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제5조 제1항 (a)호에 따를 때 중재합의의 성립과 유효성 판단의 준거법
[2]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제5조 제1항 (e)호의 의미 및 이를 중재판정지국에서 확인판결을 받았다고 하여 집행국에서 집행판결을 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1]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제5조 제1항 (a)호 후단은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의 거부사유 중 하나로 ‘당사자가 준거법으로서 지정한 법에 따라 또는 그러한 지정이 없는 경우에는 판정을 내린 국가의 법에 따라 중재합의가 유효하지 않은 경우’를 들고 있다. 위 규정에 따르면 중재합의의 성립과 유효성 판단의 준거법은 일차적으로 당사자들이 준거법으로 지정한 법이 되고, 그 지정이 없는 경우에는 중재판정을 내린 국가의 법이 된다.
[2]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은 중재판정이 최종적임을 증명하도록 하는 대신에 중재판정이 구속력이 있을 것을 요구함으로써[제5조 제1항 (e)호], 이른바 이중집행판결 또는 이중집행허가(double exequatur)를 받을 필요성을 제거하였다. 이는 외국에서 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을 신청하는 당사자가 중재판정이 최종적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중재판정지국에서 별도로 집행판결 또는 집행가능선언 등의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집행을 구하는 국가에서만 집행판결을 받으면 된다는 의미이다. 이를 중재판정지국에서 확인판결을 받았다고 하여 집행국에서 집행판결을 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볼 수는 없다.
참조조문
[1]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제5조 제1항 (a)호 [2]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제5조 제1항 (e)호
참조판례
[1] 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2다84004 판결 (공2016상, 601)
원고, 피상고인
크레인월넛쉘링인코퍼레이티드(Crain Walnut Shelling, Inc.)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지평 담당변호사 김승현 외 1인)
피고, 상고인
주식회사 샤니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남산 담당변호사 이창구 외 4인)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건 개요
원심이 일부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분쟁의 발단
1) 원고는 미합중국(이하 ‘미국’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되어 호두 가공·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법인이고, 피고는 제과류의 제조·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이다.
2) 원고와 피고는 2010년 원격지 거래를 진행하면서 제안서, 주문서 등을 전자우편으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 내용에 따른 호두 공급과 대금 지급을 이행하였다. 원고는 피고에게 2010. 2., 2010. 4. 두 차례에 걸쳐 호두를 공급하는 내용의 현물구매거래를 진행하였는데 물품의 공급과 대금 지급이 약정대로 이행되었다.
3) 두 시점 사이에 있었던 원고의 2010. 3. 19.자 연간 수량 제안서(이하 ‘이 사건 제안서’라고 한다)를 둘러싸고 원고는 호두공급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고 한다)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고는 2010. 8. 27. 호두를 공급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 사건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나. 원고가 제기한 쟁송 내용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입게 된 손해를 배상해 달라며 피고를 상대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쟁송을 차례로 벌였다. 즉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재판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 이하 ‘국제중재재판소’라고 한다)에 중재신청을 하는 것, 국제중재재판소의 중재판정에 대해서 미국 법원에 집행판결 등을 구하는 것, 국제중재재판소의 중재판정과 미국 법원의 재판 중 일부에 대해서 대한민국 법원에 집행판결을 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원고는 국제중재재판소의 중재판정과 미국 법원의 재판을 획득하였고, 이 사건은 원고가 대한민국 법원에 위 중재판정과 미국 법원의 재판 중 일부(미국 법원이 피고에게 지급을 명한 금전 부분으로서 미국 법원이 국제중재재판소의 중재판정에 대한 승인과 집행을 허용한 부분과는 별개이다)에 대해서 집행판결을 구하는 것이다.
다. 이 사건의 쟁점과 판단 순서
이 사건 계약에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가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이를 가리기 위해 이 사건 제안서에서 지시하는 이 사건 표준약관상 중재합의 조항이 계약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판단하여야 하는데 그에 앞서 중재합의 성립과 효력에 관하여 적용될 준거법을 결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피고의 구매 담당자인 소외 1[한국명은 (한국명 생략)인 것으로 보인다]이 이 사건 계약에 관여하였으므로, 그에게 피고를 대리할 권한이 있었는지 또는 표현대리가 성립하였는지가 먼저 확정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 사건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였을 경우, 이 사건 제안서에서 지시하는 이 사건 표준약관상 중재조항이 계약의 일부가 되어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가 성립하였는지가 문제로 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법원에서 외국재판을 승인하고 집행할 요건을 충족하였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2. 상고이유에 관하여
가. 소외 1의 대리행위에 관한 판단(상고이유 제2점)
피고 직원인 소외 1의 행위로 인하여 본인인 피고가 제3자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는 피고의 주된 영업소이자 대리행위지인 대한민국 법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국제사법 제18조 제2항 ).
원심은 판시 사정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피고의 구매 담당자인 소외 1은 피고를 대리하여 이 사건 계약이나 중재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을 가지고 있었거나, 적어도 원고가 소외 1에게 그와 같은 대리권이 있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다. 중재합의 조항이 포함된 이 사건 계약은 표현대리가 성립하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효력이 있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민법 제126조 의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나. 중재합의 성립의 준거법에 관한 판단(상고이유 제1점)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이하 ‘뉴욕협약’이라고 한다) 제5조 제1항 에이(a)호 후단은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의 거부사유 중 하나로 ‘당사자가 준거법으로서 지정한 법에 따라 또는 그러한 지정이 없는 경우에는 판정을 내린 국가의 법에 따라 중재합의가 유효하지 않은 경우’를 들고 있다. 위 규정에 따르면 중재합의의 성립과 유효성 판단의 준거법은 일차적으로 당사자들이 준거법으로 지정한 법이 되고, 그 지정이 없는 경우에는 중재판정을 내린 국가의 법이 된다 ( 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2다84004 판결 등 참조).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이 사건 표준약관 제12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을 이 사건 계약의 준거법으로 규정하고, 제13조는 이 사건 계약에서 발생하는 모든 분쟁은 국제상업회의소의 중재규칙에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몰리노스에서 중재로 최종 해결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원고와 피고는 중재합의의 준거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을 지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중재합의의 준거법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이라고 판단한 것은 앞서 본 법리에 따른 것이어서 정당하다.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중재합의의 묵시적 준거법 지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다. 서면 중재합의의 존재에 관한 판단(상고이유 제3점)
1)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는 2010. 3. 19. 소외 1에게 공급 가능한 호두 물량과 확정가격을 제시한 이 사건 제안서를 첨부하여 전자우편을 보냈는데 이 사건 제안서에는 ‘매매에는 피고 매매계약 확인서의 표준약관이 적용됨’(이하 ‘이 사건 문구’라고 한다)이라는 취지의 영문이 기재되어 있었다.
나) 소외 1은 2010. 3. 26. 피고의 상무보라는 소외 2로부터 2010. 2. 이루어진 1차 현물구매거래와 같은 조건으로 이 사건 계약 체결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고, 같은 날 원고에게 ‘원고가 피고를 위해 제안한 이 사건 제안서상 수량을 구매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에 이 사건 제안서 사본을 첨부하여 보냈다.
다) 원고는 2010. 4. 6. 소외 1에게 매매계약 확인서 사본을 첨부하여 보냈다. 위 사본 하단에는 ‘본 계약서에 서명하여 7일 이내에 반송하지 않거나 및/또는 호두를 인도받으면 구매인은 본 매매계약 확인서의 뒷면에 규정된 표준약관을 수락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라는 내용의 영문이 기재되어 있다.
라) 소외 1은 매매계약 확인서 사본을 소외 2에게 보고하였고, 피고 측에서는 위 매매계약 확인서에서 정한 기간 내에 원고에게 매매계약 확인서를 반송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 소외 1은 2010. 8. 27. 원고에게 호두를 다른 공급원으로부터 구매하기로 결정하여 이 사건 제안서 및 매매계약 확인서에 따른 호두를 공급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바) 이 사건 계약에 앞서 2010. 2. 원고와 피고 사이에 최초의 현물구매거래가 이루어졌을 때에도 이 사건 문구가 사용되었다. 즉 원고는 2010. 2. 5. 소외 1에게 전자우편을 송부하면서 ‘원고의 연간 수량 제안’과 ‘처음 3월 선적분 가격’이라는 문건을 첨부하였는데, 후자의 첨부문서에 이 사건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고, 거래는 원활하게 진행되어 원고가 피고에게 호두를 공급하고 대금을 전액 지급받았다.
2) 원심은 다음 이유로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였다.
가) 이 사건 계약은 원고가 피고에게 제안서를 발송하는 방법으로 청약하고, 피고가 구매의사를 확인하는 전자우편에 제안서 사본을 첨부하여 보내는 방법으로 이 사건 제안서를 수락함에 따라 유효하게 체결되었다.
나)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에 따르면 이 사건 제안서에 이 사건 표준약관이 계약에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있고, 피고가 원고로부터 표준약관을 쉽게 제공받을 수 있는 상태에서 제안서를 조건 없이 수락하였으므로, 이 사건 표준약관은 계약 내용에 포함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피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서 확인서에 첨부된 표준약관에 대하여 그 정한 기간 내에 원고에게 이를 반송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로써 이 사건 표준약관은 이 사건 계약 내용에 편입되었다.
다) 이 사건 표준약관의 중재조항은 뉴욕협약 제2조 제2항에 따른 ‘계약서상의 중재조항’으로서 같은 조 제1항의 ‘분쟁의 전부 또는 일부를 중재에 회부하기로 약정’하는 서면에 의한 합의에 해당한다.
3) 이 사건 계약에 선행한 최초 현물구매거래의 형식과 내용부터 이 사건 계약의 체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경위 등과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라. 이중집행판결 배제의 의미와 외국재판의 승인요건 충족에 관한 판단(상고이유 제4점)
1) 뉴욕협약에 따른 이중집행판결 배제의 의미
가) 뉴욕협약은 중재판정이 최종적임을 증명하도록 하는 대신에 중재판정이 구속력이 있을 것을 요구함으로써[뉴욕협약 제5조 제1항 이(e)호], 이른바 이중집행판결 또는 이중집행허가(double exequatur)를 받을 필요성을 제거하였다. 이는 외국에서 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을 신청하는 당사자가 중재판정이 최종적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중재판정지국에서 별도로 집행판결 또는 집행가능선언 등의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집행을 구하는 국가에서만 집행판결을 받으면 된다는 의미이다. 이를 중재판정지국에서 확인판결을 받았다고 하여 집행국에서 집행판결을 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볼 수는 없다.
나) 원심이 일부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원고는 국제중재재판소에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금, 중재판정 전 이자, 변호사 비용 및 중재비용의 지급을 구하는 중재신청을 하였다. 국제중재재판소는 2014. 3. 18. 중재판정(이하 ‘이 사건 중재판정’이라고 한다)을 하였다. 이 사건 중재판정에서는 피고가 원고에게 손해배상금 미화(이하 생략함) 726,023.50달러, 중재판정 전 이자 258,384.09달러, 중재절차와 관련하여 원고가 지출한 비용과 변호사 보수 332,507.19달러, 중재판정비용 75,000달러를 지급하도록 하였다.
피고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동부연방지방법원(이하 ‘이 사건 미국 법원’이라고 한다)에 이 사건 표준약관의 중재조항의 효력 등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원고는 위 소송절차에서 이 사건 중재판정의 승인과 위 미국 법원 소송절차에서 지출한 변호사 보수, 중재판정일부터 위 미국 법원 판결일까지 중재판정에 대한 판결 전 이자의 지급을 구하는 신청을 하였다.
이 사건 미국 법원은 2015. 1. 23. ① 이 사건 중재판정의 승인 신청을 인용하고, ② 원고는 피고로부터 10%의 이율로 판결 전 이자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③ 원고가 지출한 변호사 보수 중 148,058.50달러를 지급받을 권리가 있다는 취지의 재판(이하 ‘이 사건 미국 법원의 재판’이라고 한다)을 하였고, 위 재판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원고는 이 사건 중재판정에 의한 강제집행과, 이 사건 미국 법원의 재판 중 위 ②와 ③에 관한 지급을 명하는 부분의 강제집행 허가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가 이 사건 중재판정에 관하여 중재판정지국인 미국에서 승인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집행국인 대한민국에서 이 사건 중재판정에 대한 집행판결을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원고는 이 사건 미국 법원의 재판 중 이 사건 중재판정 승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금전의 지급을 명하는 부분에 대하여만 집행판결을 구하고 있을 뿐이므로 위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이중집행판결의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외국재판의 승인 요건
원심은 판시 사정을 종합하여 이 사건 미국 법원의 재판은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 각호 에서 규정하는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국제재판관할권, 외국재판의 승인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결론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