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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4도362 판결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청소년강간등)][미간행]
판시사항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로부터 강제추행 당하였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척한 원심판결을 자유심증주의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자동차 등록번호 생략) 쏘나타 개인택시 운전기사인바, 2002. 7. 중순 일자불상 토요일 14:00경 대전 중구 문화동에 있는 한밭여자상업고등학교 앞길에서 피해자(여, 16세)가 피고인 운전의 위 택시 뒷좌석에 타려고 하자 조수석에 앉게 한 후 목적지인 대전 서구 삼천동에 있는 문정초등학교 방면으로 향하던 중, 피해자에게 "남자친구와 한번 해 봤냐. 남자와 키스를 하면 한 번 하고 싶지 않냐. 여자가 참으면 홧병이 생긴다."라고 말하고, "가슴이 작아 보인다."라고 말하면서 오른손으로 옷 위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다가, "밑에 냉 같은 것이 많이 나오냐."라고 물으며 옷 위로 아랫배와 음부를 더듬고, "내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을 테니 가만히 있으라."라고 피해자를 협박하여 항거불능케 한 후,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음부를 만지다가 손가락을 음부에 집어 넣어, 청소년인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다.

2. 원심의 판단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의 진술에 대하여, 첫째,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경찰 이래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2002. 7. 중순 토요일 14:00경 운불련 스티커가 붙은 흰색 택시 안에서 그 기사 아저씨로부터 강제로 추행을 당했다."고 하면서 아울러 "그러한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한 사실은 없으나 당시 친구인 공소외인에게는 말을 했다. 그 후 친구인 공소외인이 동일한 수법으로 강제로 추행을 당했다고 해서 그 범인을 만나보니 바로 피고인이어서 공소외인과 같이 피고인을 고소하게 된 것이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으나,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던 피해자가 강제추행을 당한 택시의 특색까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이 지나도록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고 단지 친구에게만 말하는 데 그치고 수사기관에 고소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선뜻 수긍이 가지 않고, 더구나 공소외인은 "2002. 10. 26. 토요일 피고인으로부터 추행을 당한 후 피해자의 집에 놀러 가서 피해 사실을 말하니까 피해자도 전에 택시에서 같은 방법으로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더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어(수사기록 17, 38쪽), 2002. 7. 중순경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을 들은 사실이 없는 것처럼 진술하고 있으므로 이 부분은 피해자의 진술과 서로 배치되며, 둘째, 피해자는 '2002. 7. 중순 토요일' 피고인의 택시 안에서 강제로 추행을 당했다고 진술하면서 그 구체적인 날짜에 대하여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이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피해자의 원심법정 진술),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가 다니던 (학교명 생략)의 2002년도 여름 방학은 '7. 22.(월요일)부터 8. 25.'까지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피고인측이 원심 제1회 공판기일 후에 제출한 조회내용 통보서 참조), 결국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다는 '2002. 7. 중순 토요일'은 '2002. 7. 20.'일 가능성이 많고, 한편 피고인측이 제1회 공판기일 전에 제출한 운행일지에 따르면 피고인은 '2002. 7. 20. 토요일'에는 1박 2일의 일정으로 고향인 경북 상주에 갔다온 것으로 보이므로,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설사 피해자가 '2002. 7. 중순 토요일' 운불련 스티커가 붙은 흰색 택시 안에서 그 기사로부터 강제로 추행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기사는 피고인이 아닐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한 다음, 무릇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바,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운불련 스티커가 붙은 흰색 택시'를 피고인도 운전하고 있는 점, 피고인도 인정하고 있듯이 피고인은 택시 승객인 공소외인를 택시 안에서 강제로 추행한 사실이 있는데 그 수법이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당한 수법과 비슷한 점, 피해자도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아가 위 공소사실에 대한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피해자의 진술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피고인이 위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고, 피고인이 아닌 다른 택시 기사가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을 가능성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한 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3. 이 법원의 판단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가.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으나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하여야 하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하나, 이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을 일으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인바, 여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의심이라 함은 모든 의문, 불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을 사실인정과 관련하여 파악한 이성적 추론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은 합리적 의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 1994. 9. 13. 선고 94도1335 판결 , 1997. 7. 25. 선고 97도974 판결 , 2004. 6. 25. 선고 2004도2221 판결 등 참조).

나. 먼저 원심이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근거를 차례로 본다.

(1) 원심은 우선,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곧바로 부모에게 알리거나 수사기관에 고소하지 않았다는 점을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려운 이유의 하나로 들고 있으나, 당시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던 여학생인 피해자가 택시를 탔다가 그 기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생각하였을 것임은 경험칙상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므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피해자가 그와 같은 사실을 가까운 친구인 공소외인 등에게만 알리고 부모에게는 비밀로 했다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 여기에다 다행히 피해정도가 상해를 입거나 강간에 이른 것은 아니고 더구나 피해자가 가해자의 신원이나 위 택시의 차량등록번호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곧바로 고소하지 않았다는 사정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므로, 피해자가 그 피해사실을 곧바로 부모에게 알리거나 수사기관에 고소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2) 또한 원심은, 피해자의 진술이 공소외인의 진술과 다르다는 점을 신빙성 배척의 이유로 들고 있으나, 공소외인의 경찰 및 1심법정에서의 각 진술은 "자신이 택시기사로부터 추행을 당한 사실을 그날 피해자에게 털어놓으니 피해자도 전에 같은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더라."는 것에 불과할 뿐, 피해자로부터 그런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는 말을 그날 처음 들었다는 취지는 아니므로, 공소외인의 진술이 피해자의 진술과 배치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나아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가 공소외인에게만 자신이 추행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점을 수긍한다면, 이는 공소외인이 피해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추행당한 직후이거나 그 무렵일 가능성이 높지 그로부터 석 달이나 지나서야 말했을 가능성은 도리어 낮아 보인다.

(3) 나아가 원심은 이 사건 범행일시가 2002. 7. 20. 14:00경일 가능성이 많다는 전제 아래 피고인의 운행일지를 근거로 피고인이 당시 택시를 운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기록상 범행 일시에 관한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을 보면, 피해자는 수사기관 이래 일관하여 '2002. 7. 중순경 토요일 오후 2시경'이라고 진술하면서 원심법정에서는 여름방학을 시작할 무렵이었다고(방학을 시작하던 날은 아니라고 함) 진술하고 있고(공판기록 234~235면),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피해자의 위 진술과 2002년도 여름방학은 2002. 7. 22.부터 시작하였다는 (학교명 생략)장의 조회내용(공판기록 227면)을 기초로 하여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날은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토요일인 2002. 7. 20.임이 분명하나 그날 피고인은 가족들과 함께 고향에 놀러갔다고 변소하면서 그에 부합하는 운행일지를 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택시를 운행하였다고 자인하는 2002. 7. 13. 역시 7월 중순경의 토요일임이 분명하고, 한편 피해자가 만일 2002. 7. 20. 이 사건 강제추행을 당했다면, 그 다음날인 7. 21.이 일요일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피해자는 이를 '방학이 시작할 무렵'이라기보다 '방학이 시작되던 날'로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므로,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날이 반드시 2002. 7. 20.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범행일시의 날씨에 관하여 "해가 뜨고 맑았다(공판기록 234면)."고 진술하고 있음을 들어 피해자가 추행을 당한 날은 2002. 7. 20.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공판기록 244면에 편철된 기상 등 증명서에 의하면 2002. 7. 13. 및 7. 20. 대전지방은 양일 모두 비가 내리지 않았고 오후 2시경에는 흐렸거나(13일) 또는 구름이 많이 끼었다는(20일) 것이므로, 날씨에 관한 피해자의 위 진술만으로는 범행 날짜를 특정하기 곤란하다고 보인다.

한편, 피해자가 추행당한 날이 2002. 7. 20.이라고 하더라도 위 운행일지만을 근거로 피고인의 현장부재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위 운행일지는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것으로서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기록상 그 원본이 제출되었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둘째, 위 운행일지에 의하면, 피고인은 2002. 7. 19.과 7. 22. 휴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바(공판기록 205면), 피고인의 주장대로 그가 2002. 7. 20. 아침 일찍 상주로 내려가 1박을 하고 돌아왔다면 피고인은 무려 나흘이나 연이어 휴무를 한 셈이 되는데, 이는 택시운전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피고인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운행일지에 의하면, 2000. 1.부터 2002. 11. 초경까지 사이에 피고인이 나흘 연달아 휴무를 한 것은 정상적인 휴무일과 장인의 장례식이 겹친 2001. 5. 및 여름휴가철인 2001. 8. 두 차례 뿐임. 공판기록 190, 193면), 물론 위 나흘기간이 피고인의 여름휴가 기간이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기록상 피고인이 그와 같은 주장을 하지는 않고 있으므로, 피고인이 2002. 7. 20. 낮 근무를 마치고 가족들 모임에 참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셋째, 위 운행일지는 피고인이 보관하였을 것이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적어도 2003. 4. 2. 실시된 1심 제4회 공판기일에 증인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과정에서 이를 제시하며 알리바이주장을 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더구나 당시 피고인은 1심법원의 2003. 3. 14.자 보석결정으로 석방된 상태였으므로, 위 운행일지를 제출하는 데 별다른 장애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항소이유서에도 위 운행일지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원심법원의 제1회 공판기일(2003. 6. 11.)에서야 비로소 위 운행일지의 사본을 제출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는바, 비록 피고인이 그 이후에서야 피해자의 2002년도 여름방학이 시작된 날을 알았다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 범행일시가 처음부터 2002. 7. 중순 토요일로 특정되어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사정은 위 운행일지의 신빙성을 의심케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쉽사리 배척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첫째, 피고인은 경찰 이래 원심법정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을 대면할 때마다 피고인이 자신을 추행한 택시기사가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있는바, 피해자는 16세의 비교적 순진한 고등학생이고 피고인과는 이 사건 이전에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피해자가 피고인을 모함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친구인 공소외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쁜 마음을 먹고 허위로 고소하였다고 주장하나, 만약 피해자가 피고인을 모함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고소 이전에 이미 공소외인을 통하여 피고인이 운행하는 영업용택시의 차량등록번호를 알고 있었으므로 경찰 1회 진술에서부터 이를 정확하게 진술할 일이지 일부러 차량등록번호를 모른다고 진술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고, 나아가 피해자가 이 사건 고소를 빌미로 피고인에게 어떤 금전적 요구를 하였다는 사정도 엿보이지 않으므로, 피고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둘째, 피해자의 진술이 세세한 부분에 있어 다소 일관되지 못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피해자가 이 사건 추행 당시 피고인으로부터 들었다는 말이나 피고인이 추행을 한 부위, 방법 등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일 뿐 아니라 경찰 이래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있으므로 합리적 이유 없이 이를 쉽게 배척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셋째, 피해자는 자신의 친구인 공소외인이 택시기사로부터 추행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기사의 인상착의, 추행의 수법, 말투 등이 자신의 경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공소외인을 따라 파출소에 와보니 공소외인을 추행한 사람이 자신을 추행한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소하게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어서 그 고소경위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넷째, 피해자가 주장하는 추행의 수법이나 범인의 말투, 대화전개방식 등은 피고인이 공소외인에게 하였다는 추행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여(피고인도 공소외인에 대한 추행은 수사기관에서 대체로 시인한 바 있다.) 두 사건은 동일범에 의하여 추행이 저질러졌을 개연성이 매우 높고, 또 피해자가 진술하는 택시의 외관(흰색, 트렁크가 둥근 EF소나타, 뒤유리에 운불련 스티커 등)은 실제 피고인이 운행하던 택시의 그것과 동일하며, 나아가 피고인이 제출한 항소이유서에 의하면, 대전의 운불련 소속 개인택시는 200대 정도로 그 중 흰색 소나타는 10여 대에 불과하다고 하는바(공판기록 154면), 그렇다면 그 10여 대의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들 중에 피해자가 진술하는 인상착의와 말투 및 대화방식을 가진 기사가 피고인 이외에 또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더구나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가 피고인을 파출소에서 만나 "한밭여상 앞에서 나를 태우지 않았느냐."고 따지니 피고인이 "나는 한밭여상이 어디인지 모른다."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인데(수사기록 37면, 공판기록 119면), 대전에서 택시영업을 수년간 해온 피고인이 한밭여상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이는 피고인이 자신의 무관함을 강변하다보니 엉겁결에 한 말이라고 여겨지고, 또한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은 파출소에 출석하기 전 공소외인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와 통화하면서 "미안하게 됐으니 좋게 끝내자."고 말하기까지 하였다는 것인데(공판기록 116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으로부터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쉽사리 배척하기 어려운 이상 피해자의 위 진술만을 따로 배척할 수도 없는 이치이고, 피해자가 위와 같은 말들을 지어내었다고도 하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아닌 제3의 택시기사가 피해자를 추행하였을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라. 한편, 원심은 그 판결이유에서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으나 피해자의 진술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들이 있다는 점도 그 신빙성을 배척함에 있어 고려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이 또한 수긍하기 어렵다.

첫째, 대낮에 차량의 통행량이 많은 도심의 간선도로에서 영업용 택시기사가 조수석에 탑승한 여자승객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내용으로 대담하게 추행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나, 이는 피고인이 이미 공소외인에 대하여 그 정도는 훨씬 덜하지만 동일한 수법으로 추행을 저지른 바 있다는 점에서 쉽게 해명이 될 수 있다.

둘째, 피해자가 20여 분 동안이나 택시가 정차할 때마다 추행을 당하였다고 하면서도 도망가지 않은 점도 의문스러울 수 있으나, 범행장소가 피고인이 운행하던 택시 안이었던 점, 피고인은 40대 후반의 중년 남자인데 비하여 피해자는 사고가 미성숙하고 겁이 많은 10대 여학생인 점, 당시 피고인이 "내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할 수도 있다."고 협박을 하기도 하였던 점, 게다가 당시 차량들의 정체가 그리 심하지 않아 정차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여 피해자가 쉽게 택시에서 내릴 수도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이는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셋째, 피고인 운행의 택시에는 조수석 앞에 택시운전면허증이 부착되어 있고 피고인의 명함도 꽂혀 있는데도 피해자가 자신을 추행한 택시기사의 이름 등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고 할 수 있으나, 피해자가 밀폐된 공간에서 갑자기 추행을 당하여 극도로 당황하고 수치감과 공포감을 동시에 느끼는 상황에서 오로지 빨리 내려야겠다는 생각에만 빠져있다 보면(수사기록 35, 공판기록 119면 참조) 조수석 앞에 부착된 택시운전면허증이나 명함에 적힌 피고인의 이름이나 콜택시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또는 이를 실제로 보고서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또한 피해자가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는 마당에 범행일로부터 약 석 달 이상이 지난 고소시점까지 이를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우므로, 위와 같은 의문도 납득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넷째, 피고인은 피해자가 택시에서 내린 후 차량번호판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러면서도 택시 뒤유리에 붙어있는 운불련이란 스티커는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어 더욱 믿기 어렵다고 주장하나, 피해자는 너무 긴장되고 당황하여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번호판도 보지 않고) 도망갔다고 진술하고 있는데(공판기록 119, 239면), 이는 앞에서 본 피해자의 심리상태에 비추어 수긍이 가는 바이고, 택시 뒤유리에 붙어있는 운불련이란 스티커는 피해자가 당초 피고인의 택시 뒷좌석에 탑승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의심들은 모두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이 아니라 단순한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에 불과하므로, 이를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해자의 진술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피고인이 아닌 다른 택시기사가 피해자를 추행하였을 가능성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것은, 공판에서 획득된 인식과 조사된 증거를 남김없이 고려하지 아니하였고, 이를 모든 관점에서 상호 관련시켜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치밀한 논증을 거치지 아니하였으며, 증거의 증명력을 판단함에 있어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어긋나는 판단을 함으로써 자유심증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채증법칙 위반 또는 심리미진으로 인하여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 할 것이다.

4. 그러므로 검사의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용담(재판장) 유지담 배기원(주심) 이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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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대전고등법원 2003.12.19.선고 2003노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