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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7. 2. 25. 선고 96다40318 판결
[소유권이전등기말소][공1997.4.1.(31),873]
판시사항

농지개혁법 시행 전에 농지를 매수한 자가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등기 없이도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한 요건

판결요지

농지개혁법 시행 이전에 농지를 매수하여 계속하여 경작하여 왔고, 농지개혁법 시행 당시에도 자경농지로 인정되어 일반 분배대상 농지에서 제외되었다면, 농지의 매수인은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등기 없이도 완전히 농지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매수인이 민법 부칙 제10조에 의하여 1965. 12. 31.까지 등기를 마치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소유권을 상실하게 된다거나 매도인의 상속인들이 소유권을 회복하게 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위와 같은 법리가 적용되기 위하여는 농지의 매수인이 농지개혁법 시행 전에 농지를 매수하여 이를 인도받아 자경하고 있어야 한다.

원고,피상고인

조현휘 외 4인 (원고들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승준)

피고,상고인

정복순 외 9인 (피고들 소송대리인 변호사 배만운)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가. 우선 원심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사실에다가 그 채택 증거들을 종합하여 다음 각 사실을 인정하였다.

(1) 원래 소외 박만용의 소유였던 분할 전의 인천 북구 서운동(뒤에 '인천광역시 계양구 서운동'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었다) 14의 1 전 1,016평은 1950. 5. 12. 같은 동 14의 1 전 90평, 14의 5 전 39평, 14의 6 전 157평, 14의 7 전 100평, 14의 8 전 100평, 14의 9 전 90평 및 14의 10 전 440평(1983. 12. 26. 면적단위환산에 의하여 같은 동 14의 10 전 1,455㎡로 표시변경되었다. 이하 이 사건 토지라고 한다) 등 7필지로 분할등기되었다.

(2) 위 박만용은 위와 같이 분할등기를 경료하기에 앞선 1949. 1. 3. 위 분할 전의 서운동 전 1,016평을 분할하여 소외 채경봉에게 이 사건 토지와 같은 동 14의 5 전 39평 및 그 소유로서 등기부상 이미 분할되어 있던 같은 동 14의 4 전 93평을 매도하고, 1950. 5. 12. 위와 같은 분필등기절차를 거쳐 위 각 매도 토지에 관하여 당시 관할 등기관청인 서울지방법원 인천등기소 같은 날 접수 제3107호로 위 매매를 원인으로 한 위 채경봉 명의의 각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다.

(3) 그런데 그 후 위 각 부동산에 관한 등기부가 멸실되자 이를 복구하여 회복등기를 경료함에 있어 같은 동 14의 5 전 39평에 관하여는 위 채경봉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회복되었으나, 이 사건 토지 및 같은 동 14의 4 전 93평에 관하여는 위 채경봉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회복되지 아니한 채 위 박만용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만 회복등재되어 있던 중 1976. 2. 5. 위 박만용의 장남인 소외 박병오 명의로 1957. 6. 28. 호주상속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으며, 그 후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는 위 박병오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에 터잡아 원심판결 주문 기재와 같은 피고들 명의의 각 소유권이전등기가 순차로 경료되었다.

(4) 한편 위 채경봉은 위 매수 당시 이 사건 토지를 비롯한 위 매수 토지들을 인도받아 이를 점유·경작하였으므로 이 사건 토지는 농지개혁법 시행 당시 자경농지로 인정되어 일반 분배대상 농지에서 제외되었고, 그 후 위 채경봉은 1962. 1. 15. 소외 조기준에게 이 사건 토지를 다시 매도하였다.

(5) 그런데 위 채경봉은 1962. 7. 22. 사망하여 그 처인 소외 전부순, 아들인 원심공동피고였던 소외 채광덕, 딸인 같은 채금복, 채금순, 채금분, 채남순이 그 재산상속인이 되었고, 위 전부순은 1986. 6. 27. 사망하여 위 채광덕, 채금복, 채금순, 채금분, 채남순이 그 재산상속인이 되었으며, 위 조기준은 1976. 9. 18. 사망하여 장남인 원고 조현휘, 차남인 원고 조찬휘, 처인 원고 박희래, 딸인 원고 조영순, 조순옥이 그 재산상속인이 되었으며, 한편 위 박만용은 1957. 6. 28. 사망하여 그 장남인 위 박병오가 단독재산상속인이 되었고, 위 박병오는 1990. 10. 27. 사망하여 그 아들들로서 원심공동피고였던 소외 박용기, 박순기, 박웅기와 딸인 같은 박유순이 그 재산상속인이 되었다.

나. 그리고 나서 원심은 원고들의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즉,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위 채경봉이 1949. 1. 3.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여 1950. 5. 12. 소유권이전등기까지 경료한 이상 이 사건 토지는 위 채경봉의 소유라고 할 것이고, 비록 그에 관한 등기부가 멸실되고 그 소유권이전등기의 회복등기가 경료되지 아니하였더라도 이로써 그 소유권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가사 위 채경봉이 위 박만용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였으면서도 그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위 채경봉이 농지개혁법 시행일인 1949. 6. 21. 이전에 위 토지를 매수하여 그 당시 경작을 계속하여 왔고, 농지개혁법 시행 당시에도 이 사건 토지가 위 채경봉의 자경농지로 인정되어 일반 분배대상 농지에서 제외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위 채경봉은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등기 없이도 완전히 그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고 할 것이고, 반면 위 채경봉에게 이 사건 토지를 매도한 위 망 박만용은 비록 등기부상 소유 명의자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농지개혁법 시행 이전에 농지를 이미 타인에게 매도하고 이를 자경하지 아니한 이상 그 농지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이를 처분할 권리가 없다 할 것이므로, 농지개혁법 시행 이전에 농지를 매수하여 그 인도를 받아 자경하고 있던 위 채경봉이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지 아니하였어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고, 농지개혁법 시행 이후에 전 소유자의 상속인인 위 박병오로부터 그 토지를 다시 매수 또는 전전매수한 자는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더라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위 채경봉의 소유인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경료된 위 박병오 명의의 상속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는 원인이 없는 무효의 등기라고 할 것이고, 무효인 위 등기에 터잡아 순차로 경료된 피고들 명의의 주문 기재 각 소유권이전등기 역시 모두 무효라고 할 것이며, 한편 위 채경봉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한 위 조기준의 재산상속인들인 원고들은 위 채경봉의 재산상속인들인 위 채광덕, 채금복, 채금순, 채금분, 채남순에 대하여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위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진다 할 것이므로, 원고들이 위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위 채광덕 등을 대위하여 무효인 피고들 명의의 각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이 사건에서 피고들은 원심판결 주문 기재의 해당 각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2.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 우선 원심의 위 사실인정 가운데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1950. 5. 12. 서울지방법원 인천등기소 같은 날 접수 제3107호로 위 매매를 원인으로 한 위 채경봉 명의의 각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는데, 그 후 이 사건 토지에 관한 등기부가 멸실되자 이를 복구하여 회복등기를 경료함에 있어 위 채경봉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회복되지 아니한 채 위 박만용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만 회복등재되어 있던 중 1976. 2. 5. 위 박만용의 장남인 위 박병오 명의로 1957. 6. 28. 호주상속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는 부분은 원심이 채택한 갑 제1호증의 2, 갑 제4호증, 갑 제5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그 밖에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그 채택 증거들만으로 위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위 채경봉이 1949. 1. 3.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여 1950. 5. 12. 소유권이전등기까지 경료한 이상 이 사건 토지는 위 채경봉의 소유라고 할 것이고, 비록 그에 관한 등기부가 멸실되고 그 소유권이전등기의 회복등기가 경료되지 아니하였더라도 이로써 그 소유권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한 나머지 판단을 그르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나. 그리고 농지개혁법 시행 이전에 농지를 매수하여 계속하여 경작하여 왔고 농지개혁법 시행 당시에도 자경농지로 인정되어 일반 분배대상 농지에서 제외되었다면, 그 농지의 매수인은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등기 없이도 완전히 그 농지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고 할 것이고, 반면 농지개혁법 시행 당시 이를 자경하지 아니한 매도인이나 그 상속인은 등기부상 소유 명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농지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할 것이고, 따라서 매수인이 민법 부칙 제10조에 의하여 1965. 12. 31.까지 등기를 마치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그 소유권을 상실하게 된다거나 매도인의 상속인들이 그 소유권을 회복하게 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당원의 견해이기는 하나 ( 대법원 1972. 6. 13. 선고 72다578 판결 , 1974. 6. 11. 선고 73다1434 판결 , 1989. 5. 9. 선고 88다카12681 판결 , 1994. 11. 8. 선고 94다28253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은 법리가 적용되기 위하여는 농지의 매수인이 농지개혁법 시행 전에 농지를 매수하여 이를 인도받아 자경하고 있어야 할 것 인데, 원심이 채택한 이 사건 계약서(갑 제4호증)에 의하면, 그 계약서 작성일자가 1949. 1. 3.로 되어 있으나, 한편 그 매매대금은 이를 일시불로 하여 등기서류 완료시에 지불하기로 되어 있는 점이나, 이 사건 토지는 위 계약서 작성일 무렵에는 아직 분할되어 있지도 않았고 그 후인 1949. 11. 30.에야 분할되었는데도(원심은 1949. 1. 3. 분할된 것으로 설시하고 있으나 이를 인정할 증거는 부족하고, 오히려 기록 제721, 722쪽에 의하면, 1949. 11. 30.에 분할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위 1949. 1. 3.자 계약서에 이 사건 토지의 지번이 기재되어 있는 점, 그 후 위 계약서에 기재된 등기제의 기재나 이 사건 토지와 함께 매수한 것으로 되어 있는 다른 토지에 관한 등기부의 기재에 의하면 1950. 5. 12. 무렵에 그 등기가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토지의 인도는 위 등기일자인 1950. 5. 12.경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고 위 계약일자로 되어 있는 1949. 1. 3.경이나 농지개혁법 시행일인 1949. 6. 21. 이전에 이루어졌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렵다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그 채택 증거들만으로 위와 같이 인정하고 말았음은 결국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하고 그 결과 농지개혁법민법 부칙 제10조 등에 관한 법리를 그르쳐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 따라서 나머지 상고이유를 살필 것 없이 원심판결은 파기를 면할 수 없다 할 것이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임수(재판장) 최종영 정귀호(주심) 이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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