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는 경우
[2] 신병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된 군인이 선임병들에게서 온갖 구타와 가혹행위 및 끊임없는 욕설과 폭언에 시달리다가 전입한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1991. 2. 3. 부대 철조망 인근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을 하였는데, 유족들이 망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5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훨씬 경과한 2009. 12. 10.에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한 사안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2] 신병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된 군인이 선임병들에게서 온갖 구타와 가혹행위 및 끊임없는 욕설과 폭언에 시달리다가 전입한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1991. 2. 3. 부대 철조망 인근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을 하였는데, 유족들이 망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5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훨씬 경과한 2009. 12. 10.에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한 사안에서, 군의 특성상 군 외부에 있는 민간인이 군 내부에서 이루어진 불법행위에 관하여 그 존재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데다가, 위 사고 직후 부대 지휘관들이 부대원들에게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던 구타 및 가혹행위에 대하여 함구명령을 내린 사실, 사고 직후 사건을 조사한 헌병수사관들조차 위 사고를 망인의 복무부적응으로 인한 비관에 의한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한 사실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군 당국이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권 행사를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도, 유족들은 위 자살사고가 선임병들의 심한 폭행·가혹행위 및 이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대관계자들의 관리·감독 소홀 등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2009. 3. 16.자 진상규명결정이 내려짐으로써 비로소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2009. 3. 16. 전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또한 병영문화의 선진화에 힘써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가 후진적 형태의 군대 내 사고의 발생을 막지 못하고서도 망인이나 유족에 대하여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책임으로 빚어진 권리행사의 장애 상태 때문에 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망인이나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하는 결과를 인정한다면 이는 현저히 정의와 공평의 관념에 반하는 것이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2조 , 제162조 [2] 민법 제2조 , 제166조 제1항 , 제751조 , 제766조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국가재정법 제96조
참조판례
[1]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공2002하, 2849)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70189 판결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공2011하, 1515)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공2011하, 2046)
원고, 피상고인
원고 1 외 3인 (소송대리인 동화법무법인 담당변호사 이재정 외 2인)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70189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망인이 신병훈련을 마치고 1991. 1. 25. 배치된 이 사건 부대에서는 군기를 잡는다는 미명하에 선임병들의 후임병들에 대한 조직적인 구타와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행하여졌는데, 특히 새로이 전입한 망인에 대하여는 입대 전 학생운동 경력을 이유로 더 관심을 갖고 군기를 잡으라는 지시가 중대장과 소대장 등으로부터 선임병들에게 순차 하달되어, 망인은 일명 군기조 선임들로부터 매일 수시로 복장단정, 군가암송, 서열암기 등의 군기교육을 빙자한 각종의 지시사항 불이행을 이유로 곡괭이 자루로 매질을 당하고, 전투화로 걷어차이고, 주먹으로 가슴을 가격당하고, 뺨과 머리를 얻어맞고, 머리를 땅에 박고 기합을 받는 등 온갖 구타와 가혹행위 및 끊임없는 욕설과 폭언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전입한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아니한 1991. 2. 3. 14:50경 부대 철조망 인근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 사체로 발견되었는바, 망인의 자살이라는 이 사건 사고는 선임병들의 심한 폭행·가혹행위 및 이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부대관계자들의 관리·감독 소홀이라는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피고는 이로 인하여 망인과 그 유족인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다음, ‘피고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소는 망인이 사망한 1991. 2. 3.로부터 5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훨씬 경과한 2009. 12. 10. 제기되었으므로, 이 사건 사고로 인한 국가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였다’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해서는, 그 판시와 같은 이유에서 이를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여 배척하였다.
살피건대, 군은 민간과 격리되어 있는 엄격한 상명하복의 조직체일 뿐만 아니라 군사보안 등을 이유로 내부정보의 공개·유출 및 그에 대한 접근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바, 이러한 군의 특성상 군 내부에서 이루어진 불법행위에 있어서는 그와 관련하여 군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관련 자료와 정보 모두를 투명하게 외부에 공개하거나 혹은 군 스스로 철저한 조사를 벌여 어떠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는 이상, 군 외부에 있는 민간인이 그러한 불법행위가 존재하였는지 하는 사실을 인식하기는 원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할 것이고, 이는 그 불법행위로 인한 군 내부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에도 상황은 위와 동일한데, 원심이 인정한 사실 관계에 의하면, 이 사건 사고 발생 직후 부대 지휘관들은 부대원들에게 망인 등 후임병들에 대한 선임병에 의한 구타 및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점 및 이들 행위가 지휘관들의 종용 또는 묵인하에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었던 점 등에 관하여 외부에 일체 발설하지 말 것을 지시하는 내용의 함구명령을 내린 사실, 사고 직후 사건을 조사한 헌병수사관들조차 이 사건 사고를 망인의 복무부적응으로 인한 비관에 따른 자살이라고 결론내리고 사건조사를 종결하였던 사실, 이후 원고들의 신청에 의하여 이루어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두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도 이 사건 사고 당일 망인의 행적과 사망 경위 및 원인 등이 밝혀지지 않다가, 위원회의 재조사에 따른 2009. 3. 16.자 진상규명결정에 의하여 비로소 망인의 자살이 연일 계속되는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었음이 밝혀진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비록 군 당국이 원고들의 이 사건 국가배상청구권 행사를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도, 망인이 군복무 중 자살한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망인의 유족인 원고들로서는 그것이 선임병들의 심한 폭행·가혹행위 및 이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부대관계자들의 관리·감독 소홀 등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위와 같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2009. 3. 16.자 진상규명결정이 내려짐으로써 비로소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위 2009. 3. 16. 전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고, 이는 군 당국의 사고원인 은폐 내지는 부실한 사고원인 조사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일반사병으로 징집된 망인이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이 사건에서, 병영문화의 선진화에 힘써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피고가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후진적 형태의 군대 내 사고의 발생을 막지 못하고서도 망인이나 유족에 대하여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피고 자신의 책임으로 빚어진 권리행사의 장애상태 때문에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망인과 그 유족들에 대한 이 사건 손해배상책임마저도 면하는 결과를 인정한다면, 이는 현저히 정의와 공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
결국, 피고의 이 사건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인바, 같은 취지의 원심판단은 정당하다. 이와 반대의 견지에서 원심판결을 탓하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손해의 공평분담을 이념으로 하는 손해배상사건에 있어, 그 손해의 발생 경위나 확대 또는 심화된 과정, 기타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의 책임비율을 제한하는 것은 그것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실심의 전권사항에 속한다( 대법원 2007. 10. 25. 선고 2006다16758, 16765 판결 , 대법원 2011. 3. 24. 선고 2009다29366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 사건 사고의 발생 경위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50%로 제한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보면 원심이 인정한 피고의 책임비율이 너무 높다고는 보이지 아니하므로 피고만이 상고한 이 사건에서 원심의 이러한 조치가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 피고의 이 부분 상고이유의 주장 역시 이유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