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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 3. 28. 선고 2010다108494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판시사항

[1]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 경우

[2]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 세월이 경과하여 위자료를 산정할 때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 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경우, 불법행위로 말미암은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의 기산일(=사실심 변론종결일)

원고, 피상고인 겸 부대상고인

원고 1 외 7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평지성 담당변호사 조용환 외 2인)

피고, 상고인 겸 부대피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1.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원고 1에게 387,853,985원, 원고 2에게 200,000,000원, 나머지 원고들에게 각 80,000,000원에 대하여 각 2010. 10. 22.부터 2013. 3. 28.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제1심판결을 취소하며, 이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피고의 나머지 상고와 원고들의 부대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3. 부대상고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하고, 부대상고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소송총비용은 이를 5분하여 그 4는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와 부대상고이유를 함께 살펴본다.

1. 피고의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가. 채무자의 소멸시효를 근거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받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 소속 보안부대 수사관들은 영장 없이 체포 이유를 고지함도 없이 원고 1을 불법 체포하였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으며, 원고 1을 고문하여 허위 자백을 받아내고 참고인들을 협박하여 허위의 진술을 하게 하는 방법으로 증거를 조작함으로써 그가 추후 구속 기소되어 징역 7년의 유죄판결을 받고 그 형집행을 당하도록 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저질렀는바, 피고는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원고들이 입은 일체의 비재산적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법에 따른 위자료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다음,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 즉 ‘원고 1이 가석방된 1991. 5. 25.부터는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으므로 위 일시부터 5년의 소멸시효가 진행되기 시작하여 원고 1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청구권 중 일실수입, 일실보상금 및 1985. 5. 26.부터 1991. 5. 25.까지의 위자료는 시효로 소멸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여 배척하였다. 즉,

원고 1은 ① 보안부대 수사관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후유증을 씻을 수 없는 가혹행위를 당하여 허위 자백을 하기에 이른 점, ② 검찰수사과정까지도 고문으로 인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지속되어 허위 자백을 하였던 점, ③ 1심에서 유죄판결 선고 후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도 공소사실이 그대로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의 형이 선고, 확정된 점, ④ 수감생활 중에도 공안사범으로 분류되어 다른 수형자들보다도 열악한 처우를 받아 온 점, ⑤ 가석방 후에도 간첩임을 전제로 보안관찰처분을 받아왔던 점, ⑥ 원고 2 또한 보안부대 수사관들에게 불법 가택 수색을 당하고 감시를 받았던 점, ⑦ 원고 1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은 간첩의 가족이라는 사회의 이목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 원고 1의 가족임을 떳떳이 드러낼 수 없었던 점 등의 사정을 모두 종합해 보면, 결국 원고 1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심판결이 확정된 2009. 1. 30.경까지는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위와 같은 피해를 본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큰 반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면서도 오히려 위헌적 불법행위로 국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피고의 채무 이행 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피고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이 부분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

2. 피고의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원고들에게 인정된 각 위자료 원금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 1이 보안부대 소속 수사관들에게 불법 연행된 날인 1985. 5. 24.부터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의 이 부분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물론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피해자가 그 손해를 입은 법익을 계속해서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로 말미암은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그 채무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는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이 그 참작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위자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도 변론종결 시의 것을 반영해야 하는바,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시기와 가까운 무렵에 통화가치 등의 별다른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위자료 액수가 결정된 경우에는 위와 같이 그 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 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더라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으나,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하여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 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도 덮어놓고 불법행위 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위와 같이 변동된 통화가치 등을 추가로 참작하여 위자료의 수액을 재산정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정은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무렵의 위자료 산정의 기초되는 기존의 제반 사정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것이고, 변론종결의 시점에서야 전적으로 새롭게 고려되는 사정으로서 어찌 보면 변론종결 시에 비로소 발생한 사정이라고도 할 수 있어, 이처럼 위자료 산정의 기준되는 통화가치 등의 요인이 변론종결 시에 변동된 사정을 참작하여 위자료가 증액된 부분에 대하여 불법행위 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을 붙일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사건과 같이 보안부대 소속 수사관들에 의하여 원고 1에 대한 불법 체포가 행해진 1984. 5. 24.로부터 원심의 변론종결일인 2010. 10. 22.까지 25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몇 곱절 상승함으로 말미암아 이를 반영하여 증액된 위자료에 대하여 이 사건 불법행위가 저질러진 시기인 1984. 5. 24.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현저하게 과잉된 지연배상을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이처럼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함으로써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 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불법행위로 말미암은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 시인 사실심 변론종결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28833 판결 ,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53419 판결 등 참조).

결국 원심판결에는 불법행위로 말미암은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 기산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의 주장은 이유 있다.

3. 원고들의 부대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수사기관인 검사가 특정의 범죄사실에 관하여 피의자에게 범죄혐의가 있고 유죄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정해진 절차에 의하여 피의자의 구속을 품신하거나 구속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객관적으로 보아 검사가 당해 피의자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혐의를 가지게 된 데 타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후일 재판과정을 통하여 그 범죄사실의 존재를 증명함에 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에 관하여 무죄의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수사기관의 판단이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귀책사유가 인정된다( 대법원 1993. 8. 13. 선고 93다20924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채용 증거들에 의하여 그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당시 검사가 원고 1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거나, 보안부대 수사관들의 불법수사를 알면서도 고의로 이를 은폐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은 위 법리에 따른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불법행위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

4. 원고들의 부대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불법행위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이를 확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다43165 판결 , 대법원 2005. 6. 23. 선고 2004다66001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이 정한 위자료의 액수는 그 판시와 같은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정한 것으로서 재량을 벗어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심판결에는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

5.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되, 이 사건은 이 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므로 민사소송법 제437조 에 따라 자판하기로 하는바, 원심판결의 지연손해금에 관한 부분 중 원고 1에게 제1심판결 주문 제1항 기재 금액인 387,853,985원, 원고 2에게 제1심판결 주문 제1항 기재 금액인 200,000,000원, 나머지 원고들에게 제1심판결 주문 제1항 기재 금액인 각 80,000,000원에 대하여 각 원심 변론종결일인 2010. 10. 22.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13. 3. 28.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그 부분 제1심판결을 취소하며,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그리고 피고의 나머지 상고와 원고들의 부대상고는 이유 없어 모두 기각하며, 부대상고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하고, 부대상고비용을 제외한 소송총비용 중 5분의 4는 원고들의, 나머지는 피고의 각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보영(재판장) 민일영(주심) 이인복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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