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피항소인
크레인월넛쉘링인코퍼레이티드(Crain Walnut Shelling, Inc.)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평 담당변호사 김지홍 외 1인)
피고, 항소인
주식회사 샤니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담당변호사 남영찬 외 1인)
변론종결
2017. 3. 7.
주문
1.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가. 원고와 피고 사이의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재판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 사건번호 17730/CYK/RD 사건에 관하여 중재인 조지 엠 블라비아노스(George M. Vlavianos)가 2014. 3. 18. 판정한 별지1 목록 기재 중재판정에 의한 강제집행을 허가한다.
나. 원고와 피고 사이의 미합중국 캘리포니아주 동부연방지방법원 사건번호 2:11-CV-01112-KJM-EFB 사건에 관하여 위 법원이 2015. 1. 23. 선고한 별지2 목록 기재 판결 중 피고에 대하여 원고에게 미화 726,023.50달러(이하 ‘미화’ 표시는 생략한다)에 대하여 2014. 3. 18.부터 2015. 1. 23.까지 연 10%의 비율에 의한 돈 및 변호사비용 148,058.50달러를 지급할 것을 명한 부분에 대한 강제집행을 허가한다.
2.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유
1. 기초사실
이 부분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따라 제1심판결의 이유 중 해당부분(제1심판결문 2면 아래에서 5행부터 6면 아래에서 2행까지)을 이 판결의 이유로 인용한다. 다만 제1심판결문 6면 5~10행을 다음과 같이 고쳐 쓴다.
『카. 원고는 2014. 7. 11. 이 사건 미국 소송절차에서 ① 이 사건 중재판정의 승인, ② 원고가 이 사건 미국 소송이 개시된 2011. 4.부터 2014. 7. 10.까지 이 사건 미국 소송 절차에서 지출한 변호사 보수 및 ③ 중재판정일로부터 판결일까지 중재판정에 대한 판결 전 이자의 지급을 구하는 신청(이하 ‘이 사건 신청’이라고 한다)을 하였고, 이 사건 미국법원은 2015. 1. 23. 별지2 판결 기재 내용과 같은 명령(이하 ‘이 사건 미국법원 재판’이라고 한다)을 하였으며, 피고가 이에 대해 미국연방민사소송법 제2107조 (a)에서 정한 불복기간인 30일 내에 불복하지 않아 위 명령이 확정되었다.』
2. 이 사건 중재판정의 집행 허가 여부에 대한 판단
가. 뉴욕협약의 적용 및 집행요건
1) 뉴욕협약의 적용 여부
대한민국은 1973. 2. 8. 대한민국법상 상사관계의 분쟁인 경우에만 타 체약국의 영토 내에서 내려진 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에 한해서 이 협약을 적용한다는 유보선언 하에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The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Recognition and Enforcement of Foreign Arbitral Awards, 이하 ‘뉴욕협약’이라 한다)에 가입·비준하였고, 위 협약은 1973. 5. 9. 조약 제471호로 발효되었으며, 중재법 제39조 제1항 은 ‘뉴욕협약을 적용받는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또는 집행은 같은 협약에 따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 중재판정이 내려진 국가인 미국도 1970. 9. 30. 뉴욕협약에 가입하였고,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분쟁은 상인인 원, 피고의 영업과 관련된 것으로서 대한민국법상 상사관계의 분쟁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중재판정의 집행에 관하여는 뉴욕협약이 적용된다.
2) 뉴욕협약의 집행요건 및 관련 법리
가) 뉴욕협약에 의하면,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신청하는 당사자는 ① 정당하게 인증된 중재판정의 원본 또는 정당하게 증명된 그 등본(제4조 제1항 (a)호), ② 서면 중재합의의 원본 또는 정당하게 증명된 그 등본(제4조 제1항 (b)호)을 제출하여야 하고, 다만 위 중재판정이나 중재합의가 원용되는 국가의 공용어로 작성되지 않은 경우 그 문서의 공용어 번역문을 제출하여야 하며, 번역문은 공증인 또는 선서한 번역관, 외교관 또는 영사관에 의하여 증명되어야 한다(제4조 제2항). 또한 뉴욕협약 제2조 제1항은 ‘각 체약국은 계약적 성질의 것이거나 아니거나를 불문하고, 중재에 의하여 해결이 가능한 사항에 관한 일정한 법률관계에 관련하여 당사자간에 발생하였거나 또는 발생할 수 있는 전부 또는 일부의 분쟁을 중재에 부탁하기로 약정한 당사자간의 서면에 의한 합의를 승인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서면에 의한 합의라 함은 계약문 중의 중재조항 또는 당사자간에 서명되었거나, 교환된 서신이나 전보에 포함되어 있는 중재의 합의를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뉴욕협약 제4조 제1항은 중재합의가 같은 협약 제2조에 정한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일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서면 방식이 아닌 묵시적인 중재합의는 위 제2조가 정한 유효한 중재합의라고 볼 수 없고(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4다20180 판결 등 참조), 위 제4조 제1항의 규정은 뉴욕협약에 따른 외국중재판정의 집행을 위한 적극적 요건으로서 위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신청하는 당사자가 그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대법원 1990. 4. 10. 선고 89다카20252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 중재판정이 집행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
1) 서면 중재합의의 존재 여부
가) 당사자들의 주장
(1) 원고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2010. 3. 26. 이 사건 주문서에 따른 호두공급계약이 체결되었고, 위 주문서에 명시된 이 사건 표준약관이 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었으며, 위 표준약관에 중재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2) 이에 대하여 피고는, 소외 1이 원고가 작성한 이 사건 주문서에 ‘에스피씨 주식회사 유통본부’의 접수인을 날인하여 회신한 것만으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 사건 주문서에 따른 호두공급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할 수 없고, 이 사건 주문서에 이 사건 표준약관이 첨부되지 않아 피고가 2010. 3. 26. 중재조항의 존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닌 이상 이 사건 표준약관상의 중재조항이 계약의 내용에 포함되었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툰다.
나) 중재합의 성립의 준거법
(1)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a)호는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거부사유의 하나로서 ‘중재합의가 당사자들이 준거법으로서 지정한 법령에 의하여 또는 지정이 없는 경우에는 판정을 내린 국가의 법령에 의하여 무효인 경우’를 들고 있으므로, 중재합의의 성립과 실질적 유효성에 관한 준거법은 당사자들이 중재합의의 준거법으로 지정한 법이 되고, 지정이 없는 경우 중재판정지국법이 되어야 할 것인데, 여기의 지정에는 묵시적 지정도 포함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또한 당사자들이 중재합의의 준거법을 명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중재조항을 포함한 주된 계약의 준거법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정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은 주된 계약의 준거법을 중재조항의 준거법으로 지정할 의사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2)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 피고 사이에 이 사건 표준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하는 호두공급계약이 체결되었고, 위 표준약관 제12조에서 호두공급계약의 준거법을 미국 캘리포니아주법으로 정하고 있는바, 비록 위 표준약관 제13조에 규정된 이 사건 중재조항에 따른 중재합의에서 그 준거법을 명시적으로 지정하지는 않았으나, 위 호두공급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의 의사는 위 중재합의의 준거법을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에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주법으로 지정하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위 중재합의가 성립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의 준거법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법이라고 할 것이다.
(3) 이에 대하여 피고는, 피고의 구매담당자인 소외 1이 원고가 청약의 의사표시로 발송한 이 사건 주문서에 대하여 승낙의 의사표시를 담은 메일을 발송한 장소가 대한민국이므로 국제사법 제18조 , 제29조 에 따라 대리행위지법인 대한민국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과 미국은 뉴욕협약의 가입국이고, 이 사건 분쟁은 상인인 원, 피고의 영업과 관련된 것으로서 대한민국법상 상사관계의 분쟁에 해당하여 이 사건 중재합의 성립의 준거법에 관하여도 뉴욕협약이 적용되는 사건에 해당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 중재합의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
앞서 든 증거 및 갑 제20호증, 을 제3, 4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와 피고 사이에 중재합의 조항이 포함된 이 사건 표준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하는 호두공급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1) 미국 캘리포니아주법에 의하면, 언급이 명확하며 모호하지 않고, 언급이 상대방에게 통지되었으며, 상대방이 언급에 동의하였고, 계약당사자들이 편입된 문서의 조건을 알고 있거나 쉽게 열람할 수 있는 경우 다른 문서의 조건을 당사자들이 체결한 문서에 편입할 수 주1) 있다. 원고는 2010. 3. 19. 피고에게 이 사건 주문서를 발송하는 방법으로 호두공급계약을 서면으로 청약하였는데, 위 주문서는 이 사건 표준약관을 위 계약에 편입되는 문서로 명시하고 있어 위 표준약관에 대한 언급이 명확하며 모호하지 않고, 피고는 원고에게 요청하여 위 표준약관을 쉽게 제공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가 이 사건 주문서를 조건 없이 수락하였다면 이 사건 표준약관은 계약의 내용에 포함된다. 피고의 구매담당자인 소외 1은 2010. 3. 26. 원고에게 ‘원고가 피고를 위해 제안한 이 사건 주문서상의 수량을 구매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메일에 이 사건 주문서 사본을 첨부하여 보냄으로써 이 사건 주문서를 수락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 사건 주문서에 따른 호두공급계약이 체결되었고(이하 위와 같이 체결된 계약을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이라 한다), 중재합의 조항이 포함된 이 사건 표준약관은 위 계약의 내용에 편입되었다고 할 것이다.
(2)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법 제2207조는 ‘합리적인 기한 내에 송부된 명확하고 시기적절한 수락 또는 서면확인은 제안된 또는 합의된 조건에 부가적인 또는 이와 다른 조건을 기재하더라도 수락을 구성하고, 추가 조건은 계약에 추가되는 제안으로 간주되며, 추가 조건에 대한 이의가 이미 통지되었거나 추가 조건에 대한 통지를 수령한 후 합리적인 기한 내에 통지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상인들간 계약의 일부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설령 이 사건 주문서에 이 사건 표준약관이 첨부되어 있지 않아 소외 1이 이 사건 주문서를 수락한 2010. 3. 26. 이 사건 표준약관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본건 계약서에 서명하여 7일 이내에 반송하지 않을 경우 이 사건 표준약관을 수락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이 사건 매매계약 확인서에 이 사건 표준약관을 첨부하여 소외 1에게 송부하였고, 소외 1은 이를 피고의 상무이사인 소외 2에게 보고하였음에도 피고는 위 확인서에서 정한 기간 내에 원고에게 위 확인서를 반송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바, 이로써 이 사건 표준약관은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의 내용에 편입되었다고 할 것이다(피고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법 제2207조 를 적용하여 이 사건 매매계약 확인서상의 중재조항을 피고에게 적용하는 것이 국제사법 제29조 제2항 에서 말하는 ‘ 제1항 의 규정에 의한 준거법에 따라 당사자의 행위의 효력을 판단하는 것이 모든 사정에 비추어 명백히 부당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위 캘리포니아주 상법에 따라 이 사건 표준약관을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의 내용에 편입시키는 것이 위 규정에서 말하는 명백히 부당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3) 소외 1에게 중재합의 조항이 포함된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이 존재하는지에 관하여 본다.
(가) 집행국법원에 중재판정의 내용에 대한 당부를 심판할 권한은 없지만 집행조건의 충족여부 및 집행거부사유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본안에서 판단된 사항에 대하여도 집행국법원이 독자적으로 심리판단할 수 있다( 대법원 1988. 2. 9. 선고 84다카1003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소외 1이 원고와 사이의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피고를 대리할 적법한 권한이 있었는지, 그렇지 않더라도 피고에게 표현대리책임이 인정되는지(미국 캘리포니아주법의 표현으로는 표면적 대리권이 존재하는지) 여부 등을 가리는 것은 이미 이 사건 중재판정에서 상세하게 판단한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의 유효성이나 계약위반책임을 다시 심리하는 것이어서 외국판결 등의 승인과 집행에서 말하는 이른바 ‘실질 재심사 금지의 원칙’에 어긋날 수가 있다( 민사집행법 제27조 제1항 참조). 그러나 피고 주장의 요지는,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과 관련하여 소외 1에게 피고를 대리할 권한이 있었는지 여부와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표현대리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대한민국법에 따를 경우 유권대리는 물론 표현대리도 성립하지 아니하여 결국 이 사건 중재조항이 포함된 표준약관을 계약의 일부로 하는 호두공급계약도 성립한 적이 없으므로,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뉴욕협약에 정한 중재판정의 집행요건의 하나로서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가 존재하는지를 가리기 위한 과정의 일부로 이 사건 대리행위에 관해 적용될 준거법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와 그렇게 결정된 준거법에 따를 경우 유권대리 또는 표현대리가 성립하는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나) 우선 준거법에 관하여 보면, 국제사법 제18조 는 대리인의 행위로 인하여 본인이 제3자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하는지의 여부는 대리인의 영업소가 있는 국가의 법에 의하며, 대리인의 영업소가 없거나 영업소가 있더라도 제3자가 이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대리인이 실제로 대리행위를 한 국가의 법에 의하고( 제2항 ), 대리인이 본인과 근로계약 관계에 있고, 그의 영업소가 없는 경우에는 본인의 주된 영업소를 그의 영업소로 보며( 제3항 ), 대리권이 없는 대리인과 제3자간의 관계에 관하여는 제2항 의 규정을 준용한다( 제5항 )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규정의 취지는 임의대리에 있어서 대리인 또는 대리인으로 칭한 자와 거래를 한 상대방에 대하여 본인에게 거래당사자로서의 책임이 있는지의 여부는 거래의 안전 내지 상대방 보호를 위한 측면을 고려하여 대리인의 영업소 소재지 국가의 법이나 대리행위지법에 의하여 이를 판단하도록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대법원 1990. 4. 10. 선고 89다카20252 판결 등 참조).
피고를 대리하여 중재합의 조항이 포함된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한 소외 1이 개인적인 영업소를 따로 두고 있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는, 소외 1이 피고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이므로 피고의 주된 영업소를 소외 1의 영업소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피고의 영업소 소재지인 대한민국법이 준거법이 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소외 1이 승낙의 의사표시를 발송한 장소는 대한민국이고, 도달한 장소는 원고가 소재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인바, 대리행위지는 일반적으로 대리인이 의사표시를 한 곳을 의미하므로, 소외 1의 위와 같은 의사표시를 행한 장소인 대한민국을 대리행위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소외 1에게 중재합의 조항이 포함된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준거법은 대한민국법이라고 할 것이다.
(다) 다음으로 대리행위의 효력에 관하여 보면, 임의대리권은 그것을 수여하는 본인의 행위, 즉 수권행위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므로 어느 행위가 대리권 범위 내의 행위인지 여부는 개별적인 수권행위의 내용이나 그 해석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대법원 1997. 9. 30. 선고 97다23372 판결 등 참조), 대리권을 수여하는 수권행위는 불요식의 행위로서 명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함이 없이 묵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할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이 대리인의 외양을 가지고 행위하는 것을 본인이 알면서도 이의를 하지 아니하고 방임하는 등 사실상의 용태에 의하여 대리권의 수여가 추단되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 2016. 5. 26. 선고 2016다203315 판결 등 참조). 또한 민법 제126조 는 대리인이 그 권한 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3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든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위 법리 및 규정에 비추어 보면, 소외 1은 피고를 대리하여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이나 중재계약을 체결할 실제 대리권을 가지고 있었거나 적어도 원고로서는 소외 1에게 위와 같은 대리권이 있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여 민법 제126조 의 표현대리가 성립하므로, 중재합의 조항이 포함된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효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① 소외 1은 2009년경부터 피고의 구매담당자로 근무하여 왔는데, 2009. 9. 16.에는 피고의 상무이사(Managing Director) 소외 2를 비롯한 4명의 피고 직원들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원고를 방문하여 거래관계를 개시하였다.
② 소외 2는 피고의 상무이사로서 피고의 영업에 필요한 다양한 원료를 구매할 권한을 가진 자인바, 2010. 1.경 소외 1에게 원고와 직접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할 것을 지시하였고, 이에 소외 1은 전적으로 원고와의 호두공급계약 체결 업무를 담당하여 왔다(갑 제1호증의 2 중 17, 43면 등).
③ 소외 1이 원고와 접촉하여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2010. 2.경(총 금액 1,175,940달러) 및 2010. 4.경(총 금액 1,579,620달러) 2차례에 걸친 현물구매계약이 체결되었다.
④ 소외 1은 2010. 3. 26.경 소외 2로부터 위 2010. 2.경의 1차 현물구매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원고의 연간수량 제안과 관련한 호두구매계약 체결을 추진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하였다.
⑤ 위 2010. 4.경의 2차 현물구매계약과 관련하여, 원고는 2010. 4. 13.경 소외 1에게 매매계약 확인서(이하 ‘2차 현물구매 확인서’라 한다)를 첨부하여 이메일을 보냈고, 그 2차 현물구매 확인서는 견적송장에 기재된 수량과 가격이 반영되어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뒷면에 표준약관이 포함되어 있는 등 이 사건 매매계약 확인서와 거의 동일한데, 피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 확인서와 마찬가지로 그 확인서에 서명하거나 보내준 적이 없음에도 원고는 피고에게 그 제품을 발송하였고, 그 대금은 피고로부터 전액 결제되었다.
⑥ 설령 소외 1이 소외 2의 사전 승인 등이 필요함에도 그 승인 등 없이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권한 외의 대리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점에 비추어, 원고는 소외 1에게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먼저 을 제3호증의 1, 을 제4호증의 1, 2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원고와 피고 간의 1차 현물구매거래시 피고의 당시 대표이사인 소외 3의 서명이 기재된 2010. 2. 10.자 현물구매 견적송장이 원고에게 송부된 사실, 소외 1은 2010. 4. 5. 원고의 영업 및 물류 담당 부사장인 소외 4에게 ‘당신의 호두를 위한 두 번째 선적(shipment)을 준비(arrange)해 달라’는 제목 하에 ‘견적송장을 만들어 우리에게 보내라. 승인을 받아 다시 당신에게 송부하겠다’는 내용이 기재된 이메일을 보냈고, 위 소외 4는 2010. 4. 7. 소외 1에게 견적송장을 첨부하여 ‘검토, 날인하여 가능한 빨리 보내달라’는 내용이 기재된 답장형식의 이메일을 보냈으나, 그 후 피고의 대표이사로부터 위 1차 현물구매거래와 같이 서명된 견적송장을 송부받지는 못한 사실이 인정되기는 한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에 앞서 원·피고 사이에 유효하게 성립되어 정상적으로 이행된 1차 현물거래에서도 원고는 소외 1과만 접촉하였을 뿐 피고의 대표이사 등이 원고와 직접 접촉하였다고 보이지 않는 점, ㉡ 소외 1은 피고의 상무이사인 소외 2로부터 원고와 피고 사이에 직접 공급관계를 맺으라는 지시에 따라 원고와 접촉하게 되었고, 원고 담당자들과의 연락 내용을 전화와 이메일로 소외 2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한 점, ㉢ 소외 2는 이 사건 중재절차에서 제출한 진술서에서 2010. 3. 26.경 소외 1에게 이 사건 거래에 대한 논의를 1차 현물구매와 동일한 조건으로 추진해보라고 지시하였고, 이 사건 매매계약 확인서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한 점, ㉣ 원고의 담당자들과 소외 1 모두 환율의 영향 등으로 호두가격이 하락하기 전까지는 선적 일정, 리베이트 프로그램의 활용방법 등에 관하여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의 이행을 전제로 행동한 점, ㉤ 소외 1은 2010. 8. 27.경에 이르러서야 원고에게 다른 거래처로부터 호두를 구매하기로 하였다는 이유로 원고로부터의 호두공급을 거절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 ㉥ 피고가 원고의 이 사건 중재신청 전까지는 소외 1의 대리권에 대해 원고에게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고 보이는 점, ㉦ 상사거래와 국제거래의 특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원고는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에 대한 소외 1의 대리권의 존재와 그 범위를 믿는 데에 있어 선의일 뿐 아니라 무과실이라고 할 것이다.
(4) 피고는, 소외 1이 첨부하여 회신한 이 사건 주문서에 ‘에스피씨 주식회사 유통본부‘의 접수인이 날인되어 있음을 이유로 피고가 아닌 에스피씨 주식회사가 호두공급계약의 당사자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소외 1은 2010. 2. 8. 원고에게 보낸 메일에서 ‘당신이 아시다시피 에스피씨는 다수의 브랜드 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원고 호두거래와 관련하여서는 피고가 수입회사로 결정되었다. 구매는 제가 모두 진행하지만 호두구매 거래를 위해서 회사명만 사용하는 것이다. 피고의 회사 정보는 아래와 같다’라고 밝히고 있고, 소외 1이 위와 같은 메일을 보낸 이후 2010. 2.경 및 2010. 4.경 2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현물거래도 원고와 피고를 당사자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사건 매매계약 확인서에도 고객과 목적지에 피고의 상호와 주소를 기재하는 등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 체결 당시 및 그 이후에도 원고와 피고는 모두 자신들을 계약의 당사자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일 뿐 이와 달리 볼만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바, 피고가 주장하는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중재합의 조항이 포함된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의 당사자가 피고가 아닌 에스피씨 주식회사라고 할 수는 없다.
2) 집행요건의 충족 여부
원고는 이 법원에 이 사건 중재판정의 원본과 그 번역문(갑 제1호증), 원고와 피고 사이의 중재합의가 담긴 인증 등본에 해당하는 이 사건 주문서, 매매계약 확인서 및 표준약관과 그 번역문(갑 제3~6호증)을 각 제출하였고, 이로써 뉴욕협약 제4조에 따른 서면이 제출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4다2018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중재판정은 뉴욕협약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이를 집행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3) 소결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와 피고 사이의 이 사건 중재사건에 관하여 이 사건 중재재판부가 2014. 3. 18. 판정한 이 사건 중재판정에 의한 강제집행은 허가되어야 할 것이다.
다. 피고의 주장에 대한 판단
1) 주장
피고는, 이 사건 중재판정에서 인정된 손해배상금은 피고가 지급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매매대금에서 원고가 제3자에게 물품을 매각한 가액을 뺀 차액을 기준으로 산정되었으나, 원고는 손해를 경감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노력을 다하지 아니하고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물품을 처분함으로써 손해배상금액이 부당하게 커지는 결과가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점을 고려함 없이 피고로 하여금 그 액수를 지급하도록 판정한 이 사건 중재판정은 현저히 형평에 반하는바, 따라서 이 사건 중재판정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은 뉴욕협약 제5조 제2항 (b)호의 공공질서 위반에 해당하므로, 그 중재판정의 집행이 거부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2) 판단
뉴욕협약 제5조는 승인 및 집행의 거부사유를 제한적으로 열거하면서, 제2항 (b)호에서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이 그 국가의 공공의 질서에 반하는 경우에는 집행국 법원은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위 협약의 적용을 받는 외국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이 집행국의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를 해하는 것을 방지하여 이를 보호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는 것이므로, 국내적인 사정뿐만 아니라 국제적 거래질서의 안정이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하여 이를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해당 외국중재판정을 인정할 경우 그 구체적 결과가 집행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할 경우에 한하여 그 승인이나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 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6다20290 판결 등 참조).
갑 제2호증의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원고가 피고와 사이에 이 사건 호두공급계약에 따라 피고를 위해 확보해 놓았던 2009년산 호두 전량(대금 3,301,050.50달러)에 대하여 피고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위 수량 전부를 코스트코에게 2,723,586.25달러에 매각한 사실, 이 사건 중재판정에서는 원고가 위와 같은 매각으로 인해 코스트코 라벨을 붙이는 등의 포장요금이 추가되고, 포장유실액이 추가되는 등으로 추가손실이 발생하여 결국 726,023.50달러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손해액을 산정한 사실, 원고로서는 코스트코에게 매각하지 않을 경우 2010년산 호두가 곧 출하될 것이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코스트코와의 계약 이외에는 실행 가능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고, 만약 그때 코스트코에게 판매를 하지 않았다면 원고로서는 그 후 위 2009년산 호두를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중재판정을 인정할 경우 그 구체적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고, 그 밖에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3. 이 사건 미국법원 재판의 집행 허가 여부에 대한 판단
이 부분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따라 제1심판결의 이유 중 해당부분(제1심판결문 13면 아래에서 3행부터 20면 아래에서 3행까지)을 이 판결의 이유로 인용한다. 다만 아래와 같이 일부를 고쳐 쓴다.
○ 제1심판결문 14면 7행의 “④ 상호보증이 있을 것”을 “④ 상호보증이 있거나 대한민국과 그 외국법원이 속하는 국가에 있어 확정재판등의 승인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을 것”으로 고쳐 쓴다.
○ 제1심판결문 19면 1행의 “이 사건 소송 절차”를 “이 사건 미국 소송 절차”로 고쳐 쓴다.
4. 결 론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
[별지 각 생략]
주1) Newton v. American Debt Services, Ins.(N.D. Cal. Feb 22, 2012) 854 F.Supp.2d 712,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