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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2015. 7. 16. 선고 2013가합521666 판결
[손해배상(기)] 항소[각공2015하,642]
판시사항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갑 등이 국가가 운영 또는 지휘·감독하는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격리수용되어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음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국가는 갑 등이 입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갑 등이 국가가 운영 또는 지휘·감독하는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격리수용되어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음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국가 소속 의사 등이 국가가 주도한 정책에 따라 갑 등에게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한 행위는 국가가 정당한 법률상의 근거 없이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 것이므로, 국가는 갑 등이 입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헌법 제10조 , 제12조 제1항 , 제36조 , 제37조 제2항 , 민법 제751조 , 제756조 , 부칙(1958. 2. 22.) 제2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1조 , 제2조 , 제3조 , 구 전염병예방법(1963. 2. 9. 법률 제127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 제2호 , 제3호 , 제4호 참조), 제4조 제1항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1조 , 제13조 참조), 제6조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1조 , 제13조 참조), 제26조 (현행 삭제), 제29조 제1항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1조 참조), 제34조 (현행 삭제), 제35조 (현행 삭제), 제42조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2조 참조), 제56조 제3호 (현행 삭제), 구 전염병예방법(1976. 12. 31. 법률 제299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9조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1조 참조),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1979. 6. 21. 보건사회부령 제62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6조 (현행 삭제), 구 모자보건법(1986. 5. 10. 법률 제3824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8조 제1항 제2호 (현행 제14조 제1항 제2호 참조), 제9조 (현행 삭제), 구 모자보건법 시행령(1981. 11. 2. 대통령령 제1056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제3항 (현행 제15조 제3항 참조), 제4조 (현행 삭제), 제5조 (현행 삭제)

원고

별지 1 원고 목록 기재와 같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동화 외 4인)

피고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종명)

변론종결

2015. 6. 25.

주문

1. 피고는 별지 2 청구금액 및 인정금액표의 ‘원고’란 기재 각 원고들에게 같은 표 ‘인정금액’란 기재 각 금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2015. 6. 25.부터 2015. 7. 16.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별지 2 청구금액 및 인정금액표의 ‘원고’란 순번 1 내지 117번 기재 각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의 1/5은 위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하고, 위 표의 ‘원고’란 순번 118 내지 139번 기재 각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의 2/5는 위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별지 2 청구금액 및 인정금액표의 ‘원고’란 기재 각 원고들에게 각 5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1945. 8. 16.부터 이 사건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1. 인정 사실

가. 당사자의 지위

원고들은 모두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들로서, 피고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했던 주1) 국립소록도병원, 국립부평성혜원병원, 국립익산병원(소생원) 및 전주 예수병원, 안동 성좌원, 여수 애양원, 밀양 신생원 등(이하 통틀어 ‘국립소록도병원 등’이라고 한다)에 입원했던 사람들이다.

나.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

1) 2007. 10. 17. 법률 제8644호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그 전문은 별지 5 기재와 같다. 이하 ‘한센인사건법’이라고 한다)」이 제정되었고, 한센인사건법 제3조 제1항 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으로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라고 한다)가 설치되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심사·결정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였다.

2) 한센인사건법 제4조 제1항 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의 의결사항을 실행하고, 위원회에서 위임받은 사항을 처리하기 위하여 2009년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실무위원회(이하 ‘실무위원회’라고 한다)가 설치되었다. 실무위원회는 피해자와 유족의 피해신고 접수에 관한 사항, 피해신고에 대한 조사에 관한 집행, 의료지원금 등의 지급에 관한 사항 등을 처리하였다.

3)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들이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격리수용된 기간 동안 피고로부터 강제로 단종, 낙태수술 또는 자궁적출수술을 받았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들을 한센인사건법에서 정한 한센인피해사건의 피해자로 인정하였다. 자세한 내역은 별지 3, 4 기재와 같다.

다. 한센병에 관한 일반적 설명

1) 한센병은 나균(라균, Mycobacterium leprae)에 의해 감염되는 제3군 법정 감염병(전염병)으로, 나병(나병, leprosy)이라고도 한다. 주로 피부에 나타나는 침윤(침윤)·구진(구진)·홍반(홍반)·멍울 등과 지각마비(지각마비)를 가져오거나 말초신경을 주로 침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밖의 부위에 있는 조직에 침범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가라(가라)·풍병(풍병)·대풍라(대풍라)라고 하였고, 치료가 불가능했던 시대에는 문둥병 또는 천형병(천형병)이라고 하였다.

2) 1871년 노르웨이의 의사 A. G. H. 한센이 나환자의 나결절의 조직에서 세균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여, 1874년 ‘Bacillus leprae’라고 명명함으로써 유전병이 아니라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한센이 1873년에 이 병의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나병’이라는 명칭이 차별과 편견이 서려 있다고 하여 최근에는 통상 ‘한센병’이라고 부른다.

3) 한센병은 치료받지 않은 환자에게서 배출된 나균에 오랫동안 접촉한 경우에 발병한다. 그러나 전 세계 인구의 95%는 한센병에 자연 저항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균이 피부 또는 호흡기를 통하여 체내로 들어오더라도 쉽게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특히 1941년 특효약 답손[dapsone, 4,4’ - diamino - diphenyl sulfone (DDS)]이 발명된 이후 완치가 가능한 질병으로 분류되었고, 1948년 쿠바의 하바나에서 개최된 제5차 국제나학회에서 썰폰(sulfone)제인 답손을 한센병 치료제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여 한센병 치료에 커다란 전기가 마련되었다. 1956. 4. 16. 로마회의에서 ‘나환자에 대한 차별적 법률 폐지, 나병에 대한 계몽교육 강화, 나환자 조기 발견·치료, 격리수용주의 시정, 나환자 자녀 보호, 나병치유자 사회 복귀 지원’ 등을 촉구한 ‘나환자의 강제 격리수용을 반대하고 사회 복귀를 결의하는 결의서(이른바 로마선언)’를 채택하였다(이 회의에는 우리나라도 참석하였다). 1970~1980년대부터는 2~3종의 약을 복합적으로 단기간 내에 강력하게 투여하는 MDT(multidrug therapy, 답손, 크로파지민, 리팜피신 등의 약을 병용하여 치료하는 복합화합요법)를 사용하여 한센병의 대부분이 완치되고 있고, 최근에는 나균을 배출하는 환자의 경우도 리팜피신(rifampicin) 600mg을 1회만 복용해도 체내에 있는 나균의 99.99%가 전염력을 상실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한센병 환자 중 극히 일부 환자만이 전염원이 되며, 약제 투여가 시작된 후에는 전염원이 될 수 없다. 한센병이 조기에 발견된 때에는 쉽게 치료할 수 있어 한센병 환자도 일반 피부질환자와 같이 자유로이 생업에 종사하며 진료를 받고 있다. 한센병은 비록 제3군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되었지만, 격리가 필요한 질환이 아니며, 성적인 접촉이나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4) 한센병은 피부과 영역의 질병이면서도 특별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나균은 만성적으로 세대 증식을 하며, 9개월에서 20년에 이르는 긴 잠복기와 장기간의 경과를 가진다. 나균을 시험관에서 인공적으로 배양하는 것이 어려워 나병을 퇴치하기 위한 의학이 더디게 발전하였다. 나균은 신경을 특이하게 침범함으로써 신경손상에 따른 불구를 유발한다.

나) 한센병은 사람에게 특이하게 감염되는 질환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균을 옮길 수 있는데, 피부나 호흡기를 통하여 감염된다. 한센균의 전염 경로는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고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병의 경과나 증세, 치료 등은 인간의 면역과 나균의 상관관계에 따라 좌우되는데, 자연 치유되는 경우에서부터 몸의 일부에 국한되는 경우, 전신에 퍼지는 경우 등 다양하다. 나병은 질병 자체 외에 사회학적·정신과적 질환으로서 사회공동생활의 융화 문제를 안고 있다.

5) 한센병은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후유증 없이 완치될 수 있다. 그러나 조기 치료의 시기를 놓치면 병의 치료 기간도 길어지고, 병의 진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불구가 될 수도 있다. 의학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항나제의 사용, 나반응 치료, 눈이나 손발의 불구 예방치료, 이미 불구가 된 부위의 교정수술이 있다.

가) 항나제로는 프로민, 시바, 디아존 등이 있었으나, 근래에는 답손(DDS), 리팜피신(rifampicin), 람프렌(lamprene), 프로에치오나마이드(proethionamaide) 등을 사용하는데, 종래와 같이 단독요법에 의한 장기치료의 형태가 아니고, 2~3종의 약을 복합적으로 단기간 내에 강력하게 투여하는 MDT 방식의 치료 형태이다.

나) 나반응치료는 직접적인 항나제 사용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반응치료의 성패는 나병 치료의 성패를 가늠하고, 불구의 정도를 결정할 수 있으며, 약제로는 진통제, 스테로이드 호르몬(steroid hormone)제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 등 다양하다.

다) 불구 예방치료에 있어 나균에 의해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1차성 불구는 나병 치료의 효율적인 적용에 따라 좌우되며, 2차성 불구는 환자나 의사의 세심한 관찰과 물리요법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라) 기왕에 불구가 된 얼굴과 손발은 성형술 또는 정형재생술로 교정하며, 이를 통해 사회 복귀를 위하여 외모를 바꾸거나 노동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6) 국내에서는 1947년 DDS 요법의 프로민(주사제) 등이 도입되기 시작하여 1955년에 전국적으로 확대 보급되었다(썰폰제를 사용한 시기에 대하여 다소 논란이 있지만 1953년경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소량 경구투여가 가능한 DDS 요법인 답손의 사용으로 이동 진료와 외래 진료를 통한 재가 치료가 가능해졌고 세균지수가 급격히 감소하여 답손 단독요법으로 한센병이 완치된 경우가 많아 이때부터 완치가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답손은 다소의 부작용과 2.5~6.8%의 내성이 알려졌고, 드물게 재발하는 경우가 있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MDT 요법을 사용한 결과 나균의 99.999%가 멸균되고, 재발률 또한 현저히 낮아져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센병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완치되는 질병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한센병 환자에 대하여 100% MDT 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1999년을 기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하는 한센병 환자에 해당하는 새로운 환자가 1년 동안 21명 발생하고, 치료 중인 전체 한센병 환자는 704명으로, 새로운 환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WHO의 단기치료 방침을 적용하면 완치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기존의 MDT 요법을 마친 등록자들의 경우 모두 환자가 아니라고 판정할 수 있다고 보고되었다. WHO 권고 규정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유병률이 15명 이하일 경우 한센병 퇴치(leprosy elimination) 국가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한센병 퇴치 국가로 분류되었다.

7) 국내 한센인 등록자 수는 1969년 38,229명으로 최대를 기록하였으나, 그 후 점차 감소하여 2004년에는 16,290명이 되었고, 2012년 현재 전체 한센인은 주2) 12,323명 이다. 그중 치료받는 한센병 환자는 255명(2.1%)이고, 나머지는 모두 기존 병력자이다. 연령별로는 70대 이상이 7,521명(61%), 60대가 3,094명(25%), 50대가 1,383명(11.2%), 40대가 277명(2.3%), 30대가 41명(0.3%), 20대 이하가 7명(0.1%)이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신규 발생 환자는 2001년 36명, 2002년 22명, 2003년 17명, 2004년 17명, 2005년 15명, 2006년 15명, 2007년 12명, 2008년 12명, 2009년 5명, 2010년 6명이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7, 11, 12, 16 내지 157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의 주장

가. 원고들의 주장

피고는 한센인사건법에 따라 설치된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결정한 대로 자신이 운영·통제하는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원고들을 격리수용하였고, 그 소속 의사와 간호사 등(이하 ‘피고 소속 의사 등’이라 한다)이 원고들에 대하여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강제로 주3) 단종수술 또는 낙태수술을 시행하였으므로,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피고의 주장

1) 진상규명위원회는 한센인들에 대한 생활지원 등을 목적으로 주로 원고들 본인의 진술이나 전문증거에만 의존하여 조사를 하였는데, 이러한 조사 결과만으로 원고들이 강제로 단종 또는 낙태수술을 받은 피해자라고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2) 원고 28, 원고 30, 원고 31, 원고 32, 원고 33, 원고 36, 원고 37, 원고 38, 원고 40, 원고 42, 원고 43, 원고 44, 원고 47, 원고 48, 원고 49, 원고 50, 원고 51, 원고 52, 원고 54, 원고 55, 원고 56, 원고 57, 원고 58, 원고 59, 원고 60, 원고 127, 원고 128, 원고 130, 원고 131, 원고 132, 원고 133, 원고 138은 여수 애양원에서 낙태수술 또는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여수 애양원은 1956. 8. 21.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단체로서 국가기관이 아니다. 원고 119는 밀양 신생원에서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밀양 신생원은 국가기관이 아니다. 원고 122는 1965년 안동 성좌원에서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안동 성좌원은 당시 국가기관이 아니었다. 원고들이 수술을 집도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소외 1, 소외 2, 소외 3 등인데, 이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위와 같이 원고들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위법한 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3) 피고 소속 의료진들이 원고들에게 단종수술 또는 낙태수술을 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모두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서 강제성이 없었다.

3.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가. 원고들이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는지 여부

1) 인정 사실

가) 원고들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의 피해자 인정

(1) 원고들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진상규명위원회에 피해자신고서 또는 진술서 등을 통하여 낙태 및 단종사실, 폭행사실 등의 피해사실을 신고하였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들을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가)목 에 해당하는 사건 또는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라)목 에 해당하는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하였다.

(2)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은 피해자신고서, 진술서 등에서 낙태 피해사실을 언급하였으나, 실무위원회가 작성한 심사의견서에는 폭행사실(원고 25의 경우), 폭행 및 감금사실(원고 34, 원고 96의 경우), 골수천자기를 사용하여 흉골골수 채취검사를 한 사실(원고 93의 경우, 이를 ‘흉골골수천자 사건’이라 한다)만 피해사실로 기재되어 있다. 원고 1, 원고 4, 원고 8은 최초 피해신고 당시에는 감금, 폭행 등의 피해사실만 신고하였다가, 원고 1은 2013. 2. 20.경, 원고 4, 원고 8은 2013. 4. 29.경 낙태 피해사실을 추가로 신고하였는데, 위 원고들이 추가로 신고한 낙태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심사의견서가 작성되지 않고 중복신고라는 이유로 반려되었다(이하 진상규명위원회의 심사의견서에 의해 낙태·단종 피해사실이 인정되지 않은 원고 1, 원고 4, 원고 8,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을 ‘원고 1 외 6인’이라 한다).

(3) 원고 1 외 6인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이하 ‘원고 2 등’이라 한다)은 모두 실무위원회 작성 심사의견서에 낙태 및 단종 피해사실이 인정되고,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가)목 또는 (라)목 의 피해자로 인정되었다.

나) 피해자 신고와 진상규명위원회의 피해자 결정 경위

(1) 진상규명위원회는 한센법에서 규정한 피해사건인 ① 한센인 격리·폭행사건(1945. 8. 16.부터 1963. 2. 8.까지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 ② 84인 학살사건(1945. 8. 20.을 전후하여 소록도에서 소록도 갱생원 직원에 의한 폭력으로 한센인이 사망, 행방불명 또는 부상을 당한 사건), ③ 오마도 간척사업 사건(1962. 7. 10.부터 1964. 7. 25.까지 봉암반도와 풍양반도를 잇는 간척공사와 관련하여 한센인이 강제노역을 당한 사건) 외에도, 별지 6 기재와 같이 ④ 기간 외 사건(1963. 2. 9. 이후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 ⑤ 사천 비토리 사건, ⑥ 흉골골수천자 사건, ⑦ 양평 양수리 사건, ⑧ 안동어린이 실종 사건, ⑨ 무안 연동 사건, ⑩ 함안 물문리 사건, ⑪ 나주 냇골 사건, ⑫ 부산 일광초등학교 한센인 자녀 취학 반대 사건, ⑬ 의성 금성초등학교 한센인 자녀 취학 반대 사건, ⑭ 부산 용산초등학교 한센인 자녀 취학 반대 사건, ⑮ 김천 이발관 폭행 사건, 본문내 삽입된 이미지 김천 목욕탕 폭행 사건, 본문내 삽입된 이미지 부산 성화원 폭행사건 등 총 17개 사건을 한센인피해사건으로 결정하였다.

(2) 실무위원회는 피해자와 유족의 피해신고 접수에 관한 사항, 피해신고에 대한 조사에 관한 집행, 의료지원금 등의 지급에 관한 사항 등을 처리하였다.

(3) 진상규명위원회와 실무위원회는 2009. 3. 1.부터 2011. 2. 28.까지(1기), 2011. 8. 1.부터 2013. 7. 31.까지(2기) 활동하였다.

(4) 이에 따라 한센인들의 피해신고는 2009. 3.경부터 2013. 4. 말까지 약 10,038건이 접수되었고, 조사요원이 본인 및 보증인을 직접 방문하여 조사 후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위원회에서 심의한 결과 6,462건은 피해자로 인정, 256건은 불인정, 나머지 3,320건은 중복신고 등으로 반려되었다.

(5) 실무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작성된 심사의견서에는 ‘의견’란에 어떤 피해사실이 인정되는지에 관하여 “피해자는 심사 결과 한센인피해사건의 피해자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라는 기재가 있으며, ‘이유’란에 “피해자의 신고 내용, 보증인 보증 내용, 조사관의 면담조사 내용을 종합 검토한 결과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의 (가)목 내지 (라)목 의 피해자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6) 진상규명위원회의 심의 결과 한센인사건법의 피해자로 인정되면, 실무위원회 위원장은 피해자들에게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 결정 통지서’를 작성하여 송부하였다. 위 통지서에는 피해사건명란에 ㉠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가)목 에 해당하는 사건(이른바 한센인 격리·폭행 사건), ㉡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나)목 에 해당하는 사건(이른바 84인 학살사건), ㉢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다)목 에 해당하는 사건(이른바 오마도 간척사업사건), ㉣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라)목 에 해당하는 사건(기간 외 한센인 격리·폭행 사건 등)으로 분류되어 해당 피해사건명에 체크 표시가 되어 있다. 피해결정 내용란에는 체크된 사건명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 회의에서 심의한 결과 ㉠ 내지 ㉣의 피해자로 인정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7) 진상규명위원회는 위와 같이 피해자 결정을 하면서 위 3.가.1)나)(1)의 ①~ 본문내 삽입된 이미지 피해사실 중, 1945. 8. 16.부터 1963. 2. 8.까지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을 위 ㉠ 사건으로, 84인 학살사건을 위 ㉡ 사건으로, 오마도 간척사업사건을 위 ㉢ 사건으로, 1963. 2. 9. 이후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 및 진상규명위원회가 추가 인정한 사건들, 가령 흉골골수천자 사건 등을 위 ㉣ 사건으로 분류하였다. 낙태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으로 분류하여 1963. 2. 8.까지 발생한 낙태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 사건으로, 1963. 2. 9. 이후에 발생한 낙태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 사건으로 각 분류하였다.

다) 피해자 결정과 생활지원금 등 지급

한센인사건법 시행령 제7조 제1항 은 “ 한센인사건법 제9조 에 따라 지급하는 의료지원금은 피해자 중 그 피해로 인하여 계속 치료 또는 상시 보호가 필요하거나 보조장구의 사용이 필요한 사람에 대하여 지급하되, 다음 각 호의 방법에 따라 산정한 금액으로 한다. [이하 생략]”고 정하고 있고, 한센인사건법 시행령 제8조 제1항 은 “ 한센인사건법 제9조 에 따라 지급하는 생활지원금의 지급대상은 부양가족이 없는 사람으로서 근로능력을 상실하여 생활능력이 어렵거나 부양능력이 없어 생활이 어려운 피해자로 한다. 제1항 에 따른 생활지원금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매월 지급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 따라 피해자로 결정된 사람들 중 그 피해로 인해 계속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의료지원금(일시금)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는 매월 15만 원씩 생활지원금이 지급되었다. 생활지원금은 피해사건 내용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지급된다.

라) 임신·출산 금지 등에 대한 기록

일제강점기 이래 피고가 한센인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해 운영한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는 1990년대까지도 공식적인 규칙이나 예규, 정책 등에 의하여 부부가 동거하는 경우 정관수술을 받을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국립소록도병원 운영규정에도 한센인들의 임신·출산 금지 조항이 명기되어 있는 등 국립소록도병원 등 내에서 출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의사 또는 간호사, 한센인 중 일정 정도 의료교육을 받은 의료보조원 등에 의하여 1992년까지 공식적으로 정관절제수술이 이루어진 기록이 있고, 1980년대 후반까지 낙태수술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마) 원고 2 등이 단종 피해사실의 피해자로 인정받은 경우 중 자녀가 있게 된 경위

원고 124, 원고 125, 원고 126, 원고 127, 원고 130, 원고 131, 원고 132, 원고 133, 원고 139의 경우 가족관계등록부상 각 정관수술 시점 이후에 출생한 것으로 기재된 자녀들이 있다. 그러나 원고 124, 원고 125, 원고 126, 원고 127, 원고 130, 원고 131, 원고 132, 원고 133은 이후 복원수술을 받았고, 원고 139는 자녀를 입양한 것이다.

바) 원고 1 외 6인의 피해사실 신고 내용 등

(1) 원고 1, 원고 4, 원고 8은 최초 신고 시에는 감금, 폭행 등의 피해사실만 신고하였고, 그에 따라 피해자 및 보증인에 대한 방문 면담 조사가 실시되었다. 실무위원회 조사 결과 감금, 폭행 등의 피해사실이 인정되었고,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1, 원고 4, 원고 8을 피해자로 결정하였다. 원고 1, 원고 4, 원고 8은 피해자 결정 통지가 있은 후에 추가로 낙태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변호사 소외 4, 소외 5, 소외 6에게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는데, 원고 1, 원고 4, 원고 8의 최초 피해 신고 내용 및 결정 내용, 추가 신고 사실 등 내용은 아래 표 기재와 같다.

본문내 포함된 표
1. 원고 1 최초 피해 신고 내용 1956년 부모님이 그리워 병원을 탈출하려고 하였다는 이유로 소록도병원 직원에 의해 감금실로 끌려가 봉으로 허리를 폭행당함.
심사의견서 내용 신고인과 보증인 면담조사서, 사실조사결과서 등을 종합검토한 결과, 원고 1은 1956년 소록도병원에서 직원에 의해 폭행당한 사실이 확인됨.
피해자 결정 내용 2012. 12. 13.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1을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가)목의 피해자로 인정함.
추가 피해 신고 내용 원고 1은 2013. 2. 20. ‘본인은 소외 7과 사귀다가 임신한 것이 발각되어 1957년경 낙태수술을 강제로 하고, 남편도 강제로 단종수술을 하고 교도과로 끌려가 감금과 폭행도 당하였다’는 내용으로 추가 피해사실을 신고하였고, 낙태사실에 대한 보증인 소외 8, 소외 7의 보증서도 제출함.
변호사 청취 진술 내용 원고 1은 2013. 3. 30. 변호사 소외 4에게 피해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함. 즉 ‘원고 1은 사람들 몰래 소외 7과 결혼을 약속하고 사귀던 중 아이를 임신하였다. 원고 1은 광목천으로 배 부위에 감싸고 임신사실을 숨겼으나, 여자 8~10명이 같이 생활하는 여자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임신사실이 발각되었다. 원고 1은 소록도병원장 소외 9에게 불려가 강제 낙태를 강요받았고, 임신 7개월인 1957. 9.경 소록도 치료 본관에서 소외 1에 의해 낙태수술을 당하였다. 낙태수술의 후유증이 크고 남편 소외 7도 단종수술을 당하여 친자식 없이 생활하였다. 원고 1 부부는 아이 2명을 입양하였으나, 친자식과 달리 입양한 자식들은 자신들을 찾지 않아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임.
2. 원고 4 최초 피해 신고 내용 1963년 소록도국립병원에 강제 격리수용되어 살면서, 감금·폭행 피해를 입었음.
심사의견서 내용 신고인과 보증인 면담조사서, 사실조사결과서 등을 종합검토한 결과, 원고 4는 1963년 소록도에서 감금실 감금 피해를 당한 것으로 확인됨.
피해자 결정 내용 2010. 12. 16.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4를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라)목(기간 외 한센인 격리·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함.
추가 피해 신고 내용 원고 4 및 원고 4의 배우자 소외 10은 2013. 4. 29. ‘본인은 1971. 4.경 국립소록도병원 외과에서 소외 1로부터 강제로 낙태수술을 당하였다’는 내용으로 추가 피해사실을 신고함.
변호사 청취 진술 내용 원고 4는 2013. 11. 9. 변호사 소외 5에게 피해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함. 즉 ‘소록도에 들어가 몇 년 생활하다 주변의 소개로 소외 10을 알게 되어 임신을 했다. 당시 소록도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임신사실을 숨겨오다가 7~8개월 정도 되어 배가 불러오는 바람에 더 이상 임신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그때는 낙태를 할 시기가 이미 지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낙태를 할 수 없었고, 1971. 4.경 소록도병원 외과수술실에서 소외 1이 개복수술을 하여 태아를 꺼냈다. 그때 피를 많이 흘려 주변에서 죽는다고 할 정도였다.’는 것임.
3. 원고 8 최초 피해 신고 내용 소록도병원 감금실에서 감금·폭행을 당했음.
심사의견서 내용 신고인과 보증인 면담조사서, 사실조사결과서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원고 8은 1960년 소록도에서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발과 쇠좆매 등으로 폭행당한 사실이 확인됨.
피해자 결정 내용 2012. 12. 13.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8을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가)목의 피해자로 인정함.
추가 피해 신고 내용 원고 8은 2013. 4. 29. ‘본인은 1959년경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임신사실이 드러나자, 의사 소외 1에게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았다’라는 내용으로 추가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낙태사실에 대한 보증인 소외 11, 소외 12의 보증서도 제출함.
변호사 청취 진술 내용 원고 8은 2013. 12. 21. 변호사 소외 6에게 피해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함. 즉 ‘22살 무렵 같은 환자인 소외 13과 약혼을 했는데, 몰래 만나기만 하다가 23살에 아이가 생겼다. 낙태하지 않으려고 임신을 숨겼으나, 병원에서 알고 낙태를 하라고 했다. 원고 8이 나가서 아이를 낳겠다고 했으나, 퇴원시켜주지 않아서 나갈 수 없었다. 23살이던 1966. 5. 15.경 수술실에서 소외 1 의사와 의학강습소 출신인 소외 14가 소파수술을 했다. 당시 임신 5개월 때였는데, 마취도 하지 않고 수술을 받아 많이 아팠다. 남편도 이후 단종수술을 받아 친자식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광주에 나가서 살 때 딸을 입양했다.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당시에는 낙태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아서 진술하지 못했다.’는 것임.

(2) 진상규명위원회와 실무위원회는 원고 1, 원고 4, 원고 8이 추가로 신고한 낙태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별도로 조사하거나 심사의견서를 작성하지 않고, 동일한 항목으로 재신고를 하였으므로 중복신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추가 신고를 반려하였다.

(3)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은 피해신고 당시 또는 조사과정에서 낙태 피해사실을 언급하였으나, 심사의견서에는 낙태 외 피해사실만이 기재되어 있다.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의 피해 신고 내용, 심사의견서 내용, 피해자 결정 내용 등은 아래 표 기재와 같다.

본문내 포함된 표
1. 원고 25 피해 신고 내용 17살 때 발병되어 집에서 숨어서 1년을 살다가 18살 때 익산국립소생병원에 입원, 격리 치료하는 중 임신이 되었음. 그곳에서 살기 위해 낙태를 하였음.
면담 조사 내용 원고 25는 낙태 피해사실에 대하여 진술함. 조사관이 추가 피해사실을 묻자, 원고 25는 폭행사실을 진술함.
심사의견서 내용 신고인과 보증인 면담조사서, 사실조사결과서 등을 종합검토한 결과, 피해자는 1958년경 익산 소생원에서 폭행을 당한 사실이 확인됨.
피해자 결정 내용 2012. 6. 27.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25를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가)목의 피해자로 인정함.
변호사 청취 진술 내용 원고 25는 2013. 8. 24. 변호사 소외 15에게 피해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함. 즉 ‘원고 25는 익산 국립소생병원에서 거주하다가 같은 한센인인 소외 16을 알게 되었다. 소외 16과 사이에 임신이 되었는데, 임신사실이 알려지자 병원 측에서는 국립소생병원에서 계속 거주하려면 낙태수술을 하여야 한다고 하고, 소외 16은 정관수술을 하라고 강요하였다. 원고 25는 당시 돌아갈 곳이 없어서 낙태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61년 봄 소생원 의무실에서 소외 17 원장으로부터 낙태수술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소외 16은 정관수술을 강요당하자 임의로 퇴소하여 도주하였다. 원고 25는 소외 16이 도망가는 바람에 병원으로부터 구타를 당하였다. 그 후 1962년 다시 임신하게 되어 신암농원으로 도망을 나와 소외 16과 함께 가정을 꾸렸다.’는 것임.
2. 원고 34 피해 신고 내용 20세에 발병하여 애양원에서 7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소외 18과 결혼 전 임신을 하여 강제 낙태수술을 하면서 병이 악화되었음. 낙태사실에 대한 소외 19, 소외 20의 보증서가 제출되었음.
면담 조사 내용 조사관이 피해사실을 묻자, 원고 34는 1957년 여수 애양원 입소 후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도부로 불려가 폭행당하였고, 감금실에 일주일 감금당하였다고 진술함.
심사의견서 내용 신고인과 보증인 면담조사서, 사실조사결과서 등을 종합검토한 결과, 원고 34는 1957년 여수 애양원에서 폭행 및 감금을 당한 사실이 확인됨.
피해자 결정 내용 2012. 12. 13.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34를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가)목의 피해자로 인정함.
변호사 청취 진술 내용 원고 34는 2013. 10. 26. 변호사 소외 21에게 피해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함. 즉 ‘원고 34는 24살 무렵 10살이 많은 소외 22를 소개받아 결혼하였다. 원고 34가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자 병원에서는 아이를 낳으려면 병원을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병원 밖으로 나가면 살길이 막막하여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병원 의료실에서 소외 23 의사로부터 낙태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한동안 하혈을 많이 하였고, 허리도 아팠다. 낙태수술을 받은 후 남편도 단종수술을 받아 자식이 없었다. 딸 2명을 입양하였다.’는 것임.
3. 원고 93 피해 신고 내용 1943년 소록도 신생리 여자부에 입원함. 1952년 여름 22살 때 나병을 치료한다고 천자흉골 가슴에 골수를 빼내어 지금도 앞가슴 통증이 있음. 1967년 봄 임신하였으나, 한센환자는 아기를 낳으면 안 된다고, 임신 4개월 무렵에 강제로 낙태수술을 당했음. 흉골골수천자 피해사실 및 낙태 피해사실에 대한 보증인 소외 24, 소외 25의 보증서도 제출함.
면담 조사 내용 원고 93의 자녀 소외 26은 조사관에게 원고 93의 흉골골수천자 피해사실 및 낙태 피해사실을 진술함.
심사의견서 내용 신고인과 보증인 면담조사서, 사실조사결과서 등을 종합검토한 결과, 원고 93은 1953년 의료부 직원에게 흉골골수천자를 당한 사실이 확인됨.
피해자 결정 내용 2013. 3. 28.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93을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라)목(흉골골수천자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함.
변호사 청취 진술 내용 원고 93은 변호사 소외 15에게 피해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함. 즉 ‘원고 93은 소록도에서 소외 27을 만나 임신을 하게 되었다. 1957. 8.경 낙태수술을 강제로 당했다. 당시 낙태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울면서 사정했지만, 소록도병원 측에서는 병원 방침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수술 당시 임신 4개월이었고, 낙태 후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남편도 단종수술을 당하였다. 1973년 남편 소외 27과 익산 농장으로 같이 왔고, 남편이 복원 수술을 받아 아들 소외 26을 출산했다.’는 것임.
4. 원고 96 피해 신고 내용 1965년 소생원에 와 강제노역을 당했음.
면담 조사 내용 원고 96은 조사관에게 강제노역을 당한 사실과 일이 서툴러 폭행 및 감금당한 사실을 진술함. 조사관이 원고 96에게 그 밖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1968년경 결혼하여 임신을 하자 직원이 병원에 데리고 가 강제낙태수술을 시켰다고 진술함.
심사의견서 내용 신고인과 보증인 면담조사서, 사실조사결과서 등을 종합검토한 결과, 피해자는 1965년 국립익산병원에서 직원에게 폭행과 감금을 당한 사실이 확인됨.
피해자 결정 내용 2012 6. 27.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96을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라)목(기간 외 한센인 격리·폭행사건)의 피해자로 인정함.
변호사 청취 진술 내용 원고 96은 2014. 4. 26. 변호사 소외 21에게 피해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함. 즉 ‘원고 96은 남편과 교제 중 임신을 하였는데, 임신 3개월 정도에 주변에 알려져 병원의 소외 17 원장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불러 의무실에 갔더니 소외 17 원장이 소외 28, 소외 3 의사에게 임신 여부를 검사하게 하였고,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자 소외 17 원장은 낙태를 하지 않으면 내쫓는다고 하였다. 원고 96은 쫓겨나면 어디 가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낙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실에 누워 마취주사를 맞았고, 소외 28, 소외 3 의사가 소파수술을 하였다. 당시 처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하혈을 많이 하여 윗집에 살던 소외 29, 소외 30이 돌봐 주었다. 며칠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남편도 단종수술을 받았다.’는 것임.

사) 이 사건 소 제기 이후 일부 원고들의 소 취하 내용

이 사건 소 제기 당시 낙태·단종 피해사실을 주장하던 원고들은 223명이었다. 그 후 한센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책임을 묻는 관련 사건에서 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하여 단종 또는 낙태 외 피해사실만 인정된 원고들에 대한 청구가 기각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2. 12. 선고 2011가합108342 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29. 선고 2012가합501276 판결 ). 이에 따라 이 사건에서 낙태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원고들 59명 및 단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25명, 총 84명이 2015. 4. 8. 이 사건 소를 취하하여 이 사건 원고들의 수는 179명이 되었다.

[인정 근거] 갑 제1 내지 5, 18 내지 157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원고 139 본인신문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판단

가) 피해사실의 존부에 관한 판단 기준과 방법

한센인사건법은 2007. 10. 17. 한센인피해사건에 관한 진상을 파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함으로써 이들의 인권신장 및 생활안정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제1조 ). 그에 따라 설치된 ‘진상규명위원회’는 이러한 목적으로 같은 법 제2조 제3호 에 해당하는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법에 따른 피해자의 심사·결정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로서 한센인 대표를 포함한 20인 이내의 위원들로 구성되었다( 제3조 ).

한센인사건법에서 정한 피해사건 진상조사와 피해자의 심사·결정은 그 목적과 절차에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과는 다르다. 따라서 진상규명위원회의 피해자 결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대상자가 모두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라는 사실이 확정된 것이라거나 그로 인한 국가의 불법행위책임이 반드시 인정되어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국가배상책임을 구하는 민사소송에서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에 관하여 그 인정 근거의 신빙성 등을 심사하거나 새로운 증거를 조사하여 그 결정과는 달리 사실인정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보고서나 사실조사결과서 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고, 대상 사건 및 시대 상황의 전체적인 흐름과 사건의 개괄적 내용을 정리한 부분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보고서나 조사관이 조사 내용을 요약한 심사의견서 또는 사실조사결과서의 내용만으로 사실의 존부를 판단할 것은 아니고, 그 밖에 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된 참고인 등의 진술 내용이나 관련 서류 등의 원시자료를 개별적으로 검토하고, 소송과정에서 제출된 추가 증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에 대한 판단

(1) 원고 2 등의 경우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 2 등이 1947년부터 1973년까지 사이에 별지 3 목록 ‘낙태시기’란 또는 별지 4 목록 ‘단종시기’란 기재 각 시점 무렵에 피고가 운영·통제하는 별지 3 목록 및 별지 4 목록의 각 ‘피해장소’란 기재 각 병원에서 그 소속 의사나 간호사 또는 의료보조원 등으로부터 임신중절수술 또는 정관절제수술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가) 실무위원회 위원장이 원고 2 등에게 보낸 피해자 결정 통지서, 실무위원회 위원장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에게 제출한 심사의견서, 실무위원회 조사관이 작성한 사실조사결과서의 각 기재는 모두 진상규명위원회의 공식적인 문서로서 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된 기초자료를 면밀히 검토하여 심의·의결을 거친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민사소송에서도 유력한 증거자료가 된다.

(나) 실무위원회 조사관이 원고 2 등과 그 보증인들에 대하여 문답한 내용을 기재한 각 면담조사서와 원고 2 등이 실무위원회에 작성·제출한 피해자신고서, 본인진술서, 보증인이 작성·제출한 피해사실 확인보증서, 원고 2 등의 소송대리인이 위 원고들의 진술을 청취하여 기재한 진술서의 각 기재는 원고 2 등이 스스로 진술한 것이거나, 원고 2 등과 부부관계 또는 이웃이나 친지인 사람들이 주로 원고 2 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진술한 것이다. 그러나 원고 2 등의 진술은 모두 자신들의 인생에서 결코 잊기 어려운 경험을 이야기한 것으로서, 각자의 진술들이 대체로 구체적이고 그 경위에 관한 설명도 설득력이 있으며,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모두 몸에 흔적이 남는 것으로서 그 수술을 받았다는 점 자체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또한 보증인의 진술들 역시 오래전에 원고 2 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전한 것으로 보일 뿐 진상조사나 소송 등을 염두에 두고 원고 2 등과 말을 맞추어 진술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사실을 내용으로 하는 것도 적지 않아 신빙성이 있다. 비록 원고 2 등이나 보증인들의 각각의 진술 내용 중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의 시기와 그에 이르게 된 경위 등 세부적인 내용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원고 2 등과 보증인들은 모두 고령이고 대체로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사람들로서, 수십 년 전인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일어난 사실을 기억해 진술한 점을 감안하면, 위와 같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들의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다. 적어도 원고 2 등이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관해서는 모순되거나 거짓 진술을 한다고 볼 만한 정황을 찾기 어렵다.

(다) 또한 원고 2 등에 대한 나병력자관리카드, 항나제 투약상황, 수술일지, 정관수술명단, 병상기록카드 등은 원고 2 등의 국립소록도병원 등 입소시기, 발병연월, 치료경력, 수술일자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모두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과 원고 2 등 및 보증인들의 진술들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것인데, 그 기재 내용이 원고 2 등 및 보증인들의 진술들과 부합하고, 구체적인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 2 등이 주장하는 시기에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는 사실과 모순된다고 볼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

(라) 일제강점기 이래 피고가 한센인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해 운영한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1990년대까지도 부부가 동거하는 경우 정관수술을 받을 것을 원칙으로 하였고,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출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의사 또는 간호사, 한센인 중 일정 정도 의료교육을 받은 의료보조원 등에 의하여 1992년까지 공식적으로 정관절제수술이 이루어진 기록이 있고, 1980년대 후반까지 낙태수술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마) 한편 원고 124, 원고 125, 원고 126, 원고 127, 원고 130, 원고 131, 원고 132, 원고 133, 원고 139의 경우 가족관계등록부상 각 정관수술 시점 이후에 출생한 것으로 기재된 자녀들이 있다. 그러나 위 원고들은 복원수술을 받았거나 자녀를 입양하였다.

(2) 원고 1 외 6인의 경우

원고 1 외 6인에 대해서는 낙태 피해사실에 대한 심사의견서가 작성되지 않았다. 위 3.가.1)사)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소 제기 당시 원고들이 223명이었으나,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낙태·단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원고들 91명 중 84명이 이 사건 소가 계속 중이던 2015. 4. 8. 이 사건 소를 취하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하여 낙태 피해사실이 인정되지 못했는데도 원고로 남아있는 사람은 위 원고들 7명이다.

그러나 위에서 든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원고 1 외 6인이 별지 3 목록 ‘낙태시기’란 기재 각 시점 무렵에 피고가 운영·통제하는 각 ‘피해장소’란 기재 병원에서 그 소속 의사나 간호사 또는 의료보조원 등으로부터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단지 원고 1 외 6인에 대해 작성된 심사의견서 내용에 낙태 피해사실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낙태 외 피해사실로 피해자 결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 볼 것은 아니다.

(가) 진상규명위원회는 1945. 8. 16.부터 1963. 2. 8.까지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을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가)목 에 해당하는 사건(이른바 한센인 격리·폭행 사건)으로, 1963. 2. 9. 이후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 및 진상규명위원회가 추가로 인정한 흉골골수천자 사건 등을 한센인사건법 제2조 제3호 (라)목 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분류하였다. 낙태 피해사실은 별도로 분류되지 않고,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경우’에 포함되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 피해사실과 폭행·감금 또는 흉골골수천자 등의 피해사실이 함께 언급되어 있는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에 대한 심사의견서에서 별도로 낙태 피해사실 인정 여부에 대해서 기재하지 않고 폭행·감금 등 다른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피해자로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밖에 위 실무위원회 조사 당시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이 신고한 낙태 피해사실에 대해서 증거 불충분 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

(나) 원고 1 외 6인이 낙태 피해사실에 대해서 진술한 내용도 원고 2 등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모두 자신들의 인생에서 결코 잊기 어려운 경험을 말한 것으로서, 각자의 진술들이 매우 구체적이고 그 경위에 관한 설명 또한 설득력이 있다. 임신중절수술은 몸에 흔적이 남는 것으로서 수술을 받았다는 점 자체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원고 1, 원고 8, 원고 34, 원고 93의 보증인의 진술들 역시 오래전에 원고 1, 원고 8, 원고 34, 원고 93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전한 것으로 보일 뿐, 원고 1, 원고 8, 원고 34, 원고 93과 말을 맞추어 진술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 또한 원고 1 외 6인에 대한 나병력자관리카드, 항나제 투약상황, 병상기록카드 등은 원고 1 외 6인의 국립소록도병원 등 입소시기, 발병연월, 치료경력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그 기재 내용이 원고 1 외 6인 및 보증인들의 진술들과 부합하고, 구체적인 내용에 약간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 1 외 6인이 주장하는 시기에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는 사실과 모순된다고 볼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

(라) 원고 1, 원고 4, 원고 8이 최초 피해사실을 신고할 당시에는 낙태 피해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피해자 신고서 양식에는 낙태 피해사실을 별도의 피해사건으로 분류하고 있지 않고, 조사관이 낙태 여부에 대해서 별도로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낙태 피해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 1, 원고 4, 원고 8이 추가로 신고한 낙태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추가로 조사를 하지 않고 중복신고로 보고 반려하였다. 이는 원고 1, 원고 4, 원고 8이 이미 한센인사건법 제3조 제2항 제2호 에 의하여 피해자로 결정을 받았고, 낙태 피해사실이 추가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등 지원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가로 결정할 실익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국립소록도병원 운영규정에는 한센인들의 임신·출산금지 조항이 명기되어 있는 등 국립소록도병원 등 내에서 출산이 금지되어 있었고, 1980년대 후반까지도 낙태수술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나. 피고 소속 의사 등이 원고들에게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한 것이 위법한지 여부

1) 헌법과 법률상의 근거

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0조 주4) ). 그리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헌법 제12조 제1항 주5) ), 신체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와 더불어 헌법이념의 핵심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유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조건이다( 헌법재판소 1992. 4. 14. 선고 90헌마82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신체의 자유의 일부로 이해되는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는 그 성질상 생명권과 더불어 인간생존의 기본적 권리이며, 이는 신체의 자유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하고,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할 의무가 있으며,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헌법 제36조 주6) ). 다만 헌법 제37조 제2항 에 의하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주7) 있으나, 이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주8) 없다.

나아가 환자의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진료행위를 하는 경우에 의사는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진료행위를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그 진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법원 1994. 4. 15. 선고 92다25885 판결 ,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48443 판결 등 참조). 환자가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수술을 하는 경우 환자의 동의는 헌법 제10조 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서 환자는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진료행위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14. 6. 26. 선고 2009도14407 판결 등 참조).

나) 원고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위와 같은 헌법상의 권리를 단지 한센병을 앓았거나 앓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가 법률상의 정당한 근거 없이 침해할 수 없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 사건의 단종·낙태 행위가 있었던 1947년부터 1973년까지 26년 동안 시행된 법률 가운데 전염병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한센인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일정 정도 제한할 수 있는 법률로 구 전염병예방법구 모자보건법이 있었으므로, 과연 이 법률들에 근거하여 한센인들을 상대로 정관절제수술을 하거나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1954. 2. 2. 제정된 구 전염병예방법(법률 제308호, 1957. 2. 28. 시행)에서는 ‘나병’을 비교적 전염력이 낮은 제3종 전염병으로 분류( 제2조 제1항 주9) ) 하면서도, 제3종 전염병 중에서 ‘나병’에 관해서만 환자발견·시체검안·전귀(퇴원, 치료, 사망, 주소변경 포함) 시 신고의무( 제4조 제1항 , 제6조 ), 격리수용되어 치료받을 의무 및 탈출의 금지( 제29조 제1항 주10) , 제56조 제3호 ), 시체 이동 금지 및 화장의무( 제34조 , 제35조 ), 강제처분(거택, 선박 등의 장소 내에서의 조사·진찰, 동행 치료 또는 격리, 제42조 )의 대상으로 정함으로써 한센병 환자의 기본권을 상당 부분 제한하였다. 그러나 위 규정 중에서 어느 것도 한센병 환자에게 그 의사에 반하여 정관절제수술을 하거나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만한 것은 없다.

구 전염병예방법 제26조 에서 “제3종 전염병 요양소장은 주무부장관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입원환자의 질서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였는데, 이는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내부 규정을 정하고 제3종 전염병 요양소장의 재량에 따라 입원자 등에게 이른바 ‘징계검속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입원환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관절제수술을 하거나 임신중절수술을 하는 것은 위 ‘질서유지에 필요한 조치’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수술은 기본권 제한에 관한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 어느 측면에서 보더라도 허용될 수 없다.

더구나 구 전염병예방법은 1963. 2. 9. 개정(법률 제1274호, 1963. 3. 12. 시행)되면서, 위 규정 중 환자발견·시체검안·전귀(퇴원, 치료, 사망, 주소변경 포함) 시 신고의무( 제4조 제1항 , 제6조 ), 시체 이동 금지 및 화장의무( 제34조 , 제35조 ), 강제처분(거택, 선박 등의 장소 내에서의 조사·진찰, 동행 치료 또는 격리, 제42조 )의 경우 ‘나병’이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강제 격리 규정은 “제3종 전염병 환자 중 주무부령으로 정하는 자는 격리수용되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 외의 전염병 환자는 자가에서 격리치료를 할 수 있다.”( 제29조 제2 , 3항 )라고 주11) 완화되었다. 비록 구 전염병예방법 제26조 에서 정한 요양소장의 질서유지조치권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마찬가지로 1963. 2. 9. 개정된 구 전염병예방법에서도 국가가 한센병 환자에 대하여 그 의사에 반하여 정관절제수술 또는 낙태수술을 할 적법한 근거가 없다.

(2) 1973. 2. 8. 제정된 구 모자보건법(법률 제2514호, 1973. 5. 10. 시행 주12) ) 에서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 의사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제8조 제1항 제2호 ), 의사가 환자를 진단한 결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질환에 이환된 것을 확인하고 그 질환의 유전 또는 전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자에 대하여 불임수술을 행하는 것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건사회부장관에게 불임수술대상자의 발견을 보고하여야 하며, 그 보고를 받은 보건사회부장관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환자에게 불임수술을 받도록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1973. 5. 28. 제정된 구 모자보건법 시행령(대통령령 제6713호)에서는 그 전염성질환을 전염병예방법 제2조 제1항 에 규정된 전염병을 말한다고 하여( 제3조 제3항 , 제4조 제1항 ) 위 인공임신중절수술 및 불임수술의 대상 질환에 한센병을 비롯하여 제1종 내지 제3종 전염병까지를 모두 포함시켰다.

이러한 구 모자보건법같은 법 시행령의 규정에 의하면, 한센병과 같은 전염성질환에 이환된 사람의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지만 반드시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불임수술의 경우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도 할 수 있지만, 반드시 의사의 보고 및 가족계획심의위원회의 심의( 시행령 제4조 제4항 )를 거쳐 보건사회부장관의 명령에 의하여야 하고, 그 시행도 소정의 자격을 갖춘 의사에 의하도록 되어 있다( 시행령 제5조 주13) ).

다) 따라서 국립소록도병원 등 소속 의사 등에 의하여 원고들에 대하여 행해진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은 오로지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한하여 적법성을 가질 수 있다.

(1)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동의나 승낙이 있는 경우

(가) 정관절제수술의 경우, 국민 개개인이 자유로운 의사로 피임을 위하여 자신의 정관을 절제하는 것은 신체와 성 및 가족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서 설령 공무원이 이에 가공하거나 장려하였다고 하더라도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

(나) 임신중절수술의 경우, 1973년 이후에 본인 및 배우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모자보건법상 전염성질환 예방 취지에서 위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위 시점 이전에는 설령 본인의 동의가 있다고 할지라도 낙태는 그 자체가 형법 주14) 범죄 이므로 공무원 역시 이에 가공하거나 장려하였다면 정범이나 교사 또는 방조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 다만 본인의 자발적인 동의가 있었다면 신의칙상 국가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주장하여 손해배상을 구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2) 본인의 동의나 승낙이 없는 경우

(가) 정관절제수술의 경우, 1973년부터 1999년까지 사이에 본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구 모자보건법에서 정해진 절차를 거쳐 보건사회부장관의 불임수술 명령이 있고 위 장관이 지정한 의사에 의하여 시행된 경우 적법할 수 있다.

(나) 임신중절수술의 경우, 어느 시점이든 어떠한 경우이든 본인의 동의나 승낙 없이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는 없다.

라) 피고 소속 의사 등이 원고들에게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한 것은, 원고들이 스스로 동의하거나 승낙하여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이 이루어졌거나, 정관절제수술이 구 모자보건법에 정해진 불임수술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경우가 아닌 한, 위법한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2) 인정 사실

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16. 2. 24.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하여 나병 환자를 격리수용하기 위한 시설 설립을 추진하여 1916. 5. 17. 소록도에 ‘자혜의원’(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을 설치하면서 한센병 환자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시작되었다.

나)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단종수술은 1915년 일본에서 전염병 예방과 우생학적 이유를 내세워 최초로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5년 여수 애양원에서 먼저 실시된 이후, 국립소록도병원에서는 1936년 기존에 남녀 별거제를 엄격히 실시하던 방침을 바꾸어 부부 동거제를 허용하면서 ‘단종법’을 실시할 것을 조건으로 공식적으로 주15) 도입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용 환자들에 대한 징계의 일환으로 폭행, 협박, 감금과 함께 단종수술을 시행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정책은 해방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어 1960년대 초반까지도 강제로 단종수술을 한 경우가 있었다.

다) 국립소록도병원에서는 해방 후 미군정 기간으로서 소외 32 원장이 재임하던 1945년부터 1947년 말까지 단종수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후 소외 33 원장이 취임한 다음 1949. 5. 6.경 25개 항의 ‘요양소 수용환자 준수사항’을 제정하여 “남환자와 여환자를 엄격히 구분하여 수용하고, 부부생활을 희망하는 자는 당사자 승낙하에 거세수술자에 한하여 인정하며, 이를 위반하는 자는 처벌한다.”라는 주16) 규정 을 두고, 그 무렵부터 다시 정관절제수술을 시행하여 수술을 받은 자에 한하여 부부가 동거할 방 또는 공간(부부사)을 제공하였다.

라) 1954. 2. 2. 제정된 구 전염병예방법에서는 한센병 환자를 비교적 전염력이 낮은 제3종 전염병으로 분류하면서도 제1, 2종 전염병과 동일하게 강제 격리를 할 수 있게 하는 규정 등을 두었고, 요양소장에게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한을 부여하였다. 구 전염병예방법이 1963. 2. 9. 개정되면서 강제 격리 규정 등이 완화되어 주무부령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격리수용하는 것으로 완화되었으나, 한센병 환자는 주무부령인 구 전염병예방법 주17) 시행규칙 등에서 규정한 ‘자가치료를 함으로써 타인에게 전염시킬 우려가 있는 자’ 또는 ‘부랑·걸식 등으로 타인에게 전염시킬 우려가 있는 자’로 분류될 여지를 남기고, 실제로는 여전히 격리수용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센병 환자에 대하여 강제 격리를 할 수 있는 법령상 근거는 2006. 1. 17. 개정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보건사회부령 제345호)에서 한센병 환자를 제3군 전염병 격리수용환자의 범위에서 제외함으로써 완전히 폐지되었다.

마) 1963. 2. 9. 전염병예방법이 개정된 후 보건사회부에서는 1964. 9. 16. 그 후속조치로 나관리사업의 효율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주18) ‘나병관리협의회’ 를 개최하고, 한센병 환자들에 대하여 ‘임신 가능한 자에 대해서는 단종수술을 적극 장려하여 가족계획에 완벽을 기할 것’, ‘임신 가능한 자를 항상 조사, 파악하여 출산을 최대한 억제토록 할 것’ 등의 주19) 지시사항 을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5개 국립병원장은 정관수술 후 동거허가제를 기존 방침대로 강력히 추진하고, 젊은 부녀자에 대하여 매월 정기적으로 임신 여부에 대하여 의사와 간호사의 검진을 받도록 하였다. 입원 중 병원 내에서의 출산은 금지되었고, 통상 임신한 환자가 출산을 원할 경우 퇴원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퇴원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출산하였을 경우에는 분만 즉시 신생아를 부모로부터 격리하여 영아원에서 양육하였다.

바) 1977. 7. 6. 보건사회부 예규 제378호로 개정된 ‘국립나병원 운영규정’ 제5조 제1항은 “나병원에 수용된 자는 나병원 내에서 출산할 수 없다. 임신 후 출산을 원하는 자는 퇴원하여야 하며, 출산 후에는 재입원을 금한다.”라고 정하고 있었다. 또한 1988. 12. 15. 보건사회부 훈령 제556호로 개정된 ‘국립소록도병원 운영규정’ 제5조 제1항에서도 “국립소록도병원에 수용된 자는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출산할 수 없다. 출산을 원하는 자는 임신한 날로부터 28주 이내에 퇴원하여야 한다.”라고 정하여 한센인들의 출입 제한과 임신·출산금지 조항을 그대로 명시하고 있었다. 위와 같은 출산금지조항은 2002. 10. 24.에 이르러서야 국립소록도병원 운영세칙에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사) 국립소록도병원의 연보에는 광복 이후 1949년부터 1967년까지의 정관절제수술 통계기록이 존재하고, 1975년부터 1992년까지의 정관절제수술자 명단이 기재되어 있는 등 1949년부터 1992년까지 정관절제수술을 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1952년부터 1990년까지의 연보에는 계속하여 ‘부부동거’ 항목이 나오는데, 대부분 부부동거를 음성환자에 한하여 허용하고, 정관절제수술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일제히 실시하도록 권장하고 주20) 있다. 임신중절수술은 각 병원이나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자료 등에는 나오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이래 1980년대 후반까지도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공공연하게 주21) 이루어졌다.

아) 국가가 직접 운영하였던 한센병 관련 병원 또는 요양소는 국립소록도병원, 국립익산병원(소생원), 국립칠곡병원(애생원), 국립부평병원(성계원), 국립용호병원(상애원)이고, 각 병원별로 국립병원이었던 기간은 다음과 같다.

본문내 포함된 표
병원 국립병원이었던 기간
국립소록도병원(갱생원) 1949. 5. 6.~현재
국립익산병원(소생원) 1951. 10. 20.~1968. 12. 28.
국립칠곡병원(애생원) 1951. 10. 20.~1969. 12. 15.
국립부평병원(성계원) 1951 10. 20.~1968. 12. 20.
국립용호병원(상애원) 1961. 1. 1.~1975. 3. 31.

[인정 근거] 갑 제2 내지 7, 16 내지 18호증, 을 제5, 8, 9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3) 판단

가) 위와 같이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입소한 한센인들에 대하여 피고 소속 의사 등에 의하여 적어도 1992년까지는 정관절제수술이 이루어졌고, 1980년대 후반까지는 임신중절수술이 이루어졌는데, 일제강점기 이래 해방 후에도 1960년대 초반까지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 개별적인 원고들에 대하여 강제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대한 증거는 모두 원고들의 본인 진술, 이를 바탕으로 한 보증인들의 진술과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만이 있을 뿐이어서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고, 달리 그 강제성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따라서 피고 측에서 원고들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하였다고 쉽게 인정하기는 어렵다.

다) 그러나 설령 원고들이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동의·승낙하여 피고 소속 의사 등이 이를 시행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원고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이 사건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그러한 동의나 승낙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1) 1873년 한센균이 발견된 이래 이미 1900년대 초반에 한센병은 유전병이 아니라 전염병이라는 것이 보편적으로 알려졌고, 국내에 DDS 치료기법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1950년대 초반부터 한센병은 완치가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여 1960년대부터는 대부분의 환자가 완치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1950년대 이전부터 한센병에 관한 각종 국제회의에서는 한센인들에 대한 강제 격리 정책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피고도 1954년 이미 전염병예방법을 제정하면서 한센병을 비교적 전염력이 낮은 제3종 전염병으로 분류하였다. 그런데도 같은 제3종 전염병인 결핵이나 성병 등과는 달리 유독 한센병에 대해서만 강제 격리 정책을 유지하였다. 이는 한센병이 다른 전염병과 달리 외모에 변형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일 뿐, 적어도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센병이 강제 격리 정책을 유지할 정도의 특별한 질환이 아니었다.

(2) 한센병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발병하고, 한센병 환자들의 교육수준은 매우 낮아 대부분 무학이나 초등학교 졸업자이고, 직업도 대부분 무직이나 농업, 수산업 종사자들이었다. 따라서 한센인들이 스스로 한센병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거나 진지하게 인권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사실상 없었고, 이러한 정보나 교육은 대부분 수용시설에서 피고에 의하여 제공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피고는 한센인들에게 막연히 한센병은 치유된다고 교육하면서 엄격하게 격리하는 정책을 시행하였고, 1963년 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하여 일단 법률상으로는 강제 격리 정책을 폐기하면서도 그 시행규칙 등에 격리 대상 질환을 위임하여 여전히 격리할 여지를 남기고, 1970년대까지 실제로는 격리 정책을 유지하였다. 이로 인하여 한센인 스스로도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한 질환으로서 특히 자식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인식하고, 심지어는 유전되기도 하는 질환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격리 정책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한센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었음과 동시에 한센인들에게는 열등감과 외부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3) 피고는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남녀를 엄격히 구분하여 수용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1949년부터 종전 일제강점기에 시행하던 것과 같이 정관절제수술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부부동거를 허용하였는데, 음성환자에 한하여 정관절제수술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부부사를 제공하는 정책은 1990년대까지도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부부동거를 원하는 남성은 사실상 정관절제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병원 내에서 한센인의 임신과 출산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정책도 1990년대까지 유지되어 여성이 임신하는 경우 일단 병원의 규율을 위반한 것으로 취급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굳이 출산을 원한다면 퇴소를 하여야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수용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직업을 선택할 자유도 없었던 한센인들로서는 갑작스럽게 부부가 함께 퇴소하여 정착촌이나 일반 사회로 진출하기에는 자립능력이 부족했고, 여러 가지 편견과 차별이 상존하는 외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큰 데다 기존의 생활 터전을 잃는다는 상실감도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퇴소를 선택하기는 힘들었고, 퇴소를 원하지 않는 임신 여성은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이러한 현실에서 설령 원고들이 결혼하기 위해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는 것을 원하거나 승낙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의사에 따라 동의 또는 승낙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즉 피고가 정관절제수술을 조건으로 부부동거를 허용하고, 임신에 대하여 비난을 가하면서 퇴소당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신중절수술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원고들로서는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위와 같은 조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원고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서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서 한센병에 대한 정보와 교육을 대부분 피고로부터 제공받았는데,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상황인 점을 고려해 보면, 설령 위 원고들이 이러한 수술들을 원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의 자의에 의한 선택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고, 원고들이 이와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피고가 제공한 잘못된 정보와 교육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5) 부부가 동거하고 자녀를 갖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구이자 천부적인 권리이며, 이는 행복추구권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피고가 음성환자에 대해서만 부부동거를 허용해 온 점에 비추어 볼 때 사실상 원고들에게 출산을 금지할 합리적인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피고가 원고들을 비롯한 한센인들에게 인간 본연의 욕구와 권리인 부부동거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정관절제수술을 받도록 하고, 국가가 보호해야 할 한센인에 대하여 퇴소를 명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신중절수술을 받도록 하는 것은, 강요된 행위 또는 반사회적인 조건이 붙은 동의나 승낙을 요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위 동의나 승낙은 정상적인 판단력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를 통상의 처분 가능한 법익의 침해에 대한 동의나 승낙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피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볼 수 없다.

라) 한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센인이라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법률상의 근거는 없고, 구 모자보건법에 따라 1973년부터 1999년까지 사이에 불임수술 명령이 있는 경우에만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도 정관절제수술이 이루어질 여지가 있었지만, 이 사건 단종 피해를 입은 원고들은 모두 구 모자보건법 시행 이전에 정관절제수술을 받았다.

마) 원고들을 비롯한 한센인 대부분이 오로지 국가의 보호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로서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일시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상당 기간을 지내야 하는 입장이고, 원고들이 죄를 짓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을 해서 수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피고가 한센인의 본질적인 욕구와 천부적인 권리에 대하여 합리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아니하고 전면적인 출산금지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다. 이는 피고가 한센인을 대등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사회 일반에 만연한 한센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동조하여 행정편의적인 방법으로 한센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개인의 존엄을 기초로 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족계획이란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으로 모자보건과 가정복지의 향상을 꾀하고자 자녀의 수와 터울을 조정하는 계획을 말하는 것일 뿐이고, 한센인이 자녀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이 이른바 가족계획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바) 결국 피고 소속 의사 등이 원고들에 대하여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한 것은 국가가 정당한 법률상의 근거 없이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 것이다.

사) 피고는 국가기관이 아닌 여수 애양원, 밀양 신생원 등에서 낙태수술 또는 정관 수술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원고들이나, 공무원이 아닌 자에 의해 수술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원고들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단종수술 및 출산억제 정책 등 한센병 환자에 대한 정책은 피고가 주도하였고, 피고가 사립 요양소, 병원들을 적극적으로 관리·감독해왔다. 여수 애양원, 밀양 신생원, 안동 성좌원과 같이 피고가 직접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위 병원들은 피고의 정책에 따라 낙태수술 또는 정관수술을 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피고는 사립요양소 소속 의사 등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였다고 볼 것이고, 단지 원고들이 수술받은 곳이 국립병원이 아니었다거나 수술을 시행한 사람이 공무원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가 정당한 법률상의 근거 없이 원고들의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침해한 것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4) 소결

국가배상법 시행 전에 피해를 입은 원고 11, 원고 33, 원고 43, 원고 53, 원고 68, 원고 81, 원고 107에 대하여는, 민법 제756조 [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부칙 제2조에 따라 구 민법(의용 민법)이 아닌 현행 민법이 적용된다]에 따라 피고가 사용자로서 피고 소속 의사 등의 위법한 수술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머지 원고들에 대해서는 국가배상법(피해를 입은 시기에 따라 ① 1951. 9. 8. 법률 제231호로 제정된 것, ② 1967. 3. 3. 법률 제1899호로 제정된 것, ③ 1973. 2. 5. 법률 제2459호로 개정된 것이 각 적용됨) 제2조 에 따라 피고 소속 의사 등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원고들에게 손해를 가한 것에 대하여 피고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피고 소속 의사 등이 피고가 주도한 정책에 따라 원고들에게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한 행위는 국가배상법 시행 전에는 민법상의 사용자책임이 성립하고 국가배상법 시행 후에는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 원고들이 이로 인하여 위에서 보았듯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비롯한 제반 권리를 침해당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다.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한 판단

1) 당사자의 주장

피고는, 원고들에 대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이 피고의 불법행위가 된다고 하더라도 위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항변한다.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재항변한다.

2) 소멸시효 완성 여부

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민법 제766조 제1항 참조). 그런데 위 인정 사실 및 아래 3.다.3)나)항에서 살피는 바와 같이, 원고들의 경우 피고 소속 의사 등에 의하여 행해진 이 사건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이 원고들에게 불법행위가 되어 손해가 된다는 사정을 진상규명위원회의 피해자 결정 통지가 있기 전까지는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고 할 것이므로, 위 원고들은 진상규명위원회의 피해자 결정 통지가 있었던 때에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원고들에 대한 피해자 결정 통지가 있었던 2010. 9. 16. 내지 2013. 7. 주22) 18. 부터 3년 이내인 2013. 5. 21. 이 사건 소가 제기된 사실이 기록상 명백한 이상, 이 사건은 위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일부터 5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고[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71조 , 구 재정법(1961. 12. 19. 법률 제849호로 제정된 예산회계법에 의하여 폐지되기 전의 것) 제58조 , 구 회계법(1921. 4. 7. 조선총독부법률 제42호로 제정되어 1951. 9. 24. 법률 제217호로 제정된 구 재정법 제82조로 폐지되기 전의 것) 제32조], 이는 위 3년의 단기소멸시효 기간과 달리 불법행위일부터 바로 진행이 되므로 한센인사건법에 의하여 피해자임을 확인하는 결정이 있었던 경우에도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 피해가 생긴 날부터 5년이 지난 때에 완성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피고가 원고들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한 날로서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생긴 날은 각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이 이루어진 1947년부터 1973년 사이라고 할 것인데, 그로부터 5년이 훨씬 지난 2013. 5. 21.에 이르러 이 사건 소가 제기되었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이 사건 소 제기 이전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3) 피고의 소멸시효 원용이 권리남용 또는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

가) 관련 법리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 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등 참조).

나) 원고 2 등에 대한 판단

(1) 이 사건에서 우선 피고의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진상규명위원회의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 인정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명백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피고는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이 있은 후 이 사건 변론에 이르러서도 이 사건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모두 원고들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서 당시의 의료수준 아래에서 한센병의 전염을 예방하고, 병원의 수용 한계 등을 고려한 부득이한 조치였으므로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한센병 또는 인권과 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아니한 일반인으로서는 국가인 피고가 한센인들의 부부동거를 허용하면서 정관절제수술을 하도록 하고 임신한 한센인들에 대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하는 것은 한센병의 예방을 위한 국가의 부득이한 조치이고, 정당한 법적 근거도 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오인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2) 이미 1950~1960년대에 한센병이 거의 완치되는 질환으로서 국제 학술대회 등에서 격리 정책에 반대하는 여러 차례의 권고나 결의가 있었고, 피고는 이를 잘 알고 있었는데도 엄격한 격리 정책을 1970년대까지 계속 유지하였다. 피고가 부부동거를 허용한 음성환자의 경우 전염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데도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강요함으로써 일반인들은 물론 한센인들에게까지도 한센병의 전염성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였다.

(3) 우리나라에서 한센병에 대한 정보와 교육은 대부분 피고에 의하여 제공되었으므로, 일반인들은 한센병에 대한 피고의 정책을 보고 한센병에 대한 인식을 형성해 왔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수용된 한센인들은 일상생활을 피고에게 의존하고 있었고, 기본적인 인권과 교육에 대한 인식도 기대하기 어려운 낮은 교육수준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센인들은 병원의 방침에 따라 정관절제수술을 하고 부부동거를 허용받는 것을 별다른 저항감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고, 병원의 정책과 달리 임신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하여 죄의식을 갖고 스스로 임신중절을 원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고 2 등을 비롯한 한센인들이 이 사건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에 대하여 국가인 피고를 상대로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대가능성은 거의 없고, 이는 주로 피고의 잘못된 정책과 교육에서 야기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센병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 역시 진상규명위원회의 한센인피해사건 결정이 있기 이전까지는 피고의 행위가 위법한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채무자인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인 원고 2 등의 권리 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한 것에 해당한다.

(4) 또한 피고는 위법한 정관절제수술 및 임신중절수술을 비롯한 한센인피해사건에 대하여 5년의 소멸시효가 지난 후부터도 오랜 기간이 지난 2007. 10. 17.에 한센인사건법을 제정하였다(2008. 10. 18. 시행). 한센인사건법에서는 한센인피해사건에 관한 진상을 파악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함으로써 이들의 인권신장 및 생활안정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천명하고( 제1조 ), 국가의 행위로 인하여 한센인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에 대하여 그 유형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거나, 그 밖에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심의·결정하도록 하면서( 제2조 제3호 ), 피고 산하에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조사를 위한 관련 자료의 수집 및 분석, 피해자 심사·결정,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등 지급 결정,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등의 진상규명 활동을 하도록 하고( 제3조 ), 피해자에 대한 지원 방안으로 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 제8조 ), 의료지원금 등 지급( 제9조 ), 한센인주거복지시설 등의 설치( 제10조 ) 등을 하도록 규정하였다.

이와 같이 한센인사건법은 그 적용대상 사건 전체에 대하여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왜곡되거나 오해가 있는 부분을 바로잡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도모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한센인피해사건에 관하여 개별 피해자를 특정하여 피해 경위 등을 밝히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률이다. 비록 한센인사건법에 개별 피해자에 대한 배상·보상에 대한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고, 피해자 지원방안만이 규정되어 있을 뿐이지만, 개별 피해자가 사법절차를 통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을 배제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5) 피고가 한센인사건법의 적용 대상인 피해자의 진실규명신청을 받아 피고 산하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피해자로 확인하는 결정을 하였다면, 그 결정에 기초하여 피해자가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에, 국가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달리 한센인사건법이 국가에 의한 한센인피해사건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조치로 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지원방안만을 이행하고 손해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국가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에 대하여 뒤늦게 불법행위임을 인정하여 구체적인 피해조사를 거쳐 피해자 및 피해의 내용까지 확정해 놓고도 그 피해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을 거절하고 의료지원금 주23) 등 만을 지급하겠다고 표명한 것으로서, 피해자들의 피고에 대한 정당한 기대나 신뢰에 반한다.

(6) 위와 같은 사정들을 모두 고려하여 보면, 이 사건에서 채무자인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다) 원고 1 외 6인에 대한 판단

(1) 원고 1 외 6인의 경우 낙태 피해사실로 피해자 결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다른 피해자들에 대해 낙태 피해사실로 인한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낙태 피해사실과 관련한 피고의 행위가 위법한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2) 원고 1 외 6인을 비롯한 한센인들이 이 사건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에 대하여 국가인 피고를 상대로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대가능성은 거의 없고, 이는 주로 피고의 잘못된 정책과 교육에서 야기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채무자인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인 원고들의 권리 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한 것에 해당한다.

(3) 원고 1 외 6인도 피고 산하 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한센인피해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되었다. 그러므로 원고 1 외 6인으로서는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경우 국가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대한 신뢰를 가졌을 것이고, 단지 심사의견서의 피해 내용에 낙태 피해사실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달리 볼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4) 위와 같은 사정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는 점을 더하여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한센병이 전염력이 낮은 제3종 전염병임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합리적인 대책 없이 전면적인 출산금지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 1 외 6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하고도, 원고 1 외 6인이 피해를 당한 무렵에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4) 원고들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였는지 여부

가) 관련 법리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채권자는 그러한 장애사유가 소멸한 때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 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 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소멸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증명곤란의 구제, 권리 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 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나) 원고 2 등에 대한 판단

(1) 위에서 든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① 한센인사건법이 시행된 후 2010. 9. 16.부터 2013. 7. 18.까지 사이에 원고들에 대한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졌지만, 그 이전인 2009. 8. 6. 이미 국회에서 한센인사건법에 보상금 지급규정 등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임두성 의원 등 81인 발의, 의안번호 1805674)’이 발의되어 계류되어 있었으나,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사실, ②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2013년 발행한 보고서에서 현행 법률이 국가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개입에 의한 한센인피해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치는 국가배상이 아닌 의료지원, 생활지원과 기념관 건립 등에 그치고 있어, 결과적으로 국가에 의한 직·간접적 가해행위를 부인하고 있고, 피해자에 대한 생활지원은 그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근본적으로 폭넓은 보상을 실시한 일본이나 대만과는 달리 생활이 어려운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에게 소액의 의료지원, 생활지원만을 규정한 한센인사건법이 가지는 한계에 기인한다고 하면서 법 개정 등을 통한 실질적인 보상을 촉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2) 이러한 경위 등을 보면, 한센인사건법에 의한 피해자 결정을 받은 원고 2 등이 법규정과 진상규명위원회의 건의 등에 따라 피고가 그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자 비로소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3) 따라서 원고 2 등의 경우 낙태 피해사실로 피해자 결정을 받은 날부터 길게는 2년 8개월가량 지난 후인 2013. 5. 21.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지만, 원고 2 등이 진상규명위원회의 피해자 결정 이후 단기소멸시효의 기간이 지나기 직전까지 피고의 입법적 조치를 기다린 것이 상당하다고 볼 만한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고 할 것이고, 이를 감안하면 원고 2 등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 행사를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 원고 1 외 6인에 대한 판단

(1)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은 피해신고서 또는 조사과정에서 낙태 피해사실을 언급하였으나, 위 원고들에 대한 심사의견서에는 폭행·감금 피해사실, 흉골골수천자 피해사실만이 기재되었다. 그러나 낙태 피해사실은 별도의 항목으로 분류되지 않고,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에 포함되어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졌다.

(2) 고령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으로서는 조사관 앞에서 낙태, 폭행, 감금 피해사실을 언급하였고, 이후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진 이상 원고들이 입은 모든 피해에 대해서 피고의 보상이나 배상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지 실무위원회 위원장이 작성한 심사의견서에 낙태 피해사실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원고 25, 원고 34, 원고 93, 원고 96이 피해자로 심사·결정을 받은 그 즉시 이 사건 소를 제기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3) 그러므로 원고 25, 원고 96이 2012. 6. 27. 피해자로 결정을 받은 때부터 11개월 후, 원고 34가 2012. 12. 13. 피해자로 결정을 받은 때부터 5개월 후, 원고 93이 2013. 3. 28. 피해자로 결정을 받은 때부터 2개월 후인 2013. 5. 21. 이 사건 소를 제기한 것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 행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원고 1, 원고 4, 원고 8은 최초 피해 신고 시에는 낙태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가, 2013. 3.~4.경 낙태 피해사실을 추가로 신고하였다. 최초 조사 과정에서 조사관은 위 원고들에게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 확인하지 않았고, 최초 신고 당시 위 원고들로서는 국가 및 병원의 정책에 따라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것이 위법하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채권자의 권리 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에 해당한다.

(5) 그러므로 원고 4가 피해자로 결정을 받은 2010. 12. 16.부터 2년 5개월 후, 원고 1, 원고 8이 피해자로 결정을 받은 2012. 12. 13.부터 5개월 후인 2013. 5. 21. 이 사건 소를 제기한 것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 행사를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손해배상의 범위

가. 위자료

1) 고려요소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참작하기로 한다.

가) 한센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냉대와 멸시는 그들에게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심한 정신적 고통과 모욕감을 주었다. 그러나 피고는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에 의하여 고통받고 살아온 한센인들에 대하여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에 편승하여 한센인들을 엄격히 격리하고 자녀마저 낳지 못하게 함으로써 원고들을 비롯한 한센인들에게 심한 열등감과 절망감을 심어 주었다.

나) 이 사건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원고들이 갖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기본적인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정당한 법률상의 근거 없이 제한하면서 오히려 위 원고들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고 수치심을 느끼도록 한 것으로서, 반인권적·반인륜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 대부분이 노후를 보살펴 줄 자식도 없는 처지가 되어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게 되었으므로(추후 양자를 입양한 원고들의 경우에도 자식들이 장성한 후 연락이 끊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전으로나마 그 고통을 보상해 줄 필요성이 크다.

라) 이 사건은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할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므로(아래 나.2) 참조), 장기간 동안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위자료 원본을 산정할 때 참작할 필요가 있다.

마) 다만 피고는 한센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극심하던 시절부터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원고들을 비롯한 한센인들을 치료해 주었다. 또한 이 사건은 이미 불법행위에 관한 소멸시효 기간이 지났는데도 피고가 한센인사건법을 제정함으로써 피해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손해배상의 단초가 제공된 것으로, 사후적이나마 피고가 위와 같은 노력을 한 점은 평가할 수 있다.

2) 위자료 액수

위와 같은 모든 사정들을 고려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별지 3 목록 ‘원고’란 기재 각 원고들(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는 각 40,000,000원으로, 별지 4 목록 ‘원고’란 기재 각 원고들(정관절제수술을 받은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는 각 30,000,000원으로 정한다.

나. 지연손해금의 기산일에 관한 판단

1) 원고들의 주장

원고들은 단종·낙태 피해사실에 대한 위자료에 대하여 1945. 8. 16.부터 지연손해금을 구한다.

2) 판례 법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피해자가 손해를 입은 법익을 계속해서 온전히 향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그 채무 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 세월이 경과함으로써 위자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변론종결 시의 국민소득 수준이나 통화가치 등의 사정이 불법행위 시에 비하여 상당한 정도로 변동한 결과 그에 따라 이를 반영하는 위자료 액수 또한 현저한 증액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 시인 변론종결 당일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등 참조).

3) 판단

불법행위 시부터 길게는 약 68년, 짧게는 약 42년가량의 세월이 지난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5. 6. 25.을 기준으로 위자료를 산정하는 이 사건에서는 위 변론종결일부터 위자료에 대한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들의 위 주장 중 1945. 8. 16.부터 위 변론종결일 전날까지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부분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 소결

따라서 피고는 별지 2 청구금액 및 인정금액표의 ‘원고’란 기재 각 원고들에게 같은 표 ‘인정금액’란 기재 각 금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5. 6. 25.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15. 7. 16.까지는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므로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 지 1] 원고 명부: 생략]

[[별 지 2] 청구금액 및 인정금액 표: 생략]

[[별 지 3] 한센 낙태 피해사실 정리: 생략]

[[별 지 4] 한센 단종 피해사실 정리: 생략]

[[별 지 5]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 생략]

[[별 지 6] 한센인 피해사건 분류: 생략]

판사 전현정(재판장) 진영현 류지미

주1)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 2. 24. 소록도 자혜의원으로 설립된 이래 1934. 10. 1. 소록도 갱생원, 1949. 5. 6. 중앙나요양소, 1951. 9. 29. 갱생원, 1957. 12. 14. 소록도 갱생원, 1960. 7. 1. 국립소록도병원, 1968. 11. 8. 국립나병원, 1982. 12. 31.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변경되어 왔다. 아래에서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국립소록도병원’으로 표시한다.

주2) 2002년 18,014명, 2005년 15,770명, 2010년 13,316명, 2011년 12,847명, 2012년 12,323명.

주3) 단종의 사전적 의미는 수술에 의해 생식능력을 없애는 것이다. 정관절제수술은 다시 정관을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의미의 단종수술이라고 볼 수 없지만, 당시의 의학수준에 비추어 정관절제수술이 단종수술로 받아들여졌고 ‘단종’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남성 환자들에 대한 정관절제수술을 일제강점기에 ‘단종법’, ‘단종술’, ‘단종수술’ 등으로 표현한 이래 관용적인 표현으로 굳어져 공식적인 예규나 보고서 등에도 사용되어 온 것으로 보이므로, ‘단종수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주4) 이 규정은 1962. 12. 26. 개정 헌법 및 1980. 10. 27. 개정 헌법에 의하여 명문으로 규정된 것이지만, 이는 기본권 이념의 일반원칙이자 윤리적, 자연법적 원리를 헌법규범화한 것으로서 1948. 7. 12. 제정 헌법 당시부터 헌법의 기본이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편 제정 헌법 당시부터 제28조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써 경시되지는 아니한다.”라는 규정(현행 헌법 제37조 제1항)을 두었다.

주5) 제정 헌법 제9조에서부터 같은 규정이 있었다.

주6) 제정 헌법 제20조는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하며 혼인의 순결과 가족의 건강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주7) 제정 헌법 제28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의 제정은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주8)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규정은 1962. 12. 26. 개정 헌법부터 규정되었다.

주9) 나병과 함께 규정된 제3종 전염병으로는 결핵, 성병이 있고, 콜레라, 페스트, 천연두 등이 제1종 전염병으로, 백일해, 유행성이하선염 등이 제2종 전염병으로 규정되었다.

주10) 제1종 전염병환자와 나병환자는 전염병원, 격리병사, 격리소, 요양소 혹은 특별시장 또는 시, 읍, 면장이 지정한 장소에 격리수용되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주11) 그러나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무부령에서 한센병을 포함한 제3종 전염병에 대하여 계속 강제 격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유지하였고, 2006. 1. 17. 개정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부령 제345호)에 이르러서야 제3군 전염병 중 한센병에 대하여 강제 격리를 할 법률적 근거가 완전히 사라진다.

주12) 1973. 2. 8. 제정 모자보건법(법률 제2514호) 제8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되는 경우에 한하여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2.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 제9조(불임수술절차 및 소의 제기) ① 의사가 환자를 진단한 결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질환에 이환된 것을 확인하고 그 질환의 유전 또는 전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자에 대하여 불임수술을 행하는 것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건사회부장관에게 불임수술대상자의 발견을 보고하여야 한다. ② 보건사회부장관이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보고를 받은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환자에게 불임수술을 받도록 명령을 발할 수 있다. ③ 제2항의 규정에 의한 보건사회부장관의 명령을 받은 자가 불복이 있는 때에는 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2주일 이내에 그 명령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행정소송이 제기된 경우에는 제2항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그 효력이 정지된다. ④ 보건사회부장관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의사를 지정하여 제2항의 규정에 의한 불임수술명령을 받은 자에게 불임수술을 행하게 하여야 한다. 1973. 5. 28. 제정 모자보건법 시행령(대통령령 제6713호) 제3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③ 법 제8조 제1항 제2호의 규정에 의한 전염성질환은 전염병예방법 제2조 제1항에 규정된 전염병을 말한다. 제4조(불임수술대상자 보고 및 명령 등) ① 법 제9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불임수술대상자는 제3조 제2항 각 호 1에 해당하는 질환에 이환된 자로 한다. ② 의사가 제1항에 규정에 의한 불임수술대상자를 발견한 때에는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체 없이 관할 보건소장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여야 한다. ③ 제2항의 보고를 받은 보건소장은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체 없이 서울특별시장, 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를 거쳐 보건사회부장관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여야 한다. ④ 보건사회부장관은 법 제9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불임수술의 명령을 발하고자 할 때에는 가족계획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제5조(불임수술 담당의사의 지정) 보건사회부장관은 법 제9조 제4항의 규정에 의하여 불임수술을 행할 의사를 지정하고자 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의사 중에서 하여야 한다. 1. 산부인과 전문의사 2. 비뇨기과 전문의사 3. 외과 전문의사 4. 기타 일정한 기간 불임수술에 관한 교육을 받은 의사

주13) 모자보건법상 전염성질환을 이유로 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조항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지만(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제2호), 불임수술 명령 조항은 1999. 2. 8. 법률 제5859호로 개정된 구 모자보건법에 의하여 폐지되었다.

주14) 낙태죄는 1953. 9. 18. 제정 형법 제269조에 규정된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주15) 소외 31 원장은 1936. 4. 1. 총독부의 재가를 얻어 “1. 호적상의 부부인 자. 2. 호적상의 부부가 아닐지라도 정식 결혼식을 올려 사실상 부부인 자. 3. 일찍 수용 전부터 내연관계에 있는 자로 일반이 인정한 자. 4. 내연관계에 있는 자로서 확연하게 인정받지 못한 때에는 각 병사지구에 있는 사장 기타 유력 환자 수명의 증명을 받은 자. 5. 그 환자로부터 특히 동거를 원한 자에 대하여는 각 병사 지구에 있는 사장 기타 유력 환자의 인정을 받는 자로서 일반인으로부터 이의 없는 자.”에 대하여 “6. 이상의 각 항을 구비한 자라도 그대로 동거시키면 격리수용의 의의를 저버리는 결과가 되니, 미리 본인의 신고에 의하여 단종법(단종법: 정관수술)을 실시한 뒤 동거할 수 있다.”라는 조건을 붙여 부부동거를 허가하였다.

주16) 1949. 5. 6.경 제정된 25개 항 ‘요양소 수용환자 준수사항’ 중 일부 13. 남환자로서 여병사에, 여환자로서 남병사에 출입을 요할 때는 사전에 자치위원장에게 신고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22. 부부생활을 희망하는 자는 당자의 응낙으로 거세수술자에 차를 인정한다. 25. 위 각 항에 위반하는 자는 상당한 처벌을 한다.

주17) 1977. 8. 19. 제정된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보건사회부령 제570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제16조(제3종 전염병 격리수용환자의 범위) 법 제29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제3종 전염병환자 중 격리수용되어 치료를 받아야 할 자의 범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자가치료를 함으로써 타인에게 전염시킬 우려가 있다고 서울특별시장·부산시장 또는 시장·군수가 인정한 자 2. 부랑·걸식 등으로 타인에게 전염시킬 우려가 있어 전염병 예방상 격리수용하여 치료함이 필요하다고 서울특별시장·부산시장 또는 시장·군수가 인정한 자

주18) 보건사회부 보건국장, 국립소록도병원 등 5개 국립병원장, 국내의 나병 권위자들로 구성되었다.

주19) 그 당시 지시사항 중 일부 ② 환자 자녀의 격리: 각 국립병원에서 환자와 동거하고 있는 환자 자녀는 즉시 격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립된 국립, 사립 보육시설에 수용보호함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여의치 못할 때에는 각 병원장이 그 어린이를 돌려보내는 방법을 강구 실천할 것이며, 이는 1964년 말까지 완료되어야 한다. ④ 가족계획의 철저: 이 문제는 누차 지시한 바 있으나, 아직도 만족한 상태가 아니니 특히 다음 사항을 철저히 이행하여야 한다. - 임신 가능한 자에 대해서는 이 사건 단종수술을 적극 장려하여 가족계획에 완벽을 기할 것. - 임신 가능한 자를 항상 조사 파악하여 출산을 최대한 억제토록 할 것.

주20) 1958년도 소록도 연보: “가정을 가지고자 원하는 자에 대하여는 사전에 정관수술을 시행하여 임신의 미연 방지를 도모하고 있다.” 1978년도 소록도 연보: “가임환자가 동거를 원할 때에는 불임시술 후 동거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다만 양성환자에 대하여는 부부동거를 금하고 있다.” 1990년도 소록보 연보: “가임환자가 동거를 원할 때에는 불임시술 후 동거하도록 하고 있다.”

주21)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갑 제1호증),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발간한 ‘소록도80년사’(갑 제2호증), 대한나관리협회에서 발간한 ‘한국나병사’(갑 제3호증) 등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주22) 일부 원고들은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 통지가 있기 전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주23) 한센인사건법 제9조 제1항에서는 “피해자로 결정된 한센인에 대하여 의료지원금 등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시행령 제8조에서는 “생활지원금은 예산의 범위 내에서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매월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의료지원금과 생활보상금은 피해에 대한 배상 내지 보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성질일 뿐만 아니라 임의적인 규정에 의한 것으로서, 그 혜택 범위도 제한적이고 금액 또한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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