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경우
[2] 불법체포 상태에서 고문 또는 협박을 당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상당기간 동안 형의 집행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을 수긍한 사례
[3]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긴 경우,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 기산일(=사실심 변론종결 당일)
[4]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하는 예외적인 경우, 변론종결 시 위자료 원금을 증액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5] 불법행위 시로부터 변론종결 시까지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하였음에도 불법행위 시부터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고, 원심이 책정한 위자료 원금 액수 자체는 다소 적다고 볼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피고만 상고하였을 뿐 원고들은 전혀 불복하지 아니한 사건에서 원고들 패소 부분까지 파기할 수는 없으므로, 원심판결 중 위자료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일부를 파기자판한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2조 , 제162조 [2] 민법 제2조 , 제166조 제1항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구 예산회계법(2006. 10. 4. 법률 제8050호 국가재정법 부칙 제2조로 폐지) 제96조 (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 참조) [3] 민법 제393조 , 제750조 , 제751조 , 제763조 [4] 민법 제393조 , 제750조 , 제751조 , 제763조 [5] 민법 제393조 , 제750조 , 제751조 , 제763조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민사소송법 제415조 , 제425조
참조판례
[1]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공2002하, 2849)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공2008하, 1109) 대법원 2010. 6. 10. 선고 2010다8266 판결 (공2010하, 1365)
원고, 피상고인
원고 1 외 2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평지성 담당변호사 조용환 외 1인)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1.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원고 1에게 제1심판결 주문 제1항 기재 금액인 312,101,560원 중 266,600,000원에 대하여, 원고 2, 3에게 제1심판결 주문 제1항 기재 금액인 각 80,000,000원에 대하여 각 2010. 5. 19.부터 2011. 1. 13.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그 부분 제1심판결을 취소하며,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원고 1에게 150,000,000원에 대하여 2010. 5. 19.부터 2011. 1. 13.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 1의 항소를 기각한다.
3. 피고의 나머지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4. 소송총비용은 그 중 2/3는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피고의 이 사건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 소속 공무원인 보안부대 군수사관들이 원고 1을 불법체포한 뒤 고문 또는 협박으로 허위의 자백과 진술을 받아내는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조작하여 징역 10년의 유죄판결을 받고 상당기간 동안 형의 집행을 받도록 하였는바, 피고는 그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재산상 및 비재산상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다음, ‘ 원고 1이 가석방된 1991. 5. 25.경부터는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으므로, 원고 1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청구권 중 일실수입 및 보안부대에 연행된 날인 1984. 5. 26.부터 1991. 5. 25.까지의 위자료 부분은 1991. 5. 25.부터 5년의 소멸시효가 진행되기 시작하여 이 사건 소 제기 전에 이미 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하였다’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를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여 배척하였다.
즉, 원고 1이 불법체포와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되고 7년간 형의 집행을 받은 뒤 가석방된 이후에도 보안관찰과 불법 가택 수색 및 감시 등을 받아온 사정과 원고 1이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여 수사기관의 불법적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유죄의 확정판결이 취소되기 전에는 가해자인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데 원고 1이 2008. 4. 7. 재심을 신청하기 이전에 그와 같은 재심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이었던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해 보면, 그 재심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원고 1이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고, 나아가 위와 같은 피해를 당한 원고 1을 보호할 필요성은 큰 반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오히려 위헌·위법적 불법행위로 국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피고의 손해배상채무 이행 거절을 소멸시효 제도를 들어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므로, 피고의 이 사건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이 부분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
2. 이 사건 손해배상금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기산일에 관하여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그 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봄이 상당한데,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으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을 달리보아야 할 것은 아니고, 피고 소속 군수사관들이 원고 1을 불법연행한 날인 1984. 5. 26.부터 불법적 감금상태와 고문 등의 불법 수사방법을 이용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의 죄책을 지우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그날부터 손해는 이미 발생하였거나 발생이 예상되었다고 볼 수 있어 위 불법연행일을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으로 삼는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손해배상금 중 일실수입에 관하여 그 지연손해금의 기산일을 위와 같이 본 원심의 판단은 옳고 거기에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 손해배상금 중 위자료에 관련하여서는 원심의 이 부분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물론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피해자가 그 손해를 입은 법익을 계속해서 온전히 향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그 채무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는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이 그 참작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위자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도 변론종결 시의 것을 반영해야만 하는바,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시기와 가까운 무렵에 통화가치 등의 별다른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위자료 액수가 결정된 경우에는 위와 같이 그 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 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더라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으나,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 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도 덮어놓고 불법행위 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위와 같이 변동된 통화가치 등을 추가로 참작하여 위자료의 수액을 재산정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정은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무렵의 위자료 산정의 기초되는 기존의 제반 사정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것이고, 변론종결의 시점에서야 전적으로 새롭게 고려되는 사정으로서 어찌 보면 변론종결 시에 비로소 발생한 사정이라고도 할 수 있어, 이처럼 위자료 산정의 기준되는 통화가치 등의 요인이 변론종결 시에 변동된 사정을 참작하여 위자료가 증액된 부분에 대하여 불법행위 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을 붙일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사건과 같이 피고 소속 군수사관들에 의하여 원고 1에 대한 불법구금이 개시된 1984. 5.경으로부터 원심의 변론종결일인 2010. 5. 19.까지 26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몇 곱절 상승함으로 말미암아 이를 반영하여 증액된 위자료에 대하여 이 사건 불법행위가 저질러진 때인 1984년 무렵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현저하게 과잉된 지연배상을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처럼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 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예외적으로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결국, 원심판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 기산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이러한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의 상고이유 제2점의 주장은 이유 있다.
한편 위와 같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논리상 변론종결 시 이전에는 지연손해금을 붙일 수 없는 결과, 위자료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 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을 붙이는 원칙적인 경우와는 달리, 변론종결 시를 기준으로 위자료 원본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 불법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즉시 지급함이 적절하다고 보이는 액수의 위자료에 대하여 불법행위 시로부터 변론종결 시까지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참작하여 변론종결 시의 위자료 원본을 증액 산정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사정에 더하여 이 사건에서 군수사관들이 자행한 인권침해행위의 내용, 그로 인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입은 불이익과 고통의 정도 및 지속된 기간,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원심은 그 위자료 원금에 대하여 불법행위 시로부터 변론종결 시까지 지연손해금이 발생하여 가산될 것을 전제로 위자료를 산정하였으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변론종결 시까지는 그 지연손해금이 발생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위자료의 원리금 합계액이 대폭 줄어들게 된 사정도 고려해 볼 때에) 원심이 책정한 위자료 원금 액수 자체는 다소 적다고 볼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피고만 상고하였을 뿐 원고들은 전혀 불복하지 아니한 이 사건에서 원고들 패소 부분은 당심의 심판범위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심이 인정한 위자료 원본액이 과소하여 이를 증액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 중 원고들 패소 부분 즉 피고 승소 부분까지 파기하는 것은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때문에라도 허용될 수 없으므로, 결국 당심에서 피고에게 불이익하게 위 원고들 패소 부분까지 파기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위자료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 중 일부를 파기하되, 이 부분은 이 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므로 민사소송법 제437조 에 따라 자판하기로 하는바, 먼저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원고 1에게 제1심에서 인용된 금액인 312,101,560원 중 위자료에 해당하는 266,600,000원(제1심에서 인용된 손해배상원금 총액 312,101,560원에서 일실수입 45,501,560원을 공제한 액수임)에 대하여, 원고 2, 3에게 제1심 인용금액인 각 80,000,000원씩에 대하여 각 원심 변론종결일인 2010. 5. 19.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11. 1. 13.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그 부분 제1심판결을 취소하며,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그리고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원고 1에게 150,000,000원에 대하여 원심 변론종결일인 2010. 5. 19.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11. 1. 13.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 1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상과 같이 피고의 상고 중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은 일부 이유 있으므로 이를 받아들여 위와 같이 판결하는 한편으로, 나머지 상고는 이유 없어 모두 기각하며, 소송총비용 중 3분의 2는 원고들의, 나머지는 피고의 각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