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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9.1.10.선고 2018도12374 판결
강도살인
사건

2018도12374 강도살인

피고인

A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법무법인 율강

담당변호사 임경표, 이규리, 강수민, 서승효

판결선고

2019. 1. 10.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도8675 판결 참조),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에 의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렇게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공소사실에 대한 관련성이 깊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 요구된다(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도10754 판결 참조). 간접증거에 의한 간접사실의 증명도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그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은 그 사이에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10895 판결 참조).

2. 이 사건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당시 무직 상태로 일정한 수입이 없고 채무가 8,000만 원 상당에 이르러 매달 이자로만 100만 원 상당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특별히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도박을 즐기다가 도박자금과 생활비가 부족하자 여성을 상대로 금품을 강취.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은 2002. 5. 21. 23:20경부터 다음날 오전경까지 사이에 부산 이하 불상의 장소에서 홀로 가는 피해자 B(여, 22세)를 발견하고, 흉기로 협박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를 반항하지 못하게 한 후 피해자로부터 피해자 소유의 C은행 보통예금 통장, C은행 적금 통장, 신분증, 도장 등이 들어 있는 가방을 빼앗고, 위 C은행 보통예금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다음 2002. 5. 22. 12:18경 부산 사상구 D 소재 C은행 사상지점에서 위와 같이 강취한 피해자의 보통예금 통장을 이용하여 예금 296만 원을 인출하고, 위 범행이 발각될 것 등을 우려하여 그 무렵 부산 이하 불상의 장소에서 예리한 흉기 (칼로 추정)로 피해자의 가슴 등을 수십 회 찔러 피해자를 흉복부 다발성 자창으로 살해하였다.

3. 원심은,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범행방법, 피해자의 구체적인 사망 경위 등 위 공소사실을 직접 인정할 수 있는 증거는 없지만,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간접사실 및 관련 정황들, 즉 피고인이 피해자의 통장으로 예금을 인출하고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한 점, E이 피고인과 함께 마대자루를 옮긴 점, 피고인이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점, 피고인이 유사 수법의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재물을 강취하고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인정되고,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 등 여러 의문을 제기하는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들은 합리적 의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 제1심판결의 유죄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원심이 인정한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 심의 판단을 아주 무리하다고 할 것은 아니다.

4.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은 중대한 범죄에서는 유죄를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하여야 하고, 그 과정에 한 치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볼 때, 원심의 판단에 아래와 같이 의문스럽거나 심리가 미흡한 부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가. 피고인이 피해자의 통장으로 예금을 인출하고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한 점에 관하여 본다.

이 부분은 E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경우에 그 진술과 함께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할 유력한 간접증거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강도살인의 점에 관한 간접증거가 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나. 피고인과 함께 마대자루를 옮겼다는 E의 진술에 관하여 본다.

(1) 원심은, E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기억상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일부 부정확한 진술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으며, 수사를 거듭할수록 마대자루를 옮긴 장소 등에 대하여 점차 구체적으로 진술하기는 하나, 피고인의 요구로 마대자루를 옮겼다는 최초 진술 자체에는 왜곡과 오염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E의 위 진술을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2)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음을 알 수 있는 직접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 이 사건 범행일 무렵 피고인의 요구를 받은 E이 피해자의 사체가 유기된 것과 유사한 형태의 마대자루를 옮겼다면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에 대한 유력한 간접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E의 진술이 피고인의 피해자 살인의 점에 관한 거의 유일한 증거라면 보다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

(가) 원심판결 및 기록에 의하면, E은 피고인이 사각형 창고 같은 건물에서 마대자루를 질질 끌고 와서 자신과 같이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고, 자동차로 이동하여 회색 시멘트 바닥이 있는 곳에서 피고인과 같이 마대자루를 내렸으며, 그 이후 자신은 돌 위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고, 피고인이 마대자루를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기억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나) 마대자루가 피고인이 혼자 끌 수 있을 정도의 무게라면 피고인 스스로 마대자루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내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범행이 탄로날 위험을 무릅쓰고 E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다) E의 진술은 마대자루에서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뿐이고 마대자루의 내용물에 관한 구체적인 진술은 없으며, 마대자루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내린 후 피고인이 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도 않아 그 증거가치가 제한적인 한계도 있다.

(라) 원심이 왜곡과 오염이 없다고 본 E의 최초 진술에도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다. E은 부산 사상구 CS동에 살던 피고인과 그 당시 만났던 빨간색 투스카니 자동차를 운전했던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기억하지 못하다가 경찰관의 거듭된 질문에 같은 사람인 것 같다는 취지로 동조하였고, 피고인이 위 자동차에 마대자루를 신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다가 경찰관이 사체 유기의 공범이 아니냐는 취지로 묻자 바로 진술을 변경하여 피고인이 마대자루를 위 자동차에 싣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진술 변경이 혹시 경찰관의 암시나 공범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방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또 E이 진술한 마대자루와 관련한 일련의 경과에 비추어 보면, 마대자루의 색깔보다는 피고인이 자동차에서 내린 마대자루를 어떻게 처리하였는지에 관한 기억이 선명할 것으로 보이는데도, E은 전자는 기억하면서 후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3) E에게 무고한 피고인을 범인으로 만들 만한 원한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 원심이 들고 있는 여러 사정에 비추어 E이 허위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아니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의문점 등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E의 진술을 다시 들어보는 등의 방법으로 면밀하게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점에 관한 원심의 판단에 대하여 본다.

(1) 원심은, 판결 이유 중 '피고인이 피해자의 통장으로 예금을 인출한 점' 부분에서 피고인이 2002. 5. 22. 12:18경 피해자의 예금을 인출할 때 피해자를 폭행 또는 협박하여 비밀번호를 알아내었음을 추단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 등 변호인이 주장하는 사정' 부분에서 피고인이 위와 같이 예금을 인출하기 전에 피해자가 이미 사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피해자의 부검결과 사망추정 시간이 2002, 5. 22. 새벽인 점도 이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예금을 인출할 때 피해자가 생존해 있었는지에 관하여 모순된다.

(2) 이 부분에 관하여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남부분소 소속 법의관 AB가 작성한 시체검안서에 피해자의 사망일시가 '2002. 5. 22. 새벽(추정)'으로 기재되어 있다.

(나) 원심이 피고인의 신청을 채택하여 부산과학수사연구소에 한 사실조회에 대하여 부산과학수사연구소가 "피해자의 사망 일시를 2002. 5. 22. 새벽(추정)으로 기재한 이유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건은 부패한 시신이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부패한 시신에서 사망 일시를 추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부패한 정도와 수사관이 제시하는 행적에 따라 막연하게 추정하며, 이 건도 수사관이 제시하는 변사자의 행적에 근거하여 사망 시기를 추정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으로 한 회보가 원심 변론종결 후에 도착하였다.

(다) 피해자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간 및 비장 조직에서 알코올농도가 0.074%로 측정되었다.

(3)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시체검안서에 기재된 사망일시의 의미,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점, 피해자의 부검에서 나온 알코올농도의 의미, 위와 같은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점과 알코올농도의 합리적인 설명 가능성 등에 관하여도 심리해 보았어야 할 것이다.

라. 이 사건 범행의 동기가 되었다는 피고인의 경제적 어려움에 관하여 본다.

(1) 원심은,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일정한 직업이 없었고, 상당한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는데도 일정한 수입 없이 가출청소년 성매매 알선과 도박을 하면서 카드깡과 카드론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었으며, 피해자의 예금 인출에 이어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여자까지 섭외하여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하고 돈을 찾아간 점에 비추어 보아도 피고인의 당시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을 추단할 수 있고, 피고인의 이러한 경제적 곤궁을 이 사건 범행의 동기로 충분히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2) 일반적으로 금전적 이득의 기회가 살인 범행의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금전적 이득만이 살인의 범행 동기가 되는 것은 피고인이 매우 절박한 경제적 곤란이나 궁박 상태에 몰려 있어 살인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를 모면하려고 시도할 정도라고 인정될 만한 사정이 있어야 살인의 동기로서 납득할 정도가 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1549 판결 참조), (3) 원심판결 및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살인을 해서라도 벗어나야만 할 정도의 경제적 곤란이나 궁박 상태에 몰려 있었는지 다소 의문이 든다.

(가) 피고인은 검찰에서 자신이 회사를 다닐 때 카드를 발급받고 백화점 카드 깡도 하고 카드론 대출을 받았으며, 다른 대출도 받은 뒤 회사를 그만두었고, 대출금이 7,000~8,000만 원 정도였으며, 형편이 넉넉한 것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나) 한편 신용정보회사로부터 받은 피고인의 신용정보에서 이 사건 무렵 피고인의 대출거래정보로 등록된 금액이 150만 원 정도, 채무불이행정보로 등록된 금액이 1,280만 원 정도이다. 피고인이 당시 일부 신용카드 대금 지급을 연체한 것으로 보이나 이 사건 무렵까지 DS카드, EC카드, 비씨카드 대금이 결제되는 계좌에 현금을 입금하여 그 대금이 결제되도록 하고 있었고, ED카드, DS카드로부터 현금서비스를 받은 내역이 있으나 그 금액이 많지는 않았다. 피고인의 기업은행 계좌에서 DW이 월 44만 원 정도, DX이 월 22만 원 정도의 이자로 보이는 금액을 인출하였다. 위와 같은 자료로부터 피고인이 진술하는 대출금의 규모나 채무불이행정보의 규모가 직접 확인되지는 않는다.

(4) 피고인이 스스로 진술한 7,000~8,000만 원의 대출금 규모가 허위라고 보기 어렵기는 하나, 피고인이 카드깡 등을 통해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이 사건에서, 원심으로서는 보다 많은 객관적인 자료를 모아 피고인의 대출금 규모를 확인하여 보고, 당시 대출금의 연체 여부 및 대출금융기관 등이 피고인에게 변제를 독촉하고 있었는지 등에 관하여도 심리하여 이 사건 범행의 동기가 있었는지, 만약 그것이 살인의 동기도 되었다는 취지라면 살인을 해서라도 벗어나야만 할 정도의 경제적 곤란이나 궁박 상태에 있었는지, 과연 흉기로 수십 회 찔러 살인할 만한 동기로 충분한지 살펴보았어야 할 것이다.

마.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에 관한 원심의 판단에 대하여 본다.

(1) 원심은, 피고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DH에게 미심쩍은 사정이 있다는 것만으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볼 여러 유력한 간접사실을 함부로 배척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2) 원심판결 및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를 잘 아는 DH이 피해자의 사체 발견 이후 초기 조사에서 이 사건 무렵의 자신의 행적, 피해자와의 전화 통화 여부, 피해자를 만났는지 등에 대하여 허위진술을 하였고, 피해자의 실종 이전과 다르게 그 이후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았으며, 그 전과 다르게 피해자의 실종 무렵 39시간 동안 휴대폰과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고, 특수강도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원심의 이 부분에 관한 판단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피고인이 피해자의 예금통장, 신분증 등이 든 가방을 주워 예금 등을 인출하기만 하였을 뿐 공소사실에 기재된 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다투고, 앞서 본 바와 같이 공소사실에 기재된 피고인의 범행방법, 피해자의 구체적인 사망 경위 등을 알 수 있는 직접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 수사 초기 피해자의 예금을 인출하는 영상이 확인될 때까지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되었던 데다 위와 같은 미심쩍은 사정이 있는 DH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인 증거조사가 필요하였다고 보인다. 또한, 피고인이 아닌 제3자가 이 사건 범행의 진범이라는 내용의 우편이 대법원에 접수되어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한지 검토를 요한다는 점도 밝혀둔다.

바.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그 판시와 같은 간접증거와 간접사실만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쉽게 단정할 것이 아니라,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여러 의문스러운 사항에 관하여 면밀하게 심리한 후, 그와 같은 사정을 모두 참작하더라도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에 한하여 유죄의 증명이 있는 것으로 보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원심은 이에 이르지 아니한 채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사건 범행을 유죄로 인정하고 말았다. 원심판결에는 유죄의 인정을 위한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고, 이는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 이 분명하다.

5.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대법관민유숙

주심대법관조희대

대법관김재형

대법관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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