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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2014. 1. 8. 선고 2011누503 판결
[친일재산확인결정처분취소] 상고[각공2014상,188]
판시사항

[1] 친일재산확인결정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요건·절차·불복방법 등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법률유보원칙에 반하는 처분인지 여부(소극)

[2]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부칙(2011. 5. 19.) 제2항에서 말하는 ‘확정판결’의 의미와 범위

[3] 갑의 조부 망 을이 사정(사정) 받아 취득한 토지를 갑이 상속받은 후 병 등에게 양도하였는데, 친일반민족행위자조사위원회가 위 토지에 대하여 친일재산임을 확인하는 결정을 한 사안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부칙(2011. 5. 19.) 제2항 본문에 따라 일정한 경우 종전의 친일재산확인결정 등에 관하여 2011. 5. 19. 개정된 특별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소급입법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 신뢰보호원칙 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친일재산의 국가귀속결정과 친일재산확인결정은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 한다) 제19조 에 규정된 조사개시 대상재산이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 규정된 친일재산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라는 점에서 같고,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라는 효과는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 제3조 제1항 본문에 따라서 생기는 것이다.

다만 친일재산이 선의 또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양도된 경우 친일재산이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로 소급하여 국가에 귀속됨에 따라 친일재산의 처분권 역시 소급적으로 상실되었기 때문에 국가는 친일재산의 처분으로 얻은 이득을 친일재산 대신 환수하는 것뿐이므로, 친일재산확인결정 역시 특별법 제5조 제1항 제23조 제1항 에 근거한 것으로서,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과 동일한 요건, 절차에 따라 발령되고, 동일한 방법으로 불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으므로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2]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부칙(2011. 5. 19.) 제2항 단서의 문언, 입법 경위와 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여기서 말하는 ‘확정판결’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친일재산과 관련된 국가귀속결정 등 사건의 확정판결에 한정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동일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재산에 관한 확정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인 친일재산에 관련된 범위에서 위 부칙 제2항 단서의 확정판결에 해당할 뿐이다.

[3] 갑의 조부 망 을이 사정(사정) 받아 취득한 토지를 갑이 상속받은 후 병 등에게 양도하였는데, 친일반민족행위자조사위원회가 위 토지에 대하여 조선귀족령에 따라 작위를 받은 을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라는 이유로 친일재산임을 확인하는 결정을 한 사안에서, 종전에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를 한 자’에서 ‘한일합병의 공으로’ 부분을 삭제하는 내용으로 2011. 5. 19. 법률 제10646호로 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개정 특별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호 (나)목 에 대하여,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지 않은 자는 그 재산이 국가귀속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제청신청인의 신뢰는 확고한 것이라거나 보호가치가 크다고 할 수 없는 반면 위 법률조항에 의하여 달성되는 공익은 매우 중대하므로 신뢰보호의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이라는 결정을 한 바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부칙(2011. 5. 19.) 제2항 본문에 따라 일정한 경우 종전의 친일재산확인결정 등에 관하여 개정 특별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소급입법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 신뢰보호원칙 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원고, 피항소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율촌 담당변호사 이강만 외 1인)

피고, 항소인

법무부장관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한위수 외 2인)

변론종결

2013. 10. 30.

주문

1.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2. 원고가 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가 2009. 9. 25. 별지 부동산 목록 기재 토지에 관하여 원고에게 한 친일재산확인결정처분을 모두 취소한다.

2. 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 경위

가. 원고의 조부 망 소외 1(대판:소외인)(1890. 6. 22. ~ 1957. 8. 하순)은 1913. 4. 6.경 별지 부동산 목록 2.에서 12. 토지(이하 ‘진관동 토지’라 한다)를, 1917. 9. 29.경 같은 목록 1. 토지(이하 ‘응암동 토지’라 하고, 응암동 토지, 진관동 토지를 통틀어 ‘이 사건 토지’라 한다)를 사정받아 취득하였는데, 원고는 소외 1(대판:소외인)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상속받아 응암동 토지에 관해서는 1963. 1. 15., 진관동 토지에 관해서는 1989. 10. 31. 및 1999. 4. 30. 원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후, 2006. 5. 10. 소외 2에게 응암동 토지를, 2006. 5. 18. 에스에이치공사에 진관동 토지를 양도하였다.

나.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 그 활동기간이 2010. 7. 12. 만료됨에 따라 피고가 이 사건 처분에 관계되는 권한을 승계하였다)는, 이 사건 토지가 구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11. 5. 19. 법률 제1064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특별법’이라 하고, 개정 조항이 문제되지 않는 경우 ‘특별법’이라고만 한다) 제2조 제2호 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하 ‘친일재산’이라 한다)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를 거쳐, 2009. 9. 25. “소외 1(대판:소외인)은 ‘구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12. 10. 22. 법률 제1149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진상규명법’이라 하고, 개정 조항이 문제되지 않는 경우 ‘진상규명법’이라고만 한다) 제2조 제7호 의 행위를 한 자로서 구 특별법 제2조 제1호 (가)목 에 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고, 이 사건 토지는 소외 1(대판:소외인)이 1913. 4. 6. 및 1917. 9. 9. 일본제국주의(이하 ‘일제’라 한다)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서 친일재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토지에 대하여 친일재산임을 확인하는 결정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 6, 7, 19호증, 을 제2호증(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 변론 전체의 취지

2. 본안전항변에 관한 판단

가. 피고 주장

이 사건 처분은, 원고가 특별법 시행 이후에 이 사건 토지를 선의의 제3자에게 처분함으로써 국가귀속결정을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원고를 상대로 그 처분대금 상당의 부당이득금을 청구하기 위한 전제로서 한 것일 뿐, 이 사건 처분 자체로는 원고의 권리의무에 변동이 없으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 아니다. 또한 원고는 대한민국이 원고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합1550호 사건)에서 승소함으로써 이 사건 소송에서 승소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할 소의 이익이 없다.

나. 판단

1) 항고소송 대상 여부

행정청의 어떤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추상적·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구체적인 경우 행정처분은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로서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 집행으로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관련 법령의 내용과 취지, 그 행위의 주체·내용·형식·절차,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과의 실질적 견련성, 그리고 법치행정의 원리와 당해 행위에 관련한 행정청 및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0. 11. 18. 선고 2008두16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 사건 처분은 이 사건 토지가 친일재산에 해당하여 국가에 귀속시켜야 하지만 제3자가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선의로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하였기 때문에 이 사건 토지의 매매대금을 환수하기 위하여 친일재산임을 확인한다는 것으로, 친일재산의 국가귀속 대신 원고에게 토지 매매대금에 상당하는 금원의 반환의무가 있음을 위원회가 공적으로 확인하는 내용인 점, 이 사건 처분은 특별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국가귀속결정처분과 같이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국가귀속결정처분과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 점, 이 사건 처분의 상대방인 원고의 처지에서는 국가귀속결정처분과 경제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불이익이 예상되는 점, 친일재산확인결정 이후 상당한 기간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이 제기되지 않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친일재산확인결정 자체를 다투어 처분의 상대방이 불안정한 지위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수단을 인정할 필요도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처분은 항고소송의 대상인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봄이 옳다. 이 부분 피고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2) 소의 이익의 존부

취소소송은 위법한 처분 등에 의하여 발생한 위법상태를 배제하여 원상으로 회복시킴으로써 그 처분으로 침해되거나 방해받은 권리와 이익을 구제하고자 하는 소송이므로, 처분의 효력이 존속하고 그 취소로서 원상회복이 가능한 이상 처분의 취소를 구할 소의 이익이 있다.

이 사건의 경우, 권한 있는 행정청에 의하여 이 사건 처분이 취소·철회되었다거나 처분 후의 사정에 의하여 원고의 권리와 이익에 대한 침해가 해소되었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고, 이 사건 토지에 관한 취득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부인당한 원고의 권리 또는 이익은 이 사건 처분의 취소로써 원상회복이 가능하다. 또한 원고가 위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하여 이 사건 처분의 효력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소의 이익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이 부분 피고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3) 소결론

피고의 본안전항변은 모두 이유 없다.

3.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나. 인정 사실

1) 소외 1(대판:소외인)의 행적

가) 소외 1(대판:소외인)은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5세 사손(사손)으로서, 1907. 3. 14. 시강원(시강원) 시종관으로 임명되었고, 1910. 6. 4. 종2품 가선대부 청풍군으로 봉해졌으며, 1910. 8. 25. 정2품 자헌대부에 올랐다.

나) 일제는 한일합병 직후인 1910. 8. 29. “일본국 황제폐하는 공훈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히 표창에 적당하다고 인정된 자에게 영작을 수여하고 또 은급을 부여한다”고 규정된 한일합병조약문 제5조에 근거하여 황실령 제14호로 조선귀족령을 제정·시행하였는데, 조선귀족령 제2조는 “작(작)은 이왕(이왕)의 현재의 혈족으로서 황족의 예우를 받지 않는 자와 문지(문지) 또는 공로가 있는 조선인에게 수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 소외 1(대판:소외인)은 일제로부터 1910. 10. 7. 조선귀족령 제2조에 의하여 조선귀족 중 최고의 지위인 후작 작위를 받은 후, 1911. 1. 13. 은사공채 168,000원을 수령하고, 1912. 8. 1. “종전 한일관계에 공적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으며, 1912. 12. 7. 정5위에 서위된 후 계속 승급되어 1935. 1. 10. 정3위로 승급된 다음 1945. 8. 15.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귀족의 지위와 특권을 누렸다.

라) 소외 1(대판:소외인)은 1910. 11. 4. 조선귀족을 대표하여 동경으로 가 일본 천황에게 작위 수여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였고, 1910. 12. 25. 데라우치 총독 관저를 방문하여 작위 수여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였으며, 1914. 4. 12. 일본 황태후가 사망하자 동경으로 가 참배하였다.

마) 소외 1(대판:소외인)은 1915. 1. 16.부터 일제의 협력과 지원하에 조직된 불교계 중심기관인 삼십본산연합사무소의 고문으로 활동하였고, 1917. 2. 21.부터 이완용 등의 주도로 설립된 친일단체인 불교옹호회의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바) 소외 1(대판:소외인)은 1928. 11. 10. 일제로부터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고, 1940. 10.경 관변단체로 결성된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1941. 5.경부터 평의원을 역임하였으며, 1941. 10. 22. 자발적인 황국신민화 운동을 벌이기 위하여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의 경성부 발기인으로 참가하였고, 1942. 1. 28. 조선귀족회 회장의 자격으로 미나미 총독에게 조선귀족회에서 모금한 국방헌금을 전달하였으며, 1942. 5. 30. 미나미 총독이 전임된 것과 관련해 매일신보에 “내선일체에 큰 공적을 남겼다”는 요지의 담화를 게재하였다.

2) 이 사건 토지에 관한 기록과 피고의 조치

가) 철종의 생부 전계대원군은 완양부대부인, 용성부대부인과 사이에 회평군, 영평군, 덕완군을 낳았는데, 회평군은 1844년 사망하였고, 덕완군은 1849년 철종으로 즉위하였다. 한편 영평군은 청안군 소외 3을, 소외 3은 풍선군 소외 4를, 소외 4는 청풍군 소외 1(대판:소외인)을 각 양자로 들여 가계를 잇게 하였다.

나) 1849. 8. 15.자 일성록에는 전계대원군과 용성부대부인 묘소의 경계에 관하여 “전계대원군 묘소는 동으로는 신혈고개 아래, 서로는 도당고개 뒤 산등성이, 남으로는 삼천동, 북으로는 모절리에 이르는데, 사면이 각 300보”, “용성부대부인 묘소는 동으로는 능동리, 서로는 범무지고개, 남으로는 백련사동구, 북으로는 홍제원탄막 뒤에 이르는데, 사면이 각 300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 1855. 11. 19.자 일성록에는 철종이 포천시 선단동 일대를 전계대원군의 이장지로 정하면서 그 묘역 관리를 위한 사패지의 범위를 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위원회는 실지조사를 거쳐 전계대원군의 이장된 묘역을 둘러싼 사방 300보(1보 = 120㎝) 내에 포함된 원고 소유 토지에 관하여 조사개시결정을 취소하였다. 또한 용성부대부인의 초장지는 서울 서대문구 (주소 2 생략)이었으나 1980. 5.경 위와 같이 이장된 전계대원군 분묘 옆으로 이장되었고, 위원회는 2007. 6. 15.경 위 초장지 사방 300보 범위 내에 포함된 원고 소유 토지에 관해서도 조사개시결정을 취소하였다.

라) 응암동 토지에 관한 임야조사부에 따르면, 국유사유구분란에 ‘국’이었다가 ‘사’로 정정된 것으로 기재되었고, 소유자 또는 연고자란에는 ‘소외 1(대판:소외인)’이 기재되어 있으며, 비고란은 공란으로 되어 있다.

마) 진관동 토지에 관한 토지조사부에 따르면, 소유자란에 소외 1(대판:소외인)로 기재되어 있고, 적요란에는 아무런 기재도 없으며, 진관동 토지에 관한 폐쇄등기부를 보면, 표제부 표시란 좌측에 ‘명치 사십삼년(1910년) 2월 23일’, 그 우측란에 ‘대정 8년(1919년) 4월 23일 구 증명부 제4책 제35정에서 이기’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3) 개정 특별법 등 입법 경위와 관련 규정

가) 진상규명법의 제정 후 특별법의 제정 과정에서 2005. 2.에 발의된 법률안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정의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협력하여 일본정부로부터 훈작을 받거나 을사보호조약이나 정미7조약의 체결을 주창한 대신 등 고위공직자 및「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한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에 의하여 친일의 정도가 지극히 중대하다고 인정된 자”( 제3조 제1호 )라고 정하고 있었으나, 진상규명법과 연계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규정하게 됨에 따라 진상규명법상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 가운데서 사안이 중대하고 명백한 행위를 한 자들을 그 재산이 국가귀속 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정하게 되었다.

나) 그 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귀속 결정을 다투는 소가 계속하여 제기되는 가운데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더라도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것으로 인정되지 아니한 경우에 관하여 재산귀속 결정을 취소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국회는 작위 수여자는 은사금도 수령하였으므로 이는 명백한 친일재산이라는 이유 등으로 2011. 5. 19. 법률 제10646호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이하 ‘개정 특별법’이라 한다).

다) 개정 특별법 제2조 제1호 는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정함에 있어, 종전의 특별법 제2조 제1호 (가)목 에서 규정하였던 ‘ 구 진상규명법 제2조 제7호 의 행위(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를 한 자’ 부분을 삭제하고, 제2조 제1호 (나)목 본문에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새로 규정하였다. 나아가 개정 특별법 부칙(이하 ‘부칙’이라고만 한다) 제2항은 ‘위원회가 종전의 제2조 제1호 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에는 제2조 제1호 의 개정규정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본다. 다만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였다. 최초 발의된 개정안에는 법무부장관이 활동기간이 이미 종료한 위원회의 업무를 인수하여 개정 특별법에 따른 조사를 수행하도록 하였으나 법안 심사 과정에서 소급입법금지원칙 위반 우려 등을 고려하여 이와 같이 위원회가 결정한 경우에만 개정규정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수정하였다.

라) 그 후 진상규명법 역시 개정 특별법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 유형에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의 하나로 규정( 제2조 제7호 )하고 개정 특별법 부칙과 같은 부칙 규정을 두었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3, 5, 8에서 10, 19, 21, 24, 26, 31, 32호증, 을 제1, 10, 26, 27, 29에서 32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다. 원고 주장 요지

1) 친일재산확인결정은 특별법에 요건·절차·불복방법 등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법률유보원칙에 반하는 처분이다.

2) 이 사건 처분 이후에 개정 특별법이 공포·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개정 특별법 시행 전 이 사건 토지가 제3자에게 양도된 이상 원고는 개정 특별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이 사건 토지는 개정 특별법에 따른 친일재산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설령 소외 1(대판:소외인)이 개정 특별법에 의하여 그 재산이 국가귀속의 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범위에 포함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시행 이전에 제3자에게 양도되어 원고가 보유하지 않는 이 사건 토지는 친일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

3) 부칙 제2항 단서는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범위를 넓히는 개정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규정되어 있는데, 원고는 개정 특별법 시행 이전에 원고 소유의 다른 토지에 관한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한 결과 승소확정판결을 받았으므로 부칙 제2항 단서에 따라 개정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4) 개정 특별법헌법이 금지하는 개별인법에 해당하며, 부칙 제2항 본문을 구 특별법의 해석상 무효인 친일반민족행위자결정에도 적용한다면 이는 부칙 제1항의 시행일 규정과 모순되고, 소급입법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에도 위반되므로, 이 사건에 위헌인 개정 특별법이 적용될 수 없다.

5) (원고에게 구 특별법이 적용된다는 전제에서) 소외 1(대판:소외인)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의 종친의 지위에서 작위를 받았으므로 구 특별법 제2조 제1호 (가)목 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니다.

6)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 규정된 ‘취득’에는 토지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에 의한 ‘사정’이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이 사건 토지는 전계대원군의 이장 전 묘소 및 용성부대부인의 초장지로서 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사패지이므로 사정의 기초가 된 옛 법률관계 혹은 사실상의 소유권이 러·일전쟁 개전 전부터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토지는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서 정한 친일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

라. 판단

1) 친일재산확인결정의 법률유보원칙 위배 여부

특별법 제5조 제1항 은 위원회의 업무 중 하나로 “친일재산 여부의 결정”을 규정하고 있고, 특별법 제23조 제1항 은 “위원회는 친일재산이라는 이유로 이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결정을 제7조 에 따라 의결한 경우에는 그 대상 재산을 관리·소유하고 있는 자에게 이를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특별법 제3조 제1항 은 “친일재산은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 그러나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위원회의 국가귀속결정은 당해 재산이 친일재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이른바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의 성격을 가진다( 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두13491 판결 참조). 이러한 법리와 규정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친일재산의 국가귀속결정과 친일재산확인결정은 모두 특별법 제19조 에 규정된 조사개시 대상재산이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 규정된 친일재산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라는 점에서 같고,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라는 효과는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 제3조 제1항 본문에 따라서 생기는 것이며, 다만 친일재산이 선의 또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양도된 경우 친일재산이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로 소급하여 국가에 귀속됨에 따라 친일재산의 처분권 역시 소급적으로 상실되었기 때문에 국가는 친일재산의 처분으로 얻은 이득을 친일재산 대신 환수하는 것뿐이므로, 친일재산확인결정 역시 특별법 제5조 제1항 제23조 제1항 에 근거한 것으로서,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과 동일한 요건, 절차에 따라 발령되고, 동일한 방법으로 불복할 수 있다고 봄이 옳다. 이 부분 원고 주장은 이유 없다.

2) 개정 특별법 시행 전 양도로 친일재산에 해당하지 않는지 여부

특별법 제2조 제2호 는 “친일재산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라고, 특별법 제3조 제1항 은 “친일재산은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 그러나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제3자가 ‘특별법 시행 전’에 취득한 권리만 보호한다는 취지로 제3자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지도 않다( 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두13491 판결 참조). 이와 같이 친일재산과 관련한 개정 전후의 특별법 규정 내용, 제3자의 범위 관련 입법 취지 등을 보더라도, 특별법은 법 시행 전 친일재산이 처분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친일재산의 요건을 달리 정하고 있지 않고, 다만 거래의 안전을 위하여 시행일 전에 친일재산을 취득한 자뿐만 아니라 시행일 후에 친일재산을 취득한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개정 특별법 시행 이전에 이 사건 토지가 양도되었더라도, 이를 취득한 제3자가 개정 특별법 제3조 제1항 단서에 따라 보호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개정 특별법 규정이 원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만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이 부분 원고 주장은 나아가 살펴 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3) 부칙 제2항 단서가 적용되는지 여부

부칙 제2항은 “위원회가 종전의 제2조 제1호 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에는 제2조 제1호 의 개정규정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본다. 다만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원고가 여기서 말하는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 해당하는지 보기로 한다.

원고가 포천시 (주소 1 생략) 임야 24㎡ 외 191필지(이 사건 토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에 관한 위원회의 국가귀속결정처분에 대하여 2008. 2. 21. 그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 서울행정법원 2008구합7564호 )을 제기한 후 2010. 11. 2.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판결이 확정된 사실은 인정된다(다툼 없는 사실, 갑 제31, 32호증). 이와 관련하여 국회에서는 위 판결에서 쟁점이 된 ‘한일합병의 공으로’ 부분을 삭제하는 내용으로 특별법을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현재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에 개정 특별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한편 이미 재판이 종결되어 확정된 사건에는 확정판결로 생긴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개정 특별법이 적용되지 않도록 할 목적으로 부칙 규정을 둔 것으로 보인다(을 제29에서 32호증 참조). 이와 같은 부칙 제2항 단서의 문언, 그 입법 경위와 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여기서 말하는 ‘확정판결’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친일재산과 관련된 국가귀속결정 등 사건의 확정판결에 한정된다고 봄이 옳다. 그렇다면 동일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재산에 관한 확정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인 친일재산에 관련된 범위에서 부칙 제2항 단서의 확정판결에 해당할 뿐이다.

원고의 경우 이 사건 토지가 아닌 다른 친일재산을 대상으로 한 사건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것에 불과하므로 부칙 제2항 단서의 ‘확정판결’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 이 부분 원고 주장은 이유 없다.

4) 개정 특별법 관련 규정이 위헌인지 여부

가)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

특별법 제3조 제1항 본문에 따르면 친일재산은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에 국가의 소유로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그 위헌 여부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2011. 3. 31. 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함으로써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2011. 3. 31. 선고 2008헌바141 전원재판부 결정 ). 이후 헌법재판소는 개정 특별법 제2조 제1호 (나)목 이 소급입법금지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 과잉금지원칙 등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합헌으로 결정하였는데( 헌법재판소 2013. 7. 25. 선고 2012헌가1 전원재판부 결정 ),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소는 2008헌바141 전원재판부 결정 에서 친일재산의 소급적 국가귀속이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고, 위 법률조항이 정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의 경우, 친일세력의 상징적 존재로서 그 지위 자체로 친일세력의 형성·확대에 기여하고, 일제강점 체제의 유지·강화에 협력함으로써 당시 조선사회에 심대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바, 그 밖의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위 법률조항에 대하여 위 합헌결정과 달리 판단할 사정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지 아니한 자는 구 특별법에 의하여 그 재산이 국가귀속의 대상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믿은 제청신청인의 신뢰는 특별법의 제정경위 및 입법 목적 등에 비추어 확고한 것이라거나 보호가치가 크다고 할 수 없는 반면, 위 법률조항에 의하여 달성되는 공익은 매우 중대하므로 위 법률조항은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위 법률조항이 정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의 경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 있고,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와 같이 친일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한 자는 제외되는 점에서 친일 정도가 중대한 경우에 한정되고 있으며, 위 법률조항은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위 법률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제청신청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

나) 처분적 법률로서 위헌인지 여부

헌법은 처분적 법률로서 개인대상법률 또는 개별사건법률의 정의를 따로 두고 있지 않음은 물론, 이러한 처분적 법률의 제정을 금하는 명문의 규정도 두고 있지 않은바, 특정규범이 개인대상 또는 개별사건법률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바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 2011. 3. 31. 선고 2008헌바141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따라서 설령 개정 특별법이 소외 1(대판:소외인)을 국가에 재산이 귀속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려는 의도하에 개정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만으로 개정 특별법 규정을 위헌이라고는 볼 수 없고, 나아가 개정 특별법 제2조 제1호 (나)목 본문은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므로 개별인 또는 개별사건법률이라 보기도 어렵다( 헌법재판소 2013. 7. 25. 선고 2012헌가1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이 부분 원고 주장은 이유 없다.

다) 소급입법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 신뢰보호원칙 등에 위배되는지 여부

(1) 법률의 개정 시 구법 질서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가 합리적이고도 정당하며, 법률의 개정으로 야기되는 당사자의 손해가 극심하여 새로운 입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이 그러한 당사자의 신뢰의 파괴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 새로운 입법은 신뢰보호의 원칙 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 다만 사회환경이나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른 필요성에 의하여 법률은 신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고, 변경된 새로운 법질서와 기존의 법질서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상충이 불가피하므로 국민이 가지는 모든 기대 내지 신뢰가 헌법상 권리로서 보호될 것은 아니고, 그 보호 여부는 기존의 제도를 신뢰한 자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과 새로운 제도를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공익을 비교형량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8. 10. 30. 선고 2005헌마222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2) 구 특별법 제3조 제1항 본문의 해석상 친일재산은 위원회가 국가귀속결정을 하여야 비로소 국가의 소유로 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의 시행에 따라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에 소급하여 당연히 국가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두13491 판결 등 참조). 따라서 구 특별법상 국가귀속결정에 따라 국가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지든 아니면 구 특별법에 따른 국가귀속결정이 취소된 후 개정 특별법에 따라 다시 이루어진 국가귀속결정에 따라 국가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지든 어느 경우에나 친일재산의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에 소급하여 국가의 소유로 되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는 선의의 제3자에게 양도된 친일재산의 매매대금 등을 환수하기 위하여 친일재산확인결정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다만 부칙 제2항 본문에서 위원회가 종전의 제2조 제1호 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에 한하여 위 결정을 개정 특별법 규정에 따른 결정으로 보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부칙 제2항 본문에 따라 개정 특별법 관련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특별법 관련 규정에 의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원고의 신뢰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부칙 제2항은 그 규정 내용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위원회에서 구 특별법 제2조 제1호 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에 이를 개정 특별법에 따른 결정으로 보고 있을 따름인 점, 또한 부칙 제2항과 같은 규정을 두지 않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조사대상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인의 헌법적 권리를 더 보장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개정 특별법 제2조 제1호 (나)목 은 개정 이전에 비하여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부분을 삭제하는 정도여서 종전 결정 시 이루어진 조사 내용만으로도 개정규정에 따른 요건 충족 여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전 결정 시 이미 이의신청 등을 통하여 이해관계인의 절차적 권리가 보호된 상태로 보이는 점, 또한 관련한 원고의 신뢰가 확고한 것이라거나 보호가치가 크다고 할 수 없는 반면 개정 특별법 관련 규정을 적용함으로써 달성되는 공익은 매우 중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점, 나아가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개정규정의 적용을 제한하고 있어 원고의 신뢰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는 점, ‘한일합병의 공으로’ 부분을 삭제한 개정 특별법 관련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하여 앞서 본 대로 헌법재판소에서 소급입법금지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 과잉금지원칙 등에 위배되지 않아 합헌이라는 결정을 한바 있는 점( 헌법재판소 2013. 7. 25. 선고 2012헌가1 전원재판부 결정 ) 등을 종합하여 보면, 부칙 제2항 본문에 따라 일정한 경우 종전의 친일재산확인결정 등에 관하여 개정 특별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소급입법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 신뢰보호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볼 수도 없다. 이 부분 원고 주장 역시 이유 없다.

라) 소결론

개정 특별법 관련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원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따라 개정 특별법을 적용하여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한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소외 1(대판:소외인)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실 및 위원회가 소외 1(대판:소외인)을 구 특별법 제2조 제1호 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소외 1(대판:소외인)은 개정 특별법 제2조 제1호 (나)목 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

5) 이 사건 토지가 친일재산으로 추정되는지 여부

토지 및 임야조사사업을 통한 사정(사정)은 원칙적으로는 ‘소유자’의 신고로 시작되고 이에 따른 토지·임야 조사 및 측량, 토지·임야조사부 및 지적도·임야도의 조제, 사정 후 공시 및 이의신청절차를 거쳐 사정명의인이 확정되도록 되어 있어 확인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당시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통해 근대적 법률관계가 우리나라에 막 이식되기 시작하던 시기로서 소유권의 귀속에 혼란스러운 점이 적지 않았고,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소유자의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소유자가 없는 토지, 소유권의 귀속이 명확하지 않은 토지에 대하여도 사정이 이루어지는 등 토지 및 임야조사사업이 일제나 그와 결탁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의하여 토지를 수탈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므로 사정이라는 제도가 반드시 사정명의인의 해당 토지나 임야에 대한 기존의 소유권을 확인받는 절차에 불과하다고 볼 것은 아니고, 더욱이 사정의 결과로 작성된 토지대장, 임야대장을 토대로 근대적 등기제도가 시행됨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이 처음으로 생겨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토지나 임야에 관하여 그 명의로 사정을 받은 사람은 해당 토지나 임야를 원시적·창설적으로 취득하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사정에 의한 취득 역시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서 말하는 취득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09두11454 판결 등 참조).

따라서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 규정된 ‘취득’에는 사정에 의한 취득이 포함되므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소외 1(대판:소외인)이 일제 강점기 중에 사정을 받아 취득한 이 사건 토지는 특별법 제2조 제2호 후문(이하 ‘이 사건 추정조항’이라 한다)에 따라 친일재산으로 추정된다.

6) 친일재산의 추정이 번복되는지 여부

가) 관련 법리

특별법 제2조 제2호 는 “친일재산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추정조항에 의한 추정력을 번복하기 위해서는 재산의 취득시기가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사이라는 전제사실에 대하여 법원의 확신을 흔들리게 하는 반증을 제출하거나 또는 취득한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가 아니라는 추정사실에 반대되는 사실의 존재를 증명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10두28335 판결 ,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1두31390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사정을 통해 취득한 토지의 경우 그 사정의 기초가 된 옛 법률관계 혹은 사실상의 소유권이 러·일전쟁 개전 전부터 이미 존재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상당한 개연성을 수긍케 하는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 사건 추정조항은 그 전제사실에 관한 법관의 확신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아니하여 적용될 수 없고, 이 경우 해당 토지의 취득과 친일행위 사이의 대가관계는 피고가 증명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09두11454 판결 참조).

나) 판단

(1) 앞서 본 법리와 아래에서 보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소외 1(대판:소외인) 앞으로 사정된 이 사건 토지는 그 사정의 기초가 된 옛 법률관계 혹은 사실상의 소유권이 러·일전쟁 개전 전부터 이미 존재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상당한 개연성을 수긍케 하는 사정이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사건 토지에 대한 친일재산추정은 번복되지 않으므로, 이 부분 원고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2) 앞서 본 대로, 조선왕실에서 이 사건 토지의 인근에 철종의 생부와 생모인 전계대원군과 용성부대부인의 각 묘소를 정하면서 그 주변 토지를 위 각 묘역의 관리를 위한 사패지로 하사한 사실 및 토지조사부와 임야조사부에 소외 1(대판:소외인)이 이 사건 토지의 소유자로 기재되어 있는 사실은 인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원고는 이 사건 토지가 위와 같이 사패지로서 사정의 기초가 된 옛 법률관계 혹은 사실상의 소유권이 러·일전쟁 개전 전부터 이미 존재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여러 사정에 비추어 원고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① 먼저 이 사건 토지가 원고 주장과 같이 사패지에 해당하는지 본다. 철종의 생모인 용성부대부인의 초장지는 서울 서대문구 (주소 2 생략)에 위치하고 있었고,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분묘는 진관동 토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가 1855년경 포천 지역으로 이장된 것으로 보이는 점, 그런데 위원회가 이미 2007. 6. 15.경 일성록 등 문헌기록에 근거하여 전계대원군과 용성부대부인의 묘역을 둘러싼 사방 300보(1보 = 120㎝) 내에 위치한 원고 소유의 토지들에 관하여 이를 사패지로 인정하여 조사개시결정을 취소한 바 있는 점, 용성부대부인 초장지의 경우 일성록 등 문헌 기록에 따르면 300보 범위에 사패지 경계가 정해진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응암동 토지는 이러한 문헌 기록에 의한 사패지 범위 밖에 위치하고 있는 점, 또한 이와 같이 진관동 토지 인근에 위치하였던 전계대원군과 완양부대부인의 분묘가 1855년경 포천 지역으로 이장되면서 사패지를 준 목적도 소멸한 것으로 보이는 점, 경국대전 등 조선시대 법제에 따르면 법으로 정해진 범위를 넘어 사패지를 점유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는데, 원고 주장과 같이 조선 후기 금양임야의 범위가 그 이전의 보수(보수) 기준이 아니라 좌청룡 우백호의 풍수지리 기준으로 대체되었다고 볼 만한 근거도 부족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토지가 원고 주장과 같이 사패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② 응암동 토지의 경우 임야조사부 비고란에 아무런 기재가 없고, 삼림법이 시행된 1908. 1. 21.부터 3년 이내에 해당 토지의 지적 및 면적의 약도를 첨부하여 신고하였다거나 「삼림 산야 및 미간지 국유 사유 구분표준」에서 정한 바에 따라 소유권을 증명받았다는 사정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③ 또한 진관동 토지의 폐쇄등기부에 따르면 1919. 4.경 표제부 및 갑구의 등기에 1910년 등기를 이기하였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폐쇄등기부의 이기 기재는 그 당시 시행된 토지가옥증명규칙 등에 따라 이기하였다는 것으로서 토지가옥증명규칙 등은 러·일전쟁 개전 이후인 1906년 일본인의 토지 소유를 합리화하고 보장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일 뿐 그로써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이 확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④ 나아가 이와 같은 삼림법에 의한 신고나 위 소유권 증명, 폐쇄등기부 기재 역시 러·일전쟁 개전 이후의 일이므로, 그러한 신고 등의 사실만으로는 여전히 소외 1(대판:소외인)이 러·일전쟁 개전 이전에 이 사건 토지에 관한 옛 법률관계나 사실상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0두9563 판결 ,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1두31390 판결 등 참조).

⑤ 또한 종친인 소외 1(대판:소외인)이 한일합병 직후 후작 작위를 받는 등 친일행위의 대가로 각종 이권과 특혜를 부여받아 온 사정을 고려할 때, 러·일전쟁 개전 이후 이루어진 이 사건 토지에 대한 토지조사부와 임야조사부 및 등기부 기재 내용은 소외 1(대판:소외인)이 일제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식민지 토지정비정책에 편승하여 받은 것으로 볼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

⑥ 그 밖에 원고가 내세우는 사정과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토지에 대하여 그 사정의 기초가 된 옛 법률관계 혹은 사실상의 소유권이 러·일전쟁 개전 전부터 이미 존재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상당한 개연성을 수긍케 하는 사정이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3) 이 사건 토지의 경우 이 사건 추정조항에 의한 친일재산의 추정이 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부분 원고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7) 소결론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

4. 결론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원고가 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별지 생략]

판사 최규홍(재판장) 김태호 이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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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행정법원 2010.12.16.선고 2010구합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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