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5노3088 살인
피고인
A
항소인
쌍방
검사
김한민(기소), 윤재필(공판)
변호인
변호사 W(국선)
원심판결
수원지방법원 2015. 10. 20. 선고 2015고합431 판결
판결선고
2016. 4. 22.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한다.
압수된 절구공이 1개(증 제1호), 넥타이 1개(증 제2호)를 각 몰수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1) 정당방위 내지 과잉방위 주장
피고인은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일종인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현실적으로 위험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과도한 공포심과 방어본능 때문에 이 사건 범행 당시 순간적으로 공격성을 띠게 되었다. 피고인의 이러한 특별한 심리상태를 고려하면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자신과 자녀들의 생명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보호하기 위한 상당성 있는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범행은 정당방위 상황에서 다만 그 행위가 상당성을 벗어난 것으로서 과잉방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를 간과한 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2) 심신장애 주장
피고인은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당해오면서 형성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중증의 우울증을 앓고 있던 중 이 사건 범행 당시 우울증 약을 미처 복용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량의 술을 마셔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간과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심신장애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3) 양형부당 주장
원심이 선고한 형(징역 2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검사
원심이 선고한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2. 판단
가. 피고인의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 주장에 대하여
1)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그 행위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것으로서 침해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하여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이어야 하고,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방어행위에는 순수한 수비적 방어뿐 아니라 적극적 반격을 포함하는 반격방어의 형태도 포함되나, 그 방어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도2540 판결, 대법원 2003. 11. 13. 선고 2003도3606 판결 등 참조).
2)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해자는 수시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피고인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고 성적 학대를 하거나 칼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가정폭력을 행사해 왔고, 이 사건 당일에도 피해자가 만취한 상태에서 식칼을 피고인의 목에 들이대며 "넌 죽을 준비해라. 죽여 버린다."라고 위협을 하며 폭언을 하고, 발로 차고 가전 도구를 던지는 등 폭행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관계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위와 같은 침해행위가 그 후에도 반복하여 계속될 염려가 있어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의 생명, 신체 등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장기간 반복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하여 왔다고는 하나, 피고인은 멍이 들거나 긁힌 정도의 상처를 입은 적이 있을 뿐이고 피해자가 피고인을 살해하려고 하는 등의 극단적인 행위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던 점, ② 피해자가 이 사건 당일 식칼을 피고인의 목에 들이대며 '죽이겠다'고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 피고인의 아들이 피고인과 피해자의 싸움 소리에 잠을 깨 1층으로 내려와 싸움을 말리면서 부엌에 있던 칼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 숨겨두어 더 이상 피해자가 식칼로 피고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점(원심 증인 E의 진술 등), ③) 피고인이 반복되는 피해자의 가정폭력에 굴복하여 이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구타와 학대를 감내하며 살아가게 되는 이른바 '매 맞는 아내 증후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심리가 언제나 상대방에 대한 살인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은 아닌 점, ④ 피해자가 만취한 상태에서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 위로 올라타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을 절굿공이로 수차례 내리쳐 피해자가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상태에 이른 후에, 피해자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방안으로 들어가 넥타이를 가져온 뒤 그 넥타이로 피해자의 목을 강하게 졸라 질식시켜 살해함으로써 그 어떤 가치보다도 고귀하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점, ⑤ 피고인의 딸이 말렸음에도 피고인은 "어차피 이렇게 때렸는데 너희 아빠가 일어나면 우리가 보복만 당하고 위험해진다."라고 말하며 절굿공이로 피해자의 얼굴과 머리를 때리고 넥타이로 목을 졸라 살해하기에 이른 점, ⑥ 피해자의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피고인의 법익의 종류나 정도가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침해된 법익인 피해자의 생명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행위는 피해자의 가정폭력으로부터 자신과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서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있는 행위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과잉방위행위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피고인의 심신장애 주장에 대하여 당심 전문심리위원 X의 의견 등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피고인은 2013. 8. 27.경부터 중증의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이 사건 범행당시까지 우울증 약을 복용해 온 점, ② 피고인은 오랜 기간 피해자로부터 잦은 폭언 및 폭행, 성적 학대 등을 당하여 만성적인 우울감정과 불안, 절망감 등을 겪어왔고, 이 사건 범행 당시에도 피해자로부터 폭언 및 폭행을 당한 후 순간적으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부적절한 공격적 행동 등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점, ③ 피고인이 경험하였던 가정폭력의 위험수위는 국내외 유사한 가정폭력 사건의 위험수위의 경계선을 훌쩍 뛰어넘는 심각한 수준으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합리적으로 사물을 변별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이는 점, ④ 피고인은 20여 년간의 극심한 가정폭력을 경험하여 폭력적인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를 이성적으로 억제하는 전두엽 집행기능 상의 문제도 있었으며 종합심리검사 결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만성적인 우울장애가 심각하게 의심되는 상태인 점 등을 비롯하여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언행 및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중증 우울증 등으로 인하여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이를 반영하지 아니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심신장애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있다.
다만,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전후의 상황과 범행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억하여 진술하고 있는 점, 피고인은 당시 평소 주량보다 많은 술을 마시기는 하였으나 화장실에서 토한 후 1시간 30분가량 쓰러져 있다. 나와 어느 정도 술에서 깬 상태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위 범행 당시 심신미약의 상태를 넘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던 심신상실의 상태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판단된다. 피고인의 심신상실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심신미약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피고인과 검사의 각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범죄사실 및 증거의 요지
이 법원이 인정하는 범죄사실과 그에 대한 증거의 요지는,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중 제2쪽 12행의 '피고인으로부터'를 '피해자로부터'로, 제2쪽 20행의 '피고인의 오른 손을 쳐'를 '피해자의 오른손을 쳐'로, 제2쪽 21 행의 '피고인과 말다툼을 하다가'를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다가'로, 제3쪽 1행의 '피고인의 머리를 1회 내리쳤다'를 '피해자의 머리를 1회 내리쳤다'로 각 정정하고1), 제3쪽 7행의 "생각이 들자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도 피해자를 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었다."를 "생각이 들자 중증 우울증 등으로 인하여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피해자를 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었 다."로 고쳐 쓰고, 원심판결 증거의 요지 중 '1. 당심 증인 G의 법정진술'을 추가하는 외에 원심판결의 각 해당란 기재와 같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9조에 의하여 그대로 인용한다.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및 형의 선택
형법 제250조 제1항(유기징역형 선택)
1. 법률상 감경2)
형법 제10조 제2항, 제1항, 제52조 제1항, 제55조 제1항 제3호(심신미약자이며 자수하였으므로 거듭 감경)
1. 몰수
형법 제48조 제1항 제1호, 양형의 이유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전 남편인 피해자와 다투다가 피해자가 술에 취해 넘어져 있는 사이에 피해자의 가슴에 올라타 절굿공이로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 부위를 수회 내려치고, 넥타이로 피해자의 목을 졸라 질식시켜 살해한 사안으로서, 비록 피고인이 피해자의 계속된 가정폭력의 희생자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인 피해자의 생명을 잃게 하였다는 점에서 그 죄책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피고인은 피해자가 유부남인 사실을 모른 채 동거하다 피해자의 강압에 못 이겨 사실혼 및 법률혼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약 20년간 피해자로부터 폭행과 욕설, 성적 학대 등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육체적·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고통을 당하였고 그에 따른 중증 우울증 등으로 인하여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지금까지 자녀들과 함께 수차례 가출을 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등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하였으나 피해자가 현상금을 건 전단지를 배포하거나 친정 식구들을 찾아가 행패를 부려 모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 더 큰 보복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 피고인으로서는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안고 살아왔던 점, 이 사건 당일에도 피해자가 만취하여 피고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였고, 이에 피고인이 순간 격분하여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은 범행 직후 경찰에 신고하여 자수하였고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 점, 피해자의 유족인 형제자매들도 피해자가 평소 피고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하여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피고인에게는 피해자와 사이에 19세, 14세, 11세의 세 자녀들을 두고 있고, 그 중 막내딸은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우울증을 앓고 있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성년인 자녀 둘은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등 자녀들의 생계가 어려워진 점, 피고인은 두 차례의 가벼운 벌금형 이외에는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와 경위, 범행 후의 정황 등 여러 가지 양형의 조건들과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3) 등을 종합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판사
재판장판사정선재
판사김상우
판사오경미
주석
1) 당심 제2회 공판기일에서 검사가 공소장 정정진술을 하였다.
2) 국민참여재판 절차에 따라 진행된 원심에서 피고인의 심신장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채 피고인의 자수를 인정하여 법률상 감경을 하고 거듭 작량감경한 처단형 범위 내에서 징
역 2년을 선고하였다. 당심에서 피고인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여 심신미약 감경을 하고
거듭 자수감경을 한 이상 추가로 작량감경을 하지 아니한다.
3) 위 양형기준에 따르면 이 사건은 제1유형(참작 동기 살인) > 특별감경영역(1년 6월~5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