다가구주택의 건축허가를 받았다. 또한 원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 이후 다가구주택 신축을 위해 이 사건 토지 둘레에 약 7m 50cm 정도의 축대벽을 쌓고 토지를 매립하는 등 토목공사를 하고, 문화재 보호구역에 속해있던 이 사건 토지에 대하여 지정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받았다.
4) 그러나 원고가 이 사건 매매계약에서 정한 잔금지급기일인 2003. 6. 30.까지 위 다가구주택의 신축을 완료하지 못하자, 소외 2는 2003. 8. 26. 원고에게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잔금지급 등 이행을 최고한 다음 2003. 9. 3.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한다는 통보를 하였다.
5) 이에 원고 측은 2003. 9. 29. 피고 측을 상대로 이 사건 토지에 대하여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2003가단12613호 ). 위 소송에서 원고 측은 이 사건 토지 토목공사비용으로 5억 6,000만 원 상당이 들었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 측은 이 사건 매매계약은 원고 측의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해제되었다고 다투었다.
6) 한편 위 소송 당시 이 사건 토지는 원고 측의 토목공사 등으로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의 시세인 평당 약 40만 원보다 훨씬 상승한 상태였다. 실제로 원고는 피고 측의 동의 없이 가분할계획도상 2필지의 토지를 제3자에게 평당 110만 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7) 원고 측은 위 소송이 계속 중이던 2003. 12. 26. 피고 측과 아래와 같이 합의하고(이하 ‘이 사건 합의’라 한다), 2003. 12. 31. 위 소송을 취하하였다.
(가) 원가 ① 토지 대금 평당 40만 원 ② 토목비용 평당 30만 원. ①은 매도인 측의 소유며 ②는 매수인 측의 소유와 원가를 공제하고 매매이득금은 매도인 측이 60%, 매수인 측이 40%로 정한다.
(나) 총 6필지 중 기존 2필지 매매사항은 매수인 측에 매도인이 이의를 제기치 않는다.
(다) 쌍방 간에 본건으로 인한 소송 중인 것은 합의와 동시에 서로 취하해준다.
(라) 제3자 매수자께 모든 제반 서류를 매도인 측이 제공한다.
(마) 양도소득세는 매도인이 책임지고 그 외 발생하는 공과금은 매수인 측이 부담한다.
(바) 기타 남은 필지의 매각은 시세에 준하여 4자가 합의한다.
(사) 정산방법은 매매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비율로 배분한다.
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 측과 피고 측은 이 사건 매매계약을 무효로 하는 대신 원고 측의 토목공사 등으로 이 사건 토지의 가치가 상승한 점을 고려하여 쌍방 간에 다툼이 있던 위 토목공사비용 등을 확정하고 이를 정산하려는 의도에서 이 사건 합의에 이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 합의의 주된 내용은 피고 측 소유의 이 사건 토지를 가분할계획도와 같이 분할하여 제3자에게 매각한 다음 그 매매대금 중 일정 부분을 원고 측의 토목공사비용 등으로 인정하여 이를 정산한다는 것이고, 구체적인 정산금의 액수는 ‘이 사건 토지가 제3자에게 매각되는 때’에 그 매매대금에 따라 일정한 금액 또는 비율로 확정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원고 측과 피고 측이 이 사건 합의에 이르게 된 사정에다가 이 사건 합의의 주된 내용 등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합의는 이 사건 토지의 분할과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피고 측이 언제까지나 원고 측에게 정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토지의 분할·매매라는 사실이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확정된다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기간이 지났는데도 피고 측이 이 사건 토지를 분할하여 매각하지 않는다면 그때 당시 이 사건 토지의 시세에 따라 피고 측이 원고 측에게 지급하여야 할 정산금의 액수가 정해지고 그 정산금 지급의무의 변제기가 도래한다는 뜻이라고 새겨야 한다. 즉 피고 측의 원고 측에 대한 정산금 지급의무는 이 사건 토지의 분할과 매매를 정지조건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불확정한 사실의 도래를 변제기로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피고 측의 정산금 지급의무에 붙은 부관인 ‘이 사건 토지의 분할과 매매’는 불확정기한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이 사건 토지를 가분할계획도와 같이 분할하거나 제3자에게 매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음에도, 이 사건 합의 이후 원고가 피고들을 상대로 정산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때까지 약 10년 동안은 물론이고 이 사건 소 제기 이후 원심 변론종결일까지 약 2년 6개월 동안에도 이 사건 토지의 분할과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건 합의에서 정한 불확정기한인 ‘이 사건 토지의 분할과 매매’라는 사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원고 측과 피고 측의 상호 협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분할·매매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이 사건 토지의 소유권을 가진 피고 측에게 귀속된다 할 것인데[이는 이 사건 합의서 (나)항에서 원고 측이 가분할계획도상 2필지를 제3자에게 매도하기로 정하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피고들은 오히려 이 사건 소송에서 실효나 사정변경 등의 법리를 내세워 이 사건 합의의 효력이나 그에 따른 정산금 지급의무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이 현재 이 사건 합의에서 정한 부관을 실현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합의 이후 원고 측과 피고 측이 이 사건 토지를 분할하여 매도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토지의 분할과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위, 현재 피고들의 매도 의사와 매매의 실현 가능성 등을 추가로 심리하여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정산금 지급의무의 변제기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
라.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합의에 따른 정산금 지급의무에 붙은 부관인 ‘이 사건 토지의 매매’는 불확정기한으로서의 성질과 정지조건으로서의 성질을 함께 가진다고 전제한 후,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위 정산금 지급의무의 범위가 특정되었다거나 불확정기한이 도래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정산금 지급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부관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도로개설 방해금지청구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 측이 이 사건 합의에서 원고 측에게 원고 소유의 평택시 (지번 2 생략) 전 883㎡ 중 765/883 지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로개설의 편의를 제공하기로 약정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 측이 원고 측에게 가분할계획도 표시 ⓑ 부분을 특정하여 폭 6m의 통행로를 개설해주는 편의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이 부분 청구를 배척하였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계약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정산금 지급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원고의 나머지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