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한 사람이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검찰에서 ‘혐의 없음’ 결정을 받은 경우,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한 사람이 그에 이은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검찰에서 ‘혐의 없음’ 결정까지 받았다가 나중에 재심절차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경우, 이러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하고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며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혐의 없음’ 결정까지 받은 경우에는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국가배상책임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채무자인 국가가 그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조조문
민법 제2조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국가재정법 제96조 , 형사소송법 제325조
참조판례
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3802 판결 (공1992, 467) 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01844 판결 (공2014상, 170)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공2014상, 236)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8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김형태 외 4인)
피고, 피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의 경과
원심판결 이유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재심대상사건의 수사관은 1981. 9. 15.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원고 1을 임의동행의 방식으로 연행하여 구속영장이 발부된 1981. 9. 21.까지 7일 동안 원고 1의 의사에 반하여 사무실 또는 보호실에 머물도록 하였다. 또한 수사관들은 원고 1이 구속되어 있는 동안 원고 1을 폭행하거나 고문하였다.
나. 원고 1은 1981. 10. 13. 구 국가보안법(1991. 5. 31. 법률 제437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국가보안법’이라 한다) 제7조 제1항 위반죄로 수원지방법원에 구속기소되었다. 그 공소사실의 요지는 “버스 안내양 등을 상대로 ‘이북은 하나라도 공평히 나눠 먹기 때문에 빵 걱정은 없다.’는 등의 말을 하여 북한 공산집단의 사회제도를 은연 중 찬양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였다.”라는 것이다. 위 법원은 1982. 2. 18. 원고 1의 일부 법정진술, 증인의 법정진술과 이를 기재한 조서 등을 유죄의 증거로 삼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 원고 1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하였으며, 원고 1은 같은 날 석방되었다.
원고 1은 항소하였고, 항소심법원은 1984. 5. 11. 제1심판결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정당하나 양형이 무겁다는 이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원고 1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였다. 원고 1은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1984. 10. 10. 상고를 기각하여 위 항소심판결(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이 확정되었다.
다. 원고 1은 위와 같이 수사관들로부터 폭행과 고문을 당한 후 오른쪽 눈의 시력을 대부분 상실하였고 청력에도 이상이 생겼다. 1985년과 1986년에는 위와 같은 폭행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자살을 시도하였고, 그 후에도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라. 원고 1은 1982년 수사관이었던 소외 1, 소외 2, 소외 3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다. 그에 관한 검찰 수사에서 소외 1은 1983. 4. 21. “1981. 9. 15. 원고 1에게 ○○서 정보과 형사라고 밝히고 ○○서로 임의동행을 하였다. 원고 1이 보호실에서 3일 밤을 지냈고, 낮에는 정보과 사무실에 있었다.”라고 진술하였다. 그런데도 검찰은 1983. 5. 30. 소외 1, 소외 2, 소외 3에 대한 직권남용, 감금 혐의를 비롯한 모든 혐의에 관하여 ‘혐의 없음’ 결정을 하였다.
마. 원고 1은 2014. 2. 17.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 수원지방법원 2014재노2 )을 청구하였다. 위 법원은 2014. 5. 1. ‘원고 1은 수사관에 의하여 임의동행 형식으로 영장 없이 강제 연행된 이래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집행될 때까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수사관의 행위는 형법 제124조 에서 정한 불법체포·감금죄를 구성한다. 위 수사관의 불법체포·감금죄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 따라서 이 사건은 재심대상판결과 그 전심판결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는데도 그 죄에 대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 제422조 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재심개시결정을 하였고, 위 결정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바. 위 재심개시결정에 따라 진행된 재심사건에서, 위 법원은 2014. 8. 21. ‘원고 1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발언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구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해석하여야 하는데, 원고 1의 공소사실 기재 발언으로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초래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였다. 위 판결은 2014. 8. 29. 확정되었다.
사. 원고 1은 2014. 9. 19. 위 재심대상사건에서 1981. 9. 15.부터 1982. 2. 18.까지 구금되었음을 이유로 형사보상을 청구하였고, 위 법원은 2015. 3. 6. 원고 1에 대한 형사보상금을 3,140만 원[= 157일(1981. 9. 15.부터 1982. 2. 18.까지 157일) × 20만 원]으로 결정하였다.
아. 원고들은 2015. 3. 9. 원고 1에 대한 재심대상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있었던 위법행위를 원인으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라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원고 2는 원고 1의 남편, 원고 3은 원고 1의 딸, 원고 4는 원고 1의 모, 원고 5, 원고 6, 원고 7, 원고 8, 원고 9는 원고 1의 형제·자매들이다.
2.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을 원인으로 한 국가배상책임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상고이유 주장
가. 이 사건은 원고 1이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하고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이후 불법구금 등의 사정이 밝혀져 재심개시결정을 받고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른 무죄판결이 확정되자, 원고들이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를 원인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위법행위를 이유로 한 국가배상책임에 대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 되고 있다.
나.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을 말한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권리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제공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이와 같은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3802 판결 ,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 등으로 수집한 증거 등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재심사유의 존재 사실이 뒤늦게 밝혀짐에 따라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다음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를 원인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채권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실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채무자인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01844 판결 등 참조).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한 사람이 그에 이은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검찰에서 ‘혐의 없음’ 결정까지 받았다가 나중에 재심절차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경우, 이러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하고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며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혐의 없음’ 결정까지 받은 경우에는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국가배상책임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채무자인 국가가 그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다. 위에서 본 사실관계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원고 1은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하였고,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검찰에서 ‘혐의 없음’ 결정을 받았으며, 공판절차에서는 유죄의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그 후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들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이유로 위 원고에 대하여 재심이 개시되었고, 재심법원은 ‘원고 1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발언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초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원고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검찰이 위와 같이 직권남용, 감금 등 고소사건에 관하여 ‘혐의 없음’ 결정을 하였고, 원고 1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원고 1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른 진실규명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이나 그 후 원고 1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어 그 통보를 받았다는 사정은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원심은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원고 1이 재심대상사건에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판결을 선고받았을 고도의 개연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재심대상사건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원고들이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장애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아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3. 유죄판결 또는 재판작용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상고이유 주장
원심은 ‘재심대상사건 법원이 구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의 해석을 잘못하여 원고 1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으므로 피고는 이러한 유죄판결 또는 재판과정에서의 위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4. 결론
원고들의 상고는 이유 있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