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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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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04. 7. 21. 선고 2004노827 판결
[국가보안법위반(반국가단체의구성등)·국가보안법위반(잠입·탈출)·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등)·사기미수][미간행]
피 고 인

송두율

항 소 인

피고인 및 검사

검사

정점식외 1인

변 호 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김형태외 7인

주문

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원심판결 선고 전의 구금일수 161일을 위 형에 산입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5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제1항(반국가단체의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의 종사의 점), 제2의 바항(1994. 7. 13.자 반국가단체지역으로의 탈출의 점), 제4항(3회에 걸친 각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연락의 점)은 각 무죄.

원심판결 중 무죄부분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Ⅰ. 항소이유의 요지

1. 피고인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뒤에 피고인의 변호인이 제출한 항소이유보충서는 적법한 기간 안에 피고인의 변호인이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보충하는 범위 안에서만 판단한다)

가. 원심판결 중 국가보안법의 위헌·무효성에 관한 판단 부분에 대하여

(1)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것은 헌법이 추구하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지향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이고, 국민들에게 평화적 통일노력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규범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2) 국가보안법은 죄형법정주의 및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고, 기본권 제한의 헌법상 한계를 일탈하였으며, 사상이 다른 집단을 ‘적’으로 보고 그 집단 자체를 말살하려는 수단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도 반한다.

나. 원심판결 중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의 종사의 점에 대하여

(1) 국가보안법 제3조 제1항 제2호 는, ① 헌법 제12조 제1항 의 신체의 자유에 대한 규정 및 죄형법정주의, ② 헌법 제11조 소정의 평등의 원칙, ③ 헌법 제37조 제2항 소정의 과잉금지의 원칙, ④ 헌법 전문과 헌법 제4조 의 평화통일정책에 관한 규정에 각 위배되는 위헌·무효의 법률이다.

(2) 이 부분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의 간부로 선임되었다는 시기가 불명확하고 선임방법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

(3) 피고인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증거능력이 없는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와 공소외 1의 진술 중 공소외 2, 3으로부터의 각 전문진술 부분, 공소외 4가 작성하였다는 컴퓨터 디스켓 2개(증제1호) 및 그 출력문서인 각 대북보고문의 증거능력을 모두 인정하여 이를 근거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4) 피고인의 각종 저술활동은 학문연구의 목적에 기한 것이므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5) 그 밖에 나머지 범죄사실(피고인이 1988. 12.경 국내에서 간행된 월간지 〈사회와 사상〉에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에 관한 글을 기고하였다는 부분과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학술연구원을 운영하였다는 부분 및 1994. 7. 19. 김일성 장례식 행사에 참석하여 조문하였다는 부분) 역시 국가보안법 제3조 제1항 제2호 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도적 임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다. 원심판결 중 특수탈출의 점에 대하여

(1) 피고인은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특수탈출죄에서 규정하고 있는대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탈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 공소사실은 모두 무죄이고, 가사 이를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의 단순탈출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경우에도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었으므로 모두 공소기각의 판결을 하여야 한다.

(2) 이 부분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독일 국적을 취득한 1993. 8. 18. 이후의 각 특수탈출의 점은 이른바 외국인의 국외범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나라 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공소기각의 판결을 하여야 한다.

(3) 만일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령’ 및 ‘탈출’의 개념을 이 사건의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확대해석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 내용인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어 위 법률조항은 위헌·무효이다.

라. 원심판결 중 회합·통신의 점에 대하여

(1) 이 부분 각 공소사실은 모두 피고인이 독일 국적을 취득한 1993. 8. 18. 이후에 있은 일로서 이른바 외국인의 국외범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나라 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공소기각의 판결을 하여야 한다.

(2) 가사 그렇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김정일에게 설 명절 축하편지나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 축하편지를 보낸 행위는 모두 의례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마. 원심판결 중 사기미수의 점에 대하여

(1) 피고인이 공소외 1을 상대로 제기한 이 부분 민사소송의 핵심적인 쟁점은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인 ○○○인지 여부라고 할 것인데, 피고인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없으므로 법원을 기망하였다고 할 수 없다.

(2) 또한, 피고인은 애초부터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위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일 뿐 금전 취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편취의 범의 및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었다.

바. 양형에 대하여

원심의 형량이 너무 무겁다.

2. 검사

가. 원심판결 중 무죄부분에 관하여

(1) 통일학술회의와 관련한 1995. 2. 28.부터 2003. 3. 22.까지 총 13회에 걸친 특수탈출의 점 및 1997. 9. 2.부터 2003. 3. 22.까지 총 10회에 걸친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의 점에 대하여

비록 위 통일학술회의가 공소외 5 등 우리 남한측 학자들의 요청에 의해 개최된 것은 맞지만, 피고인이 위 통일학술회의를 주선하고 북한이 이에 응한 목적은 대남공작을 위한 이른바 ‘상층통일전선전술’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위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문제를 협의하고 그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입북한 피고인의 행위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2) 1997. 7. 7.자 김일성 추모식과 관련한 특수탈출 및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의 점에 대하여

첫째, 이 사건의 경우 김일성 추모식에 참석하라는 지령이 대한민국 영역 내인 북한에서 시달되었고, 또한 그 지령을 수행하겠다는 피고인의 의사가 북한에 도달되었으므로,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그 범행이 대한민국 영역 내인 북한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국내범’으로 다루어야지 ‘국외범’으로 보아서는 아니된다.

둘째, 가사 그렇지 않더라도 국가보안법 제6조 소정의 탈출죄는 외국인의 국외범에 관한 형법총칙 규정에 대한 특별규정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외국인이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위 탈출죄를 범한 경우에도 형법 제8조 단서에 의하여 위 국가보안법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또한 피고인이 독일 국적을 취득한 것은 ‘ ○○○’라는 가명으로 반국가활동을 하던 중 1991. 5. 입북하여 김일성을 만난 사실이 노동신문에 보도되는 등 자신의 활동이 공개되자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될 것을 우려하여 한국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하여 독일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서, 이러한 경우에는 이른바 법률회피이론에 따라 마땅히 그 외국국적 취득행위의 효력을 부인하고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넷째, 피고인은 비록 독일 국적을 취득한 자이지만 그 이전에 이미 북한 조선노동당에 입당하여 사실상 스스로 북한 국적을 취득한 셈이고, 북한은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결국 북한 국적을 가진 피고인에 대하여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내국인’으로 취급하여야 한다.

다섯째, 베를린시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는 국제관행이나 협약에 의하여 치외법권 지역으로서 북한 영토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곳에서의 범행은 당연히 ‘국내범’으로 다루어야 한다.

(3)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를 주도하고 이에 참가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위 통일학술회의를 주선하고 북한이 이에 응한 목적은 대남공작을 위한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것으로서, 위 통일학술회의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고, 피고인과 북한은 위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를 주도하고 이에 참가하는 행위를 피고인의 대남공작임무라고 판단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므로, 이는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것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나. 양형에 대하여

원심의 형량이 너무 가볍다.

Ⅱ. 판 단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이유를 살피건대, 이 사건 공소사실 각 항별로 원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부분에 대하여는 피고인이, 원심에서 무죄로 인정한 부분에 대하여는 검사가 각 법리오해 내지 사실오인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고, 그 밖에 공통적으로 양형부당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바, 서술 및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이하에서는 먼저 재판의 전제가 되는 이 사건 적용법률인 국가보안법의 위헌·무효성에 관한 피고인의 항소이유를 판단하고, 그 다음에 공소사실 각 항별로 차례대로 피고인과 검사의 법리오해 내지 사실오인의 주장을 살펴 본 후에 그 주장이 모두 이유 없는 경우에 마지막으로 피고인과 검사의 양형부당의 주장을 판단하기로 한다.

1. 국가보안법의 위헌·무효성에 대한 판단

가. 국가보안법의 규범성

(1) 주지하다시피 국가보안법은 이른바 “자유를 위협하는 적에게 자유를 줄 수 없다”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국제적으로 냉전체제가 붕괴되었고, 그에 따라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을 비롯한 경제협력 및 학술, 방송, 체육,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민간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그 반면에 여전히 한반도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 아래에서 대립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가장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 중의 하나이고 최근의 핵개발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하는 적화통일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이와 같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규범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것이다.

(2) 다만 그간의 국가보안법의 적용과정에 있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이 법이 국가의 존립·안전보다는 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다소 남용되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사례가 있었고, 그에 따라 1991. 5. 31. 개정 당시 제1조 제2항 을 신설하여 “이 법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 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였는바, 위와 같이 변화된 남북관계 아래에서 국가보안법의 규범성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만 신중하게 이를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나. 국가보안법이 위헌·무효의 법률인지 여부

우리 헌법이 전문과 제4조 , 제5조 에서 천명한 국제평화주의와 평화통일의 원칙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라는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을 해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아직도 북한이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협이 되고 있음이 분명한 상황에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이라고 할 수 없고, 국가보안법의 규정을 그 법률의 목적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한 국가보안법이 정하는 각 범죄의 구성요건의 개념이 애매모호하고 광범위하여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고, 헌법 제37조 제2항 에 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제한할 수 있는 것이므로, 국가보안법의 입법목적과 적용한계를 위와 같이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한도 안에서 이를 제한하는 데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2도4367 판결 , 1999. 12. 28. 선고 99도4027 판결 , 1993. 9. 28. 선고 93도1730 판결 등 참조).

다. 결국 이 점에 관한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2. 공소사실 제1항에 대한 판단

가. 공소사실의 요지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1973. 9.경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후 1991. 5.경 김일성의 지명으로 반국가단체의 간부인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또한 1988. 12.경 국내에서 간행된 월간지 〈사회와 사상〉에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제하의 글을 기고하여 이른바 내재적 방법론을 주장한 이래 2002. 10. 14. 〈한겨레신문사〉를 통하여 “경계인의 사색”이라는 저서를 발간할 때까지 여러 편의 글을 국내 일간신문 및 잡지와 출판물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북한의 대남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북한체제를 찬양하고 주체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친북저술활동을 전개하였고, 1994. 8. 하순경부터 2003. 3. 27.까지 6차례에 걸친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를 주도하고 피고인 스스로 해외대표단의 단장으로 위 통일학술회의에 참가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였다는 것이다.

나. 피고인의 변소

피고인은, 자신이 1973. 9.경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나 1991. 5.경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바는 없고, 이 부분 공소사실에서 적시하고 있는 내용과 같은 각종 저술활동을 하고 6차례에 걸쳐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를 주선하고 이에 참가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순수하게 학문적인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북한의 대남통일전선전술을 수행하는 지도적 임무로서 한 것이 아니라고 변소한다.

다. 쟁 점

(1) 국가보안법 제3조 제1항 제2호 는 반국가단체의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를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위 법문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인정되면 피고인이 실제로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 여부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핵심권력기관인 조선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은 당연히 그 간부의 지위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므로 곧바로 위 규정의 범죄구성요건을 충족시킨다고 할 것이고, 만일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 때 다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활동이 위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를 위한 지도적 임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2) 따라서 이하에서는 먼저 피고인이 항소이유로서 주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제3조 제1항 제2호 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다음에 위 쟁점들, 즉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의 간부인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있는지 여부와 만일 그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피고인의 친북저술활동과 통일학술회의 주선 및 참가활동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를 차례대로 판단하기로 한다.

첫째, 위 법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간부’라 함은 반국가단체 안에서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수괴를 보좌하여 그 단체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휘하는 자를 일컫는 것이고,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라 함은 반국가단체 안에서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실제에 있어서 반국가단체의 이념 및 정책에 따라 해당 조직원을 지도하거나 반국가단체의 존립 및 목적달성에 긴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등 반국가단체의 조직과 활동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라고 할 것이므로, 위와 같이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한 그 적용단계에서 위 각 개념이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 내용인 명확성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둘째, 위와 같이 해석하는 한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일반 평균인의 건전한 상식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하여 사법당국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법적용으로 인하여 평등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없고, 셋째, 앞서 국가보안법의 규범성에 대하여 살펴 본 바와 같이 국가보안법의 입법목적과 적용한계를 위와 같이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한도 안에서 이를 제한하는 데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과잉금지의 원칙과 평화통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마.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의 간부인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있는지 여부

(1) 공소사실의 특정 여부에 관하여

우선 “피고인은 내재적 접근법을 통한 주체사상 확산과 북한체제의 유지·강화 및 그동안 유럽에서의 친북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1. 5. 24. 평안도 묘향산에 있는 김일성 별장에서 북한 국가주석인 김일성을 단독 면담한 후 그 무렵 김일성의 지명에 의해 반국가단체의 간부인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라는 이 부분 공소사실이 제대로 특정된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살펴본다.

무릇, 공소사실의 기재에 있어서 범죄의 일시·장소·방법을 명시하여 공소사실을 특정하도록 한 법의 취지는 법원에 대하여 심판의 대상을 한정하고 피고인에게 방어의 범위를 특정하여 그 방어권 행사를 쉽게 해 주기 위한 데에 있는 것이므로, 공소사실은 이러한 요소를 종합하여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다른 사실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재하면 족하고, 공소장에 범죄의 일시·장소·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더라도 위와 같이 공소사실을 특정하도록 한 법의 취지에 반하지 아니하고 공소범죄의 성격에 비추어 그 개괄적 표시가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공소내용이 특정되지 않아도 공소제기가 위법하다고 할 수 없는바( 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2도2939 판결 , 2002. 6. 20. 선고 2002도80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 공소사실은 이중기소나 시효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로 범죄일시를 기재하였고 사건의 특성상 그 일시·장소·방법 등에 있어서 어느 정도 개괄적인 표시가 부득이하다고 할 것이며 그에 대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보여지므로 이 부분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도 이유 없다.

(2) 증거관계에 대한 검토

(가) 원심이 적법하게 조사하여 채택한 증거들 중 이 부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주요한 증거로는 ①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② 공소외 1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의 각 진술 중 공소외 2, 3으로부터의 각 전문진술 부분, ③ 공소외 6이 복사한 컴퓨터 디스켓 2개(증제1호, 이하 ‘이 사건 디스켓’이라 한다) 및 그 출력문서인 공소외 4 작성의 각 대북보고문, ④ 피고인이 저술한 서적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1권(증제15호)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피고인은 위 증거들 중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는 변호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거나 실질적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상태하에서 그 신문이 이루어진 것임을 이유로, 공소외 1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의 각 해당 진술이나 이 사건 디스켓 및 그 출력문서인 대북보고문은 각 전문증거들임을 이유로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다투고 있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형사소송법 제34조 , 제89조 , 제209조 의 해석상 구속된 피의자는 사법경찰관이나 검사로부터 피의자신문을 받음에 있어 변호인의 참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따라서 수사기관이 상당한 이유 없이 변호인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고 작성한 구속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위법한 절차에 의하여 수집된 증거로서 그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나, 위 각 규정은 법문상 명백히 ‘신체구속을 당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로 그 권리의 주체를 한정하고 있으므로 입법론으로서는 몰라도 현행 형사소송법의 해석상 이러한 피의자신문시 변호인의 참여권이 불구속 피의자에 대하여까지 당연히 인정된다고는 볼 수 없고, 또한 그 참여권의 내용에 대하여도 현재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검사가 구속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신문시 변호인이 입회하고 그 조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허용하였으나 개개 신문 내용에 대하여 일일이 변호인의 조언 등을 받을 수 있게까지는 허용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 피의자신문조서를 위법수집증거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구속되기 전에 작성된 검사 작성의 제1회 내지 제20회 피의자신문조서와 구속된 후 변호인의 입회 아래 작성된 제31회 내지 제36회 피의자신문조서는 모두 그 증거능력이 인정되고, 피고인이 구속된 이후 변호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된 제21회 내지 제30회 피의자신문조서만이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이하에서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라고 할 때는 위와 같이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피의자신문조서들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다). 또한 공소외 1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의 각 진술 중 공소외 2, 3으로부터의 각 전문진술 부분과 이 사건 디스켓 및 그 출력문서인 각 대북보고문도 역시, 비록 위 각 증거들이 모두 전문증거이기는 하나 변론에 나타난 구체적인 진술경위와 작성과정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원진술자인 공소외 2, 3이나 공소외 4 등이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진술할 수 없고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 제314조 , 제316조 제1항 , 제2항 의 각 규정에 의하여 모두 그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위 각 증거들의 구체적인 진술 내지 기재내용의 증명력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검사 작성의 피고인의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을 보면, 피고인은 이 부분에 대하여 “북한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 정치국 후보위원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장의위원 명단은 통상 정치국 정위원, 후보위원, 그리고 비서의 순으로 발표되는 것이 관례인데, 피고인은 장의위원 명단에서 ○○○가 정위원과 비서의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통보를 받은 사실은 없다. 다만 북한에서 피고인을 이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실제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한 사실도 없다. 시간적,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북한이 피고인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지명한 것은 1994년 이전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나 정식으로 통보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른다”(제2회 피의자신문조서), “장례식 참석시 정치국 후보위원의 대우를 해 주는 것은 느꼈지만 정식으로 통보받은 것은 아니다. 노동신문에 난 장의위원 명단을 보고 이 정도 위치면 정위원, 이 정도 위치면 후보위원이라고 추정했다는 의미이다”(제16회 피의자신문조서), “김일성 주석을 면담한 이후부터 공소외 1, 3 등 당비서급 인사를 만날 수 있었고 사회과학원의 간부급 학자들의 접촉이 용이해지고 차량도 볼보나 벤츠 등이 제공되는 등 의전상으로 상당히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명예상 정치국 후보위원급으로 대우해 주었다는 뜻이다”(제17회 피의자신문조서)라는 등으로 진술하고 있는바, 이에 따르면 피고인이 추정적으로나마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위 각 피의자신문조서에 담긴 신문내용을 전체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검사는 처음부터 피고인을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미리 단정하고 그를 전제로 신문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예컨대, 피고인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있음에도 제2회 피의자신문시 “ ○○○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피의자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언제인가요”, “피의자는 북한이 언제 피의자를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지명하였다고 생각하는가요”, “피의자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요”라고 신문하는 식이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자신이 정식으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는지는 전혀 모르고 또한 그러한 내용을 북한 당국으로부터 통보받은 바도 전혀 없는데, 다만 자신이 김일성을 면담한 후 북한에서 자신에 대한 예우가 달라지고 장의위원 명단에도 자신을 가리키는 ○○○가 23번째로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북한이 자신에게 정치국 후보위원급의 예우를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와 같은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 부분 진술만으로 피고인이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을 자백하였다고 할 수 없다.

둘째, 공소외 1은 피고인과 사이의 서울지방법원 98가합86702호 손해배상(기) 청구소송 사건에서의 당사자본인신문시와 이 사건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의 각 진술시 대체로 일관하여, ① 자신이 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겸 주체사상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1991. 5.경 당시 통일전선부 부부장이던 공소외 2로부터 피고인에게 주체사상 교육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송교수는 남한에서도 영향력이 크고 독일에서 다년간 조직사업을 하다 보니 독일에 와 있는 남한 유학생들이 다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위(김일성, 김정일을 가리키는 듯함)에서 크게 쓸 생각이고, 송교수에게 주체사상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통일전선부 산하에는 유능한 학자가 없고, 그 쪽 부서에 주체사상 전문가가 많으니 그들을 동원해서 주체사상을 교육시켜 주십시오”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고, 자신이 이를 승낙하고 당시 주체사상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던 공소외 7 등의 교수들을 피고인에게 보냈으며, 그 무렵 다시 위 공소외 2로부터 “송교수를 ○○○로 부르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고, ② 1991년 내지 1992년 초경 공소외 3이 “송교수를 위에서 직접 후보위원으로 내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에게 피고인에 대하여 주체사상에 관하여 강의해 줄 것을 부탁하여 피고인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또한 1993년부터 1994년 사이 김일성 장례식 전에, 피고인이 자신에게 남한의 잡지사로부터 조선역사와 관련한 백과사전을 내는데 그 중 하나의 항목인 주체사상에 대하여 200자 원고용지 100매 가량의 원고 집필을 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고 하면서 “황선생 직속 연구실 학자들의 방조를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하여 이를 들어준 일이 있으며, 그 무렵 위 공소외 3으로부터 피고인을 지목하여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더니 건방지게 되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일단 공소외 1의 위 각 진술은 그의 북한에서의 경력과 망명동기, 그가 피고인에 대하여 특별히 허위사실을 조작하여 음해할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참작하면 상당히 신빙성이 높은 진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 공소사실과 관련된 전문진술 내용 중에서, ① 위 공소외 2로부터 들었다는 부분은, 그 진술 내용 자체가 단지 피고인을 “위에서 크게 쓸 생각”이라는 것이어서 어떻게 크게 쓴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불명확하고, ② 위 공소외 3으로부터 들었다는 부분은, 기록에 의하면 위 공소외 3은 1990. 5.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담당비서로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1992. 12.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대남담당비서로 임명되어 근무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1991년 내지 1992년 초경에는 위 공소외 3이 아직 국제담당비서에 머물러 있던 기간이므로 그 직책상 위 공소외 3이 피고인에 대하여 주체사상 교육을 시켜달라고 위 공소외 1에게 부탁할 지위도 아니고 권력상층부에서 피고인을 직접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내세우기로 결정했는지 여부를 쉽게 알 수도 없었으리라고 보이는 점(위 공소외 1도 원심 법정에서 위와 같은 일들은 대남담당비서가 맡은 일들이고 국제담당비서가 담당하거나 알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진술하였다)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그 당시 북한과 연락을 맺고 북한의 통일전선부나 대남담당비서를 통하여 지령을 수행해 온 사실을 인정할 여지는 있을지언정 피고인이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고 인정하기에는 아무래도 미흡하다.

셋째, 이 사건 디스켓 및 그 출력문서인 각 대북보고문은 1994. 9. 말경 내지 같은 해 10. 초순경 독일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의 2등 서기관으로 발령받아 1997. 12. 말경까지 근무한 북한의 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인 공소외 4가 작성하였다고 인정되는 문건으로서, 북한 당국에 대하여 당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나 유학생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유럽본부(이하 ‘범유본’이라 한다) 등 친북단체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를 조정하는 등의 활동 상황을 보고하고 그들에 대한 향후 대책 의견을 제시하는 내용의 글인바, 그 중 이 부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피고인과 관련한 보고내용은, ① “특히 그는 자기가 조국과 련계되어 있다는 것을 비밀에 붙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통일운동을 하려고 하는 조건에서 앞으로도 그와의 사업은 지금과 같이 비공개로 하겠는지 아니면 그가 공개적인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겠는지 명백한 선을 세워가지고 그와의 사업을 짜고들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아집니다”(‘1996년도 독일주재실 사업총화보고서’ 중에서, 수사기록 제6552쪽), ② “자기는 그래도 지금까지 30여년간 조국과 련계되어 일해오고 있다는 것, 조국과의 관계에서 자기는 공소외 45처럼 조국에 대해 자기의 주견을 강하게 요구할 줄도 모르고 또 공소외 67처럼 조국에 가서 입으로 나팔을 불 줄도 모른다는 것, 자기가 이런 말을 해서 안되었지만 자기가 제기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조국에서 너무도 련락이 늦고 그래서 기다리노라면 이번 베이징 토론회와 같은 엉뚱한 일이 생기고 하니 너무 답답하여 이런 말을 한다는 것, 그래서 자기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지난 시기 조국과 사업해 온 데 대해 총화해 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는 것, 그 전에는 조국일군들이 자기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매우 심중하게 대해주고 신속하게 련락을 보내오곤 하였다는 것, 그런데 지금 조국에서 일하는 일군들은 무슨 문제를 제기하여도 제때에 대답을 주지 않으니 리해가 안된다는 것”(‘송두율과의 면담정형과 대책적 의견’ 중에서, 수사기록 제6566쪽), “자기의 신분위장을 위하여 지금 가명을 쓰고 있는데 지금은 자기가 이전에 조국에 다녔다는 것도 공개되었고, 또 북남간의 토론회를 주관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다 아는 조건에서 이 가명을 쓰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 그래서 조국에서는 자기의 가명으로 되어 있는 문건들을 다 따로 정리하여 두고 이제부터는 자기의 본명을 가지고 련계련락을 해 주기 바란다는 것”(‘송두율과의 면담정형과 대책적 의견’ 중에서, 수사기록 제6567쪽), ③ “황가( 공소외 1을 가리킴)가 자기가 우리 당중앙의 지도기관성원이라는데 대해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 기본문제라는 것, 이에 대해서 조국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주재성원은 그 문제에 대하여 조국에서는 황가가 알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앞으로 그런 문제가 제기되면 모략선전으로 강하게 반박해 나서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송두율 부부를 만난 정형과 대책적 의견’ 중에서, 수사기록 제6570쪽), ④ “송두율은 지난해에 황가놈 사건과 관련하여 자기의 신분이 로출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 훔볼트 종합대학 림시교수직에서 해직된 문제, 자기가 제시한 학자토론회에 대하여 조국에서 추진해 주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매우 신경을 쓰면서 완전히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미국에 가서 생계나 유지하기 위한 방향에서 사고를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문서명 불상, 파일명 ‘QJA.BAK’ 중에서, 수사기록 제6882쪽), ⑤ “송두율은 지난해 9월 9·9절을 계기로 자기가 경애하는 장군님께 편지를 올린데 대해 로동신문에 공개한 다음부터 조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부리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올해 2월 중순부터 황가사건으로 몹시 불안해 하다가 조국에서 자기가 년초에 제기한 통일토론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예상치 않게 다른 경로를 통하여 6월말 베이징에서 토론회가 진행되게 되는 것과 관련하여 매우 불쾌해 하면서 조국에서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로까지 신경을 쓰면서 이것으로 하여 남조선 운동권 내에서 자기의 위신이 땅바닥에 떨어졌다는 것, 자기도 이제는 조국과의 관계에서 단호한 결심을 내리겠다고까지 의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문서명 불상, 파일명 ‘WOWJ.BAK’ 중에서, 수사기록 제6992쪽)라고 기재한 부분 등이다.

이 사건 디스켓의 입수경위에 관한 공소외 6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의 각 진술과 원심 법원의 외교통상부장관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각 조선신보(증제18 내지 22호)의 각 기재 등을 종합하면, 위 공소외 6은 1994년경 범유본에 가입하여 위 단체의 기관지 “조국은 하나”의 편집을 맡았고 그 과정에서 위 공소외 4와 수시로 접촉하였는데, 위 공소외 4는 1995. 11.경 펜티엄 컴퓨터를 구입하여 이를 위 기관지 편집용으로 사용하도록 위 공소외 6에게 교부하였다가 1996. 8.경 위 범유본 회원들 사이에 내분이 생기자 위 컴퓨터를 회수하여 간 사실, 이에 위 공소외 6은 중고 286컴퓨터를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1997. 1. 하순경 위 공소외 4에게 전에 회수하여 간 펜티엄 컴퓨터를 위 기관지의 편집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여 같은 해 2. 1. 위 공소외 4로부터 다시 위 펜티엄컴퓨터를 교부받고 그 대신 자신의 중고 286컴퓨터를 위 공소외 4에게 교부하였는데, 그 무렵 위 펜티엄컴퓨터의 저장장치(하드디스크)에 백업화일(*.BAK)로 저장되어 있던 이 사건 각 대북보고문을 발견하고 이를 이 사건 디스켓 중 1개에 복사하였던 사실, 그 후 위 공소외 6은 1997. 12. 말경 위 공소외 4가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위 공소외 4에게 컴퓨터를 교환하자고 제의하여 위 공소외 4로부터 자신의 286컴퓨터를 돌려받아 또다시 위 286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백업화일(*. BAK)로 저장되어 있던 이 사건 각 대북보고문을 이 사건 디스켓 중 다른 1개에 복사한 사실, 위 공소외 6은 이미 1995년 가을경부터 범유본 회원들 사이의 내분으로 인하여 축출될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위와 같이 우연히 입수하게 된 이 사건 디스켓의 내용을 보고서 추후에 귀국할 때 가져갈 생각으로 이를 보관하고 있다가 1998. 2.경 위 범유본에서 제명당하자 같은 해 10. 18.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면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 이 사건 디스켓을 제출하였는바, 그러자 작성자인 위 공소외 4는 1999. 1.경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북한은 같은 해 1. 19.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로 위 공소외 6이 위 공소외 4의 컴퓨터 입력자료를 절취하였다면서 대한민국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으며, 위 각 대북보고문의 기재내용을 보더라도 피고인과 위 공소외 4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항들이 대부분으로서 피고인 역시 수사기관과 원심 및 당심 법정에서 위 각 대북보고문은 사실인 부분도 있고 또 사실보다 과장된 부분도 있으며 위 공소외 4가 북한에 보고하기 위하여 북한식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기는 하나 대체로 위 공소외 4와 그러한 취지의 대화를 나눈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는바, 위와 같은 입수경위와 그 기재 내용, 여러 가지 주변의 정황 등에 비추어 위 각 대북보고문은 일응 신빙성이 매우 높은 증거라고 하겠다.

그러나 위 각 대북보고문의 구체적인 기재 내용에 의하더라도, 역시 피고인이 오랜 기간 동안 북한과 연락을 맺고 비밀리에 북한을 위한 친북활동을 해 온 사실을 인정할 여지는 있지만, 나아가 피고인이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여러 가지 의문점이 발견된다. 즉, ① 비록 위 각 대북보고문 중 피고인이 자기가 ‘지도기관성원’인 사실을 공소외 1이 알고 있는지 여부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정작 피고인은 자신이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는 점, ② 지도기관성원이 바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임을 인정할 명확한 자료도 없을 뿐더러, 지도기관성원이라는 용어는 위 각 대북보고문 중에서 단 한차례 등장할 뿐이고 오히려 그 기재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에서는 피고인을 조선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는 전혀 격에 맞지 않게 대남공작의 대상인 이른바 ‘상층통전대상’(고급 통일전선전술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점, ③ 위 각 대북보고문의 기재 내용 곳곳에는 “송두율은 올해에 들어와서 조국에서 지난 시기처럼 자금도 제대로 대주지 않는데 대해 일정하게 신경을 쓰고 있으면서 적들의 조국에 대한 온갖 비방중상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놈들의 꾀임수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면서”(‘1996년도 독일주재실 사업총화보고서’ 중에서, 수사기록 제6551쪽), “그리고 그는 조국의 일군들과 학자들이 남조선의 현실을 너무도 모른다느니, 주관주의가 많다느니 하면서 비꼬는 소리를 자주 하곤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주재성원은 그에게 한번 짭짤하게 말해 주려고 하다가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가 삐뚤어질 것이 우려되므로 앞으로 기회를 보아서 올바른 인식을 가지도록 말해주려고 합니다”(‘1996년도 독일주재실 사업총화보고서’ 중에서, 수사기록 제6553쪽), “그가 위대한 수령님 서거 3돐과 관련하여 조국방문을 하지 않는 것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정세변화와 기분상태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통전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가 8월에 조국에 가면 따뜻히 대해주고 제기하는 문제들도 풀어줄 것은 풀어주는 것이 앞으로 그와 사업하는데 좋을 것으로 봅니다”(문서명 불상, 파일명 ‘WOWJ.BAK’ 중에서, 수사기록 제6992쪽)라는 등의 표현을 찾아볼 수 있는바, 만일 피고인이 실제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면 후술하는 그 지위나 권력서열에 비추어 일개 이등서기관에 불과한 위 공소외 4로서는 도저히 피고인에게 위와 같이 한번 짭짤하게 말해 주려고 했다거나 피고인이 괘씸하다고 하는 등의 극히 하대적인 표현을 구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이는 점 등에서 합리적인 의심들을 배제하기 어렵다.

넷째, 피고인이 1995. 8. 15. 저술한 서적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제132쪽을 보면 “〈표7〉 북한노동당 권력구조의 연속성과 변화”라는 제목 아래 국가장래위원회(‘국가장의위원회’의 오기로 보인다) ○○○의 직책을 정치국 위원으로 기술하고 있는바(수사기록 제856쪽), 피고인은 위 장의위원 ○○○가 곧 피고인의 가명인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결국 이는 피고인이 스스로 자신이 정치국 후보위원인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검사 작성의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에서 “북한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 정치국 후보위원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장의위원 명단은 통상 정치국 정위원, 후보위원, 그리고 비서의 순으로 발표되는 것이 관례인데 피고인은 장의위원 명단에서 ○○○가 정위원과 비서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진술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피고인의 변소대로 피고인이 장의위원 명단을 북한의 권력서열과 동일시하여 북한 당국이 자신을 정치국 후보위원급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라고 미루어 생각하고 별다른 의식 없이 위와 같이 기재한 것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또한 당심 증인 공소외 8, 원심 증인 공소외 9의 각 진술에 의하면, 위와 같이 장의위원의 서열에 따라서 국가권력의 서열을 추정하는 방법은 이른바 ‘크레믈린놀러지’라고 하여 과거 서방에서의 공산권 서열분석방법을 따른 것인데, 실제로는 당해 행사의 성격에 따라 그 서열이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때로는 전혀 권력서열과 관련이 없는 인사도 그 서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국가권력의 서열을 추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며, 더구나 위 기재사항은 그 표현형식에 있어 장의위원 명단을 분류표에 담고 그 위원별 직책을 기호로 표시한 것이어서 그 기술과정에서 얼마든지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러한 서적의 기술내용만으로 피고인이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단정하기에도 매우 곤란하다.

(나) 반면에 당심 증인 공소외 8, 원심 증인 공소외 10, 9의 각 진술과 원심 법원의 통일부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등을 종합하면,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모든 통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이며, 위 조선노동당의 최고지도기관은 ‘당대회’인데(조선노동당규약 제21조 참조), 위 당대회는 매년 열리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10년에 한번씩 열리는데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에는 현재까지 열린 바 없다) 당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에는 ‘당중앙위원회’가 최고지도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실(위 규약 제23조 참조), 위 당중앙위원회에서는 전원회의를 열어 정치국 위원들과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선출하는데(위 규약 제24조 참조) 이들로 구성되는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당의 최고정책결정기구로서 북한 통치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는 조직인 사실(위 규약 제25조 참조), 이러한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당중앙위원회 중앙위원임이 그 전제로서 요구되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게 되면 그 후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에 전원회의 결정문을 보도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위원, 후보위원의 명단을 공식 발표하는 사실, 그러나 1993년 당6기 제21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이후에는 당중앙위원회가 전혀 개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북한 조선노동당 권력구조의 변동에 관한 공식적인 발표자료는 없고, 김일성 사망 이후에는 위와 같은 정치국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고 김정일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이 겸직하고 있는 비서국과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통치권력이 행사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사실, 마지막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개최되었던 1993. 12.을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발표된 정치국 위원들을 보면, 상무위원은 김일성, 김정일, 공소외 11 등 3명이었고, 정위원은 공소외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등 10명이었으며, 후보위원은 공소외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등 11명인 사실, 이와 같이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은 북한 통치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이 되는 막강한 지위로서 그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북한의 최고지도자이거나 혁명 제1세대, 내각에 해당하는 정무원의 총리나 부총리, 의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이상의 경력을 거친 자들이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그들 중에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하거나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현재까지 아무도 없는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피고인을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인정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째, 피고인은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북한 조선노동당 당중앙위원회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바도 없어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비록 북한은 수령인 김일성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1인 독재체제로서 조선노동당 규약에서 규정한 절차와 상관없이 김일성 한 사람의 의사에 의해 특정인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지명하는 것도 사실상 가능하다고 본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북한이 단순한 비밀결사조직이 아니라 적어도 대외적으로 국가를 참칭하고 있고 헌법과 노동당 규약을 정하여 법치절차를 표방하고 있는 이상, 위와 같이 김일성의 개인적인 의사에 의해 정치국 후보위원이 지명된 경우에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사후에 반드시 공식적인 선출 내지 발표절차를 밟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고인이 1991. 5. 24. 김일성을 단독 면담한 후 그 무렵 김일성의 지명에 의해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면, 그 후 1993. 12.에 열린 위 당6기 제21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형식적으로라도 결의를 통한 선출절차를 밟아 그 내용이 추인되고 아울러 노동신문에도 공식적으로 보도되었어야 할 것임에도 실제로는 그러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이 비밀리에 대남통일전선전술을 수행하여야 할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이름도 ‘ ○○○’라는 가명을 사용하였고 위와 같이 공개적으로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을 보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정치국 후보위원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국가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인 자리로서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면 그 인물에 관하여 대내외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하므로 만일 검사의 주장과 같이 꼭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면 굳이 피고인을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자리에 선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밀 유지를 위해서는 합당하다고 할 것이고, 또한 실제로 대남공작에 있어서 많은 실적을 거둔 공로로 정치국 후보위원이 된 공소외 30의 경우, 그녀가 대외적으로 비밀을 요하는 대남공작사업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가명이 아닌 본명으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점을 보더라도 검사의 주장은 쉽게 수긍할 수 없다)

셋째, 앞서 본 바와 같이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은 국가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이 되는 지위로서 그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북한의 최고지도자이거나 혁명 제1세대, 내각에 해당하는 정무원의 총리나 부총리, 의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이상의 경력을 거친 유명 주요인사들인데, 피고인은 그러한 경력도 전혀 없고 그러한 경력에 비견될 만큼 북한에 공헌한 바도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이 친북저술활동을 통하여 주체사상 확산과 북한체제의 유지·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공소사실 자체에 의하더라도 김일성을 면담하기 전에 피고인이 저술한 것으로는 1988. 12.경 국내에서 간행된 월간지 〈사회와 사상〉에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제하의 10여쪽 가량의 글을 기고한 것이 전부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친북저술활동은 김일성을 면담한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검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3) 판 단

(가) 무릇 형사사건에서 범죄의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에 의하여야 하고 그 증명의 정도가 이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비록 유죄의 의심이 들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것인바, 비록 이 사건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사회 중의 하나인 북한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이 극히 제한되어 있고, 그 입증에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위와 같은 형사법의 대원칙이 요구하는 엄격한 증명의 정도가 결코 완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 결론적으로 이러한 법리에서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다소 유죄의 의심이 드는 면이 없지 아니하나, 전체적으로 보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이 부분 공소사실이 엄격하게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 부분 공소사실은 인정될 수 없다.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

바. 피고인의 활동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

(1) 판단의 전제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다음으로는 피고인의 활동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점에 관하여 공소장에는 피고인의 활동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개별적인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으나, 검사는 당심 제3회 공판기일에서 피고인의 친북저술활동과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를 주선하고 이에 참가한 행위를 지도적 임무의 내용으로 한다고 석명하였으므로, 이하에서는 위 두 가지 행위에 대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나) 이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먼저 그 전제로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는 자’라는 법규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여야 할 것인바, 이는 일단 앞서 보았듯이 반국가단체 안에서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실제에 있어서 반국가단체의 이념 및 정책에 따라 해당 조직원을 지도하거나 반국가단체의 존립 및 목적달성에 긴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등 반국가단체의 조직과 활동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라고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며( 대법원 1995. 7. 25. 선고 95도1148 판결 참조), 다음으로 이처럼 다의적이고 포괄적인 개념규정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자의적인 해석으로 형벌권이 남용될 소지가 있으므로 반드시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도록 국가보안법의 근본정신 내지 본래의 입법취지에 따라서 합목적적으로 해석 적용하여야 할 것인바,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1조 제1항 ), 이 법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같은 법 제1조 제2항 ), 결국 반국가단체의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를 간부와 동일하게 다루어 처벌하는 위 법조항은 그 임무활동으로 인하여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그 헌법적 기반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또는 국민의 생존 및 자유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적용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2) 피고인의 친북저술활동에 대하여

(가) 사실관계의 인정

피고인은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저술활동을 한 사실을 시인하고 있고 이는 당해 저작물인 책자 등 제반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으므로, 사실관계에 대하여는 이를 모두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

(나) 평 가

우선 구체적인 저술내용 중 특히 문제로 삼을 만한 주요 부분들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① 1991. 6. 29.부터 같은 해 7. 5.까지 3회에 걸쳐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평양에서의 강의”라는 제하의 북한 방문기에, “나는 몇 번의 강연과 토론에서 북의 주체사상이 북의 내재적 요구에 의해서 설명되고 전개되어 왔으나, 온갖 사상조류가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남한사회에서 이러한 사조들과 만나고 부딪혀서 그 생명력을 보여주었을 때만, 남북통일에 있어서도 주체사상의 위상은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조선의 실정에 맞게 전개된 ‘우리식 사회주의’는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통일된 사상적 무장 위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외부세계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릴 염려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내가 만난 북쪽 사람은 열이면 열 확신에 차서 주장했다”라고 기술하고, ② 1994. 7. 21.자 〈한겨레21〉에 기고한 “김주석 죽음, 그 이후 북한은 곧 붕괴한다? - 엉뚱한 정보에나 의존하는 서글픈 시나리오”라는 제하의 글에,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자기 민족을 해방시킨다는 의지와 실천은 김 주석의 전 생애를 규정한 시대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민족해방과 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질서를 개편하려는 제3세계와 비동맹세력은 바로 이러한 김 주석이 추구했던 ‘시대적 공동체’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기술하고, ③ 1995. 5. 10. 〈도서출판 당대〉를 통해 펴낸 “역사는 끝났는가”라는 책자에, “북한의 ‘주체사회주의’ 또는 ‘우리식 사회주의’가 내걸고 있는 이상은 자주성의 원칙 위에 선 조선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 건설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역사적인 인물이 ‘시대정신’의 산물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역사적인 인물은 동시에 ‘시대적 공동체’의 정신을 만들어왔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 따라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자기 민족을 해방시킨다는 의지와 실천은 김 주석의 전생애를 규정한 ‘시대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주성. 창조성 그리고 의식성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하는 주체사상은 그 형성과정이 보여주듯이, 식민지적 질곡으로부터 해방투쟁을 거쳐 국토분단이라는 상황하에서 북한이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추진하는 데서 제기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북한 사회주의의 총노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상은 바로 시련기에 진가를 드러낸다. 주체사상이 현재 북한이 처한 여러 난관을 돌파하는 강력한 무기로서 그 생명력을 보여줄 수 있을 때 통일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는 물론 인간해방을 지향한 인류의 모든 사상적 노력의 좌표 위에도 정당한 평가에 따른 주체사상의 위상은 기록될 것이다.”, “(남한의 상황) 특히 노동과 자본의 철저한 이중구조적 ‘분할’을 통해서 숙련노동, 남성노동력, 대기업 등을 자본주의의 ‘기능적 핵’으로 삼고 이에 종속된 미숙련노동, 여성노동력, 중소기업을 이러한 핵기능에 철저히 종속시키고 계열화하는 현상은 학력과 성별, 임금격차는 물론 열세한 중소기업에 대한 빈약한 국가의 지원정책에도 나타났다”라고 기술하고, ④ 1995. 8. 15. 〈한겨레신문사〉를 통해 펴낸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라는 책자에, “북한사회에서 김 주석은 유일무이한 인격으로서 지역이나 사회계층의 차이를 넘어선 강한 공감대를 결집해 낼 수 있었다. 김 주석은 북한 사람들에게 칼 슈미트가 이야기하는 ‘대지에 뿌리내린 빨치산’의 덕목과 우리의 전통 속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할아버지가 풍기는 따스함을 결합시킨 인격으로 보이고 있다”, “북한 사회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정당성의 핵심인 주체사상은 제3세계 주변부라는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자기긍정으로 인하여 생긴 일련의 부정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국방 등의 영역에서 자주와 자립을 고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엄청난 충격으로부터 그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남한 모델’이 경제성장을 통해서 민족적 자부심을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민족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못했다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남한의 일방적인 대미종속성에 있다”라고 기술하고, ⑤ 2002. 10. 14. 〈한겨레신문사〉를 통해 펴낸 “경계인의 사색”이라는 책자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단결’은 가령 ‘신경제’의 신화를 배경으로 몰아친 남쪽의 개인중심 ‘벤처’ 열풍과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동력’이다. 집단적 열정은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서 북이 늘 강조해 온 원칙이지만, 새 세기를 맞은 북이 새로운 ‘관계체계’를 형성하는 데서도 포기할 수 없다고 보는 그러한 동력은 밖의 세계에서는 신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계몽만이 신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화도 계몽의 역할을 한다는 변증법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기술하였다.

이러한 저술부분들은 피고인이 극구 변소하는 바와는 달리 순수한 학문적인 동기와 목적 아래 북한사회를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서술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저작물들의 전체적인 내용과 관련지워 볼 때 피고인은 북한에 편향된 시각을 갖고 의도적으로 북한사회체제와 그 기본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선전하거나, 김일성 또는 김정일의 정치력을 미화·찬양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 남한사회에 대하여는 일관되게 비판적인 입장만 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저술내용에만 국한하여 보면,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체제를 유지·존속시키는데 기여한 일단의 기능적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의 위와 같은 저술활동을 가리켜 반국가단체인 북한 내지 그 통치권력기구인 조선노동당의 구성원의 지위에서 그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거니와, 나아가 원심에서 적법하게 조사하여 채택한 제반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일찍이 1988. 12.경 국내에서 간행된 월간지 〈사회와 사상〉에 “북한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제하의 북한사회의 연구방법론에 관한 글을 기고하면서 그동안 냉전적인 시각으로 인해 북한사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지적과 함께, “지금까지 북한연구는 반공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편견 아래 북한 실상을 왜곡시켜 왔다. … 북한실상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북한 내부의 시각에 따라 북한을 분석해야 하며, 북한 내부 시각을 알기 위해서는 주체사상 연구가 필수적이다”라고 기술하여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을 통해 북한을 새로이 평가·이해할 것을 주장한 이래, 국내의 저명한 북한연구전문학자들인 공소외 33, 34, 8 교수 등과 함께 한동안 내재적 접근법의 정당성 문제를 놓고 매우 심도 있는 학술논쟁을 벌여 온 사실, 피고인은 독일 뮌스터 대학 등에서 사회학 교수로 줄곧 재직하며 연구활동을 계속해 오는 한편, 1990. 10. 3. 독일의 통합을 계기로 분단조국의 통일방안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이면서 위와 같이 국내의 유력한 일간신문, 잡지 등에 대한 기고나 유명출판사에서 간행된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대체로 친북적인 관점에서 북한사회의 현실과 그 체제의 이념인 주체사상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단편적인 글들을 써 왔는데, 위에서 본 문제된 기술내용들은 그 양적인 면에서 위 저작물들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그 비중에 있어서도 그다지 높게 다루어진 것은 아닌 사실, 그리고 피고인은 위와 같이 북한사회에 대해 한결같이 옹호적인 입장만 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북 사회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북의 주체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이상과 결과 사이의 괴리가 국내외적인 조건 속에서 과거보다 현재 더 커졌다는 사실과 함께 주체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에서 새로운 관계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북 자신도 말하고 있다”(“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책자 중 제184-185쪽), “민족단위로 사회주의가 건설되고 있는 조건에서 북한사회주의가 내세운 ‘주체사상’이 그러나 자기방어적인 본능이라는 성격을 넘어 다른 체제나 사상과 공존하면서 현대의 보편적 이념을 추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특히 북한사회의 ‘폐쇄성’과 관련되어 제기되고 있다”(“북한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중에서, 수사기록 제5648-5649쪽)라고 기술하는 등으로 북한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나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도 아울러 제기하고 있는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러한 인정사실에다 특히 피고인의 위와 같은 저술내용들은 비록 친북적이기는 하나 우리 국가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직접적인 위해를 주거나 이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은 아니며, 또한 전혀 은밀한 표현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모두 국내의 유명 일간신문이나 잡지, 출판물 등을 통해 공개적인 방법으로 표현된 것으로서 일반인의 자유로운 토론과 경쟁적인 상호비판과정을 거치게 되는 경우 얼마든지 쉽게 여과될 수 있는 개인적인 주장, 의견 등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해 보면, 피고인의 이러한 친북저술활동은 그로 인하여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이를 비난하여 국가보안법 제3조 제1항 제2호 소정의 반국가단체를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도저히 어렵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

(3) 피고인의 통일학술회의 주선 및 참가활동에 대하여

(가) 사실관계의 인정

피고인은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6차례에 걸쳐 통일학술회의를 주선하고 자신도 해외대표단 단장으로 위 각 통일학술회의에 참가해 온 사실을 시인하고 있고 관련증거들에 의하여 뒷받침되므로, 사실관계에 대하여는 역시 이를 모두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

(나) 평 가

검사는, 피고인이 위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를 주선하고 이에 참가한 행위가 북한의 대남통일전선전술에 따라 북한의 통일방안을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특히 남한의 진보적 학자들을 상대로 이른바 상층통일전선전술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반국가활동목적에 비추어 이는 마땅히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검사가 그 근거로 제출하고 있는 공소외 4 작성의 각 대북보고문에는 피고인이 위 공소외 4에게 위 통일학술회의의 개최와 관련하여, “지금 남조선것들과 서방반동들이 조국에 대해 악랄하게 비방중상선전을 하고 있는 조건에서 그것들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이러한 토론회를 조직하여 서방것들이 조국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조국에서 이 문제를 다시 검토해 볼 것을 제기한다는 것”(‘송두율과의 면담정형과 대책적 의견' 중에서, 수사기록 제6566-6567쪽), “남쪽 것들이 공화국을 악랄하게 비방중상하면서 공세적으로 나올 때에 가만 있지 말고 맞받아 공세적으로 나가면서 그러한 통일토론회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송두율을 만난 정형과 대책적 의견’ 중에서, 수사기록 제6949쪽)고 말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기는 하나, 이는 위 공소외 4가 북한 당국에 보고하기 위하여 피고인과 사이에 나누었던 실제 대화내용을 북한식의 언어로 고쳐 작성한 것으로 보이므로, 위 문구를 그대로 신빙하여 피고인에게 그러한 반국가활동의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원심이 적법하게 조사하여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이 사건 각 통일학술회의는 처음에 우리 남한측 학자인 공소외 5의 제안에 의하여 제1차 통일학술회의가 개최되었고, 그 의미와 성과를 높이 평가한 우리측 학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위 통일학술회의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이를 주관할 단체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1996. 4.경 ‘한국통일포럼’을 결성하였으며, 그 이후 우리측의 적극적인 요청에 의하여 제6차 통일학술회의까지 계속 개최되기에 이르렀던 사실, 우리측 참가자들은 위 각 통일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남북한교류협력에관한법률에 따라 통일부(1998. 2. 28. 이전에는 ‘통일원’이었다, 이하 통일원 및 통일부를 모두 ‘통일부’라고만 한다)에 북한주민접촉신고를 하여 승인을 받았으며, 회의를 마친 후에는 위 법률에 따라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결과보고서를 제출하였던 사실, 제2차 통일학술회의부터는 우리측 공소외 35 교수의 제의로 통일학술회의 전에 개최하는 예비회담에서 양측이 발표할 논문의 내용 가운데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워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사항을 정리하는 이른바 ‘지뢰제거작업’을 하였고, 이 때 상당 부분의 북한측 논문이 수정되거나 그 발표가 취소된 상태에서 통일학술회의가 진행되었던 사실, 이 사건 각 학술회의에서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북한측 학자들의 발표가 있은 이후에는 이에 대응하여 북한측의 의견을 반박하는 우리측 학자들의 발표도 있었고, 나아가 우리측 학자들도 적극적으로 북한측에 우리의 주장을 피력하였던 사실, 또한 피고인은 위 각 통일학술회의를 주선함에 있어 남북한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에도 특별히 북한의 의견을 대변하지 아니하였고, 북한측에서 위 통일학술회의에서 별다른 선전 효과를 보지 못하여 중단하려고까지 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음에도 피고인의 노력으로 위 통일학술회의가 계속 진행될 수 있었으며, 제6차 통일학술회의에서는 우리측에서 제시한 핵문제를 의제로 다루도록 북한측을 설득하는 등 오히려 균형감 있게 이를 중재하였던 사실 등이 인정되는바, 위 인정사실에 따르면 위 각 통일학술회의의 개최가 남북한 사이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민간교류 증진과 화해분위기 조성에 기여한 것으로는 평가할 수 있을지언정, 그로 말미암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위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를 주선하고 이에 참가한 행위도 역시 반국가단체를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 부분 검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

사. 소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간부’인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는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고, 피고인의 친북저술활동이나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를 주선하고 이에 참가한 활동은 어느 것이나 위 간부에 준하는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위 공소사실 제1항은 결국 모두 그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무죄라고 할 것이다.

3. 공소사실 제2항에 대한 판단

가. 공소사실의 요지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또는 목적수행을 협의하기 위하여, ① 1991. 5. 10.부터 같은 해 5. 30.까지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입북하여 주체사상에 관한 토론회 등에 참석하여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김일성을 단독 면담하고, ② 1991. 7. 일자불상경 약 1주일간 입북하여 북한 조선노동당 대남담당비서에게 독일 내에 설립되었다가 폐쇄된 친북연구단체인 한국학술연구원(KOFO)의 운영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고 주체사상 학습을 받고, ③ 1992. 7. 초순경 북한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초청으로 약 1주일간 입북하여 주체철학 토론회 등에 참석하여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④ 1993. 3. 19.부터 같은 해 3. 26.까지 입북하여 주체사상에 관한 좌담회 등에 참석하여 주체사상 학습을 받고, ⑤ 1994. 3. 12.부터 같은 해 3. 20.까지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입북하여 남북한 및 독일 학자들의 언론관련세미나 개최문제 등을 협의하고, ⑥ 1994. 7. 13.부터 같은 해 7. 23.까지 북한 국가장의위원회 초청으로 입북하여 김일성 장례식 등에 참석함으로써, 각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하였다는 것이다.

나. 사실관계의 인정

피고인은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 ‘지령수수 또는 목적수행을 협의할 목적’이 없었다고 다투는 이외에는 이와 같이 북한의 초청을 받아 밀입북한 사실을 시인하고 있고 관련증거들에 의하여 뒷받침되므로, 객관적인 사실관계는 모두 이를 인정할 수 있다.

다. 지령수수 또는 목적수행을 협의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

(1)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특수탈출죄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령을 받는다’라고 함은 반국가단체 또는 그 구성원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지령을 받는 자로부터 다시 지령을 받는 경우까지를 포함하는 것이고, 또한 그 지령은 지시와 명령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반드시 상명하복의 지배관계가 있을 것을 요하지 아니하고 그 지령의 형식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 대법원 1999. 12. 28. 선고 99도4027 판결 , 1997. 11. 25. 선고 97도2084 판결 등 참조).

(2) 피고인이 1973. 9.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이래 오랜 기간 북한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이 부분 공소사실 중 위 ①항 내지 ⑤항 기재와 같이 5차례에 걸쳐 북한측의 초청을 받고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접견하고 공소외 3을 비롯한 대남담당 고위당국자들을 접촉하면서 주체사상을 교양·학습하고 북한당국으로부터 친북연구단체의 운영자금을 지원받는 문제 등에 관하여 협의하였다면, 그 주된 입북의도는 북한으로부터 대남공작이나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유지·존속시키기 위한 지령을 받거나 목적수행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인의 위 각 밀입북행위는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소정의 특수탈출죄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고, 피고인을 초청한 기관이나 사람이 피고인과 사이에 상명하복의 지배·피지배관계가 있는지 여부, 피고인이 북한측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았는지 여부, 피고인이 방북시에 부수적으로 학문 연구자료를 수집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 등은 모두 이 부분 범죄의 성립 여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라. 이 부분 공소사실 중 1993. 8. 18. 이후의 각 특수탈출의 점에 대한 재판권이 있는지 여부

(1) 살피건대,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제2항 에서 말하는 ‘탈출'이라고 함은 자의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제로 행사되는 지역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위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에는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제로 행사되는 지역으로부터 직접 들어가는 행위와 제3국을 통하여 들어가는 행위 및 제3국에서 거주하다가 들어가는 행위 등 세 가지 행위 유형이 있을 수 있는바, 국가보안법 제6조 제1항 에 정한 단순탈출죄의 경우에는 자의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만을 그 처벌대상으로 하고 있어 위에서 본 세 가지 행위유형 모두가 그 처벌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나, 그 제2항 에 정한 특수탈출죄의 경우에는 그 외에 자의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제로 행사되는 지역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도 그 처벌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위에서 본 세 가지 행위 유형 중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행사되는 지역으로부터 직접 들어가는 행위와 제3국을 통하여 들어가는 행위는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제로 행사되는 지역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이미 그 범죄가 기수에 이르게 되고 따라서 고유한 의미에서 반국가단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로서 처벌되는 것은 제3국에서 거주하다가 들어가는 행위뿐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 형사법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신분범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위의 주체에 따라 행위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법문에 그 행위 주체가 내국인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은 이상,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자의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행사되는 지역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와 제3국에서 거주하다가 반국가단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외국인의 국외범 해당 여부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모두 위 조항에 정한 '탈출' 행위에는 해당한다.

또한 헌법 제3조 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북한도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독일 국적을 가진 피고인이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하여 독일 베를린을 출발하여 북한 평양에 들어간 이 부분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독일 국적을 취득한 1993. 8. 18. 이후의 각 특수탈출의 점은 제3국과 대한민국 영역 내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와 같은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이 독일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라고 하더라고 형법 제2조 , 제4조 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형벌법규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형법 제5조 , 제6조 에 정한 외국인의 국외범 문제로 다룰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대법원 1997. 11. 20. 선고 97도202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2) 따라서 이 부분 각 공소사실에 대하여는 우리나라의 재판권이 미친다고 할 것이므로,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도 이유 없다.

마.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위헌 여부

피고인은 위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지령’과 ‘탈출’의 개념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해석하는 한 이는 형벌 법규의 문리적 해석의 한계를 넘어 처벌범위를 무한정 확대하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 내용인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게 되어 위헌·무효라고 주장하나,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에서 말하는 ‘지령’과 ‘탈출’의 개념을 일상적인 어감상의 의미와 반드시 같은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조문의 규정취지에 따라 위와 같이 합목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 내용인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도 이유 없다.

바. 이 부분 공소사실 중 1994. 7. 13.자 반국가단체지역으로의 탈출의 점에 대하여

(1) 현재 남북간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경제, 학술, 방송, 체육,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한의 초청에 따른 상호왕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바, 북한의 초청을 받아 방북하는 행위는 외견상 모두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의 객관적 구성요건을 충족시키게 되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규율하기 위하여는 위 규정 역시 그 잠입·탈출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8. 8. 27. 선고 97헌바85 결정 등 참조).

(2) 이러한 법리에서 위 1994. 7. 13.자 반국가단체지역으로의 탈출의 점에 대하여 보건대, 그 내용은 북한의 김일성 사망 후 피고인이 북한의 ‘국가장의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1994. 7. 13. 입북하여 같은 해 7. 14.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의사당에서 김정일을 만나 조문하고, 같은 해 7. 19. 위 금수산 의사당에서 개최된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하고, 같은 해 7. 20.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된 김일성 추도식에 참가하고, 같은 날 평양 목란관에서 개최된 ‘장례식에 참석한 해외동포들을 위한 위로연’에 참석하였다는 것인바, 이는 단순히 조문을 위해 입북하여 의례적인 장례 및 추모 행사에 참석한 것일 뿐이므로 그 밖에 피고인에게 다른 특별한 방북목적이나 다른 부수적인 방북일정이 있었음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 비록 그 조문의 대상자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수괴인 김일성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3) 결국 이 부분 공소사실은 그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무죄라고 할 것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

4. 공소사실 제3항에 대한 판단

가. 공소사실의 요지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또는 목적수행을 협의하기 위하여, ① 1995. 2. 28.부터 2003. 3. 22.까지 13차례에 걸쳐서 입북하여 북한당국자들과 만나 남북해외학자들이 참석하는 통일학술회의 개최문제를 논의하거나 평양에서 열린 위 통일학술회의에 참가하고, ② 1997. 7. 7. 독일 베를린시 주재 북한이익대표부에 들어가 ‘김일성 사망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함으로써, 각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하고,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하였다는 것이다.

나. 사실관계의 인정

피고인은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도 ‘지령수수 또는 목적수행을 협의할 목적’이 없었다고 다투는 이외에는 이와 같이 북한의 초청을 받아 입북하여 북한당국자들과 위 통일학술회의 개최문제를 논의하고 북한이익대표부에 들어가 위 추모식에 참석한 사실을 시인하고 있고 관련증거들에 의하여 뒷받침되므로, 객관적인 사실관계는 모두 이를 인정할 수 있다.

다. 통일학술회의와 관련된 특수탈출 및 회합의 점에 대하여

(1) 이미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각 통일학술회의가 개최된 배경과 진행경위 및 그 과정에서 피고인이 취한 행동이나 역할 등을 종합하면, 위 각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는 남북한 사이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민간교류 증진과 화해분위기 조성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언정, 그로 인하여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소정의 특수탈출죄는 그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될 수 있는 것임은 위에서 본 바와 같고, 이러한 법리는 같은 법 제8조 제1항 소정의 회합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것이므로, 결국 피고인이 입북하여 북한당국자들과 위 각 통일학술회의의 개최문제를 논의하거나 직접 위 각 통일학술회의에 참가한 행위들이 위 각 특수탈출죄 및 회합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2)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조치는 정당하고, 이 부분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다.

다. ‘김일성 사망 3주기 추모식’과 관련된 특수탈출 및 회합의 점에 대하여

(1) 헌법 제3조 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북한도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나, 나아가 북한이 외국과의 조약이나 협정에 의하여 주재하게 된 북한 이익대표부까지 대한민국의 영토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는바, 따라서 피고인이 독일 베를린시에 있는 피고인의 집에서 김일성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베를린 주재 북한이익대표부에 들어간 행위는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행한 범죄라고 볼 수 없고, 피고인이 위 북한이익대표부 안에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 공소외 4와 회합한 행위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볼 것이다. 위 김일성 추모식에 참석하라는 지령이 대한민국 영역 내인 북한에서 최초로 시달되고, 또한 그 지령을 수행하겠다는 피고인의 의사가 북한에 최종 도달되었다고 하여 이를 달리 볼 것도 아니다. 실제로 피고인이 그러한 지령을 수수한 행위가 독일 내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에서 이 부분 공소사실에 해당하는 범죄는 외국인의 국외범으로 다루어야 옳다 할 것이다. 이 부분 검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

(2) 그리고 국가보안법 제6조 에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한 행위를 처벌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 위 규정이 외국인의 국외범에 관한 형법총칙 규정에 대한 특별규정으로 볼 수도 없고, 또한 피고인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될 것을 우려하여 그 법적용을 회피할 목적으로 독일 국적을 취득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없다. 또한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북한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이 부분 검사의 주장들도 역시 모두 이유 없다.

(3) 기록에 의하면, 북한이익대표부는 구 동독의 베를린에 설치되어 있던 북한대사관이 독일 통합과 함께 1990. 10. 3.자로 동독·북한간 외교관계가 소멸됨에 따라 폐쇄되고 그 대신 통합된 독일과의 새로운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잠정조치로서 설치된 것으로서, 2001. 3. 독일·북한간 수교 성립시까지 그곳에서 비자발급, 무역 및 투자촉진업무 등을 처리하는 외교공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 온 사실을 알 수 있는바, 이에 따르면 북한이익대표부를 치외법권 지역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이를 북한 영토의 연장이라고 전제하는 이 부분 검사의 주장도 이유 없다.

5. 공소사실 제4항에 대한 판단

가. 공소사실의 요지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독일 베를린에 있는 피고인의 집에서 베를린 주재 북한이익대표부를 통하여 북한의 김정일에게 ① 1996. 12. 일자불상경 이른바 ‘설 명절 축하편지를’, ② 1997. 2. 일자불상경 이른바 ‘경애하는 장군님 탄생 55돐(1997. 2. 16.) 축하편지’를, ③ 1997. 4. 일자불상경 이른바 ‘위대한 수령님 탄생 85돐(1997. 4. 15.) 축하편지’를 각 발송하여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과 연락하였다는 것이다.

나. 사실관계의 인정

피고인은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김정일 앞으로 한번 의례적인 축전을 보낸 사실이 있을 뿐이라고 다투고 있으나, 기록에 편철된 대북보고문 중 ‘독일주재실 상반년 사업총화보고서(수사기록 제6576-6577쪽)’ 및 ‘4월중 사업계획(수사기록 제6533쪽)’의 각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3차례에 걸쳐 베를린 주재 북한이익대표부를 통하여 북한의 김정일에게 설명절 또는 생일을 축하하는 내용의 편지들을 보낸 사실은 인정된다.

다. 재판권이 있는지 여부

우리 형법은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데( 형법 제2조 ), 이는 실행행위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서 발생한 경우를 포함하는 것이고, 국가보안법 제8조 소정의 ‘연락’이란 상대방과 의사를 교환하는 일체의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서 비록 피고인이 외국인 독일에서 편지를 발송하였더라도 상대방인 김정일이 대한민국의 영토인 북한에서 이를 전달받은 이상 피고인은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하였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 범죄사실에 대하여는 우리 법원에 재판권이 있고 이른바 외국인의 국외범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므로,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라.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

(1) 피고인이 김정일에게 설명절 축하편지나 김일성, 김정일 생일축하 편지를 보낸 것은 단순히 의례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일 뿐이므로, 비록 그 전달의 상대방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수괴인 김정일이라 할지라도 그 축하편지들의 구체적인 내용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이 사건에서, 그 편지들의 전달행위 자체만으로 곧바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그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무죄라고 할 것이므로,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

(2) 이에 대하여 검사는, 북한이 그 사실을 노동신문을 통하여 보도함으로써 김일성과 김정일의 독재체제인 북한 정권을 선전, 찬양하는 방편으로 사용하였고, 피고인은 자신의 편지가 위와 같은 선전 도구로 사용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위 각 편지를 발송하였으므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나, 이것은 행위의 가벌성을 행위자의 의사나 행위 그 자체에 두지 아니하고 제3자인 북한이 그 행위를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달리 평가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타당하지 아니하다.

6. 공소사실 제5항에 대한 판단

가. 공소사실의 요지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하여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있고 ○○○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사실이 있음에도, 피해자 공소외 1이 1998. 6. 경 “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자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공표하자 같은 해 10. 13. 서울지방법원에 위 공소외 1을 상대로 위 공소외 1이 허위로 위와 같은 사실을 공표하여 피고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주장하며 금 1억 원의 위자료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소송( 98가합86702호 )을 제기함으로써 위 법원을 기망하여 위 공소외 1으로부터 위 금원을 편취하려 하였으나 2001. 8. 23. 원고 패소 판결이 선고됨에 따라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나. 기망행위의 존부

(1) 기록에 첨부된 서울지방법원 98가합86702호 사건의 소장 사본(수사기록 제18권 제51-58쪽) 및 공소외 1이 저술한 “북한의 진실과 허위” 중 이 부분 공소사실과 관련된 부분(수사기록 제18권 제62쪽)의 각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이 위 공소외 1이 허위사실을 공표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적시한 부분은, “북한통치자들은 남한 학생들과 독일에 있는 남한 유학생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그리고 여러가지 다른 목적에 이용하기 위하여 그(송두율)를 ‘ ○○○’라는 가명 밑에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하고 김일성이 접견한 사진을 신문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라는 부분이며, 이에 대해 피고인은 소장을 통해 자신은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며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조차 없고 ‘ ○○○’라는 가명을 사용한 적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2) 살피건대,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이 부분 주장에 대하여는 피고인이 법원을 기망한 사실이 없다고 할 것이나, 피고인이 실제로 1973. 9.경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이 있고, 그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북한과 연락을 유지해 오면서 북한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여 왔으며, 1994. 7. 19. ‘ ○○○’라는 가명으로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위 가명을 사용한 사실이 있음은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와 같으므로, 피고인은 이 점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법원을 기망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위 소송에 있어서 피고인이 정치국 후보위원인지 여부가 핵심적인 쟁점일 뿐 나머지는 정황에 불과하므로 피고인이 정치국 후보위원인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이 법원을 기망한 사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다. 편취의 범의 내지 불법영득의 의사의 존부

이와 같은 내심의 의사에 해당하는 요소들은 범행 당시의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인바, 피고인이 위 공소외 1을 상대로 위와 같이 허위사실 공표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금 1억 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 내지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도 이유 없다.

Ⅲ. 결 론

그렇다면 원심판결의 무죄부분에 관한 검사의 항소는 모두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에 따라 이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의 유죄부분 중 이 사건 공소사실 제1항(반국가단체의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의 종사의 점), 제2의 바항(1994. 7. 13.자 반국가단체지역으로의 탈출의 점), 제4항(3회에 걸친 각 반국가단체구성원과의 연락의 점)에 대한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따라 원심판결의 유죄부분을 전부 파기하고, 이 부분을 변론을 거쳐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범죄사실

피고인은 일본에서 출생한 뒤 8·15 해방 후 귀국하여 1967. 2.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7. 15. 독일로 유학하여, 1972. 6.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1982. 1. 뮌스터대학에서 사회학 교수자격을 각 취득하고, 1993. 8. 18. 독일국적을 취득한 후, 1994. 8.부터 베를린시 소재 훔볼트대학에서 한국학 초빙교수로 재직하다가 1998. 3.부터 뮌스터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자인바,

1. 북한공산집단이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조직된 반국가단체이며 이러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하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 1991. 3. 중순경 독일 베를린시에 있는 피고인의 집에서, 북한 사회과학원으로부터 “해외에서 학문과 조국통일 운동에 늘 분망하신 선생님을 우리 사회과학원이 초청하려 합니다. 우리는 선생과 만나 주체철학과 현대철학의 과제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방문시기는 선생님의 편의에 따라 아무 때라도 좋겠지만 올해 5월 중에 방문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초청장을 수령함으로써 북한에서 개최되는 ‘주체철학 토론회’에 참석하라는 지령을 받고 1991. 5. 10. 독일 베를린시에서 항공편을 이용하여 북한에 들어가 평양에 있는 명칭불상의 초대소에서 체류하면서,

○ 같은 해 5. 13. 인민경제대학을 방문하여 북한 교육부장과 위 대학 총장 공소외 43의 접견을 받고, 위 대학 교원 및 학자들과 학술좌담회를 개최하고,

○ 같은 해 5. 17. 위 사회과학원에서 북한 학자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주체철학의 발전과 현대철학의 과제’ 제하의 학술토론회에 참석하여, 북한 주체철학 학자들로부터 주체철학 강의를 듣고,

○ 같은 해 5. 17.부터 같은 해 5. 18.까지 위 사회과학원 소속 학자들의 안내로 평양에 있는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와 평양시내 등지를 관광하고, 애국열사릉을 방문하여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겸 노동당 정치국 정위원인 공소외 44(1991. 5. 11. 사망)의 묘 앞에서 묵상하고,

○ 같은 해 5. 20. 위 사회과학원 소속 학자들의 안내로 평양에 있는 김일성 종합대학을 참관하고, 이어서 위 대학 소속 철학박사 및 사회과학 부문 학자들이 모인 ‘학술좌담회’ 에 참석하여 “남쪽에서도 주체사상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등의 발언을 하고,

○ 같은 해 5. 24. 성명불상 지도원의 안내로 평안도 묘향산에 위치한 김일성 별장을 방문하여 그곳에 있던 김일성과 약 3시간 동안 단독으로 면담하면서, 그로부터 “송 교수 같은 학자가 한두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당원들이 자본주의에 대해서 너무 모르니까 앞으로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북한에 와서 강의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등의 지시를 받고, 이어서 통일 이후의 독일 경제문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체제와 북한 체제의 차이점, 남북한 UN가입 및 주한미군 보유 핵철수 문제, 한반도 비핵화 방안 등에 관하여 대화한 후 김일성과 기념촬영을 하고,

○ 그 직후 일자불상경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공소외 2가 당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겸 ‘주체사상연구소’ 소장이었던 공소외 1에게 “송 교수는 남한에서도 영향력이 크고 특히 독일에서 다년간 조직사업을 하다 보니 독일에 와 있는 남한 유학생들이 다 그를 따르고 있다”, “위(김일성, 김정일을 가리키는 듯함)에서 송 교수를 크게 쓸 생각이고, 앞으로 송 교수의 이름을 ‘ ○○○’라고 부르기로 했다”, “송 교수에게 주체사상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통일전선부 산하에는 유능한 학자가 없기 때문에 주체사상 전문가가 많은 그쪽 부서에서 주체사상 전문학자를 동원해서 주체사상 교육을 시켜 달라”는 등의 부탁을 하여, 이에 위 공소외 1의 지시를 받은 북한 주체과학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공소외 7, 주체사상연구소 실장 공소외 36 및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장 공소외 37 등으로부터 주체사상 학습을 받고,

○ 같은 해 5. 29. 평양에 있는 서재골 초대소에서 개최된 환송만찬에 참석하여 통일전선부 담당비서로부터 “송 선생의 학문에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라는 등 내용의 만찬사를 듣고 성명불상자로부터 여행경비 명목으로 미화 약 2,000달러를 받은 후, 같은 해 5. 30. 평양순안비행장에서 항공편을 이용하여 독일로 되돌아가고,

나. 공소외 38 등이 북한으로부터 주체사상 연구에 필요한 서적 등을 송부받아 설립한 친북연구단체인 ‘한국학술연구원(KOFO)'이 1987년경 자금난으로 폐쇄되자 북한으로부터 운영자금을 받아 위 연구원을 재개설하기로 마음먹고, 베를린시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를 통하여 입북 희망의사를 전달하여 사회과학원으로부터 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입북하라는 지령을 받고 1991. 7. 일자불상경 위 가항과 같은 방법으로 북한에 들어가 약 1주일 동안 체류하면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에게 위 연구원의 운영자금 지원을 요청하여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겠다는 약속을 받고, 위 공소외 1, 7, 36, 37로부터 주체사상 학습을 받고, 성명불상자로부터 여행경비 명목으로 미화 약 1,000달러 상당을 받은 후, 항공편을 이용하여 독일로 되돌아가고,

다. 1992. 7. 초순경 위 피고인의 집에서 북한 ‘조선사회과학자협회’ 부위원장 공소외 39(전 주체과학원 원장)로부터 “전번 방문 때 선생이 요구한 주체의 사회주의 정치·경제·철학과 관련한 자료를 준비하였습니다. 1992년 9월이나 10월 중 편리한 시기에 방문하면 우리 전문가들과 토론할 기회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초청장을 수령함으로써 평양에서 개최되는 ‘주체철학 토론회’에 참석하라는 지령을 받고 1992. 9. 일자불상경 위 가항과 같은 방법으로 북한에 들어가 약 1주일 동안 체류하면서, 사회과학원 소속 학자들을 만나 북한의 정치·경제 등에 관한 토론을 한 후 그와 관련된 자료를 넘겨받고, 여행경비 명목으로 미화 약 1,000달러를 받은 후, 항공편을 이용하여 독일로 되돌아가고,

라. 북한으로부터 주체사상 토론회 등에 참석하라는 지령을 받고 1993. 3. 19. 위 가항과 같은 방법으로 북한에 들어가 평양에 있는 명칭불상의 초대소에 체류하면서, 같은 해 3. 23.경 지난 1991. 5. 1. 입북시 피고인에게 주체사상을 학습시킨 바 있는 공소외 1, 7, 36 등 노동당 간부 및 북한 학자들과 회합하여 김일성 주체사상에 관하여 좌담형식으로 학습을 받고, 1993. 3. 25. 장소불상지에서 성명불상의 부부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여 성명불상자로부터 여행경비 명목으로 미화 약 1,000달러를 받은 후, 같은 해 3. 26. 항공편을 이용하여 독일로 되돌아가고,

마. 1994. 2. 초순경 위 피고인의 집에서 북한 사회과학원 제1부위원장 공소외 40으로부터 “겨레의 숙원인 통일을 위한 선생님의 여러 방면에 걸친 학술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선생님의 저술과 관련된 전문가들의 자료 및 정보교환을 위해 조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받고 기쁘게 접수하였고 이에 따른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곳의 사정으로 선생님의 조국 방문은 (1994년) 3월 중이면 더욱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초청장을 수령함으로써 북한에서 개최되는 학술토론회에 참가하라는 지령을 받고 1994. 3. 12. 위 가항과 같은 방법으로 북한에 들어가 평양에 있는 명칭불상 초대소에 체류하면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인 공소외 3에게 피고인이 구상중인 ‘독일과 한국 1945-1955’이라는 국제세미나에 북한측 대표가 참가하여 줄 것을 요청하고, 위 공소외 40 등 노동당 간부 및 학자들을 만나 남·북한 및 독일 학자들의 언론 관련 세미나 개최문제를 협의한 후, 같은 해 3. 20. 항공편을 이용하여 독일로 되돌아감으로써

각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의 지령을 받거나 또는 목적수행을 협의하기 위하여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하고,

2. 피해자 공소외 1이 1998. 6. “송두율 교수를 잘 알고 있다. … 북한 통치자들은 남한 학생들과 독일에 있는 남한 유학생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목적에 이용하기 위하여 그를 ‘ ○○○’라는 가명 밑에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하고 김일성이 접견한 사진을 신문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라는 내용이 기재된 “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자를 발간·배포하자, 사실은 피고인이 1973. 9.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이 있고, 그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북한과 모종의 연락을 유지해 오면서 북한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여 왔으며, 1994. 7. 19. ‘ ○○○’라는 가명으로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위 가명을 사용한 사실이 있으며, 김일성 사망 직후 구성된 국가장의위원회의 장의위원 명단 중 23번째로 기재된 ‘ ○○○’가 피고인임에도 불구하고,

1998. 10. 13. 서울지방법원에 98가합86702호 로 위 공소외 1을 상대로 “원고 송두율은 ‘ ○○○’라는 가명을 사용한 적도 없고,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이 없음에도 피고 공소외 1이 위와 같은 허위사실이 기재된 책자를 발간하여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니 피고는 원고에게 금 100,000,000원 및 1998. 7. 20.부터 위 사건 판결선고일까지는 연 5푼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을 때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위 법원을 기망하고 그 정을 모르는 위 법원 판사로 하여금 위와 같은 취지의 판결을 받아 위 금원을 편취하려 하였으나, 2001. 8. 23. 원고 패소판결이 선고됨으로써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증거의 요지

판시 제1의 사실은

1. 피고인의 원심 및 당심에서의 일부 법정 진술

1. 원심 증인 공소외 1의 법정 진술

1. 원심 법원의 2003. 12. 26.자 검증조서

1.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제1, 2, 5, 16, 17회 각 일부 피의자신문조서

1. 검사 작성의 공소외 38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사본

1. 검사 작성의 공소외 41, 1에 대한 각 진술조서

1. 각 초청장(수사기록 제18권 제414, 416, 417쪽) 중 이에 부합하는 각 기재

1. 방북신고서(수사기록 제18권 415쪽) 중 이에 부합하는 기재

1. 1991. 5. 18.자, 1991. 5. 20.자, 1991. 5. 21.자, 1991. 5. 25.자 각 노동신문(증제3 내지 6호)

1. 1991. 5. 24.자 비디오테이프 1개(증제2호)

등을 종합하여,

판시 제2의 사실은

1. 피고인의 원심 및 당심에서의 일부 법정 진술

1. 원심 증인 공소외 6, 1의 각 법정 진술

1. 원심 증인 공소외 9, 42의 각 일부 법정 진술

1. 원심 법원의 2003. 12. 26.자, 2004. 2. 27.자 각 검증조서

1.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제1, 2, 3, 16, 17, 18 19회 각 일부 피의자신문조서

1. 검사 작성의 공소외 1에 대한 진술조서

1. 사법경찰관 작성의 공소외 1에 대한 2000 7. 3.자, 2003. 9. 28.자 각 진술조서

1. 사법경찰관 작성의 수사보고(장의위원 신원확인, 공판기록 제2314-2332쪽)

1. 공소외 1 당사자 본인 신문조서(수사기록 제18권 제254쪽)

1. 외교통상부장관 작성의 2000. 2. 24.자 사실조회회신 사본(수사기록 제18권 제308쪽),국가정보원장 작성의 2000. 11. 21.자 사실조회 요청사항 답변(수사기록 제19권 제733쪽), 2001. 1. 31.자 사실조회 답변자료 통보(수사기록 제19권 제823쪽)

1. 방북신고서(수사기록 제18권 제415쪽)

1. 서울지방법원 98가합86702호 사건의 소장(수사기록 제18권 제51-58쪽)

1. 판결문 사본( 서울지방법원 98가합86702호 , 수사기록 제345-355쪽)

1. 3.5인치 컴퓨터 디스켓 2개(증제1호) 및 그 출력물인 대북보고문 중 “송두율부부를 만난 정형과 대책적 의견”(DSF.BAK) 및 “송두율을 만난 정형과 대책적 의견”(POO.BAK)

1. 1991. 5. 24.자 비디오테이프 1개(증제2호), 1994. 7. 14.자 비디오테이프 1개(증제23호)

1. 1991. 5. 18.자, 1991. 5. 20.자, 1991. 5. 21.자, 1991. 5. 25.자, 1994. 7. 9.자, 1995. 2. 26.자, 1996. 9. 25.자 각 노동신문(증제3 내지 6호, 증제10 내지 12호)

등을 종합하여 이를 각 인정할 수 있으므로,

판시 각 사실은 모두 그 증명이 있다.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적용법조 및 형의 선택

가. 판시 각 특수탈출의 점 : 각 국가보안법 제6조 제2항 (각 유기징역형 선택)

나. 판시 사기미수의 점 : 형법 제352조 , 제347조 제1항 (징역형 선택)

2. 경합범 가중

형법 제37조 전단, 제38조 제1항 제2호 , 제50조 {형과 범정이 가장 무거운 판시 1991. 5. 10.자 국가보안법위반(탈출)죄의 정한 형에 경합범 가중}

3. 작량감경

형법 제53조 , 제55조 제1항 제3호 (아래 양형이유에서 설시하는 정상 참작)

4. 미결구금일수 산입

5. 집행유예

형법 제62조 제1항 (아래 양형이유 참조)

양 형 이 유

1. 피고인의 죄책의 중요성

위에서 유죄로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은 1973. 9. 북한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이래 오랜 기간 동안 북한과 계속 연락을 유지해 오던 중에 1991. 5.부터 1994. 3.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비롯한 대남담당 북한고위당국자들과 접촉하면서 북한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하여 왔고, 최근에는 자신의 친북활동을 공개한 공소외 1을 상대로 소송제기에 의한 금원편취를 기도하기도 하였다. 피고인의 이러한 범행은 국가보안법의 보호법익인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행위로서 크게 비난받을 만하다. 더욱이 피고인의 위 방북 당시 북한의 각종 도발과 공작을 통한 대남전술활동과 이에 따른 우리 사회의 불안한 안보상황을 고려하면 그 비난가능성의 정도는 더욱 높다 할 것이다.

피고인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위와 같은 조선노동당 가입사실과 밀입북 내지 친북활동사실을 대외적으로 철저하게 숨기고 자신을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라고 내세우면서 마치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것처럼 행동해 왔다. 이러한 피고인의 태도는 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을 저버리고 그동안 피고인을 선의로 지지해 온 수많은 사람들을 기망한 것에 다름 아니다. 피고인은 결코 학자적인 입장에서 북한을 방문하여 학술활동을 편 것이 아니라 학자의 신분을 이용하여 우리 국가의 안전보장에 위해가 되는 반국가적 활동을 한 것이요, 피고인은 단순히 남북의 분단 장벽인 경계만을 넘은 것이 아니라 절대로 넘어서는 안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근간으로 한 우리의 실정법질서의 경계까지 넘어서 버린 것이다. 피고인을 엄중히 문책하여 응분의 처벌을 내려야 마땅할 것이다.

2.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피고인에 대한 형을 양정함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그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들이 있다.

우선 피고인의 위와 같은 조선노동당 가입사실과 친북활동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피고인의 학자 내지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권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제 그 나머지 몫은 우리 학계를 포함한 일반 국민들의 건전한 토론과 비판에 맡겨 두어도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피고인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던지 간에 피고인이 주창한 북한사회의 연구에 관한 내재적 방법론은 일부 그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북한사회를 바르게 인식하는 데 있어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해 주었으며, 피고인이 6차례에 걸쳐 주선한 통일학술회의는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남북이해증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피고인은 이미 1996년경부터 심적인 동요를 일으켜 북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 이후로 피고인에게서 별다른 친북활동이 나타나지 않고 있고, 마침내는 피고인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사실을 알고도 그 스스로 우리나라에 귀국하여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자신의 조선노동당 가입사실과 그 동안의 친북활동사실을 시인하고 앞으로 우리 실정법의 틀 안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피고인의 이 사건 밀입북행위 이후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세계는 냉전구도가 종식되고, 남북간에도 긴장관계가 완화되었으며, 나아가 문화, 체육, 학술, 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각종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이해를 증진시키는 이른바 화해의 시대, 상생의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북한은 단지 우리의 전쟁 상대방이 아니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비록 북한이 아직도 적화통일의 목표 아래 선군혁명노선을 내세우고 우리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국가보안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을 종전과 같이 모든 사안에서 일률적으로 적용하기가 매우 곤란하게 되었다.

끝으로, 1990년대초 소련의 붕괴를 필두로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대부분 몰락하면서 지금은 바야흐로 탈이념의 시대, 그리고 국가간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터에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통일은 우리 민족이 이념을 초월하여 서로 공고히 단결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꿈이요, 생존을 위한 역사적 사명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시의부적절한 이념논쟁을 불러 일으켜 남과 북의 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우리 사회의 내부적인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의 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한 법적 책임을 선언하면서 피고인 개인에 대해서는 우리의 숭고한 자유정신과 동포애로써 포용하는 쪽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막고 국민적 역량을 집결시켜 미래지향적인 국가발전과 평화적 통일을 도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모름지기 법은 사회통제의 수단으로서의 본래적인 기능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조절하여 사회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사회통합의 수단으로서 기능하도록 운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3. 결 론

이러한 제반사유들을 그 정상에 참작하여 피고인에게 주문과 같은 형을 선고하기로 한다.

무 죄 부 분

1.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제1항(반국가단체의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의 종사의 점), 제2의 바항(1994. 7. 13.자 반국가단체지역으로의 탈출의 점), 제4항(3회에 걸친 각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연락의 점)에 대하여

이 부분 각 공소사실의 요지는 앞서 각 그 해당부분에 기재한 것과 같은바, 이는 위 각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에서 설시한 바와 같이 모두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이 부분 각 공소사실에 대하여 각 무죄를 선고한다.

2.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제5항(소송사기미수)에 대하여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역시 앞서 해당부분에 기재한 것과 같은바, 피고인이 공소외 1의 허위사실 공표 여부와 관련하여 법원을 기망하였다는 공소사실 중에서, 앞서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에서 설시한 바와 같이 피고인이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점은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으므로 적어도 이 점과 관련하여서는 피고인이 법원을 기망한 사실이 없다고 할 것이어서 이 부분은 무죄가 선고되어야 할 것이나, 이와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판시 소송사기미수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아니한다.

판사 김용균(재판장) 오준근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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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04.3.30.선고 2003고합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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