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9노28 강도살인
피고인
A
항소인
피고인 및 검사
검사
김공주(기소 및 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율강
담당변호사 임경표
환송전당심판결
판결선고
2019. 7. 11.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범죄전력]
피고인은 2002. 9. 17. 부산지방법원에서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죄 등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2004. 1. 20. 부산고등법원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도강간등)죄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2004. 2. 2. 그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위 집행유예의 선고가 실효되어 2012. 3. 9. 진주교도소에서 그 최종형의 집행을 종료한 사람이다.
[범죄사실]
피고인은 당시 무직 상태로 일정한 수입이 없고 채무가 8,000만 원 상당에 이르러 매달 이자로만 100만 원 상당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특별히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도박을 즐기다가 도박자금과 생활비가 부족하자 여성을 상대로 금품을 강취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은 2002, 5. 21. 23:20경부터 다음날 오전경까지 사이에 부산 이하 불상의 장소에서 홀로 가는 피해자 B(여, 22세)를 발견하고, 흉기로 협박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를 반항하지 못하게 한 후 피해자로부터 피해자 소유의 C은행 보통예금 통장, C은행적금 통장, 신분증, 도장 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빼앗고, 위 C은행 보통예금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다음 2002. 5. 22. 12:18경 부산 사상구 D 소재 C은행 사상지점에서 위와 같이 강취한 피해자의 보통예금 통장을 이용하여 예금 296만 원을 인출하고, 위 범행이 발각될 것 등을 우려하여 그 무렵 부산 이하 불상의 장소에서 예리한 흉기(칼로 추정)로 피해자의 가슴 등을 수십 회 찔러 피해자를 흉복부 다발성 자창으로 살해하였다.
2. 원심의 판단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아래 항소이유 중 사실오인 주장과 같은 취지로 다투었는데,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원심은 배심원의 유죄평결(평결 결과: 유죄 7명, 무죄 2명)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3.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1)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은 피해자의 가방을 주워, 그 가방에 들어있던 통장, 도장 등을 이용하여 피해자 소유의 예금을 인출하거나 적금을 해지한 사실은 있지만, 피해자로부터 가방을 빼앗거나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2) 양형부당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무기징역)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검사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4. 소송의 경과
가. 환송 전 당심의 판단
환송 전 당심은 원심이 적시한 증거 중 피고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원심 증인 F의 일부 법정진술을 제외한 나머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간접 사실들, 즉 피고인이 피해자의 통장으로 예금을 인출하고 20여일 후에는 피해자의 대역을 내세워 피해자의 적금까지도 해지한 점, 예금 인출 과정에서 계좌 비밀번호를 입수한 경위, 당시 피고인과 동거하고 있던 E이 피고인을 도와 피고인 차량에 마대자루를 신고 내린 점, 피고인의 당시 어려운 경제적 상황, 이 사건 범행 이후 2003년경 피고인이 유사한 수법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도 범행을 저지른 점, 피고인의 변소 내용에 신빙성이 없고, 피고인이 2016. 5.경 자신의 휴대전화로 인터넷에서 '살인 공소시효', '살인 공소시효 폐지'를 검색한 점 등을 상호 관련 하에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재물을 강취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판단하고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나.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통장으로 예금을 인출하고 피해자의 적금 해지하였다는 간접사실은 E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경우에는 E의 진술과 함께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할 유력한 간접증거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강도살인의 점에 관한 간접증거가 되기에는 매우 부족하고, E 진술에는 피고인이 굳이 범행이 탄로 날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을까 하는 점이나 피고인을 도와 마대자루를 실었다는 것 외에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점 등에 비추어 그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고 설시하고, 그 밖에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점, 피고인의 당시 경제적 상황,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 등에 관하여도 의문점을 지적한 다음, 이러한 사항에 관하여 면밀하게 심리한 후 그와 같은 사정을 모두 참작하더라도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에 한하여 유죄의 증명이 있다.
고 보아야 하므로, 환송 전 당심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사건 범행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환송 전 당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5. 이 법원의 판단
가. 관련 법리
살인죄와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러한 경우에도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하고, 그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이 상호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유죄의 인정은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보아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것이 헌법상의 원칙이고, 그 추정의 번복은 직접증거가 존재하는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1549 판결 등 참조).
한편, 법원조직법 제8조는 "상급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라고 규정하고, 민사소송법 제436조 제2항 후문도 상고법원이 파기의 이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은 하급심을 기속한다는 취지를 규정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법률심을 원칙으로 하는 상고심은 형사소송법 제383조 또는 제384조에 의하여 사실인정에 관한 원심 판결의 당부에 관하여 제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것이므로 조리상 상고심판결의 파기이유가 된 사실상의 판단도 기속력을 가진다. 따라서 상고심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대하여 환송후의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에 변동이 생기지 않는 한 이에 기속된다(대법원 2009. 4. 9. 선고 2008도10572 판결 등 참조).
나. 판단의 순서
검사는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는 것 같은 언동을 하였고, 이는 증거능력 있는 증거로 뒷받침된다고 주장한다. 검사가 주장하는 피고인의 언동에는 피고인의 자백 내지 자인과 같은 직접증거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함으로써 피해자의 사망과 관련되어 있다는 간접사실을 증명할 만한 주요한 증거에 해당하는 E 진술의 증명력에 관하여 판단한 다음, 환송 후 당심에서 새롭게 증거조사가 이루어진 증거를 포함하여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능력 있는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간접사실들에 대하여 살펴본다.
다. 피고인의 언동에 관한 증거
1) 경찰관 F의 원심 법정진술 중 피고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부분1) 이 사건을 수사한 부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F의 원심 법정진술 중 경찰에서, 피고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공된 휴식시간에 피고인이 담배를 피면서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였다는 부분, 피고인이 자신의 누나 및 키우던 반려견과 만나면서 마치 자신의 유죄를 예상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는 부분, 피고인을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송치하는 과정에서 호송 차량 내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였다는 부분에 관하여 본다.
원심 증인 F이 원심법정에서 증언한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언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피고인의 경찰에서의 언동 정리] 기재와 같다.
[피고인의 경찰에서의 언동 정리]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은 "피고인이 아닌 자(공소제기 전에 피고인을 피의자로 조사하였거나 그 조사에 참여하였던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이 피고인의 진술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인 때에는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 졌음'이란 그 진술을 하였다는 것에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고, 그 진술 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대법원 2015. 12. 10. 선고 2015도16105 판결 등 참조). 즉, 이와 같은 조사자 증언의 증거능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조사 당시 피고인의 진술이 '절차의 주재자, 공개, 관련자의 참여, 절차의 진행 등에서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과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진술에 허위, 강요의 개입을 엄격히 차단하여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상황' 아래에서 이루어졌음이 증명되어야 하고, 그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대하여는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F에게 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었다.
고 보기 어렵고, 결국 원심 증인 F의 진술 중 피고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부분은 증거능력이 없다.
즉, ① 피고인과 변호인은 조사경찰관에게 위와 같은 진술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 및 그 진술 경위에 관하여 수사기관에서부터 치열하게 다투어 왔다. ② 피고인의 위와 같은 진술은 피고인이 영장에 의해 구금된 상태에서 변호인의 동석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③ 피고인이 위와 같은 진술을 함에 있어 사전에 진술거부권 및 변호인 선임권이 고지되지 않았고, 피고인의 발언이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되지도 않았으며, 수사과정의 기록도 없는 등 F의 증언에 포함된 피고인의 진술 자체가 전반적으로 형사소송법에서 정하고 있는 피의자에 대한 적법한 조사방식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2) ④ 피고인은 담배 등의 편의를 제공받기 위하여 위와 같이 진술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도 피고인이 조사 과정에서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거나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처분하는 등의 편의를 제공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구속수사 및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피고인이 정식 수사과정이 아닌 조사경찰관과의 사담(私談)에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편의를 제공받을 목적으로 허위 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⑤ 조사경찰관 F 스스로도 피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수사보고에서 피고인의 송치 당시 언동에 관하여 '현재까지의 수사상황을 고려할 때 피의자의 언동이 전부 맞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고, 특히 일부 발언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언행으로 판단된다'라고 평가하여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을 크게 부여하지 않았고, 원심 법정에서도 같은 취지로 증언하였다. ⑥ F은 원심 법정에서 '일부 구체적인 범행 경위에 관한 피고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지만 적어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자백한 부분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나, 피고인의 구체적인 개별 진술에 관한 신빙성을 평가하기 이전에 이러한 진술만으로 조사자 증언 중 일부에 대하여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볼 수도 없다. ⑦ 검사는 환송 후 당심의 석명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이 부분 증거의 증거능력이 있다는 주장만 할 뿐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따라서 원심이 증거의 요지에 "증인 F의 일부 법정진술(피고인 아닌 타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부분은 증거능력 없음)"으로 기재함으로써 앞서 본 것처럼 증거능력이 없는 '피고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증인 F의 법정진술'까지 증거로 삼은 것은 위법하다.
한편 원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는데, 배심원은 증거능력이 인정된 증거에 의하여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하여야 하고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은 증거는 전혀 고려하여서는 아니 된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44조가 '배심원 또는 예비배심원은 법원의 증거능력에 관한 심리에 관여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법률전문가인 법관과는 달리 일반인인 배심원의 경우 증거능력에 관한 심리에만 관여 하더라도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은 증거의 영향을 완전하게 배제할 수 없음을 고려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앞서 본 것처럼 증거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 구체적인 내용에 비추어 배심원의 평결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피고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원심 증인 F의 법정진술'이 배심원들에게 그대로 현출된 것 역시 위법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다만 위 절차진행은 결국 원심의 증거능력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피고인 및 변호인들이 이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소송행위 전부를 무효로 할 정도로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가 본질적으로 침해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2)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 중 검찰수사관 CI 진술기재 부분
검사는 2017. 8. 30. 피고인에 대한 제1회 피의자신문을 실시하였고, 같은 해 9. 4. 피고인에 대한 제2회 피의자신문을 실시하였는데, 피고인에 대한 제2회 피의자신문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제1회 피의자신문 후 휴식시간에 검찰수사관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한 사실이 있는지'를 물었고, 피고인이 그런 말을 한 사실 없다고 부인하자 제2회 피의자신문에 참여하고 있던 검찰수사관 CI과 즉석에서 아래 [피고인의 언동에 관한 검찰수사관의 진술] 기재와 같은 문답을 하였다.
[피고인의 언동에 관한 검찰수사관의 진술]
전문진술이나 전문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으나, 다만 피고인 아닌 자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이 피고인의 진술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인 때에는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진 때에 한하여 이를 증거로 할 수 있고, 그 전문진술이 기재된 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2조 내지 314조의 규정에 의하여 그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함은 물론, 나아가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위와 같은 조건을 갖춘 때에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4. 12. 선고 2011도10926 판결 등 참조).
그런데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검사가 제출한 증거목록에는 피고인에 대한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의 진술자가 피고인으로만 되어 있어 검사가 검찰수사관 CI의 진술기재 부분까지 증거로 제출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이에 따라 피고인이 위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하여 진정성립과 임의성을 인정하였다고 하여 위 진술기재 부분까지 동의하였다고 볼 수는 없는 점, ② 검찰수사관 CI은 위 피의자신문조서 말미에 조사참여자로서 서명날인을 하였을 뿐 진술자로 서명날인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 진술기재 부분이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③ 설령 위 피의자신문조서의 CI 진술기재 부분이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되었다. 거나 CI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그 진술기재 부분과 같은 진술을 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앞서 F의 증언 중 피고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피고인의 진술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피의자에 대한 조사방식을 갖추지 않은 사담(私談)에 불과하고, 또 피고인이 경찰에서와 마찬가지로 각종 편의를 제공받을 것을 기대하고 허위 진술을 하였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어 피고인이 검찰수사관에게 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의 사정들을 종합하면,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 중 검찰수사관 CI의 진술기재 부분 역시 증거능력이 없다.
3)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에 나타나는 피고인의 언동 그 외에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피의자신문을 받으면서 '피해자의 영혼이 모셔진 절에 가보고 싶다'라고 진술한 사실, 피고인이 "나에게 '최고의 선택을 하면 형량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사실이 있지 않냐"라는 검사의 질문에 부인하지 않고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답변한 사실이 인정되나, 이를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는 진술로 보기는 어려워 이 사건 공소사실에 관한 직접증거가 되지는 못하고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간접사실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아래에서 인정되는 다른 간접사실들과 함께 그 증거가치를 살펴보기로 한다.
라. E 진술의 신빙성
1)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음을 추단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 이 사건 범행일 무렵 피고인의 요구를 받은 E이 피해자의 사체가 유기된 것과 유사한 형태의 마대자루를 옮겼다면 피고인의 이 사건 강도살인 범행에 관한 유력한3) 간접 증거가 될 것이다.
2) E은 원심 및 당심 법정에서 '피고인과 함께 살던 당시 어느 날 야간에 피고인이 사각형 창고 같은 건물로 자신을 데리고 가 안에서 마대자루를 질질 끌고 와서 자신과 같이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고, 자동차로 이동하여 회색 시멘트 바닥이 있는 곳에서 피고인과 같이 마대자루를 내렸으며, 그 이후 자신은 돌 위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고, 피고인이 마대자루를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기억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하지만 위와 같은 진술은 원심 및 환송 전 당심, 환송 후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을 비롯한 이 사건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유력한 증거로서의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① E 수사 초기 진술의 의문점
E은 2017. 7. 20. 수원서부경찰서 진술녹화실에서 최초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관이 '피고인이 차량의 뒷좌석이나 트렁크에 마대자루 같은 것을 신거나 어떤 물건이 담긴 마대자루를 심는 것을 보았는지'를 묻자 '무엇을 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라고 진술하였다가 경찰관이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하는 것을 도와준 것이 아니냐'라는 취지로 거듭 물어보자 진술을 변경하여 '내용물은 모르지만 피고인이 마대자루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진술이 변경된 경위에 관하여 '경찰관님이 보여주는 사진을 보니까 조금씩 생각이 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또한 E은 이후 마대자루 자체에 관하여 '노란색의 평범한 마대자루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경찰관이 제공하는 A4 용지에 '타원형의 둥글고 긴' 모양의 마대자루를 그렸다가, 피해자의 사체가 담긴 마대자루를 인양한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본 이후에는 '한쪽에 비닐인지 청테이프인지 모르지만 무언가가 겹쳐 있었던 것 같다'라는 취지로 자신이 옮긴 마대자루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
이와 같은 추궁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거듭된 사진 제시, 그리고 피고인을 범인으로 강하게 의심하면서 범행을 전후한 시기 피고인과 동거하여 이 사건을 목격했을 수 있는 E에게 의미 있는 진술을 기대하는 수사기관의 인식이나 태도가 E의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E이 피의자로 입건되지 않은 사정4)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E의 진술 변경이 공범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방어나 경찰관의 암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수사과정의 절차적 위법이나 수사기관의 위협, 회유 등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이상 그러한 의문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곧바로 배척할 수는 없을 것이나, E의 진술은 다음에서 보는 것처럼 그 내용 자체로 제한적인 증거가치를 지니면서도 이 사건 강도살인 범행의 유력한 간접증거라는 점에서 위 의문이 해소되어야만 그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그와 같은 의문을 완전히 해소하기에 부족하다.
즉, E은 위 최초 조사에서 같은 날 10:48경부터 같은 날 18:52 경까지 무려 8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조사를 받았는데, 조서의 분량이나 내용에 비추어 중간에 휴식시간 등이 제공되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조서에는 이에 관한 아무런 기재가 없고, 영상녹화물이 존재하지 아니하여 실제로 약 8시간 내내 조사가 이루어진 것인지, 조서에 기재되지 않은 대화 내용이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하여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E이 최초에 '기억이 없다'라는 취지로 진술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어떤 과정을 거쳐 진술을 변경한 것인지, 관련된 사진 자료 등이 어떻게 제시되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위와 같은 추궁이나 거듭된 사진 제시에도 불구하고 암시 등이 배제된 개방형 질문이 이루어진 것처럼 평가할 수는 없다.
한편 E은 환송 후 당심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인소환장을 전달받고 자신을 조사하였던 경찰관인 F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고, F이 '지난번처럼 사실대로 진술하면 된다'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였다고 증언하였고, 이는 환송 후 당심 증인인 경찰관 BH의 진술, 즉 "F으로부터 E에게 '그냥 앞에 이야기한 대로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하라 했다'는 내용의 통화를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대화내용이 반드시 부적절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법원이 환송판결에서 E의 진술을 피고인의 피해자 살인의 점에 관한 거의 유일한 증거로 파악하면서, 보다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시하였고, 경찰관들 역시 그러한 판시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정(당심 증인 BH의 진술)까지 고려하면, 환송 후 당심 증인신문에 앞서 이루어진 E과 경찰관 사이의 위 대화내용을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② E 기억의 왜곡 가능성 및 제한된 증거가치E은 2017. 7. 25. 법최면 검사를 받았고, 그 이후부터 기억이 회복되었다면서 수사기관이나 원심 및 환송 후 당심 법정에서 마대자루를 싣는 것을 도와준 경위에 관하여는 대략적인 장소의 모습을 진술하고, 마대자루의 구체적인 모양에 관하여는 '반대편이 어두운 색의 무언가로 감겨 있었다'라고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는데, 이처럼 최면은 '기억'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구체화시키며 그 인상을 강렬하게 만드는 과가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 '기억'의 정확성이 높아지거나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법최면 수사의 결과나 그 이후의 증언에 대하여 증거능력을 부여할 것인지에 관하여 여러 나라에서 논란이 된 바 있고, 적어도 그 신빙성을 평가함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최면의 특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최면 검사 이후 마대자루에 관한 E의 진술이 구체화되어가는 일련의 경과에 비추어 보면, 마대자루의 색상, 차량의 색상 등 수사기관이 사진을 제시한 정보 외에 자동차에서 내린 마대자루를 피고인이 어떻게 처리 하였는지, 피고인이 마대자루를 처리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보았던 주위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등에 관한 기억 역시 환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임에도, E은 전자에 관한 사항은 법최면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적으로 기억하면서도 후자에 관하여는 환송 후 당심에 이르기까지도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진술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설령 E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진술이 본인의 기억과 다른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정하더라도 사실과 다른 기억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증언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즉, 법최면 검사 이전에 E이 이미 스스로 기억하고 있었던 사실과 E 자신의 기억과는 별도로 수사기관으로부터 제공받은 사진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혼재되어 몇 가지 단편적인 장면으로 각인되었다가, 법최면 검사 이후 그 전체가 '자신의 기억'의 형태로 재구성되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법최면 검사 이전에는 기억하지 못하여 진술하지 않았다가 법최면 검사 이후 새롭게 기억해내어 얻게 된 진술 부분에 대한 증명력은 그 이전의 일반 진술과 동일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E의 진술은 마대자루에서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뿐이고 마대자루의 내용물에 관한 구체적인 진술은 없으며, 납득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마대자루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내린 후 피고인이 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그 증거가치가 제한적인 한계도 분명히 있다.
③ 검증 등을 통한 추가적인 신빙성 검토
대법원 환송판결에서는 피고인이 굳이 범행이 탄로 날 위험을 무릅쓰고 E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 E이 실제로 사체가 담긴 마대자루를 옮겼다면 사체가 담긴 마대자루의 형상과 재질에 비추어 E이 물컹한 느낌만 든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러한 의문은 '사체와 같은 형상을 포장한 마대자루'를 성인 남성이 혼자서 상차(上車)할 수 있는지 여부나 신장 165㎝의 사체를 마대자루로 포장하는 경우 그 형상이나 무게 또는 이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포장을 통해 느껴지는 촉감이나 특히 비닐로 포장된 부분을 통해 내용물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지 여부 등에 대하여 상하차 상황을 가능한 한 비슷하게 재연한 후 직접 들어보는 등의 실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환송 후 당심은 검사에게 재연실험을 통한 검증을 권유하였음에도 결국 그러한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환송 후 당심 증인인 경찰관 BH의 진술에 의하면 수사과정에서도 그러한 재연실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사가 환송 후 당심에서 검증에 대체하여 제출한 'S'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 중 차량에 마대자루를 싣는 실험에 관한 부분은 '피고인이 굳이 범행이 탄로 날 위험을 무릅쓰고 E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비슷한 무게를 가진 물건을 마대자루로 포장한 채 성인 남성이 혼자서 상차할 수 있는지 여부에 중점을 두고 실험한 것으로, 인체 또는 인체와 비슷한 재질과 형태로 구성된 구조훈련용 더미 (dummy) 등을 사용하지는 않는 등 실험 과정이나 조건 설정에 있어 E이 진술한 상차 현장을 충실히 재연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당 방송 영상만으로는 '(피해자의 사체가 포장된 것과 비슷한 형태의) 마대자루를 피고인과 함께 차에 싣고 내린 사실이 있다'는 E의 진술에 신빙성이 추가되기 어렵다.
④ 환송판결의 기속력
환송판결의 기속력 관점에서 보더라도, 검사가 환송 후 당심에서 새롭게 제출한 증거들을 기존에 제출된 증거들과 함께 면밀히 살펴보아도 이들 증거의 제출에 의하여 환송심의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에 변동이 생겼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검사는 환송판결에서 'E이 허위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아니하나'라고 적시한 사정에 비추어 E 진술의 신빙성에는 환송판결의 기속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나, 앞서 본 것처럼 환송판결에서 E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여러 의문점을 구체적으로 설시하였으므로, 검사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마. 피고인이 피해자의 통장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예금을 인출한 사실
1) 인정되는 사실
피고인은 2002. 5, 22. 12:18경 부산 사상구 D에 있는 C은행 사상지점에서 피해자의 보통예금 통장을 이용하여 예금 296만 원을 인출하였다(이하 '1차 인출'이라 한다).
1차 인출 당시의 은행 CCTV 영상(이하 '1차 인출 영상'이라 한다)에 따르면, 피고인은 현금지급기로 가서 돈을 인출하려고 하였으나, 2회에 걸쳐 비밀번호가 틀려서 은행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현금지급기에 비밀번호를 눌러 확인한 다음, 창구로 가서 예금을 인출하였다.
2) 1차 인출에 관한 피고인의 변소
피고인은 경찰에서 1차 인출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은 본인이 아니고 자신은 해당일자에 위 은행에 간 적이 없다는 취지로 부인하다가, 피고인의 전 배우자, 조카, 고교 동창, 회사 동료, 자주 가던 술집 여종업원, 그 무렵 피고인과 동거하였던 여자 청소년 등 주변인들이 모두 1차 인출 영상에 나오는 남성이 피고인이 맞다는 취지로 진술하자, 검찰 제3회 피의자신문에 이르러 본인이 맞다고 시인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1차 인출 경위에 관하여 '전날 20:00경(이 부분 진술은 공판과정에서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하면서 진술한 것이라고 번복하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피해자의 가방을 습득하여 그 안에 들어 있던 피해자의 신분증에 기재된 피해자의 생년월일 등 주민등록번호와 수첩에 기재된 피해자의 휴대폰 번호를 조합하여 세 번 만에 예금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었다' 라고 진술하였고, 수사기관으로부터 두 번호의 조합으로 비밀번호를 다시 알아내보라는 요구를 받고 'CY'이라는 번호를 맞추지 못하자 다시 '피해자의 수첩에 기재되어 있던 피해자 부모의 생년월일을 토대로 비밀번호를 알아내었다'라고 진술을 번복하였다.
3) 구체적 판단
가) 검사는 1차 인출 경위, 특히 처음에는 비밀번호를 틀리게 입력하였다가, 은행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후에는 올바른 비밀번호를 입력한 정황에 비추어 피고인이 당시 은행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량에 피해자를 감금한 채 폭행 또는 협박하여 비밀번호를 알아낸 구체적인 사실까지 충분히 추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은 당시 비밀번호가 틀려 밖으로 나간 지 불과 1분 10초 후에 다시 돌아와 비밀번호를 눌러 확인하였고 이를 2회 반복하였는데, 과연 위와 같은 짧은 시간 내에 ②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① 차량 트렁를 열고 피해자의 입을 막은 테이프를 제거한 후, Ⓒ 피해자로부터 새로운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④ 피해자가 구조를 요청하지 못하도록 다시 입을 막고, 트렁크를 닫은 후, ( 은행 현금지급기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피고인이 당시 특별히 시간적으로 쫓기고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검사의 주장대로 피해자로부터 알아 낸 비밀번호가 두 번이나 거짓임을 알게 된 피고인이 피해자가 세 번째로 말하는 비밀번호를 만연히 신뢰하고 바로 은행으로 돌아가 다시 인출을 시도하였을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검사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 그러나 1차 인출 경위에 관한 위 인정사실 및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과 같이 피해자를 폭행 또는 협박하여 피해자로부터 직접 예금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이러한 간접사실만으로도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①) 피해자 사체의 부패 정도(탈모가 시작되고 손발톱이 탈락되기 시작)에 비추어 피해자는 인양 시점으로부터 약 8일에서 10일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데,5) 이로 보아 피해자는 지인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이 확인되는 2002. 5. 21. 23:20경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② 피해자의 지인들은 피해자가 평소 돈에 대한 애착이 많았고, 도난을 우려하여 평소 소지하던 가방에 통장이나 도장을 넣어 다녔다고 진술하였는데, 피해자는 2002. 5. 21. 퇴근 시에도 평소 통장이나 도장 등을 넣어두는 가방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이후 피해자는 여러 군데 자상을 입고 살해되어 마대자루에 넣어진 채 서낙동강에 유기되었고, 피고인은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것이 확인된 시각으로부터 약 13시간 후 피해자의 통장과 비밀번호를 이용하여 1차 인출을 시도하였다.
③ 이와 같이 비교적 짧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두 사건을 보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피해자를 두고 '살인'과 '분실 통장을 이용한 예금인출'이라는 전혀 별개의 범죄를 저지른 것일 가능성보다는 한 사람이 피해자를 상대로 일련의 범행을 저지름으로써 피해자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④ 기록상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 피해자 부모의 생년 월일 등에 비추어 피고인이 검찰 제3회 피의자신문 당시부터 주장하고 있는 '비밀번호를 알아낸 경위는 허위로 봄이 상당하고, 이에 따라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직접 비밀번호를 알아내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러한 사정에 피해자의 사체에 여러 군데의 자상이 확인되는 점, 도난을 염려하여 직접 통장을 지니고 다녔던 피해자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피고인에게 이유 없이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까지 보태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피해자를 폭행, 협박 또는 고문까지 자행하여 직접 예금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으로 추론할 수도 있다.
피고인의 변소가 수긍할 만한 합리성이 있는지 여부는 그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 즉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에 대한 탄핵으로서 유효하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 있는데, '1차 인출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피고인인지' 및 '피해자 계좌 비밀번호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한 피고인의 변소는 객관적인 사실에 반하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피고인이 통장 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주운 시각에 관하여 '전날 저녁 8시경'이라고 진술하였다가 이를 번복한 것은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마지막 행적을 2002. 5. 21. 23:20경까지 확인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와 같이 답변하였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다) 그런데 현재의 형사소송제도 아래에서는 범죄사실이 있다는 증거는 검사가 제시하여야 하고, 피고인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것을 강제당하지 않게 되어 있는 만큼 피고인의 주장이 불합리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로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판단할 수는 없으며, 범죄사실의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갖게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12. 22. 선고 2004도7232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피해자가 실제로 평소 수첩을 사용하였을 가능성, 피해자가 그 수첩에 비밀번호 자체 또는 비밀번호를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기재하여 두었을 가능성6), 수첩에 복수의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거나 필체 등으로 숫자를 잘못 파악하는 바람에 1차 인출 초기에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였을 가능성, 피고인이 수첩에서 직접 비밀번호를 알아내었음에도 15년의 기간이 지남에 따라 비밀번호를 알게 된 경위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고,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객관적 반대사실이나 치열한 논증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 이상, 앞서 본 바와 같은 사정들만으로 단순한 논리적 추론이나 개연성을 넘어 그 자체로 무죄 추정의 원칙을 깨트리고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강도살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인정하기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 즉 고도의 개연성을 가지는 간접사실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1차 인출 사실 및 그 구체적인 경위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간접사실 중 하나로 평가함이 상당하다.
한편 환송판결의 기속력 관점에서 보면, 환송판결 이유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통장으로 예금을 인출하고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하였다는 간접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강도살인의 점에 관한 간접증거가 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라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였으므로, 그 기속력을 부인하기 위해서는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가 변동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증거, 혹은 적어도 피고인의 변소가 전제하고 있는 정황이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인데, '피해자가 당시 수첩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피해자가 계좌별로 비밀번호를 다르게 설정하고 있었는지', '피고인이 주장한 것 외에 피해자에 관한 다른 정보를 통해 1차 인출 당시의 비밀번호를 유추해 낼 가능성은 전혀 없었는지', '1차 인출 당시 피고인이 그 변소와 같이 은행 ARS 등을 통해 피해자 계좌의 잔액조회 등을 시도한 일이 있는지' 등 피고인의 변소가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증명할 만한 새로운 증거는 환송판결 이후에 전혀 제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환송판결의 기속력까지 적용하면 위 간접사실은 공소사실을 증명하는 간접사실로서 도부족한 증거가치를 지닐 것이다.
바. 나머지 증거로 인정되는 간접사실에 의한 공소사실 인정 여부
1) 피고인이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한 사실
피고인은 1차 인출 후 자주 가던 주점 여종업원인 AU에게 피해자의 역할을 맡아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하도록 부탁하였고, AU은 AS와 함께 2002. 6. 12.(피고인의 1차 인출로부터 약 20일이 지남) 부산 CZ 소재 C은행에 들어가, 은행 창구에서 피해자의 적금통장, 신분증을 이용하여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적금을 해지하고 이를 인출하였다(이하 '2차 인출'이라 한다). 당시 피고인은 현장 부근에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은행 청원경찰 역시 2차 인출 당시 은행 내부에서 피고인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검사는 통장 및 신분증을 분실하고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예금이 인출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사람이라면 은행에 분실 신고를 하는 것이 통상적이므로, 피고인이 1차 인출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분실 신고가 되어 있을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하였다는 것은, 피해자가 분실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는 분실신고를 할 수 없다는 사실, 나아가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검사의 위와 같은 추론도 가능하기는 하나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즉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여 사체를 유기한 범인이라면 이후 자신의 행적이 추가로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피해자와 자신의 연결점을 최대한 차단함으로써 검거를 피하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것인데, 현금 500만 원을 추가로 인출하기 위해 만일 검거되는 경우 이 사건 범행이 밝혀져 살인 내지 강도살인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피해자 대역을 요청하고 그 대역과 통화 내역까지 남기면서 적금 해지를 시도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이 유기한 사체가 발견되지 않는 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2차 인출을 시도하였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지만, 2차 인출에 실패하거나 그 과정에서 본인이나 피해자 대역 등의 신원이 드러나 검거되는 경우 피고인 자신에게 미칠 형사처벌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면 그러한 추가 범행에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2차 인출일(2002. 6. 12.) 직전에는 아래 [2차 인출 당시 수사 진행 상황]
기재와 같이 수사기관에 의한 탐문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수사기관이 추측하는 피고인과 피해자와의 관계, 피고인의 동선 등에 따르면 그 무렵 수사기관에 의한 대대적인 탐문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피고인 역시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더욱 그와 같은 의문이 든다.
[2차 인출 당시 수사 진행 상황]
① 2002. 5. 31. 피해자의 사체 발견 |
2002, 6. 1. 피해자의 신원 확인 및 피해자의 언니로부터 피해자의 소지 통장에 관한 진술 청취 ③ 2002. 6. 5. 1차 인출사실 확인 및 “(2차 인출) 적금 미출금 사실” 확인 (④) 2002, 6. 10. 피해자가 소지한 DR조합 정기적금 통장에 대한 지불중지 요청7) ⑤ 2002. 6. 10. 이후 1차 인출 용의자(결국 피고인으로 확인되었다) CCTV 사진이 담긴 전단지 배포 및 대대적인 탐문수사 개시 |
또한 '내가 예금을 인출하기는 하였지만, 그것 때문에 강도살인 혐의까지 받고 있다는 것은 몰랐고, 적금 해지가 문제가 되면 그 전에 인출했던 돈까지도 돌려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피고인의 변소가 객관적인 사실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볼 만한 다른 간접증거도 기록상 찾을 수 없다.
2)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 피해자에 대한 부검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074%로 측정되었는데, 수사기관은 이를 토대로 피해자가 술을 마신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사망하였음을 전제로 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환송 후 당심에 제출된 감정관의 진술을 청취한 수사보고의 요지는 '사체의 부패에 따라 내에 에틸알코올이 생성될 수 있고, 이렇게 생성된 에틸 알코올은 술로 인해 체내에 남아 있던 에틸알코올과 더하여져 혈중알코올농도로 측정된다'는 것이고, '부패로 인하여 체내에 에틸알코올이 생성될 때에는 엔프로필알코올이 함께 생성되므로, 체내에 있는 엔프로필알코올을 측정하여 그에 비례하는 양만큼의 에틸 알코올은 부패로 인해 생성된 것으로 보아 혈중알코올농도 계산에서 배제할 수 있는데, 이 사건 당시는 혈중알코올농도와 별도로 엔프로필알코올을 측정하는 방식이 도입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부검감정서에는 혈중알코올농도(에틸알코올)만이 기재되고 엔프로필 알코올이 별도로 기재되지 않았다'는 취지이다.
결국 위 수사보고에 의하여 추론할 수 있는 간접사실은 "피해자의 사체에서 측정된 혈중알코올농도 중 일부는 부패로 인하여 생성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따라서 피해자의 사망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74%보다는 낮았을 수 있다. 그러나 측정된 에틸 알코올 중 부패로 인하여 생성된 양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사망하는 시점에 술을 마신 상태였는지 여부 및 술을 마셨다면 어느 정도로 술을 마신 상태였는지는 알 수 없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 수사보고 내용에 의하여 '피해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사망하였으므로 범인이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은 그 개연성이 보다 감소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있으나, 검사의 주장과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거나 차량 트렁크에 피해자를 감금한 채 비밀번호를 알아내었을 개연성이 결정적으로 증가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3) 피고인의 당시 경제적 상황 및 2003년경 강도 범행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일정한 직업이 없었고, 상당한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는데도 일정한 수입원이 없었던 사실, 이 사건에 즈음하여 피해자의 예금을 인출하고 이어 위험을 무릅쓰고 대역까지 섭외하여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하고 돈을 찾았으며, 비슷한 시기에 가출청소년을 이용하여 성매매를 알선하기 시작한 사실, 특히 피고인이 이 사건 이후인 2003년경 여성을 대상으로 강도를 예비하거나 젊은 여성 피해자를 상대로 미리 준비한 흉기인 파도를 목에 들이대면서 피해자의 입과 손발을 청테이프로 묶어 반항을 억압한 다음 돈을 강취하고 피해자를 강간하려 하였고, 그와 같은 범죄사실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인정되고, 그러한 간접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이 당시 운용할 수 있는 소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악성을 드러내어 피해자를 대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한편 피고인이 당시 대출금을 연체하고 있었다거나 사금융 등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으로 변제를 독촉당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정황은 없고, 피고인이 이 사건 이전에는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었던 사람인 점, 피고인이 2003년경 저지른 강도범행과 이 사건 범행 사이에 범행 대상의 물색 방법, 청테이프를 사용한 결박 방법, 구체적인 범행 형태 등의 동일성까지는 확인되지 않은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간접사실로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 확신을 부여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4)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 제3자에 의한 범행가능성과 관련하여 2차 인출 영상에 관한 제보 이전 수사기관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었던 DH이 환송 후 당심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해자의 사망 전후의 자신의 행적에 관하여 증언하였는데, 그 내용은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로 조사를 받으면서 한 진술 내용과 상당 부분 같은 취지로 위 증인의 종전 진술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하였고, 2002. 5. 21. 이후 피해자에게 전화를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 일부 행적에 관하여는 통신사실 확인자료 등 객관적인 자료에 반하는 진술을 하고 있어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의 진술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신빙성에 여전히 의문이 있으며, DH이 수사기관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았을 당시 피해자를 살해하지 않았다는 답변에 관하여 '진실' 반응이 관찰되었다는 점, DH과 피고인이 이전에 알던 사이가 아니어서 두 사람이 함께 범행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는 점8) 외에는 피고인을 범인으로 볼 간접사실이 추가로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환송심이 판결문에서 언급한 '피고인 아닌 제3자가 이 사건 범행의 진범이라는 내용의 우편을 보낸 사람'에 대한 참고인 진술조서는 그 요지가 '1차 인출 영상에 나온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임을 확신한다'라는 취지인데, 피고인은 이미 검찰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당시부터 위 영상에 나온 사람이 자신임을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위 참고인의 제보 자체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유·뮤죄의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5) 피고인의 차량에서 발견된 '오래된 얼룩'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운행하던 차량 뒷좌석에서 검붉은 색 얼룩이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된 사실이 인정되고, 위 얼룩이 피고인이 차량을 운행하던 당시 생긴 것일 가능성은 있으나, 여러 군데 자상을 입은 피해자가 흘렸을 것으로 예상되는 피의 양이 이 얼룩의 형상에 부합하는지 등 추가적인 사항이 전혀 밝혀지지 않아 위 얼룩이 핏자국인지 여부, 핏자국이라면 범행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이는 피고인의 범행을 인정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간접사실에 불과하고, 차량의 매수인이 표현한 얼룩의 위치로 볼 때 트렁크에 있던 피가 번진 것으로 보기도 어려워 E의 진술 등 다른 간접 증거에 증명력을 추가하는 내용의 증거가치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6) 그 외 피고인의 의심되는 언동 2016. 5.경 피고인이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관한 것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였는데, 그 즈음 'S'에서 이 사건이 소개되었으므로 피고인이 방송을 보고 자신의 범행에 관하여 확인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점, 피고인의 기도수첩에서 "CU"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이 사건 피해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점, 피고인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검사의 "나에게 '최고의 선택을 하면 형량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사실이 있지 않냐"라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는데, 피고인이 수사기관을 상대로 '범행을 자백하는 경우의 구형'을 확인하고자 시도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점, 피고인이 검찰 제1회 피의자신문 당시 "피해자를 모신 절에 가 보고 싶다"라고 말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 그러나 한편 기록상 피고인이 'S' 방송을 시청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고, '살인죄 공소시효', '살인 공소시효 폐지' 외에 이 사건을 특정할 만한 사항에 관하여도 함께 검색하였다는 사실까지 확인되지는 않은 점, 피고인은 자신의 기도수첩에 기재된 "피해자"는 2003년경 저지른 강도 범행의 피해자를 의미한다고 변소하고 있고, 달리 피고인의 변소에 반대되는 정황을 찾을 수 없는 점, 설령 피고인이 검사에게 '자백하는 경우 양형'을 물어 본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었고, 수사경찰 및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확신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스스로 무고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백하는 것이 최선인지, 무죄 주장을 포기하고 범행을 자백한다면 양형에서라도 선처를 받을 수 있는지 등에 관하여 확인하고 싶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피고인이 원심 피고인신문 당시 해명한 '피해자가 있는 절에 가 보고 싶다'라고 말한 이유가 터무니없다고 보이지도 않는 점 등의 반대되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앞서 설시한 의심되는 행동이나 언동에 의하여 인정되는 간접사실이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을 증명할 수 있는 간접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7) 그 밖의 정황 그 외에 이 사건 직후인 2002년 6월경 피고인과 동거한 적이 있는 N이 '피고인은 평소 폭력적이었고, 차량에 파도를 넣어 다니면서 자신을 위협하기도 하였으며, 한 번은 도망가려다 잡혔을 때 끈으로 자신을 묶기도 하였다고 진술한 점,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의 성향 및 행동을 분석한 보고서에 의하면 피고인이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 점 등의 사정은 피고인의 평소 성행에 대한 자료는 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관한 유죄의 증거로서의 증거가치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사. 종합판단
1)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검사의 증명이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설령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어 유죄의 의심이 가는 등의 사정이 있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 헌법상의 원칙이고, 간접사실에 의한 유죄의 인정 역시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보아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하여 직접증거가 존재하는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1549 판결 등 참조).
2)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살피건대, 피고인은 강도살인의 범행을 저지른 바가 전혀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고 그에 관한 직접증거는 없다.
3) 원심이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은 증거 중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증거에 해당하는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한 자백 내지 자인 언동'을 내용으로 하는 조사자 증언, 검찰수사관 진술기재 등의 증거는 그 내용을 이루는 피고인의 진술이 적법한 조사절차에 따라 진술한 것이라거나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증거능력이 없다.
4)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하였다는 간접사실을 추단할 수 있는 주요한 간접증거인 '(피해자의 사체가 포장된 것과 비슷한 형태의) 마대자루를 피고인과 함께 차에 신고 내린 적이 있다'는 E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진술은 ⓐ 최초 진술 과정의 불명 확성 등 신빙성에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있고, ⑤ 간접사실 중 일부에 대하여만 진술하고 있어 증거가치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 환송판결 이후 그 진술의 신빙성을 높일 정도의 증거가 새로 제출되지도 않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증거로 삼을 수 없다.
5) 1차 인출 경위에 관한 간접사실을 살펴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강도살인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들이 있고, 이에 관한 피고인의 합리적이지 못한 변명은 이러한 의심을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과 관련 없이 1차 인출을 할 수 있었을 가능성 역시 존재하고, 이를 객관적인 증거와 논증을 통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배제할 수 없는 이상, 1차 인출 그 자체로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어 피고인의 범행이 아닐 여지가 확실하게 배제되었다고 인정할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가지지는 못한다. 이 부분 간접사실에 관한 환송판결의 기속력을 감안하면 더욱 그 증거가치는 부족하다.
6) 그 밖에 검사가 환송 후 당심에서 새롭게 제출한 증거를 포함한 나머지 증거능력 있는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나머지 간접사실들, 즉 2차 인출 경위, 피해자의 혈중 알코올농도, 피고인의 당시 경제적 상황 및 동종 범죄 전력, 피고인의 차량에서 발견된 얼룩, 그 밖에 피고인의 의심되는 행동이나 발언들까지 모두 종합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직접증거가 존재하는 경우에 버금갈 정도의 증명력을 가지는 간접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앞서 인정된 간접사실들과 이들 간접증거들 모두를 상호 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보더라도 단독으로 가지지 못하는 유죄의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7) 결국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 대한 무죄의 추정이 직접증거가 존재할 경우에 버금가는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번복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고 할 것이고,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 및 변호인의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주장은 이유 있다.
6.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피고인과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아래와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위 제1항과 같다. 이는 위 제5항에서 본 바와 같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에 따라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판사
재판장판사김문관
판사손주희
판사김덕교
주석
1) 조사경찰관 F이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자백하거나 자신의 유죄를 예상하는 듯한 발인을 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을 기재한 각 수사보고(증거목록 순번 191, 197, 217) 중 피고인의 진술이 기재된 부분을 포함한다. 위 각 수사보고는 원심 판결문에 유죄의 증거로 거시되지는 않았으나, 보다 직접적인 증거인 원심 증인 F의 진술 중 피고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부분을 유죄의 증거로 거시함에 따라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2) 피고인 아닌 자가 수사과정에서 진술서를 작성하였지만 수사기관이 그에 대한 조사과정을 기록하지 아니하여 형사소송법 제244조의4 제3항, 제1항에서 정한 절차를 위반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수사과정에서 진술서가 작성되었다 할 수 없으므로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3도3790 판결 등 참조).
3) 물론 피고인과 함께 마대자루를 옮겼다는 E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E이 그 날짜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마대자루의 내용물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으므로, ① 2002. 6. 초순경까지 약 한 달 정도 피고인의 집에서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 E이 '피해자의 최종 통화시점인 2002. 5. 21. 23:20 이후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된 날인 2002. 5. 31.까지' 사이에 피고인과 함께 마대자루를 옮겼다는 사실, ②) 그 마대자루에 '피해자의 사체'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 등이 추가로 추단되어야 될 것이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예금을 인출한 당사자인 점, 피해자가 2002. 5. 31. 마대자루에 담긴 사체로 발견된 점, 피고인이 사체 외에 다른 물건을 마대자루로 옮겼을 정황은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다른 간접증거들과 종합한다면 그러한 추단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4) 2차 인출에 가담한 AS는 피의자로 입건되어 조사받았다.
5) 피해자에 대한 사체검안서를 작성한 법의관 AB는 피해자의 사망 시각을 2002. 5. 22. 새벽으로 추정하였으나, 이는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피해자의 행적을 참고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이고, 수중에서 부패된 사체의 특성상 사체의 온도 등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 사망시각이 추론된 것은 아니며, 달리 피해자의 정확한 사망시각을 알 수 있는 근거는 기록상 확인할 수 없다.
6) 피해자가 당시 사용 중이던 은행 계좌가 여러 개인데, 1차 인출 대상인 예금계좌와 2차 인출 대상인 적금계좌의 비밀번호는 서로 다르고, 나머지 계좌의 비밀번호에 관하여는 기록상 밝혀지지 않았지만, 계좌별로 비밀번호를 다르게 설정하였다면 피해자 스스로 이를 다시 기억해낼 수 있는 단서를 수첩에 적어놓았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7) 당시 경찰은 2차 인출의 대상이 된 적금통장에 대하여는 위와 같은 지불중지요청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별도로 적금해지를 시도하는 사람을 검거하기 위한 유기적인 협조체제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경찰이 그러한 협조체제를 갖추었다면 피고인과 피고인이 구한 대역 등(AU, AS)의 검거가 가능했을 것이고, 그 경우 지금은 사망한 AU의 진술이나 E의 생생한 진술, 피고인이 사용한 휴대전화의 통화내역, 기지국 추적 등을 토대로 현재와는 다른 추가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8) 수사기관이 피고인을 이 사건 강도살인 범행의 범인으로 확신했다고 하더라도, 종전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DH이 피고인과 아는 사이라는 피고인 조카 Q의 경찰진술은 피고인의 단독범행 내지 공동범행 여부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정이라 할 것인데, 검찰 송치 이후 이에 관한 어떠한 조사내역이 없고, 환송 후 당심의 석명을 거쳐서야 "피고인과 DH은 모르는 사이이고, 검찰 송치 후 경찰관이 Q의 위 진술이 착오임을 확인하였으나 검찰에 그 내용을 추송하지는 않았고 검찰에 구두보고했는지는 기억이 없다"는 내용만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