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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1두16858 판결
[국가귀속결정처분취소][미간행]
판시사항

갑 소유 토지에 대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서 정한 친일재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귀속결정을 한 사안에서, 갑의 증조부는 한일합병 직후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연이어 은사공채, 작기본서, 한국병합기념훈장 등을 받은 점 등에 비추어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고, 그 명의로 사정받은 토지는 친일재산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처분이 적법하다고 본 원심판단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

원고, 상고인

원고

피고, 피상고인

법무부장관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최상철 외 4인)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경과한 후에 제출된 준비서면 등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헌법위반 등의 주장에 대하여

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귀속특별법’) 제2조 제1호 (나)목 본문은 “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3조 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일제로부터 작위(작위)를 받은 자”를 그 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제2조 제2호 제2문(이하 ‘이 사건 추정조항’)은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 8. 15.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하고, 위 제3조 제1항 본문(이하 ‘이 사건 귀속조항’)은 그러한 친일재산은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에 국가의 소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원고는 위와 같은 조항들이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추정조항과 이 사건 귀속조항이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1) 먼저 이 사건 추정조항에 관하여 본다.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에서부터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하고, 현행 헌법에서도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제 잔재의 청산을 위한 친일재산의 처리 등은 해방 이후 60년 이상이 경과한 상황에서 친일재산귀속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지고 있고, 그 사이에 6·25 동란이 발발하여 부동산 소유관계 등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멸실되는 등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 중 어떠한 재산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인지 여부를 국가 등 제3자가 규명하여 밝히는 것은 매우 곤란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일반적으로 재산의 취득자 또는 그 후손들은 그 재산의 취득과 관련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거나 그 취득 및 변동 내역을 비교적 잘 알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사건 추정조항의 적용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서 열거한 여러 종류의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 중 친일재산귀속특별법에서 규정한 특정의 행위를 한 자로 한정되어 있고, 그 추정 대상인 재산의 취득시기도 러·일전쟁 개전 시(1904년)부터 1945. 8. 15.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모두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추정조항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일정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하고, 그로써 당해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취득자 측에서 증명하도록 한 것이 반드시 현저하게 부당한 것이라고 볼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사건 추정조항과 같은 규정을 둘 현실적 필요성과 비교하여 그 추정을 통해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에게 전가되는 증명책임의 범위나 부담이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아가 이 사건 추정조항이 일정한 증명책임을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에게 분담시키고 있다고 하여 이를 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였다거나 입법자가 그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거나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볼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추정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다음으로 이 사건 귀속조항에 관하여 본다.

새로운 입법으로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적용되게 하는 이른바 진정소급입법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거나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는 헌법상으로도 허용이 된다.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지만, 친일재산의 소급적 박탈은 위 헌법정신 등에 비추어 일반적으로 소급입법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예외적 영역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이 사건 귀속조항으로 인한 법적 안정성이나 신뢰에 대한 침해가 반드시 무리하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반면 친일재산귀속특별법의 입법 목적에 대한 헌법적 요청이나 이 사건 귀속조항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적 가치는 매우 엄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귀속조항이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소급입법 제한에 관한 헌법 제13조 제2항 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사건 귀속조항은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정신에서 유래하는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그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민법 등 기존 재산법 조항의 해석 및 적용 등에 의존하는 방법만으로는 친일재산을 위 헌법이념에 합치하도록 처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점에 비추어 그 취득 등의 원인행위 시에 국가의 소유로 일괄 귀속되도록 법률로 규정한 것은 수단의 적절성도 인정이 된다. 또한 친일재산귀속특별법은 사안이 중대하고 행적이 뚜렷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친일재산으로 국가귀속 대상 재산을 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경우 등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자에 대하여는 다시 예외를 인정하여 국가귀속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고, 나아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측에서 그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여 국가귀속을 막을 수 있도록 하고, 선의의 제3자에 대한 보호 규정도 마련하여 두는 등 헌법적 정당성에 기초한 입법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제한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이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어 헌법 제23조 의 재산권보장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거나 피해의 최소성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 밖에 이 사건 귀속조항의 규정 내용으로 볼 때, 그것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거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 등을 사회적 특수계급으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귀속조항에 의하여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친일재산에 한정되는 것이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그 자신의 경제적 활동으로 취득하게 된 재산이나 친일재산 이외의 상속재산 등에 대해서까지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아니므로 연좌제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거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갖는 행복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들에게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귀속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 역시 이유 없다.

3) 원고는 나아가 토지를 사정(사정)에 의하여 취득한 경우까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헌법 제37조 의 과잉금지의 원칙 등에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토지사정 작업의 결과를 기초로 하여 그 이후에 비로소 소유관계를 공적인 문서로 기록하게 되었으므로, 사정 이전에 토지소유권을 취득한 사실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사정에 의한 토지 소유권의 취득까지도 친일재산으로 추정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배치된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이 사건 추정조항은 러·일전쟁 개전 시(1904년)부터 1945. 8. 15.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하고 있어서, 거기에서 전제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에는 1910년의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일제의 병탄 과정에서 저질러진 친일행위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다른 한편 임야에 대한 사정작업은 1918년 이후부터 진행된 것으로서 기존의 토지 지배 질서를 재편하여 일제 강점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측면이 있는데다 특히 이 사건처럼 병탄 과정에서 일제에 대한 현저한 공적을 인정받아 작위를 수여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그 10여년 후 사정을 받았다면 이를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하고 그 반대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을 토지소유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 등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 따라서 이 사건 추정조항과 이 사건 귀속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2. 친일재산이 아니라는 주장 등에 대하여

가. 원심은, 원고의 증조부인 망 소외 1이 1910. 10. 7. 일제로부터 조선귀족령에 의하여 남작 작위를 받았고, 1911. 2. 22. 조선총독부 총독관저에서 열린 작기본서 봉수식에 직접 참여하여 작기본서를 받았으며, 그 외에도 1911. 1. 13.에는 은사공채 2만 5,000원을, 1912. 8. 1.에는 ‘종전 한일관계에 특히 공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병합기념장을 받고, 이어 1915. 11. 10.에는 다이쇼대례기념장을 받은 사실, 소외 1은 1912. 12. 7. 종4위에 서위된 후 1920. 12. 10. 정4위로 승급되었고 1915년경에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의 특별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위 조선물산공진회는 일제가 식민통치의 선진화를 선전하기 위해 만든 단체인 사실, 한편 현재 원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어 있는 이 사건 토지는 소외 1이 그 분할 전 토지에 관해 1920. 2. 24. 사정을 받아 소유권을 취득한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이 사건 토지는 친일재산귀속특별법 제2조 제2호 에 따라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소외 1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이 사건 토지가 소외 1의 조부 소외 2가 청나라에 파견되어 신임사화에 대한 기록을 바로 잡고 돌아온 공적으로 1823년경 순조로부터 하사받은 사패지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전혀 없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또한 이 사건 토지에 원고의 조상 중 소외 3의 분묘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조선시대 대전회통에서 규정한 분묘금양권에 따라 이 사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되었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 판시와 같이 분묘금양권이 인정되었다고 하여 이 사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고, 소외 1은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각종 이권과 특혜를 부여받아 왔으므로 한일합병 이후 이루어진 이 사건 토지에 대한 소외 1 명의의 사정 역시 그가 그동안 해온 일련의 친일반민족행위와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등의 사정을 들어 배척함으로써, 이 사건 토지가 친일재산이라는 앞서 본 추정이 복멸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나. 위에서 본 친일재산귀속특별법의 규정 및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모두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된다. 특히 소외 1은 앞에서 인정한 것처럼 1910. 10. 7.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연이어 은사공채, 작기본서, 한국병합기념장, 다이쇼대례기념장을 받았고, 위 작위를 받은 시기가 한일합병 직후이며 당시 작위수여의 대상자들은 대부분 한일합병에 특별한 공로가 있다고 인정되어 선발된 자들인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소외 1은 친일재산귀속특별법 제2조 제1호 가 규정한 ‘재산의 국가 귀속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그 명의로 사정받은 이 사건 토지는 친일재산으로 추정된다 할 것이고, 다른 한편 이 사건 토지가 사패지라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원고 주장 자체에 의하더라도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시기가 1820년대라는 것인데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토지에 존재하는 원고 조상의 분묘로서 일제시대 이전에 조성된 것은 소외 3의 분묘가 유일한데 그마저 위 하사받았다는 시기보다도 앞선 1814년에 이 사건 토지에 이장된 것이라는 점 등으로 볼 때, 이 사건 토지가 친일재산이라는 추정을 복멸할 만한 사유도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옳다.

결국 원심판결에는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실을 잘못 인정하거나 친일재산의 추정 및 그 복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판단을 누락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결론

이에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능환(재판장) 이인복 박병대(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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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고등법원 2011.6.30.선고 2009누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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