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변호사의 소송위임사무에 관한 약정 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변호사의 보수 청구가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로 제한되는지 여부(적극) 및 이 경우 법원은 그에 관한 합리적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하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다수의견] 변호사의 소송위임 사무처리 보수에 관하여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약정이 있는 경우 위임사무를 완료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약정 보수액 전부를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의뢰인과의 평소 관계, 사건 수임 경위, 사건처리 경과와 난이도, 노력의 정도, 소송물 가액, 의뢰인이 승소로 인하여 얻게 된 구체적 이익, 그 밖에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약정 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의 보수액만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수 청구의 제한은 어디까지나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법원은 그에 관한 합리적인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러한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대법관 김신, 대법관 조희대의 별개의견] 민법은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제103조 ), 불공정한 법률행위( 제104조 ) 등 법률행위의 무효사유를 개별적·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하는 민법 제398조 제2항 과 같이 명시적으로 계약의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법률 조항도 존재한다.
그러나 신의칙과 관련하여서는 민법 제2조 제1항 에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 에서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할 뿐 이를 법률행위의 무효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민법 제2조 의 신의칙 또는 민법에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형평의 관념은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계약을 무효로 선언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신의칙 또는 형평의 관념 등 일반 원칙에 의해 개별 약정의 효력을 제약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시장경제질서 등 헌법적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
원고, 상고인
원고
피고, 피상고인
피고 1 외 2인
주문
원심판결 중 착수보수금과 부가가치세에 관한 약정금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동부지방법원에 환송한다. 나머지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약정금 청구
가. 착수보수금과 부가가치세 관련
(1) 변호사의 소송위임 사무처리 보수에 관하여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약정이 있는 경우 위임사무를 완료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약정 보수액 전부를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의뢰인과의 평소 관계, 사건 수임 경위, 사건처리 경과와 난이도, 노력의 정도, 소송물 가액, 의뢰인이 승소로 인하여 얻게 된 구체적 이익, 그 밖에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약정 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의 보수액만을 청구할 수 있다 ( 대법원 1991. 12. 13. 선고 91다8722 판결 , 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2다50353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러한 보수 청구의 제한은 어디까지나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법원은 그에 관한 합리적인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 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다40677 판결 , 대법원 2014. 7. 10. 선고 2014다1832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가)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은 사법(사법)의 기본원리로서 사법적인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아무런 제한 없이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법은 통칙에서 신의성실과 권리남용의 금지를 민법의 중요한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으로서 실정법이나 계약을 형식적이고 엄격하게 적용할 때 생길 수 있는 부당한 결과를 막고 구체적 타당성을 실현하는 작용을 한다. 사적 자치나 계약자유도 신의칙에 따라 제한될 수 있고, 구체적 사안에서 그 적용 범위가 문제 될 뿐이다.
(나) 위임이나 신탁과 같은 계약은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상대방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목적이 있으므로, 단순히 급부의 교환에 그치는 매매와 같은 계약에 비하여 신의칙과 형평의 관념이 강하게 작용한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하는 경우 변호사는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활용하여 일체의 소송행위를 할 수 있다. 특히 변호사법은 법률사무 전반을 변호사에게 독점시키되,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고,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직무를 수행한다고 선언하면서( 제1조 , 제2조 ), 여러 규정을 통해 직무에 관한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다200111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처럼 변호사의 직무수행이 영리추구가 목적인 상인의 영업활동과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점은 소송위임계약에 관하여 신의칙을 적용할 때에도 고려하여야 한다.
(다) 소송위임사무 등 법률서비스의 제공은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변호사만이 할 수 있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는 소송의 쟁점, 법리, 절차, 난이도 등에 관한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 보수가 반드시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적정 수준으로 결정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변호사 보수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는 과거뿐만 아니라 변호사 시험제도의 실시 등으로 다수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위 두 조항의 요건을 충족하지는 않지만 소송위임계약에서 정보 불균형, 교섭력의 차이 등으로 말미암아 약정 보수액이 지나치게 많아 그 청구를 예외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소송위임계약 이후의 소송 경과에 따라 당사자들이 예상할 수 없는 사정변경이 생겨 당초 약정한 보수액이 과도하게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신의칙은 법 규정의 흠결을 보충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도출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과도한 변호사 보수 청구를 적정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 사이에 보수에 관한 약정이 없는 경우 변호사가 위임인을 상대로 적정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 대법원 1995. 12. 5. 선고 94다50229 판결 등)과도 균형이 맞는다.
(마) 법원이 적정한 결론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신의칙에 기대어 당사자 사이의 계약 내용을 함부로 수정·변경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변호사 보수 청구 제한의 법리를 발전시켜 오면서, 이러한 법리가 계약자유의 원칙을 제한·수정하는 예외적인 것이므로 그 적용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고, 보수 청구를 제한하는 경우 그에 관한 합리적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 이러한 판례를 통하여 변호사 보수에 대해 신의칙을 적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우려는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원심은 아래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원고와 피고들이 소송위임계약에서 약정한 변호사 보수(착수보수금과 부가가치세) 3,850만 원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과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변호사 보수를 2,000만 원으로 감액한 다음, 감액된 변호사 보수 채권이 모두 변제되어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여 이 부분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 원고는 피고들 등으로부터 소송위임을 받아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소송(이하 ‘원고 제기 소송’이라 한다)을 수행하였는데, 결국 각하 또는 기각 판결을 선고받았다. 원고 제기 소송의 소가가 3억 6,700만 원이고 당사자가 다수이나, 당사자 사이에 쟁점이 일치한다.
(나) 원고와 피고 2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원고는 원고 제기 소송 사건의 첫 변론기일 전인 2014. 8. 19. 피고 1로부터 원고 제기 소송의 원고들 중 324명이 원고에 대한 소송위임을 철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도 원고는 그들의 소송대리인 지위를 사임하지 않고 소송을 수행하였다.
(3) 그러나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원심이 제시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변호사 보수가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이 사건 소송위임계약에서 약정한 착수보수금은 1인당 10만 원이다. 원고는 위 금액이 피고 측이 관련 형사고소사건의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지급한 금액과 같고 피고 측이 먼저 원고에게 제의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대해 피고들은 원심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원고 제기 소송은 소외인의 500억 원이 넘는 횡령과 그로 인한 전국교수공제회(이하 ‘공제회’라 한다)의 파산으로 공제회에 퇴직금 등을 불입했던 피고들을 포함한 회원들이 손해를 입은 것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을 상대로 공제회 등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원고 제기 소송의 소가가 3억 6,700만 원인 것은 위 소송의 원고 1인당 청구금액이 100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인당 청구금액 100만 원이 부당히 고액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10%인 10만 원을 1인당 착수보수금으로 정한 것도 고액의 변호사 보수로 보기 어렵다.
(나) 원고 제기 소송은 검찰과 금융감독기관(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직무유기 등을 다투는 것으로 쟁점이 단순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고, 소 제기 후 판결선고 시까지 소송 기간도 1년 5개월 이상 걸렸다.
(다) 원고는 소송 과정에서 준비서면을 7번 제출하고, 서증을 5번 제출하였으며, 9번의 사실조회신청을 하는 등 소송수행을 하였다.
(라) 원고 제기 소송에서 원고는 결과적으로 패소판결을 받았으나, 다른 변호사들도 동일한 내용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판결을 받기는 마찬가지여서, 특별히 원고의 소송수행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또한 착수보수금은 소송결과와는 무관하게 소송위임사무를 완료한 경우 전부 청구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마) 한편 원고는 원고 제기 소송의 첫 변론기일 전 피고 1로부터 ‘그 소송의 원고들 중 324명이 원고에 대한 소송위임을 철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원고가 2014. 4. 14. 소를 제기한 다음 피고 1은 2014. 4. 22. 원고의 소 제기를 추인함과 아울러 향후 절차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닌 피고 2와 협의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 1이 피고 2 등 다른 피고들의 의사에 반하여 소송위임 철회를 통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위 통보를 받고서도 원고가 소송수행을 계속한 것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원고 제기 소송의 제1심과 제2심 역시 ‘소 제기 이후 다수 원고들이 소취하서를 제출하였으나, 소취하 의사에 더하여 원고를 소송대리인에서 해임하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4) 결국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형평의 관념에 기초한 변호사 보수 청구 제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원고는, 원고에게 착수보수금 중 2,000만 원을 송금한 사람이 ‘피고 1’인데도 원심이 ‘피고들’이라고 판단하고, 원고가 ‘착수보수금을 2,000만 원으로 감액해 달라’는 피고 1의 요청을 거절하였는데도 원심이 마치 원고가 위 감액요청을 수용한 것처럼 판단한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모두 판결에 영향이 없는 부분을 다투는 것으로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다.
나. 인지대와 비용예치금 관련
원고는, 피고들 모두 소송위임계약의 당사자이므로 위 계약에 따른 약정금 지급채무를 연대채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들이 연대하여 인지대와 비용예치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 사건에서, 원심이 약정금 지급채무를 분할채무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2. 손해배상 청구
이 부분 상고이유 요지는, 피고 1의 횡령 또는 배임, 명예훼손에 의한 불법행위와 관련된 사실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있는데도 원심이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증거가 없다거나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위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심의 전권인 증거의 취사선택과 평가나 사실인정을 다투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더라도,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잘못이 없다.
3. 결론
원심판결 중 착수보수금과 부가가치세에 관한 약정금 청구 부분에 관한 상고는 이유 있으므로 이 부분을 파기하여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고, 나머지 상고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김신, 대법관 조희대의 별개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4. 약정금 청구 중 착수보수금 및 부가가치세 관련 부분에 대한 대법관 김신, 대법관 조희대의 별개의견
가. 다수의견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근거하여, 당사자가 계약으로 정한 변호사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인정되면 이를 감액할 수 있다고 한다.
나.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고, 신의칙 또는 형평의 관념에 의해서는 당사자가 계약으로 정한 변호사보수금을 감액할 수 없음을 밝힌다.
(1) 헌법 제10조 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에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포함되고,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부터 사적 자치의 원칙이 파생된다. 또한 헌법은 전문과 제4조 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천명하고, 헌법 제119조 제1항 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하여 시장경제질서를 기본 이념으로 선언하고 있다.
사적 자치의 원칙은 시장경제질서의 기초가 되는 헌법상의 원리이다. 이러한 사적 자치의 원칙이 법률행위의 영역에서 나타난 형태인 계약자유의 원칙은 계약의 체결 여부, 계약의 상대방, 계약의 방식과 내용 등을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로 결정하는 자유를 말한다. 이는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저마다 자유로운 경쟁 아래 최적의 계약조건을 탐색하고 자신의 조건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 끝에 서로 간에 의사가 합치되는 지점을 찾아낸 경우 그 지점에서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효율적인 의사결정 방법이 된다는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체결된 계약은 지켜져야 하고, 계약 실현에 대한 당사자들의 신뢰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계약이 그 내용대로 준수되리라는 믿음에 대한 법적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시장경제질서도 원활하게 작동할 수 없다.
물론 사적 자치의 원칙 또는 계약자유의 원칙은 무제한의 절대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 역시 제23조 와 제37조 제2항 에서 재산권의 행사 등 권리가 제한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을 뿐이다. 민법은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제103조 ), 불공정한 법률행위( 제104조 ) 등 법률행위의 무효사유를 개별적·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하는 민법 제398조 제2항 과 같이 명시적으로 계약의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법률 조항도 존재한다.
그러나 신의칙과 관련하여서는 민법 제2조 제1항 에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 에서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할 뿐 이를 법률행위의 무효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민법 제2조 의 신의칙 또는 민법에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형평의 관념은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계약을 무효로 선언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신의칙 또는 형평의 관념 등 일반 원칙에 의해 개별 약정의 효력을 제약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앞에서 본 헌법적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
(2) 당사자가 체결한 계약의 실현을 보장하는 것은 법원의 사명이다. 계약을 이행하겠다고 하는 당사자와 이행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당사자 사이에서 법원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는 당사자에게 이행을 명함으로써 계약을 이행하고자 하는 당사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계약을 그 내용대로 이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피고 1은 자신이 체결한 계약에 법이 정한 무효 또는 취소 사유가 없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다툰다. 이런 상황에서 원심은 계약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는 위 피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역할에 반하는 결론을 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개인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 따라 행동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귀속시키거나 전가하지 아니한 채 스스로 이를 감수하여야 한다는 ‘자기 책임의 원칙’은 계약을 둘러싼 법률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당사자는 자신이 계약을 체결한 결과 발생하게 되는 이익이나 손실을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사안에 적합하도록 조정하여 합치된 의사로 적정 대가를 정해 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이는 변호사보수약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변호사는 추후에 약정보수액이 감액될 것을 각오하고 보수약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의뢰인은 자신이 한 약속에 따라 약정된 보수를 지급해야 하는 것일 뿐 새로운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약정보수액의 감액을 요구하는 당사자의 주장은 약속이 지켜지리라고 믿은 상대방의 신뢰보다 우선할 수 없고, 신의칙이 그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자신이 지급하기로 약정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려는 의뢰인의 행태야말로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다.
법원은 계약에 따른 정당한 권리행사를 신의칙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칙을 내세워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태도를 계약 위반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하여야 마땅하다.
(3) 다수의견은 법원이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결과 그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법원이 당사자가 정한 계약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법률상 근거 없이 스스로 창설했다는 문제이다.
다수의견은 신의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비추어 계약 내용의 일부만 유효하고 나머지 부분은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는 계약의 내용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 그중 일부만 지켜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계약의 내용 중 일부가 무효라는 판단은 사실상 당사자가 체결한 계약을 법원이 수정하는 것과 같다. 법원이 당사자가 약정한 보수가 과다하다는 이유로 계약의 구체적 내용에 개입하여 약정의 일부를 무효라고 선언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도 반한다. 국민이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하여 체결한 계약의 내용보다 국가가 선언하는 내용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국가만능주의를 선언하는 셈이 된다.
더구나 법원이 이러한 계약 수정 권한을 가진다는 일반 규정이나, 변호사 보수에 관한 구체적 근거 규정은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런데도 다수의견은 신의칙과 형평의 관념을 근거로 내세워 계약의 일부 무효를 선언하며 계약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고 한다.
신의칙이 계약의 무효를 선언하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은 앞에서 보았다. 그뿐 아니라 개별적·구체적인 법률의 근거 없이 신의칙에 기대어 계약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만약 신의칙이 계약 수정의 근거 규정이 될 수 있다면 민법 규정 중 상당수는 없어도 무방하다. 법원은 신의칙만으로도 얼마든지 스스로 합당하다고 인정하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의칙에 관한 민법 제2조 는 그 개념이 추상적인 일반 조항이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법원이 이러한 일반 조항을 적용할 때에는, 분명한 이유를 대기 어려운 어떤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의적인 적용, 즉 ‘일반조항으로의 도피’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또한 신의칙이 우리 민법의 대원칙이라면 그 원칙은 당연히 입법 과정에서도 반영되었을 것인데, 그러한 입법 과정을 거친 실정법의 개별 조항에 의해 명백히 인정되는 권리·의무의 내용을 신의칙을 이유로 변경하는 것은 법체계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여 법의 권위와 법적 안정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대법원도 이미 신의칙과 같은 일반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 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누차 판시해 왔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신의칙 등 일반 원칙을 직접 적용하여 실정법의 운용을 사실상 수정하는 것은, 비록 그 목적이 성문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여도, 개별적인 사안의 특수성 때문에 법률을 그대로 적용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당한 결과가 야기되는 경우에 최후 수단으로, 그것도 법의 정신이나 입법자의 결단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고려해 볼 수 있는 방안에 불과하다.
(4) 또한 다수의견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의 보수액’이란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서 도대체 어느 정도의 보수가 적정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신의칙은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추상적 규정이고 구체적인 판단의 기준을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를 초과하여 신의칙 또는 형평의 관념에 반하는지 여부에 관해 구체적인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수의견은 의뢰인과의 평소 관계, 사건 수임 경위, 사건처리 경과와 난이도, 노력의 정도, 소송물의 가액, 의뢰인이 승소로 인하여 얻게 된 구체적 이익, 그 밖에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를 정하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하는데, 위에서 든 여섯 가지 요소 역시 추상적인 내용에 불과하여 적정한 보수액을 설정하는 구체적 기준이 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적정한 보수액의 범위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 적정성 여부는 전적으로 법원의 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법관마다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액의 범위가 같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소송위임계약에서 유효하다고 인정되는 보수액의 범위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분명해지고, 법관마다 기준이 달라 하급심과 상급심의 결론이 엇갈리면 대법원의 판단까지 있어야 보수액이 최종적으로 정해진다. 그러므로 다수의견에 따르게 되면, 당사자는 계약을 자신의 의사에 따라 체결하고도 계약서 문언대로 효력이 발생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다. 계약서의 문언상 명백하고 당사자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계약의 내용에 대해서까지 법원의 판단을 받게 함으로써 법률관계의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법적 분쟁의 증가를 초래한다. 법원에 가서 신의칙을 주장하면 보수액이 감액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함으로써 결국 계약대로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법원이 앞장서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5) 판례는 당초에는 변호사의 공적인 지위, 자격이 인정된 소수가 시장을 독점하는 성격 등을 이유로 조심스럽게 보수의 감액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계약 체결 후 여러 상황을 돌이켜보니 약정한 보수가 과다하다는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변호사 보수뿐만 아니라 매매계약의 매매대금, 임대차계약의 차임 등 모든 계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판례는 모든 계약에서 신의칙을 근거로 약정한 반대급부의 규모를 조절하지는 않았다. 유독 위임계약 특히 소송위임계약에서만 비교적 쉽고 광범위하게 변호사 보수의 감액을 인정해 왔다. 법관이 비교적 익숙한 분야라고 하여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이라면 합리적 근거 없이 변호사 직역을 다른 직역과 차별하는 것이다. 변호사의 공익적 지위와 독점적 성격에 기대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최근에는 법무사와 중개사의 보수, 신탁회사의 신탁보수 등에 대하여도 신의칙과 형평의 관념을 들어 그 보수의 감액을 인정하며 위임계약 일반으로 법리가 확장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더 이상 공익적 지위 등을 이유로 내세울 수도 없게 되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추세에 의하면 앞으로 매매계약 등 다른 계약에까지 대금의 감액을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시장경제질서 아래에서 국가의 개입은 경제활동을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경제적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거기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에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국가의 개입이 언제나 효율성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계약자유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공공복리 또는 정의나 형평의 관념에 비추어 정당화될 수 없는 예외적인 사정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상황임에도, 계약의 본질적 부분인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관계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통제라는 방법을 통하여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이는 사적 자치를 근본적으로 허무는 것이어서 우리 헌법질서 아래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 민법은 계약이 사회질서에 반하거나 공정하지 않아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를 제103조 와 제104조 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민법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약정한 대가가 과다하다고 하더라도 계약자유의 원칙으로 돌아가 계약 내용대로 효력을 인정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법 규정의 흠결이 아니라 법률의 결단이다. 만일 이러한 경우에도 당사자 형평 등을 고려하여 계약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다면, 헌법에서 정한 대로 구체적 법률 규정을 마련하여야 옳지, 일반 규정인 신의칙을 적용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원고와 피고들이 소송위임계약에서 약정한 변호사 보수(착수보수금과 부가가치세) 3,850만 원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칙 및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위 변호사 보수를 2,000만 원으로 감액한 다음, 이렇게 감액된 변호사 보수 채권이 모두 변제되어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여 이 부분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위에서 본 신의칙과 형평의 관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으므로, 원심판결 중 착수보수금과 부가가치세에 관한 약정금 청구 부분은 파기되어야 한다.
라. 이상과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이 파기되어야 한다는 결론에서는 다수의견과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 파기의 이유는 달리하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