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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8. 4. 17. 선고 2004도4899 전원합의체 판결
[국가보안법위반(반국가단체의구성등)·국가보안법위반(잠입·탈출)·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등)·사기미수]〈A 교수 사건〉[집56(1)형,596;공2008상,740]
판시사항

[1]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간 행위가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탈출’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2] 외국인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간 행위가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3] 독일에서 거주하다가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이 국적 상실을 전후하여 북한을 방문한 사안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기 전의 방문행위는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탈출에 해당하지만 국적 상실 후의 방문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4] 외국인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외국 주재 북한이익대표부를 방문하여 북한공작원을 만남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행위가 외국인의 국외범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1] [다수의견] 국가보안법의 입법 취지와 같은 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문언의 의미, 특히 탈출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구속상태나 제한상황에서 벗어나는 행위 또는 빠져나가는 행위를 뜻한다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위 각 조항의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통치권 또는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를 뜻한다고 볼 것이고, 대한민국의 통치권은 대한민국의 영역은 물론 국민에 대하여도 미치는 것이므로 그러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 또는 상태에서 벗어나 통치권이 사실상 행사되기 어려운 지역 또는 상태로 이탈하는 행위는 모두 위 각 조항의 탈출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의 탈출에는,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 직접 또는 외국을 거쳐 바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 외에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그곳을 떠나 그에 대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사실상 행사되기 어려운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도 포함되며, 제6조 제2항 의 탈출에는 위 행위 외에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는 행위까지 포함된다.

[대법관 김지형, 전수안, 안대희의 별개의견] 국가보안법의 입법목적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이 한반도의 일부 지역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대한민국의 영토 참절(참절)을 기도하는 등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 맞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 및 계속성을 보장하고, 그 영토인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보전하며 그에 대한 실효적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을 고려할 때,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에서 말하는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이른바 영토고권(영토고권)이 현실적으로 미치고 있는 남한 지역으로부터 이탈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영역 밖에서 거주하다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그 행위자가 대한민국 국민이든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든 가리지 않고 모두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에서 정한 탈출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법관 박시환의 별개의견] (가) 대법관 김지형, 전수안, 안대희의 별개의견과 같다.

(나) 국가보안법 제6조는 제1항 에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탈출하는”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제2항 에서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잠입하거나 탈출하는” 행위를 가중처벌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 제6조 제2항 제1항 의 범죄를 기본 구성요건으로 하여 일정한 목적이 추가된 경우에 이를 목적범으로 가중처벌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제2항 의 “탈출”은 제1항 의 “탈출”과 동일한 개념으로서 제1항 에서 규정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한다는 요건을 갖춘 행위에 대하여만 제2항 의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2]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그곳을 떠나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대한민국의 영역에 대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는 행위 또는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통치권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는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3] 대한민국 국민이던 사람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기 전 4회에 걸쳐 북한의 초청에 응하여 거주하고 있던 독일에서 출발하여 북한을 방문하였고, 그 후 독일 국적을 취득함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후에도 거주지인 독일에서 출발하여 북한을 방문한 사안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기 전의 방문행위는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탈출에 해당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후의 방문행위는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탈출 개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4]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잠입하거나 탈출한 자” 및 같은 법 제8조 제1항 의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의 적용과 관련하여, 독일인이 독일 내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아 베를린 주재 북한이익대표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북한공작원을 만났다면 위 각 구성요건상 범죄지는 모두 독일이므로 이는 외국인의 국외범에 해당하여, 형법 제5조 제6조 에서 정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위 각 조항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 없다.

피 고 인

A

상 고 인

피고인 및 검사

변 호 인

법무법인 B외 2인

주문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검사의 상고는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북한 방문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

(1) 먼저, 대한민국 국민이던 피고인이 독일 국적을 취득함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기 전인 1991. 5.부터 1993. 3.까지 모두 4회에 걸쳐 거주하고 있던 독일에서 출발하여 북한을 방문하였다는 부분에 대하여 본다.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조 제2항 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잠입하거나 탈출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이 어디로부터 또는 무엇으로부터의 탈출을 뜻하는 것인지 국가보안법 자체에서 명시하고 있지는 아니하나,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및 국민을 존립의 본질적 요소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계속성 그리고 국민의 생존과 자유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의 입법 취지와 위 각 조항의 문언의 의미, 특히 탈출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구속상태나 제한상황에서 벗어나는 행위 또는 빠져나가는 행위를 뜻한다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위 각 조항의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통치권 또는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를 뜻한다고 볼 것이고, 대한민국의 통치권은 대한민국의 영역은 물론 국민에 대하여도 미치는 것이므로 그러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 또는 상태에서 벗어나 통치권이 사실상 행사되기 어려운 지역 또는 상태로 이탈하는 행위는 모두 위 각 조항의 탈출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 법 제6조 제1항 의 탈출에는,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 직접 또는 외국을 거쳐 바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 외에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그곳을 떠나 그에 대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사실상 행사되기 어려운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도 포함되며, 제6조 제2항 의 탈출에는 위 행위 외에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는 행위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나아가,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구성요건의 문언은 합헌적 해석이 가능하고, 그 소정의 행위는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되는 것이므로 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고( 헌법재판소 2002. 4. 25. 선고 99헌바27, 51 결정 등), 위 조항에서의 지령은 그 주고 받은 사람 사이에 상명하복의 지배관계가 있을 것을 필요로 하지 아니함은 물론 지령의 형식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고, 은밀한 방법에 의하여 전달될 필요도 없다( 대법원 1990. 6. 8. 선고 90도646 판결 등 참조).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기 전인 1991. 5.부터 1993. 3.까지 모두 4회에 걸쳐 북한의 초청에 응하여 거주하고 있던 독일에서 출발하여 북한을 방문하고 C 등을 만나 북한 체제 유지·존속에 협력한 행위에 대하여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탈출에 관한 죄책을 인정한 원심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사유는 없다. 이 부분 피고인의 상고이유는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2) 다음은, 피고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이후인 1994. 3. 12. 거주지인 독일에서 출발하여 북한을 방문하였다는 부분에 대하여 본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그곳을 떠나 그에 대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사실상 행사되기 어려운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통치권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에 해당하여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 개념에 포함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그곳을 떠나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대한민국의 영역에 대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는 행위 또는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통치권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는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 역시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에서 정한 탈출 개념에 포함된다는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1997. 11. 20. 선고 97도2021 전원합의체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안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원심은, 피고인이 독일 국적을 취득함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이후 독일에 거주하다가 1994. 3. 12. 독일에서 출발하여 북한을 방문한 행위가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에서 정한 탈출 개념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그곳을 떠나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탈출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위반한 위법을 범한 것이고, 그 잘못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인의 1994. 3. 12. 북한 방문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부분은 이에 관한 피고인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하여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나. 소송사기미수 부분

소송사기는 법원을 속여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음으로써 상대방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로서, 자신의 소송상 주장이 허위임을 잘 알면서도 이를 기초로 하여 상대방에게 금전 지급을 구하는 소송상 청구에 나아간 이상 이미 소송사기 실행의 착수에 이른 것이고, 승소하더라도 판결을 실제 집행할 의사가 없었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에게 소송사기미수의 죄책을 인정한 원심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편취의 범의, 불법영득의사 등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은 없다. 이 부분 피고인의 상고이유는 모두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2.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반국가단체의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 종사 및 탈출·회합·연락 등에 관한 법리오해 주장 부분

국가보안법은 제1조 에서, “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항 ),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위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제2항 )고 명시하고 있는바, 어떤 행위가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는지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취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은 여러 이유를 들어 피고인의 저술활동과 통일학술회의 개최 주관 활동 등이 반국가단체의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피고인이 C 장례식에 참석·조문하고 D에게 명절·생일 축하 편지를 보낸 행위나 통일학술회의 개최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여 관계자를 만난 행위가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은 없다. 이 부분 상고이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 외국인의 국외범 해당 여부에 관한 법리오해 주장 부분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잠입하거나 탈출한 자” 및 같은 법 제8조 제1항 의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의 적용과 관련하여, 독일인이 독일 내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아 베를린 주재 북한이익대표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북한공작원을 만났다면 위 각 구성요건상 범죄지는 모두 독일이므로 이는 외국인의 국외범에 해당하여, 형법 제5조 제6조 에서 정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위 각 조항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독일 국적을 취득함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피고인이 독일 내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아 1997. 7. 7. 베를린 주재 북한이익대표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북한공작원을 만난 행위는 외국인의 국외범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위법은 없다. 독일 베를린 주재 북한이익대표부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볼 수 있다는 주장 등은 모두 독자적인 견해에 불과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부분 상고이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 그 외 원심의 사실인정에 관한 채증법칙 위반 주장 부분

검사의 나머지 상고이유 주장 요지는 결국, 사실심인 원심의 전권에 속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사실의 인정을 탓하는 취지에 불과하므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 부분 상고이유 역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3. 결 론

그렇다면 원심판결 중 피고인의 1994. 3. 12. 북한 방문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부분은 파기를 면할 수 없고, 원심은 이 부분과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는 나머지 유죄 부분에 대하여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으므로 결국,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전부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며, 검사의 상고는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원심판결 중 북한 방문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부분에 관하여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전수안, 대법관 안대희의 별개의견과 이와 다른 대법관 박시환의 별개의견이 있는 외에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고,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대법관 김황식, 대법관 박일환의 보충의견이 있다.

4. 원심판결 중 북한 방문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부분에 관한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전수안, 대법관 안대희의 별개의견

다수의견은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통치권 또는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를 뜻한다고 볼 것이고, 대한민국의 통치권은 대한민국의 영역은 물론 국민에 대하여도 미치는 것이므로 그러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 또는 상태에서 벗어나 통치권이 사실상 행사되기 어려운 지역 또는 상태로 이탈하는 행위는 모두 위 각 조항의 탈출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 각 조항에서의 탈출은 대한민국의 영역에 대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으로부터 이탈하는 행위만을 의미할 뿐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통치권이 미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하는바, 그 이유를 아래에서 밝혀 두고자 한다.

원래 국가보안법의 입법 목적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이 한반도의 일부 지역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대한민국의 영토 참절(참절)을 기도하는 등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 맞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 및 계속성을 보장하고, 그 영토인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보전하며 그에 대한 실효적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을 고려할 때,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에서 말하는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이른바 영토고권(영토고권)이 현실적으로 미치고 있는 남한 지역으로부터 이탈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다수의견은, 대한민국 국민이 이른바 대인고권(대인고권)이 미치는 상태로부터 벗어나 사실상 대인고권이 행사되기 어려운 상태로 이탈하는 행위 역시 위 각 조항에서 말하는 탈출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하나, 이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남한 지역에 대한 이른바 영토고권은 국가기관과 제도 및 법령 등을 통하여 현실적이고 직접적·구체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실효적인 지배권인데 비하여, 외국에 머무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서는 그 외국 국가의 영토고권에 의한 지배력이 실효적으로 미치게 되어 그에 대한 대한민국의 이른바 대인고권은 해당 국가와 대한민국 사이의 외교관계 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행사될 여지가 있을 뿐인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지배력에 불과하여 양자를 동일하게 취급하기는 어렵다. 특히, 국제기구나 조약 등을 통한 긴밀한 협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국가에 거주하는 국민에 대한 대한민국의 이른바 대인고권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에 불과하고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전혀 기능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이른바 대인고권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유형의 탈출 개념을 일반적·추상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괴리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대한민국의 이른바 영토고권이 현실적으로 미치고 있는 남한 지역으로부터 떠나는 행위는 절차적인 면에서나 행위자의 인식 면에서도 대한민국의 통치권 내지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외국에 거주하던 국민이 대한민국의 이른바 대인고권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라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에 불과하여 절차적으로는 물론 행위자의 인식 면에서도 이를 대한민국의 통치권 내지 지배력으로부터 이탈한다고 보기 곤란하다. 따라서 외국에 거주하는 국민이 대한민국의 이른바 대인고권으로부터 벗어나 대인고권이 사실상 행사되기 어려운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까지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에서 정한 탈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면, 외국에 거주하던 국민으로서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어떤 행위가 대한민국의 이른바 대인고권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가 되어 처벌받게 되는지 알기 어려워 국민의 이전의 자유 또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침해할 우려가 적지 않다.

국가보안법제1조 제2항 에서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 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여 국가보안법상의 처벌조항에 대한 무리한 확대 해석적용 등을 엄격히 경계하고 있는바,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 개념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이를 충분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편, 다수의견은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통치권 또는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를 뜻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대한민국의 통치권 또는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가 아닌 경우까지 탈출로 인정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즉, 다수의견은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의 이른바 영토고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는 행위를 탈출로 인정하고 있으나, 위와 같은 경우 대한민국의 이른바 대인고권은 아무런 변화 없이 여전히 미치고 있으므로 위 행위를 대한민국의 통치권 또는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질적으로 대한민국의 대인고권은, 대한민국의 영토고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모두 포함하는 그보다 더 넓은 지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미치는 것인바, 대한민국 국민의 경우 대한민국의 영토고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대인고권이 미치는 상태 안에 머물러 있는 이상, 대한민국의 통치권 또는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수의견의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실효적인 지배력으로 평가하기 곤란한 대인고권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까지 탈출 개념에 무리하게 포함시킨 데서 비롯된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

나아가 다수의견에 따르면 실제 법적용에 있어서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과 외국에 영주권 등 체류자격을 가지고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과의 사이에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탈출의 개념을 달리하게 하여 그 처벌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초래하는 결과가 예상되는바, 이는 본질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지나치게 달리 취급하는 것이어서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영역 밖에서 거주하다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그 행위자가 대한민국 국민이든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든 가리지 않고 모두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에서 정한 탈출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의 영역 밖에서 거주하던 사람이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그 행위자가 대한민국 국민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모두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에서 정한 탈출에 해당된다는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1997. 11. 20. 선고 97도2021 전원합의체 판결 등은 위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되어야 한다.

결국, 이 사건에서 독일에 거주하던 피고인이 1991. 5.부터 1994. 3. 12.까지 모두 5회에 걸쳐 북한의 초청에 응하여 북한을 방문한 행위는 그 중간에 피고인의 국적이 대한민국에서 독일로 바뀐 것과 무관하게 모두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탈출 개념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위 방문 행위가 모두 위 조항의 탈출 개념에 포함된다고 본 원심판결에는 탈출 개념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어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인의 북한 방문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부분은 그 부분에 관한 피고인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하여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파기를 면할 수 없는바, 이 부분이 파기되어야 한다는 다수의견과 결론은 같이 하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파기의 이유를 달리하므로 별개의견을 밝혀 두는 것이다.

5. 원심판결 중 북한 방문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부분에 관한 대법관 박시환의 별개의견

가.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제2항 에 규정된 “탈출”의 개념

우선,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제2항 에 규정된 “탈출”의 의미와 관련하여, 이는 대한민국의 영역에 대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으로부터 이탈하는 행위만을 의미할 뿐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통치권이 미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므로 대한민국의 영역 밖에서 거주하다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위 조항에서 말하는 “탈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전수안, 대법관 안대희의 별개의견과 뜻을 같이 하면서, 그에 추가하여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 지역으로 탈출”하는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제2항 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 탈출”하는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 제1항 은 “탈출”의 개념에 관하여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한 자”로 규정하여 탈출의 목적지를 명시하고 있는 반면에, 제2항 은 목적지를 언급하지 아니한 채 단순히 “탈출한 자”로 규정하여, 제1항 제2항 의 “탈출”을 동일한 개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개념으로 볼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다수의견은 이에 대하여 위 두 탈출의 의미를 동일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 제1항 의 탈출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 직접 또는 외국을 거쳐 바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라고 해석하여, 법문에 명시된 대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간 경우에만 탈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에, 제2항 의 탈출은 “ 위 제1항 의 행위 외에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는 행위”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여, 제2항 의 탈출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으로부터 이탈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탈출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견의 위와 같은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 제6조는 제1항 에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탈출하는”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제2항 에서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잠입하거나 탈출하는” 행위를 가중처벌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따라서 제6조 제2항 제1항 의 범죄를 기본구성요건으로 하여 일정한 목적이 추가된 경우에 이를 목적범으로 가중처벌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 될 것이며, 그러한 해석에 따른다면 제1항 의 “탈출”의 의미와 제2항 의 “탈출”의 의미가 서로 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제2항 제1항 의 구성요건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이를 이어받아 중복되는 표현을 생략한 채 단순히 “잠입 또는 탈출”이라고만 기재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근거는, 국가보안법이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행위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칠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는 위험성의 요소를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으면서 제6조 제2항 에서만 이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국가보안법에서 반국가단체와 관련된 행위를 처벌하는 모든 처벌규정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제3조 제4조 는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 자체가 그러한 위험성을 당연히 내포하는 행위이므로 따로 위험성의 요소를 구성요건으로 규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유독 제6조 제2항 에서만 그 위험성의 요소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제6조 제2항 의 목적수행 또는 협의를 위한 잠입·탈출행위에 한하여 국가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험성이 없는 경우에도 항상 처벌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할 이유가 없다. 제6조 제2항 에서 목적으로 규정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 또는 그와의 협의의 내용 중에는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즉 아무런 위험성이 없는 지령·협의 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인데, 그 모든 행위를 반국가 사범으로 처벌하는 것은 위헌적인 법적용이 된다는 점에 관하여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여러 차례 판시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1990. 4. 2. 선고 89헌가113 결정 , 헌법재판소 1997. 1. 16. 선고 89헌마240 결정 , 헌법재판소 1998. 8. 27. 선고 97헌바85 결정 , 헌법재판소 2002. 4. 25. 선고 99헌바27, 51 결정 , 대법원 1995. 9. 26. 선고 95도1624 판결 등) 이 사건의 다수의견도 이에 대하여는 의견을 달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제6조 제2항 의 잠입·탈출에 대하여도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인데, 제6조 제2항 에서만 유독 그 위험성의 요소를 규정하지 않고 있는 이유 역시 제2항 제1항 의 범죄를 기본구성요건으로 하여 이를 이어받아 중복되는 표현은 생략한 채 구성요건을 기재한 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국가보안법 제1조 제2항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때에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도록 하고 확대해석하거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 취지에도 맞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제1항 의 구성요건을 전제로 이와 동일한 잠입·탈출행위를 처벌대상으로 하면서 목적범의 가중처벌만을 규정한 조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제2항 의 “탈출”은 제1항 의 “탈출”과 동일한 개념으로서 제1항 에서 규정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한다는 요건을 갖춘 행위에 대하여만 제2항 의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으로부터 이탈하는 행위 자체로 제2항 의 탈출죄가 성립한다는 다수의견의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며, 다수의견과 같은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1997. 11. 20. 선고 97도2021 전원합의체 판결 등은 위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되어야 한다.

나. 피고인의 북한 방문행위에 위험성이 있는지 여부

(1)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위험성의 요소를 구성요건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1항 에서 규정한 위험성의 요소를 제2항 이 그대로 이어받아 이를 전제로 가중처벌요건만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므로 위 제2항 의 탈출죄에도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2) 다수의견은, 피고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기 전인 1991. 5.부터 1993. 3.까지 사이에 4회에 걸쳐 북한의 초청에 응하여 북한을 방문하고 C 등을 만나 북한체제 유지·존속에 협력한 행위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다고 보아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의 북한 방문행위에 국가보안법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위험성이 있다고 본 다수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3) 우선 국가보안법에서 반국가단체와 관련된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구성요건으로 요구하는 위험성의 의미와 정도에 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그 생각이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를 외부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설득하고, 나아가 자기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서 자기의 생각이 실현되도록 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권리이기 이전에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이며 천부적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같을 수가 없고 서로 다른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각자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을 상대로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를 공격하거나 그 생각을 제한하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해 가는 인간공동체에서는 허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어떤 생각에 있어서 절대 다수자라 하더라도 그 반대편인 소수자가 갖고 있는 반대의견에 대하여 제한을 가할 수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다수자의 생각이든 소수자의 생각이든 그 생각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는 동등한 것이며, 다수자와 소수자라는 요소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우연한 요소에 불과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하여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가 있다. 그것은 그 생각이 사회공동체와 구성원에게 위험을 가하기 때문에 도저히 그 생각을 그대로 둘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정된다. 그러면 어떤 생각을 제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이 어느 정도 수반될 것을 요구할 것인가?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 불안감과 두려움은 근거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근거 없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자가 다수일 때 근거 없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은 더 이상의 근거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도 다수자가 느끼는 거부감의 힘을 빌려 이를 느끼는 자가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얻고 그 원인을 제공한 소수자의 생각은 위험한 것으로 규정되어 소수자의 생각에 제한을 가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와 같은 경향은 과거 시대 마녀사냥 등의 사례를 통하여 역사가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과거는 물론 오늘날에도 소수자와 약자의 생각은 다수자가 느끼는 거부감과 불안감이 위험성으로 둔갑되고 사소한 위험성이 과도하게 과장되어 결국, 소수자와 약자의 생각은 필요 이상으로 억압과 제한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로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아야 할 다수자와 소수자의 생각 사이에 적용되는 이와 같은 불균형과 불합리를 제거하기 위하여 인류는 오래 동안 노력해 왔으며, 그 결과물로 찾아낸 원칙이 어떤 생각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수반할 때에 한하여 비로소 규제가 가능하다는 원칙이다. 다수자의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에 의하여 추정되고 의제된 위험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직접적이고 중대한 위험이 명백하게 인정될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소수자·반대자의 생각을 규제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그 원칙의 타당성이 널리 인정받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다수자·강자는 소수자·약자의 자기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끊임없이 위험성의 의구심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이리저리 위험성의 덧칠을 하여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억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위험성의 판단 기준을 더욱 엄격히 세우고, 이를 적용함에 있어 다수자·강자의 소수자·약자를 억압하고자 하는 욕구와 유혹에 맞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사람의 생각을 규제하기 위한 요건인 위험성의 의미와 기준을 정리해 보면, 첫째로 그 위험은 명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확실하지 않은 요소들을 가지고 추정하거나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사항을 가지고 한쪽으로 의미 부여를 하여 의제된 위험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규제할 수는 없다. 둘째로 그 위험은 직접적인 위험이어야 한다. 여러 단계의 인과관계 추론과정을 거쳐 우회적으로 위험과 연결되는 간접적 원인 요소 모두를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 위험에 필연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생각에 한하여 규제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그 위험은 당장 급박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현존하는 위험이어야 한다. 어느 생각이 옳고 어느 생각이 위험한 것인지는 다른 반대 생각들과 함께 비교·토론의 과정을 거쳐 논증된 뒤에 결론 지워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사상의 공개시장에 동등하게 올려져 자유경쟁을 통하여 판가름나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토론과 자유경쟁을 거칠 시간 여유가 없을 만큼 급박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수반하는 생각에 한하여 비로소 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넷째로 그 위험은 중대한 위험이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가지는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면 중대한 위험, 즉 그 사회공동체가 감수하기 어렵거나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는 위험에 한하여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것이며, 다소간의 불이익과 사소한 위험을 동반하는 생각에 대하여 침묵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 열거한 조건을 모두 갖춘 위험한 생각이라 하더라도 생각 그 자체는 절대적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제한할 수 없다.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 또는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외부로 표시만 하는 행위 자체는 그 생각의 외부표출 자체가 별도의 법익을 현실적으로 침해하여 허용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를 규제할 수 없다. 그 생각이 갖고 있는 위험의 요소들이 실현되는 단계로 나아가는 지점이 비로소 법의 관여가 시작되는 경계점이며, 그 이전 단계의 생각 자체나 생각의 단순한 표현 자체로는 위에서 말한 정도의 위험성이 실제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제한에 대한 엄격한 해석은, 지난 시기에 국가보안법이 정권안보 차원이나 비판세력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오·남용되고 공안담당기관의 과잉의욕에 의하여 무리한 법집행이 이루어짐으로써 국민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오히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중핵인 기본권이 위태롭게 되었던 지난 시대를 정리하고 다시는 그런 전철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과거로부터 확실한 단절을 긋는다는 의미에서도 반드시 확실히 해 두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에서 말하는 위험성의 기준과 의미에 관하여 위에서 제시한 엄격한 기준과 달리 더 완화된 기준을 제시하거나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여 유죄를 인정한 다수의 대법원 판결들은 모두 변경되어야 할 것이다.

(4) 위와 같은 기준에 따라 이 사건 피고인의 북한 방문행위가 국가보안법에서 요구하는 위험성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관하여 살펴본다.

원심판결이 인정한 범죄사실을 기초로 피고인의 이 부분 탈출죄와 관련된 행위를 요약하면, 피고인이 1991. 5.부터 1993. 3.까지 사이에 4회에 걸쳐(원심판결에서 유죄로 인정한 1994. 3. 12.자 북한 방문행위에 대하여는 다수의견이 당시 피고인이 한국국적을 갖고 있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하였고 나 역시 그 판단에 동의하는 바이므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으나, 그 행위의 위험성 측면에서는 아래에서 살펴볼 그 이전 4회의 방북행위와 별다른 차이가 없으므로 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여 둔다) 북한으로 들어가 일정기간 머무르다 독일로 돌아온 사실이 있는데, 당초 북한 사회과학원,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자협회 부위원장 등의 초청을 받고 북한에 가게 되었고, 북한에 들어가서는 주체철학 등에 관하여 학술좌담회를 개최하여 발언하거나, 학술토론회에 참석하여 토론하거나, 주체철학 강의를 듣거나 학습하고 관련 자료를 받고, C 또는 북한 간부들과 면담하면서 강의 요청 등을 받았으며, 독일 내의 친북 학술단체인 한국학술연구원 재개설을 위한 협의를 하고 그 운영자금의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C 생가 등 관광, 북한 간부 무덤 앞에서의 묵상, 북한 방문의 여행경비로 2,000달러, 1,000달러 등을 받는 등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고인이 좌담회 등에서 발언하거나 C 등과의 면담에서 이야기 나눈 내용은 남쪽에서도 주체사상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거나, 자본주의에 대한 강의 요청을 받고, 사회주의 체제와 북한 체제와 차이점, 남북한 UN가입, 주한미군 보유핵 철수 문제, 한반도 비핵화 방안 등에 관하여 대담하는 정도였다.

위와 같은 행위를 하기 위하여, 또는 그런 행위들에 대한 지시나 요청을 받고 북한을 방문한 피고인의 행위에 국가보안법에서 요구하는 위험성이 있는지를 보면, 우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상 그 자체는 아무리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라 하더라도 절대적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사상의 내용 그 자체의 위험성을 이유로 이를 제한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사상을 있는 그대로 외부로 표출만 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피고인이 한 행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피고인이 친북사상을 가졌다고 가정하더라도 피고인은 학자로서 자신이 가진 친북사상이나 주체사상 등에 관하여 같은 생각을 가진 북한 내의 학자들과 모여 서로 생각을 나누고 토론을 하고 그 사상을 학습하는 행위와 이에 부수되는 행위를 하였다는 것에 불과하다. 통상 어떤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고 학습한다고 하여 새삼스럽게 위험이 더 발생하거나 그 위험성의 강도가 크게 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각자가 개별적으로 또는 소수의 사람들이 함께 가지고 있던 위험한 생각을 다수가 모여 확인하고 공감대를 넒혀 감으로써 위험성이 현저히 증가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그 위험한 생각을 서로 나누는 단계를 넘어서서 생각의 실현으로 위험성이 현실화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역시 위에서 말한 정도의 위험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이 사건에서 피고인 등이 토론하고 학습하였다는 친북사상이나 주체사상은 이미 북한 지역에서 지배사상으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생각으로서 피고인 등의 토론과 학습으로 인하여 비로소 그 세가 넓혀졌다거나 강화되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토론과 학습이 이루어진 곳이 학자들이 모인 학술토론회의 성격 정도에 그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누구나 자기 생각을 외부로 나타내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생각을 나누고 그 생각을 더욱 심화시켜 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이고, 사상의 자유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권리이다. 그에 따른 행위가 특별히 별도의 위험을 새로 유발하거나 본래 그 사상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크게 강화시키는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행위는 사상의 자유 자체가 갖고 있는 불가침의 영역에 놓아두어야 한다. 다수자가 소수자의 사상이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소수자들이 자기들 생각을 외부로 표현하고 소수자들끼리 모여 자기들 생각을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마저 막을 수는 없다. 더구나 피고인의 이 사건 행위는 그러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인 북한 내의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 내에서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그 생각들을 나누고 토론하고 학습하였다고 하여 그 영역 외부에 대하여까지 새삼스럽게 현실적인 위험을 따로 더 발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나눈 학습의 내용도 주체사상 등의 본래 내용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종전과 달리 특별히 위험성을 가중시키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거나 새로운 시도나 계획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

(5) 결국,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한 행위라는 것은, 피고인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상을 추구하며 같은 사상을 가진 사회에 들어가 이를 공부하였다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그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사상을 따라가는 것까지 막아야 할 정도로 각박하거나 취약한 사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도 사상의 자유의 면에서 좀 더 성숙하고 여유있는 자세를 취해도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 국가보안법의 위헌성 여부에 관하여

다수의견은,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은 합헌적 해석이 가능하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되는 것이므로 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피고인의 이 사건 방북행위가 북한체제의 유지·존속에 협조한 행위로서 그와 같은 위험성이 있는 행위라고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 제5항 에 대한 1990. 4. 2. 선고 89헌가113 결정 등에서, 국가보안법의 여러 조항들이 형벌법규의 명확성을 결여한 죄형법정주의 위배, 언론·출판의 자유와 학문·예술의 자유 및 사상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침해, 자의적 선별 법집행을 가능하게 한 평등권 위배, 헌법 전문과 헌법 제4조 의 평화통일 규정 위배 등 위헌적 요소가 많다고 하면서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위헌성을 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정합헌결정을 하였다(위 헌법재판소 사건에서 법무부장관은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국가보안법은 1991. 5. 31.자로 개정되면서 거의 모든 조항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이 추가로 규정되었으며, 그 이후 선고된 다수의 대법원 판결에서는 공소제기된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한다고 하면서 상당수 사건에서 그러한 위험성을 인정하여 유죄판결을 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의 여러 조항에 대하여 위헌적 요소가 많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전부 무효화시키는 위헌결정을 하지 않고 한정합헌결정을 한 이유는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학문·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해석될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고, 대법원 또한 그러한 취지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의 실제 적용 현실을 보면 위 헌법재판소 결정과 국가보안법 개정 이후에도 그 전과 비교하여 실질적 의미가 있는 변화가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1992. 3. 31. 선고 90도2033 전원합의체 판결 의 각 반대의견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개정된 국가보안법에서 요건으로 추가된 위험성의 요소를 엄격히 해석하지 않으면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이 되는 사상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과 검찰은 종전과 조금도 변함없는 기준에 따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에 대하여 수사와 기소를 하고 있고, 법원 역시 종전과 별 차이 없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할 가능성이 있고 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기만 하면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기에 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아 유죄판결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마다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하면서도 실제로는 실질적이지도 않고 명백하지도 않은 추정된 위험이나 단순한 위험의 개연성만을 가지고 유죄로 인정하는 판결을 계속함으로써 결국, 국가보안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과 법 개정을 통하여 추가된 위험성의 요건은 실질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요건으로 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 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에 대하여 법 개정 전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기준을 적용하여 위험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다수의견 역시 그 입장을 따름으로써,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정도에 이르지 못한 행위들에 대하여도 국가보안법이 요구하는 위험성을 갖춘 것으로 인정하여 그 적용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와 같은 행위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현행 국가보안법 조항은 여전히 위헌성의 요소를 제거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 그와 같이 위헌적 요소가 제거되지 못한 국가보안법은 마땅히 폐지되거나 근본적으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며, 법원으로서는 이 사건 국가보안법 조항에 대하여 다시 한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라고 할 것이다.

라. 결론적으로,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대한민국의 영역이 아닌 독일에 거주하다가 북한으로 들어간 행위는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에서 말하는 “탈출”에는 해당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북한을 방문하여 한 행위들에는 합헌적 해석기준에 맞는 정도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러한 행위를 하기 위하여 북한으로 들어간 피고인의 방북행위 역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성이 있는 행위라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피고인의 이 사건 북한 방문행위 전체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며, 위험성의 기준에 관하여 다수의견과 같은 해석에 따른다면 이 사건 국가보안법 조항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여야 할 것임에도, 이를 그대로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어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인의 북한 방문행위에 대한 유죄 부분이 모두 파기되어야 한다는 결론에서는 다수의견과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 이유는 달리하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둔다.

6. 대법관 김황식, 대법관 박일환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의 탈출 개념과 같은 조 제2항 의 탈출 개념은 서로 다른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는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혀둔다.

무엇보다, 위 두 조항의 탈출 개념을 동일하게 해석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 제2항 의 문언에 명백히 반한다. 즉,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여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의 탈출 행위만을 구성요건 행위로 삼는다는 취지를 명시하는 한편, 같은 조 제2항 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잠입하거나 탈출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같은 조 제1항 과는 달리 탈출 행위의 목적지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만약, 입법자가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같은 조 제1항 에 목적요건이 추가된 가중처벌조항으로 하여 두 조항의 탈출 개념을 동일한 것으로 할 의도였다면, 같은 조 제2항 을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제1항 의 행위를 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형식을 취하였을 것이다. 입법자가 이러한 형식을 취하지 않고 굳이 별도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이라는 장소적 한정이 부과되지 않은 탈출이라는 문언을 같은 조 제2항 에서 직접 사용한 것은 그 탈출의 의미가 제1항 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위와 같이 명백히 같은 조 제1항 보다 넓은 개념으로 규정되어 있는 같은 조 제2항 의 탈출 개념을 함부로 제1항 과 같은 범위 내로 좁혀 해석하는 것은, 입법자의 입법의사를 무시하는 것으로 권력분립원칙에 반하며 가능한 법률해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

또,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같은 조 제1항 보다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더 큰 행위를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의 구성요건 행위인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의 탈출 행위”는, 주관적 구성요건 요소인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과 결합되지 않는 한, 그 행위 자체가 국가보안법상 처벌대상으로 삼을 정도의 위험성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같은 조 제2항 의 구성요건 행위인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한 탈출 행위”는 이미 반국가단체의 목적수행 또는 이에 협력하기 위한 활동 즉,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로서의 성격이 농후하기 때문에,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국가보안법상 처벌대상으로 삼을 정도의 위험성을 상당부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같은 조 제2항 의 목적을 가진 탈출 행위는 그러한 목적을 가지지 않은 제1항 의 탈출 행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폭 넓게 규율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성이 있는 것이고, 같은 조 제2항 이 구태여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를 따로 명시하지 않은 것도 제2항 의 구성요건 행위가 가지는 위와 같은 본질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나아가, 한반도의 실제 상황에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목적·활동에 동조하는 사람이, 실제로 외부에서 북한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 안으로 들어가 지령을 받거나 목적수행을 협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장애가 있고, 이로 인하여 종래 북한은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한반도 인접 국가들에서 이들과 접촉하여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활동을 부추기는 지령을 전달하거나 목적수행을 협의하는 방법을 빈번하게 사용해 왔는바,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같은 조 제1항 보다 탈출 개념을 넓게 설정함으로써 위와 같은 목적의 탈출 행위까지 처벌대상으로 삼겠다는 입법자의 의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탈출 개념은 문언을 있는 그대로 보아,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목적지를 한정하고 있는 같은 조 제1항 의 탈출 개념과는 구별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대법원장 이용훈(재판장) 대법관 고현철 김영란 양승태 김황식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박일환(주심) 김능환 전수안 안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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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04.3.30.선고 2003고합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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