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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14. 12. 9. 선고 2013나80674 판결
[보험금][미간행]
원고, 항소인

주식회사 두베스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정동국제 담당변호사 서동희 외 1인)

피고, 피항소인

에이스아메리칸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현 담당변호사 조성극)

변론종결

2014. 10. 23.

주문

1.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1,341,301,5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2. 8. 23.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6%,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원고는 무역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이고, 피고는 보험업을 하는 미합중국 법인으로 국내에 영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나. 원고는 2012. 6. 14. 터키의 코자 폴리에스터 사나이 베 티카렛 에이 에스(Koza Pplyester Sanayi Ve Ticaret A.S. 이하 ‘코자 폴리에스터’라 한다)에 폴리머리제이션 라인 1세트 4포장(package) 170,000kg(Polymerization Line 1 set, 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 한다)을 이스켄데룬 항까지 운임·보험료 포함 인도조건(CIF, Cost, Insurance and Freight), 매매대금 미화 350만 달러로 하여 매도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매매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고, 2012. 6. 22. 피고와 이 사건 화물에 대하여 Institute Cargo Clause(구협회적하약관)상의 보험 조건 중 WAIOP 주1) 조건 으로 부보금액을 미화 385만 달러(= 350만 달러 x 110%)로 하고, ‘On-Deck Clause(applicable if not notice of on-deck shipment)’라는 내용의 갑판적 약관(‘이 사건 갑판적 약관’이라 주2) 한다) 을 특약으로 하는 적하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보험증권(번호 (보험증권번호 생략))을 발행받았다(이하 ’이 사건 보험계약‘이라 한다).

다. 원고는 이 사건 화물에 관하여 중국의 상하이 항에서 터키의 이스켄데룬 항까지의 해상운송(이하 ‘이 사건 운송’이라 한다)을 주식회사 글로벌카고솔루션(이하 ‘글로벌카고’라 한다)에 의뢰하였고, 글로벌카고는 이를 다시 터키의 카르 쉬핑 인베스트먼트 에스에이(KAR Shipping Investment S.A., 이하 ‘카르 쉬핑’이라 한다)에 의뢰하였다.

라. 2012. 6. 12. 상하이 항에서 카르 쉬핑의 선박대리점인 차이나 쉬핑 에이전시(상하이) 코 엘티디[China Shipping Agency(Shanghai) Co., Ltd]가 이 사건 선박의 선장을 대리하여 글로벌카고의 상하이 파트너인 월드 로직스 코 엘티디의 상하이 지점(World Logix Co., Ltd. Shanghai Office)에게 마스터 선하증권[Master B/L(선하증권번호 1 생략)]을 발행하였고, 2012. 6. 14. 글로벌카고는 원고에게 하우스 선하증권[House B/L(선하증권번호 2 생략)]을 발행하였다. 위 마스터 선하증권 및 하우스 선하증권에는 ‘On deck at shipper/receiver risk without any responsibility for loss, damage to cargo or vessel or owners whatsoever'(송하인/수취인의 위험부담으로 갑판에 적재되는바, 어떠한 경우에도 이 사건 화물의 손실/손상에 대하여 이 사건 선박 또는 선주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취지, 이하 '이 사건 운송인 면책조항’이라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마. 이 사건 화물은 중국의 상하이 항에서 터키의 이스켄데룬(Iskenderun)항까지의 운송을 위해 선박 레이스 지(MV Reis G, 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한다) 호의 갑판 위에 선적되어 2012. 6. 14. 출항하였다. 이 사건 선박이 2012. 7. 7. 오만 앞바다를 항해하던 중 이 사건 화물 4포장 중 한 부분인 보일러 1대(Extrification-1 Reactor 54.5톤, 이하 ‘이 사건 보일러’라고 한다)가 해상으로 떨어져 상실되는 사고(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가 발생하였다. 당시 기후는 남서풍이 동반된 몬순기후였고, 바람 세기는 뷰퍼트 풍력(beaufort scale) 기준 8 또는 9등급, 파고는 4.5~5.5 미터 정도였다.

바. 코자 폴리에스터는 원고에게 보험금 청구권, 운송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등 모든 권리를 양도하고 2013. 4. 3. 이를 피고에게 통지하였다.

【인정근거】다툼 없는 사실, 갑1~5, 8, 14, 15, 17, 23, 을1~3(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의 주장

1) 갑판적 약관은 중요한 특약이므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규제법’이라 한다‘)에 따라 설명의무 대상이다. 특히 해상보험에는 영국해상보험법이 적용되므로, 국내의 일반적인 약관해석 내지 약관통제의 원칙과는 이질적인 측면이 있어서 약관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피고는 원고에게 갑판적 약관에 관하여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갑판적 약관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보험계약의 담보조건은 WAIOP 조건이다.

2) 갑판적 약관이 보험계약의 내용이 되더라도, 원고는 피고에게 이 사건 화물이 갑판적 되어있음을 사전에 통지하였으므로 갑판적 약관이 적용되지 않고 원래의 보험조건인 WAIOP 조건이 적용되므로 이 사건 사고는 담보의 범위에 포함된다.

3) 이 사건 갑판적 약관이 설명의무 대상이 아니고, 원고가 피고에게 갑판적 사실을 고지하였음이 인정되지 않아 이 사건 보험계약의 담보범위가 투하와 갑판유실을 포함한 분손부담보(FPA including JWOB) 조건으로 축소된다고 하더라도, ① 전손이면 담보되는데 전손여부는 선하증권 단위가 아니라 포장이 독립적으로 되어 있는지 여부로 판단하는바, 이 사건 사고는 전손에 해당하고, ② 정상적으로 고박되어 있던 이 사건 보일러가 당시 4.5~5.5 미터의 파고가 계속되는 등의 악천후로 유실되었으므로, 이 사건 사고는 ‘갑판유실’에 해당하여 담보범위에 포함된다. 설령 고박에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부담보위험과 갑판유실이라는 담보위험이 경합하는 경우에는 영국 해상보험법상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4)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1,341,301,500원(= 미화 1,155,000달러 x 보험증권상 환율 1,161.30원)을 지급하여야 한다.

나. 피고의 주장

1) 피고가 원고에게 갑판적 약관을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모든 해상적하보험자들이 사용하는 약관으로서 해상보험시장에서의 일반적이고 공통된 약관이고 원고측은 이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보험계약의 내용이 된다.

2) 갑판적된 이 사건 화물에 갑판적 약관이 아니라 이 사건 보험 조건인 WAIOP를 동일하게 적용하려면 이 사건 보험 가입시 원고는 이 사건 화물이 갑판적 되었음을 피고측에 고지하고 선창 내 적재 화물(under-deck cargo) 보험료에 50%를 가산하여 지급하였어야 했는데 이를 고지하지 않고 보험료도 더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갑판적 약관이 적용된다.

3) 갑판적 약관에 의하여, 갑판에 적재된 이 사건 화물에 대한 이 사건 보험계약의 담보범위인 WAIOP 조건은, 단독해손 부담보(FPA : Free from Particular Average)와 투하 및 갑판유실(JWOB : Jettison and Washing Overboard) 담보 조건으로 축소되고, 이 사건 보일러는 고박이 풀려 갑판으로부터 멸실(Loss Overboard)된 것이지 파도에 의하여 휩쓸려 간 갑판유실(Washing Overboard)이 아니므로 이 사건 사고는 이 사건 보험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4) 영국해상보험법 제17조와 제18조는 최대선의의무 및 고지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이 사건 화물 관련 마스터 선하증권 및 하우스 선하증권에는 갑판적 화물에 관한 이 사건 운송인 면책조항이 있는데, 이를 피고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최대선의의무 위반이고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대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고지의무 위반이므로, 이를 이유로 피고는 2013. 7. 9.자 준비서면의 송달로써 이 사건 보험계약을 취소한다.

3. 준거법

피고가 미합중국 법인임은 앞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이 사건에는 외국적 요소가 있어서 국제사법에 따라 그 준거법을 정하여야 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 본문은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갑1의 기재에 따르면, 이 사건 보험계약의 보험증권에 ‘본 보험증권에 따라 발생하는 책임에 관한 모든 문제는 영국의 법과 관습이 적용된다(All questions of liability arising under this policy are to be governed by the laws and customs of England)'는 내용의 영국법 준거조항이 규정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영국법 준거약관은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이 되어 온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당사자간의 거래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공익규정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라거나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유효하므로( 대법원 1996. 3. 8. 선고 95다28779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보험계약의 성립과 효력, 그로 인한 피고의 보험금지급의무의 발생 여부 등 법률관계에 관하여는 원칙적으로 당사자가 정한 바에 따라 영국의 법률 즉, 1906년 영국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 이하 ‘영국해상보험법’이라 한다)과 관습이 적용된다.

4.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가. 이 사건 보험의 담보범위

1) 피고에게 이 사건 갑판적 약관에 관하여 설명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

가) 먼저, 이 사건 보험계약에 약관규제법이 적용되는지 살펴본다. 이 사건 보험계약의 성립 및 효력 등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른 법률관계의 준거법이 영국법이라는 점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국제사법 제27조 가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준거법 지정과 관련하여 소비자계약에 관한 강행규정을 별도로 마련해 두고 있는 점( 국제사법 제27조 는 ‘소비자가 직업 또는 영업활동 외의 목적으로 체결하는 계약’에 그 적용범위를 한정하고 있다)이나 약관규제법의 규정내용, 입법목적 등을 고려하면,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체결된 계약에 관하여 당연히 약관규제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대법원 2010. 8. 26. 선고 2010다28185 판결 참조), 달리 이 사건에서 약관규제법을 적용하여야 할 사정도 보이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에는 약관규제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보험계약에 약관규제법이 적용된다는 전제에 선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나) 설령 약관규제법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보험자에게 약관의 설명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험계약자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에 정하여진 중요한 사항이 계약 내용으로 되어 보험계약자가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데 그 근거가 있으므로( 대법원 2000. 7. 4. 선고 98다62909, 62916 판결 등 참조), 해상보험계약에서 사용하고 있는 약관이라 할지라도 개별적으로 그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혹은 이미 법령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설명의무의 대상이 아니다( 대법원 2013. 6. 28. 선고 2012다107051 판결 등 참조).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을 보면, 제1심 증인 소외 2의 증언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보험계약시 갑판적 약관에 관하여 설명하여 주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나, 한편 다툼 없는 사실에 갑5, 14~16, 을8, 9, 11, 12의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이미 위 약관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보이므로 피고에게 약관규제법 제3조 에 기한 설명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한다.

① 갑판적 약관은 모든 해상적하보험자들이 사용하는 약관이고, 이 사건 보험약관에도 기재되어 있으며, 원고가 2007.경부터 피고와 체결한 수출입적하 포괄보험의 약정서(갑5)에도 ‘보험조건’으로 기재되어 있다.

②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을 담당하였던 원고측 담당자 소외 1(대판:소외인)은 2003년부터 약 10년간 해상적하보험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피고와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할 당시 월 30~50건 정도의 해상적하보험을 체결하였다.

③ 위 소외 1(대판:소외인)의 진술서에도 ‘통상적으로 갑판적이 되면 보험료가 인상된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다.

다) 따라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2) 원고가 갑판적 사실을 피고에게 고지하였는지 여부

갑판적 약관은 피보험자가 보험자에게 갑판적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 적용되는 점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제1심 증인 소외 1(대판:소외인), 소외 2의 증언(위 소외 1(대판:소외인)의 증언 중 뒤에서 배척하는 부분 제외)과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이 사건 보험계약시 피고에게 이 사건 화물이 갑판적 되었음을 고지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갑판적 사실을 피고에게 고지하였다는 원고 주장에 부합하는 갑6, 18의 기재, 제1심 증인 소외 1(대판:소외인)의 일부 증언은 모두 원고측에서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업무를 담당하였던 소외 1(대판:소외인)의 진술로서, 만약 그 진술과 같이 소외 1(대판:소외인)이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시 피고에게 갑판적 사실을 고지하였다면, 갑판적 화물을 선창 내 적재 화물과 동일한 조건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50% 가산한 보험료를 부과해야 하는데(을8), 피고가 가산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고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한 점에 비추어 소외 1(대판:소외인)의 위 진술은 납득하기 어려워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3) 소결

앞서 본 바와 같이 갑판적 약관이 약관규제법이 정하는 설명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가 원고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갑판적 약관은 이 사건 보험계약의 내용이 된다. 그런데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화물의 갑판적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갑판적 약관이 적용됨에 따라 이 사건 보험계약의 담보 범위에 관한 조건은 WAIOP 조건에서 투하와 갑판유실을 포함한 분손부담보[Free from Particular Average(FPA) including Jettison & Washing Over Board(JWOB)] 조건(즉 투하와 갑판유실 외에는 분손에 대하여 담보하지 않는 조건)으로 축소되었고, 위 조건에 따르면 이 사건 화물이 전손되었거나 분손의 경우 투하 또는 갑판유실된 경우에만 이 사건 보험으로 담보된다.

나. 이 사건 보험사고가 ‘전손’에 해당하는지 여부

위 보험조건에 의하면 ‘전손’의 경우에는 갑판유실 등 해당 여부에 상관없이 이 사건 보험계약으로 담보되므로, 먼저 이 사건 보험사고가 ‘전손’에 해당하는지 본다.

살피건대, 화물이 모두 같은 종류이고 보험가액이 하나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화물이 별개의 포장으로 선적되었다 할지라도 가분적이라 할 수 없어 그 일부의 멸실은 분손에 해당다고 볼 것이다. 갑1의 기재에 따르면 이 사건 보험목적물은 폴리머라이제이션 라인 세트로서 4개의 보일러와 부품 및 악세서리로 구성되어 하나의 보험증권에 하나의 보험가액으로 보험이 가입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보일러를 포함한 이 사건 화물이 비록 별개 포장 내지 고박되어 선적되었다고 할지라도 가분적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 중 이 사건 보일러가 멸실된 것은 ‘분손’에 해당한다.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 이 사건 보험사고가 ‘갑판유실’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 사건 보험계약에 적용되는 영국해상보험법 및 관습에 의하면, 보험의 목적에 생긴 손해가 그 부보위험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하고, 그 증명의 정도는 이른바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에 의한 증명으로 충분하다( 대법원 2001. 5. 15. 선고 99다26221 판결 참조). 여기서의 ‘증거의 우월’에 의한 증명은 단순한 증거의 상대적 우월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당사자 일방의 증거가 유력하고 신용할 수 있으며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서 ‘증거의 유력(weight of evidence)’ 또는 ‘신용할 만한 보다 고도의 증거(greater weight of credible evidence)’에 의한 증명과 같은 의미로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도의 증명보다는 그 증명도가 낮은 것이다. 다만 증명도의 문제를 절차에 관한 것으로 보아 법정지법인 우리나라의 법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증명책임의 소재와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비추어 이 사건 사고가 이 사건 보험계약으로 담보되는 ‘갑판유실’에 해당하는지 보건대, 앞서 인정한 사실에 갑7, 8, 9, 19, 20, 26, 27, 30의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고박 전문업체에 의뢰하여 이 사건 화물에 대한 고박을 시행한 사실, 그 업체가 이 사건 사고 이후 이 사건 화물에 대한 고박이 적절하였다는 내용과 함께 출항 전 고박된 상태인 이 사건 화물의 사진을 보내온 사실, 이 사건 선박의 일등항해사 역시 이 사건 화물의 고박상태가 양호하였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한 사실, 이 사건 선박이 목적지인 터키 이스켄데룬 항에 도착한 후 사고 검정인이 유실되지 않은 나머지 보일러 3개의 고박과 적재상태가 적절하였다고 확인한 사실, 이 사건 사고 당시 뷰퍼트 풍력(beaufort scale) 기준 8 또는 9등급의 바람이 불었고 파고 4.5~5.5 미터 정도였던 사실, 영국 법률사무소 Stephenson Harwood LLP는 “이 사건 사고는 이 사건 보험계약으로 담보된다. ‘갑판유실’은 날씨, 선박의 요동 등에 상관없이 화물이 실제로 파도에 의해 갑판에서 쓸려 나가야만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물이 보험으로 담보되는 위험과 그렇지 않은 위험 모두에 의하여 유실되었다면 해당 사고는 보험으로 담보된다고 보아야 한다.”라는 의견을 제시한 사실, 한국해양대학교 김세원 교수 등도 “이 사건 선박의 항해일지 내용 등에 비추어, 이 사건 보일러는 고박상태의 불량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파고 4.5~5.5 미터, 순간풍속이 40knots 이상인 황천을 조우하면서 선체가 심하게 요동하여 통상적인 고박장치가 받을 수 있는 저항력 이상의 절단하중을 순간적으로 받아 끊어져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건 보일러가 추락할 당시 사진을 보아도 누구나 쉽게 파도에 의하여 고박장치가 절단되어 추락한 것임을 알 수 있다.”라는 의견을 제시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앞에서 든 증거, 갑21, 을10, 20의 기재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과 이로부터 추인할 수 있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사실만으로 이 사건 사고가 ‘갑판유실’에 해당함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① 일부 해상보험 용어 및 약관에 관한 사전, 주3) 해설서 등에 따르면, 악천후에 선박이 요동치거나 갑자기 기울어서 화물이 멸실된 사고는 갑판유실에 해당하지 않는다.

② 이 사건 사고 당시 사고 지역의 기상이 강한 남서풍을 동반한 몬순기후였지만 이는 그 지역에서 통상적인 것으로 특이한 상황은 아니었고, 이 사건 보일러는 중량이 54.5톤에 달하는데 그것을 휩쓸고 갈 정도의 심한 파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사건 보일러가 바다로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보더라도 파도의 직접적인 작용이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③ 이 사건 선박의 항해일지에 ‘7. 7. 오후 4:50 좌현 상갑판에 적재된 보일러 한 개가 선박이 심하게 기울자 고박이 끊어져 바다로 떨어졌다. 오후 5:00 갑판 적재 화물의 고박 등을 모두 확인했는데 이상 없었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 사건 보일러 외에 나머지 보일러 역시 같은 악천후와 선박의 요동을 겪었음에도 멸실되지는 않았다.

④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사고 후 사고 검정인이 멸실되지 않은 나머지 보일러 3개의 고박과 적재상태가 적절하였다고 확인하였으나,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고 하여 이 사건 보일러의 고박도 적절하였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⑤ 영국의 법률사무소 Clyde&Co는 앞서 본 Stephenson Harwood LLP의 의견서와 달리, “‘갑판유실’은 화물이 악천후 및 선박의 동요로 인하여 고박이 풀려 바다에 빠진 것이 아니라 파도에 의해 쓸려 나간 것을 의미한다. 이 사건 보일러가 ‘갑판유실’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지만, 이 분야 전문가에 따르면 이 사건 보일러의 고박은 부적절했다. 이 사건 보일러는 ‘갑판유실’된 것이 아니라 악천후에 선박이 요동하여 미끄러져 떨어진 것에 불과하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으로 담보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였다.

⑥ 고박을 담당하였던 업체, 이 사건 선박의 일등항해사가 이 사건 화물의 고박이 적절하였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보냈으나, 피고는 앞서 본 영국 법률사무소의 의견서를 제출하여 고박이 부적절함을 지적하며 이를 다투고 있고, 이 사건 화물의 고박을 담당하였던 업체와 선박의 일등항해사도 이 사건 사고의 원인에 관하여 이해관계가 없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라. 소결

결국 이 사건 사고가 이 사건 보험계약으로 담보되는 ‘전손’이라거나 ‘갑판유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가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5. 피고의 이 사건 보험계약의 취소 주장에 관한 판단

가. 운송인 면책조항이 고지의무 대상인지 여부

1) 이 사건 보험계약의 성립 및 효력 등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른 법률관계의 준거법이 영국법임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보험계약의 취소에 관하여는 영국해상보험법 제18조, 제17조가 적용되고, 같은 법 소정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보험계약의 취소는 우리 상법 제651조 소정의 그것과는 그 요건과 효과를 달리하고 있고 이에 대하여 우리 상법 제651조 의 규정은 적용될 여지가 없다( 대법원 1996. 3. 8. 선고 95다28779 판결 참조).

영국해상보험법 제17조는 "해상보험계약은 최대선의(utmost good faith)에 기초한 계약이며, 만일 일방당사자가 최대선의를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상대방은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러한 최대선의의 원칙에 기초하여 같은 법 제18조 제1항은 "이 조항의 규정에 반하지 않는 한, 피보험자는 계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중요한 사항을 보험자에게 고지하여야 하며, 통상의 업무수행과정에서 자신이 알고 있어야만 할 모든 사항은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만일 피보험자가 이러한 고지를 하지 않은 경우 보험자는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며, 같은 조 제2항은 "신중한 보험자가 보험료를 산정하거나 위험을 인수할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그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모두 중요한 것이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피보험자에게 고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2)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 운송인 면책조항은 고지의무의 대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보험계약자가 제3자에 대하여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하게 되면 보험자가 부담하게 되는 궁극적인 손실위험은 증가되기 때문에 보험자가 가지는 대위권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은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와 같이 부보된 목적물의 소유자인 원고가 운송인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운송인의 책임을 면제시켜 주는 약관을 삽입하였다면 이러한 사실은 보험료 또는 보험자의 위험인수 여부에 대해 보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보험자에게 사전에 고지하여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② 화물은 원칙적으로 선창내 적재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전제 하에 보험료가 책정된다. 갑판적 화물로서 상관습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보험자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 화물과 같은 화물에 관하여 그러한 상관습이 존재함을 인정할 자료도 없다.

③ 원고는 선하증권 표면 또는 이면에 이 사건 운송인 면책조항과 같은 문구를 기재하는 것은 통상적인 관행으로서 그러한 사실은 보험자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④ 영국해상보험법의 부칙인 보험증권의 해석에 관한 규칙(Rules of Construction Policy) 제17조는 보험의 목적이 되는 ‘화물(goods)’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갑판적 화물은 일반적인 ‘물건’의 개념에 포섭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없고, 반대의 관습이 없는 한 특정하여 갑판적 화물로 보험에 가입하여야 주4)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보험자에게 이 사건 화물이 갑판적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운송인의 책임이 면제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하여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⑤ 설령 원고의 주장과 같이 운송인 면책조항이 있어도 운송인이 항상 면책되는 것은 아니며 운송인이 선박의 감항성을 유지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여전히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운송인 면책조항으로 말미암아 보험자가 인수해야 하는 위험이 증가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 이 사건 보험계약의 취소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운송인 면책조항은 고지의무의 대상이라고 할 것인데, 원고가 운송인 면책조항에 관하여 피고에게 고지하지 않았음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므로, 원고는 이 사건 보험계약의 체결과정에서 피보험자인 원고가 알았거나 통상의 업무수행과정 중 자신이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항인 이 사건 운송인 면책조항에 관한 정보를 피고에게 고지하지 아니함으로써 고지의무 내지 최대선의의 의무를 위반하였다. 따라서 보험자인 피고는 이와 같은 고지의무 내지 최대선의의 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 사건 보험을 취소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가 이와 같은 원고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취소한다는 취지의 2013. 7. 9.자 준비서면이 같은 날 원고 소송대리인에게 송달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므로 그 무렵 이 사건 보험계약은 취소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 점에서도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6. 결 론

제1심 판결은 정당하다.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판사 이경춘(재판장) 이형근 권동주

주1) WA 조건(With Average), 즉 분손담보조건은 공동해손인 경우 또는 선박 혹은 부선이 좌초·침몰 또는 대화재를 입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험증권에 특정한 비율 미만의 해손은 담보하지 않는 조건이고, WAIOP(With Average Irrespective of Percentage) 조건은 WA 조건이 수정된 것으로 특정 비율 해당 여부에 상관 없이(소손해면책 없이) 보상하는 조건이다.

주2) 갑판적 약관(갑판적 통지가 없는 경우에 적용), 부보된 화물의 전부 또는 일부가 갑판에 적재되어 운송될 경우에는 그러한 갑판적 화물의 보험조건은 보험의 위험 개시 때부터 투하, 유실위험을 포함하는 단독해손부담보로 변경된다.

주3) 해상보험 용어 및 조항 사전(Dictionary of Marine Insurance Terms and Clauses, Robert H. Brown, Witherby & Co. Ltd), 적하보험약관론(이재복, 보험연수원), Marine Insurance Law and Policy(Donald O'may, Sweet and Maxwell, 1993) 등 참조

주4) “In the absence of any usage to the contrary, deck cargo and living animals must be insured specifically, and not under the general denomination of go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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