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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31 판결
[살인][공2012하,1367]
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

[2] 사망원인에 관한 ‘부검의(부검의) 소견’의 증명력 및 형사재판에서 부검의 소견에 주로 의지하여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

[3] 피고인이 배우자 갑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갑의 사망원인이 손에 의한 목눌림 질식사(액사, 액사)인지와 범인이 피고인인지에 관하여 치밀한 검증 없이 여러 의문점이 있는 부검소견이나 자료에만 의존하여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검사의 증명이 위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부검은 사망 이전의 질병 경과나 사망을 초래한 직접 혹은 간접적 요인들을 자세한 관찰 및 검사를 통하여 규명하는 것으로서, 사망원인의 인정 내지 추정을 위하여는 단편적인 개별 소견을 종합하여 최종 사인에 관한 판단에 이르는 추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부검의(부검의)가 사체에 대한 부검을 실시한 후 어떤 것을 유력한 사망원인으로 지시한다고 하여 그 밖의 다른 사인이 존재할 가능성을 가볍게 배제하여서는 아니 되고, 특히 형사재판에서 부검의의 소견에 주로 의지하여 유죄의 인정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능한 사망원인을 모두 배제하기 위한 치밀한 논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더구나 사체에 대한 부검이 사망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실시되고 그 과정에서 사체의 이동·보관에 따른 훼손·변화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판단에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

[3] 대학 부속병원 전공의인 피고인이 자신의 집에서 배우자 갑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사건의 쟁점인 갑의 사망원인이 손에 의한 목눌림 질식사(액사, 액사)인지와 피고인이 사건 당일 오전 집을 나서기 전에 갑을 살해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나 증거가 존재하는지에 관하여 치밀한 검증 없이 여러 의문점이 있는 부검소견이나 자료에만 의존하여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아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는 등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법무법인 더펌 담당변호사 이정훈 외 1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한다.

1.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검사의 입증이 위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원심판결의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및 혼인생활, 이 사건 발생 무렵의 생활관계, 이 사건 발생일을 전후한 피고인과 피해자의 행적, 사체 발견 당시의 현장 상황, 사건 직후 경찰 조사에서 발견된 피고인 몸의 상처, 사체 검안 및 부검·혈흔 등 감정결과, 경찰 조사 이후 피고인의 행적, 피해자의 병력 등에 관한 판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 사건의 쟁점은 ①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손에 의한 목눌림 질식사(액사)인지 여부, ② 피고인이 이 사건 당일 06:41경 집을 나가기 전에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나 증거가 존재하는지 여부라고 정리하고 나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위 각 쟁점에 대하여 긍정함으로써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였다.

가. 원심은 먼저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액사인지 여부에 관하여, 피해자의 사체에 대한 부검 결과 확인된 ① 목 부위의 피부까짐, ② 오른 목빗근 근육속출혈 및 오른 턱뼈각 주변의 피부밑 물렁조직층 출혈, ③ 기도점막출혈, ④ 결막하점상출혈, ⑤ 뒤통수 부위 외부 상처와 내부 출혈, ⑥ 유방실질출혈, ⑦ 피해자의 얼굴에 난 여러 상처와 멍, ⑧ 입술 점막의 멍, 팔·다리 등에 있는 여러 곳의 멍, ⑨ 피해자 오른 눈 부위의 혈흔 등과 함께, ⑩ 피고인의 이마, 팔, 등, 어깨 부위에서 발견된 방어흔으로 볼 수 있는 여러 상처에 근거하여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액사로 인정하고, 피고인이 주장하는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는 그 선행요인이 되는 실신의 가능성이 인정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에 의하여서는 피해자와 피고인의 상처, 위 사람들의 옷과 이불 등에서 발견되는 혈흔 등, 욕실의 정돈상태 등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피해자의 사망원인에서 배제하였다.

나. 원심은 이어서 피고인이 이 사건 당일 오전에 집을 나서기 전에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하여, 시체강직 및 시반형성에 기초한 사망추정시각, 직장온도측정방법에 따른 사망추정시각은 그 오차범위를 감안할 때 피고인에 의한 이 사건 범행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거나 그 추정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이를 통해 피고인의 현장부재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 없고, 피해자의 평소 출근습관에 비추어 사체 발견 당시 피해자의 모습은 피고인이 집을 나선 오전 06:41 이전에 피해자가 이미 사망하였음을 시사하며, 피해자와 피고인의 상처 및 위 사람들의 옷과 이불 등에서 발견되는 혈흔 등과 피고인의 이 사건 당일 및 그 이후 보인 의문스런 행적도 피고인에 의한 이 사건 범행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달리 제3자에 의한 범행가능성을 의심할 수 없으며, 당시 피고인이 응시하였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자격시험이 어렵게 출제되어 그 합격 여부나 수도권에서 군의관 근무 여부가 불투명하게 되었고 피고인이 평소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 있었던 점 등으로 인하여 아내인 피해자와 다툴 여지가 있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그러한 다툼 끝에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할 만한 동기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이 사건 공소사실은 결국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것이나,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원심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다른 무엇보다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공소사실에 기재된 바와 같이 단순한 질식사가 아닌 액사라는 점이 먼저 확정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사망 후 매우 특이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즉 원심판결의 이유와 시체검안서 등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사망한 상태로 발견될 당시 잠옷을 입은 채 욕조를 가로질러 배를 위로 하여 오른쪽 다리는 욕조의 약간 왼쪽 부분, 왼쪽 다리는 욕조의 중앙 부분, 머리는 욕조의 오른쪽 안쪽 부분에 위치한 채 대각선 방향으로 누워 있었는데, 하체는 허벅지 부분이 욕조의 바깥쪽 턱 부분에서 걸쳐 있고, 무릎은 접힌 채로 무릎 이하 부분이 욕조 바깥에 나와 있었으며, 발바닥은 욕실 바닥을 향하여 있었으나 욕실 바닥에 닿지는 않았으며, 피해자의 상체는 욕조 안에 있었으나 등 부분과 욕조 바닥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었고, 피해자의 머리는 욕조 안쪽 오른쪽 면에 머리 뒷부분이 닿은 채 오른쪽 볼 아래가 빗장뼈나 가슴에 의하여 눌릴 만큼 심하게 접히면서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고개가 돌아가 있었으며, 오른팔은 펼쳐져 있던 반면 왼팔은 접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세가 피해자의 오른쪽 목 부위에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을 것임은 분명하고, 이로 인하여 질식사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은 피고인이 신청한 제1심증인 공소외 1뿐만 아니라 검찰이 신청한 제1심증인 공소외 2 및 공소외 3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의 사망원인인 질식상태가 위 사체 발견 당시의 이상자세가 아닌 그보다 선행하는 다른 원인, 즉 공소사실에 기재된 바와 같이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른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의 소견이 관찰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외에 액사에서만 특유하게 발생되는 소견이 확인되어야 한다.

나. 이러한 관점에서 원심이 이 사건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액사라고 단정하면서 든 부검소견들을 위 증인들 및 제1심증인 공소외 4의 증언에 비추어 살펴보면, 그 가운데 우선 ⑤ 뒤통수 부위 외부 상처와 내부 출혈, ⑥ 유방실질출혈, ⑦ 피해자의 얼굴에 난 여러 상처와 멍, ⑧ 입술 점막의 멍, 팔·다리 등에 있는 여러 곳의 멍, ⑨ 피해자 오른 눈 부위의 핏자국은 사망 당시의 정황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에 불과할 뿐 질식사나 액사와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고, ④ 결막하점상출혈은 질식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액사의 특이소견은 아니며, ③ 기도점막출혈도 액사나 교사와 같이 목 부위에 직접적 외력이 작용한 경우 잘 나타난다고는 하나,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사체가 목 부위에 심한 압박을 받는 자세로 발견되었음을 고려하면 그 소견 역시 위와 같은 이상자세에 따른 압박이 아닌 타인의 손에 의한 외력이 작용하였다는 점까지 증명하는 자료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 사건에서 액사 특유의 소견이라고 볼 만한 것은 ① 목 부위의 피부까짐과 ② 오른 목빗근 근육속출혈 및 오른 턱뼈각 주변의 피부밑 물렁조직층 출혈 정도인데, 원심이 이 정도의 소견에 터잡아 이 사건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액사로 판단한 데에는 부검을 직접 담당한 공소외 4와 공소외 2, 3 등의 제1심증언에 포함된 법의학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음은 원심판결의 이유에서 명백하다.

그런데 부검은 사망 이전의 질병 경과나 사망을 초래한 직접 혹은 간접적 요인들을 자세한 관찰 및 검사를 통하여 규명하는 것으로서, 사망원인의 인정 내지 추정을 위하여는 단편적인 개별 소견을 종합하여 최종 사인에 관한 판단에 이르는 추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부검의가 사체에 대한 부검을 실시한 후 어떤 것을 유력한 사망원인으로 지시한다고 하여 그 밖의 다른 사인이 존재할 가능성을 가볍게 배제하여서는 아니 되고, 특히 형사재판에서 위 부검의의 소견에 주로 의지하여 유죄의 인정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능한 사망원인을 모두 배제하기 위한 치밀한 논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더군다나 사체에 대한 부검이 사망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실시되고 그 과정에서 사체의 이동·보관에 따른 훼손·변화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판단에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원심이 유죄의 근거로 삼은 부검소견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살펴본다. (1) 먼저 ① 목 부위의 피부까짐은 비교적 액사에 특유한 소견이라고 볼 수 있으나, 위 공소외 4의 증언에 의하더라도 그가 부검감정서에서 서술한 왼 목빗근 부위와 왼빗장뼈 부위의 건조가 동반된 피부까짐은 사후손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 공소외 4는 제1심증언에서 앞목삼각과 왼 목빗근 부위의 피부속출혈을 동반한 피부까짐은 생전 손상으로서 액흔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나, 기록상 위 부검 당시 사체를 촬영한 사진의 영상에는 검안 당시 촬영한 사진의 영상에 없거나 육안으로 관찰되지 않은 여러 손상이나 특이점들이 추가적으로 발견되는 점에 비추어 보면, 해당 부위를 세세하게 특정하여 이를 검안 당시 촬영한 사진과 일일이 대조함으로써 사체의 이동 및 보관과정에서 인위적·자연적으로 발생한 교란인자를 모두 배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서는 선뜻 그 피부까짐이 생전에 발생한 액흔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아울러 위 피부까짐이 최초 사체검안 당시부터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해당 부위가 목이 접히는 부분이라면 타인의 손눌림에 의한 손상이 아닌 피해자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질식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피부나 옷의 마찰을 통해 발생하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따라서 위 피부까짐의 위치와 형상, 손상의 정도 등을 면밀히 살펴 그 원인이 되는 외력의 작용방향, 강도 등을 따져볼 필요도 있다.

(2) 다음으로 ② 오른 목빗근 근육속출혈 및 오른 턱뼈각 주변의 피부밑 물렁조직층 출혈도 해당 부위에 외력이 작용하였음을 시사하는 소견은 될 수 있으나, 피해자의 사체가 목 부위에 심한 압박을 받는 자세로 발견된 이 사건에서는 반드시 그 외력이 타인의 손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될 당시 그 머리가 앞으로 심하게 굽혀진 상태에서 목 부분이 윗등과 함께 욕조 바닥의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러한 자세와 위치 때문에 목의 양편 뒤쪽으로 피가 모여 시반이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연약한 조직에서 시반성출혈이 발생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이므로, 이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일부 증인의 증언이 아니라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나 자료에 근거할 필요가 있다.

(3) 나아가 피해자의 사체에서 발견되는 외상의 소견들에 관하여 살펴본다.

원심은 ⑤ 뒤통수 부위 외부 상처와 내부 출혈, ⑥ 유방실질출혈, ⑦ 피해자의 얼굴에 난 여러 상처와 멍, ⑧ 입술 점막의 멍, 팔·다리 등에 있는 여러 곳의 멍을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조르기에 앞서 또는 그 과정에서 입힌 상처의 흔적으로 판단하고, ⑨ 피해자 오른 눈 부위의 핏자국은 그 말라붙은 모양으로 보아 피해자가 발견 당시의 자세가 아닌 다른 자세나 상황에서 살해되어 욕조에 옮겨졌음을 나타내는 정황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부검결과에 의하면 ⑤ 뒤통수 부위 외부 상처는 1군데에서, 내부 출혈은 5군데에서 발견된다는 것인데, 내부 출혈 가운데 외부 상처와 일치하는 1군데는 그 피를 흘린 자국이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된 욕조에서 발견되고, 나머지는 그에 상응하는 외부 상처의 흔적이 없다. 이는 ⑥ 유방실질출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위 내부 출혈의 소견만으로 이를 제3자에 의한 공격의 결과로 단정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설령 위 출혈이 외력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사망 직전 욕조에 넘어지는 과정에서 어딘가에 부딪힌 결과일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고, 나아가 위 출혈이 욕조 벽면에 눌려 있던 머리 뒷부분이나 주된 시반이 형성된 윗등과 가깝고 대체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사체의 오른쪽 유방의 안쪽인 실질 부위에서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가 욕조 내에서 사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상이거나 그 사망 후에 발생한 시반성출혈일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려우므로, 이를 피고인에 의한 살해의 증거로 보기 위해서는 더욱 치밀한 추론과 검증의 과정이 필요하다.

(4) 나머지 ⑦ 피해자의 얼굴에 난 여러 상처와 멍과 ⑧ 입술 점막의 멍, 팔·다리 등에 있는 여러 곳의 멍도 그것이 생전에 피고인의 가격에 의하여 발생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피해자의 사망원인인 질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리고 ⑨ 피해자 오른 눈 부위의 핏자국이 흐른 흔적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나 그 직후에 고개가 돌아가는 등 머리의 위치나 자세가 달라졌을 가능성을 넘어 사체가 옮겨진 흔적으로까지 보려면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 정황이나 자료가 더 필요하다.

다. 원심은 ⑩ 피고인의 이마, 팔, 등, 어깨 부위에서 발견된 할퀸 상처를 피해자의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입은 방어흔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원심판결의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의 위 상처는 단순히 손으로 긁은 정도가 아니라 살점이 패여 나갈 정도임에도 피해자의 손톱 어디에서도 피고인의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므로,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이 위 상처가 피해자에 의한 방어흔이 아니라고 하면서 당시 긴팔 상의를 입고 있었다거나 위 상처들이 같은 시기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한 주장에 대해서도 그 타당성을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라.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한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법의학적으로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피고인의 주장은 피해자가 어떠한 경위로든지 타인의 외력에 의한 작용 없이 욕조 바닥에 넘어져 그 결과 의도하지 않게 사체 발견 당시와 같거나 또는 그와 유사한 자세에 놓이게 되고 그로 인하여 목 부위가 압박되어 질식상태에 빠짐으로써 결국 욕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피해자의 과거 또는 사망 당시의 병력이나 건강상태, 임신 등으로 인하여 욕실 내에서 실신하여 넘어졌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하고 있으나,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더라도 피해자와 같이 임신 중인 여성 5%가 실신을 경험하고 28%가 실신과 근접한 경험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고, 이에 더하여 피해자는 과거 갑상선 중독증으로 치료받은 병력이 있는데다가 2010. 6. 29. 무렵 혈액검사 결과 갑상선자극호르몬 수치가 정상범위보다 낮게 측정되었고(이는 갑상선기능항진증의 결과이거나 갑상선기능저하증의 원인일 수 있다) 사망 후 부검 결과 하시모토갑상선염을 앓고 있었음이 밝혀졌다는 것인데, 이러한 임신이나 갑상선 기능 이상 등은 모두 갑작스런 심장기능의 저하나 실신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피해자의 사망시기가 한겨울인 1월의 이른 아침으로서 그 사체가 발견된 장소도 욕실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 사건 당시 위와 같은 여러 요인과 그 밖의 다른 요인 중 어느 하나로 인하여 또는 그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피해자가 실신하거나 낙상을 입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입은 머리 부위의 충격과 무력감 등으로 경부압박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질식사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 단순한 관념적 의심이나 추상적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에 그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 한편 피해자의 사망시각과 관련하여 피고인이 내세우는 시체강직 및 시반형성에 기초한 사망추정시각이나 직장온도측정방법에 따른 사망추정시각은 원심이 적절히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 오차범위를 감안할 때 피고인에 의한 이 사건 범행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거나 그 추정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하므로, 이를 통해 피고인의 현장부재사실이 증명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위와 같은 사망시각 추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비추어 피해자가 피고인이 집을 나선 06:41경 이후에 사망하였을 확률적 가능성이 상당함은 부인할 수 없으므로, 나머지 간접사실에 의하여 위 시각 이전에 피해자가 사망하였음을 인정하는 데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원심은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 등의 진술을 토대로 피해자의 평소 출근 습관을 인정한 다음, 피해자의 사망 당시 상태를 그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피고인이 집에서 나가기 전에 사망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이 인정한 피해자의 평소 기상시각이나 출차시각, 샤워와 화장 등 출근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등은 피해자의 친동생인 공소외 5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 등 그 객관성이나 엄격한 규칙성이 담보되지 아니하여 피해자의 사망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 요소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평균적 출근시각이 07:30인 점에 비추어 피고인이 집에서 나간 06:41경 이후에 출근준비를 시작하였다고 하여 특별히 이상하다고 보기 어려워서 피고인이 먼저 집을 나선 이후에 피해자가 욕실에서 출근준비를 시작하다가 이 사건 사망에 이르게 되었을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바. 또한 원심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몸에 난 상처와 위 사람들의 옷과 이불 등에서 발견되는 혈흔·소변흔적·DNA, 피고인의 이 사건 당일 및 그 이후 보인 의문스런 행적, 당시 피고인이 처한 상황이나 태도, 이를 둘러싼 피해자와 다툼의 가능성 등을 토대로 피고인이 침대가 있는 안방에서 이 사건 당일 피해자와 신체적 공격을 수반하는 싸움을 하고 그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추인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원심이 피해자와 피고인이 사용하던 침대의 패드에 1m×1m 크기의 피해자에 의한 소변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점에 관한 공소외 6, 7의 제1심증언을 그대로 믿은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위 소변흔적은 이 사건 발생일로부터 한 달 가까이 지나고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이후인 2011. 2. 10.경에야 사건 현장을 조사한 공소외 7에 의하여 발견되고 거기에서 피해자의 DNA를 검출한 공소외 6이 이를 확인하였다는 것인데, 만일 위와 같은 정도의 소변흔적이 있었다면 피해자가 입고 있던 바지와 팬티는 흥건히 젖어 있었어야 함에도 이 사건 발생 직후에 현장을 조사한 경찰관 공소외 8이나 사건현장에서 옷을 입은 상태의 피해자 사체를 직접 관찰하고 같은 날 병원 영안실에서 피해자의 옷을 벗긴 후 다시 사체를 상세히 관찰하고 사체검안서를 작성한 공소외 9 중 누구도 위와 같은 소변의 흔적에 관하여 언급한 바 없고, 위 검안 과정에서 촬영된 사진의 영상에서도 소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더욱이 위 공소외 8은 2011. 1. 26. 혈흔을 찾기 위해 이 사건 현장의 벽과 바닥, 침대보, 이불, 쿠션, 커버, 침대틀, 욕실 등 눈으로 보이는 장소는 모두 루미놀 검사를 시행하였음에도 위와 같은 1m×1m 크기의 소변흔적을 보지 못하였거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소외 7도 마포경찰서 소속의 경찰관 누군가로부터 피해자의 바지가 젖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도 그 경찰관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과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된 장소가 욕실인 점에 비추어 피해자가 사망 직전에 용변을 마쳤을 가능성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원심이 위 공소외 7 등의 이 부분 증언을 그대로 믿어 그 객관적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추가적 심리 없이 위 침대패드에서 1m×1m 크기의 피해자에 의한 소변흔적이 발견되었고, 이는 그 크기로 보아 피해자의 사망 당시에 배출된 소변에 의한 것이며, 결국 피해자의 사망장소는 사체가 발견된 욕실이 아닌 안방 침대 위라는 사실이 증명된다고 추인한 것은 형사재판이 요구하는 증거재판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이 부분 수사기관의 감정결과만으로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사용하는 옷이나 이불, 침대패드 등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혈흔·소변흔적·DNA가 검출되었다는 것 이상의 증명력은 없다고 보아야 하고, 따라서 이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생활흔적이거나 기껏해야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서로의 피부에 손상을 주는 정도의 다툼이 있었을 가능성만을 드러낼 뿐, 이 사건 공소사실의 핵심인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는 점에 관한 직접적 증명력까지 부여받기는 어렵다.

사. 마지막으로 이 사건 범행의 동기와 관련하여,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이 피고인이 응시하였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자격시험이 어렵게 출제되어 그 합격 여부나 수도권에서의 군의관 근무 여부가 불투명하게 되었고 피고인이 평소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 있었던 점 등으로 인하여 아내인 피해자와 다툴 만한 여지가 있었고, 피고인이 그러한 다툼 끝에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할 만한 동기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이 드는 위와 같은 사정은 부부 사이에 다툼의 동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살인의 동기로서는 매우 미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범인으로 지목된 자에게 범행을 저지를 만한 뚜렷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 형사재판의 증거재판주의 이념에 비추어 간접증거나 정황사실을 통한 유죄의 인정에 더욱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와 달리 피고인이 순간적인 격분상태에서 보잘것없는 동기로 살인의 범행에까지 이르렀을 것이라고 쉽게 추인하여서는 아니 된다.

4. 피고인이 이 사건이 발생한 당일이나 그 이후에 제3자가 보기에 상당히 의심스러운 태도와 행적을 보이고, 당시 상황에 관한 피고인의 설명에 여러 의문점이 있음은 원심이 지적하는 바와 같다. 그리고 피고인이 제기한 사망원인인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가 피해자의 사체에 대한 부검결과에 나타난 모든 소견을 완벽하게 설명해 준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는 이상 피고인이 위와 같은 의문점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고 하여 객관적 증거와 이에 기초한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의 쟁점인 피해자의 사망이 액사인지 여부와 그 범인이 피고인인지 여부에 관하여 치밀한 검증 없이 앞서 본 여러 의문점이 있는 소견이나 자료들에만 의존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아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입증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논리를 비약하여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채증법칙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

5.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능환(재판장) 안대희 이인복(주심) 박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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