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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도1902 판결
[살인][공2011하,1352]
판시사항

[1] 살인죄 등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형사재판에서 간접증거의 증명력 및 간접사실의 증명 정도

[2] 과학적 증거방법이 사실인정에서 상당한 정도의 구속력을 갖기 위한 요건

[3] 피고인이 자신의 처(처)를 교통사고를 가장하여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도로 옆에 설치된 대전차 방호벽의 안쪽 벽면을 차량의 우측 부분으로 들이받은 후, 재차 차량 앞범퍼 부분으로 위 방호벽 중 돌출된 부분의 모서리를 들이받아 그를 살해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되었는데, 피고인이 범행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고 달리 그에 관한 직접증거가 없는 사안에서, 피고인에게 살인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오해 또는 논리와 경험법칙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러한 유죄 인정에는 공소사실에 대한 관련성이 깊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므로, 간접증거에 의하여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을 인정할 때에는 증명이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하나하나의 간접사실 사이에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 간접사실이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2]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방법은 전제로 하는 사실이 모두 진실인 것이 입증되고 추론의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하여 오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야 법관이 사실인정을 하는 데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가진다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 증거방법이 전문적인 지식·기술·경험을 가진 감정인에 의하여 공인된 표준 검사기법으로 분석을 거쳐 법원에 제출된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다는 것이 담보되어야 한다.

[3] 피고인이 자신의 처(처)인 피해자를 승용차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하던 중 교통사고를 가장하여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도로 옆에 설치된 대전차 방호벽의 안쪽 벽면을 차량 우측 부분으로 들이받아 피해자가 차에서 탈출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이하 ‘1차 사고’라 한다), 사고 장소로 되돌아와 다시 차량 앞범퍼 부분으로 위 방호벽 중 진행방향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의 모서리를 들이받아(이하 ‘2차 사고’라 한다)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되었는데, 피고인이 범행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고 달리 그에 관한 직접증거가 없는 사안에서, 제1심과 원심이 들고 있는 간접증거와 그에 기초한 인정 사실만으로는 위 공소사실 인정의 전제가 되는 ‘살인의 범의에 기한 1차 사고’의 존재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피고인에게 살인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객관적·과학적인 분석을 필요로 하는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법칙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손지열 외 5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경과한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들의 각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에 대하여 판단한다.

1. 증거능력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가. 수사기관이 헌법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 또한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고, 다만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형사소송법이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9도14376 판결 등 참조).

나. 먼저 이 사건 사고일인 2008. 11. 11.부터 3개월 가까이 경과한 2009. 2. 2.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대전차 방호벽의 안쪽 벽면에 부착된 철제구조물(이하 ‘이 사건 철제구조물’이라 한다)에서 발견된 강판조각(이하 ‘이 사건 강판조각’이라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이하 ‘국과수’라 한다) 소속 감정인 공소외 1의 감정 과정에서 이 사건 사고 차량인 (차량번호 생략) 그랜저TG 승용차(이하 ‘이 사건 차량’이라 한다) 우측 앞 펜더에서 탈거된 보강용 강판(이하 ‘이 사건 보강용 강판’이라 한다) 및 이 사건 차량에서 채취된 페인트의 증거능력에 대하여 살펴본다.

원심 및 제1심의 각 판결이유와 그 채택 증거들 및 법령의 규정에 의하면, 이 사건 강판조각은 형사소송법 제218조 에 규정된 유류물에, 이 사건 차량에서 탈거 또는 채취된 이 사건 보강용 강판과 페인트는 위 차량의 보관자가 감정을 위하여 임의로 제출한 물건에 각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강판조각과 보강용 강판 및 차량에서 채취된 페인트는 형사소송법 제218조 에 의하여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으므로 위 각 증거의 수집 과정에 영장주의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 할 수 없고, 나아가 이 사건 공소사실과 위 각 증거와의 관련성 및 그 내용 기타 이 사건 수사의 개시 및 진행 과정 등에 비추어, 비록 상고이유의 주장처럼 위 각 증거의 압수 후 압수조서의 작성 및 압수목록의 작성·교부 절차가 제대로 이행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거나 앞서 본 위법수집증거의 배제법칙에 비추어 그 증거능력의 배제가 요구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원심 및 제1심의 각 판결이유와 그 채택 증거들 및 법령의 규정에 의하면, 감정인 공소외 1이 이 사건 강판조각이 이 사건 보강용 강판에서 분리된 것인지 여부를 감정하는 과정에서 이를 두드려 펴 그 형상에 변형을 가한 행위는 형사소송법 제173조 제1항 에 따라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물건의 파괴로는 볼 수 없고 임의수사인 감정에 수반되는 행위이며, 위 페인트의 성분을 비교분석한 행위 역시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물건의 파괴로는 볼 수 없고 임의수사인 감정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그 이유 설시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으나 결론에 있어서는 정당하고, 이에 관한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 이와 같이 위 각 증거가 증거능력 없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위 각 증거를 비교 분석한 감정인 공소외 1 작성의 2009. 2. 9.자 감정서 역시 위법절차에 의하여 수집된 증거에 기하여 얻어진 2차 증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2항 , 제1항 에 의하면 감정서는 감정인의 자필이거나 그 서명 또는 날인이 있고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 감정인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된 때에 증거능력이 부여되는데, 기록에 의하면 위 감정서에는 감정인 공소외 1의 기명날인이 있고, 감정인 공소외 1이 제1심 제5회 공판기일에서 작성명의가 진정하고 감정인의 관찰대로 기술되었다고 진술함으로써 그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되었다 할 것이므로, 위 감정서는 그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따라서 위 감정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 역시 그 이유 설시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으나 결론에 있어서는 정당하다. 상고이유에서 내세우는 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7도7257 판결 은 압수물인 디지털 저장매체로부터 출력된 문건의 증거능력에 관한 것으로 감정서 자체의 증거능력에 관한 이 사건과는 사안을 달리하므로, 여기서 원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다.

2. ‘1차 사고’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가.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도8675 판결 참조). 한편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러한 유죄 인정에 있어서는 공소사실에 대한 관련성이 깊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므로 ( 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도10754 판결 참조), 간접증거에 의하여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그 증명이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그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은 그 사이에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10895 판결 참조). 나아가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방법은 그 전제로 하는 사실이 모두 진실임이 입증되고 그 추론의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하여 오류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야 법관이 사실인정을 함에 있어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가진다 할 것인바 ( 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7도1950 판결 , 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8도8486 판결 등 참조), 이를 위해서는 그 증거방법이 전문적인 지식·기술·경험을 가진 감정인에 의하여 공인된 표준 검사기법으로 분석을 거쳐 법원에 제출된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되어야 한다 (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도14772 판결 참조).

나. 원심은, 피고인은 2008. 11. 11. 20:00경부터 같은 날 21:40경까지 사이에 처인 피해자를 조수석에 태우고 이 사건 차량을 운전하여 양주시 장흥면 (이하 생략)에 있는 편도 2차선 도로의 2차로를 구파발 방면에서 양주 방면으로 진행하던 중 그동안 피해자와 겪은 갈등과 차에서 대화 중 피해자에게 생긴 악감정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도로 옆에 설치된 대전차 방호벽의 안쪽 벽면을 위 차량의 우측 부분으로 들이받아 당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던 피해자가 전신에 큰 충격을 받아 차에서 탈출하거나 피고인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이하 ‘1차 사고’라 한다), 재차 사고를 일으켜 그 충격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되, 마치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한 것처럼 가장하기로 마음먹고, 같은 날 21:40경 위 차량을 운전하여 알 수 없는 경로로 위 방호벽 부근 지점으로 되돌아 온 다음 위 차량의 앞범퍼 부분으로 위 방호벽 중 진행방향의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의 모서리를 들이받아(이하 ‘2차 사고’라 한다), 피해자가 이 충격과 앞서의 충격으로 인해 전신에 다발성 손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내용의 이 사건 살인의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유죄를 인정하였다.

즉 원심은, 그 채택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판시 사정들을 종합하여, 이 사건 차량의 우측 앞범퍼 부분으로 대전차 방호벽의 우측 입구 벽면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2차 사고 발생 전에 이 사건 차량의 우측 앞 펜더 부분으로 위 방호벽 안쪽 벽면을 강하게 스치듯 충격하고, 그로 인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더 이상 바른 자세로 앉아 있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가함과 아울러 위 방호벽 안쪽 벽면에 설치된 이 사건 철제구조물에 이 사건 차량 우측 앞 펜더의 보강용 강판조각이 끼어들어가면서 위 철제구조물에 의하여 차량의 우측 앞 펜더 부분부터 우측 앞 문짝 부분까지 찢어지는 내용의 1차 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며, 이에 비추어 1차 사고 당시부터 피고인에게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되고 그 고의가 2차 사고까지 계속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1차 사고가 발생한 직후 피고인이 같은 장소에서 재차 이 사건 차량의 조수석 정면으로 방호벽 모서리를 들이받는 2차 사고를 야기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있다면, 이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매우 이례적인 형태의 이 사건 범행 및 그 범의를 직접증거도 없이 인정하기 위해서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원심이 채택한 증거와 공소사실과의 관련성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함은 물론, 그 중 과학적 분석이 필요한 증거에 대해서는 그 채취·보관·분석 등의 과정에 하자가 없음이 증명되어야만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차 사고의 발생사실 자체를 다투면서 현장에 남은 사고의 흔적들은 2차 사고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피고인의 일관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2회에 걸친 의도적인 사고의 발생을 인정한 원심이 그 판단의 근거로 든 증거방법의 과학적 합리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수긍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1) 우선 2009. 2. 2. 이 사건 강판조각이 이 사건 철제구조물에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감정인 공소외 1의 지시에 의하여 경찰관 공소외 2가 찍었다고 하는 사진(이하 ‘강판 끼어있음 사진’이라 한다)에 관하여 보건대, 위 사진으로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부터 이 사건 강판조각이 이 사건 철제구조물에 끼어 있었음이 증명된다면 위 공소사실에 대한 유죄의 증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사고 직후에 촬영된 사진들 중 이 사건 철제구조물이 나온 사진들의 컴퓨터 파일을 확대·분석한 국과수 소속 감정인 공소외 3, 4 작성의 2010. 11. 16.자 감정서에는 이 사건 철제구조물과는 구분되는 ‘회색계통 물체’가 식별된다는 감정결과만 있을 뿐, 그 모양이 ‘강판 끼어있음 사진’상의 강판조각과 일치함을 인정할 만한 다른 객관적 자료는 없다. 그럼에도 원심이 육안에 의한 비교 관찰만을 근거로 위 ‘회색계통 물체’가 ‘강판 끼어있음 사진’상의 이 사건 강판조각과 매우 유사하다고 본 것은, 증거의 분석 과정에 과학적 근거가 없어 객관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강판 끼어있음 사진’으로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부터 이 사건 강판조각이 이 사건 철제구조물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2) 또한 이 사건 강판조각이 이 사건 보강용 강판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증거로는 감정인 공소외 1이 작성한 위 감정서의 감정결과가 있지만, 위 감정결과는 이 사건 강판조각의 일부 파단면을 이 사건 보강용 강판의 파단면에 비교하여 보거나 이 사건 강판조각과 이 사건 보강용 강판을 두들겨 펴서 상호 크기를 비교하는 육안 관찰의 방법에 따른 것일 뿐, 양자의 성분 비교 등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과학적 분석과정을 전혀 거치지 아니한 것임이 기록상 명백하다. 따라서 위 감정결과 역시 그 대상인 증거의 분석 과정에 수긍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나아가 이 사건 차량 우측면의 긁힌 흔적에 묻은 적색 페인트가 이 사건 철제구조물에 도색된 페인트와 같은 페인트이므로 부수적으로나마 1차 사고의 발생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 원심판단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감정인 공소외 1이 작성한 위 감정서의 감정결과가 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그 감정결과에 적외선 흡수 스펙트럼 실험 결과가 첨부되어 있지도 않아 어떤 근거에서 이 사건 차량에 묻은 페인트와 이 사건 철제구조물에 도색된 페인트의 적외선 스펙트럼 결과가 유사하다고 판단한 것인지 알 방법이 없다.

한편 감정인 공소외 1이 작성한 국과수 서부분소장 명의의 사실조회 답변서 회보에서 페인트의 스펙트럼 양상이 ‘유사하다’는 것은 다른 물질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설명하기는 하지만, 위 회보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처럼 페인트가 쓸려 묻은 경우에는 철제구조물 페인트의 도막층이 파괴되어 차량의 페인트와 혼재되면서 철제구조물에 묻은 매연 등 이물질도 섞여 묻는 등 페인트의 상태가 불균일하게 되고 이러한 이유로 적외선 스펙트럼이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므로, 단지 육안으로 관찰되는 색상과 적외선 흡수 스펙트럼의 양상이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페인트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는 상고이유의 주장처럼 이 사건 차량 우측면에 적색의 긁힌 자국 외에 황색의 긁힌 자국도 있음에도 위 황색 페인트에 대하여는 방호벽에 도색된 황색 페인트와 비교분석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이상 더욱 그러하다.

(4) 한편 원심은, 이 사건 차량의 우측 앞 펜더, 우측 앞·뒤 문짝, 우측 뒷바퀴 휠 하우스 등에 생긴 가로방향의 긁힌 흔적은 차량이 위 방호벽에 충돌하여 압궤되기 전에 발생된 것으로 보이고, 차량 우측 앞 펜더 부분부터 우측 앞 문짝 끝부분까지 찢겨진 손상 부위는 돌출된 물체에 의한 가로방향의 직접적인 접촉 없이는 발생하기 어려워 보이며, 차량의 우측 앞 문짝에 가로방향으로 다소 강하게 두 줄로 긁힌 흔적은 그 높이가 이 사건 철제구조물의 돌출한 두 곳의 높이와 거의 일치해 보이는 등의 사정을 들어 이 사건 차량 우측면의 긁힌 흔적과 손상이 2차 사고 전에 위 방호벽 안쪽 벽면과 이 사건 철제구조물을 충격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공소외 2와 공소외 1의 제1심 법정진술에 의하면, 이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이 사건 차량이 최종 충격 전에 위 방호벽 전방의 옹벽 부분을 스치며 주행하다 조수석 후사경 부분이 위 옹벽에서 튀어나온 황색 알람등을 충격하며 깨졌고 차량 측면 긁힘도 이런 과정에서 옹벽과의 충격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으로 이 사건의 경위를 파악한 바 있고, 증거기록 27면에 첨부된 사진에 의하면, 위 방호벽 전방 옹벽 주위에서 깨진 알람등 파편으로 보이는 물체와 이 사건 차량 우측문의 가드가 발견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증거기록 177면부터 186면까지 사이에 첨부된 사진들에 의하면, 비록 위 방호벽 전방 옹벽이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나 차량의 롤링 운동과 피칭 운동 등으로 인하여 이 사건 차량 우측 앞 펜더 부분이 옹벽을 충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위에서 본 이 사건 차량의 우측 부위에 발생한 긁힌 흔적과 찢긴 손상만으로는 2차 사고에 선행하여 1차 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증명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이 사건 차량이 위 방호벽 전방의 옹벽과 알람등에 충돌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흔적 등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5) 끝으로 원심은, 피해자가 이 사건 차량이 위 방호벽 우측 입구 벽면을 들이받고 정지한 사고 직후 운전석 옆 좌석 밑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안면부와 두부에 에어백이나 전면 유리창에 충격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 사건 차량이 위 방호벽에 충격되어 정지한 2차 사고 이전에 피해자가 이미 좌석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 1차 사고 발생의 증거가 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의 논리대로 피해자가 당초 정상적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1차 사고로 정신을 잃고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충격을 받았다면,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해자의 안면부나 두부 등에 충격의 흔적이 생겼어야 할 터인데, 그럼에도 그 당시 위와 같은 충격의 흔적이 발생하지 아니한 사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사고가 2회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2차 사고 시에 그러한 충격의 흔적이 발생하지 아니한 사정만을 그 판단의 근거로 삼은 원심의 추론은 합리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부검감정서를 작성한 국과수 소속 감정인 공소외 5의 제1심 법정진술에 의하면 이 사건 사고로 피해자의 신체에 발생한 손상은 한 번의 충돌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 부분 원심판단 역시 관련 증거의 객관적·과학적 분석에 있어 합리적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

라. 앞서 본 법리와 위 각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살인의 범행을 저지른 바가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고 달리 그에 관한 직접증거도 없는 이 사건에서, 제1심과 원심이 들고 있는 간접증거와 그에 기초한 인정 사실만으로는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 인정의 전제가 되는 살인의 범의에 기한 1차 사고가 존재하였음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여러 의문점에 대하여 좀 더 면밀히 심리하여 본 다음, 그에 대한 합리적 해명이 있은 후에라야 1차 사고의 발생 및 이를 전제로 하는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객관적·과학적인 분석을 필요로 하는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법칙을 위반하여 합리적인 자유심증의 범위와 한계를 넘어서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고, 이는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3.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능환(재판장) 이홍훈 민일영 이인복(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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