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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도3722 판결
[군인등강제추행치상(예비적죄명:군인등강제추행)][미간행]
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 및 범죄 일시 등 공소장에 기재된 구체적 범죄사실 전부가 엄격한 증명의 대상인지 여부(적극)

[2] 공소사실의 내용 자체로 전후 연속되거나 견련되어 있는 여러 범죄사실 중 일부를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나머지를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요건

참조판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김용직 외 2인

주문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각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검사의 입증이 위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는 대상에는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구체적 범죄사실 모두가 포함되고, 특히 공소사실에 특정된 범죄의 일시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의 주된 대상이 되므로, 범죄의 성격상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엄격한 증명을 통하여 공소사실에 특정한 대로 범죄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0도14487 판결 참조). 또한 공소사실의 내용 자체로 전후 연속되거나 견련되어 있는 여러 범죄사실에 대하여 그 중 일부는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나머지는 유죄로 인정하려면, 그와 같이 무죄로 본 근거가 되는 사정들이 나머지 부분의 유죄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2.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해병대 대령으로 부대 참모장인 피고인이 심야에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는 도중에 그의 운전병인 피해자를 3회에 걸쳐 강제추행하여 피해자에게 약 3년간의 치료가 필요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정신과적 상해를 입게 하였다는 것으로,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이 사건 공판과정을 통하여 일관되게 공소사실을 다투면서 술에 만취하여 당시의 상황이 기억나지 않지만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원심은 다음과 같이 피해자 진술 중 일부의 신빙성을 인정한 다음 그 채택 증거들에 의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 중 3회째 강제추행 부분만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즉, ① 피해자가 작성한 사건경위서 및 제1심 법정에서의 피해자 진술에 비추어 피해자는 ‘○○교회 앞 돌 쌓인 곳 옆에 차 앞이 교회를 향한 상태에서 차 문이 열려진 상황에서 성추행을 당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면서 당시 상황을 겪어 보지 않고서는 진술할 수 없는 느낌이나 사실의 묘사 등을 상세히 진술하고 있는 점, ② 피해자는 일관하여 추행당한 시간이 약 20분이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피고인이 △△회관을 출발한 시각이 2010. 7. 9. 23:50경에서 23:55경이고 피고인의 차량이 피고인 소속 부대 정문 위병소를 통과한 시각이 2010. 7. 10. 00:47경이며, 현장검증결과 △△회관에서 ○○교회 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32분 내지 36분인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과 피해자가 ○○교회 앞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2010. 7. 10. 00:22 내지 같은 날 00:28경이고 그곳에서 머문 시간은 약 24분 내지 18분 정도로 추정되어 피해자의 진술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점, ③ 2010. 7. 10. 00:32경 위병소를 통과한 공소외 1의 진술에 의하면 2010. 7. 10. 00:30경 부대로 출근하면서 ○○교회 앞 주차장(마당) 옆을 지나갔는데 교회 주차장 우측 편에 차가 한 대 정차해 있었고 앞문인지 뒷문인지 모르지만 문이 하나 열려 있었으며, 차량 후미등이 보였고 차량은 검정색 계통이었다고 진술하고 있어 피해자의 진술과 부합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위 장소에서 추행을 당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3.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사정을 포함하여 원심판결 이유, 원심에 이르기까지 채택된 증거와 기록에 나타나는 여러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 진술 중 일부에 한하여 신빙성을 인정하여 유죄 인정의 근거로 채용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원심도 공소사실에 포함된 3회의 강제추행 중 1회째와 2회째의 강제추행은 무죄로 판단하면서 원심판결 제4면에서 제16면에 걸쳐 상세한 이유를 밝혔고, 그 요지는 아래 가., 나.항에서 드는 사정을 포함하여 피해자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이나 경험칙 등에 비추어 믿기 어려움을 지적하는 것으로서 충분히 수긍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원심은 위에서 본 이유를 들어 3회째의 강제추행만을 유죄로 인정하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아도 나머지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근거가 그와 같은 유죄 인정에 있어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가. 공소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추행하였다는 시각은 2010. 7. 9. 23:52경, 다음날 00:17경 및 00:31경이라는 것이고, 원심은 피고인이 술자리를 마치고 피해자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회관에서 출발한 시각은 23:50에서 23:55경 사이이며, 현장검증을 거쳐 △△회관에서 부대 위병소 약 200m 못 미친 인근 ○○교회(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범행의 장소)까지 소요되는 순수 이동시간만도 32분에서 36분에 달한다고 인정하였는데, 위 차량이 관사가 위치한 소속 부대의 정문 위병소를 통과하면서 기록된 시각은 00:47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사건 당시로부터 4일 정도 지난 2010. 7. 13.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휴가를 나온 상태에서 본인이 직접 밤을 새워 작성하였다는 사건경위서(변호인이 피해자 진술을 탄핵하기 위한 증거로 제출하였다. 공판기록 제1권 제276-3면 이하)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이는 비록 유죄의 증거로 제출되지는 않았지만 피해사실과 전후 경위를 상세히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건에 가장 근접한 시기에 피해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임의로 작성한 것이므로, 자신의 경험을 기억 그대로 서술한 것이라면 이후 시간이 지나 이루어진 진술과 비교하여 마땅히 그것이 더 진실에 근접한 내용일 가능성이 높고, 내용의 구체성에 비추어 실제 경험한 것과 다른 사실을 단순한 혼동이나 착각으로 기재하였을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후 그 내용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피해자의 각 진술의 신빙성은 위 사건경위서의 신빙성 유무에 크게 좌우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이 사건경위서에 피고인과 피해자가 함께 있었던 당일의 상황과 이후 2010. 7. 13. 오후 휴가를 얻어 부대를 빠져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시각을 분 단위로 밝혀 가며 매우 상세하게 A4 용지 23장에 작은 활자로 빼곡히 기재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피해자는 23:40경 피고인을 태우고 △△회관을 출발한 이후 수시로 정차한 상태에서 부대 밖 각기 다른 장소에서 3회(1차로 약 45분간, 2차로 약 20분간, 3차로 약 20분간), 그리고 부대로 돌아와 피고인의 관사에 들어가기 전에 1회 등 전부 4회에 걸쳐 피고인으로부터 강제로 추행을 당하였고, 관사에 도착하기 직전 마지막 추행을 당한 시각은 02:38경 직후라는 것이다.

한편, 검찰관의 증거보전신청에 따라 2010. 8. 5. 열린 증인신문기일에서 피해자는 피해사실과 당일의 상황에 관하여 대체로 위 사건경위서의 내용과 같은 취지로 상세히 진술하다가, 변호인이 차량이 부대 위병소를 통과한 시각이 00:47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아느냐는 취지로 묻자 몰랐다고 하면서, 이후 변호인이 이와 같은 위병소 통과 시각과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추궁하자 그때부터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 그때그때 사건경위서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거나 이와는 반대로 사건경위서대로만 해달라고 하는 식으로 일관성 없는 진술을 하였다. 이후 피해자는 2010. 10. 14. 제1심 제3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였으나 범행을 당한 충격으로 그 당시의 상황에 관하여 제대로 기억을 못한다며 신문에 대하여 실질적인 답변을 않은 채 대부분 기억이 안 난다거나 잘 모른다고 진술하고 일부는 사건경위서의 기재대로라는 취지로만 진술하였다. 피해자는 2011. 8. 16. 원심 제4회 공판기일에 다시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이때는 기존의 사건경위서 및 제1심에서의 진술에 추가하여 새로운 사실을 진술할 뿐 아니라 기존의 진술내용 중 모순이 있는 부분을 보충하여 상세히 진술하기까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호인이나 재판부의 신문 중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한 채 사건경위서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고 가장 정확하며 사건경위서에 없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진술하면서 경위서의 내용을 인용하는 진술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피해자의 주요 진술은 증거보전절차에서 작성된 증인신문조서에 기재된 것과 제1심 및 원심 법정에서 한 진술이다. 그런데 그 진술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핵심적인 부분에 관하여 자신이 종전에 작성한 사건경위서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는 것이거나 이를 인용하는 것인데, 그 내용은 피해자가 피고인을 태우고 △△회관을 출발하여 부대 위병소에 도착할 때까지 길어야 50분 남짓(원심이 인정한 것보다 더 늦게 △△회관을 출발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에 불과한 시간이 소요되었고, 순수하게 위 구간의 운행에 소요되는 시간만도 통상 35분 정도는 되어 보이는 객관적 사실과 부합한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 공소사실 부분에 관한 사건경위서의 내용은 각기 다른 장소에 차를 세운 상태에서 3회에 걸쳐 추행을 당하는 과정에서 행하여졌다는 대화와 쌍방의 행위, 그 전후의 사정 등을 눈앞의 상황처럼 지극히 상세하게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술하고 있고, 법정에서도 피해자는 그 내용이 진실하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일이 순수하게 위 구간의 운행에 소요된 시간을 제외한 길어야 15분 안팎의 짧은 시간 동안 모두 일어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피해자는 사건경위서에서 약 3시간 사이에 각기 다른 장소에 정차하여 차량 밖이나 차량 뒷자리 등에서 4회에 걸쳐 추행을 당하였다는 취지로 기재하였고 법정에서도 그 내용을 대체로 유지하여 증언하였는데, 피해자가 부대에 도착한 이후에 당하였다는 마지막 추행은 시간 등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사정과 부합한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어 기소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3회의 추행에 관하여만 차량이 △△회관에서 출발하여 부대 위병소에 이르는 도중에 발생한 것으로 범행시각을 추정하여 공소가 제기되었으나, 시간관계상 그마저도 모두 일어났다고 볼 여지는 없고, 이에 관한 사건경위서와 증거보전절차에서의 진술 및 제1심, 원심에서의 각 피해자 진술 내용을 대조하여 보면 구체적인 부분에서 일관되지 않는 부분도 매우 많다. 이에 원심도 그 중 ○○교회 앞에서 있었다는 3회째의 추행 하나만 실제 일어났던 것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로 판단하였으며, 무죄 부분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시간관계와 진술 내용이 변천되는 과정 및 거기서 드러나는 진술 태도만 보더라도 전반적으로 신빙성이 매우 의심스러운 피해자의 진술 내용 중 굳이 일부만을 취신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뚜렷한 객관적 정황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이어서 살피는 것처럼 그렇게 볼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여러 사정이 쉽게 발견된다.

나.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을 당한 후 어머니와 공중전화로 통화한 다음 인근 산에 올라가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하였고 피고인이 탈 지프차를 고장 내어 사고를 가장하는 방법으로 함께 죽으려고 했다고 하면서 경위와 시각, 방법 등을 사건경위서 등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하였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다.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그 시각에 어머니와 통화한 바 없고 여자친구와 장시간 통화를 하였음이 객관적 자료에 의하여 인정되고, 목을 매었다가 부러졌다는 나뭇가지나 노끈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하여 질문을 받자 노끈을 태운 후 묻었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으로 일관하였고 피해자의 목에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으며, 지프차도 조사하였지만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더구나 위와 같은 취지의 각 피해자 진술의 구체적 내용이 신문에 따라 그 자체로도 믿기 어려운 내용으로 계속하여 달라진다. 예컨대 지프차를 고장낸 것에 관하여 엔진오일이나 브레이크액에 물을 섞었다고만 하다가 이후 차량 보닛을 열고 전선을 칼로 잘랐다고도 하고, 결국에는 전선을 손으로 뽑았으나 피고인을 태우고 운행하여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원래대로 해 두었다고 진술하였는데, 그와 같은 흔적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차량 구조상 해당 전선을 뽑았다면 차량의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피해자의 진술은 내용이 수시로 달라지고 있고, 그것이 객관적 사실에 의하여 전혀 뒷받침되지 않음은 물론 아예 모순되는 부분도 많아 보이는 점 등 기록에 드러나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해자의 위와 같은 진술을 신빙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다. 원심이 유죄의 증거로 든 증인 공소외 1의 증언 내용은 공소사실 기재 3회째 강제추행 무렵 차를 운전하여 ○○교회 앞을 지나가면서 불상의 검정색 승용차가 후미등을 켠 채 위 교회 앞에 주차되어 있었고 피해자 진술과 같이 문 한쪽이 열려있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것이 전부이다. 이와 같은 진술만으로 위 증인이 목격하였다는 승용차가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타고 있었던 차량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설령 같은 차량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실이 그때 피고인이 피해자를 추행하였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아니다.

라. 현장검증조서의 각 기재는 △△회관에서 출발하여 부대에 이르기까지의 경로 및 운전에 소요된 시간, 도로 현황 등에 관한 내용으로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제추행 하였다는 점을 직접 증명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앞서 본 것처럼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해병대 제2사단 헌병대에 대한 사실조회회보서는 앞서 본 것처럼 공소외 1이 ○○교회 앞에서 승용차를 목격한 것이 사건 당일인지 여부에 관한 것에 불과하다.

마.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취지의 의사 공소외 2가 작성한 상해진단서도 증거로 제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진단서는 피고인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하였다는 피해자 진술이 사실임을 전제로 한 것에 불과하므로 그 기재만으로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하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피해자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피고인의 공소사실 기재 범행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바. 피해자의 이모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운전병으로 배치되기도 전으로서 이 사건 발생일 약 1주 전인 2010. 7. 3.에 이미 상담기관에 부대장에 의한 강제추행 피해에 관한 전화상담을 한 바 있었다는 자료가 기록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공판기록 제1권 제258면), 피해자의 어머니는 이 사건의 진정 과정에 관여하였으면서도 이 사건 공판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신문을 받으면서는 피해자로부터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 사건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전해 들었는지에 관하여 분명한 진술을 하지 못하였다.

사. 이 사건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운전병으로 배치된 지 며칠 만에 피해자의 어머니와 이모부가 피해자가 강제추행을 당하였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고 곧이어 피해자가 앞서 본 사건경위서를 위 위원회에 작성·제출하여 위 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함으로써 표면화되었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 사건경위서의 내용은 시간관계 등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그대로 믿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것만 보면 실제 경험하지 않은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상세하고 구체적이어서 매우 신빙성이 높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다가 해당 부대 내에서 위와 같은 경위에 의하여 사건의 진상 파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위 위원회 소속 조사관들이 전격적으로 부대를 방문하여 조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은 형사소송법상 보장된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만취한 상황에서 피해자 주장과 일부 일치하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진술을 하였으며(당시 작성된 피고인의 진술이 기재된 서류들은 이 사건 공판과정에서 모두 증거능력이 부정되었다), 위 위원회의 조사 얼마 후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어 크게 보도되고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피고인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피고인은 자신에 대한 혐의를 알게 된 후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사죄한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피해자와 합의를 추진하며 2,000만 원을 공탁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공판과정에서 사건 당시 술에 만취하여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혹시 자신이 그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고 어떤 이유로든 피해자가 부대 생활에서 고통을 겪은 것 같았으며 이미 사건이 문제가 되어 알려진 이상 해병대의 명예를 위하여 조속히 피해자와 합의하고 전역하는 것이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하여 그와 같이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이와 같은 피고인의 반응이 다소 석연치 않다거나 수긍하기 어렵다고 보이는 점이 없지 않다 하여 그것만으로 일부 공소사실에 한해서라도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위와 같은 사건 전개과정과 주변 및 사회 분위기, 계급 등 군대 내 피고인의 지위를 감안하여 보면 피고인이 무고함에도 자포자기의 위축된 심리상태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었다고 못 볼 바 아니다.

4.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살핀 사정만 보아도 위와 같은 피해자의 진술 등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에는 현저히 부족하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거기에는 형사소송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합리적인 자유심증의 범위와 한계를 벗어나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 있다 할 것이고, 이는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5.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 이 판결에는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대법관 김창석(재판장) 양창수 박병대(주심) 고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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