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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성년후견인이 의사무능력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지 여부〉[공2023하,1598]
판시사항

[1]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이 명문의 규정 없이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 이는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되어 있거나 성년후견개시심판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성년후견인이 소송행위를 할 때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더라도 마찬가지인지 여부(적극)

[2] 피고인이 자전거를 운행하던 중 전방주시의무를 게을리하여 보행자인 피해자 갑을 들이받아 중상해를 입게 하였다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의 공소사실로 기소되었고, 위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갑에 대하여 성년후견이 개시되어 성년후견인으로 갑의 법률상 배우자 을이 선임되었는데, 을이 피고인 측으로부터 합의금을 수령한 후 제1심 판결선고 전에 갑을 대리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한 사안에서, 위 특례법 제3조 제2항 에서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범한 업무상과실치상죄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여 문언상 그 처벌 여부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달려 있음이 명백하므로, 을이 갑을 대신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형성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의 문언에 반한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다수의견]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이는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되어 있거나 성년후견개시심판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성년후견인이 소송행위를 할 때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가) 형사소송절차 규정을 해석·적용할 때에는 절차적 안정성과 명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에 충실한 해석이 필수적이다. 특히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사와 같이 소송조건과 관련된 규정은 국가소추권·형벌권 발동의 기본 전제가 되므로, 형사소송절차의 명확성과 안정성,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법문에 충실한 해석의 필요성이 무엇보다 크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에 따르면,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범한 형법 제268조 의 업무상과실치상죄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므로, 문언상 그 처벌 여부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달려 있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제3자가 피해자를 대신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형성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의 문언에 반한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물론 형법·형사소송법에도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에 관하여 대리가 가능하다거나 법정대리인의 대리권에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표시가 포함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는 원칙적으로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나) 형사사법의 목적과 보호적 기능, 국가소추주의 내지 국가형벌독점주의에 대한 예외로서 반의사불벌죄의 지위 등을 감안하면, 반의사불벌죄에서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처벌희망의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의사결정 그 자체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피해자 본인이 하여야 한다.

범죄행위를 하여 처벌을 받아야 할 자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 있음을 전제로 그에 상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형사사법의 보호적 기능을 담보하기 위하여 현행법은 국가소추주의 내지 국가형벌독점주의를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반의사불벌죄는 특정 유형의 범죄에 관하여 피해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취지에서 특별히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를 소극적 소추조건으로 규정한 것인바, 이는 우리 법질서가 사인의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개입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법이 예정한 범위나 정도를 벗어나 사인의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개입을 확대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형사사법의 보호적 기능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국가형벌권이 불공평하게 행사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반의사불벌죄를 해석할 때에는 피해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국가의 공적인 형벌기능이 좌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국가소추권·형벌권의 공평한 행사, 법익보호와 책임원칙이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까지 고려하여야 한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만으로 이미 개시된 국가의 형사사법절차가 일방적으로 중단·소멸되는 강력한 법률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도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기한 것이어야 한다.

처벌불원에 관한 법정대리인의 의사표시를 피해자 본인의 의사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법정대리인의 의사표시는 그 자체로 피해자의 의사가 아닐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한다는 점에 관한 담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는 입법적 근거 없이 타인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대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일신전속적인 특성을 가진다.

(다) 형사소송법은 친고죄의 고소 및 고소취소와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를 달리 규정하였으므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는 친고죄의 고소 또는 고소취소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은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하여, 고소권자에 관한 규정( 제223조 내지 제229조 ), 친고죄의 고소기간에 관한 규정( 제230조 ), 고소취소의 시한과 재고소의 금지에 관한 규정( 제232조 제1항 , 제2항 ), 불가분에 관한 규정( 제233조 ) 등 다수의 조문을 두고 있다. 특히 형사소송법 제236조 는 “고소 또는 그 취소는 대리인으로 하여금 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하여 대리에 의한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한 명시적 근거규정을 두었다. 반면 반의사불벌죄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3항 에서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한 경우에도 제1항 제2항 을 준용한다.”라고 하여 고소취소의 시한과 재고소의 금지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는 규정 하나만을 두었을 뿐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에 대하여는 대리에 관한 근거규정을 두지 않았고, 대리에 의한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236조 를 준용하는 근거규정도 두지 않았다.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의사가 소추조건이 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소추조건으로 하는 이유·방법·효과는 같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처벌 여부에 관한 피해자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 친고죄는 불처벌을, 반의사불벌죄는 처벌을 원칙으로 하도록 형사소송법이 달리 취급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이 친고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에 관하여 고소취소의 시한과 재고소의 금지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는 규정 외에 다른 근거규정이나 준용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이러한 반의사불벌죄의 특성을 고려하여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한 규정에서 규율하는 법원칙을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법적 결단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피해자가 아닌 제3자에 의한 고소 및 고소취소 또는 처벌불원의사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의 성질상 차이 외에 입법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 의사결정 자체는 피해자 본인이 해야 한다는 입법자의 결단이 드러난 것으로, 피해자 본인의 진실한 의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함부로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가 있는 것으로 추단해서는 아니 됨을 의미한다.

(라) 민법상 성년후견인이 형사소송절차에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대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피해자 본인을 위한 후견적 역할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없다.

피해자를 사건본인으로 하는 성년후견개시심판과 피고인 또는 피의자를 당사자로 하는 형사소송절차는 완전히 별개의 절차로, 가정법원에 의한 성년후견인 선임은 형사소송절차에 대한 별도의 고려 없이 가사재판이 추구하는 가치를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형사소송절차에서 반의사불벌죄에 대한 처벌불원의사에까지 성년후견인에게 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피해자 보호를 비롯한 형사사법이 추구하는 보호적 기능의 구현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에 역행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범죄에서 피해자와의 합의 내지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는 유리한 양형참작사유에 해당할 여지가 있으므로, 피고인이나 피의자는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는 적극적인 유인이 있고, 이러한 합의는 성년후견인을 통해서도 당연히 가능하다. 그러나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진실한 처벌불원의사가 확인되지 않음에도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의사의 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닌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이익·관점에 지나치게 경도된 것이다.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사로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이 중단되는 것은 그것이 ‘피해자’의 의사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찾을 수 있으므로,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인 상황에서 성년후견인이 처벌불원의사를 대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피해자 복리·보호에 부합한다고 추단할 수는 없다.

(마)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 등 당사자 사이에 사적인 분쟁해결을 촉진하고 존중하려는 취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의 존부에 지나치게 무게중심을 두는 형사사법절차는 현실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같은 사회적 갈등이나 추가적인 법적 분쟁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행위가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가혹함으로 치부되어,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원치 않는 의사표시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3. 7. 1. 시행된 대법원 양형기준은 ‘처벌불원’ 또는 ‘합의’의 지위를 범죄별로 차등하여 규정하고, 정의 규정을 새롭게 정비함으로써 처벌불원과 합의의 양형인자로서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세분화하였다. 새로 시행된 형사공탁제도는 인적사항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공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의 보호라는 형사사법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피해회복과 유리한 양형인자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까지 고려하면, 양형기준을 포함한 현행 형사사법 체계 아래에서 성년후견인이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합의를 한 경우에는 이를 소극적인 소추조건이 아니라 양형인자로서 고려하면 충분하다.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이흥구, 대법관 오경미의 반대의견] (가) 형사소송법은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의사능력이 결여된 경우 처벌불원 의사표시에 관하여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법률 흠결상태이다.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인 경우에도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을 구현하고 피해자의 복리·보호를 위하여 제3자가 피해자의 의사를 지원·보완하는 방법을 통해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들을 유추적용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그것이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을 존중하여 가능한 최대한도에서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새롭게 도입된 성년후견제도의 취지를 반영하는 해석이다.

따라서 반의사불벌죄에서 의사능력이 없는 피해자에게 성년후견이 개시되어 있는 경우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 형사소송법이 피해자의 의사무능력에 관하여 그 대리에 관한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보충이 필요한 법률의 흠결에 해당한다.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표시의 허용은 피고인에게 불리하지 않으므로 유추해석을 허용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에 반하지 않는다. 다수의견은 형사소송법상의 법률의 흠결을 입법정책 내지 입법재량으로만 이해하고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유추해석의 필요성과 허용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파악하였다. 그러한 해석론은 피해자의 생활반경을 극히 제한적인 영역으로만 한정하면서 성년후견제도의 이용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피해자의 복리와 보호를 후퇴시키고 소극적 소송조건을 부당하게 축소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되어 타당하지 않다.

(다) 성년후견인에 의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에의 지원·보완은 관련 민법 규정들과 성년후견제도에 의하여 허용된다.

의사결정능력이 제한되거나 상실된 사람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지원·보완하는 것은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을 비롯하여 국민의 헌법상의 권리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형사재판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보호에서 제외될 수 없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인지능력을 상실한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과 가해자를 피고인으로 하는 형사소송 등 여러 법률적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데 위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은 피해를 입게 된 원인인 역사적 사실이 서로 동일한 점, 따라서 인지능력을 상실한 피해자를 대신하여 각 소송을 수행하는 성년후견인으로서는 민사와 형사를 분리하여 각 소송별로 독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이들을 통틀어 일체로 파악하여 총체적·전체적 관점에서 피해자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각 소송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민사소송에서든 형사소송에서든 성년후견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최선의 이익이라는 동일한 지향점 위에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양자를 분리하여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손해배상금을 수령하는 행위와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는 행위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전체적으로 피해자를 법률분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절차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때 가정법원은 후견감독기관으로서 각 행위를 위한 허가재판에서 피해자의 의사능력결여 정도와 피해자복리 적합성을 심리하여 재판한다. 가정법원의 성년후견심판과 형사재판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견해는 동의하기 어렵다.

개인의 신상에 관한 의사결정이 본인의 진실된 의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반대의견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예상하지 못한 사유로 의사능력을 상실할 수 있고 그때에도 여전히 결정하여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 성년후견인에 의한 의사결정권의 지원·보완은 제3자에 의한 의사결정의 대행·대체가 아니라 본인의사에 관한 진지하고 철저한 탐구·확인을 통하여 가정법원이 선임한 공적 지위의 성년후견인으로 하여금 본인의사가 실질적으로 실현된 것과 동일한 법률적 효과를 지향하고 그 과정에서도 법원의 후견감독기능을 개입시켜 본인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담보하려는 것이다. 다수의견이 우려하는 피해자 복리와의 충돌, 피해자 의사의 무력화 등의 위험은 가정법원의 허가재판에서 걸러지게 될 것이다.

(라) 다수의견은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한 처벌불원의사 내지 형사합의는 양형참작사정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손해배상금을 수령하는 행위를 피해변제로 참작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반대의견도 이견이 없다. 피해변제의 측면에서 형사공탁제도의 취지와 도입배경에 관한 다수의견의 이해 역시 이를 다투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 본인의 진정한 의사’에 기하여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다. 다수의견이 가해자를 용서하고 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결정은 의사능력을 갖춘 피해자 본인에 의하여만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처벌불원서를 양형참작사정으로서 적법유효한 처벌불원의사로 취급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러한 시각은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의 처벌불원의사와 양형요소로서 기능할 수 있는 처벌불원의사의 의미를 이원적으로 파악하는 것인데 그와 같은 이원적 취급의 근거를 알기 어렵다. ‘처벌불원의사’의 의미를 형사소송절차 전반에 걸쳐 동일하게 새겨야 하는 것이 타당함은 다언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처벌불원의사’의 소송절차상의 지위나 기능을 그 절차적 특성이나 심리의 단계에 따라 다르게 파악하는 것은 ‘처벌불원의사’의 개념을 정의한 이후에 비로소 논의될 성질의 문제이다. 다수의견은 ‘처벌불원의사’의 의미를 심리절차에 따라 다르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피해자 본인의 진실한 의사에 따른 처벌불원서가 항소심에서 제출되는 경우 양형참작사정으로 인정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할 것이다.

[2] 피고인이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운행하던 중 전방주시의무를 게을리하여 보행자인 피해자 갑을 들이받아 중상해를 입게 하였다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의 공소사실로 기소되었고, 위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갑에 대하여 성년후견이 개시되어 성년후견인으로 갑의 법률상 배우자 을이 선임되었는데, 을이 피고인 측으로부터 합의금을 수령한 후 제1심 판결선고 전에 갑을 대리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한 사안에서, 위 특례법 제3조 제2항 에서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범한 업무상과실치상죄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여 문언상 그 처벌 여부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달려 있음이 명백하므로, 갑의 성년후견인인 을이 갑을 대신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형성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의 문언에 반한다는 이유로, 같은 취지에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법무법인 정세 담당변호사 최진환 외 1인

원심판결

수원지법 2021. 8. 11. 선고 2020노7245 판결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건의 개요와 쟁점

가.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18. 11. 19. 자전거를 운행하던 중 전방주시의무를 게을리하여 진행한 과실로 전방에서 보행하고 있던 피해자 공소외 1(남, 69세)을 보지 못하고 자전거 앞바퀴 부분으로 피해자를 들이받아 넘어지게 하였다. 결국 피고인은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에게 열린 두개 내 상처가 없는 미만성 뇌손상 등의 중상해를 입게 하였다.

나. 성년후견인의 처벌불원 의사표시

1) 피해자는 위 사고로 의식불명이 되었고 치료를 받던 중인 2019. 6. 14.경 담당의사로부터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라는 취지의 진단을 받았다. 피해자는 제1심 변론종결일 무렵인 2020. 9. 21.경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2) 피해자에 대하여 2019. 6. 20. 수원가정법원 2019느단50598 심판 으로 성년후견이 개시되면서 성년후견인으로 피해자의 법률상 배우자인 공소외 2가 선임되었다. 위 법원은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의 범위에 ‘소송행위’를 포함시키고 그 대리권 행사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정하였다.

3) 공소외 2는 피고인 측으로부터 합의금을 수령한 후 제1심 판결선고 전인 2020. 11. 10. 제1심법원에 “피해자는 4,000만 원을 지급받고 피고인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서면을 제출하였다.

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형사소송절차에서는 명문의 규정이 없으면 소송행위의 법정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의사능력이 없더라도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반의사불벌죄에 관해서 피해자를 대리하거나 독립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거나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면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라.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반의사불벌죄에 관하여 처벌불원의사나 처벌희망 의사표시의 철회를 결정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2. 대법원의 판단

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제3조 제1항 에서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 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면서, 같은 조 제2항 에서 “차의 교통으로 제1항 의 죄 중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운전자에 대하여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정하여 차의 교통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이른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이는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되어 있거나 성년후견개시심판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성년후견인이 소송행위를 할 때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나. 구체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1) 법의 문언적·합리적 해석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형사소송법의 문언상 처벌을 원하지 아니하는 의사결정 자체는 피해자가 하여야 하고 대리될 수 없다.

가) 형사소송절차 규정을 해석·적용할 때에는 절차적 안정성과 명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에 충실한 해석이 필수적이다. 특히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사와 같이 소송조건과 관련된 규정은 국가소추권·형벌권 발동의 기본 전제가 되므로, 형사소송절차의 명확성과 안정성,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법문에 충실한 해석의 필요성이 무엇보다 크다 .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에 따르면,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범한 형법 제268조 의 업무상과실치상죄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므로, 문언상 그 처벌 여부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달려 있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제3자가 피해자를 대신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형성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의 문언에 반한다 .

나) 형벌법규를 해석할 때 피고인에게 유리한 경우에는 유추해석이나 확장해석이 가능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문언의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은 그렇게 해석하지 아니하면 그 결과가 현저히 형평과 정의에 반하거나 심각한 불합리가 초래되는 경우에만 가능하고, 그렇지 않다면 나름의 근거와 합리성을 가진 입법자의 재량을 존중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4도4049 판결 등 참조).

어떤 범죄를 친고죄 또는 반의사불벌죄로 정할 것인지는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가 인정되고( 헌법재판소 2021. 4. 29. 선고 2018헌바11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처벌불원의사에 관하여 의사능력만을 요구할 것인지 여부( 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또는 불가분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 의사의 효력에 제한을 가할 것인지 여부(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도1689 판결 등 참조) 등 반의사불벌죄의 요건과 효과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입법정책의 문제에 해당한다. 처벌불원의사의 형성 및 표시에 관하여 법정대리인에 의한 대리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형사소송절차의 소송능력은 의사능력만 있으면 원칙적으로 인정되는바( 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은 형사소송절차의 독자적인 원리는 자기책임의 원칙 또는 실체적 진실 발견의 원칙에 기인한 것이므로, 형사소송절차에서 소송행위는 근본적으로 ‘대리’와 친하지 않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물론 형법·형사소송법에도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에 관하여 대리가 가능하다거나 법정대리인의 대리권에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표시가 포함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는 원칙적으로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

2)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 의사의 우선성

형사사법의 목적과 보호적 기능, 국가소추주의 내지 국가형벌독점주의에 대한 예외로서 반의사불벌죄의 지위 등을 감안하면, 반의사불벌죄에서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처벌희망의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의사결정 그 자체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피해자 본인이 하여야 한다 .

가) 범죄행위를 하여 처벌을 받아야 할 자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 있음을 전제로 그에 상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형사사법의 보호적 기능을 담보하기 위하여 현행법은 국가소추주의 내지 국가형벌독점주의를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

그런데 반의사불벌죄는 특정 유형의 범죄에 관하여 피해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취지에서 특별히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를 소극적 소추조건으로 규정한 것인바, 이는 우리 법질서가 사인의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개입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법이 예정한 범위나 정도를 벗어나 사인의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개입을 확대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형사사법의 보호적 기능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국가형벌권이 불공평하게 행사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반의사불벌죄를 해석할 때에는 피해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국가의 공적인 형벌기능이 좌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국가소추권·형벌권의 공평한 행사, 법익보호와 책임원칙이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까지 고려하여야 한다 .

나)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만으로 이미 개시된 국가의 형사사법절차가 일방적으로 중단·소멸되는 강력한 법률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도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기한 것이어야 한다 .

따라서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경우, 그러한 피해자의 의사는 흠이 없는 진실한 것이어야 하고,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대법원 2001. 6. 15. 선고 2001도1809 판결 등 참조). 법원이 피해자의 나이, 지능, 지적 수준, 발달성숙도 및 사회적응력 등에 비추어 피해자에게 범죄의 의미, 피해를 당한 정황,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 또는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의 철회가 가지는 의미·내용·효과 등을 이해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의사표시가 진실한 것인지를 세밀하고 신중하게 조사·판단하여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반의사불벌죄에 대한 처벌불원의사는 친고죄의 고소와 달리 공범자 간 불가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도1689 판결 등 참조), 피고인 또는 피의자 각자의 처벌 여부에 대한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 확인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 처벌불원에 관한 법정대리인의 의사표시를 피해자 본인의 의사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법정대리인의 의사표시는 그 자체로 피해자의 의사가 아닐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한다는 점에 관한 담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는 입법적 근거 없이 타인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대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일신전속적인 특성을 가진다 . 대법원이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을 통하여 처벌불원 의사표시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법정대리인이 밝힌 처벌불원의 의사표시에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를 심리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도11859 판결 , 대법원 2010. 5. 13. 선고 2009도5658 판결 등 참조).

3)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의 준별

형사소송법은 친고죄의 고소 및 고소취소와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를 달리 규정하였으므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는 친고죄의 고소 또는 고소취소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

가) 형사소송법은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하여, 고소권자에 관한 규정( 제223조 내지 제229조 ), 친고죄의 고소기간에 관한 규정( 제230조 ), 고소취소의 시한과 재고소의 금지에 관한 규정( 제232조 제1항 , 제2항 ), 불가분에 관한 규정( 제233조 ) 등 다수의 조문을 두고 있다. 특히 형사소송법 제236조 는 “고소 또는 그 취소는 대리인으로 하여금 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하여 대리에 의한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한 명시적 근거규정을 두었다 .

반면 반의사불벌죄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3항 에서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한 경우에도 제1항 제2항 을 준용한다.”라고 하여 고소취소의 시한과 재고소의 금지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는 규정 하나만을 두었을 뿐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에 대하여는 대리에 관한 근거규정을 두지 않았고, 대리에 의한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236조 를 준용하는 근거규정도 두지 않았다 .

나)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의사가 소추조건이 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소추조건으로 하는 이유·방법·효과는 같다고 할 수 없다 . 반의사불벌죄는 비교적 경미하고 주로 피해자 개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에 관하여 피해자의 의사·감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처벌할 필요가 없는 것 중 법익침해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 경미하여 처벌의 필요성이 적지 않은데도 이를 친고죄로 하는 경우 피해자가 심리적 압박감이나 후환이 두려워 고소를 주저하여 법이 그 기능을 다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비한 것이므로(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도1689 판결 등 참조), 피해자에 대한 형사사법적인 보호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처벌 여부에 관한 피해자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 친고죄는 불처벌을, 반의사불벌죄는 처벌을 원칙으로 하도록 형사소송법이 달리 취급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형사소송법이 친고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에 관하여 고소취소의 시한과 재고소의 금지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는 규정 외에 다른 근거규정이나 준용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이러한 반의사불벌죄의 특성을 고려하여 고소 및 고소취소에 관한 규정에서 규율하는 법원칙을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법적 결단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

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이 반의사불벌죄에 대하여 고소취소의 시한과 재고소의 금지에 관한 규정( 제232조 제1항 , 제2항 )을 준용하는 규정( 제232조 제3항 )을 두면서도 고소와 고소취소의 불가분에 관한 규정( 제233조 )을 준용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처벌불원의사에 대하여 친고죄와 달리 공범자 간에 불가분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자 함에 있다고 볼 것이지 입법의 불비로 볼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도1689 판결 등 참조). 이는 대법원도 형사소송법의 체계·내용에서 알 수 있는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의 준별이 단순한 입법적 흠결이 아니라 입법자의 결단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라) 피해자가 아닌 제3자에 의한 고소 및 고소취소 또는 처벌불원의사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의 성질상 차이 외에 입법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 즉, 형사소송법은 고소에 관하여는 피해자 본인( 제223조 ) 외에도, 법정대리인( 제225조 제1항 ),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그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 제225조 제2항 ), 사자명예훼손죄의 경우 그 친족·자손( 제227조 ), 지정고소권자( 제228조 ) 등 다수의 제3자에게 고소권을 인정하고, 대리에 의한 고소 및 고소취소( 제236조 )를 인정하면서도 반의사불벌죄에 관하여는 피해자 외에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는 사람을 별도로 정하지 않았고, 대리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허용하는 근거규정이나 대리고소에 관한 제236조 를 준용하는 규정을 두지 않았다. 이는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 의사결정 자체는 피해자 본인이 해야 한다는 입법자의 결단이 드러난 것으로, 피해자 본인의 진실한 의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함부로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가 있는 것으로 추단해서는 아니 됨을 의미한다 .

4)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의사 대리의 한계

민법상 성년후견인이 형사소송절차에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대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피해자 본인을 위한 후견적 역할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없다 .

가) 피해자를 사건본인으로 하는 성년후견개시심판과 피고인 또는 피의자를 당사자로 하는 형사소송절차는 완전히 별개의 절차로, 가정법원에 의한 성년후견인 선임은 형사소송절차에 대한 별도의 고려 없이 가사재판이 추구하는 가치를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형사소송절차에서 반의사불벌죄에 대한 처벌불원의사에까지 성년후견인에게 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피해자 보호를 비롯한 형사사법이 추구하는 보호적 기능의 구현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에 역행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

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범죄에서 피해자와의 합의 내지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는 유리한 양형참작사유에 해당할 여지가 있으므로, 피고인이나 피의자는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는 적극적인 유인이 있고, 이러한 합의는 성년후견인을 통해서도 당연히 가능하다. 그러나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진실한 처벌불원의사가 확인되지 않음에도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의사의 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닌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이익·관점에 지나치게 경도된 것이다 .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범죄에서는 성년후견인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단지 유리한 양형참작사유를 마련하는 것에 그치지만 반의사불벌죄에서는 소추조건 자체를 흠결시킴으로써 국가형벌기능을 아예 중단·소멸시키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의사의 대리를 허용하지 않더라도 현행 양형기준 제도하에서 피해자 복리나 보호의 관점에 특별한 문제가 생긴다거나 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다)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사로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이 중단되는 것은 그것이 ‘피해자’의 의사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찾을 수 있으므로,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인 상황에서 성년후견인이 처벌불원의사를 대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피해자 복리·보호에 부합한다고 추단할 수는 없다 . 범죄로 인하여 원치 않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는 민사소송절차를 통한 손해배상이나 금전적·경제적 보상과 함께 형사소송절차를 통한 정당한 형사처벌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범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의 경우에는 그 법적 성질 및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비추어 더욱 그러할 것인데, 성년후견인을 통한 신속한 피해보상과 분쟁해결이 형사처벌에 관한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피해자의 진정한 복리나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처벌불원의사에는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항 에 따른 고소취소 및 재고소금지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므로, 피해자가 의사무능력 상태여서 진실한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였다가 이후 피해자가 의사능력을 회복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다시 희망하더라도 성년후견인이 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피해자를 위한 성년후견인의 대리행위의 범위가 형사소송절차에까지 확대될 경우에는 피해자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반의사불벌죄에서 오히려 피해자의 의사를 무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를 위한 후견적 기능에 역행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라) 형사사법은 국가형벌권의 발생요건인 범죄와 그 법적 효과인 형벌을 규율하고, 국가형벌권의 구체적 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절차를 정함으로써 국가의 공정한 형벌권 행사를 통해 법익보호와 질서유지라는 공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피성년후견인의 복리·보호라는 개인적 차원의 목적을 위하여 행위능력의 보완 또는 법률관계의 조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성년후견제도의 취지를 가사절차가 아닌 형사사법절차에서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인지는 형사사법절차가 가지는 고유한 가치와 법리에 근거한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이와 달리 보는 것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인 소송절차의 진행을 목적으로 하는 민사소송의 이념 및 이를 구현하는 가사재판의 가치와 법리를 형사재판의 영역에까지 무비판적으로 확대·수용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5) 소극적 소송조건이 아닌 양형인자로서의 ‘합의’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 등 당사자 사이에 사적인 분쟁해결을 촉진하고 존중하려는 취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의 존부에 지나치게 무게중심을 두는 형사사법절차는 현실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같은 사회적 갈등이나 추가적인 법적 분쟁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행위가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가혹함으로 치부되어,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원치 않는 의사표시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23. 7. 1. 시행된 대법원 양형기준은 ‘처벌불원’ 또는 ‘합의’의 지위를 범죄별로 차등하여 규정하고, 정의 규정을 새롭게 정비함으로써 처벌불원과 합의의 양형인자로서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세분화하였다. 새로 시행된 형사공탁제도는 인적사항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공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의 보호라는 형사사법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피해회복과 유리한 양형인자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까지 고려하면, 양형기준을 포함한 현행 형사사법 체계 아래에서 성년후견인이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합의를 한 경우에는 이를 소극적인 소추조건이 아니라 양형인자로서 고려하면 충분하다 .

3. 이 사건에 관한 판단

원심판결 이유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가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4.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이흥구, 대법관 오경미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천대엽의 보충의견, 그리고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이 있다.

5.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이흥구, 대법관 오경미의 반대의견

가. 반대의견의 요지

형사소송법은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의사능력이 결여된 경우 처벌불원 의사표시에 관하여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법률 흠결상태이다.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인 경우에도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을 구현하고 피해자의 복리·보호를 위하여 제3자가 피해자의 의사를 지원·보완하는 방법을 통해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들을 유추적용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그것이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을 존중하여 가능한 최대한도에서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새롭게 도입된 성년후견제도의 취지를 반영하는 해석이다 .

따라서 반의사불벌죄에서 의사능력이 없는 피해자에게 성년후견이 개시되어 있는 경우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

나. 반의사불벌죄에 관한 입법 체계와 법률의 흠결

반의사불벌죄의 유형과 기능은 개별 범죄마다 다르고 일관된 입법 취지나 기준을 찾기 어려워 통일적인 해석도 쉽지 않다. 따라서 현행 법률에서 반의사불벌죄 및 처벌불원의사의 본질 내지 보편적인 특징을 도출하여 이 사건 쟁점의 근거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1) 1953. 9. 18. 형법 제정 당시 도입된 반의사불벌죄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제도이다. 제정 형법이 반의사불벌죄를 둔 것은 전통적 미풍양속을 고려함과 동시에 형벌법규의 형식적·기계적 적용에 따른 폐단을 최소화하면서 당사자 사이의 사적·자율적 분쟁해결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취지인 것으로 평가된다.

2) 어떤 범죄를 반의사불벌죄로 정할 것인지는 입법부에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가 인정되는 영역이기는 하다( 헌법재판소 2021. 4. 29. 선고 2018헌바11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대법원은 반의사불벌죄를 비교적 경미하고 주로 피해자 개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로서 구태여 피해자의 의사나 감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처벌할 필요가 없는 유형의 범죄 중 상대적으로 덜 경미하여 처벌의 필요성이 적지 않은데도 이를 친고죄로 하는 경우 피해자가 심리적 압박감이나 후환이 두려워 고소를 주저하여 법이 그 기능을 다하기 어려울 것에 대비한 것이라고 하였다.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나 당사자 사이의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분쟁해결을 촉진하고 존중하려는 취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도1689 판결 등 참조).

3) 그러나 실제 형법 및 특별법에서 인정되는 반의사불벌죄의 유형은 실로 다양하다. 폭행·협박죄와 그 가중유형 중 일부( 형법 제260조 제1항 제2항 , 제283조 제1항 제2항 , 제107조 , 제108조 등), 명예훼손죄 중 일부( 형법 제307조 , 제309조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 제2항 등), 과실치상죄( 형법 제266조 제1항 ), 교통사고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죄 등(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 ), 수표 부도 또는 과실 부정수표 발행으로 인한 각 「부정수표 단속법」위반죄( 「부정수표 단속법」 제2조 제2항 , 제3항 ) 등이 있다.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 한하여 반의사불벌죄가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이 사건과 같이 차의 교통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죄의 법정형은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 ). 디자인보호법(제220조 제1항) , 실용신안법(제45조 제1항) 의 각 권리침해죄의 경우 그 법정형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다. 아래에서 볼 청소년에 대한 강간죄의 법정형은 일정기간 동안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었다.

4) 특히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행위를 규율하는 법률의 경우 시대적 변화나 사회적·정치적 요구에 따라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처벌에 관한 피해자 의사의 법률적 지위가 변화되어 왔다.

구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2007. 8. 3. 법률 제863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의 청소년 등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등 범죄( 제10조 )는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었다가 비판이 높아짐에 따라 2007. 8. 3. 개정으로 반의사불벌죄로 변경되었고( 제7조 , 제16조 ), 이후 후속 개정을 통하여 전면적 비친고죄로 변경되기에 이르렀다. 친고죄를 비친고죄로 변경하는 과도기 속에서 반의사불벌죄가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타협적 입법형태로서 이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5)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입법 목적으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내세우며 자동차운전자의 업무상과실치상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나, 제정 당시의 입법자료에 의하면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의 형사책임을 면제시켜 주면서 교통사고를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성이 부각되었던 점을 알 수 있다.

6) 반의사불벌죄의 입법 목적, 피해자 의사를 조건으로 하는 이유나 방법, 형법 등의 규율현황 등에 비추어 반의사불벌죄는 친고죄와 함께 국가형벌독점주의의 예외에 해당한다. 국가형벌권의 공적 성질을 고려할 때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는 본질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그 법적 효과면에서 통일적으로 처리할 필요성이 높다. 그럼에도 형사소송법이 고소 및 고소취소에 대하여 대리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면서도 처벌불원의사에 대하여는 이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해석에 의한 보충이 필요한 입법의 불비이자 법률의 흠결에 해당한다.

다. 피해자의 복리·보호를 위한 형사절차규정의 유추해석 필요성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인 경우에도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을 구현하고 피해자의 복리를 위하여 제3자가 피해자의 의사를 지원·보완하는 방법을 통해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형사소송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이를 금지하는 규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의사무능력일 경우 일정한 범위에서 법정대리인에 의한 소송행위 대리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6조 와 새로 도입된 성년후견제도의 유추적용·활용을 통해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자인 경우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인정할 수 있다.

1) 처벌불원의사와 형사소송절차에서 의사능력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가 제1심 판결선고 전까지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면,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232조 , 제327조 ). 따라서 반의사불벌죄에서는 제1심판결 시까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 표명에 달려 있고 이는 직권으로 판단하여야 할 사항이다.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는 형사소송절차에서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 법원에 대한 피해자의 소송행위에 해당하므로 피해자에게 소송능력이 있어야 하고, 형사소송법상 소송능력은 소송당사자가 유효하게 소송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 즉 자기의 소송상 지위와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이에 따라 방어행위를 할 수 있는 의사능력을 의미한다( 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의사능력은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하여 판단되어야 하므로 피해자가 유효한 처벌불원의 의사를 표시하려면 그 표시 당시 피해자가 처벌불원서 제출의 법률상 의미와 그 효과, 즉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처벌을 면하게 되며 향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더라도 이를 번복할 수 없다는 점을 모두 이해하여야 한다.

2) 피해자의 의사능력결여에 관한 법률의 흠결

가) 형사소송법은 반의사불벌죄의 피해자에게 의사능력이 결여된 경우 그 처리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런 경우 의사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적법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방법이 없는지, 아니면 형사소송법상 다른 규정들을 유추하여 이를 긍정할 수 있는지 가려야 한다.

법률에 특정한 규정이 존재하는 경우의 해석원칙에 관하여는 대법원이 이미 여러 차례의 판시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다81035 판결 등 참조).

반면 법률이 어떤 사안을 규율하기 위하여 필요한 규정을 두지 않아 그 법률을 문언의 의미상 가능한 한도까지 해석하여도 당해 사안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는 이른바 ‘법률의 흠결’이 있는 경우에 해석을 통하여 그러한 흠결을 보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법적 규율이 없는 절차법상 많은 영역의 쟁점들을 모두 ‘입법재량’으로 보아 방치할 수 없다. 보충이 가능한 ‘법률의 흠결’로 평가될 부분이 있고, 그와 같이 평가되는 영역에서는 관련된 다른 법률규정을 유추적용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특히 형벌법규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할 것이 요구되나(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법률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입법연혁 등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06. 5. 12. 선고 2005도6525 판결 등 참조).

오히려 처벌의 필요성 등을 들어 범죄의 성립을 긍정함으로써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처벌조각사유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유추적용하면 행위자의 가벌성 범위가 확대되어 행위자에게 불리해지고 가능한 문언의 의미를 넘어 범죄의 구성요건을 유추적용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초래되는바 이 역시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1997. 3. 20. 선고 96도116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형사소송법의 유추적용을 통하여 재심사유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합치적 해석으로 허용된다( 대법원 2018. 5. 2. 자 2015모3243 결정 등 참조)는 법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 형사소송법에 의사무능력인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의 대리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은 그 제정 당시 “자기결정권의 지원과 보완을 통해 의사결정능력의 실질적 회복 및 행사”라는 관념 내지 그 필요성을 알지 못하였고 이를 예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법원 2006. 6. 22. 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 의 취지 참조). 따라서 그 법률의 흠결은 입법재량 내지 입법결단이 아닌 보충의 대상이 되는 입법공백이고 그러한 입법공백은 입법자에 의해 의도된 것이거나 결단의 산물이 아니다.

3) 피고인에게 유리한 형사소송법 제26조 의 유추적용

가) 형사소송법 제26조 는 일정한 경우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의사능력이 없는 때에는 그 법정대리인이 소송행위를 대리한다고 정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해석으로 명문의 규정이 없으면 언제나 소송행위의 대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송행위의 대리가 허용되는지 여부는 소송행위의 의미나 목적, 절차의 형식적 확실성, 소송관계인의 이익, 소송행위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나) 이와 달리 피해자에 대하여는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의 법적 규율은 공백으로 남아 있지만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26조 에 대해서 ‘의사능력이 있으면 소송능력이 있다.’라는 형사소송 고유의 법원칙에 근거한 것으로 이러한 원칙이 피해자 등 제3자가 소송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았다( 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다) 최근 대법원은 친고죄의 경우 형사소송법 제225조 제1항 의 법정대리인의 고소권과 관련하여, 부재자의 보호를 위하여 부재자 재산관리인의 관리대상 재산에 관한 범죄에 대하여 법원이 허가한 경우 부재자 재산관리인에게 고소권을 인정하였다(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21도2488 판결 참조).

반의사불벌죄에 관하여도 의사무능력인 피해자의 보호필요성은 형사소송법 제26조 라는 ‘법률의 규정’과 ‘법원의 허가심판’을 권한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점에서 위 대법원판결과 이 사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아가 부재자 재산관리인 제도와 성년후견제도에서의 법원의 후견적 역할이나 각 제도에서 법원의 허가결정이 구체적·실체적 심리 끝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도 위와 같이 취급할 수 있다.

라.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유추적용의 정당성

1) 성년후견제도 도입 이전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되기까지는 의사능력이 없는 성년 피해자에 대하여 그의 의사능력을 보완·보충할 방법이 없었다.

2011. 3. 7. 법률 제10429호로 개정되기 전 민법(이하 ‘구 민법’이라 한다)상 의사능력이 결여된 사람에 대하여 금치산 선고가 가능하였으나 후견인에게 금치산자의 신상에 관한 의사결정을 지원·조력할 권한은 부여되지 않는다고 해석되었고, 설령 그 권한을 긍정하더라도 금치산자의 배우자와 혈족 중 촌수·연령의 정해진 순위에 따라 자동적으로 후견인이 되는 경직성, 감독기관인 친족회의 유명무실함으로 실제 금치산자의 후견인이 적극적으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여 법률적 효력이 다투어진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2) 성년후견제도 도입의 의미

의사결정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자기결정권, 즉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을 존중하여 가능한 최대한도에서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결정능력이 흠결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신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법률효과를 수반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의사결정능력을 흠결한 사람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나 행복추구권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2011. 3. 7. 개정되어 2013. 7. 1.부터 시행된 민법으로 도입된 성년후견제도는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하거나 흠결된 사람들의 자기결정권을 지원·보완함으로써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데에 그 사상적·이론적 기초가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이전의 금치산·한정치산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전제와 원칙에 입각한 제도로서 구 민법이 갖지 못하였던 규정에 따라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며 법률효과가 부여된다.

가정법원이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 대하여 성년후견개시의 심판을 하고( 민법 제9조 ) 성년후견인을 선임하면( 민법 제936조 제1항 ), 성년후견인은 피후견인의 법정대리인이 된다( 민법 제938조 제1항 ). 가정법원은 그 법정대리권의 범위를 정할 수 있고 법정대리권의 행사에 법원의 허가를 요구하는 등의 제한을 둘 수 있다( 민법 제938조 제2항 ).

또한 민법 제947조의2 는 피후견인의 신상에 대한 결정에 관하여 정하고 있다. 피후견인은 자신의 신상에 관하여 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함을 원칙으로 하지만( 제1항 ), 일부 중요한 행위에 대하여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성년후견인이 이를 대신할 수 있고( 제3항 ), 피후견인의 신체와 거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하여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2항 , 제3항 , 제4항 ). 민법은 신상에 관한 사항 중 일부에 관하여만 정하고 있지만 가정법원은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신상에 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점( 민법 제938조 제3항 ) 등에 비추어 성년후견인이 민법 제947조의2 에서 정한 사항에 한하여만 피후견인의 신상에 관한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제한할 것은 아니고 널리 신상에 관한 사항 일반에 관하여 위 규정을 적용함이 상당하다.

위 해석은 국제규범과 유사한 법률규정으로 뒷받침된다. 즉, 개정 민법의 성년후견제도는 2006년 제정되고 2008년 발효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이 일반 원칙으로 장애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포함한 개인의 자율성 및 자립에 대한 존중과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 참여 및 통합을 규정하고, 당사국이 합리적인 편의 제공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절차를 취하도록 하는 것에 대응하는 제도이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도 제8조 제1항 에서 발달장애인은 주거지 결정, 의료행위 등 개인의 신상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제8조 제3항 에서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제9조 제1항 에서 발달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부족하여 의사결정의 대리 또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가정법원에 후견개시의 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3) 신상에 관한 의사결정권의 실질적 보호

가) 의사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직면하는 어려움은 재산상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신상에 관한 의사결정도 포함되는데 특히 신상에 관한 것은 본인의 자기결정권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현행 성년후견제도하에서도 피후견인은 의사능력이 잔존하는 한 자신의 신상에 관하여 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피후견인이 그러한 단독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 이때에도 피후견인만 신상에 관한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의사결정권자인 피후견인의 의사무능력으로 말미암아 결국 법률상 적법유효한 의사결정을 할 주체가 없게 되어 그 범위에서 피후견인에 대한 보호의 공백이 발생한다. 이처럼 피후견인이 의사능력 결여로 스스로 신상에 관한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피후견인만이 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자기결정권존중의 원칙을 좁게 새기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성년후견인이 그 결정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하여야 한다.

성년후견제도는 독자적인 사무처리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조력하여 본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본인의 복리·보호를 추구한다는 것이 핵심이므로, 성년후견인에 의한 신상에 관한 결정을 단순히 의사결정의 대행이라는 차원에서만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부당하다.

나) 이른바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에 관한 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은 지속적 식물인간상태로서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는, 법원이 그의 자기결정권 및 의사를 ‘추정’하여 연명치료의 중단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연명치료장치 제거는 생명유지에 직결되는 것으로, 한 개인에게는 그 어떠한 상황보다도 중요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문제라고 할 것이다. 위 판결은 의사능력이 결여된 사람의 신상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는 법령상 이를 허용하는 명문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의사추정 등의 방법으로 유효한 자기결정권의 실질적 행사를 가능케 함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중요한 의사결정의 존재에 관하여 본인의 진실된 의사를 명시적으로 확인하지 못하였음에도 완화된 추정 법리에 따라 이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본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부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위 전원합의체 판결 중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박일환의 별개의견은 구 민법 제947조 제2항 본문을 유추적용하여, 후견인이 의료인에게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 금치산자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인지 여부에 관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해석론을 전개함으로써 의사무능력자의 실질적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법원의 후견감독기능을 강조하였다. 이는 자기결정권의 지원·보완을 위하여 공적 성격의 지위를 갖는 성년후견인을 선임하여 그를 통해 본인 신상에 관한 의사결정을 허용함과 동시에 후견감독기관인 가정법원의 심리·재판을 받는 경우에 한하여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허용하려는 반대의견의 취지와 맥을 같이한다.

마. 유추적용 범위의 명확한 한정

1) 반대의견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모든 경우에 제3자에 의한 소송행위의 대리 내지 대행을 일반적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에게 의사능력이 존재하는 경우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에 의하여 결정됨으로써 족하다.

또한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충분한 심리를 거쳐 피해자의 의사를 확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사무처리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되었음이 법원에 의하여 인정되어 성년후견이 개시되었고 피후견인에게 의사능력이 없어 형사절차에서 적법유효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경우’를 다루고, 이에 한정하여 해결법리를 찾는 것이다.

2) 일반적으로 의사능력이 없는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에게 모든 소송행위의 대리를 허용할 것도 아니다. 증인의 증언 등 소송행위의 의미나 목적에 비추어 대리가 허용되는 소송행위와 그렇지 않은 소송행위를 구분하는 것은 법률상 충분히 가능하다.

3) 피후견인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본인이 직접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고 어느 경우에 ‘의사능력에 흠결’이 있어 후견인에 의한 의사능력의 보완을 허용할 것인지 그 기준에 대하여는 민법상 규정이 없다.

그 기준을 법령으로 정하고 있는 일부 외국의 입법례는 대체로 의사결정 관련 정보의 이해·기억·이용능력, 결정된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할 능력, 의사결정으로 인한 결과와 위험에 대한 이해능력, 그러한 이해에 기초한 결정능력 등을 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4) 성년후견인의 처벌불원 의사표시에 관한 가정법원의 허가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되어 있는지, 처벌불원의 의사표시가 피해자의 복리에 저해될 우려는 없는지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심리·판단함으로써 발생가능한 문제들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실체적 심리절차에 해당한다. 성년후견인은 법원의 관여하에 선임되고 그 권한도 법률규정과 법원의 심판에 근거한다. 선임의 주체, 선임의 절차, 대리권의 근거 등에 비추어 볼 때 성년후견인의 ‘공적 성격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성년후견인의 공적인 지위와 아울러 성년후견인이 성년후견개시심판에서 정한 바에 따라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한 경우 그 행위의 유효성을 적극적으로 새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 다수의견에 대한 반박

1) 법의 문언적·합리적 해석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이 피해자의 의사무능력에 관하여 그 대리에 관한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보충이 필요한 법률의 흠결에 해당한다.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표시의 허용은 피고인에게 불리하지 않으므로 유추해석을 허용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에 반하지 않는다. 다수의견은 형사소송법상의 법률의 흠결을 입법정책 내지 입법재량으로만 이해하고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유추해석의 필요성과 허용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파악하였다. 그러한 해석론은 피해자의 생활반경을 극히 제한적인 영역으로만 한정하면서 성년후견제도의 이용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피해자의 복리와 보호를 후퇴시키고 소극적 소송조건을 부당하게 축소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되어 타당하지 않다 .

2) 피해자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피해자의 복리·보호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성년후견인에 의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에의 지원·보완은 관련 민법 규정들과 성년후견제도에 의하여 허용된다 .

의사결정능력이 제한되거나 상실된 사람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지원·보완하는 것은「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비롯하여 국민의 헌법상의 권리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형사재판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보호에서 제외될 수 없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인지능력을 상실한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과 가해자를 피고인으로 하는 형사소송 등 여러 법률적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데 위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은 피해를 입게 된 원인인 역사적 사실이 서로 동일한 점, 따라서 인지능력을 상실한 피해자를 대신하여 각 소송을 수행하는 성년후견인으로서는 민사와 형사를 분리하여 각 소송별로 독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이들을 통틀어 일체로 파악하여 총체적·전체적 관점에서 피해자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각 소송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민사소송에서든 형사소송에서든 성년후견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최선의 이익이라는 동일한 지향점 위에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양자를 분리하여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손해배상금을 수령하는 행위와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는 행위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전체적으로 피해자를 법률분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절차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때 가정법원은 후견감독기관으로서 각 행위를 위한 허가재판에서 피해자의 의사능력결여 정도와 피해자복리 적합성을 심리하여 재판한다. 가정법원의 성년후견심판과 형사재판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견해는 동의하기 어렵다 .

개인의 신상에 관한 의사결정이 본인의 진실된 의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반대의견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예상하지 못한 사유로 의사능력을 상실할 수 있고 그때에도 여전히 결정하여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 성년후견인에 의한 의사결정권의 지원·보완은 제3자에 의한 의사결정의 대행·대체가 아니라 본인의사에 관한 진지하고 철저한 탐구·확인을 통하여 가정법원이 선임한 공적 지위의 성년후견인으로 하여금 본인의사가 실질적으로 실현된 것과 동일한 법률적 효과를 지향하고 그 과정에서도 법원의 후견감독기능을 개입시켜 본인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담보하려는 것이다. 다수의견이 우려하는 피해자 복리와의 충돌, 피해자 의사의 무력화 등의 위험은 가정법원의 허가재판에서 걸러지게 될 것이다 .

3) 다수의견이 논거로 인용하는 선례 등에 관하여

가) 강학상 형사소송절차에서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소송행위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의 근거로 인용되는 선례들( 대법원 1953. 6. 9. 자 4286형항3 결정 , 대법원 1994. 10. 28. 자 94모25 결정 , 대법원 2014. 11. 13. 선고 2013도1228 판결 등)은 그 관련 판시 내용이 방론에 해당하거나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되기 전의 것들로 사안이 달라 이 사건에서 원용할 수 있는 선례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 판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더라도 부정설을 뒷받침하는 선례라고 보기 어렵다.

나) 원심이 인용한 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은 반의사불벌죄와 관련하여 피해자에게 의사능력이 있는 이상 단독으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있고 법정대리인에 의해 대리되어야 한다고 볼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 나아가 ‘의사능력이 없는’ 피해자의 경우에도 법정대리인에 의한 대리를 부정하는 취지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 피해자에게 ‘의사능력이 없는’ 이 사건과는 사안이 다르다.

다)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도568 판결 은 성년인 피해자가 의사능력을 상실하여 처벌희망 여부에 관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경우 그의 아버지가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당시 성년의 경우 의사무능력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근친자에게 법정대리권을 인정할 법률상 근거가 전무하였고, 당해 사건에서도 법정대리권이 인정될 수 있는 별다른 사정이 없었던 데에 따른 불가피한 결론이었다.

라) 고소불가분원칙은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도1689 판결 역시 친고죄의 고소불가분 규정에 관한 판시일 뿐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 의사표시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상 어떠한 규정의 적용 또는 유추적용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는 취지로 볼 것은 아니다. 나아가 위 판결에 대하여는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의 본질적 유사성에 비추어 비판하는 견해도 상당하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4) 양형참작사정으로서의 기능에 관하여

다수의견은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한 처벌불원의사 내지 형사합의는 양형참작사정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손해배상금을 수령하는 행위를 피해변제로 참작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반대의견도 이견이 없다. 피해변제의 측면에서 형사공탁제도의 취지와 도입배경에 관한 다수의견의 이해 역시 이를 다투지 않는다 .

그러나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 본인의 진정한 의사’에 기하여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다. 다수의견이 가해자를 용서하고 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결정은 의사능력을 갖춘 피해자 본인에 의하여만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처벌불원서를 양형참작사정으로서 적법유효한 처벌불원의사로 취급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러한 시각은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의 처벌불원의사와 양형요소로서 기능할 수 있는 처벌불원의사의 의미를 이원적으로 파악하는 것인데 그와 같은 이원적 취급의 근거를 알기 어렵다. ‘처벌불원의사’의 의미를 형사소송절차 전반에 걸쳐 동일하게 새겨야 하는 것이 타당함은 다언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처벌불원의사’의 소송절차상의 지위나 기능을 그 절차적 특성이나 심리의 단계에 따라 다르게 파악하는 것은 ‘처벌불원의사’의 개념을 정의한 이후에 비로소 논의될 성질의 문제이다. 다수의견은 ‘처벌불원의사’의 의미를 심리절차에 따라 다르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피해자 본인의 진실한 의사에 따른 처벌불원서가 항소심에서 제출되는 경우 양형참작사정으로 인정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할 것이다 .

사. 이 사건의 판단

1) 피해자에 대하여 성년후견이 개시되어 공소외 2가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된 사실, 가정법원은 공소외 2가 피해자를 대리하여 하는 소송행위에 대하여는 허가를 받도록 정한 사실, 공소외 2는 제1심 판결선고 전 피고인 측으로부터 합의금을 수령하고 처벌불원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한 사실은 위 1.항에서 본 바와 같고,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제1심 판결선고일 무렵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사실, 피해자가 피고인의 부모를 상대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 행위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구한 민사소송( 서울고등법원 2022. 4. 22. 선고 2021나2026756 판결 로 확정)에서는 피고인 등의 손해배상책임 범위 산정에 관하여 공소외 2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으로서 피고인 측으로부터 수령한 합의금이 고려된 사실을 알 수 있다.

2) 위와 같은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인 공소외 2가 가정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뒤 의사능력 없는 피해자를 대리하여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그 효력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

3) 그럼에도 원심은, 위의 요건들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은 채 그 판시와 같은 사유들만을 내세워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의 피해자의 소송행위 대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음을 밝힌다.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천대엽의 보충의견

다수의견에서 든 논거를 보충하면서, 반대의견이 들고 있는 논거에 대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의견을 밝히기로 한다.

가. 반의사불벌죄 및 성년후견제도 취지의 측면

반대의견은 피해자 본인의 복리·보호를 위하여 성년후견제도를 활용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허용하자는 것이나, 의사무능력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성년후견인으로 하여금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반의사불벌죄나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에 실질적으로 배치된다.

1) 반대의견이 적절히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이어서 형사절차에서 적법유효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경우’에 피해자를 대신한 제3자(성년후견인)의 처벌불원의사를 허용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의사능력이 다소 부족할 뿐 잔존능력에 의한 의사결정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와 달리 의사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의사의 결정 및 표시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의사가 실재(실재)하는지 불분명하고, 설령 이를 긍정하더라도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년후견인의 대리행위가 피해자의 객관적 이익에 다소라도 부응하면 그 대리행위가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부합하리라는 것은 성급한 추단일 뿐이다.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처벌불원의사의 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나 그의 복리가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와 무관하게 금전적·경제적 보상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사는 금전적·경제적 보상으로 온전히 대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피해회복과 별개로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원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피해자의 진지하고 자발적인 의사가 수반되지 않는 금전적·경제적 보상의 일방적인 제공만으로는 피해자의 치유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신속한 피해회복은 피해자의 복리에 관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뿐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반의사불벌죄의 취지나 가해자 및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감정·의사를 고려하면 가해자의 처벌에 관한 피해자의 의사도 피해자의 복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거나 그 처벌불원의사가 분명하지 아니함에도 금전적·경제적 보상을 이유로 가해자가 국가형벌권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반의사불벌죄의 취지에 반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성년후견제도가 기존의 행위무능력자제도와 달리 피후견인의 잔존능력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그의 자기결정권 및 인권과 복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보호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음은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다. 성년후견인은 이를 위하여 피후견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대행이나 지원뿐만 아니라, 피후견인이 의사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잔존능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신상에 관하여 단독결정을 할 수 없을 때에는 피후견인의 신상을 보호하는 사무의 대행이나 지원을 할 수 있다. 이때 ‘신상’에는 치료나 의식주의 결정, 복지서비스의 제공 등 피후견인의 신체적·정신적 복리와 관련된 여러 사정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형사절차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에 대한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고 표시하는 것은 피후견인의 재산관리 사무의 대행이나 지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은 물론 그의 신상을 보호·지원하는 사무와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기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성년후견인이나 후견감독기관으로서의 가정법원이 처벌불원 의사표시가 피해자의 복리나 보호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고 또 판단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가 있음을 인정하거나 그 결정을 대신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자칫 피후견인의 복리·보호라는 관점에 치우쳐 피해자의 처벌의사를 충분히 반영, 존중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이러한 해석은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취지와도 모순된다는 지적 역시 가능하다.

2)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은 이 사건과는 사안이 다르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미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에 있어서 추가적인 치료가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호전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것에 불과하여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침습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되는 경우에 환자의 ‘의사추정’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으로 제3자의 ‘연명치료중단의사’를 전제로 이를 환자의 진정한 의사로 의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관점에서 그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한 후 그것이 ‘추정된 의사’임을 그대로 전제하는 한편, 그러한 의사추정을 하지 않으면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오히려 해하게 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허용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대의견이 성년후견인의 처벌불원의사로 피후견인의 의사를 사실상 갈음하고, 대리의 목적이나 허용에 관한 별다른 한계를 두지 않고서 모든 의사무능력자의 처벌불원의사를 대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3) 성년후견인이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에 갈음할 만한 구체적인 합의금액을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성년후견인의 대리행위에 대하여 가정법원의 허가가 있다고 해서 달리 볼 수도 없다. 이 사건과 같이 의사능력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탐구하는 것은 자연과학적 인지의 영역을 사실상 넘어서므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가정법원과 성년후견인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다. 가정법원의 허가는 성년후견인의 대리행위가 사회통념이나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 피해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혹은 후견의 취지를 넘어 대리권을 남용하거나 도리어 피후견인의 복리와 안전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등 객관적인 적정성 통제를 담보할 수 있음에 그치고, 의사무능력 상태에 처한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음은 성년후견인의 경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4) 성년후견인의 판단으로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를 대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보호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피고인의 형사절차상 이익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 될 뿐이다. 합의 과정에서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한 적정한 보상금액의 산정이 최우선적으로 다뤄질 것이고 피고인의 처벌에 대한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관한 고려는 사실상 배제되거나 금전적·경제적 기준에 따른 객관적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결과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려는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형사절차에의 개입을 허용하는 반의사불벌죄의 취지에 반함은 물론 피해자의 자기결정권 실현과 복리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취지 및 가정법원의 역할에도 배치된다.

나. 양형심리 절차에서의 피해자 측의 용서 내지 합의와의 구별

1) 형사공판절차는 범죄의 성립 여부 및 소추조건의 구비 여부를 심리하는 절차와 이를 전제로 적정한 양형을 심리하는 절차로 구별할 수 있다. 각 절차는 그 목적이나 지향점이 다르므로 심리대상, 심리방식, 지도원리 등에 차이가 있다. 예컨대 무죄추정 원칙과 공개재판 원칙은 전자의 절차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이를 전제로 하는 양형심리 절차에서는 적절한 양형을 위하여 피고인의 삶 전반이나 인격적인 요소 등 해당범죄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부분까지를 포함한 종합적 심리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공판절차 이분론’을 제도적으로 도입·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심리대상이 동일·유사하더라도 각 절차의 목적이나 심리방식에 따라 해당 절차에서의 의미나 평가를 반드시 동일하게 새길 필요는 없다.

2) 형법 제51조 는 형을 정할 때 참작하여야 할 사항으로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정하고 있다. 양형은 법정형을 기초로 형법 제51조 에서 정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사항을 두루 참작하여 합리적이고 적정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재량 판단으로( 대법원 2020. 9. 3. 선고 2020도8358 판결 참조), 양형의 기초가 되는 정상관계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비유형적이므로 양형의 조건에 원칙적으로 특별한 제한이 없다. 형법 제51조 에서 정한 사항에 해당하기만 하면 모두 양형의 요소로 고려될 수 있고,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형사소송법에서는 각 심급별로 양형판단에 관한 고유한 재량이 있다( 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3)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는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의 측면과 양형요소로서의 측면으로 구별된다. 반의사불벌죄에서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의 처벌불원의사는 국가형벌권 실현을 위한 소송상 전제조건으로, 그 유무에 관한 심리는 전자의 절차에 해당한다. 여기서 처벌불원의사 유무에 관한 심리는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가 있는지를 대상으로 한다. 처벌을 불희망하는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가 확인되면 법원은 소극적 소송조건이 충족되었음을 이유로 검사의 공소를 기각하여야 하고, 처벌희망 여부에 관한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면 양형에 관한 심리절차로 나아가게 된다.

4) 의식불명 등으로 피해자의 처벌불원에 관한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없어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의 처벌불원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경우라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한 사죄의 표시 및 금전적 보상을 매개로 한 피해자의 가족 등 피해자의 이해관계인의 용서나 합의는 양형요소로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피해자 측과의 합의나 용서가 전체 형사공판절차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형사절차의 진행과정과 결과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절차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내용이 되고, 양형에 관하여 피고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도 그러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포함된다[ 헌법재판소 2021. 8. 31. 선고 2019헌마516, 586, 768, 2020헌마411(병합)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자료라고 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 보장의 측면에서 엄격한 증명의 대상이 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으므로 용서 내지 합의 등 처벌불원과 관련한 양형자료 역시 피해자의 객관적 이해관계 혹은 피해자 가족의 주관적 의사에 부합하는 것만으로도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이처럼 소극적 소송조건인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와 양형요소인 널리 피해자 측의 용서 내지 합의는 각자의 취지 및 적용하는 국면을 달리함에도 단지 그 형태의 유사성을 들어 동일하게 해석하거나 더 나아가 후자의 처벌불원 관련 양형자료를 근거로 전자의 소극적 소송조건으로까지 취급하는 것은 전체 형사공판절차의 다층적 성격을 간과한 것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의사무능력인 피해자를 위한 금전적·경제적 보상을 매개로 한 피해자 측의 용서나 합의 혹은 그 노력은 그것이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의 처벌불원의사에 해당하는지와 무관하게 양형요소로서 얼마든지 참작할 수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 합의만능주의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의 우려

1)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전제로 형사사법에 대한 사인의 의사개입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므로 명시적 근거 없이 그 적용을 확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합의’가 되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함부로 추단하고 이를 근거로 범죄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실현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더욱 신중하여야 한다. 우리 형사법이 국가형벌권의 행사에 관한 당사자처분권주의를 원칙적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 ‘범죄를 저질러도 합의만 하면 된다.’라는 합의만능주의 및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질적 비범죄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가는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형사법의 법익보호기능과 책임원칙 등이 후퇴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법질서 전체 및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최근 친고죄 및 반의사불벌죄에 대하여 가해자가 금전적·경제적 보상을 매개로 처벌을 면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범죄에 상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위에 비친고죄화·비반의사불벌죄화의 국민적·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바는 피해자의 진정한 용서가 수반되지 않는 금전적·경제적·명목적 합의에 기한 국가형벌권의 무력화 현상에 대한 경계라는 점에서 반대의견과는 그 지향점을 달리한다.

2) 형사소송법은 의사능력을 근간으로 소송능력을 규율하면서 피고인 및 피의자의 의사무능력과 달리 피해자의 의사무능력에 대하여는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반의사불벌죄의 취지와 그 무분별한 확장에 따른 부정적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이러한 형사소송법의 태도는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의 처벌불원의사에 대하여는 대리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입법자의 의지로 이해함이 온당하다. 그럼에도 더 나아가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피해자를 상대로 현행 형사소송법령이 예정하고 있지 아니한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여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를 갈음하는 것은 범죄행위에 상응한 형사책임을 져야 할 피고인이 유리한 양형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피해자 측에 합의를 종용하여 받아내고 형사법원이 무비판적으로 이를 피고인에 유리한 양형의 요소로 원용함으로써 필연적으로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야기해 온 과거의 구습을 다시금 부활시킬 우려가 있다. 이는 공탁법 개정을 통해 형사공탁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함으로써 2차 피해를 근절하려는 입법적, 사법적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3)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피해자의 의식이 불명한 경우 그 의식이 회복되어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에 비해 처벌불원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이익은 개별 사안에서 피해자의 의사능력 유무에 따른 현상이나 결과에 불과하고, 처벌불원의사를 확보할 기회가 반드시 법적인 권리로 보호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의 의사무능력 상태가 피고인의 범죄행위로 인해 초래된 이 사건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피고인이 피해자 측에 금전적·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고 피해자 측과 형사합의를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설령 그러한 피고인의 노력이 피해자의 완전한 용서나 합의에까지 이르지 못한 경우에도 그 금전적·경제적 보상의 노력과 실질은 피고인에 대한 양형심리 과정에서 유리한 양형요소로 참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새로 도입된 형사공탁제도가 예정하고 있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가운데 이루어진 위와 같은 사정들은 양형심리 단계에서 양형요소로 반영되어야 할 뿐, 그 진정한 용서나 합의의 의사를 의제하여 반의사불벌죄의 소극적 소송조건으로 취급하는 것은 지나치게 피고인 위주의 관점·이익에 치우친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피고인의 방어권에 대한 법적 보장은 양형심리 과정에서 반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 형사소송절차의 독자성·완결성에 대한 존중의 함의와 필요성

1) 반대의견은 결국 형사소송법의 문언과 다른 유추해석을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의견의 논증이 현행 형사소송법의 문언만으로는 채택하기 어려운 것이자 오히려 다수의견의 결론이 현행법의 문언해석에 따른 논리적 귀결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2) 형법의 근본적인 기능과 역할은 범죄를 처벌하고 예방함으로써 사회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고 그 구성원들의 생명, 신체, 자유, 재산 등의 법익을 보호하는 것이고, 형사소송절차의 과제는 헌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형사실체법이 요구하는 국가형벌권을 적법절차를 통해 실현하는 일이다. 혐의사실이 증명된 범죄자에게는 상응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무고한 자에 대하여는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형사법의 해석론이 견지하여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다.

한편 형사법은 형벌권의 주체인 국가와 그 객체인 범죄자, 형벌권 행사를 위해 수사·소추·공소유지 기능을 수행하는 검사와 그 상대방인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직접적 수범자 및 절차 당사자로 상정하여 그들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형사법적 법률효과는 피해자 개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법공동체의 공통된 윤리규범을 바탕으로 입법자가 범죄로 규정하고 형벌을 부과하기로 결단한 사항에 대하여 국가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지, 피해자 개인의 손해를 전보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보복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형사법은 피해자 개개인으로부터 이격되어 공정한 형벌권 행사를 통해 법익보호 및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공적인 절차이다. 형사사법기능은 원칙적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국가형벌권의 실행이 좌우될 수도 없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의 의사나 피해의 회복은 그 자체가 형사사법의 목적이나 규율영역에서 본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3) 형사소송법의 각 규정과 형사소송절차는 위와 같은 형사법의 이념과 가치의 구현을 위하여 전체적으로 일관되고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민사나 가사 등 비형사법적인 규정이나 제도의 어느 일면에만 주목하여 그 규정이나 제도를 엄격한 검증 없이 형사사법절차에 적용하는 것은 입법자가 설계·설정한 형사사법제도의 성격이나 취지에 어긋나거나 형사사법제도의 통일적·유기적인 운영을 저해할 수 있다.

4) 반대의견은 가사소송절차의 성년후견제도와 형사소송절차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간과하고 성년후견의 법리를 형사사법에 그대로 도입하자는 것으로, 자칫 ‘민사의 형사화’ 위험보다 더욱 경계되어야 할 ‘형사의 민사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년후견제도는 피후견인 개인을 중심으로 법률관계 전반에 걸쳐 부족한 행위능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후견적 개입이 필요한 사항을 규율함으로써 피후견인의 복리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에 반해, 형사사법의 본질은 수범자인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삶 전반이 아닌 특정 범죄행위를 중심으로 국가형벌권의 적절한 실현을 통한 법익보호와 사회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국가형벌권의 실현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를 추구함에 있다. 피후견인의 복리라는 개인적 행위능력의 회복과 일반 법률관계의 조정이라는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성년후견제도는 범죄에 관한 국가형벌권의 정당한 구현 및 그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형사사법과 친하지 않은 것이다. 성년후견제도의 목적이나 이를 새롭게 도입하게 된 필요성 내지 경위에 십분 공감할 바가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은 명시적 근거규정 없이 성년후견제도를 형사사법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을 긍정하기에 적절한 논거가 될 수 없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7.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

가. 다수보충의견에 대한 재반박 및 반대보충의견의 취지

1)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허용하면 금전보상을 이유로 가해자인 피고인이 처벌을 면하는 이익을 얻고 형사합의를 종용하여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처벌불원의사로 인하여 범죄자가 국가형벌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은 반의사불벌죄의 본질에서 유래하는 것이지 성년후견제도의 활용에 의하여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동일한 취지의 비판을 근거로 삼아 반의사불벌죄 폐지·개혁론이 주장되어 왔다. 반의사불벌죄를 유지하는 이상 법원은 처벌불원서 제출과정에서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 가해자에 의한 강압이나 2차 가해 유무를 심리해야 할 것이다.

‘합의만능주의’ 역시 반의사불벌죄의 부작용으로 지적되어 왔으며, 특히 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10도5610, 2010전도31 판결 등은 14세 무렵의 성폭력피해자가 보호자의 조력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표명한 처벌불원의사일지라도 유효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의사능력 법리가 ‘의사능력이 존재한다면 처벌불원의사로 인정된다.’라는 형식적인 판단과 결합하여 오히려 합의만능주의에 가깝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아래에서 반대의견을 채택함으로써 합의만능주의를 배격할 수 있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가정법원은 실질적 심리를 통하여 피해자의 최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성년후견인을 선임한다. 성년후견인은 그와 같은 ‘공적인 지위’에서 다시 법원의 감독하에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게 된다. 형사합의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악용되거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할 우려는 다른 경우보다 오히려 적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다수보충의견이 염려하는 바는 반대의견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부족한 논거라고 할 것이다.

2) 관점을 넓혀 반의사불벌죄뿐 아니라 형사합의가 이루어지는 형사재판절차 전체에서 피해자 의사결정에 대한 지원은 의사무능력자를 포함하여 사무처리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사람들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지원·보완의 근거 및 방법을 밝힘으로써 반대의견을 보충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의 확장은 사안의 적절한 해결과 함께 형사절차의 운용에서 주요 관계인 중 하나인 피해자의 지위·보호를 고양하고 헌법지향성을 강화하고자 함이다.

나. 처벌불원의사에 관한 종래의 판단 기준 및 실무에 대한 비판

1) 처벌희망 여부에 관한 피해자의 의사는 반의사불벌죄의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형사재판에서 처벌불원 의사표시, 즉 형사합의서의 제출은 소극적 소송조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떠나 양형심리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대법원 양형기준이 양형심리의 기본 틀로 자리 잡은 현재의 실무에서 처벌불원의사는 권고영역이나 형량범위를 결정하고 구체적 선고형을 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피고인의 공판 외 소송행위는 대부분 피해회복 및 처벌불원의사 확보에 집중되어 있다.

2)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가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의하여야 함은 반복적으로 확인된 법리이다. 그러나 구체적 사안에서 대법원과 하급심의 실무는, 표시된 처벌불원의사가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해당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법(사법)상 의사표시해석론을 형식적으로 적용하여 ‘표시된 효과의사’를 대상으로 하자의 유무에만 집중하여 심리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피해자들에게 의사능력이 있고 의사표시에 폭행, 협박, 강압 등의 하자가 없어 의사표시를 무효로 볼 수 없다면 그 의사표시는 ‘흠이 없어 진실’하다고 보았다. 이에 대하여는 ‘진실한 의사표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벌불원의사의 진실성이 사법(사법)적 의사표시해석론에 의하여 확인될 수 있는 것인지 등의 의문이 있었고,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표시를 진정하게 확인할 수 있는 판단 기준과 심리방법이 불명확하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형사소송절차가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표시’에 명목상으로만 의존한다는 유력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3) 그간의 형사재판실무는 성인인 피해자가 의사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면 형사합의서의 내용과 그 제출로 인한 법률효과의 의미를 인식할 수 있다고 손쉽게 인정함으로써 그와 같이 제출된 합의서의 효과를 그대로 부여하여 왔다. 범죄사실 자체에서 이미 피해자의 인지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리분별 및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것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노동력을 장기간 착취한 사실로 준사기죄 및 근로기준법 위반죄 등으로 기소되었던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에서 피해자 본인 명의로 제출된 합의서가 그의 ‘진실한 의사’에 기초한 처벌불원의사로 인정되어 소극적 소송조건을 구비한 것으로 되거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요소로 참작되었다.

4) 나아가 의사형성에 관한 지원·보완을 받지 못한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제출한 형사합의서가 그대로 처벌불원에 관한 ‘진실한 의사’로 손쉽게 인정되기도 하였다. 친권자와 동거하지 않는 등의 사정으로 인해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으로부터 의사결정에 관한 원조를 받을 수 없는 형편의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미성년으로서의 미성숙한 의사결정능력이나 판단력을 보정받기 어렵다. 그들 중 의사의 결정 및 표시에 어려움을 겪는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그들 명의의 처벌불원서가 제출된 경우 그 진실성이나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관한 세밀한 심리 없이 처벌불원서 그대로의 효과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광주인화학교 사건에서도 청각·언어 장애 4급인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항소심에서 제출한 형사합의서가 피고인들에 대한 유리한 양형자료로 그대로 활용되었다.

5) 형사절차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처벌불원 여부에 관하여, 지원·보완이 필요한 불완전한 의사표시가 이루어졌음에도, 그간 다수의 실무가 피해자에게 기초적 의사형성능력이 존재한다는 점에만 주목하여 의사표시해석론을 기계적·형식적으로 적용하여 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같은 실무의 경향은 일부 가해자를 형사처벌로부터 부당하게 면제시킴으로써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의 왜곡을 초래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6) 처벌불원의사가 전제하는 자기결정권은 어떤 강압도 받지 않고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법률적 효과를 불러올 것인가에 대한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다( 대법원 2009. 11. 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중 대법관 김영란의 반대의견 참조). 유독 형사소송절차에서 의사능력이 있는 한 피해자가 단독으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법리는 자기결정권의 실질적 실현과 부합하지 않는다. 의사능력이 완전히 결여되거나 의사능력이 일부 인정되더라도 인지능력이나 판단력이 불완전한 사람에게 법률적으로 처분적인 효력을 가지는 행위를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진정한 보호라고 볼 수 없다.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피해자에 대하여는 형식적·외형적으로 표시된 의사표시의 하자 유무만을 검토하는 것으로는 그 피해자의 처벌희망 여부에 관한 진실한 의사를 알 수 없다.

다.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한 피해자 의사결정능력의 지원·보완

1) 피해자의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된 경우나 부족한 경우를 포괄하여 이를 지원·보완함으로써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은 피해자의 의사결정을 제3자가 대신하여 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여전히 피해자가 의사결정의 주체로 남아 있되 부족한 부분만큼에 한하여 제3자가 보조자로서 지원·보완한다는 관점이다.

2) 의사능력에 관한 지원필요성의 관점에서는 의사능력이 결여된 경우와 부족한 경우를 전적으로 달리 취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불완전한 의사능력을 보완·보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사능력이 결여된 경우나 부족한 경우는 다르지 않고, 다만 보완·보정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에서 의사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경우와 그것이 부족할 뿐인 경우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의사능력의 유무나 정도는 구체적인 법률행위와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함이 원칙인데( 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6다29358 판결 등 참조) 구체적인 상황마다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아가 ‘의사능력 본위’의 형사소송 고유의 법리는 지원필요성이 더 큰 의사능력결여자를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측면도 있다.

3) 새로운 성년후견제도는 신상보호를 주된 후견사무의 하나로 수용하였다. 의사능력의 결여 내지 부족으로 자기방어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의 신상에 관한 결정의 일차적 과제는 착취와 학대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취약계층의 경우 그 보호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신상보호기능을 매개로 성년후견제도는 의사무능력 장애인의 인권보호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사회취약계층의 성년후견이용에 대한 국가나 사회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중요해졌다.

4) 형사소송절차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은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제도를 두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의사능력이 완전하지 않아 그 진실한 의사를 알기 어려운 피해자들의 의사형성을 지원·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제도는 특정범죄에 관하여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한계가 있다.

5)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으로 인하여 기존 규율의 공백을 보완하고 의사무능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 및 보호를 강화·확대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성년후견제도를 활용하여 장애인이나 치매환자 등 의사결정능력장애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과 사업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정신질환자를 위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치매환자를 위한 치매관리법 등에서의 각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한 지원이 그 예이다.

6) 성년후견제도는 의사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사람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적 가치로서 인간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의 실현은 영역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성년후견제도가 형사절차를 전적으로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사정은 성년후견인이 형사절차에서 피후견인을 지원하는 것을 배제하거나 제한하기에 충분하거나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피후견인을 위한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형사절차의 고유한 특징과 목적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한될 수 있다.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처벌불원의사를 지원·보완하는 것은 그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다.

형사절차에서의 처벌불원의사가 피해자의 신상에 관한 지원·보완과 무관하다는 지적도 수긍하기 어렵다. 새로운 성년후견제도는 주로 재산상 사무에 국한되었던 기존의 금치산·한정치산제도가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 실현 및 복리를 위하여 불충분하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신상보호 내지 신상결정의 대행을 후견사무의 한 유형으로 도입하였다. 신상 내지 신상결정의 개념이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자신의 인격이 발현되는 터전인 생활관계의 기본적 내용을 형성하고 규정하는 행위 또는 자신의 생활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본질적으로 재산관리행위로 환원될 수 없는 일신전속적 의사결정에 관한 것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성년후견제도가 재산상 사무에 더하여 신상결정을 후견사무에 포함시킨 것은 피후견인의 생활관계 전반을 보호영역에 포섭함으로써 자기결정권의 지원·보완에 관한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범죄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의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희망에 관한 의사는 피해자의 생활관계에서 본인의 의사결정을 요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고, 피해자의 정신적 복리 및 인격적 이익과 무관하지 않다. 그에 대한 지원·보완은 피해자의 자기결정권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라. 유추해석의 정당성과 필요성

1) 입법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례를 염두에 두고 이를 모두 규율하기 위해 법을 만들지만 아무리 주도면밀한 입법자라고 하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예상하여 이를 법으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필연적으로 법으로 규율되지 않은 영역이 발생하게 된다. 법이 명백하게 규율하지 않은 영역에서 발생하는 법률문제에 관하여도 법이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는 믿음이 시민법의 전통인데, 법학적 유추는 이러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두 개의 유사한 사례가 동일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면 그중 한 사례에 대하여만 법이 특정한 법률효과를 부여하고 있는 경우 법이 명백하게 규율하지 않은 다른 사례에 대하여도 동일한 법률효과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법관이 유추에 의하여 발견하는 법규범은 현행법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된 법의 일부 또는 법내재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대법원은 여러 차례 문언해석과 유추해석의 구분 및 한계에 관하여 판단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법률문언 범위 내에서만 또는 입법 당시 입법자가 상정하였던 범위 내에서만 법률을 해석하여야 한다고 단정한 적은 없다.

완벽한 입법은 존재할 수 없다. 법률의 흠결은 불가피하다. 법의 해석에 관하여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데 법의 발견·해석은 그러한 다양한 방법들의 종합과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합과 선택에 관한 구체적인 법칙은 없다. 어떠한 법률문제에 대하여 법률의 문언을 넘은 해석이 허용되지 않는다거나 그러한 해석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부당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법률 자체에 흠결이 있는 경우나 사회제도의 변화로 규범상황이 변한 경우 등과 같이 유추해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입법자가 입법 당시의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제정한 법이 현재의 사회윤리적 표상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그 법이 현재의 사회윤리적 표상에 적합하도록 해석을 통하여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2)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인간존엄성을 보호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사회구성원리이면서 구현해야 할 헌법적 가치이다. 우리 헌법 제34조 제5항 은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정하는데, 이는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가 그 조건을 형성하고 유지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9. 5. 28. 선고 2005헌바20, 22, 2009헌바30(병합)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불측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누구라도 불의의 사고로 그 능력을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잃을 위험이 있다. 입법자는 이를 위하여 헌법의 취지에 따라 유연하고 사회통합적인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하였다( 헌법재판소 2022. 12. 22. 선고 2020헌가8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의사능력이 부족하거나 상실된 사람의 불완전한 의사형성을 지원하고 보완할 필요는 형사소송절차에서도 다를 바 없다. 그것이 소극적 소송조건에 관한 것이든 양형요소에 관한 것이든 마찬가지다. 형사소송 고유의 법리라는 것도 헌법적 가치에 뿌리를 두었다. 의사의 객관적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절차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헌법적 요청을 도리어 외면하는 것이다. 그들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구현·반영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려는 우리 사회 일련의 제도적·의식적 변화에 부응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반대의견을 보충한다.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대법관   조재연 박정화 안철상 민유숙(주심)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노태악 이흥구 천대엽 오경미 오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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