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제주)2020노32 살인,사체손괴,사체은닉
피고인
A
항소인
쌍방
검사
김재하(기소), 이환우(기소, 공판), 한승진(공판)
변호인
변호사 BQ(국선)
원심판결
제주지방법원 2020. 2. 20. 선고 2019고합116, 2019고합194(병합) 판결
판결선고
2020. 7. 15.
주문
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압수된 그랜저 차량 1대(증 제5호), 쇠톱 1개(증 제9호), 쇠톱 손잡이 1개(증 제10호), 칼 2자루(증 제11호), 캐리어 1개(증 제14호), 그랜저 차량 스마트키 1개(증 제22호), 데이블 전기톱 1개(증 제23호)를 각 몰수한다.
원심판결 중 무죄부분에 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1)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피해자 D에 대한 살인의 점에 대하여)
피고인은 피해자 D의 성폭행 시도에 대항하다가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게 되었는바,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
2) 양형부당
원심의 형(무기징역)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검사
1)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피해자 C에 대한 살인의 점에 대하여)
피해자 C에 대한 법의학자들의 감정 결과나 간접 증거들을 모두 종합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등 위에 올라 타 피해자의 얼굴을 침대 방향으로 돌려 코와 입을 강하게 압박함으로써 피해자를 질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이 인정된다. 따라서 이와 다른 취지의 원심판단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있다.
2) 양형부당
원심의 형(무기징역)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2. 피고인의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주장에 대한 판단
가. 인정사실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1) 피고인은 피해자와 2013. 6. 11. 혼인신고를 마치고, 그 사이에서 BR일자경 E을 출산하였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혼인 후 약 3년 만인 2016. 6.경 부부관계가 사실상 파탄되어 별거에 이르렀고, 피해자가 2016, 11. 2.경 피고인을 상대로 제주지방법원에 이혼 등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피고인은 2017. 3. 9. 피해자를 상대로 이혼 등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위 소송에서 2017. 5. 26. '피고인과 피해자는 이혼하고,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재산분할로 6,000만 원을 지급하며, E에 대한 친권자 및 양육자로 피고인을 지정하되 피해자가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 10:00~18:00 E을 면접교섭한다.'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되었고, 그에 따라 피고인과 피해자는 2017. 6. 2. 이혼 신고를 마쳤다. 한편, 피고인은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7. 1.경 현재 남편인 H와 교제를 시작하여 2017. 11. 17. 혼인신고를 마치고, E은 제주도에 있는 부모에게 양육을 맡긴 채 2018. 6.경부터 청주시 소재 아파트(이하 '청주 아파트'라고 한다)에서 동거하여 왔다.
2) 그런데 피해자는 2017. 7.경부터 위 조정에 따른 E에 대한 면접교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2018. 10. 30.경 제주지방법원에 피고인을 상대로 면접교섭 허용의 무불이행에 대하여 이행명령을 신청하였다. 피고인은 2019. 1. 29. 및 2019. 2. 26. 2차례에 걸쳐 제주지방법원의 심문기일에 출석하지 않아 위 법원에서 각 50만 원의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 후 2019. 5. 9. 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가사조사관의 면접조사기일에 참석하여 피해자의 E에 대한 1차 면접교섭을 2019. 5. 25.경 청주에서, 2차 면접교섭을 2019. 6. 8.경 제주에서 진행한 후, 2019. 6. 10. 14:00경 제주지방법원에 피고인과 피해자 및 E이 출석하여 면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3) 한편, 피고인은 2019. 5. 4.경 대학교 친구인 W에게서 2019. 5. 23.경 제주도를 방문한다는 오랜만의 연락을 받고 피고인도 그 무렵 제주도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만나기로 하였고, 피고인과 W은 2019. 5. 13.경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2019. 5. 23.부터 2019, 5, 25.까지 서귀포시 U에 있는 'V' 리조트에서 각자의 아이를 데리고 함께 투숙하기로 약속하였다.
4) 피고인은 위와 같은 일정에 따라 청주와 제주를 왕복하기 위해 2019. 5. 16. 16:09경 M 홈페이지에서 2019. 5. 18. 02:30 완도에서 제주도로 운항하는 K 선박과 2019. 5. 27. 20:30 제주도에서 완도로 운항하는 K 선박을 예약하면서 그랜저 차량의 선적도 함께 예약하였다.
5) 피고인은 2019. 5. 17. 13:05경 2019. 5. 25.(피해자의 E에 대한 1차 면접교섭이 예정된 날)부터 2019. 5. 27.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성인 2명 및 아이 1명이 투숙한다는 내용으로 제주시 AB에 있는 무인 단독 키즈펜션인 'N 펜션(이하 '이 사건 펜션'이라 한다)을 예약 및 결제하였고, 같은 날 13:26경 위 펜션 운영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남편이랑 피고인, 그리고, 6살짜리 아이와 함께 3명이 투숙할 것이라면서 피고인 가족만 펜션을 이용하는 것인지 문의하였다. 그 후 피고인은 2019. 5. 17. 17:00경 청주 아파트에서 약 18km 떨어진 청주시 청원구 BS에 있는 BT의원에 내원하여 인후통, 불면증 등으로 진료를 받고, 오구정 625mg(세균감염증 치료제) 15정, 덱시 핀정(해열진통 소염제) 15정, 세로나제정(소염효소제) 15정, 레바진정(소화성궤양용제) 15정, 졸피드정 (최면진정제)1) 7정의 처방을 받아 같은 건물의 BU약국에서 위 의약품을 구입하였다. 6) 피고인은 앞서 예약한 선박 일정에 맞춰 자신의 그랜저 차량을 운전하여 완도항에서 2019. 5. 18. 02:30 출발 K 선박에 위 차량을 선적한 후 같은 날 11:40경 제주시 P에 있는 친정집(이하 '친정집'이라 한다)에 도착하였고, 2019. 5. 20, 17:26경 피해자에게 "25일에 제주에서 만나자~~ 마침 제주 일정 늘어나서 제주에서 보는 게 E이한테 더 좋을 것 같다 괜찮지? 어디 갈 지 고민해봅시다" 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예정된 1차 면접교섭 장소를 청주에서 제주로 변경하였다.
7) 피고인은 2019. 5. 23. 저녁부터 2019. 5. 25. 아침까지 V 리조트에서 E을 데리고 W의 가족들과 함께 투숙하였다. 피고인은 위 투숙기간 중 W에게 '면접교섭 시 피해자 만날 때 필요한 서류를 친정집에서 가져와야 한다'며 2019. 5, 24. 23:26 경~ 23:35경 친정집에 방문하였는데, 아파트 CCTV에 피고인이 친정집에서 종이상자를 양손에 들고 내려와 차량에 싣고 가는 장면이 확인되었다.
8) 피고인은 리조트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W과 헤어진 후 2019. 5. 25, 11:26경 피해자와의 약속장소인 서귀포시 X에 있는 Y에 도착하였고, 10:28경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피해자는 약 2년 만에 E을 만나 피고인과 함께 15:10 경까지 Y를 관람하였다. 그 후 피고인과 피해자는 각자의 승용차로 AA마트로 이동하여 16:12~16:25경 수박, 당근, 양파, 감자, 냉동 닭가슴살, 비비고 황태해장국, 비비고 갈비탕, 과자, 식빵, 젤리, 쓰레기봉투 20L 2개 등을 구입한 후 피고인의 차량으로 함께 이 사건 펜션으로 이동하였다.
19) 피고인과 피해자는 2019. 5. 25. 17:02경 이 사건 펜션에 도착하였는데, 같은 날 피해자는 휴대전화로 19:14경 E과 주방에 있는 피고인을 촬영하고 20:02경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하기도 하였다. 피해자의 동생 BV은 2019. 5. 25. 21:25경 피해자에게 "안끝난(안 끝났어?"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에 대해 2019. 5. 25. 22:34경 "끝나신디 작업할거이성 들령가야켜, 충전해야켜(끝났는데 작업할 게 있어서 들러야 하고, 충전하여야 한다)"라는 회신이 온 이후로는 피해자가 동생이나 친구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거나 휴대전화가 꺼져 있는 등 피해자와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에 BV은 2019. 5. 27, 20:14경 112에 피해자에 대한 실종 신고를 하였다. 10) 한편, 피고인도 2019. 5. 25. 현 남편인 H와 피해자의 E에 대한 면접교섭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이후 2019. 5. 27. 오전까지 H나 피고인의 동생 BW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이에 H는 2019. 5. 27. 오전 119에 피고인의 실종 신고를 하여, 12:35경 119에서 피고인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기도 하였다), 위 기간 동안 피고인은 2019. 5. 26. 11:33경~11:41경 E을 친정집에 데려다주러 외출하였던 시간 외에는 2019. 5. 27. 11:30경까지 이 사건 펜션에 머물렀다(이 사건 펜션의 체크아웃 시간은 2019. 5. 27. 11:00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피고인은 2019. 5. 26. 13:20경 펜션 운영자에게 전화하여 하루 더 숙박 연장이 가능한지 문의하였고, 그 다음 날인 2019. 5. 27. 09:55 경에는 전화로 12시까지 퇴실시간 연장을 요청하여 11:30으로 퇴실시간 연장을 허락받았다).
11) 피고인은 이 사건 펜션에서 퇴실한 후인 2019. 5. 27. 12:34경 BI 사이트를 통해 제주시에 있는 'AC 모텔을 예약하고 13:11경 운영자에게 전화로 요청하여 예정된 시간보다 먼저 체크인을 하였고, 14:48경 피해자에게 성폭행 미수 및 폭력으로 고소하 겠어. 니가 인간이냐? 넌 예나지금이나 끝까지 나쁜 인간이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 15:35 경 제주시에 있는 AS 정형외과의원을 방문하여 '2019. 5. 25. 칼에 상처를 입었다'면서 손 등에 생긴 자상에 대해 치료를 받았고, 16:48경에는 앞서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 대해 마치 피해자가 답장을 하는 것처럼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피고인에게 "미안하게 됐다. 내정신이 아니었져, 너 재혼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고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 고소는 하지 말아주라, 내년에 나도 취업해야 되고 미안 하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며, 17:32 경 ㈜M에 전화하여 기존에 예약했던 2019. 5. 27, 20:30 완도행 K 선박을 그 다음 날 같은 시간으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12) 피고인은 2019. 5. 28. 17:35 경 다시 AS 정형외과의원을 방문하여 오른 손등과 손바닥 등에 생긴 자상에 대해 이를 봉합하는 치료를 받고, 19:40경 제주항에서 K 선박에 그랜저 차량을 선적하고 승선하여 23:25경 완도항에서 하선하였으며, 그 후 위 승용차를 운전하여 04:34경 김포에 있는 부모 소유 아파트(이하 '김포 아파트'라고 한다)에 도착하였다.
13) 피고인은 2019. 5. 29. 23:27경부터 2019. 5. 30. 00:07 경 사이에 피고인 소유의 휴대전화 2대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무섭고 힘들다. 아무렇지 않게 있어야 하나.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나는 멍청하게..", "나보다 더 큰 상처받을 식구들.. 보복할까 두려 움... 또 다시 피해 받을지 두려움", "아무 일 없었던 듯.. 애써 아무 일도 없는 듯 하는게 너무 힘겹다.", "소름 끼치게 싫고 몸이 떨린다. 제대로 살 수나 있을까 나쁜놈"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또한 피고인은 2019. 5. 27. 16:33경부터 2019. 5. 31. 19:21경까지 H가 피고인이 피해자와 이 사건 펜션에 간 사실을 숨기고 피해자와 함께 있으면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등의 일로 추궁을 하고 혼인관계를 정리하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자 이에 대해 이해해달라거나 미안하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2019. 5. 30, 23:18경 "25일날 면접교섭일 때... 그 미친 놈한테 성폭행 당할 뻔 했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2019. 5. 31. 12:24경에는 2019. 5. 27. 14:48경 및 16:48경 피고인이 피해자와 허위로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캡처한 사진과 함께 "경찰서에선 이때 이후로 전원도 꺼져 있고 실종이라 했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14) 피고인은 2019. 5. 30. 09:00경 제주동부경찰서에서 피해자 실종사건 관련 최종 목격자로서 출석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자, '성폭행 당할 뻔 했다. 제가 잘못한 게아닌데, 왜 저만 당해야 하나요, 얼마나 소름 끼치고 무서웠는지 아느냐. 애기 때문에 저는 살았어요. 어쨌든 성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처음 투숙한 날 20:00경 이 사건 펜션에서 나갔다. 만약 피해자가 잠적한 상태라면 처벌을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 내일 모레 정도에 출석하겠다.'면서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보였다. 그 후 피고인은 2019. 5. 31. 04:43경 김포를 출발하여 07:20 경 청주 아파트에 도착한 후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H에게 별다른 내색 없이 생활을 하였다.
15) 이 사건 펜션은 투숙객에게 독채로 제공되는 1층 건물로, 주위에 약 12채의 주택이 있기는 하나 막다른 길 끝부분에 위치하여 펜션 이용자 외에는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곳에 있었고, 진입로 인근을 제외하고는 펜션 자체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 사건 펜션은 방 3개, 다이닝룸, 욕실, 주방 및 거실, 화장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위 펜션에 대한 현장 감식 결과 다이닝룸 및 욕실, 주방, 현관 및 거실, 화장실의 천장, 전등, 벽면, 바닥, 전기밥솥 등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고, 이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혈흔형태분석 결과 '가해자가 다이닝룸, 욕실, 주방 및 현관에서 피해자를 칼 등의 흉기로 가격하였고, 피해자는 휘두르는 칼을 지속적으로 방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16) 피고인은 2019. 6. 1. 10:32경 청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피해자에 대한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되었다. 경찰은 지하주차장에 있던 피고인의 그랜저 차량에서 테이블 전기톱, 수박, 돗자리 매트 조각, 피해자 소유 휴대전화, 붉은색 담요, 분홍색 이불 등을 발견하여 압수하였고, 이 사건 펜션, 김포 아파트 등에서 발견된 압수물 등과 함께 유전자 감정을 의뢰 하였다. 그 결과 이 사건 펜션 내 다이닝룸, 욕실, 거실, 현관, 화장실, 신발장 틀 등 곳곳에서 발견된 혈흔과 그랜저 차량 트렁크 바닥 매트, 그랜저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된 테이블 톱의 날과 상판, 김포 아파트 샤워부스 바닥, 청주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함에서 발견된 쇠톱 손잡이 등에서 피해자의 디엔에이가 검출되었다. 또한 그랜저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분홍색 이불의 13개 부위에 대한 디엔에이 감정 결과, '4개 부위(4, 5, 8, 12)에서 인혈반응 양성 및 피해자의 디엔에이형 검출, 6개 부위(3, 6, 7, 9, 11, 13)에서 피해자의 디엔에이형 검출, 1개 부위(2)에서 인혈반응 양성 및 피해자와 피고인의 디엔에이형 혼합 검출'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위 이불에 대한 화학 감정 결과 인혈반응 양성이 나온 2개 부위(4, 5)에서 졸피뎀 성분이 검출되었다. 한편, 졸피뎀 투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019. 6. 20. 채취한 피고인의 모발에 대해 분절 감정을 실시한 결과 모근에서 0~1cm 부분, 1~2cm 부분에서 졸피뎀 성분이 검출되었다. 17) 경찰이 주변 CCTV와 피고인의 휴대전화 등을 분석한 결과, 아래 표 기재와 같이 CCTV 영상에서는 피고인이 범행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 등을 버리는 장면이 확인되었고, 휴대전화 기록에서는 피고인의 인터넷 검색 및 물품구매내역이 확인되었다.
[표1] CCTV 분석 결과
[표2] 인터넷사이트 검색/방문 기록
[표3] 물품구매내역
18) 피고인은 경찰에 체포될 때부터 '피해자가 칼로 위협하고 찌르면서 성폭력 범행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이 실제 상처를 입었다'면서 상처가 있는 배, 옆구리, 팔, 다리, 오른쪽 종아리, 허벅지, 골반 등의 신체부위에 대해 사진 촬영을 요구하였다. 또한 위와 같은 상처들을 방어흔으로 볼 수 있는지 감정을 요청하였는데, 위 감정을 의뢰받은 CR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AN 교수는 '사진 상의 모든 상처는 자해행위에 의해 형성 가능한 부위에 있고, 변형 손상, 즉 가해행위를 피하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가 발견되지 않으며, 자해 혹은 타인에 의하여 모두 형성 가능한 가벼운 손상만이 발견되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사진 상의 손상은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감정 의견을 밝혔다.나, 판단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사건 당일 피해자가 성폭행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칼로 찌르기까지 하여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칼로 찔러 살해하였다고 진술하여 왔다. 피해자의 가족들이 피해자가 면접교섭을 위해 피고인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피해자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곧바로 피고인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점, 피고인이 굳이 자녀인 E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신체조건에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는, 신장 183cm, 체중 80kg의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여야 할 동기가 다소 부족해 보이는 점, 범행 후 그 흔적을 모두 지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 당연히 예상되는데, 사용시간에 제약이 있고 곧바로 다른 사람의 사용이 예상되어 범행 발각의 위험성이 높음에도 범행 장소로 펜션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 등 계획적 범행으로 보기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사정들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원심이 설시한 사정들에다가 위 인정사실과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성폭행을 당하려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당시 피고인에게 피해자에 대한 살인의 고의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할 것이므로, 이 부분 범행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1) 피고인은 피해자와 이혼한 후 피해자가 E과의 면접교섭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음에도 이에 협조하지 않았고, 결국 피해자가 면접교섭 허용의무 불이행에 대해 법원
에 이행명령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피고인은 현남편인 H를 E의 친부로 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피고인은 2019. 5. 18. 18:43경 제주도에서 E과 함께 방문한 키즈카페에서 E의 이름을 CS으로 표시하기도 하였고 E은 피해자를 삼촌이라고 호칭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위와 같은 피고인의 계획과 바람을 보여준다), 위와 같이 향후 면접교섭을 강제적으로 허용하여야 할 상황에 놓이자 피고인은 E과 피해자, H와의 관계 설정 등에 대해 상당한 심적 고통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2) 위와 같은 상황에서 피고인은 W과의 약속에 따라 제주도에 갈 계획을 세우고 H에게는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면접교섭을 위해 이 사건 펜션을 예약하였고,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면접교섭 장소를 청주에서 제주로 변경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피고인은 이 사건 펜션 운영자와의 통화에서 남편과 함께 투숙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이 피해자와 서로 좋지 않은 감정으로 이혼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그 이후 별다른 교류도 없었으며, 현남편인 H는 피고인이 면접교섭 이행으로 피해자와 만나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표시하였던 점, 예정된 면접교섭은 2019. 5. 25. 하루였고, 피고인으로서는 W과의 약속에 따라 2019. 5. 18. 제주에 입도하여 일주일 넘게 E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굳이 E과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펜션을 예약할 만한 동기가 부족해 보이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Y 관람 이후 면접교섭 시간이 남아서 피해자의 요구로 피해자와 함께 이 사건 팬션에간 것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은 쉽게 믿기 어렵다.
3) 이 사건 펜션의 다이닝룸, 거실, 현관, 신발장, 현관문 도어 록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다수의 혈흔이 발견되었고, 그 혈흔에서 피해자의 유전자가 검출되었다. 혈흔형태분석 결과 피고인이 다이닝룸, 욕실, 주방 및 현관에서 피해자를 향해 칼 등의 흉기를 휘두르고 피해자는 이를 지속적으로 방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위와 같이 혈흔이 발견된 위치나 범위, 혈혼형태분석 결과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여러 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향해 칼을 휘두르거나 칼로 피해자를 찌른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이 다이닝룸에서 피해자의 성폭력 범행 시도에 대항하여 우발적으로 1회 칼로 찔렀을 뿐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오히려 위 혈흔 형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충분한 고의로 피해자를 수회 찔렀음을 뒷받침한다.
4) 피고인의 그랜저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분홍색 이불 중 2군데에서 피해자의 혈흔과 디엔에이형, 그리고 졸피뎀이 모두 검출되었는데,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위와 같이 피해자의 혈흔에서 졸피뎀이 검출된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다룬 바 있다. 그런데 원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AJ, AK, AL, AM의 각 진술을 모두 종합하면, 감정 방법이나 절차에서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사건 발생 무렵 졸피뎀 성분의 약을 직접 복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만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결국 피고인이 처방받은 졸피뎀 성분의 약이 피해자에게 투약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더욱이 피고인이 2019, 6. 5. 경찰서 유치장에 면회를 온 H에게 졸피드정과 함께 처방받은 약봉투가 들어있던 분홍색 파우치 가방의 소재를 물었던 사정은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5) 피고인은 당시 주방에서 E에게 수박을 썰어주려고 칼을 들고 있었던 상황에서 피해자가 겁탈을 하려고 하여 이에 임신 가능성을 언급하며 저항을 하자 피해자가 칼로 피고인의 배나 자궁 쪽을 찔렀다고 진술한 바 있다(피고인은 이 사건으로 구속된 후 면회를 온 H나 가족들에게도 동일한 취지로 말하였다). 그런데 당시는 피해자가 면접교섭에 협조하지 않는 피고인을 상대로 이행명령을 신청하여 2차 면접교섭 날짜까지 지정된 상태였고 약 2년 만에 E을 만나는 상황이었는데, 이와 같이 면접교섭이 이루어진 경위나 정황, 당일의 행적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E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피고인을 칼로 위협하여 성폭행을 시도하였다는 주장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피해자에게서 실제 성폭행을 당했는지에 대한 피고인의 진술도 일관되지 않는다(피고인은 수사기관에
서는 피해자가 성폭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칼로 찔렀다고 진술했는데, 원심의 피고인신문 과정에서는 피해자가 성관계를 하는 중 피해자를 칼로 찔렀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위와 같은 상황에서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산부인과 진료까지 받는 것이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행동이라고 할 것인데, 피고인은 오히려 피해자의 사체를 절단, 훼손하고 그 흔적을 지웠으며 손 등에 생긴 자상 치료만 받았을 뿐이고, 그 와중에 T마트에 들러 반품을 하는 등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당시 범행 장소에 함께 있었던 E이 이러한 상황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이례적이다.
6) 피고인은 범행 이후 피해자에게 성폭행 미수 및 폭력으로 고소하겠다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이에 마치 피해자가 보낸 것처럼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미안하다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자신에게 보냈다. 나아가 피고인은 피해자와의 위 문자 메시지를 캡처하여 H에게 보낸 바 있는데, 당시 H가 피고인에게 피해자와 면접교섭을 하면서 연락이 되지 않은 사실에 화를 내면서 혼인생활을 정리하자는 말까지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던 점에 비추어 그에 대한 변명을 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문자 메시지를 허위로 보내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 후 피고인이 휴대전화로 '성폭행 피해자, 전남편 성폭행, 성폭행 소송, 강제추행 자살' 등을 검색한 바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당시 실제로 성폭행 피해를 당할 상황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3. 검사의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주장에 대한 판단
가.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17. 11. 17.경 피해자 C(AV생)의 아버지인 H과 혼인신고를 하고 2018. 6.경부터 청주 아파트에서 동거하였는데, 혼인기간 중 H과 사이에서 임신한 태아를 2 차례 계류 유산하였음에도 H이 피고인을 위로하지 않고 피고인과 전남편 사이의 자녀인 E을 홀대하였으며 피해자만 진정한 가족으로 아끼는 모습을 보이자, H에 대한 강한 적대심과 분노감으로 피해자를 살해하여 H에게 복수할 것을 마음먹었다.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를 청주 아파트로 데리고 와 양육하면서 피해자가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얼굴을 베개 등으로 눌러 질식시켜 살해하되, 피해자와 같은 방에서 자던 H이 잠결에 피해자를 눌러 피해자가 질식하여 사망한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형사책임을 회피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H에게 2019. 2. 28. 오후에 피해자를 청주 아파트로 데려오도록 하였다. 피고인은 2019. 3. 1. 21:00경부터 22:00 경까지 H이 피해자를 화장실에서 씻기고 중간 방에서 잠을 재우는 동안 2018. 11. 1.경 구입하여 보관하고 있던 수면제인 CT 불상량을 불상의 도구를 이용하여 가루로 만들어 H이 마실 찻잔 안에 넣어 두고, H이 22:00경 피해자를 재우고 거실로 나오자 함께 차를 마실 것을 제안하여 22:00경부터 23:00경까지 H에게 수면제가 들어 있는 차를 마시게 하여 H가 24:00경 피해자와 같은 침대 위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다. 피고인은 2019. 3. 2. 04:00경부터 06:00경까지 사이에 H와 피해자가 잠을 자고 있는 청주 아파트 중간 방에 들어 가 H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H 옆에서 엎드린 자세로 자고 있는 피해자의 등 위로 올라 타 자신의 엉덩이로 피해자의 몸통 부위를 눌러 피해자를 제압하는 동시에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침대에 정면으로 파묻히게 머리 방향을 돌리고, 뒤통수 부위를 약 10분간 강한 힘으로 눌러 피해자의 코와 입이 요에 처박혀 숨을 쉬지 못하게 함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질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나, 원심의 판단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들게 하는 사정들이 있기는 하나, 피고인이 H에게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는 차를 마시게 하여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한 점, 피해자가 공소사실과 같은 방법으로 질식사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다른 원인으로 사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추정 시각에 깨어 있었는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사망추정시각도 정확하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추정시각에 깨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부족한 점 등의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직접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 간접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다. 이 법원의 판단
1) 관련 법리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검사의 증명이 그만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설령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어 유죄의 의심이 가는 등의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31 판결 등 참조). 한편 살인죄와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 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 경우에도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하고, 그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이 상호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10895 판결 참조). 그러므로 유죄의 인정은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보아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어야 하고,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범행한 것이라고 보기에 의심스러운 사정이 병존하고 증거관계 및 경험법칙상 고의적 범행이 아닐 여지를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면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것이 헌법상의 원칙이고, 그 추정의 번복은 직접증거가 존재할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1549 판결 참조).
2)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사실 이 법원과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피고인은 2013. 6. 11. D과 혼인신고를 마치고 그 사이에서 E을 출산하였는데, 그 후 2017. 5. 26. 제주지방법원에서 이혼조정이 성립되어 2017. 6. 2. 이혼 신고를 마친 후 제주도에서 E을 양육하면서 생활하였다. 한편, H는 2010. 8. 16, 구급 경력채용 전형으로 충북지역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청주에서 근무하여 왔는데, 2014. 6. 9. AX과 혼인신고를 마치고 그 사이에서 AV일자경 피해자 C을 낳았으나 AX이 2015. 1. 20. 사망한 후 2016. 6.경부터 제주도에 있는 어머니에게 피해자의 양육을 맡긴 채 피해자와 떨어져 살았다. 그러던 중 피고인과 H는 2017. 1.경 교제를 시작하여 2017. 11. 17. 혼인신고를 마쳤고, 2018. 6. 1.경 청주 아파트를 H 명의로 매수(H는 위 아파트를 289,200,00원에 매수하면서 CU주식회사에서 대출을 받고 채권최고액 254,400,000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었다)한 이후 전 배우자들과의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을 각자의 부모에게 양육을 맡긴 채 위 아파트에서 혼인생활을 하여 왔다(H는 2018. 12. 1.부터 2020. 11. 30.까지 피고인의 자 E에 대한 육아휴직 중이었다). (2) 피고인과 H가 함께 거주하였던 청주 아파트는 아래 도면과 같이 방 3개, 거실 1개, 주방 1개, 화장실 2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2 층 침대가 있는 방(아래 도면 "방1")이 있고 그 옆에 2개의 퀸 사이즈 침대를 나란히 붙여놓은 중간 방(아래 도면 "방2")이 있었으며, 복도를 사이에 두고 2개의 방 건너편에 욕조가 딸린 화장실이 있었고,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는 거실이, 왼쪽에는 식탁이 있는 주방이 있었다. 주방과 거실을 지나면 안쪽에 샤워실과 화장실(아래 도면 "화장실2")이 딸린 안방이 있었는데, 안방에는 피고인과 H가 사용하는 책상과 데스크톱 컴퓨터 2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3) 피고인과 H는 각자의 자녀들을 제주도에서 청주로 데려와 함께 살기로 계획하고 2019. 1. 9. 청주에 있는 어린이집에 피해자와 E의 입학금을 납입하였고, 그에 따라
H는 2019. 2. 28. 먼저 피해자를 청주 아파트로 데려왔다. 2019. 3. 1. 10:00경 피고인과 H는 피해자를 데리고 위 어린이집 예비소집에 참석 하였고, 12:55 경 'BE 식당'에서 점식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 왔다. 그 후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한 후 피해자는 중
간 방(위 아파트 도면의 "방2"에 해당한다)에서 먼저 잠들었고, 그 후 2019. 3. 2. H는 중간 방 출입문 쪽 침대 위 피해자의 옆에서, 피고인은 감기에 걸려서 피해자와 같이 잠을 자지 않고 그 옆방(위 아파트 도면의 "방1"에 해당한다)의 2층 침대에서 잠들었다.
(4) 피해자는 그 다음 날인 2019. 3. 2. 10:00경 H와 같은 침대 위에서 얼굴을 파묻고 요에 피를 흘린 상태로 H에 의해 발견되었는데(현장 동영상과 사진, 부검감정서에 기초하여 실시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안전 감정 결과 피해자는 머리를 침대의 우측 상단으로 약 35° 각도로 향한 상태로 누빔 요에 남아있는 혈흔과 접촉하여 없드린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H가 피해자를 안고 거실로 데려가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였고 피고인에게 119에 신고하도록 하여 피고인은 2019. 3. 2. 10:10경 '자다 일어났는데 피해자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119에 신고하였다. (5) 피고인의 신고를 받고 4명의 소방대원이 2019. 3. 2. 10:16경 현장에 도착하여 피해자에게 심장제세동기(AED)의 패치를 붙여 심장리듬을 분석하였으나 무수축 반응을 보이는 등 이미 피해자는 호흡과 맥박이 없고 몸이 강직되어 시반이 형성된 상태로 사망한 후였다.
(6)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약독물 검사 결과 피해자의 혈액과 위(胃) 내용물에서 치료농도 범위 내의 클로르페니라민(chlorpheniramine)2)이 검출되는 이외에 특기할 약물이나 독물이 검출되지 않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특기할 만한 질병이나 손상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피해자의 왼눈꺼풀 결막, 왼눈 부위, 입 부위 왼쪽, 좌우 광대 부위, 좌우 볼 부위, 목 부위, 가슴 부위 등에서 다수의 점출혈이 발견되고(그 외에 좌우 넓적다리 앞 부위에서도 여러 개의 점출혈이 발견되었다), 왼 어깨뼈 윗부분에서 국소적인 표피박탈(크기 약 3.5m×0.7m)이 발견되었다. 부검을 담당한 법의관 BM은 위와 같은 결과를 종합하여 피해자의 사인은 질식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7) 한편, 2019. 3. 1. 22:00경부터 2019. 3. 2. 10:00경까지 청주 아파트 승강기 CCTV상으로 피고인과 H, 피해자가 집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청주 아파트 안방에 있던 데스크톱 컴퓨터와 피고인의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증거 분석 결과, 피고인이 ① 2019. 3. 2. 00:05경 안방에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를 이용하여 BZ 사이트의 '아파트' 카페에 들어가 게시 글에 댓글을 작성한 사실, ② 2019. 3. 2. 04:48경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피해자의 친모 AX의 동생 및 친구 연락처를 확인 변경하고, 04:52경 2019. 2. 28.자 H와의 통화녹음파일 및 2019. 2. 27.자 BG의원과의 통화녹음파일을 재생한 사실, ③ 피고인이 2019. 3. 2. 07:09경 BI 사이트에서 당일 12:15 출발 예정인 제주행 CV 항공권을 예약·결제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3) 구체적 판단
(1) 판단의 기본 전제
피해자는 피고인과 H만 있던 청주 아파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직접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데, 청주 아파트 승강기 CCTV상으로 사건 발생 전날 밤인 2019. 3. 1. 22:00경부터 피해자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 2019. 3. 2. 10:00경까지 피고인과 H, 피해자가 집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 확인되지 않았고, 피고인과 H은 당시 청주 아파트에 제3자가 들어온 적은 없다고 일치된 진술을 하고 있어, 제3자가 피해자를 살해하였을 가능성은 고려하기 어렵다.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분석한 법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피해자가 질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그 과정에서 가슴 등을 압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의학자들의 의견에 기초할 때, 피해자의 사망원인은 잠결에 함께 자던 H의 다리 등에 눌려 사망하였을 가능성, 즉 이른바 '포압사(overlying)'3)의 가능성과 피고인 혹은 H의 고의적 행위로 인하여 질식사하였을 가능성으로 좁혀진다. 검사는 포압사의 가능성은 낮다는 법의학자들의 의견과 이 사건 전후로 나타난 피고인의 의심스러운 행적 등 간접사실들을 종합하여 피고인이 피해자를 고의적으로 살해하였다고 보고이 부분 공소를 제기하였다. 그런데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살인죄를 인정할 수 있을지 문제되는 이 사건에서는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보아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한다.
(2) 피해자의 사망원인에 대하여가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분석한 법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① 피해자의 부검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 BM 눈꺼풀결막, 얼굴, 목, 가슴 상부 등에서 다수의 점출혈이 확인되는 점을 고려할 때 기계적 질식(압착성 질식4), 자세성 질식5))의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점출혈의 분포형태에 비추어 피해자가 엎드린 상태에서 포압 또는 압착의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고려된다. 만 4세의 남자 아이가 수면 중 옆에서 같이 자던 성인에게 압박되어 사망할 가능성은 극히 드물 것으로 생각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위와 같은 사례가 발견된 바는 없다.
② CW 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과 법의학연구소 교수 BL 피해자의 양쪽 눈 결막, 왼쪽 눈과 코 사이, 가슴 위쪽의 빗장뼈 주변과 오른쪽 겨드랑이 앞쪽, 양쪽 가슴 옆구리 등 신체 위쪽을 중심으로 관찰되는 심한 점출혈, 침대 커버의 혈흔과 피해자 얼굴에 남아있는 침대 커버의 누빔과 유사한 형태의 3개의 줄, 피해자 전신에 걸쳐 확인되는 양측성 시반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엎드린 상태에서 얼굴과 몸통을 포함한 넓은 부위에 걸쳐 외부의 누르는 힘이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질식의 과정으로 사망에 이른 것, 즉 외상성 질식사 또는 압착성 질식사로 추정되고, 사망 당시 상황이나 피해자의 상태, 나이 등을 고려할 때 자세성 질식사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피해자가 다른 곳에서 사망한 뒤 발견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시사하는 소견을 확인할 수 없고, 영아기6)를 지난 만 4세의 남자아이가 수면 중 옆에서 동침하던 성인의 다리 등에 눌려서 질식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거 위 성인의 수면 중 이상행동의 구체적인 양상이나 중증도, 지속 기간 등과 같은 병력과 더불어 사건 당일에 나타난 관련 행동 등에 대한 객관적 근거가 전제되지 않고는 매우 낮다고 보인다.
③ 국립과학수사연구원 CX 피해자는 머리 뒷부분과 가슴 부위가 동시에 압박되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H와 같이 성인 남성이 완전히 피해자를 덮친 경우 과실에 의한 사망도 가능은하다. 다만 이러한 과실에 의한 사망을 논하기 위해서는 H가 수면장애로 인한 몽유병이나 간질 또는 술에 만취하여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상태가 되어 피해자가 외압에 전혀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자를 덮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이 사건과 같은 사례를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④ CW 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BK 피해자의 왼눈꺼풀 결막, 왼눈 부위, 입 부위 왼쪽, 좌우 광대 부위와 좌우 볼 부위, 목 부위, 가슴 상부에서 다수의 점상출혈이 발견되는 반면, 늑골 간 근육 출혈이 발견되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엎드려 자고 있는 상태에서 가슴 쪽 등 위에 올라탄 가해자가 피해자의 뒤통수를 눌러 얼굴을 요에 처박게 하여 홈부압박에 의한 호흡운동장애성 질식과 비구폐색 질식이 함께 작용하여 사망한 것으로 판단되고, 피해자의 연령, 키, 발육상태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피해자의 부의 신체에 의해 압사당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판단한다.
(나) 위와 같은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머리와 가슴 부위에 외력에 의한 압박을 받아 질식으로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피해자의 연령 등에 비추어 같이 자던 H의 신체에 눌려 질식사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 사망원인에 대한 법의학자들의 의견들은 피해자가 사망하면서 사체에 남아 있는 여러 소견에 기초한 것으로서 피해자가 다른 사람의 고의적 행위로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하여 범행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이 사건에 있어서 다른 여러 사정이 함께 뒷받침되지 않는 한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위 감정결과나 법의학자들의 의견만을 근거로 바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① 피해자에 대한 부검을 담당한 법의관 BM은 부검 소견만으로 사고사와 타살에 대한 감별이 되지는 않음을 인정하면서 부검의는 부검을 통해 확인한 내용에 기초하여 사인을 추정할 뿐 실제 피해자의 추정사인이 정확한지는 수사를 통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부검의 또는 법의학자들의 감정의견은 사체에 나타나는 여러 사인의 징표에 기초한 의학적 판단으로서 사망원인 내지 사망의 기전에 대한 합리적 추정근거를 제공하기는 하나, 그 자체로 사후적인 판단이고 (더욱이 부검의가 아닌 법의학자들의 의견은 부검결과와 제공된 수사기록에 기초한다), 비구폐색으로 인한 사망과 같이 특징적인 사인이 남지 않는 경우도 있어 수사를 통한 추가 확인이 필요할 수 있는 점, 원심 증인 BL 교수도 칼에 찔린 경우와 다르게 질식사의 경우 뚜렷한 소견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 부검소견뿐만 아니라 현장 상황 등 다른 요인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고 진술하였는데(BL 교수는 그 이전의 2019. 6. 19.자 감정 회보서에서도 시신에서 관찰되는 점출혈은 다양한 원인의 질식사와 같이 특정한 사망원인과 관련하여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내인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견이기도 하고, 심지어 사망 후 시반이 강하게 형성되면서 동반되는 이차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면서 시신의 점출혈은 사망 상황이나 신체 다른 부위에서 나타나는 소견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 사건에서도 전제 조건이 달라지거나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 정확한 사인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보이는 점, 피해자 얼굴에 울혈이 나타나지 않은 현상이나 피해자에게 외력이 가해진 상황 등에 대한 BL 교수나 BK 교수의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법의학자들도 동일한 소견에 대해 그 구체적인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법의학자들의 부검 결과나 감정 결과 그 자체만 가지고 피해자의 사인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② 위 법의학자들은 피해자가 같이 자던 성인의 신체에 눌려 사망할 가능성, 즉 '포압사(overlaying)'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공통적으로 의견을 밝히고 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해외 논문에서도 피해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가 같이 자던 성인에게 눌려 사망한 사례를 찾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법의관 BM은 원심 법정에서 법의학 교과서에 10개월 혹은 15개월, 심지어 4~5세의 연령에서도 '포압 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진술한 바 있고(2019. 6. 7. 같은 취지로 질의 회신한 바 있다), 이 법정 및 원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법의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가능성이 낮기는 하나 특별한 조건이 전제된다면 잠결에 4세의 아이가 성인에게 눌려서 죽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또한 4세의 아이가 포압사한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통계적인 수치에 불과하여 그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피해자가 포압사하였을 가능성이 배제된다고 추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오류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히 적다고 보기는 어려워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당연히 포압사할 가능성이 없다고 추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
서 이러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포압사하였을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다고 보기 어렵다.
③ 더욱이 피해자는 청주로 오기 직전인 2019. 2. 27. 알레르기성 비염, 피부염 및 콧물, 재채기 등 감기증상으로 제주도에 있는 BF소아청소년과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코포나시럽에스, 맥스프로펜시럽, 싱규루카츄정 등을 처방받아 복용하였는데, 코포나시럽에스에는 졸림 효과가 있는 항히스타민제가 포함되어 있었고 실제 피해자의 혈액과 위 내용물에서 항히스타민제인 클로르페니라민이 검출되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당시 항히스타민제 복용의 부작용으로 의도적인 압박행위에 이르지 않은, 옆에서 자고 있던 H의 몸통 등에 머리나 가슴이 눌리는 정도로도 호흡이 어렵게 되고 그럼에도 이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잠에 빠져 있었을 가능성도 여전히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이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CX는 보통 성인의 체중으로 피해자를 눌러 질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피해자에게 발달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피해자는 사망 당시 신장 98cm, 체중 14kg(질병관리본부와 CY학회가 공동으로 제정·발 표한 2017년 소아청소년 성장도표에 따르면 피해자와 같은 나이의 남자 아이의 표준신장은 105.3cm, 표준 체중은 17.5kg이다)으로 동갑내기에 비해 체격이 왜소하였던 점, H도 경찰에서 평소와 다르게 그 날은 깊이 잠이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던 점, 그리고 피고인은 2018. 11. 4.경 및 2019. 2. 26.경 H에게 잠을 자면서 움직인다거나 몸으로 피고인을 누르기도 하였다면서 H의 잠버릇에 대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 점(이에 대해 검사는 피고인이 H에게 피해자 사망에 대한 누명을 씌우기 위해 계획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으나, H의 휴대전화에는 H가 소파에 옆으로 누워 쿠션을 안고 다리 한쪽을 소파 위쪽으로 올리고 자고 있는 사진이 남아 있고 뒤에서 보듯이 피고인이 범행계획의 일환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위와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검사의 위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H도 2019. 7. 8. 수면다원검사 결과 평소 수면장애가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하였는데, H는 수면다원검사를 받기 직전인 2019. 7. 5.파 2019. 7. 8. CZ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항우울제인 프리스틱서방정과 불면증 치료제인 명인트라조돈염산염정, 졸피신정, 자나팜정을 처방받아 복용한 바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 검사 결과를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 등도 위와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정이다.
④ 그리고 설령 피해자가 포압사할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보는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그에 따라 곧바로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고의적 압박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반드시 단정하기도 어렵다.
(3) 사망추정시각에 관하여
(가) 피해자에 대한 검시 결과 전체 관절에서 사후경직이 약하게 관찰되었고, 배면부, 흉부, 복부에 양측성 시반이 관찰되었다. 검사는 이러한 현상이 일반적으로 사망 후 4~5시간 이내에 체위를 변경시키면 발생한다는 전제 하에 피해자가 2019. 3. 2. 04:00경부터 06:00경까지 사이에 사망하였다고 추정하고(검사는 이 법원에서 최종의견을 진술하면서 피해자는 2019. 3. 2. 00:30 경부터 06:00경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 부분과 관련된 주장을 변경하였으나 공소장 변경을 하지는 않았다), 피고인이 2019. 3. 2. 02:35경부터 02:36경까지, 04:48경부터 04:52경까지 데스크톱 컴퓨터 혹은 휴대전화를 조작한 기록이 남아 있는 디지털증거 분석 결과를 토대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추정 시각에 깨어 있었다는 사정을 피고인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간접정황으로 주장한 바 있다.
나) 그러나 사후경직 상태나 양측성 시반 발생 사실을 근거로 피해자의 정확한 사망시각을 추정하기는 어려운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법의관 BM은 현재까지 사후경과시간을 정밀하게 추정하는 신뢰할 만한 연구 결과가 없고 시체에 따라 차이가 많은 사후현상에 바탕을 둔 사후경과시간을 법정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면서 실제 사망시각과 시반의 정도로 추정한 사후경과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였다고 밝힌 바 있고, 법의학자들도 공통적으로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② 사후경직 상태, 시반의 형태나 정도는 그 사람이 사망할 당시의 온도, 죽기 전의 활동, 근육량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위와 같은 시체의 변화를 근거로 하였을 때 대략적인 사망시각 추정만 가능할 뿐이고 정확한 사망시각 추정은 어렵다고 판단된다.
③ 피해자의 사망시각과 관련해서도 법의학자들은 정확한 사망시각을 추정하거나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는 못하였는데, 법의관 BM은 피해자에게 양측성 시반이 형성된 것에 비추어 사후 8~10시간이 경과된 상태인 것으로 가늠할 수는 있겠으나 시반, 위(胃) 내용물의 소화상태, 체온 등에 근거한 사망시간의 정밀한 추정은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고, BL 교수도 같은 취지에서 피해자가 04:00경~06:00경 사망한 것으로 보이나, 아동의 시반 형성과 이동은 성인과 다르고 다른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이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중앙법의학센터 CX는 사람이 사망한 후 2~3시간이 경과한 경우 사체에 이동성 시반이 나타나고 사망 후 12시간이 경과한 이후에 고정성 시반이 나타나는데, 이 사건과 같이 이동성 시반과 고정성 시반이 동시에 관찰되는 경우는 사망 후 3시간부터 12시간 사이에 모두 발생가능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다 더욱이 원심에서는 검사가 피고인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간접증거 중 하나로 제시한, 안방에 있던 데스크톱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대한 디지털증거 분석, 결과보고서 및 이에 대한 수사보고서(수사기록 제1770 내지 1792쪽)의 증명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피고인이 2019. 3. 2. 02:35~02:36 위 컴퓨터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DA 블로그(DB)에 접속하여 완도와 제주도를 왕복하는 K 여객선과 관련된 글과 사진을 확인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제주지방경찰청 디지털증거 분석실 소속 디지털증거분석관 DC은 피고인이 블로그 게시 글과 사진을 확인하였다고 분석된 위 시각은 실제로는 블로그에 글이나 사진이 게시된 시각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위 보고서 내용을 정정하였는데(이는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왔 던, 위 시간에 컴퓨터를 이용하여 K 여객선 관련 블로그에 접속한 기억이 없다는 진술과도 일치한다), 결국 이에 따르면 피고인이 2019. 3. 2. 02:35~02:36 무렵 깨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검사가 피해자가 사망하였다고 추정하는 시각에 피고인이 방에서 나와 피해자가 잠들어 있던 방을 지나 안방까지 이동하였을 가능성(위 청주 아파트 도면 참조)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도 부족하게 된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2019. 3. 2. 04:48경과 04:52경에 휴대전화를 사용한 사실이 인정되기는 하나, 휴대전화를 사용한 시간이 길어야 2~3분에 불과하고 잠결에 잠깐 깨어 휴대전화를 만졌을 수 있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잃었다고 보이지 않으며, 피고인이 평소 새벽 시간대에 데스크톱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빈번하게 사용하기도 한 점에 비추어 위와 같이 피고인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였다 하여 이를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고, 피고인이 위 시간대에 침대를 벗어났다고 볼 만한 사정도 발견되지 않는 이상 위와 같은 휴대전화 사용 기록이 곧바로 피고인의 범행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보기 어렵다.라 결국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사망시각을 정확하게 추정하기 어렵고 이에 더하여 피해자의 사망추정 시각과 그 무렵 피고인이 깨어 있었다는 사실을 연결시키는 것도 어려운 이상, 이와 관련된 사실을 피고인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간접정황으로 보기는 어렵다.
(4) 살인의 동기에 관하여 개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들이 인정되고, 검사는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주장하여 왔다.
①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붓어머니로서 H와 2017. 11. 17. 혼인신고를 마친 후에도 이 사건 발생 전까지 피해자와 같이 생활하거나 피해자를 직접 양육한 사실이 없는 반면, H를 E의 친부로 한 가족관계 형성을 바라왔다.
② 피고인은 평소 H와 다투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하였는데, 특히 피고인이 H와의 사이에서 2차례 임신을 하고도 2018. 10. 15.경 및 2019. 2. 13.경 유산을 하자 그 무렵 피해자만 아끼는 태도를 보이는 H를 강하게 비난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거나, 휴대전화에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H를 살인자, 쓰레기, 사기꾼 등으로 표현하는 메모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3 H도 피고인이 평소 자신에게 '헤어지면 죽어버리겠다'는 취지로 애기를 하면서 집착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진술하였다.도 그런데 다음과 같이 위와 같은 사정들이 그 자체로 살해 동기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H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아들인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이 부분 공소사실의 범행 동기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 사정들도 발견된다.
① 피고인과 H가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을 보면, 피고인과 H가 서로 욕설을 하며 다투기도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화가 풀리면 화목한 부부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 피고인이 유산한 이후에 있었던 대화내용은 그와 같은 대화가 나온 배경을 고려하면 통상적인 부부관계에서의 다툼의 범위를 벗어나 피고인이 H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나 복수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더욱이 피고인은 피해자 사망 이후에도 H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면서 혼인생활을 이어갔고, 피해자 사망 직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H에 대해 책임감이 강하다면서 감싸주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사정은 이 부분 범행의 동기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② 피고인은 2번째 유산 이후 H에게 원망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던 2019. 2. 24.에도 휴대전화에 "중요한 건 아이가 없으면 이 관계는 끝이 나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메모를 작성해두기도 하였는데, 이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H와의 혼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서 아이를 갖거나 H의 자녀인 피해자를 양육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인다(피고인은 H를 만날 때부터 서로의 자녀 인정을 전제로 시작된 관계였다는 취지로 진술을 한 바 있다). 더욱이 피해자가 사망한 날은 피고인이 제주에서 E을 데려오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평소 H와의 관계에 집착하면서, H, E과의 화목한 가정을 원했던 피고인이 그러한 단란한 가정 형성을 앞두고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③ 또한 H는 평소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가 좋았다면서 피해자가 피고인을 엄마라고 불러 왔다고 진술하였는데, 이러한 사실 그 자체로 피고인이 H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 굳이 피해자를 범행대상으로 정하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피고인은 2019. 2. 27. 또래에 비해 체격이 왜소한 피해자를 위해 BN 병원 성장클리 닉, BO병원, BP병원에 진료를 예약해두고, 2019. 3. 1. 피해자와 어린이집 예비소집일에 참석하기도 하였는데, 만약 피고인이 피해자를 청주로 유인하여 살해할 의도였다면 위와 같이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거나 어린이집을 예약하고 예비소집일에 참석할 이유도 없다.
다) 피고인은 2007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외에는 아무런 범죄 전력 없이 살아왔고, 당시 피고인에게 아이를 살해하고 그 누명을 씌울 만큼 심리적, 정서적 위험 요인이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할 만한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전남편에 대한 피고인의 범행은 이 사건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서, 범행 방법이나 경위가 다르고 이 사건과 범행동기가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 그로부터 피고인이 이 부분 범행도 저지른 것으로 예단할 수는 없다. 결국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뚜렷한 범행동기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이 H에게 적개심을 표현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메모를 작성한 사실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는 없다.
(5) 범행방법의 선택과 관련하여가 이 부분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H에게 전가하기 위해 H에게 수면제 성분의 약을 먹게 하여 깊게 잠이 들게 한 후 그 옆에서 피해자의 뒤통수를 베개 등으로 눌러 질식으로 사망하게 하였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뒤에서 보듯이 이 부분 범행의 선결된 행위로서 피고인이 H에게 수면제 성분의 약을 먹게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나아가 피고인이 H에 대한 복수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고자 범행을 계획하였다면 여러 가지 범행방법이 고려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럼에도 범행에 방해가 되는 여러 위험 요소가 당연히 수반될 것으로 예상되는 위와 같은 범행방법을 선택하여 실행하였다고 보기에는 경험법칙상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나 먼저 피고인이 H에게 수면제 성분의 약을 먹게 하였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① 피고인은 2018. 11. 1. 제주도에 있는 'BB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정수리 뒤편 두피 감각 저하와 불면증을 호소하여 진료를 받았는데, 두피 감각 저하에 대해서는 신경과 치료를 권고 받고 불면증에 대해서는 "CT 3㎎ 1정, 알프람정 0.25㎎ 1정" 1일 1회 총 7일분 처방을 받아 근처 BD약국에서 약을 구매하였다. 피고인이 처방받은 CT)은 불면증 치료제인 '독세핀 염산염'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피고인이 전남편 살인 혐의로 체포된 후 H의 요청에 따라 2019. 6. 3. 채취한 H 모발에 대해 이루어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독세핀 감정 결과 양성 반응이 나온 반면 모발 채취 직전인 2019. 5. 31.까지 H가 독세핀 염산염이 포함된 의약품을 구입하거나 처방받은 내역은 발견되지 않았다.
② 검사는 위와 같은 사실들에 근거하여 피고인이 독세핀 염산염이 포함된 CT을 가루로 만들어 2019. 3. 1. 22:00경~ 23:00경 차에 섞어 H에게 마시게 하였다고 추정하였다. 그런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위 독세핀 감정은 길이 1.5cm~4.5cm 가량의 H절단모발 약 30㎎을 감정물로 하여 실시된 것으로, 독세핀 성분이 검출되기는 하였으나 감정물인 모발 길이가 짧아 분절검사가 이루어지지 못함에 따라 투약시기가 모발 채취일부터 약 4.5개월 이전까지의 기간으로 대략적으로 추정되었을 뿐이어서 언제 독세핀 염산염 성분이 H에게 투약된 것인지 특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피고인이 2019. 3. 1. H에게 CT 가루가 섞인 차를 마시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더욱이 H는 2019. 3. 22.과 2019. 3. 26.에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인 환인클로나제 팜정, 벤팍시서방캡슐 등을 처방받아 복용한 바 있는데, 위 독세핀 염산염 감정물과 동일한 날 채취하여 동일한 길이와 무게의 절단모발에 대하여 이루어진 화학 감정 결과 위와 같은 벤조디아제핀류, 클로나제팜, 졸피뎀 등의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사정은 H가 2019. 3. 1.이 아닌 다른 시기에 CT을 복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게 한다. 1③ 더욱이 피고인은 CT을 구입하여 청주 아파트에 보관하였다고 진술한 바 있고 실제 H가 위 CT을 발견하여 경찰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정은 반대로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기도 한 H가 2019. 3. 1.이 아닌 다른 시기에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청주 아파트에 보관 중이던 CT을 스스로 복용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H는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 피고인의 권유로 머리 염색을 두 번 하였고, 이는 피고인이 H의 모발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피고인과 H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보면 H가 2017. 4. 16.경, 2018. 4. 12.경, 2018. 4. 20.경 피고인에게 먼저 염색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메시지만 확인될 뿐이고 이 사건 이후로 관련 대화를 주고받은 내역이 확인되지 않아 H의 위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H가 응급구조학과를 나와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 2년 동안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사로 일하여 피고인보다 의약품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정은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A CT은 혈중 독세핀 농도가 최고에 이르는 복용 후 3시간에 최대 효과가 나타나고 그 효과는 투여 후 8시간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고, 취침 전 30분 이내 복용하고 식사 후 3시간 이내에는 복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H는 2019. 3. 1. 21:00경까지 식사를 하고 22:00경 피고인과 차를 마신 후 약 1~2시간 안방에서 공부를 하다가 00:30~01:00경 잠을 자러 갔는데, 2019. 3. 2. 07:30경 한차례 잠에서 깬 이 외에는 깊게 잠이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CT의 효과 발현과 그 지속시간은 개인의 체질, 성격,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 이 사건에서 권고방법에 따른 복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H의 생활패턴 등을 모두 고려해 보면, H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당시의 H의 수면상황이 CT 복용에 따른 효과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다. 나아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계획하였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하였을 것인데, 이 사건과 같이 피고인이 H 옆에서 피해자를 베개 등으로 눌러 질식사하게 하는 범행방법을 택하였다고 보기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경험칙상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정들이 있다.
① 먼저 자고 있는 H 옆에서 피해자를 베개 등으로 눌러 살해하는 것은 H가 평소에도 쉽게 잠이 들지 않고 더욱이 잠에서 잘 깨는 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행 도중 발각될 위험성이 매우 높은 행위로서, 피해자를 확실하게 살해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피해자에게 약을 먹이거나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더 용이하고 일반적이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과 같은 범행방법을 선택하였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② 더욱이 피고인이 범행을 실현하기 위해 H에게 수면제 성분의 약을 차에 섞어 마시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면, H가 수면제 성분의 약이 섞인 차를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야 하는, 상당히 우연한 기회를 이용하여야 한다. 그런데 피고인이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는 약에 관하여 사전에 특별한 지식이나 정보가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인으로서는 H에게 얼마만큼의 CT을 투약해야 하는지, 약의 효과가 언제부터 발현되고 언제까지 지속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검사가 추정하는 것과 같이 CT을 차에 타서 H에게 마시게 하려면, 범행 당일 H와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나아가 CT을 가루로 만들어 차에 탈 준비를 해놓아야 하는데, 피고인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H와 차를 마시는 기회가 주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H는 평소에도 피고인과 차 마시는 시간을 가져왔다고 진술한 바 있으나, 이를 고려하더라도 차 마시는 시간을 언제, 어느 정도로 가질지, H가 얼마만큼 차를 마실지 등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주방의 구조상 H가 위와 같이 가루를 차에 타는 모습을 볼 위험성도 매우 높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우연한 사정들이 산재해 있는 범행방법을 택하였다는 것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③ 피고인이 교통사고와 관련된 형사처벌 전력 이외에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는 사람이었고 이 사건과 관련해서 수면제 성분이나 질식사와 같이 범행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볼 만한 정황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검사가 주장하듯이 피고인이 약 4달 전부터 이 부분 범행을 계획하고 2018. 11. 4.경 및 2019. 2. 26.경 H에게 잠자면서 몸으로 누르거나 뒤척이는 잠버릇이 있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미리 보냈다고 보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다(더욱이 위와 같이 H에게 잠버릇과 관련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그 사이에 피고인은 H의 아이를 임신한 바 있는데, 피고인이 그와 같은 임신상태에서 H에 대한 적개심 등으로 이 부분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었다는 것은 범행 동기를 포함한 여러 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6) 그 밖의 사실에 관하여
검사는, 피고인이 2018. 11. 14.경 휴대전화로 니코틴 살인사건 관련 기사를 검색하거나 피해자가 사망하기 1주일 전인 2019. 2. 22. 치매인 어머니를 베개로 질식 사시켰다는 기사를 검색하였다는 점, 피해자 사망 당일인 2019. 3. 2. 20:01, 20:03, 20:16경 3차례에 걸쳐 피해자 혈흔이 묻어 있는 매트리스 처분을 위해 매트리스 수거 업체에 전화하거나 2019. 3. 2. 22:02경 청주 아파트 입구 차량 안에서 혼자 잠들어 있었으며, 피해자 사망 이후 자신의 어머니가 피해자 사망 소식에 슬퍼하자 "우리 애기도 아니잖아"라며 말하는 등으로 피해자 사망을 슬퍼하지 않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 점, 피고인은 H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피해자 사망 흔적이 남아 있는 전기장판, 침대시트, 이불 등을 버리거나,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해 놓았던 점 등의 간접사실이 이 부분 공소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이 단순히 뉴스기사를 보았다.는 사실에서 목적성을 추정하기 어렵고, 피해자의 사망 흔적이 남아 있는 전기장판, 매트리스 등에 혈혼이 묻어 있어 H가 다시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치웠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이례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앞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 사망 원인, 피고인의 범행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등에 있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한 이상 위와 같은 간접사실만으로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점이 증명된다고 보기 어렵다.
(7) 소결론
결국 검사가 제출한 간접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부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검사의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4.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
사람의 생명은 국가와 사회가 보호하여야 할 최고의 법익이자 가장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로서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용인될 수 없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전남편인 피해자 D을 살해하고, 잔인하게 사체를 손괴하고 은닉한 것이다. 피고인의 범행으로 한 사람의 생명이 침해되었고, 유족들은 그 사체의 일부도 찾지 못한 채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었고 앞으로도 평생 이러한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범행 당시 함께 있었던 E은 친아버지를 잃고, 친어머니도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범죄자라는 굴레 속에서 평생 살아가야 할 비참한 처지에 놓였다. 피고인은 여전히 피해자 D의 성폭력 범행에 대한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위 피해자를 살해한 후 그 모든 흔적을 잔인하게 지워버려 그에 대한 책임은 피고인이 감내 할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피고인이 저지른 범행의 잔혹성과 중대성, 그에 상응한 책임의 정도, 피해자 유족의 고통과 처벌 의사,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범죄 전력,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여러 양형조건들을 고려할 때,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무기징역의 주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원심은 피해자 D에 대한 살인, 사체손괴, 사체은닉 범행을 유죄로 판단하면서, 피고인이 사체은닉 및 사체유기 범죄행위에 제공한 물건으로 압수된 그랜저 차량 1대(증 제5호), 쇠톱 1개(증 제9호), 쇠톱 손잡이 1개(증 제10호), 칼 2자루(증 제11호), 캐리어 1개(증 제14호), 그랜저 차량 스마트키 1개(증 제22호), 테이블 전기톱 1개(증 제23호)를 몰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 각 물건은 모두 형법 제48조 제1항 제1호의 몰수 대상에 해당하고, 위와 같은 물건이 범죄 실행에 사용된 정도와 범위 및 범행에서의 중요성, 물건의 실질적 가치와 범죄와의 상관성 및 균형성 등에 비추어 이를 몰수할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위 각 물건에 대해 몰수의 부가형을 선고하지 않은 원심판결은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따라서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은 이유 없고,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은 이유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에 대한 검사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따라 이를 파기하고 원심판결에 몰수 부분이 없어 그 부분만을 특정하여 파기할 수 없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의 유죄부분 전부를 파기하여야 한다(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5822 판결 등 참조).]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하 고(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에 대한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나,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이 부분을 파기하는 이상 주문에서 따로 이 부분에 대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지는 않는다), 원심판결 중 무죄부분에 대한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에 대하여 다시 쓰는 판결이유] 범죄사실 및 증거의 요지
이 법원이 인정하는 범죄사실과 그에 대한 증거의 요지는, 원심판결의 증거의 요지
제2행을 "1. 원심 증인 AJ, AK, AL, AM, AN의 각 원심 법정진술"로 변경하는 이외에는 원심판결의 각 해당란에 기재되어 있는 바와 같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9조에 따라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및 형의 선택
형법 제250조 제1항(살인의 점, 무기징역형 선택), 각 형법 제161조 제1항(사체 손괴 및 은닉의 점)
1. 경합범 가중
형법 제37조 전단, 제38조 제1항 제1호, 제50조[형가장 무거운 살인죄에 대하여 무기징역형을 선택하였으므로 다른 형을 과하지 않는다]
1. 몰수..
형법 제48조 제1항 제1호 양형의 이유 위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에 대한 여러 양형조건들을 모두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판사
재판장판사왕정옥
판사김기춘
판사박형렬
주석
1) 졸피드정은 불면증의 단기치료 효능 효과를 가진 전문의약품으로, 졸피뎀타르타르산염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2) 알레르기성 비염, 피부염 및 콧물, 재채기 등 감기의 증상 처치 등에 사용되는 항히스타민제이다.
3) '포암사'는 'overlaying' 혹은 'overlying'을 우리나라말로 번역한 것으로 학자들 사이에서 확립된 용어 혹은 번역어로 보이지는 않으나, 이하에서는 '포압사'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4) 압착성 질식사(흉복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는 강력한 외력에 의하여 압박되어 호흡운동이 장애됨으로써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5) 자세성 질식사는 변사자가 호흡운동을 방해할 만한 자세로 적절하게 호흡을 하지 못하게 할 때 발생하는 질식의 한 형태를 말한다.
6) 일반적으로 생후 1개월까지를 신생아, 1년까지를 영아, 6년까지를 유아, 12년까지를 소아라고 한다.
7) DD㈜가 2016. 7. 21.경 식품안전의약청의 허가를 받아 판매하는 '수면유지가 어려운 불면증의 단기 치료'의 효능·효과를 가진 전문의약품으로 최면진정제로 구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