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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등법원 2020.11.13. 선고 2020노312 판결
준강간부착명령
사건

2020노312 준강간

2020전노38(병합) 부착명령

피고인겸피부착명령청구자

A

항소인

검사

검사

이주희(기소), 이수현(부착명령청구), 이영림(공판)

변호인

변호사 주영재

원심판결
판결선고

2020. 11. 13.

주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술을 많이 마셔 정상적인 의사판단을 하거나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던 상태임이 명백하다. 피고인 겸 피부착명령청구자(이하 '피고인'이라고만 한다)는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셔 정상적인 의사표시를 할 수 없거나 속칭 블랙아웃 상태에 있어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였더라도 그러한 동의가 효과가 없었음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피고인과 피해자가 성관계를 한 장소에 비추어 보아도 피해자가 합의 하에 피고인과 성관계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즉 피고인은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셔 사물을 변별할 의식이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면서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

2. 피고사건에 관한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19. 4. 12. 19:30경부터 2019. 4. 13. 01:10경 사이에 대전 중구 B에 있는 피고인 운영의 'C' 식당 내에서, 피고인의 친구 D, D의 여자친구 E, E의 친구인 피해자 F(여, 43세)과 함께 술을 마셨다.

피고인은 2019. 4. 13. 01:30~01:40경 위 C 식당 내에서, D 및 E이 먼저 귀가하여 피해자와 단 둘이 남게 되자 술에 만취한 피해자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피해자를 1회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거나, 피고인이 이러한 피해자의 상태를 인식하고서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점이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① 이 사건 직전 피해자와 함께 술자리를 하였던 D, E은 원심 법정에서 '피해자와 술을 많이 마시기는 하였지만, 피해자가 인사불성의 상태라거나 심각하게 취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② 이 사건이 발생한 식당에는 'ㄱ'자 모양으로 바(bar) 형태의 높은 테이블과 의자 10개 정도가 놓여 있고, 의자 뒤로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좁은 빈공간이 있다. 피해자가 만취하여 항거불능에 있었다면 피고인이 진술한 것처럼 위 식당의 좁고 높은 의자에 앉아있는 피해자가 다리를 올린 상태로 성관계를 할 수 없었을 것이고, 피해자의 협조 없이 피해자의 단추로 여미는 청바지를 벗기고 성관계를 한 후 다시 이를 제대로 입히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식당 바닥에서 성관계를 하였다고 가정해 보아도, 피해자가 입은 흰색 니트 등 옷이 더러워지거나 흐트러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피해자가 이 사건 직후 식당에서 나온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에는 피해자가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고, 피해자의 옷이 더럽혀지거나 찢어지는 등의 흔적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③ 피고인과 피해자가 이 사건 직후 식당에서 나와 걷는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에 의하면, 피해자가 한 손은 피고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가방을 든 채로 피고인과 대화하며 스스로 걷거나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피고인에게 의지하여 걷는 등 만취하였다고 볼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④ 피해자는 피고인이 부른 대리기사 G이 운전하는 차량 뒷좌석에 탑승하였는데 G에게 정확한 목적지를 말하였고, 목적지에 도착한 후 주차장소를 안내하여 주었으며, 대리비를 지급한 다음 스스로 주거지로 걸어갔다. G은 원심 법정에 출석하여, 당시 피해자가 술에 많이 취한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고 대리를 불렀기 때문에 술을 마셨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진술하였다.

⑤ 피고인은 이 사건이 발생한 뒤 당일 오후에 피해자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고, 피해자와 통화하면서 스스로 피해자에게 성관계 사실을 알렸다. 피고인은 성관계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취지로 대화하면서 피해자에게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었는데, 이는 피해자가 만취하여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알고 이를 이용하여 간음한 사람의 태도로 보기는 어렵다.

⑥ 피해자가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이 사건에 관하여 아무런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주취에 따른 일시적 기억상실증인 '블랙아웃(black out, 알코올이 임시 기억 저장소인 해마세포의 활동을 저하시켜 정보의 입력과 해석에 악영향을 주지만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 활동을 하는 현상)' 증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 당심의 판단

원심이 들고 있는 위와 같은 사정들에 더하여, 원심과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까지 보태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은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검사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없다.

1) 준강간죄의 성립요건

가)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

형법 제299조(이하 '본조'라고 한다)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를 형법 제297조, 제298조의 강간 또는 강제추행의 죄와 같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본조의 죄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사정으로 인하여 성적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본조에서의 항거불능의 상태라 함은 형법 제297조, 제298조와의 균형상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 때문에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0. 5. 26. 선고 98도3257 판결 등 참조). 한편 본조에서 말하는 '심신상실'은 정신장애 또는 의식장애 때문에 성적 행위에 관하여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바, 위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심신상실로 인하여 피해자가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여야 한다. 형법은 심신미약자에 대한 간음행위를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행한 행위에 한정하여 벌하고 있으므로(형법 제302조), 사람의 심신미약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행위는 원칙적으로 본조의 적용범위에서 제외될 것이다.

피해자가 범행 당시를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한 경우,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 피해자가 기억형성을 실패한 것 외에도 행위 당시 상대방의 성적 요구에 대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행위통제능력 내지 의사형성능력(및 의사실현능력)의 장애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느 정도의 장애가 있었는지를 구분하여 평가하여야 한다. 피해자가 성관계 당시에는 인지기능이나 의식이 정상 범주에 있다가 주취로 인한 일시적 기억상실증(블랙아웃)을 겪어 사후적으로 성관계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피해자가 성관계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술을 마신 피해자와 성관계를 한 것에 대하여 준강간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단순히 주취로 인해 사후적 기억상실증을 겪는 것을 넘어 성관계 당시에도 정상적인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한 상태에까지 이르렀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어야 한다.

나) 피고인의 준강간 고의

본조의 준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준강간의 고의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말한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2) 이 사건에서의 판단

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는지에 관한 판단

(1) 피해자가 평소 음주를 즐겨하지 않고 이 사건 성관계 이전에는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경험이 거의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피해자는 이 사건 성관계 전날 밤 11:40경 술자리에서 사진을 촬영하여 이를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고도 그러한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등 적어도 그때부터 이 사건 성관계 당일 02:27 경 피고인과 헤어질 때까지 약 3시간 동안의 기억을 모두 상실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성관계 당일 피해자가 평소에 비해 비교적 많은 양의 음주를 하였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원심과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블랙아웃 증상으로 인하여 사후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것을 넘어서서 이 사건 성관계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① 이 사건 성관계를 전후한 무렵 피해자와 함께 있었거나 피해자를 목격하였던 사람들(술자리를 같이 하였던 D과 E, 피해자의 차량을 운전하였던 G) 중 누구도 피해자가 말을 어눌하게 하였거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린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오히려, D은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 'E과 자신이 이 사건 당일 01:20경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대리운전을 부르려고 하는데, 피해자 스스로 "남아서 한 잔 더 마시고 피고인과 이야기를 좀 더 하겠다."고 말하여 피해자를 혼자 남겨두고 귀가하였다'고 진술하였고(공판기록 제159면), E 역시 원심 법정에서 '자신과 D이 떠날 때 피해자가 배웅까지 할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다(공판기록 제141면). 또한 대리기사 G은 원심 법정에서 '피해자가 차량 뒷좌석에서 잠들기는 하였으나, 도착할 때쯤에는 잠에서 깨어 정확한 목적지와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고 진술하였다(공판기록 제212, 213면).

② 피해자가 피고인과 함께 피고인의 식당에서 나오는 장면이 촬영된 CCTV에서도 피해자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비틀거리는 등의 기색이 전혀 없이 피고인의 손을 잡고 피해자의 차량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만이 담겨 있을 뿐, 만취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만한 별다른 특이점이 없고, 옷매무새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③ 피고인은 이 사건 성관계 당시 피해자가 다소 술에 취하기는 하였지만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는 상태였다고 진술하였다.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는 높고 팔걸이 없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린 자세로 피고인과 성관계를 하였고 성관계 도중 의자에서 내려와 피고인을 애무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성관계가 발생한 장소인 식당의 내부 구조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진술과 다른 방법으로 성관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쉽게 상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진술과 같은 방법으로 성관계를 하였다는 것은 피해자가 이 사건 성관계 당시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사건 성관계 이후 피해자의 신체에 상처나 통증이 발생하였다거나 의복이 손상 내지 오염되었다는 정황이 발견되지 않는 것도 피고인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점이다.

④ 피고인은 이 사건 성관계 이후 대리기사를 부를 때 피해자가 자신의 거주지 동네를 알려주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는 대리기사 호출을 받을 때 목적지를 받는다는 G의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공판기록 제215면)과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대리기사에게 알려주었다는 피해자의 거주지 동네가 실제와도 부합하므로 믿을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바, 그에 따르면 이 사건 성관계 직후 피해자가 피고인과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였다고 보인다.

(2) 피해자는 '이 사건 성관계 전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여서 성관계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 귀가할 때까지의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마음이 있거나 피해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술에 취한 것을 이용해서 성관계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피고인은 유부남이고 이 사건 성관계 직전 처음 만난 사이였으므로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성관계에 동의하였을 리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그러나 위에서 본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이 사건 성관계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주취로 인한 블랙아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일 뿐이고, 피해자가 평소 자신의 품성과 달리 초면의 피고인과 예상치 않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허락할 동기나 이유가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이성적 판단에 기반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저하되었다고는 볼 수 있을지언정 피해자가 심신미약 상태를 넘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나)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었는지에 관한 판단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가 이 사건 성관계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고 오히려 피해자가 자발적인 움직임과 대화가 가능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는바, 그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어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내심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피고인은 피해자와 성관계를 맺은 이후 피해자가 놓고 간 휴대전화기를 피해자가 언제든지 찾을 수 있도록 근처 편의점에 맡기고, 피해자가 떨어뜨린 귀걸이 한 쪽을 챙겨 두었으며, 이 사건 성관계 당일 오후 4시경에는 피해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다가 간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이 사건 성관계 사실을 알렸다. 이와 같이 피고인은 이 사건 성관계 이후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친근감을 유지한 채 다음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고, 이는 통상적으로 피해자가 의식불명인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사람이라면 취하기 어려운 태도라고 보인다.

한편, 피고인이 배우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에 대하여 피고인이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을지언정 준강간 범죄의 고의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3. 부착명령청구사건에 관한 판단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4항 제2호에 따르면 특정범죄사건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때에는 판결로 부착명령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 이 법원은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유지하므로, 검사의 부착명령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4.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제35조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이준명

판사 류재훈

판사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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