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헌법 제22조 가 보장하는 '예술의 자유'의 한계 및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모델이 된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피해자 또는 그 유가족이 인격권 침해를 근거로 이에 대한 금지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가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의 판단 기준
[3] 법원이 영화의 상영 자체를 금지하거나 혹은 그 영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수정·삭제하여 달라는 취지의 피해자의 청구를 인용할 수 있는 경우
[4]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 기준 및 영화상영금지가처분 등 만족적 가처분의 경우 피보전권리의 존부의 소명 정도
[5]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상업영화에 있어서 실제 상황과 배치되는 사실묘사로써 그 모델이 된 인물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 내용을 실제상황과 혼동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다면 영화 자체의 상영금지 내지 영화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수정을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인용할 수 없다고 한 사례
[6]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는 상업영화에 관한 광고·홍보의 경우, 헌법 제21조 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
[7] 역사적 사실에 배치되는 묘사로써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상업영화에 있어서 일반인으로 하여금 영화가 역사적 사실 그대로 제작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내용의 광고·홍보에 대하여 인격권의 침해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피해자의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사례
결정요지
[1]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한 헌법 제22조 가 보장하는 예술의 자유는 창작소재, 창작형태 및 창작과정 등에 대한 임의로운 결정권을 포함한 예술창작활동의 자유와 창작한 예술작품을 일반대중에게 전시·공연·보급할 수 있는 예술표현의 자유 등을 포괄하는 것인데, 다만 이러한 예술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권리와 명예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되고,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모델이 된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피해자는 영화제작자 등을 상대로 하여 인격권 침해 등을 이유로 그 영화의 상영금지 등을 구할 수 있고, 그 모델이 된 사람이 이미 사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사후(사후)에 망인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왜곡 등으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그 유가족이 인격권 침해를 근거로 하여 이에 대한 금지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2]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가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검토함에 있어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역사적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의 한계로 인하여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망인이나 그 유가족의 인격권보다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창작 내지 예술의 자유에 대한 보호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중시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야 하고, 따라서 영화제작의 토대가 된 각종 자료들의 확실성과 신빙성,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실확인작업이 비교적 용이하였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영화제작자가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다하였는가, 그 영화의 내용이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의하여 뒷받침되는가 하는 점에 비추어 인격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3] 법원에서 '예술적 창작물'인 영화의 상영 자체를 금지하거나 혹은 그 영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수정·삭제하여 달라는 취지의 피해자의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사법절차를 통하여 예술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에게 위와 같이 직접적 구제수단이 허용되는 사안은 명예훼손 또는 인격권 침해의 태양 및 그 정도, 침해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인격권의 핵심적 내용이 중대하게 훼손되는 경우 등으로 한정하여야 할 것이다.
[4]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에서 규정하는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은 다툼 있는 권리관계에 관하여 그것이 본안소송에 의하여 확정되기까지의 사이에 가처분권리자가 현재의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강포를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기타의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허용되는 응급적, 잠정적인 처분인바, 이러한 가처분을 필요로 하는지의 여부는 당해 가처분신청의 인용 여부에 따른 당사자 쌍방의 이해득실관계, 본안소송에 있어서의 장래의 승패의 예상, 기타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법원의 재량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이며, 더구나 가처분채무자에 대하여 본안판결에서 명하는 것과 같이 영화 자체에 대한 상영금지 내지 그 영화 내용에 관한 직접적인 수정 등을 구하고 있는 만족적 가처분의 경우, 채권자들로서는 그 권리가 종국적으로 만족을 얻는 것과 동일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반면에 채무자들의 입장에서는 본안소송에서 다투어 볼 기회조차 없이 기존 창작물의 본래 모습을 일반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봉쇄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만족적 가처분을 발령함에 있어서는 그 피보전권리 등에 관하여 통상적 보전처분의 경우보다 높은 정도의 소명이 요구된다.
[5]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상업영화를 제작함에 있어서 영화제작진이 상업적 흥행성이나 관객들의 감동 등을 고양하기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록 실제 상황과 배치되는 사실묘사로써 그 모델이 된 인물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에 부가하여 상영되는 자막에 이러한 각색사실을 분명하게 명시하여 일반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의 내용이 실제 사실관계와 다르다는 점을 용이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등 영화 내용을 실제상황과 혼동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다면 영화 자체의 상영금지 내지 영화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수정을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인용할 수 없다고 한 사례.
[6] 상업적 광고의 경우에도 넓은 의미에서 헌법 제21조 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최소한 실제 사실관계에 배치되는 영화내용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상업적 광고가 '표현의 자유'에 근거하여 보호된다고 볼 수는 없고, 위와 같은 상업적 광고에 대한 보호에 관하여 적극적인 견해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는 상업영화에 관한 광고·홍보의 경우, 순수한 창작소설 등을 토대로 한 영화에 비하여 실제 사실관계와 상이한 광고·홍보로 인하여 그 모델이 된 사람의 인격권 등이 침해될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광고주체인 영화제작진의 입장에서는 등장인물의 인격권침해 여부에 관하여 신중하게 검토해야만 할 것이고, 따라서 이에 관하여 각종 선전매체를 통하여 광고하는 경우 '표현의 자유'가 용인되는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7] 역사적 사실에 배치되는 묘사로써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상업영화에 있어서 일반인으로 하여금 영화가 역사적 사실 그대로 제작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내용의 광고·홍보에 대하여 인격권의 침해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피해자의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사례.
참조조문
[1] 헌법 제10조 , 제22조 ,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 민법 제751조 [2] 헌법 제10조 , 제22조 , 민법 제751조 [3] 헌법 제10조 , 제22조 ,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 민법 제751조 [4]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5] 헌법 제22조 ,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6] 헌법 제21조 [7] 헌법 제10조 ,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 민법 제751조
참조판례
[1] 헌법재판소 1993. 5. 13. 선고 91헌바17 전원재판부 결정(헌공2, 160) 대법원 1996. 4. 12. 선고 93다40614, 40621 판결(공1996상, 1486) 대법원 1997. 10. 24. 선고 96다17851 판결(공1997하, 3574)
[2] 대법원 1998. 2. 27. 선고 97다19038 판결(공1998상, 865) 대법원 1998. 10. 27. 선고 98다24624 판결(공1998하, 2766) [4] 대법원 1993. 2. 12. 선고 92다40563 판결(공1993상, 971) 대법원 2003. 11. 28. 선고 2003다30265 판결(공2004상, 42)채권자,항고인
채권자 1 외 56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상익)
채무자,피항고인
주식회사 플레너스의 소송수계인 주식회사 시네마서비스 외 2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씨에이치엘 담당변호사 표종록)
주문
1. 채권자들이 당심에서 변경한 신청에 기하여 제1심결정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가. 채무자들은,
(1) 국내 영화관에서 2003. 12. 24. 개봉된 영화 '실미도'에 관하여 채무자들이 운영하는 공식홈페이지(www.silmido2003.co.kr) 중 별지 목록 제1항 기재와 같은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위 홈페이지를 운영하여서는 아니 되고,
(2) 위 (1)항 기재 영화에 관하여 채무자들이 제작한 디브이디(DVD, Digital Versatile Disc) 세트의 첨부물{684 북파부대, 실미도(SILMIDO)} 중 별지 목록 제2항 기재와 같은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위 디브이디 세트를 제작, 판매, 배포, 광고하여서는 아니 되고,
(3) 위 (1)항 기재 영화에 관하여 채무자들이 제작한 비디오테이프의 겉 포장 중 별지 목록 제3항 기재와 같은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위 비디오테이프를 제작, 판매, 배포, 광고하여서는 아니 되고,
(4) 위 (1)항 기재 영화가 마치 역사적 사실 그대로 제작된 것처럼 홍보하거나 광고하여서는 아니 된다.
나. 채무자들이 위 가.항 기재 각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채무자들은 채권자들에게 위반일수 1일당 금 3,000,000원을 지급하라.
다. 채권자들의 나머지 신청을 기각한다.
2. 신청비용은 제1심, 제2심을 통하여 그 중 20%는 채권자들이, 나머지는 채무자들이 각 부담한다.
신청취지및항고취지
1. 신청취지(채권자들은 당심에 이르러서 그 신청취지를 일부 변경하였다)
가. 채무자들은,
(1) 채무자 주식회사 한맥영화, 법인분할 전 주식회사 플레너스(2004. 6. 1.자 법인분할로 인하여 채무자 주식회사 시네마서비스가 이 사건 소송을 수계하게 되었는데, 아래에서는 편의상 법인분할 전후를 따로 구분하지 아니하고 '채무자 플레너스'라고 한다)가 제작하고, 채무자 강우석이 감독하여 2003. 12. 24. 개봉된 영화 "실미도(이하 '이 사건 영화'라고 한다)"에 등장하는 공군 제2325부대 209파견대(일명 '684부대'라고 하는데, 이하 '684부대'라고 한다)의 훈련병들에 관하여 일반인들이 살인범 또는 사형수라고 오인하거나 용공주의자라고 오인할 수 있는 장면·대사·자막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이 사건 영화를 상영하거나 이에 관한 영화필름, 디브이디, 비디오테이프, 인터넷 영상물 등을 제작하여 이를 제3자에게 인도·임대·양도하는 등 일체의 처분을 하여서는 아니 되고,
(2) 이 사건 영화에 관하여 채무자들이 운영하고 있는 주문 제1의 가. (1)항 기재 공식홈페이지, 채무자들이 제작·판매하고 있는 디브이디 세트의 첨부물, 비디오테이프의 겉 포장 중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위 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위 디브이디 세트 및 비디오테이프를 발행, 출판, 인쇄, 복제, 판매, 배포, 광고하여서는 아니 되고,
(3) 이 사건 영화가 마치 역사적 사실 그대로 제작된 것처럼 홍보하거나 광고하여서는 아니 된다.
나. 채무자들이 위 가.항 기재 각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채무자들은 채권자들에게 위반일수 1일당 금 10,000,000원을 지급하라.
다. 집행관은 위 명령의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2. 항고취지
제1심결정을 취소한다. 신청취지 기재와 같은 결정을 구한다.
이유
1. 기초사실
이 사건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소명된다.
가. 채권자들은 1968. 4.경 창설된 684부대의 훈련병이었던 신청외 망 1 내지 12 등 12인(이하 위 12인을 합하여 '이 사건 망인들'이라 한다)의 유가족들이고(채권자들과 이 사건 망인들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는 별지 채권자 목록 기재 참조), 채무자 주식회사 한맥영화, 플레너스는 이 사건 영화의 공동제작사이며, 채무자 강우석은 이 사건 영화의 감독이다.
나. 신청외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의 무장 남파공작원 31명이 1968. 1. 21. 청와대에 대한 기습공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던 우리 군인, 경찰관 및 민간인 등 수십 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다음, 우리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1968. 4.경 북한의 주석궁에 대한 기습공격을 비롯한 북파 공작업무 등을 목적으로 하여 공군 소속 특수부대로서 684부대를 창설하였는데, 그 당시 훈련병 31명의 모집 및 부대운영에는 정보기관이 관여하였다.
다. 684부대의 교육대장을 비롯한 담당 기간병들은 서해의 무인도인 실미도에 설치된 비밀훈련장에서 외부와 격리된 훈련병들에 대하여 매우 강도 높은 특수훈련을 실시하였는데, 그 창설시점부터 1971. 8. 22.까지 계속된 특수훈련과정에서 훈련병 1명은 훈련도중 익사사고로 인하여 사망하였고, 훈련병 6명의 경우 탈출사건, 부녀자 강간사건 등에 관련하여 기간병들 및 훈련병들에 의한 사형(사형) 등에 의하여 사망하였다.
라. 단기간에 고도로 훈련된 북파 공작원을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창설된 684부대의 훈련병들에 대하여 처음에는 상당한 보급물자가 지원되었으나, 그 후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고 남북관계의 변화로 인하여 북한에 대한 기습공격의 필요성 등이 점점 약화됨에 따라서 684부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수준이 현저하게 저하되었고, 아울러 외부와 격리된 채 이루어지는 특수훈련이 3년 이상 지속되면서 부녀자 강간사건 등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훈련병들과 기간병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는 등 684부대가 그대로 존속할 수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는 단계에 이르자, 훈련병 24명은 1971. 8. 23. 새벽에 잠을 자고 있던 기간병들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교육대장을 비롯한 기간병 18명을 살해한 다음 인천으로 상륙하였다. 그 후 훈련병들은 민간 버스 2대를 순차로 탈취하여 서울 시내방향으로 진행하면서 군인 및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였고, 서울 동작구 대방동 소재 유한양행 사옥 앞 도로에 이르러 정차한 다음 출동한 군인들과 대치하던 중, 훈련병들이 소지하고 있던 수류탄이 위 버스 안에서 폭발함으로써 그 대치상황이 종료되었다.
마. 위와 같은 실미도 탈출 및 서울진입과정에서 훈련병들 24명 중 대부분이 총격전 내지 수류탄 폭발 등으로 인하여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생존한 훈련병 4명( 신청외 망 8, 12, 신청외 13, 14)은 군수사기관의 조사를 거쳐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위 신청외 망 8 등 4명은 그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기간병들에 대한 살해사실을 자인하면서, 684부대에 지원하게 된 경위와 그 모집방식 등에 관하여 진술하였는바{당심법원의 공군본부 검찰부장에 대한 사실조회회신(당심법원 2004. 12. 7.자 접수), 기록 872면 등 참조}, 재판부는 위 4명에 대하여 사형을 선고하였고, 위 판결이 확정된 다음 1972. 3. 10.경 이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바. 한편, 신청외 백동호는 위와 같이 684부대가 창설된 이후 훈련병들의 사망으로 인하여 해체될 때까지의 역사적 사실(이하 '실미도 사건'이라고 한다)을 소재로 하여 1999년 '백동호 장편소설 실미도'를 집필하였다(이하 '소설 실미도'라고 한다). 이 사건 영화는 '소설 실미도'를 원작으로 하여 시나리오 작업을 거친 다음 이를 토대로 하여 제작된 영화로서 2003. 4. 말경 촬영이 시작되어 2003. 12. 24. 개봉되었는바(15세 이상 관람가 등급), 국내에서 1,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였고, 그 후 대만과 일본 등 외국 영화관에서 상영되기도 하였다. 한편, 채무자들은 2004. 7.경 이 사건 영화가 수록된 디브이디 세트와 비디오테이프 등을 제작하여 현재까지 이를 판매하고 있다.
2. 채권자들 및 채무자들의 주장 요지
가. 채권자들의 주장 요지
(1) 이 사건 망인들은 684부대의 훈련병으로 지원하기 이전에 살인죄 등과 같은 중범죄(중범죄)로 인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민간인들로서, 북파 공작원의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 금전적 보상을 비롯하여 상당한 반대급부를 제공하겠다는 정보기관의 제의를 수용하여 스스로 훈련병으로 자원한 것이고(이하 이러한 모집방식을 '민간인 모집방식'이라고 한다), 그 당시 훈련병들은 훈련과정 등에서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배우지 아니하였고 위 노래를 부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영화는 684부대 훈련병들 대부분이 살인죄 등과 같은 중범죄를 저질러 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서 그 집행을 기다리거나 혹은 무기징역 등과 같은 장기형의 집행을 받으면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정보요원에 의한 개별면접을 통하여 사면 내지 형집행정지 등을 조건으로 모집된 자들로서, 위와 같은 교도소 모집에 응하지 아니하는 경우 어차피 사형집행을 당할 처지에 있거나 최소한 정상인으로서 사회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형집행 등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684부대에 입소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고(이하 이러한 모집방식을 '교도소 모집방식'이라고 한다), 나아가 이 사건 영화에는 훈련병들이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에 위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이 포함되는 등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장면들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
(2) 그런데 역사적 사실에 배치되는 이 사건 영화의 내용은 일반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 망인들이 흉악범 출신의 용공주의자로 오인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서, 이는 이 사건 망인 및 그 유가족들인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3) 나아가 채무자들은 이 사건 영화에 관한 공식홈페이지, 영화선전물, 신문, 방송 등을 비롯한 각종 홍보매체를 통하여 마치 이 사건 영화의 내용이 역사적 진실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광고하였는바, 이 역시 이 사건 망인들 및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4) 위와 같은 인격권침해행위가 계속된다면 채권자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염려가 있으므로, 신청취지 기재와 같은 가처분의 발령을 구한다.
나. 채무자들의 주장 요지
(1) 이 사건 망인들 12명의 경우 '민간인 모집방식'에 따라서 684부대에 자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영화는 684부대 훈련병들 31명 중 대부분이 '교도소 모집방식'에 따라서 충원된 것으로 묘사하고 '민간인 모집방식'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하지 아니하는 등 그 영화 내용 중에는 원래 소재로 하였던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아니하는 장면들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2) 그러나 이 사건 영화는 본질적으로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인 대본에 따라서 제작된 '상업영화'로서,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채무자들과 같은 영화제작진이 상업적 흥행성, 관객들의 흥미와 감동 등을 고양하기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는 것은 폭넓게 허용되어야 한다. 나아가 채무자들이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할 당시인 2003년에는 약 30여 년 전에 창설되었던 위 684부대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아니하였고 이에 직접 관여하였던 기간병들 내지 훈련병들의 유가족 등 관련자들의 진술도 쉽게 청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채무자들은 부득이 '실미도 사건'에 관한 여러 가설(가설)과 제작진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하여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것으로서, 이러한 사안에서는 이 사건 망인들 및 그 유가족인 채권자들의 인격권보다는 영화제작진의 '예술의 자유' 등을 좀더 중시해야 하므로 이 사건 가처분신청에 관한 피보전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
(3) 채무자들은 이 사건 영화를 홍보·광고함에 있어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제작되는 상업영화에 관한 일반적인 관행에 따라서 통상적인 광고를 하였을 뿐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아니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과대·과장광고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건 영화의 홍보 내지 광고로 인하여 이 사건 망인들 및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4) 한편, ① 이 사건 영화의 국내외 영화관에서의 상영은 이미 종료되었고, ② 이 사건 영화를 수록한 디브이디 세트 및 비디오테이프 등은 2004. 6. 21.자 이 사건 제1심결정 이후인 2004. 7.경 국내에 출시되어 그 판매가 계속되고 있으며, 채무자들의 동의를 받은 신청외 씨제이인터넷에서 비디오영상물 주문전송시스템(VOD, Video On Demand) 등을 통하여 이 사건 영화를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채무자들은 현재 신문, 방송 등을 통하여 이에 관한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는 않고 있고, ③ 다만, 이 사건 영화에 관한 공식홈페이지의 경우, 채무자들이 이 사건 영화를 국내 영화관에서 개봉할 무렵에 제작하였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장래에 이 사건 영화가 텔레비전 등을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방영될 개연성이 있기는 하지만, 현 단계에서 이 사건 가처분신청에 관한 보전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3. 판 단
가. 이 사건 영화의 내용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 등에 대한 검토
(1) 일반론
일반적으로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 및 영화 감독 등을 비롯한 제작진들의 상상력에 의해 가상적인 인물들이 전개해 나가는 이야기를 영상화한 창작물로서 통상적으로는 허구임을 전제로 하지만, 관객의 흥미와 감동을 유발하기 위해 때로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이나 인물을 모델로 하는 경우가 있다. 한편,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한 헌법 제22조 가 보장하는 예술의 자유는 창작소재, 창작형태 및 창작과정 등에 대한 임의로운 결정권을 포함한 예술창작활동의 자유와 창작한 예술작품을 일반대중에게 전시·공연·보급할 수 있는 예술표현의 자유 등을 포괄하는 것인데, 다만 이러한 예술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권리와 명예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겠다( 헌재 1993. 5. 13. 선고 91헌바17 결정 등 참조). 그러므로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모델이 된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피해자는 영화제작자 등을 상대로 하여 인격권 침해 등을 이유로 그 영화의 상영금지 등을 구할 수 있고, 그 모델이 된 사람이 이미 사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사후(사후)에 망인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왜곡 등으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그 유가족이 인격권 침해를 근거로 하여 이에 대한 금지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겠다.
다만, 위와 같이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가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검토함에 있어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역사적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의 한계로 인하여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망인이나 그 유가족의 인격권보다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창작 내지 예술의 자유에 대한 보호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중시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야 하고( 대법원 1998. 2. 27. 선고 97다19038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영화제작의 토대가 된 각종 자료들의 확실성과 신빙성,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실확인작업이 비교적 용이하였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영화제작자가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다하였는가, 그 영화의 내용이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의하여 뒷받침되는가 하는 점에 비추어 인격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 1998. 10. 27. 선고 98다24624 판결 등 참조). 특히, 법원에서 '예술적 창작물'인 영화의 상영 자체를 금지하거나 혹은 그 영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수정·삭제하여 달라는 취지의 피해자의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사법절차를 통하여 예술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에게 위와 같이 직접적 구제수단이 허용되는 사안은 명예훼손 또는 인격권 침해의 태양 및 그 정도, 침해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인격권의 핵심적 내용이 중대하게 훼손되는 경우 등으로 한정하여야 할 것이다.
(2)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영화장면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 등
채무자들은 이 사건 영화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원래 소재로 하였던 '실미도 사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아니한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다만 이 사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인 대본을 토대로 한 단순한 '상업영화'일 뿐이기 때문에 이 사건 영화로 인하여 이 사건 망인들 내지 그 유가족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다투고 있으므로(2004. 4. 29.자 답변서 등 참조), 그 영화 내용 중 이 사건 망인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있는지, 그러한 내용이 존재]한다면 그 인격권 침해의 경위, 태양, 정도 등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바, 아래에서는 이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본다.
(가) 이 사건 망인들을 비롯한 684부대 훈련병들의 모집경위 및 출신성분 등
1) 기초사실
이 사건 망인들 12명의 경우 '민간인 모집방식'에 따라서 684부대에 자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영화는 '교도소 모집방식'에 대해서만 상세하게 묘사하고 민간인 모집사례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아니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는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그리고 당심법원의 국방부장관에 대한 사실조회회신(당심법원 2005. 1. 3.자 및 2005. 1. 13.자 접수) 등에 의하면, ① 당심법원의 사실조회를 받은 국방부에서는 2005. 1. 11.까지 684부대의 훈련병들에 대한 신원조사작업과 아울러 수사경력 및 범죄경력조회 등을 실시하였는바, 이 사건 망인들 12명 중 ㉮ 신청외 망 1의 경우,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에서 1967. 7. 28.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 신청외 망 2의 경우,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1964. 4. 2. 절도죄로 징역 10월을, 같은 법원에서 1965. 4. 7. 특수절도죄로 징역 10월을, 같은 법원에서 1967. 9. 17. 특수폭행죄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각 선고받았으며, ㉰ 신청외 망 12의 경우, 인천지방검찰청에서 1959. 3. 27. 특수절도죄로 소년부송치처분을 받은 다음, 인천지방법원에서 1960. 7. 2. 특수절도죄로 징역 장기 1년 6월, 단기 1년을, 같은 법원에서 1961. 9. 16. 특수절도죄로 징역 장기 1년 6월, 단기 1년을 각 선고받은 적은 있으나, ㉱ 나머지 훈련병 9명의 경우 형사처벌을 받은 범죄경력이 발견되지 아니한 사실, ② 한편, 이 사건 망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훈련병들 중 신청외 15 등과 같이 2005. 1. 11.까지 국방부에 의하여 구체적 신원이 확인된 다른 훈련병들에 관해서도 684부대에 입소하기 이전에 법원으로부터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발견되지 아니한 사실, ③ '실미도 사건'으로 인하여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던 훈련병 4명 중 신청외 망 8의 경우 군수사기관에서 1967. 5.경 절도혐의로 입건되었다가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이외에 범죄전력이 없는 상태에서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684부대에 자원하였다고 진술하였고, 나머지 신청외 망 2, 신청외 13, 14의 경우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는 상태에서 권투체육관에 다니거나 곡예단 단원으로 일하던 중 훈련병으로 자원하였다고 진술한 사실 등이 소명된다{군검찰관으로서 위 4명에 대한 형사사건을 직접 담당하였던 신청외 김중권은 서울방송(SBS)에서 2004. 2. 7.자로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 실미도 - 8·23 군특수범 난동사건의 진실' 및 2004. 3. 13.자로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 죽음의 섬, 실미도 II'에 관한 인터뷰과정에서 훈련병 31명 중에 사형수나 무기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소갑 제39호증의 1, 2 참조}.
2) 684부대 훈련병들의 모집경위 및 출신성분에 관한 구체적인 영화 내용 등
가) 그런데 이 사건 영화에 나타난 훈련병들의 모집경위 등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내용은 다음과 같다(소갑 제28호증, 제1심법원의 2004. 5. 17.자 검증조서 등 참조).
(ⅰ) 우선, 이 사건 영화는 주연급에 해당하는 강인찬(나중에 제3조 조장이 됨. 설경구 역)에 관하여 살인을 시도하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그 집행을 기다리던 중 교도소로 직접 찾아온 교육대장 최재현(안성기 역)에 의하여 '교도소 모집방식'으로 훈련병으로 충원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고, 한상필(나중에 제1조 조장이 됨. 정재영 역)에 관해서는 사형집행을 받기 위하여 교수형집행장에까지 끌려가서 절차를 밟던 중, 갑자기 그 사형집행절차가 중단된 다음 684부대에 입소하게 되는 과정 등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ⅱ) 한편, 이 사건 영화의 경우 위 2명을 제외한 나머지 훈련병들에 관하여 범죄과정, 형집행과정 내지 교도소 모집과정 등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① 훈련병 31명이 실미도에 상륙한 직후에 교육대장 최재현이 단상에 올라가서 훈련병 전원에 대하여, "보다시피 난 군인이다. 너희는 사형수이거나 사회 밑바닥에서 아무 희망도 없이 살던 인간쓰레기들이다. 그러나 너희가 그 군복을 입는 순간 나와 너희의 목표는 하나가 된다.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조국통일의 과업을 함께 완수할 동지가 되는 것이다. 나와 여기 있는 기간병들은 너희가 자신의 생명과 국가의 명령을 지켜낼 수 있도록 훈련시킬 것이다. (중략) 각오가 된 자는 자기 손으로 군복을 입는다."라고 연설하고, 이에 관하여 주연급 인물인 조근재(나중에 제2조 조장이 됨. 강신일 역)를 비롯한 다른 훈련병들이 체념한 듯이 군복을 입으면서 "돌아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씨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백 번 옳은 소리지." "언제 안전장치 달고 사시미 뜨러 다녔냐."라고 대응하는 등 대부분의 훈련병이 입소하기 전에 저지른 중범죄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없는 절박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하였고(상영시작 후 15분경), ② 훈련병 찬석(나중에 취사병이 됨. 강성진 역)이 훈련 도중에 다리를 다치고 나서 기간병 소대장인 조중사(허준호 역)가 찬석에게 치료를 위하여 퇴소할 것을 요구하자, 찬석은 "여기서 다시 감방으로 쫓겨가서 오늘 매달리나 내일 매달리나 걱정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조중사님. (중략) 밥을 짓던 청소를 하든 변소청소도 제가 혼자 다 하겠습니다. 시키는 것은 뭐든지 다하겠습니다. 씨이,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라는 식으로 애원하고, 그 옆에 있던 제2조 조장 조근재는 "중사님, 누군가 그런 일을 다 해주면 나머지는 훈련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능률도 더 오르지 않겠습니까? (좌중을 둘러보며) 다들 우에 생각하노?"라는 식으로 다른 훈련병들의 동의를 구하자, 그 곳에 있던 모든 훈련병들은 이구동성으로 "뭘 어떻게 생각합니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갈 미친 놈들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식으로 대응하였으며, 이에 조중사가 "전우들의 식사를 영양가 있게 준비할 수 있나?"라고 찬석에게 묻자, 찬석은 살았다는 듯이 "예..."라고 대답하고, 다른 훈련병들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야, 저 새끼, 그러면 산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등 만일 위 찬석이 684부대에서 퇴소하게 되면 교수형집행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대부분의 훈련병들이 이심전심(이심전심)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였으며(상영시작 후 37분경), ③ 기간병들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한 훈련병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던 기간병 소대장 박중사(이정헌 역)가 훈련병들에게 "가, 가까이 오지마. (중략) 어차피 죽을 새끼들이었어. 너희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우리까지 죽을 수는 없었던 거야."라고 이야기함에 대하여 위 한상필, 강인찬 등이 "우리가 왜 어차피 죽을 목숨이야.", "당신들 목숨 값이나 개같이 버텨온 우리 목숨 값이 같은 것이라고 한 번만 이라도 생각해 줬다면.." 이라고 대응하자, 위 박중사가 "어떻게 똑같아. 너희 같은 범죄자 출신들이랑 우리들이 어떻게 같아. 이름도 없는 새끼들이랑 우리가."라고 대꾸하는 등(상영시작 후 1시간 48분경), 이 사건 영화의 초반부터 종반까지 훈련병들 대부분이 684부대에 들어오기 이전에 저질렀던 중범죄로 인하여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던 것처럼 묘사하는 장면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ⅲ) 한편, 이 사건 영화의 경우 이 사건 망인들과 같이 '민간인 모집방식'에 의하여 훈련병으로 충원된 사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아니하였고, 이에 관한 간접적인 암시도 발견하기 어렵다.
나) 검 토
위와 같이 구성된 이 사건 영화를 접하는 일반인들의 경우 684부대 훈련병들 대부분이 '교도소 모집방식'에 의하여 충원된 것처럼 인식하게 되고, 이 사건 망인들과 같은 훈련병들이 '민간인 모집방식'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입소하였다는 사정은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사건 영화 중 684부대 훈련병들의 모집방식 및 출신성분에 관한 부분은 '실미도 사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 명백하게 배치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3) 684부대 훈련병들의 모집방식 등에 관한 이 사건 영화의 제작경위 등
가) 원작의 내용
한편, 이 사건 영화가 '소설 실미도'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사실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데(소갑 제5호증, 기록 168면 이하), 원작의 경우 아래와 같이 '교도소 모집방식'을 강조하면서도 민간인 모집사례(최소한 그 가능성)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략) 강인찬이 감방으로 돌아가면서 보니 복도 저만큼에서 또 다른 사형수가 수갑을 찬 채 다가오고 있었다. 조국에 봉사할 사람이 강인찬 말고도 더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중략)
강인찬은 대충 챙긴 징역 보따리를 둘러메고 감방문을 나섰다. 역시 전방이 아니었다. 그가 안내된 곳은 보안과 앞의 군용 트럭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트럭에 올라타자 안에는 이미 두 명의 사형수가 앉아 있었다.
피차 질문도 대답도 없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군용 트럭은 출발했다. 완전 무장을 한 군인들 역시 굳은 자세로 묵묵하더니 독립문을 지날 때쯤에 사형수들에게 담배를 나누어주었다. (중략)
그들과 함께 해안 경비정에 승선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험한 인상에 근육이 울퉁불퉁했고, 칼자국과 문신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행색으로 보아 사형수나 무기수뿐만 아니라 뒷골목에서 곧바로 합류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강인찬은 사람들을 세어보았다. 지원자 서른 한 명, 군인들이 스물 세 명이었다. (중략)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차례차례 하선을 했다. 고생 보따리를 하나씩 걸머지고 낯선 무인도로 옮겨온 살인자, 강도강간범, 현상수배자, 쪼록꾼, 개척자활단 출신들. 모두가 사회의 암이고 쓰레기 인생들이었다.}
나) 원작 내용과 이 사건 영화의 차이점에 관한 백동호의 설명 등
(ⅰ) 그런데 위 백동호는 이 사건 영화가 개봉된 이후인 2004. 2. 21. {실미도사건 총정리 1}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는바(소갑 제19호증의 4, 기록 330면 이하), 이를 통하여 684부대 훈련병들의 모집방식 등에 관련된 원작 및 이 사건 영화내용의 차이점 등을 비교·검토할 수 있다.
{(전략) 첫째 : 소설에서는 훈련병이 사형수, 무기수와 함께 일반인이 섞여 있고, 영화는 대부분이 사형수 출신이며 그 밖의 언론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일단 밝혀 둘 것은 강인찬이 전과자이며 저와 같은 교도소에서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미도 훈련병의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소설과는 약간 다르게 강인찬의 모델이었던 생존훈련병에게 실미도에 대해서 여러 날을 두고 자세한 것을 다 듣지 못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메모 한 장 남기지 못한 10년 전의 들은 이야기를 기억을 되살려서 쓰려니 부족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강인찬은 훈련병이 대부분 민간인이었지만 교도소에서 온 사람도 제법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동료라도 본인이 굳이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하필 출소 후 본격적으로 소설 실미도의 취재를 시작했을 때 외국에 있던 강인찬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그 몇 년 뒤에 연락이 오기는 했고 최근에도...). 헌데 제가 취재한 모든 자료와 인터뷰는 훈련병이 사형수, 아니 적어도 교도소 출신인 것이 틀림없더군요.
국회속기록(국방내무연석회의록), 국내 외의 엄청나게 많은 언론매체, 박정인 장군 회고록, 유재흥 국방장관 회고록, 김형욱 회고록, 격동 삼십년, 한국현대사, 김이태씨의 신동아 수기 등등 실미도 실자가 들어 있는 모든 문서...
김두만 공군참모총장, 민기식 육군참모총장(국회 국방위원장 실미도진상조사단장), 김재명 대간첩 대책본부장, 박정인 인천지구 사단장, 신분을 밝히지 않기로 약속한 전직 중앙정보부 대령 외 군인 여러 명... 강근호 군산시장(당시 국회의원), 김한수, 김상현 위원, 이세규 위원 비서관, 등등의 정치인... 당시 경향신문 사회부 수석기자 손충무 등등 언론인...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빠짐없이 한결같이 훈련병들이 사형수나 무기수 출신의 죄수라고... 확실하게 증언을 하던지요...
저는 강인찬 한 사람의 말보다 방대한 양의 증거자료와 이 나라 지도자급의 수많은 사람들 인격을 더 믿고 싶었습니다. 또 저 자신도 단순히 민간인 출신의 특수부대보다 사형수와 무기수로 이루어진, 존재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일급비밀인 특수부대에 더 매력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것이 독자들의 구미를 더 당기게 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사형수와 무기수라는 부대원의 이야기에 탄력이 붙자 소설은 쓰기가 훨씬 재미있더군요. (후략)}
(ⅱ) 위와 같이 백동호는 '소설 실미도'를 집필함에 있어서 '교도소 모집방식'을 강조한 이유 중 하나가 독자들의 흥미를 좀더 유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점을 자인하면서, 다만 '소설 실미도'의 경우 민간인 모집사례(최소한 그 가능성)를 적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훈련병의 모집경위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 상대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반면에, 이 사건 영화에서는 원작과 달리 '민간인 모집방식'을 전혀 언급하지 아니하는 극단적인 상황설정을 하였다는 점을 양자 간의 실질적 차이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다) 이 사건 영화 제작 당시 '민간인 모집방식'에 관한 자료가 존재하였는지 여부 등
(ⅰ) 채무자들의 주장요지
채무자들이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할 당시인 2003년에 검토하였던 684부대 훈련병들의 모집경위에 관한 모든 자료들에는 훈련병들을 '교도소 모집방식'에 따라서 충원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그 제작 당시에 생존하고 있던 기간병들 내지 훈련병들의 유가족 등 관련자들의 진술을 쉽게 청취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채무자들은 훈련병들 대부분이 '교도소 모집방식'에 의하여 충원되었다고 믿고 있었고, 훈련병들 중 상당수가 '민간인 모집방식'에 의한 충원되었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정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서 민간인 모집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언급·암시하지 아니한 것 자체를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한편, 이 사건 영화를 국내 영화관에서 상영한 이후 비로소 나타난 사후적인 자료들에 의하여 이 사건 망인들 12명을 비롯하여 훈련병들 중 상당수가 '민간인 모집방식'에 따라서 충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채무자들은 2004. 7.경 이 사건 영화를 수록한 디브이디 및 비디오테이프 등을 제작하면서 이러한 사후적 사실규명과정 등을 설명하는 추가자막을 삽입하였는바,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이 사건 영화 등의 제작과정 등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ⅱ) 이 사건 영화의 제작 당시에 존재하고 있던 '교도소 모집방식'에 관한 자료 등
살피건대,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① 684부대의 훈련병들이 1971. 8. 23. 서울에 진입한 사건에 관하여 그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정래혁 등은 최초의 기자회견에서 이를 '무장공비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하였다가, 수 시간 후에 이루어진 후속기자회견에서는 훈련병들의 신분에 관하여 '공군 관리하에 수용중이던 특수범 내지 죄수들'이라는 추상적인 언급을 함으로써 당초의 입장을 번복하였고, 그 다음날인 1971. 8. 24. 위 정래혁, 공군참모총장 김두만, 대간첩대책본부장 김재명, 내무부장관 오치성 등은 국회 국방위원회(내무위원회와 연석회의)에 참석하여 위 사건을 '특수범 난동사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전제로 하여 국회의원들과 질의응답을 하였으며(소갑 제2호증, 기록 114-147면. 위와 같은 국방부장관 등의 추상적 언급을 토대로 하여 국회의원들도 훈련병들을 '범죄죄수인 모 부대 군인'이라고 호칭하였다. 기록 140면 등 참조), ② 같은 맥락에서 1971. 9. 15. 개최된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강근호는 국무총리 김종필에 대하여 훈련병들이 전과 10범 이상의 흉악범이 아니냐고 추궁하기도 하였고(기록 175면), ③ 위와 같은 고위공직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하여 그 당시 언론기관에서는 684부대 훈련병들이 '공군 관리 하에 수용된 특수범'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으며, ④ 684부대의 창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의 회고록에는 훈련병들이 모두 사형수나 무기수 출신으로서 '교도소 모집방식'에 따라서 충원되었다는 식으로 기재되어 있고(기록 174면), ⑤ 문화방송(MBC)이 1999. 12. 19. 방영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실미도 특수부대}에 관한 인터뷰과정에서 위 김두만은 훈련병들에 관하여 "내가 보고받기로는 전부 범법자라고 그럽디다. 범죄자... 깡패들 그런 거를 뽑았다고 그래요."라고 이야기한 사실(소을 제13호증 참조) 등이 소명된다{나아가 위 김종필은 2004년 2차례에 걸쳐서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 관한 인터뷰과정에서 684부대 훈련병들이 모두 사형수나 무기수 출신으로서 '교도소 모집방식'에 따라서 충원되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계속하였다}.
(ⅲ) 이 사건 영화의 제작 당시에 존재하고 있던 '민간인 모집방식'에 관한 자료 등
그러나 ① 채무자들이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참고한 것으로 자인하고 있는[실미도 684부대 주석궁 폭파부대{기간병 소대장이었던 신청외 김방일이 2001.경 '실명'으로 경향닷컴(www.khan.co.kr)에 기고하여 40부작으로 연재된 것임. 소갑 제26호증의 1 내지 5, 소갑 제27호증의 1 내지 40}] 에는 684부대 훈련병에 관하여, "모집된 훈련원들은 모두 정보요원에 의하여 포섭된 양민들이다. 방식은 무작위 투망식 거점포섭으로 충청·경기 일원 등 특정 지역 사람들이 집중 선발되었다. 훈련원 중 중상류층 국민이나 고급 인텔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하층 밑바닥 출신이었다. 항간에 죄수 또는 군죄수라고 알려진 것은 전혀 근거 없는 루머일 뿐 사실과 다르다. 시국사범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100% 민간인들로 구성되었다."라고 설명한 다음, ㉮ '식당 요리사'가 실직한 이후 자신의 피를 팔아서 받은 돈을 갈취하려는 불량배들을 때려눕힌 다음, 이 장면을 목격한 정보요원에 의하여 684부대에 자원하게 된 경위, ㉯ 단검투척에 관한 묘기를 보유한 '곡마단 단원'이 민간인 모집의 대상이 된 사정 등 개별 사례에 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고(소갑 제27호증의 6, 7, 제1심법원의 2004. 5. 17.자 검증조서 등 참조), ② 신동아 1993년 4월호에 게재된 {실미도 대북침투부대의 최후(기간병 소대장이었던 신청외 김이태가 '가명'으로 기고한 글을 토대로 한 것임. 소갑 제3호증)}의 경우 이에 관하여 "들어오기 전 직업들도 가지각색이었다. 뺑소니차 운전수, 가짜 중, 소매치기, 암표장수, 식당요리사, 곡마단 감독, 편물기계 수리공, 포장마차 주인, 권투선수, 아마추어 가수, 사과나무 전지공, 돌팔이 점쟁이, 미군부대 담치기, 술만 마시면 칼 들고 파출소 쳐들어 가는 놈, 여자 폭행만 전문으로 하는 놈 등 모두 다 교도소 구경을 했던 친구들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위와 같이 684부대의 기간병 소대장으로서 훈련병들을 직접 접촉하였던 김방일, 김이태 등이 작성한 자료들은 '민간인 모집방식'이 적용된 개별 사례에 관하여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684부대의 훈련병들이 사형수나 무기수 출신으로서 '교도소 모집방식'에 따라서 충원되었다는 등 매우 추상적인 언급만을 하고 있는 위 (ⅱ)항의 자료들과 대비하여 볼 때 그 형식이나 내용 등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 것이다{채무자들은 위 김방일의 경우 이 사건 영화의 상영 이후에 훈련병들 중 약 40%에게 '전과'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등 당초의 진술을 번복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작성자료 등에 일관성 내지 신빙성이 없다는 취지로 다투지만(2004. 6. 3.자 준비서면 및 소을 제8호증의 1, 2, 소을 제9호증 등 참조), 일반적으로 '전과'는 '전에 형벌을 받은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훈련병들 중 일부에게 전과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도소 모집이 행하여졌다고 볼 수는 없고(684부대에 입소하기 전에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었던 김기정의 사례 등 참조), 따라서 이 사건 영화가 상영된 이후에 이루어진 위 김방일 등의 일부 인터뷰내용이 '교도소 모집방식'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ⅳ) 검 토
살피건대, 위 김방일, 김이태 등과 같이 훈련병들을 직접 접촉하였던 사람들은 위 (ⅲ)항과 같이 실제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민간인 모집사례 등과 조화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진술을 하고 있는 반면에, 그 모집경위 등을 간접적으로 보고 받은 고위공직자들의 경우 위 (ⅱ)항과 같이 역사적 사실에 배치되는 듯한 추상적·포괄적인 진술을 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그 당시 훈련병 모집을 담당하였던 정보기관의 보고체계 등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채무자들은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모집에 관한 구체적·개별적 사례까지 상세하게 예시하고 있는 {실미도 684 부대 주석궁 폭파부대} 등을 참고하였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이 사건 영화의 원작인 '소설 실미도'에도 민간인 모집방식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는 이상,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는 '교도소 모집방식'에 관한 자료만이 존재하였고 '민간인 모집방식'에 관한 자료는 전혀 없었다는 취지의 채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아가 이 사건 영화는 불과 30여 년 전에 창설된 684부대에 관한 것으로서 그 부대에 직접 몸담았던 기간병들 및 훈련병들의 가까운 유가족들이 아직 생존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이 사건 영화의 제작 이전에 이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실미도 특수부대}, {실미도 684 부대 주석궁 폭파부대} 등을 통하여 그 훈련병들과 직접 접촉하였던 김이태, 김방일 등 생존한 여러 명의 기간병들의 실명과 얼굴 등이 일반대중들에게 이미 공개된 상태였으며, 특히 위 김방일의 경우 2003. 4. 30.경 이 사건 영화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하여 채무자 강우석이나 출연배우들을 만나고 영화제작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점(소갑 제32호증 내지 소갑 제35호증 등 참조) 등에 비추어 보면, 채무자들의 경우 684부대 훈련병들에 대한 모집경위 등에 대한 실질적인 사실확인작업이 충분히 가능한 상태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훈련병들에 대하여 '민간인 모집방식'이 적용되었다는 사정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 취지의 채무자들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오히려 ① 채무자 강우석이 이 사건 영화의 상영 이후인 2004. 6.경 이 사건 영화의 제작을 진실규명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신문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아니다. 사실 '반지의 제왕'과 맞붙어서 누가 더 재미있냐를 겨루고 싶었다. 소재(684북파부대)가 승산이 있다는 생각에 택했다. 감춰진 진실을 밝힌다는 소명의식은 솔직히 없었다. 대중적인 블록버스터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찍다 보니 역사를 의식하게 됐고, 지나친 가공을 생략했다."라고 대답한 점(소갑 제37호증) ② 위 백동호가 2004. 2. 21.경 작성한 '미도사건 총정리 1'의 기재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최소한 민간인 모집사례의 가능성을 언급한 원작의 내용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민간인 모집방식'을 전혀 언급·암시하지 아니한 이 사건 영화의 구성 내용은 채무자들이 제작 당시 검토한 각종 자료 중에서 일반관객의 흥미를 좀더 고조시킬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만을 임의로 선별하여 이를 각색·조합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나) 684부대 훈련병들이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에 관하여
1) 채권자들의 주장요지
684부대 훈련병들은 훈련과정 등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훈련병 4명이 그 사형집행 직전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등 그 당시 우리 정부의 기본적 정책노선에 대하여 매우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건 영화에서는 훈련병들이 죽음에 임박한 시점 등과 같이 '본래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결정적 순간에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불렀던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일반 관객으로 하여금 훈련병들이 마치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용공주의자였던 것처럼 오인하도록 유도하는 등 훈련병들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있다.
2) '적기가'에 관련된 이 사건 영화의 내용 등
이 사건 영화의 경우 ① 부녀자를 강간한 훈련병 원희가 체포되어 밧줄에 묶인 채 죽음을 기다리는 상태에서 처절하게 '적기가'를 부르고(상영시작 후 1시간 6분경), ② 훈련병 원희가 사망한 직후에 다른 훈련병들이 다 함께 내무반에 들어간 다음,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훈련병 중 일부가 중얼거리듯이 '적기가'를 부르며(상영시작 후 1시간 10분경), ③ 서울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버스에 타고 있던 훈련병 찬석이 죽어가면서 '적기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훈련병들이 다 함께 이를 따라서 부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사실(상영시작 후 1시간 55분경), 그런데 684부대에서는 원활한 북한침투에 관한 교육목적으로 훈련병들에게 '김일성 장군의 노래' 등과 같은 북한 군가를 가르치고 그 훈련과정에서 위와 같은 노래를 부르도록 한 사실 등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그러나 이 사건 기록상 이 사건 영화의 내용과 같이 훈련병들이 '적기가'를 훈련과정 등에서 배우거나 이를 불렀다는 점을 소명할 만한 자료는 전혀 없기 때문에(오히려 생존한 다수의 기간병들은 그 당시 훈련과정에서 '적기가'를 훈련병들에게 가르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위와 같은 이 사건 영화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없다.
3) 검 토
한편, 채무자들의 경우, 이 사건 영화를 제작할 당시 생존하고 있던 684부대의 기간병들의 진술을 청취하는 방법 등을 통하여 훈련병들이 '적기가'를 배웠는지 여부, 부녀자 강간사건에 대한 처리과정 등에 대한 실질적인 사실확인작업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병들의 정체성을 오도하는 방식으로 이 사건 망인들 및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는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위 2)항 기재와 같은 장면들을 별다른 근거 없이 임의로 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훈련병들의 출신성분 등에 관하여 문제가 될 수 있는 다른 장면들에 관하여
1) 구체적인 영화장면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영화의 경우 ① 훈련병들이 공식적인 출전명령에 따라서 소나기가 퍼붓는 한밤중에 고무보트에 탑승하고 평양을 향하여 출동한 상태에서 기간병들로부터 작전명령이 취소되었다는 점을 고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하여 거세게 항의하면서 맹목적으로 평양행을 고집하고, 이에 기간병들이 기관총에 의한 사격 등과 같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훈련병들의 평양행을 가까스로 저지하는 장면, ② 상부로부터 교육대장에게 훈련병들 전원을 사살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자, 교육대장은 이러한 사정을 훈련병 강인찬이 엿들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암묵적으로 훈련병들이 기간병들을 공격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이로 인하여 훈련병들의 공격이 개시되자 교육대장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하는 장면, ③ 서울에 진입한 훈련병들이 버스 안에서 여러 개의 수류탄을 함께 꺼내서 전원 자폭하는 장면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명된다.
2) 사실관계
그러나 ① 684부대 훈련병들에 대하여 고무보트로 평양을 향하여 출동하라는 출전명령 자체가 내려진 적이 없고, 따라서 훈련병들이 이 사건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작전취소명령에 거세게 항의하거나 평양행을 고집하는 행동을 한 적도 없다는 사실, ② 교육대장의 경우, 상부로부터 훈련병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훈련병들의 공격을 암묵적으로 유도한 적이 없고, 오히려 잠을 자던 중 훈련병이 휘두른 둔기에 얼굴 부위를 구타당한 다음 사망한 사실, ③ 서울에 진입한 훈련병들이 버스 안에서 전원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등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므로, 위 1)항 기재와 같은 이 사건 영화의 장면들도 역사적 사실에 배치된다고 볼 수 있다.
3) 검 토
위 1)항과 같이 684부대 훈련병들의 맹목적인 평양행에 대한 고집, 훈련병들 전원에 대한 상부의 사살명령, 훈련병들의 전원 자폭 등을 묘사하고 있는 영화장면들은 '교도소 모집방식'에 의하여 훈련병들이 충원되었다는 이 사건 영화의 중심축을 보강하는 내용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장면들은 훈련병들이 본래 죽을 목숨이었으므로 그 당시 우리 정부가 이들을 단순한 사살명령의 객체로 취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훈련병들의 경우, 애당초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평양행을 고집하다가 최후에는 전원 자폭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식의 잘못된 사실인식을 일반관객들에게 심어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무자들은 위와 같이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장면들을 별다른 근거 없이 임의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라) 이 사건 영화의 자막에 관하여
1) 일반론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 그 모델이 된 인물의 인격권 등을 침해할 수 있는데, 이 사건 영화의 경우, 실제 상황과 배치되는 사실묘사로써 이 사건 망인들 내지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러나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상업영화를 제작함에 있어서 영화제작진이 상업적 흥행성이나 관객들의 감동 등을 고양하기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모델이 된 인물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영화제작자가 본 영화에 부가하여 상영되는 자막에 이러한 각색사실을 분명하게 명시하여 일반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의 내용이 실제 사실관계와 다르다는 점을 용이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등 영화 내용을 실제상황과 혼동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는지 여부까지도 반드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2) 이 사건 영화에 관한 자막 내용
그런데 ① 이 사건 영화가 국내 영화관에서 상영될 당시 본 영화의 시작 무렵에 "영화 '실미도'는 1968년에 창설된 '실미도 684부대'에 관한 영화이며, 영화속 훈련병들의 출신성분이나 상황설정이 과거 혹은 현재의 다른 북파공작부대와 북파공작원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자막(이하 '원자막'이라 한다)이 상영된 사실, ② 채무자들이 현재 제작·판매하고 있는 디브이디 및 비디오테이프의 경우, 원자막이 상영되기 직전에 "영화 '실미도'는 1968.에 창설되어 실재하였던 '실미도 684부대'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 제작 당시 관련 자료 부족과 공식적인 정보공개의 부재 등을 이유로 영화의 구체적인 상황설정이나 표현은 문학적 상상력에 의존하였습니다. 따라서 훈련병들과 기간병들에 대한 출신성분, 훈련과정 기타 상황설정 중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아울러 또한, 684부대는 다른 북파공작부대와 그 소속 북파공작원과는 무관합니다). 특히, 이 영화 상영 이후 언론 등을 통해 훈련병들의 인적사항 및 이들 중에 순수한 민간인이 다수 참여한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음을 알려드리며 저희는 앞으로도 숨겨져 있던 실미도 사건에 대한 진실이 더욱 더 밝혀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영화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헌신했던 관련자 여러분 및 유가족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충심으로 고대합니다."라는 추가적인 자막(이하 '추가자막'이라고 한다)이 상영되도록 삽입되어 있는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3) 검 토
원자막의 경우, 684부대 훈련병들의 출신성분 등이 다른 북파공작부대의 경우와 다르다는 내용일 뿐, 이 사건 영화의 내용 자체가 684부대에 관련된 실제 사실관계와 다르다는 취지가 아니기 때문에, 양자의 차이점에 관하여 일반인의 주의를 환기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다만 추가자막의 경우, 그 일부 표현이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예컨대, 이 사건 영화 이후에 비로소 민간인 모집사례가 밝혀지고 있다는 부분 등), 이 사건 영화의 구체적인 상황설정이나 표현 등이 문학적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 684부대의 훈련병들 중 다수가 '민간인 모집방식'에 의하여 충원되었다는 점, 훈련병들의 출신성분, 훈련과정 기타 상황설정 중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명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일반관객으로 하여금 이 사건 영화의 내용과 실제 사실관계를 혼동하지 아니하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3) 피보전권리의 존부에 대한 판단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에서 규정하는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은 다툼 있는 권리관계에 관하여 그것이 본안소송에 의하여 확정되기까지의 사이에 가처분권리자가 현재의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강포를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기타의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허용되는 응급적, 잠정적인 처분인바, 이러한 가처분을 필요로 하는지의 여부는 당해 가처분신청의 인용 여부에 따른 당사자 쌍방의 이해득실관계, 본안소송에 있어서의 장래의 승패의 예상, 기타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법원의 재량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이며, 더구나 이 사건과 같이 가처분채무자에 대하여 본안판결에서 명하는 것과 같이 이 사건 영화 자체에 대한 상영금지 내지 그 영화 내용에 관한 직접적인 수정 등을 구하고 있는 만족적 가처분의 경우, 채권자들로서는 그 권리가 종국적으로 만족을 얻는 것과 동일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반면에 채무자들의 입장에서는 본안소송에서 다투어 볼 기회조차 없이 기존 창작물의 본래 모습을 일반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봉쇄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만족적 가처분을 발령함에 있어서는 그 피보전권리 등에 관하여 통상적 보전처분의 경우보다 높은 정도의 소명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대법원 2003. 11. 28. 선고 2003다30265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영화 중 684부대 훈련병들의 출신성분 내지 모집경위에 관한 장면이나 '적기가'에 관련된 장면 등의 경우, 역사적 사실에 배치되는 묘사를 함으로써 이 사건 망인들 내지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여지는 있다(2004년에 2차례에 걸쳐서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영 내용에 의하면, '교도소 모집방식'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사건 영화가 채권자들의 명예감정을 상당히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 소명된다. 소갑 제39호증의 1, 2 참조).
그렇지만 채무자들이 제1심 이래 당심에 이르기까지 일관하여 이 사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허구에 기초한 단순한 상업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이 사건에서, 이 사건 영화 자체의 상영금지 내지 그 영화 내용에 관한 직접적인 수정을 구하고 있는 가처분신청부분을 인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고, 특히 채무자들이 이 사건의 진행 도중에 제작한 디브이디 및 비디오테이프에 삽입한 추가자막의 경우, 비록 그 일부 표현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훈련병들의 출신성분, 훈련과정 기타 상황설정 중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는 등 일반 관객의 혼동가능성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이 사건 망인들 및 그 유가족인 채권자들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위와 같이 직접적인 내용의 가처분결정을 할 만큼 충분한 소명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겠다.
(4) 소결론
따라서 이 사건 영화 중 '실미도 사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각 영화장면으로 인하여 이 사건 망인들 및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하는 채권자들의 가처분신청부분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나. 이 사건 영화에 관한 광고·홍보에 의한 인격권 침해 등
(1) 광고·홍보의 구체적인 내용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영화에는 '실미도 사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 배치되는 묘사를 함으로써 이 사건 망인들 및 유가족들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상당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채무자들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영화에 관하여 처음부터 그 영화 내용이 '역사적 진실'을 재현하고 있다는 식의 광고·홍보활동을 계속하여 왔다(소갑 제23호증의 3 등 참조).
(가) 공식홈페이지의 구성 내용(소갑 제13호증 내지 소갑 제15호증)
채무자들이 이 사건 영화를 국내 영화관에서 개봉할 무렵부터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 공식홈페이지의 경우, 허구임을 전제로 하는 'Movie(영화)'에 관한 항목{그 세부항목은 Synopsis(줄거리), Director(감독), Production Note(제작과정), Staff(제작인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과 완전히 구분되는 '신문'이라는 항목을 별도로 설정한 다음, 그 세부 내용으로서 '실미도 사건'에 관하여 채무자들이 8개의 신문기사 형식으로 작성한 내용을 게재하고 있다.
① '1.21 김신조 사건'은 무엇인가?
684부대의 창설에 직접적 계기가 된 북한의 무장 남파공작원 31명의 1968. 1. 21. 청와대 기습공격사건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② (미) 정보수집잠수함 푸에블로호 피랍
북한이 1968. 1. 22. 미국 정보수집함을 무력으로 납치한 사건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③ 허술한 국방력, 청와대의 분노. 250만 향토예비군 창설, 한미국방장관회의 연례화, 휴전선 철책 구축 등
위 ①, ②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의 대응조치 등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④ 실미도 북파부대, 그들은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684부대가 1971. 8. 23. 서울에 진입한 사건 등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⑤ 작전명 오소리 : 임무 김일성 암살 및 주석궁 폭파. 작전성공시 사형취소 및 잔형면제, 실패시 전원 자폭할 것
684부대 훈련병들의 모집경위 등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훈련병들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거나 무기징역 혹은 수감자들이 포함된 사회의 밑바닥 계층이었다. 작전성공시 모든 형벌 취소 및 전과기록 말소 등 정부로부터 새 삶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실미도의 지옥훈련을 받게 된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⑥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죽는다. 살기 위해서 죽도록 훈련한다
684부대의 훈련상황 등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그리고 1968년 8월, 부대가 만들어진 지 4개월 만에 첫 번째 실전명령이 떨어져 바닷길로 북에 침투를 시도하지만 중도무산된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⑦ 존재가치를 잃은 유령부대, 그들을 제거하라!
684부대의 해체과정 등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 '구시대의 유물', '존재가치를 잃은 유령부대'가 되어버린 실미도 부대, 결국 그들을 제거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훈련병들에게 사병들이었던 담당 기간병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들은 진압군과 교전 끝에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⑧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그들은 왜 함께 청와대로 향했는가? 그들은 왜 전원 자폭했을까?
684부대의 해체과정 등에 관한 의문점 등이 기재되어 있는데, "왜 전원 자폭의 최후를 선택했는가? ... 소지한 수류탄으로 생의 마감을 함께 한 것은 미스터리다.... 32년간 숨겨져 온 진실... 이제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나) 영화선전물(소갑 제12호증의 1, 2, 3)
채무자들이 이 사건 영화를 국내 영화관에서 상영할 당시에 배포된 영화선전물의 경우에도 허구임을 전제로 하는 'Synopsis(영화줄거리)'에 관한 항목과 'About Fact(사실에 관하여)'에 관한 항목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는데, 후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단 한차례의 출정이 도중무산된 이후 3년 4개월간의 지옥훈련. 그 사이 남북화해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구시대의 유물', '존재가치를 잃은 유령부대'가 되어버린 실미도 684부대, 결국 그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먼저 기간병들을 공격한 훈련병들은... 진압군과 교전 끝에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전원 자폭한다... 왜 전원 자폭했을까?"
(다) 각 신문광고(소갑 제16호증의 1, 2)
채무자들이 이 사건 영화를 국내 영화관에서 상영할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신문광고를 하였다.
'32년을 숨겨온 진실...'
"2003년 12월, 32년을 숨겨온 진실이 밝혀진다.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진실에 눈물을 훔친 관객들의 이구동성'
"진실의 힘이 모든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라) 디브이디 세트(소을 제13호증)의 첨부물
1) 한편, 채무자들이 제1심법원 등에 대하여 이 사건 영화에 관한 디브이디 등에 추가자막을 삽입하기로 확약한 다음 제1심결정이 고지된 이후인 2004. 7.경 제작한 디브이디 세트의 첨부물{684 북파부대, 실미도(SILMIDO)}의 경우에도, 허구임을 전제로 하는 'Synopsis'와 완전히 구분되어 있는 'About Fact'에 관한 항목에 "실미도 사건'은 무엇인가?" 라는 제목과 함께 아래와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① 작전명 오소리! 임무 김일성 암살 및 주석궁 폭파. 작전성공시 사형취소 및 잔형면제! 실패시 전원 자폭할 것
②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죽는다. 살기 위해서 죽도록 훈련한다
"부대가 창설된지 4개월만에 첫 번째 실전명령이 떨어져 바닷길로 북에 침투를 시도하지만 상부의 저지로 중도무산된다."
③ 국제정세 및 남북한 화해분위기 조성. 존재가치를 잃은 유령부대, "이제 필요 없으니 제거하라!"
"결국, 그들을 제거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훈련병들에게 사병들이었던 담당 기간병들은 속수무책이었고,... 이들은 진압군과 교전 끝에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한다."
④ 왜 함께 청와대로 향했는가? 왜 전원 자폭했을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왜 함께 전원 자폭의 최후를 선택했는가?.... 32년간 숨겨져 온 진실... 이제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그러나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
2) 그리고 위 첨부물의 속 표지에는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32년을 숨겨온 진실...'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마) 비디오테이프(소을 제14호증)의 겉 포장
또한, 채무자들이 2004. 7.경 제작·판매하기 시작한 비디오테이프의 겉 포장에는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32년을 숨겨온 진실... 이제는 말한다!' '진실에 눈물 훔친 1,100만 관객들의 이구동성' 등의 기재 내용이 인쇄되어 있다.
(2) 피보전권리에 대한 판단
(가) 영화의 내용과 이에 관한 광고·홍보와의 차이점 등
먼저, 위 (1)항에서 살펴본 광고·홍보의 내용이 '예술의 자유'의 보호대상이 되는 이 사건 영화의 구성 부분이 된다고 볼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① 실제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아니하는 '상업영화'의 각 장면들로 인하여 피해자의 인격권 등이 침해되는지 여부와 ② 위와 같은 영화 내용이 실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식의 광고를 함으로써 피해자의 인격권 등이 침해되는지 여부는 완전히 별개의 차원의 문제로서, 위 ②와 같은 상업적 광고의 경우에도 넓은 의미에서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최소한 실제 사실관계에 배치되는 영화 내용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상업적 광고가 '표현의 자유'에 근거하여 보호된다고 볼 수는 없다(위와 같은 상업적 광고에 대한 보호에 관하여 적극적인 견해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영화와 같이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는 상업영화에 관한 광고·홍보의 경우, 순수한 창작소설 등을 토대로 한 영화에 비하여 실제 사실관계와 상이한 광고·홍보로 인하여 그 모델이 된 사람의 인격권 등이 침해될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광고주체인 영화제작진의 입장에서는 등장인물의 인격권 침해 여부에 관하여 신중하게 검토해야만 할 것이고, 따라서 이에 관하여 각종 선전매체를 통하여 광고하는 경우 '표현의 자유'가 용인되는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 검 토
채무자들은 이 사건 영화에 관한 광고·홍보활동이 통상적인 관행에 따른 것으로서 과대·과장광고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영화 중 684부대 훈련병들의 모집경위에 관한 장면 등의 경우, 역사적 사실에 배치되는 묘사를 함으로써 이 사건 망인들 및 유가족들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자들은 이 사건 영화를 국내 영화관에서 개봉할 무렵부터 현재까지 그 공식홈페이지, 디브이디 세트의 첨부물, 영화선전물 등에 ① 허구임을 전제로 하는 'Movie 또는 Synopsis'의 항목과 완전히 구분되는 ② '신문 또는 About Fact'라는 별도의 항목에 이 사건 영화의 소재인 '실미도 사건'에 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독특한 광고·홍보방식을 채택하였다. 위와 같은 광고·홍보는 일반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 영화 내용 중 최소한 위 ②항목에 기재된 내용과 관련되는 부분만큼은 '역사적 진실' 그대로 제작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채무자들이 위 ②항목에 관한 기술을 함에 있어서 신빙성이 있는 확실한 자료에 근거하지 아니하고 임의로 역사적 사실에 배치되는 내용을 기재하는 것은 이 사건 망인들 내지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리고 위와 같은 방식의 기본적인 광고·홍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상태에서, 이를 토대로 하여 채무자들이 그 연장선상에서 신문광고, 디브이디 세트의 첨부물, 비디오테이프의 겉 포장 등과 같은 개별 선전매체들을 통하여 이 사건 영화의 내용이 마치 '역사적 진실'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홍보·광고하는 것도 일반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 영화 내용 중 위 ②항목에 포함된 기재 내용과 관련되는 부분 등이 '역사적 진실' 그대로 제작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이러한 광고·홍보 역시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채무자들의 광고·홍보에 관련된 채권자들의 가처분신청 중 위 인정 범위에 관련해서는 그 피보전권리에 대하여 충분한 소명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 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
이 사건 영화가 현재 국내외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아니하고 있다는 점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지만, 채무자들이 이에 관한 공식홈페이지를 그대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 사건 영화를 수록한 디브이디 세트 및 비디오테이프의 제작·판매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 현재 비디오영상물 주문전송시스템을 통하여 이 사건 영화가 일반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제공되고 있다는 점 등을 채무자들이 자인하고 있는 이상, 현 단계에서 이 사건 망인들 및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이 지속적으로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채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침해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시급히 가처분을 구할 보전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4) 가처분의 인용 범위
이 사건 망인들은 이미 사망하였지만, 그 유가족들인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에 대하여 더 이상 이 사건 망인들 내지 그 유가족들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① 채무자가 현재 운영중인 이 사건 영화에 관한 공식홈페이지와 현재 제작·판매하고 있는 디브이디 세트의 첨부물 및 비디오테이프 겉 포장 등의 경우 현실적인 권리침해의 위험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에 대하여 ㉮ 공식홈페이지의 '신문' 항목에 기재된 내용 중 별지 목록 제1항 기재와 같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내용 및 이와 분리하기 어려운 각 기재 부분, 디브이디 세트의 첨부물의 'About Fact' 항목에 기재된 내용 중 별지 목록 제2의 가.항 기재와 같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내용 및 이와 분리하기 어려운 각 기재 부분에 관한 삭제를 청구할 수 있고, ㉯ 아울러 채무자들이 이를 토대로 하여 이 사건 영화의 내용이 마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광고·홍보하고 있는 디브이디 세트의 첨부물 중 별지 목록 제2의 나.항 기재와 같은 부분과 비디오테이프의 겉 포장 중 별지 목록 제3항 기재와 같은 부분에 관한 삭제를 청구할 수도 있다고 할 것이므로, 결국 채무자들은 채권자들이 구하는 바에 따라서 위에서 적시한 각 기재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 사건 영화에 관한 공식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위 디브이디 세트 및 비디오테이프를 제작, 판매, 배포, 광고하여서는 아니 되는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하고, ② 나아가 이 사건 영화가 향후에 텔레비전 내지 비디오영상물 주문전송시스템 등을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방영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채무자들은 채권자들에 대하여 이 사건 영화가 마치 '실미도 사건'에 관하여 역사적 사실 그대로 제작된 것처럼 홍보하거나 광고하여서는 아니 되는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므로, 채권자들의 이 사건 가처분신청 중 위 ①, ②에서 적시된 내용에 관련된 부분은 이를 인용함이 상당하다.
(5) 간접강제 및 공시명령에 대한 검토
(가) 간접강제
이 사건 가처분결정에 의하여 채무자들에게 부과되는 각종 의무의 경우 대체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 사건 가처분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간접강제를 명하는 외에는 달리 강제집행의 방법이 없으므로 간접강제를 명하기로 하되, 이 사건 가처분명령의 내용, 채무자들이 단기간 내에 이에 위반할 가능성과 이에 위반할 경우에 예상되는 채권자들의 피해 및 피해 회복의 곤란성 등 기록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면, 그 배상금은 위반일수 1일당 금 3,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나) 공시명령
나아가 채권자들은, 집행관이 상당한 방법으로 이 사건 가처분결정의 취지를 공시하여 줄 것을 구하고 있으나, 이 사건 가처분은 채무자들에 대하여 이 사건 영화에 관한 홈페이지의 운영 내지 이에 관한 광고·홍보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취지가 아니고, 이 사건 영화를 수록한 디브이디 세트의 첨부물 내지 비디오테이프의 겉 포장의 제작·배포 등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취지도 아니므로, 집행관에 의한 가처분결정취지의 공시가 이 사건 가처분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에 관한 공시명령을 붙이지 아니하기로 한다.
4. 결 론
그렇다면 채권자들의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은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할 것인바, 채권자들은 당심에 이르러서 이 사건 가처분신청을 일부 변경하였으므로 당심에서는 변경된 신청취지에 터잡아서 제1심결정을 변경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