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
【당 사 자】
재심청구인 양○갑
국선대리인 변호사 신헌준
재심대상결정
헌법재판소 2000. 11. 30. 선고, 2000헌마497 결정
주문
이 사건 재심청구를 기각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이 사건 기록과 증거자료(헌법재판소 2000헌마497 호 기록 및 제주지방검찰청 99형제18515호 불기소사건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재심청구인은 청구외 강○일의 밭을 임차하여 밀감농장을 운영하는 자인바, 재심청구인이 위 강○일에게 임차료를 지급하지 아니하여 위 강○일로부터 토지인도 및 임차료지급청구소송을 당하였다.
나.재심청구인은 위 강○일과 소송계속중 위 강○일과 그의 인척인 청구외 강○범이 재심청구인의 재산을 강취하거나 재심청구인을 살해할 의사를 가지고 수차에 걸쳐 폭행, 협박하였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하였으나 이를 수사한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는 그 중 일부의 사실만을 폭행죄로 약식기소하고 나머지 고소사실에 대하여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폭행, 협박, 재물손괴 등으로 의율하여 공소시효완성 또는 범죄혐의없음의 이유로 불기소처분하였다.
라.이에 재심청구인은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는 판단유탈의 잘못이 있다며 2001. 2. 12. 이 사건 재심청구를 하였다.
2. 재심청구인의 주장요지
재심청구인은 위 강○일, 강○범이 수차례에 걸쳐 폭행, 협박, 자동차타이어손괴를 한 것은 단순 폭행, 협박이 아니라 재심청구인의 재산을 강취하거나 재심청구인을 살해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범한 것이어서 강도 및 살인미수로 고소하였는데도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는 이 점에 대한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폭행, 협박 등의 점만을 대상으로 하여 공소시효완성 또는 범죄혐의없음의 이유로 불기소처분하였다.
재심청구인은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의 이러한 수사미진을 주장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한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심판청구를 기각하였기 때문에 이는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유탈한 때”에 해당하므로 재심을 구한다는 취지이다.
3. 판 단
가.재심청구인은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에 의하여 민사소송법의 재심규정이 준용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 사건 재심청구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에 관하여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의 규정을 준용한다. 이 경우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의 경우에는 행정소송법을 함께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제1항 후단의 경우에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 또는 행정소송법이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과 저촉될 때에는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은 준용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에 대한 재심절차의 허용 여부에 관하여는 별도의 명문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하여 재심이 허용될 것인지 여부가 문제되는바, 헌법재판은 그 심판의 종류에 따라 그 절차의 내용과 결정의 효과가 한결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재심의 허용여부 내지 허용정도 등은 심판절차의 종류에 따라서 개별적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재심대상사건과 같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 중 공권력의 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절차에 있어서는, 그 결정의 효력이 원칙적으로 당사자에게만 미치기 때문에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과는 달리 일반법원의 재판과 같이 민사소송법의 재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여 재심을 허용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다만 재심을 허용할 경우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유탈한 때”를 재심사유로 허용하는 것이 공권력의 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의 성질에 반하는가 여부가 문제가 된다고 할 것이다. 종래 우리 재판소는 이러한 “판단유탈”이라는 재심사유가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의 성질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비록 헌법소원심판절차에서 직권주의가 적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직권주의가 적용된다는 의미는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적법요건 및 기본권침해 여부에 관하여도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지 당사자가 주장한 사항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뿐만 아니라, 직권주의가 적용된다고 하여 당사자의 주장에 대한 판단유탈이 원천적으로 방지되는 것도 아니므로 헌법소원심판절차에 직권주의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판단유탈”을 재심사유에서 배제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특히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판단유탈”의 재심사유는 모든 판단유탈을 그 사유로 함에 있지 아니하고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대한 판단유탈만을 그 사유로 하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만약 이러한 “판단유탈”이 재심사유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중대한 사항에 대한 판단을 유탈함으로써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이 잘못은 영원히 시정할 길이 없게 된다. 더욱이 헌법재
판소법 제71조 제1항 제4호의 규정에 따르면 같은 법 제68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헌법소원의 심판청구서에는 반드시 청구이유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취지는 청구인의 청구이유에 대하여 유탈함이 없이 판단할 것을 요구함에 있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공권력의 작용에 대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심판절차에 있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유탈한 때’를 재심사유로 허용하는 것이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판단유탈”을 재심사유로 허용하는 것은 공권력의 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의 성질에 반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를 준용하여 “판단유탈”도 재심사유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종전에 이와 견해를 달리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 중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 작용을 대상으로 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에 있어서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판단유탈은 재심사유가 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우리 재판소의 의견(헌재 1995. 1. 20. 93헌아1 , 판례집 7-1, 113; 1998. 3. 26. 98헌아2 , 판례집 10-1, 320)은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나. 나아가 재심청구인의 주장에 관하여 살핀다.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가 정하는 재심사유인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유탈한 때’라고 함은 당사자가 소송상 제출한 공격방어방법으로서 판결에 영향이 있는 것에 대하여 판결 이유 중에 판단을 명시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하고, 판단이 있는 이상 그 판단에 이르는 이유가 소상하게 설시되어 있지 아니하거나 당사자의 주장을 배척하는 근거를 일일이 개별적으로 설명하지 아니하더라도 이를 위 법조에서 말하는 판단유탈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0. 11. 24. 선고 2000다47200 판결 공2001, 143).
기록을 살펴보면 재심대상결정은, 재심청구인의 강도 및 살인미수 주장에 대하여 ‘제주지방검찰청 검사가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수사를 하였다거나 증거의 취사선택 및 가치판단, 그리고 헌법의 해석과 법률의 적용에 있어 불기소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잘못을 범하였다고 보이지 아니하며, 달리 위 불기소처분이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만큼의 자의적인 처분이라고 볼 자료도 없다’는 이유로 재심청구인의 헌법소원심판을 기각하였다. 따라서 재심대상결정에는 재심청구인의 위 주장에 대한 판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이와 같이 판단이 있는 이상 그 판단에 이르는 이유나 근거 등을 일일이 또는 개별적으로 설시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에서 말하는 판단유탈이라고 할 수 없다.
4. 결 론
그러므로 재심청구인이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재심사유는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유탈한 때’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재심청구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관여재판관 중 재판관 한대현, 재판관 김효종의 다음과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5. 재판관 한대현, 재판관 김효종의 반대의견
우리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 중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 작용을 대상으로 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에 있어서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판단유탈이 재심사유로 허용된다고 하는 다수의견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밝혀둔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아래와 같은 요지로 이 사건의 재심대상 사건과 같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 중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 작용을 대상으로 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에 있어서 판단유탈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재심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사건의 재심대상사건과 같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 중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 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절차에 있어서는, 그 결정의 효력이 원칙적으로 소송당사자 사이에서만 미치기 때문에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과 동일하게 볼 수 없으므로 일반법원의 재판과 같이 재심을 허용함이 상당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헌법재판은 일반법원에 의한 재판과는 달리, 사실의 판단이나 그에 대한 법령의 적용을 주된 임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해석을 주된 임무로 하고 있으며, 특히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 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절차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법률에 의한 구제절차를 모두 거친 다음에 비로소 적법하게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심판절차상의 특수한 사정 등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일반법원의 재판에 비하여 재심을 허용하지 아니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법적 안정성의 이익이 재심을 허용할 수 있는 구체적 타당성의 이익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 중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 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절차에 있어서는, 사안의 성질상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재심은 재판부의 구성이 위법한 경우 등 절차상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법이 있어서 재심을 허용하지 아니하면 현저히 정의에 반하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해석함이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청구인이 재심대상결정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유탈한 때”를 재심사유로 규정한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재심사유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절차 중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사건에서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에 정한 판단유탈까지도 바로 헌법재판에서 재심사유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법 제71조 제1항 제4호가 비록 같은 법 제68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헌법소원의 심판청구서에 청구이유를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헌법소원심판절차에서는 변론주의
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헌법재판소는 필요한 경우 청구인이 주장하는 청구이유 이외의 헌법소원의 적법요건 및 기본권침해 여부에 관련되는 이유에 관하여 직권으로도 판단하고 있다.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헌법재판이 헌법의 해석을 주된 임무로 하고 있고,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 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절차에서는 사전구제절차를 모두 거친 뒤에야 비로소 적법하게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는 사정 등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절차 중 행정작용에 속하는 공권력 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에 있어서는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판단유탈은 적어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재심사유는 되지 아니한다.』(헌재 1995. 1. 20. 93헌아1 , 판례집 제7-1, 113; 1998. 3. 26. 98헌아2 , 판례집 10-1, 320)
우리는 위 결정의 선고 이후에 달리 위 견해를 변경할 만한 아무런 사정변경을 발견할 수 없으므로 우리 재판소의 종전의 견해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따라서 청구인이 주장하는 사유가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재심청구를 기각할 것이 아니라,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9호 소정의 판단유탈은 재심사유가 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이를 각하하여야 할 것이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한대현 하경철 김영일 권 성(주심)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주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