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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6. 3. 12. 선고 95도2864 판결
[위증][공1996.5.1.(9),1324]
판시사항

[1] 위증죄에 있어서 증언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진술인지 여부의 판단 방법

[2] 증언이 허위진술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1] 증인의 증언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진술인지 여부는 그 증언의 단편적인 구절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당해 신문절차에 있어서의 증언 전체를 일체로 파악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증언의 전체적 취지가 객관적 사실과 일치되고 그것이 기억에 반하는 공술이 아니라면 사소한 부분에 관하여 기억과 불일치하더라도 그것이 신문취지의 몰이해 또는 착오에 인한 것이라면 위증이 될 수 없다.

[2] 증언이 허위진술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위증죄를 인정한 원심을 심리미진이나 사실오인의 위법을 범하였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변호사 김현채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사건을 서울지방법원 본원합의부로 환송한다.

이유

피고인 및 그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함께 본다.

1. 원심은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였는바, 공소사실 기재의 증언내용은 피고인의 남편인 공소외 1이 서울 송파구 마천동 소재 대지 및 그 지상건물(이하 이 사건 부동산이라 한다)에 관하여 그 등기명의자들인 위 공소외 1의 아버지인 공소외 2와 동생인 공소외 3, 4, 조카인 공소외 5 등을 상대로 제기한 명의신탁해지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이하 민사소송이라고만 한다)의 제1심에서 피고인이 원고측 증인으로 나서 증언한 내용 중 일부임은 기록상 명백하다.

2. 공소사실 제1, 3, 4항에 대하여

가. 증인의 증언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진술인지 여부는 그 증언의 단편적인 구절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당해 신문절차에 있어서의 증언 전체를 일체로 파악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증언의 전체적 취지가 객관적 사실과 일치되고 그것이 기억에 반하는 공술이 아니라면 사소한 부분에 관하여 기억과 불일치하더라도 그것이 신문취지의 몰이해 또는 착오에 인한 것이라면 위증이 될 수 없다 함은 당원의 확립된 판례의 태도이다( 당원 1982. 9. 14. 선고 81도105 판결 , 1994. 12. 22. 선고 94도1790 판결 등 참조).

나.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피고인이 민사소송의 원고측 증인으로 나서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민사소송의 원고측인 피고인의 남편인 공소외 1은, 자신이 선린상고 야간부를 다니던 1956.부터 1960.까지 외제만년필 행상을, 그 이후 1964. 오성상회를 개업할 때까지는 남대문시장 자유백화점 옆의 유풍상회의 한 모퉁이를 임차하여 진열장을 놓고 일반잡화상을 계속하여 번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돕다가, 1964.경에 이르러 자신이 번 돈으로 남대문시장의 대도백화점의 점포 1칸을 임차하여 오성상회를 개업한 이래 1967.경 방산국민학교 옆 동신상가로 장소를 옮겼다가 1972.경 상호를 동일사로 바꾸어 1982. 폐업할 때까지 그 영업을 계속하였는바, 이 사건 부동산은 오성상회를 경영하여 번 돈으로 매수한 것이므로 자신의 단독소유라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민사소송의 피고측은, 망 공소외 2(민사소송의 제1심판결이 선고되기 직전인 1991. 5. 1. 사망하였다)이 1953.경 서울에 정착한 이후 위 공소외 1을 비롯한 다섯 아들들이 1983.경까지 공동체생활을 해오면서 거기에서 얻어진 수익금을 위 공소외 1이 맡아서 관리해 왔는데, 이 사건 부동산도 위 공소외 1이 자신이 관리하던 공동체생활의 수익금으로 매수한 것이므로 위 공소외 1의 단독소유가 아니라 가족 모두의 공동소유라는 취지로 주장하면서, 공동체생활을 한 구체적 예로 망 공소외 2가 위 오성상회를 개업하여 장남인 망 공소외 6(1974. 7. 26. 사망) 및 차남인 위 공소외 1과 함께 운영하다가 위 공소외6이 사망하고 자신의 건강도 악화되어 1974.경부터 그 운영을 위 공소외 1에게 일임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4남인 공소외 4나 5남인 공소외 7 및 망 공소외 6의 아들인 공소외 5 등이 계속 위 오성상회의 일을 도운 사실을 들었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민사소송의 제1심에서 쌍방의 주장사실을 입증하는 증인으로 피고측은 공소사실 제5항 기재의 김형준과 공소사실 제6항 기재의 강신건을, 원고측은 피고인을 각 내세웠는바, 피고인에 앞서 증언한 위 김형준이 오성상회의 사업자명의가 망 공소외 2 앞으로 되어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하는 등 피고측의 증인 두 사람 모두 피고측의 주장사실에 부합되게 증언하자, 뒤이어 피고인은 위 두 사람의 증언내용을 탄핵함과 아울러 오성상회는 공소외 1이 전적으로 운영하였고 망 공소외 2나 다른 가족들은 오성상회의 운영에 참여한 사실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위와 같이 증언한 것이다.

다. 이상과 같은 사실관계에 터잡아 우선 공소사실 제1항에 대하여 보건대, 기록에 의하면 위 공소외 1은 선린상고 야간부를 다니던 1956.부터 1960.까지 외제만년필 행상을, 그 이후 1964. 오성상회를 개업할 때까지는 남대문시장 자유백화점 옆의 유풍상회의 한 모퉁이를 임차하여 진열장을 놓고 일반잡화상을 계속하여 번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돕다가, 1964.경에 이르러 자신이 번 돈으로 남대문시장의 대도백화점의 점포 1칸을 임차하여 오성상회를 개업하여 운영하는 등 오성상회를 주도적으로 운영해 왔던 반면에, 망 공소외 2의 5남인 공소외 7이 민사소송의 제1심에서 증언한 바에 의하면 위 망인은 위 공소외 1이 오성상회를 개업한 이후인 1965년(위 공소외 7이 국민학교에 입학한 뒤 1년간)에도 종전부터 해 오던 복덕방을 계속한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등, 설사 위 망인이 오성상회의 운영을 도와주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가벼웠던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망 공소외 2가 1966년 이후 주로 복덕방을 경영하여 가계를 꾸려왔다는 취지의 피고인의 증언 부분은 결국 망 공소외 2가 오성상회의 운영에 거의 관여한 점이 없다는 사실을 진술한 점에서는 그 전체적 취지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설령 위 망 공소외 2가 복덕방을 한 시기의 점에 대한 증언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 하더라도 이는 사소한 부분에 관한 것으로서 착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라. 다음으로 공소사실 제3항에 대하여 보건대, 피고인은 민사소송의 원고측 소송대리인의 주신문에서 공소외 4가 청량리로터리 소재 대왕코너에서 안경점을 하다가 1975.경 화재가 발생하여 그 곳에서의 안경점을 폐업한 이후 1977. 6.경 세운상가에서 일용잡화상을 할 때까지의 기간 중 실업상태에 있었으므로 위 공소외 1은 위 공소외 4로 하여금 당시 망 공소외 2가 살고 있던 시골집에 보내 건물의 신축을 보살피게 하고 그 동안 그의 가족에 대한 생활비 및 용돈을 대주었다고 진술하였다가, 피고측의 반대신문에 이은 재(재)주신문에서 위 공소외 4가 실직 후 다 못 판 안경 등을 몇 달간 박안과에서 판 것으로 안다라고 진술하였는바, 기록에 의하면 위 기간 중 위 공소외 1이 위 공소외 4를 시골집으로 보내 집짓는 것을 감독하게 하면서 그 기간 중의 위 공소외 4의 가족의 생활비를 대준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박안과 원장인 공소외 박근수의 검찰진술에 의하더라도 위 공소외 4가 안과의원 내 약 1평 반 정도의 암실(암실)에서 하루에 3-4명을 상대로 장사를 하였으나 장사라기보다는 겨우 먹고 살 정도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므로, 피고인의 위 부분 증언은 전제적 취지에서 보아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설사 위 기간 중 위 공소외 4가 박안과의원 내에서 안경장사를 영위한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그와 같은 사유만으로 피고인의 위 부분 증언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진술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마. 끝으로 공소사실 제4항에 대하여 보건대, 1977. 2.경부터 1979. 8.경까지 사이에 공소외 7이 위 공소외 1이 경영하던 동일사에 나와 일을 도와준 사실이 있는가의 점에 대해, 피고인은 위 기간 중 위 공소외 7이 동일사에 나와 일을 도와준 사실은 없고, 위 공소외 7의 형인 위 공소외 4가 경영하던 안경점에 나가 일을 도와주면서 상술을 익히고 닦다가 1979. 5.경 위 안경점을 인수하였다는 취지로 증언하였는바, 기록에 의하면 위 공소외 7이 위 공소외 4의 안경점의 일을 돕다가 1979.경 안경점을 인수한 사실은 의심 없이 인정되고, 안경점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안경점 일을 배워야 함은 경험칙상 충분히 수긍이 가므로(제1심 증인 장옥화도 위 공소외 7이 위 공소외 4의 안경점 일을 돕다가 약 2년 후 안경점을 인수하였다는 취지로 증언한 바 있다), 피고인의 위 부분 증언 또한 전체적 취지에서 보아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 할 것이고, 설령 위 기간 중 위 공소외 7이 위 공소외 1이 운영하던 동일사에 나와 일을 도운 적이 있다 하더라도 위 기간 전체로 놓고 볼 때 위 공소외 4의 안경점 일을 돕는 일과 비교하여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보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간과한 채 위와 같이 증언한 것은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바. 그렇다면 원심판결 중 공소사실 제1, 3, 4항에 관한 부분은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였거나 위증죄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한 논지는 이유가 있다.

3. 공소사실 제2항에 대하여

1967.부터 1972.까지의 오성상회의 사업자명의가 망 공소외 6 앞으로 되어 있었음은 민사소송에서 서증으로 제출된 위 망 공소외 6이 사업소득세의 납세의무자로 된 영수증서의 기재에 의하면 명백하나, 기록에 의하면 위 서증은 피고인이 증언한 이후에 피고측에서 제출한 것이고, 피고인이 증언할 당시에는 피고측에서도 오성상회의 사업자명의가 누구 앞으로 되어 있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모른 채 오히려 망 공소외 2 앞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 상태에서, 위 쟁점에 관한 서증으로는 원고측이 제출한 바 있던 위 공소외 1 명의의 당좌거래약정서와 위 공소외 1이 납세의무자로 된 원천징수 영수증만이 변론에 현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 및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공소외 1이 오성상회를 주도적으로 운영하였던 사정에 비추어 보건대, 피고인이 원고측이 제출한 위 두 서증에 터잡아 위 기간 중의 오성상회의 사업자명의가 원고 공소외 1 앞으로 되어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하여 기억에 반한 허위의 진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 부분 공소사실에 관한 원심판결은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우므로, 이 점을 지적한 논지는 이유가 있다.

4. 공소사실 제5, 6항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면, 민사소송의 피고측 증인으로 나선 공소외 김형준과 강신건은 피고인이 증언하기에 앞서 1970. 이전의 망 공소외 2가 가족의 생활상에 대해 피고측의 주장사실과 부합되게 상세하게 증언하였으나, 위 공소외인들의 증언내용 중 상당한 부분(특히 오성상회를 운영한 주체에 관한 부분)이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위 공소외인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망 공소외 2의 가족과 왕래가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 위와 같이 증언에 나선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1970. 이전부터 망 공소외 2 및 그 가족을 알고 지냈다는 위 공소외인들의 진술 부분 또한 그 신빙성에 의심이 가는 반면에, 피고인이 위 공소외인들을 알게 된 경위에 관한 피고인의 진술 부분은 구체적이어서 쉽사리 그 신빙성을 부정하기 어려운데다가, 그 중 위 김형준을 알게 된 경위에 관한 부분은 이 사건 제1심 증인 장옥화의 증언도 이에 부합하므로, 기록에 나타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의 위 부분 증언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고 나아가 기억에 반하는 허위진술이라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 부분 공소사실에 관한 원심판결 또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였거나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므로, 이 부분 논지 또한 이유가 있다.

5.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정귀호(재판장) 김석수 이돈희 이임수(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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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지방법원 1995.11.1.선고 95노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