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 경우
[2] 근로자가 추가 퇴직금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 사용자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2] 근로자가 추가 퇴직금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 사용자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2조 , 제162조 [2] 민법 제2조 , 근로기준법 제48조
원고,상고인
원고 1 외 508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종준)
피고,피상고인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소송대리인 변호사 정경철 외 3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02. 5. 2. 선고 200 1나37462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1.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피고는 원래 퇴직 당시의 고정급여(=본봉+직책수당)에 근속기간에 따라 누진되는 지급률을 곱하는 퇴직금규정을 두고 있다가, 1981. 4. 11. 이를 개정,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급여를 고정급여에서 기준급여(=본봉+직책수당+업무수당+상여금 및 연월차휴가보상금의 월 평균액)로 확대하는 대신, 근속기간에 따라 누진되는 지급률은 대폭 인하하여, 전체적으로 볼 때 개정 퇴직금규정의 적용시점인 1981. 1. 1. 이전부터 근속한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다만, 기존 근로자들의 기득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칙 제2조(이하 '부칙'이라고 한다)에 1980. 12. 31.까지의 근속기간에 대하여는 개정 전의 퇴직금규정을, 그 이후는 개정 퇴직금규정을 각 적용한다는 취지의 경과규정을 둔 사실, 피고는 그 이후 기존 근로자들이 퇴직시 부칙을 적용하여 산출한 퇴직금을 지급하여 왔고, 근로자 과반수를 조합원으로 둔 노동조합이 1988. 2. 24. 부칙을 포함한 개정 퇴직금규정에 관하여 소급적으로 동의한 사실, 그런데 그 이후 부칙을 유지한 채 기준급여의 범위를 계속 변경시키는 바람에, 기준급여에서 고정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로 감소하여, 1993. 무렵부터 기존 근로자들에 대하여 부칙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총 근속기간에 대하여 개정 퇴직금규정을 적용하여 퇴직금을 산정하는 편이 유리하게 되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1995. 무렵에는 대부분의 기존 근로자들에 대하여 위와 같은 역전현상이 나타나게 된 사실, 원고들은 퇴직 당시 피고로부터 부칙을 적용하여 산정된 퇴직금을 지급받았는데, 총 근속기간에 개정 퇴직금규정을 적용할 경우 이 사건 청구 금액만큼의 차액이 발생하는 사실, 한편 피고 소속 근로자이던 소외 1은 1997. 8.경 피고의 제안제도를 통하여 피고에게 위와 같은 역전현상이 발생함을 이유로 부칙을 개정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제안을 하였고, 그 무렵 퇴직을 앞둔 일부 기존 근로자들이 부칙의 규정에 의한 퇴직금산정이 부당하다는 이의를 제기하자, 피고는 1997. 10. 31. 고문 변호사와 노무사에게 그 타당성 등에 관하여 자문을 의뢰하였는데, 고문 변호사와 노무사가 일부 기존 근로자들의 이의는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계속하여 부칙을 적용하여 퇴직금을 산정·지급한 사실, 그러자 기존 근로자들인 소외 2 등 33인이 1998. 8. 3. 피고를 상대로 부칙을 적용한 퇴직금산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총 근속기간에 대하여 개정 퇴직금규정을 적용하여 산정되는 퇴직금과의 차액의 추가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1심에서는 패소하였으나, 항소심에서 "부칙은 기존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승소한 후, 1999. 12. 28. 대법원에서 같은 취지의 상고기각 판결을 선고받아 항소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된 사실, 피고는 위 대법원판결이 선고되자 그 선고일을 기준으로 아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1996. 12. 28. 이후에 퇴직한 기존 근로자들에 대해서만 추가 퇴직금을 지급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피고는 기존 근로자들인 원고들에 대하여 부칙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개정 퇴직금규정에 의하여 퇴직금을 산출하여 지급하여야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원심 판시 추가 퇴직금일람표의 '차액'란 기재 각 해당 금액을 추가로 지급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나, 한편, 퇴직금채권은 근로기준법상의 임금채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퇴직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시효로 소멸되는 것인바, 원고들의 퇴직일자가 1993. 2. 11.부터 1996. 6. 30.까지의 사이임은 위에서 인정한 바와 같고, 원고들의 이 사건 소가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한 후인 2000. 7. 3. 제기된 사실이 기록상 분명한 이상, 원고들의 추가 퇴직금채권은 이 사건 소제기 전에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판단한 후, 시효소멸이 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원고들의 여러 주장 중에서, 피고의 소멸시효 원용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앞서 인정한 사실들에 의하면, 피고가 기존 근로자들에게 불리하게 퇴직금규정을 개정하면서 그들의 기득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칙의 경과규정을 두면서도, 그 적용 범위에 관하여 그들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적용한다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지 아니하여 원고들이 이를 알기 어려웠고, 피고가 이후 임금체계의 변동으로 부칙을 적용함이 원고들을 비롯한 기존 근로자들에게 불리하게 되었음에도 계속하여 이를 적용하여 산정한 퇴직금을 지급하여 왔다고는 할 것이나, 나아가 피고가 임금체계의 변동으로 기존 근로자들에 대하여 부칙을 적용함이 불리하게 되었음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묵살 또는 은폐하거나 개정 퇴직금규정에 따른 퇴직금산정이나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원고들을 비롯한 퇴직 근로자들에게 안내하거나 유도 또는 홍보하여 왔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오히려 앞서 인정한 사실들에 비추어 보면, 부칙의 적용이 원고들을 비롯한 기존 근로자들에게 불리하게 된 것은 퇴직금규정이 개정된 후 13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동안 있었던 임금체계의 변동으로 인하여 점진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피고는 이러한 사정을 인식하지 못한 채 부칙을 계속 적용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원고들을 비롯한 기존 근로자들 또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원고들이 모두 퇴직하고 난 후인 1997. 8.경에 비로소 일부 근로자들에 의하여 부칙의 적용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으며, 피고는 위와 같은 이의를 접하고 고문 변호사와 노무사에게 자문을 의뢰하여 위와 같은 이의가 타당하지 않다는 회신을 받은 후, 계속하여 기존근로자들에 대하여 부칙을 적용하였는바, 이러한 사정과 원고들은 소외 2 등이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후에도 피고에게 추가 퇴직금을 청구하거나 기타 시효중단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아니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될 정도로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원고들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다거나,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하기는 어려우며, 또한 원고들이 지급받지 못한 이 사건 추가 퇴직금채권이 원고들이 받을 전체 퇴직금채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원고들과 동일한 조건의 다른 근로자들이 구제되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배척하고,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한 판단
그러나 원심이 위와 같이 피고의 소멸시효 원용이 신의칙에 반한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할 수 없다.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9. 12. 7. 선고 98다42929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더라도, 피고가 기존 근로자들에게 불리하게 퇴직금규정을 개정하면서 그들의 기득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칙의 경과규정을 두면서도, 그 적용 범위에 관하여 그들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적용한다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지 아니하였고, 또한 부칙을 적용하면 오히려 기존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된 것은 위 부칙을 규정한 때로부터 13년여의 세월이 흐른 다음부터여서, 부칙을 적용하여 자신들에 대한 퇴직금을 산정하면 아니된다는 점을 원고들이 알기 어려웠다고 보여지고, 피고 역시 부칙을 기존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계속하여 적용하여 온 것으로 보여지는바, 그렇다면 원고들이 이 사건 추가 퇴직금을 구하는 권리행사를 하지 아니한 것은 앞서 본 소외 2 등이 제기한 소송의 대법원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법규범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취업규칙의 부칙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부칙이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피고의 고문 변호사나 노무사, 그리고 심지어 소외 2 등이 제기한 위 소송의 제1심법원조차 알지 못하였다면, 원고들이 위와 같이 신뢰한 것에 어떠한 과실이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 할 것이어서, 이러한 원고들에게 부칙의 적용 범위에 관한 의심을 가지고 소송을 제기하여 추가 퇴직금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상황하에서는 원고들에게는 객관적으로 이 사건 추가 퇴직금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까지 이 사건 피고가 주장하는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사건 원고들에게 너무 가혹한 결과가 되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권이 모두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은,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 할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이 부분 상고이유는 이유 있다.
3. 결 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하여 나아가 판단할 필요도 없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