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
[2] 간접증거의 증명력
[3] 피고인이 농약을 미리 PT병에 담아 두었다가 갑이 술에 취한 틈에 몰래 유리잔에 따라 건네주어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갑을 살해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직접증거는 존재하지 않거나 믿기 어렵고, 나머지 간접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찰해도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자살이 아니라는 갑의 생전 진술과 PT병에 묻은 피고인의 지문 등에 의존하여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형사소송법 제307조 , 제308조 [2] 형사소송법 제307조 , 제308조 [3] 형법 제250조 제1항 , 형사소송법 제307조 , 제308조
참조판례
[1] 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31 판결 (공2012하, 1367) [2] 대법원 2001. 11. 27. 선고 2001도4392 판결 (공2002상, 228) 대법원 2004. 9. 13. 선고 2004도3163 판결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법무법인 세종 담당변호사 이근웅 외 5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각 의견서와 호소문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검사의 증명이 위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에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31 판결 참조).
2. 원심판결이 밝힌 유죄 판단의 요지를 본다.
원심은 피해자가 사망하게 된 것은 피해자의 자살이 아니라면 피고인의 계획적인 범행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전제 아래, ① 피해자는 중환자실에서 세 차례에 걸쳐 경찰관들과 대화를 하면서 ‘사건 당일인 2013. 11. 4. 저녁 농약이 든 포카리스웨트 PT병을 보지 못하였고 농약을 이 사건 아파트에 가져가지도 않았으며 농약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마신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데, 그 진술이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루어진 것으로서 진술의 태양, 진술 내용이 자연스럽고 객관적 정황과 배치되는 부분이 없어 위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점, ② 피고인은 남편과 사실상 결별하고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피해자를 선택하였는데도, 피해자는 2013. 10. 25. 아침 피고인과 다투고 가출한 이후 피고인과 헤어지려 하였고, 피고인은 이러한 피해자의 의도를 인식하고 피해자에 대하여 극도의 배신감과 분노심을 느꼈을 것이므로 살인에 대한 심리적 동기가 인정될 뿐 아니라,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받은 이 사건 아파트와 이 사건 자동차를 그대로 보유할 수 있었으므로 살인에 대한 경제적 동기도 인정되는 점, ③ 농약이 들어있던 포카리스웨트 PT병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발견되었고, 이에 대해 피고인은 피해자가 농약을 마신 후 119에 실려가고 난 다음 거실에 있던 위 PT병을 발견하고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들어보았다는 취지로 진술하는데, 위 PT병은 아파트 보안요원인 공소외 1이 최초 발견하여 경찰관 공소외 2를 거쳐 119 구급대원 공소외 3에게 전달되기까지 피고인이 만질 시간이 없었으므로 결국 피고인은 위 PT병을 만진 경위에 관하여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점, ④ 그 외 피고인이 사건 발생 즉시 119나 경찰에 신고하지 아니하고 옆집인 1402호에 가서 도와달라고 요청함으로써 그 시간 동안 신고를 지연하고, 출동 경찰관 등에게 ‘피해자의 아들이 농약을 보내 아버지를 죽게 하였다’고 거짓 진술을 하거나, 사건 다음 날 피고인의 언니 및 동생과 함께 사건 현장을 청소하고 곧바로 이 사건 아파트의 전세를 의뢰한 사정들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 정황이 될 수 있는 점 등을 이유로, 피고인이 포카리스웨트 PT병에 담아 준비해 둔 그라목손 농약을 피해자 몰래 유리잔에 따라 피해자에게 건네주어 이를 마시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3. 원심의 유죄 판단은 아래 사정들을 종합해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 자살이 아니라는 피해자 진술에 관하여
(1)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피해자의 자녀들인 공소외 4, 공소외 5 등을 비롯한 피해자의 가족들은 피해자에게 피고인과 헤어지고 피고인으로부터 이 사건 아파트와 이 사건 자동차를 돌려받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피해자는 2013. 10. 25. 피고인과 크게 다투고 둘이서 동거하던 이 사건 아파트에서 가출하였다. 피해자는 같은 날 자신의 동생 공소외 6에게 ‘미안해 하루도 살기 싫어 다들 내가 아니잖아 내가 되어봤을까? 내 몰골이 싫어 그냥 없어지고 싶어 (중략) 너무 싫어 이 삶이 나 없어지면 화장은 안 돼 그냥 형의 바람대로 알아서 해결해 줘 (중략) 모든 게 싫어 자고 싶어 아주 영원히 미안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딸인 공소외 4에게 ‘나에 바램 다 못하고 가더라도 원망치 말거라 하루도 버티기가 이리 힘들단다 엄마 공소외 7 나의 전부란다 화장은 하지 말고 있는 대로 하길 바래 다들 힘들게 했나 보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심적 고통을 호소하였다. 가출 이후 피해자는 피고인이 보낸 카카오톡 문자메시지에 일절 응답하지 아니하다가 피고인에게 2013. 11. 1. ‘한 번은 만나야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다음 날에도 ‘풍지박살 난 우리 집하며 어찌 헤어날 수가 있나요’라는 등의 괴로움을 표하면서 다시 한 번 만나자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피해자는 사건 당일인 2013. 11. 4. 오전 아들인 공소외 5와 피고인을 만난 자리에서 줄곧 공소외 5와 피고인 사이의 대화를 듣기만 할 뿐 피고인과 헤어지겠다는 등의 언급은 하지 아니하고 ‘죽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등의 말만 하거나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② 피해자는 평소 어머니인 공소외 8의 농사일을 도와 주곤 하였는데, 이 사건 발생 후 공소외 8의 주거지 내 비닐하우스 안에서 개봉을 하지 않은 그라목손인티온 농약병 1병과 약 150ml 정도가 사용된 그라목손인티온 500ml들이 농약병 1병이 발견되었다. 위 그라목손인티온은 제초제로 사용되는 맹독성 농약으로 음독사고 방지를 위하여 악취제, 구토제를 첨가하여 매우 불쾌한 생선 썩는 냄새를 풍기도록 제조되고 진초록색을 띠고 있는데, 사람이 약 10-15ml를 음독할 경우 적절한 응급처치가 없으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맹독성 때문에 그라목손인티온은 2012. 10. 31. 이후로는 판매가 금지되고 제조사가 대리점 및 판매점에서 전량 회수 폐기하여 농약 판매점에서는 더 이상 그라목손인티온을 보관하거나 판매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경찰관의 조사 과정에서 시골집에 제초제 그라목손이 2병이나 3병 정도 있었고 지금은 단종 품종이라고 진술하였다. 피해자가 사건 당일 음독한 그라목손인티온은 위 비닐하우스 안에 보관되어 있던 농약과 동일한 성분의 것이다.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의사 공소외 9와 위 병원 소속 농약중독연구소장 공소외 10은 피해자의 경우 입원 3일째가 되는 날에도 소변에서 지속적으로 농약이 검출되고 있어 음독양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구체적으로는 100cc 이상일 것으로 보이고, 구토제가 들어 있어도 독한 마음으로 수백cc를 음독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피해자와 피고인은 사건 당일 이 사건 아파트에서 맥주 2병과 소주 1병 및 1/5 정도 남아 있던 시바스리갈 양주를 나누어 마셨는데, 그 이전에 피해자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아니하였다. 한편 사건 당일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경찰관이 출동하였을 당시 피고인은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③ 피해자가 토한 토사물은 술을 마셨던 거실 탁자 부근에 있지 않고 현관 입구 화장실 부근에 주로 있었고, 구토 당시 피해자는 옷을 다 벗은 상태였다. 피해자가 농약을 음독하고 순천향대학병원에 도착한 직후 작성된 응급의료센터 임상기록에는 ‘머금고 있다 뱉었다’고 적혀 있다.
④ 피해자는 위 병원 중환자실에 후송된 이후 2013. 11. 5.부터 같은 달 7.까지 총 3회에 걸쳐 경찰관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2013. 11. 6. 피해자의 아들 공소외 5 및 딸 공소외 4와 대화를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시종일관 ‘자살할 생각으로 먹은 것은 아니다. 농약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어떤 경위로 마셨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피고인이 농약을 먹였는지는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피고인이 농약을 줘서 마신 것 아니냐?’는 경찰관들이나 자녀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피고인을 분명하게 범인으로 지목하지는 아니한 채 그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2) 위와 같은 사실들과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보면 자살이 아니라는 피해자의 진술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정황과 부합하지 아니한 면이 있어 이를 전적으로 신빙하기는 어렵다.
① 피해자는 피고인과의 만남과 다툼, 그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의 불만이나 비난·간섭·압력 등으로 인해 그 이전에는 물론 사건 당일에도 수차에 걸쳐 죽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고, 특히 동생과 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화장은 하지 말라’고 하여 사후(사후)의 매장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② 피고인이 사건 당일 술에 많이 취해 있었던 사정에 미루어 보면 맥주 2병, 소주 1병, 양주 1/5병 중 적지 않은 양을 피고인이 마셨던 것으로 보이므로, 피해자가 그 나머지 전부를 마셨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평소 주량을 감안할 때 만취 상태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피해자는 평소 농사일을 해 왔으므로 그라목손 농약의 색깔이나 냄새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사건 당일 피해자가 아무리 피로하거나 취한 상태에 있었다 하더라도 생선 썩는 독한 냄새가 나는데다 진초록색을 띠고 있는 그라목손 농약을 맥주나 양주 등의 술과 구분을 하지 못하고 술인 줄 착각하고 마신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술에 취한 나머지 이를 구분하지 못하여 자기도 모르게 실수로 마시는 경우에도 소량을 마셨을 수는 있지만, 한 번에 마시기 어려울 정도인 100cc에 이르는 많은 양을 마신다는 것은 일부러 마음먹고 마시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또, 피해자가 술에 만취하여 농약인 줄 모르고 마셨다면 술을 마시던 탁자 부근에서 술 마실 때처럼 옷을 입은 채로 토하는 것이 보통일 것인데, 피해자가 토한 토사물이 현관 입구 화장실 부근에 주로 있었고 당시 피해자가 옷을 벗고 있었던 점이나, 병원 후송 직후 작성된 임상기록에 ‘머금고 있다 뱉었다’고 적혀 있는 점 등에 미루어보면 피해자가 과연 농약인 줄 모르고 마셨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위와 같은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만취 상태를 이용하여 농약을 마시게 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③ 원심판결은 한편으로 피해자의 진술이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루어졌으므로 그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설시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피해자는 중환자실에서 경찰관과의 대화 또는 자녀들인 공소외 5, 공소외 4와의 대화에서 설마 자신이 사망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회복될 것을 기대하거나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걱정하면서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고 설시하였다. 위와 같이 원심은 피해자가 중환자실에서 한 진술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죽음을 예상한 상태에서 죽음 직전의 진술로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을 예상하지 못한 채 삶에 대한 의지를 내보인 상태에서의 진술로 인정함으로써 판결이유에서 서로 모순되는 판단을 하고 있다.
④ 피해자는 음독 이후 수차에 걸친 진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는데, 피해자가 자살하려 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으로부터 농약을 건네받아 술인 줄 알고 실수로 마신 것이라면 깨어난 직후부터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피고인에 대한 강한 분노심을 표출하거나, 설령 당시 술에 어느 정도 취해 있어 음독 경위가 상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이 몰래 술에 농약을 타는 등의 방법으로 먹였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표명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도 피해자는 수차에 걸친 경찰관들이나 자녀들의 유도성 질문에도 끝까지 피고인에 대하여 특별한 분노심을 표출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 피고인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발언조차 명백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인에게 사 준 이 사건 아파트마저 피고인이 그대로 가질 것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⑤ 다만,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서 ‘피고인이 집에다 농약을 갖다 놨다라고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것 같다’는 대답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경찰관의 반복적인 유도성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다가, 위와 같은 내용의 답변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고 피해자 진술의 전체적인 취지는 음독 경위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내용임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피해자가 아들 딸과의 대화 과정에서 ‘내가 잘못되면 피고인을 용서하지 마라’는 취지의 언급을 1-2회 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피고인의 농약투입 사실이 새삼스레 기억이 나서 한 진술이라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이런 모든 상황에 이르게 된 책임이 피고인에게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⑥ 포카리스웨트 PT병에 들어 있던 농약과 공소외 8의 주거지 내 비닐하우스 안에 보관되어 있던 농약은 모두 그라목손인티온으로, 그 성분과 종류가 같은데다 비닐하우스 안에 보관되어 있던 농약의 일부가 사용된 흔적이 발견된 점에 비추어 위 PT병에 들어 있던 농약은 공소외 8이 보관하던 농약의 일부로 추정될 수는 있으나, 구체적으로 위 농약을 누가 언제 어떤 경위로 입수하여 이 사건 아파트로 반입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밝혀진 바 없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공소외 8의 집에 찾아간 2013. 10. 25. 밤 무렵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 농약을 가져왔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할 뿐 아니라, 공소외 8의 집에 보관된 그라목손인티온 500ml들이 농약병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검출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피고인이 공소외 8의 집 비닐하우스 안에 농약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알고 그중 일부를 PT병에 옮겨담아 왔을 것이라고는 쉽게 추측하기 어렵고, 오히려 농약에 대한 접근 및 입수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피고인보다는 피해자가 이 사건에 사용된 농약을 준비하기가 훨씬 더 용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나. 살인 동기 및 계획에 관하여
(1)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피해자가 이 사건 아파트에서 가출한 이후 피고인의 수차에 걸친 연락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아니하고 피고인이 사용하던 신용카드에 대한 분실신고를 하는 등 이별을 결심한 듯한 언동을 하였고, 이 때문에 피고인이 2013. 10. 26. 피해자에게 ‘내 이 시간을 죽어도 잊지 않고 다 당신에게 돌려 줄 것입니다. 당신 눈에 피눈물 흘리는 것 보고 내 죽을 것이니 기다리세요’, 2013. 11. 2. ‘지금은 내 죽어 복수하고 싶어요. 죽은 이가 어찌 복수할까요’라는 내용의 각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피해자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2013. 10. 29. ‘당신이 있었으면 덜 마음이 아팠을텐데 이 큰 집에 가슴 아파하며 있습니다’, 2013. 11. 1. ‘이제 화 풀고 그만 들어오세요. 나 힘들어요 이제 가시는 곳에 당신과 나 하나인 것 말씀드리고 싶어요’, 2013. 11. 2. ‘내 사랑 전부 돌아와’, ‘사랑해요 좀 더 기다릴께요’라는 등 떠난 연인이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기도 한 점, 피해자가 이 사건 아파트를 나간 2013. 10. 25. 이후 피고인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등의 이별 통보를 명시적으로 한 적은 없고 단지 피고인의 연락을 피한 것에 불과하고, 사건 당일인 2013. 11. 4. 오전에 피고인 및 공소외 5와 만난 자리에서도 피고인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며, 피고인과 피해자가 갈등을 겪고는 있었으나 이는 이들 만남에 대한 주위 가족들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보일 뿐이고 그것 외에 그들 사이에 살해의 동기가 될 만큼 특별히 심각한 갈등은 발견할 수 없는 점, 위와 같이 피해자는 가출한 지 약 열흘 만인 사건 당일 피고인을 만나고 이어 이 사건 아파트에 동행하기까지 한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피해자 가족들의 영향으로 피해자가 가출을 하고 이후 피고인의 연락을 회피함으로써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에 대하여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을 수는 있으나 그러한 감정 때문에 살인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보기는 부족한 면이 있다.
(2)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이 사건 아파트와 이 사건 자동차를 반환해 주지 않기 위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피고인에게 아파트와 자동차를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한 사람은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아들 공소외 5이고 피해자가 이를 반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적은 없는 점, 피해자는 음독 후 딸인 공소외 4에게 ‘아파트는 ○○이 엄마가 갖는 걸로 하고 차는 가져 왔으면 좋겠다’는 의사까지 표명한 사정에 미루어 보면 피해자는 피고인에게서 아파트를 되찾고자 하는 분명한 결심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아파트와 자동차의 반환 문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다고 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닌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원심이 들고 있는 경제적 동기를 살해의 충분한 동기로 보기는 어렵다.
(3)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미리 포카리스웨트 PT병에 그라목손 농약을 담아 이를 준비한 다음 피해자가 술에 취한 틈을 타 그라목손 농약을 피해자 몰래 피해자가 마시던 유리잔에 따라 이를 모르는 피해자로 하여금 마시게 하였다’는 것으로서, 이는 사건 당일 피고인이 피해자와 술을 마시던 중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우발적·충동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사전에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치밀하게 계획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피고인으로서는 이 사건 아파트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둘만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농약을 마셔 사망하게 될 경우 곧바로 피고인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자신의 범행이 탄로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만약 피고인이 위와 같이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였다면 굳이 범행 장소를 이 사건 아파트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별도의 은밀한 장소를 선택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점에서 피고인이 미리 범행을 계획하고 이 사건 아파트에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데에 대하여 강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다. 포카리스웨트 PT병에서 검출된 피고인의 지문에 관하여
(1)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피고인은 사건 당일인 2013. 11. 4. 옆집 거주자에게 ‘아저씨가 약을 먹었으니 119에 신고해 달라’고 부탁하였고, 이에 위 거주자는 119와 112에 ‘부부싸움 후 약을 먹었다’는 내용으로 신고하였다.
② 119 구급활동일지의 구급출동 란에는 19:26경 출동하여 19:30경 현장에 도착하고 19:40경 현장에서 출발하여 19:55경 순천향대학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구급대원 평가 소견 란에는 ‘현장 도착 시 욕실에 있었으며 보호자 말에 의하면 녹색음료를 음독했다 함. 음료수 병에 녹색액체가 담겨 있고 구토 흔적 있음’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112 신고 사건 처리표에는 ‘부인 피고인은 현재 만취로 정확한 진술 불가’라고 기재되어 있다.
③ 피고인은 2013. 11. 6. 참고인 자격에서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피해자가 119에 실려가고 옷을 갈아 입으러 집에 돌아왔을 때 거실에 있던 포카리스웨트 PT병을 보고 무언지 확인하기 위해 집어 들어 보았다’고 진술하였는데, 위 진술은 위 병에 피고인의 지문이 묻어 있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집안에서 포카리스웨트라는 음료병이 발견된 것을 알고 있느냐’는 경찰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④ 경찰에서는 2013. 11. 6. 포카리스웨트 PT병에 대한 감정을 의뢰하였는데 2013. 11. 13. 위 병에서 채취된 지문 18점 중 지문 1점이 피고인의 지문과 동일하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다.
⑤ 한편 사건 당일 현장에 출동한 119 소방대원은 공소외 3, 공소외 11 및 공익요원으로 총 3명이었고, 현장 출동 경찰관도 공소외 2 등 3명이었는데, 공소외 2는 경찰 조사 당시 ‘119 대원이 들것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싣고 119 차량으로 내려갔고 나머지 그곳에 남은 119 대원이 PT병을 수거하여 가지고 갔다’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위 PT병이 발견된 위치에 관하여는 거실 탁자 밑이라고도 되어 있고 거실 탁자 위라고도 되어 있는 등 엇갈리고 있다.
⑥ 피고인은 2013. 11. 12. 긴급체포되어 피의자 신분으로 최초로 경찰조사를 받으면서도 포카리스웨트 PT병을 발견하고 만진 경위에 대하여 2013. 11. 6.자 참고인 자격에서의 진술과 동일한 취지로 진술하였고 검찰 및 법정에서도 시종일관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다.
(2) 위와 같은 사실들과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의하면 피해자가 119에 실려가고 난 후 포카리스웨트 PT병을 만져 보았다고 하는 피고인의 진술을 허위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설령 피고인의 진술이 거짓말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① 피고인으로서는 바닥에 녹색을 띠는 구토물이 널려 있어 피해자가 농약 등의 약물을 먹었다는 것을 사고 발생 직후부터 인식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옆집 거주자에게도 피해자가 약을 먹었으니 신고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② 경찰 수사 당시에는 포카리스웨트 PT병의 지문을 특별한 수사 대상으로 삼지 않았음에도 피고인은 자발적으로 위 PT병을 발견한 경위에 대해 진술하였고, 그 진술이 검찰 및 법정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일관되고 있다.
③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 중 일부는 피해자를 들것에 실어 먼저 내려가고 남은 소방대원이 PT병을 수거하여 뒤를 따라간 것으로 보이는바, 위 PT병이 발견된 위치도 엇갈리는데다가, 피해자가 실려 나간 이후에도 잠시 PT병이 거실 내에 놓여 있었을 수도 있고, 소방대원이 이를 수거하여 현장을 떠나기 전에 피고인이 잠시 만져보았을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더구나 현장에 남아있던 소방대원이나 경찰관들이 위 PT병을 발견한 순간부터 이를 수거하여 집 밖으로 들고 나가기까지 시종일관 위 PT병을 지켜보거나 감시했다고 볼 만한 뚜렷한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
라. 기타 사정들에 관하여
(1) 피고인이 피해자의 음독 직후 119에 신고하지 아니하고 옆집인 1402호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그로 인해 119 소방대원들이 출동하기까지 10여 분 이상이 지체되었다는 사정을 두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자살로 증거를 조작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위와 같은 상황을 연출하였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2)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출동 경찰관 등에게 ‘피해자의 아들이 농약을 보내 아버지를 죽게 하였다’고 진술을 한 것은 사실이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당시 술에 많이 취해 있던 피고인이 순간적으로 ‘피해자의 자살에 대한 모든 책임이 피해자의 아들에게 있다’는 생각에서 위와 같이 진술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점, 피고인이 자신의 살해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금방 탄로날 수 있는 거짓말을 무모하게 할 리는 없어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러한 사정 역시 피고인에 의한 타살 정황으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3) 사건 다음 날 피고인의 언니 및 동생이 사건 현장을 청소하고 곧바로 이 사건 아파트의 전세를 의뢰하였다는 등의 사정들 역시 피고인에 의한 타살 정황으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마. 공소사실에 대하여 충분한 증명이 이루어졌는지에 관하여
(1) 원심과 제1심이 채택한 증거들 중 유죄 인정의 가장 유력한 증거는 자살이 아니라는 피해자의 진술이라 할 것인데, 그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의심할만한 사정이 다수 존재함은 앞서 본 바와 같다.
(2) 그런데 자살이 아니라는 피해자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과연 ‘피고인이 포카리스웨트 PT병에 담아 미리 준비해 둔 그라목손 농약을 피해자 몰래 피해자가 마시던 유리잔에 따라 피해자에게 건네주어 마시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있다.
(3) 우선 피해자 진술은 자살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진술에 그칠 뿐 이를 넘어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거나 의심하는 진술은 아니므로, 피해자 진술에 의하여 명백하게 증명되는 부분은 피해자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친다.
(4) 자살이 아니라고 하여 곧바로 피고인에 의한 타살로 연결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원심은 이를 긍정하였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명백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기타 피고인의 범행 당시 및 범행 전후의 정황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의심할만한 뚜렷한 사정을 발견하기 어려운 점,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해자로 하여금 유리잔에 있는 농약을 마시게 하였다’는 것이나,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유리잔에서는 피해자의 지문조차 검출되지 아니하였고, 피해자가 유리잔에 있는 농약을 마셨다면 당연히 그 유리잔에는 농약이 비워져 있거나 반쯤 차 있는 등 피해자가 마시다 남은 흔적이 드러나야 할 것인데, 사건 직후 촬영된 현장 사진에 의하면 오히려 위 유리잔에 농약이 가득 채워져 있는 등 위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물증이 매우 부족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자살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여 곧바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5) 한편 앞서 본 바와 같이 포카리스웨트 PT병에 피고인의 지문(1점)이 발견되기는 하였으나, 농약의 출처로 의심되는 그라목손인티온 500ml들이 농약병에서는 피고인의 지문이 발견되지 아니하였고,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유리잔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 그 누구의 지문도 검출되지 아니하였으며,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양주병에서는 피고인의 지문만(9점)이, 맥주병에서는 피고인의 지문(5점)과 피해자의 지문이, 소주병에서는 피해자의 지문만이 각각 발견되었다. 위와 같은 사정들에 의하면 위 PT병에 피고인의 지문(1점)이 묻어 있다는 사정은 피고인이 이를 만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 이를 넘어 피해자는 이를 만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단정 짓기는 어려워 보일 뿐 아니라, 이러한 사정으로부터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농약을 미리 PT병에 담아 준비해 두었다가 술인 것처럼 피해자를 속여 유리잔에 따라주어 마시게 하였다는 사실까지 추론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위 PT병에 대한 피고인의 지문(1점)을 두고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명력을 가진 증거로 보기는 어렵고, 또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PT병을 만진 경위에 관한 피고인의 진술이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합리성이 결여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그 진술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하거나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4. 결론적으로, 비록 유죄의 심증이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과 논리의 법칙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한 간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도 되는 것이며,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하여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가 있으나 ( 대법원 2004. 9. 13. 선고 2004도3163 판결 참조), 원심과 제1심이 유죄의 근거로 삼은 증거들 중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아니하거나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대로 믿기 어렵고, 나머지 증거들은 유죄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한 간접증거들로서 이를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보아도 단독으로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원심은 자살이 아니라는 피해자의 진술과 포카리스웨트 PT병에 묻은 피고인의 지문 등에만 의존한 나머지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유리잔에 농약을 따라 피해자로 하여금 마시게 하여 살해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이유가 모순되는 등의 위법이 있다.
5.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