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광주고법 1984. 10. 12. 선고 84나47,48 제2민사부판결 : 확정
[토지인도등청구사건][하집1984(4),6]
판시사항

1948. 8. 9. 당시 일본국법인소유였던 토지의 소유권귀속

판결요지

1945. 8. 9. 현재 토지대장상 일본 법인체의 소유명의로 기재되어 있는 이상 군정법령 제33호 제2조에 의하여 그 소유권이 일응조선군정청에 귀속되었다 할 것이고, 그후 한미간에 체결된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에 의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되었다 할 것이므로 군정법령 제103호와 1948. 4. 17.자, 1948. 7. 28.자의 각 군정장관지령에 의한 재산소청위원회의 귀속해제의 재결 또는 간이소송절차에 의한 귀속해제결정 및 법률 제120호에 의한 귀속해제를 받거나 혹은 법원으로 부터의 확정판결에 의한 귀속해제를 받은바 없는 이상 본건 토지는 현재도 대한민국의 소유이다.

참조조문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법령 제33호) 제2조

참조판례

1969. 9. 23. 선고 69다902 판결 (요 군정법령제33호(폐(30)나 제2조1964면 집17③민101 카782)

원고(반소피고), 피항소인

원고

피고(반소원고), 항소인

영암군

주문

1. 1심 판결을 취소한다.

2. 원고(반소피고)는 피고(반소원고)에게 돈 308,100원 및 이에 대한 1983. 7. 21.부터 다 갚을 때까지 연 2할 5푼의 셈에 따른 돈을 지급하라.

3. 원고(반소피고)의 본소청구를 기각한다.

4. 소송 총비용은 본소, 반소 모두 원고(반소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5. 2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원고(반소피고, 이하 원고라고 줄여쓴다)는-본소로서-피고(반소원고, 이하 피고라고 줄여쓴다)는 원고에게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세지번 1 생략) 대 237평을 인도하고, 1980. 7. 1.부터 위 토지인도 완료시까지 연 돈 118,500원의 셈에 따른 돈을 지급하라.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라는 판결을 구하였다.

피고는-반소로서-주문 2항과 같은 판결을 구하였다.

항소취지

피고는 주문과 같은 판결을 구하였다.

이유

1. 본소에 관한 판단.

가. 다음에서 보는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1)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세지번 1 생략) 대 237평(이하 이건 토지라 한다)에 관하여 1975. 9. 26. 광주지방법원 영암등기소 등기접수 제5,126호로서 1974. 11. 5. 매매를 원인으로 한 원고앞으로의 소유권 이전등기가 마치어졌다.

(2) 피고가 1951. 12. 20.께부터 이건 토지를 피고 산하 독천시장 부지로 점유 사용하여 오고 있다.

나. 따라서 이건 토지는 원고의 소유로 추정된다 할 것이다.

다. 피고는 이건 토지는 8ㆍ15 해방당시 일본 법인인 소외 왕자제지주식회사 소유였으므로 1945. 12. 6. 공포시행된 군정법령 제33호 제2조에 의하여 국가에 귀속된 것인 바, 그후 귀속해제를 위한 적법한 절차를 받음이 없이 토지대장상에 소외 1이 1948. 5. 1.자로 소유권이전이 된 것으로 기재된 것을 근거로 하여 소외 1 이름으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한 뒤 전전하여 원고가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소외 1 이름의 소유권보존등기는 원인무효이고 이에 터잡아 이루어진 그 뒤의 각 소유권이전등기도 원인없음에 귀착된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각 그 성립에 다툼이 없는 을 1호증의 1(토지대장등본), 을 1호증의 2(등기부등본), 을 2호증(귀속농지분배여부 확인에 대한 회답), 을 3호증의 1(토지대장), 을 3호증의 2(등기부등본), 을 7호증(확인서), 을 8호증(확인서), 을 9호증의 1(감사관계표지), 을 9호증의 2(조사보고서), 을 10호증(확인서), 갑 1호증(등기부등본) 1심증인 고송삼의 증언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을 4호증(확인서), 1심증인 안보윤의 증언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을 5호증(확인서), 1심증인 조구환의 증언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을 6호증(확인서)의 각 기재와 위 증인들 및 1심증인 선사차, 당심증인 고윤석의 각 증언에 당사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다음의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듯한 1심증인 최아순의 증언은 믿지 아니하고, 달리 반증이 없다.

(1)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세지번 2 생략)의 토지는 원래 임야이었는데 그 중 일부인 (상세지번 1 생략) 817평이 1927. 5. 10. 논으로 개간 준공되고 1928. 8. 9. 처리되어 1928. 4. 30. (지번 2 생략)에서 분할되었다가, 1955. 4. 30. 대지로 그 지목이 변경되었다.

(2) (상세지번 1 생략) 대 817평은 1956. 6. 5. (상세지번 1 생략) 대 336평, (지번 3 생략) 대 143평 (지번 4 생략) 대 338평으로 분할되었고, (지번 1 생략) 대 336평은 그후 1973. 12. 13. 이건 토지와 (지번 5 생략) 내지 (지번 6 생략)으로 분할되었다.

(3) 지목이 변경되기전의 (지번 1 생략) 답 817평은 토지대장상 원래 일본인 검지신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가 1936. 11. 5. 일본전기공업주식회사, 1939. 7. 27. 일본소화전기주식회사, 1941. 3. 11. 일본소화공업주식회사의 각 이름으로 소유권이전되었다가 같은해 5.20.자로 일본 동경시 왕자구 왕자정 1정목의 그 소재 일본법인체인 소외 왕자제지주식회사 앞으로 소유권이전이 된 후 1948. 5. 1.자로 소외 1 앞으로 소유권이전이 되어있어 1945. 8. 9. 당시에는 토지대장상 위 일본법인체인 소외 왕자제지주식회사 앞으로 그 소유명의가 되어 있었다.

(4) 소외 1은 6ㆍ25사변 당시 사망하여 그의 아들인 소외 2가 그 후주 및 재산상속을 하였고, 소외 2는 1973. 3. 10. 사망하여 동 소외인의 재산은 그의 처인 소외 3 외 8인 앞으로 공동상속되었다.

(5) 그후 이건 토지에 관하여는 소외 1이 앞서 본 바와 같이 6ㆍ25사변 당시 이미 사망하였음에도, 1959. 8. 26. 광주지방법원 영암등기소 등기접수 제2,482호로서 소외 1 앞으로 소유권보존 등기가 되었다가, 1973. 9. 15. 같은등기소 등기접수 제4,189호로서 1965. 4. 25. 재산상속을 원인으로 한 소외 3 외 8인 앞으로의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된 뒤, 이에 터잡아 이미 앞서본 바와 같은 원고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치어졌다.

라. 위 인정사실에 의할 때, 이건 토지가 1945. 8. 9. 현재 토지대장상 일본 법인체의 소유명의로 기재되어 있는 이상 군정법령 제33호 제2조에 의하여 그 소유권이 일응 조선군정청에 귀속되었다할 것이고, 그후 한미간에 체결된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에 의하여 소외 대한민국 정부에게 이양되었다 할 것이며, 그뒤 소외 1이나 소외 2가 군정법령 제103호와 1948. 4. 17.자 1948. 7. 28.자의 각 군정장관지령에 의한 재산소청위원회의 귀속해제의 재결 또는 간이소청절차에 의한 귀속해제결정 및 법률 제120호에 의한 확인을 받거나 혹은 법원으로부터의 확정판결에 의한 귀속해제를 받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건에 있어서 이건 토지는 현재도 소외 대한민국의 소유라 할 것이므로 ( 대법원 1969. 9. 23. 선고 69다902 판결 참조) 이건 토지에 관한 앞서본 소외 1 앞으로의 소유권이전등기와 그에 터잡은 소외 3 외 8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 및 원고앞으로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모두 원인무효의 등기라 할 것이다.

마. 따라서 이건 토지가 원고의 소유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위 주장은 그 나머지 점에 관하여 더 나아가 살필 나위도 없이 그 이유가 없다.

2. 반송청구에 관한 판단.

가. 다음에서 보는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1) 피고는 1977. 9. 1. 원고로부터 이건 토지를 그 임료를 월 돈 5,925원씩 그 기간을 1977. 9. 1.부터 1977. 12. 31.까지로 정하여 임차하였다.

(2) 다시 피고는 1978. 3. 24. 원고로부터 이건 토지를 그 임료를 월 돈 5,925원씩 그 기간을 1978. 1. 1.부터 1978. 12. 31.까지로 정하여 임차하였다.

(3) 피고는 1979. 2. 13. 원고로부터 이건 토지를 그 임료를 월 돈 7,900원씩 그 기간을 1979. 1. 1.부터 1979. 12. 31.까지로 정하여 임차하였다.

(4) 피고는 1980. 3.께 원고로부터 이건 토지를 그 임료를 월 돈 19,750원씩 그 기간을 1980. 1. 1.부터 1980. 12. 31.까지로 정하여 임차하고, 1980. 6. 30.까지의 임료를 지급하였다.

나. 앞서 채택한 각 증거에 의하면, 이건 토지가 원래 귀속농지로서 그 소유권이 소외 대한민국에 귀속되었음에도 피고는 이건 토지를 그 산하의 독천시장 부지로 사용하기 위하여 이건 토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앞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원고가 이건 토지의 진정한 소유자인 것으로 믿고 원고와 그에 관하여 이미 위에 본 바와 같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그 임료로 1977. 9. 1.부터 1980. 6. 30.까지 모두 돈 308,100원 (=5,925×4+5,925×12+7,900×12+19,750×6)을 원고에게 지급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듯한 1심증인 최아순의 증언은 믿지 아니하고, 달리 이에 어긋나는 증거가 없다.

다. 따라서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이건 토지에 관한 아무런 권원없이 이를 피고에게 임차하여 위 임료상당의 이득을 얻고 피고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 할 것이므로, 원고는 피고에게 위 돈308,100원 및 이에 대한 이건 반소장 부본이 원고에게 송달된 다음날인 기록상 명백한 1983. 7. 21.부터 다 갚을 때까지 연 2할 5푼의 셈에 따른 소송촉진등에 관한 특례법 소정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3. 그렇다면 원고의 본소청구는 이유없어 이를 기각하고, 피고의 반소청구는 이유있어 이를 인용할 것인바, 1심 판결은 이와 그 결론을 달리하고 있어 부당하므로 이를 취소하고, 소송 총비용의 부담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96조 , 제89조 를 적용하며, 가집행을 붙이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정상학(재판장) 강병호 김길중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