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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2012. 7. 18. 선고 2012고합360 판결
[살인·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 항소[각공2012하,1095]
판시사항

[1]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에 관한 형사재판에서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 및 시체가 발견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살인죄를 인정하기 위한 증명 정도

[2] 동업관계에 있던 피해자 갑을 구덩이에 묻어 살해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갑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에 관한 직접증거도 없는 사안에서, 제반 사정에 비추어 갑은 일정 시점에 사망하였다고 보아야 하고, 피고인에게서 ‘갑을 살해하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인 을의 신빙성 있는 전문진술 및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간접사실을 종합할 때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한 사례

판결요지

[1]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고,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아니하였더라도 간접증거를 상호 관련하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살인죄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유죄를 인정할 때에는 공소사실에 대한 관련성이 깊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또한 시체가 발견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살인죄의 죄책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사실이 추가적·선결적으로 증명되어야 함은 물론, 그러한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2] 피고인이 동업관계에 있던 피해자 갑으로부터 투자금을 갚지 않으면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격분하여 그의 급소를 가격하여 쓰러뜨린 후 깊은 구덩이에 밀어 넣은 다음 굴착기를 이용하여 다량의 흙을 부어 묻음으로써 질식사하게 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되었는데,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갑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에 관한 직접증거도 없는 사안에서, 갑의 평소 생활태도, 가족 관계, 행적 등을 종합할 때 갑은 일정 시점에 사망하였다고 보아야 하고, 피고인의 전(전) 동거녀로서 피고인에게서 ‘갑을 살해하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인 을의 전문진술은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진 것으로서 증거능력이 인정될 뿐 아니라, 을의 법정 진술 내용이나 태도, 을이 피고인 범행을 신고한 경위, 피고인에게서 위와 같은 말을 들은 경위, 피고인에게서 들은 범행 동기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신빙성이 있으며, 그 밖에 피고인이 갑 실종 이후 그의 옷가지 등 소지품을 불태운 점, 피고인이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였던 갑을 실종 이후 전혀 찾지 않은 점, 피고인이 을에게 범행 사실을 털어놓은 후 을과 함께 급히 중국으로 떠난 점 등 을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여러 간접사실을 종합할 때,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유죄를 선고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검사

박철완 외 1인

변 호 인

변호사 유현재 외 1인

주문

피고인을 징역 13년에 처한다.

범죄사실

1. 살인

피고인은 2007. 10.경 용인시 일대에서 일용직 중장비 기사인 속칭 ‘스페어기사’로 일하면서 같은 일에 종사하는 피해자 공소외 1(당시 31세)을 만나 친하여졌다. 피고인은 2008. 2.경 피해자와 공사현장에 스페어기사를 공급하는 업체인 속칭 ‘스페어사무실’을 동업으로 운영하기로 합의하고, 2008. 3. 24.부터 2008. 4. 16.까지 피해자로부터 총 800만 원을 스페어사무실 운영자금 명목으로 교부받았으나 위 사업은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다시 피해자에게 ‘불법적으로 수집한 한국 여권을 한국 입국을 희망하는 중국 조선족 등을 상대로 판매하는’ 여권판매 사업을 동업하되 이 사업에 필요한 승용차 구매자금을 피해자가 부담하라고 제안하여 승낙을 받은 후, 2008. 4. 26.경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540만 원에 구입하면서 그 대금 중 490만 원을 피해자 명의의 체크카드로 결제하였다. 하지만 위 여권판매 사업조차 자금조달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한편 피해자는 피고인과 어울려 다니면서 전처인 공소외 2에게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공소외 2와 불화를 겪다가 2008. 4. 22. 협의이혼하였다.

피고인은 2008. 4. 28.경부터 2008. 4. 30.경까지 사이 불상 시각에 용인시 또는 평택시 소재 물류창고 기초공사 현장에서 피해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피해자로부터 그동안 투자한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 당시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후 보호관찰 중에 있던 피고인은, 친한 사회 동생인 피해자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주먹으로 피해자의 급소를 가격하여 쓰러뜨리고, 그 충격으로 피해자가 정신을 잃은 틈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다음 피해자를 불상의 경위로 만들어진 깊은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이후 피고인은 정신을 차린 피해자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굴착기를 이용하여 다량의 흙을 피해자 위에 부어 피해자를 묻음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질식으로 사망하게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2.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

가. 2012. 1. 6.자 무면허운전

피고인은 2012. 1. 6.경 안성시 공도읍 진사리 (지번 1 생략) 소재 피고인의 집 부근 도로에서 자동차운전면허 없이 (차량번호 생략) 오피러스 승용차를 운전하였다.

나. 2012. 2. 26.자 무면허운전

피고인은 2012. 2. 26.경 안성시 공도읍 진사리 (지번 1 생략) 소재 피고인의 집 부근 도로에서 자동차운전면허 없이 (차량번호 생략) 오피러스 승용차를 운전하였다.

증거의 요지

1. 피고인의 일부 법정진술

1. 증인 공소외 3, 2, 4의 각 법정진술

1. 피고인에 대한 일부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1. 공소외 5, 6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1. 수사보고( 피고인이 소유한 차량 자동차등록원부 관련), 수사보고(피해자 공소외 1의 실종신고내역서 첨부 관련), 수사보고(피해자 공소외 1의 출입국현황조회 첨부 관련), 수사보고(피해자 공소외 1 휴대전화 직권해지 관련), 수사보고[피의자 피고인, 피해자 공소외 1 및 전처 차량소유(해지) 관련], 수사보고(피해자 공소외 1 여권발급기록조회), 수사보고(피의자 피고인이 거주하였던 ‘ ○○○○빌’ 관련)

1. 회신자료(농협비씨체크), 회신자료(농협체크카드), 운전면허결격사유자 처리의뢰, 건강보험료 급여내역, 보호관찰상황서, 피의자·피해자 범행시점 전후 행적(계좌거래내역)분석표, 운전면허조회-취소, 피고인의 여권발급신청서 사본 및 여권발급기록조회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및 형의 선택

형법 제250조 제1항 (유기징역형 선택), 도로교통법 제152조 제1호 , 제43조 (무면허운전의 점, 징역형 선택)

1. 경합범가중

형법 제37조 전단, 제38조 제1항 제2호 , 제50조 (위 각 죄의 장기형을 합산한 범위 내에서)

양형의 이유

이 사건 살인 범행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고, 피해자의 유가족은 피해자의 생사도 모른 채 4년을 보냈으며, 피해자를 잃은 유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임이 충분히 예상된다(피해자의 아버지는 피해자 실종 후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가 법정에서 표출될 때마다 주장을 덧붙이고, 순간순간의 임기응변으로 어떻게 해서든 처벌만 모면하려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관들에게 가혹행위와 욕설, 심지어 폭행을 당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피고인이 당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고 변호인과 함께 조사를 받은 바 있는 점, 변호인이 그 당시 경찰관들로부터 피고인과의 자유로운 면담을 제지당하였다거나, 경찰관의 가혹행위, 욕설, 폭행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바 없는 점, 그 밖에 이 법정에서의 피고인과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관들의 태도를 비교해 보면, 피고인의 위와 같은 주장은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허위인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이 사건 범행은 살아있는 피해자를 흙으로 묻어 생매장한 것으로서 범행수법이 대범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피해자는 피고인을 믿고 따랐던 친한 후배로서 피고인과의 사업 때문에 처와 이혼하고 여관에서 생활하면서까지 피고인에게 사업자금을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피고인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살인범죄 양형 기준에 따라 보통동기살인의 기본영역(권고 형량 범위: 9년~13년) 범위 내에서 다수 배심원의 권고에 따라 주문과 같은 형을 선고한다.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에 관한 판단

1. 주장의 요지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사망하였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2. 판단

가. 쟁점

이 사건은, 피해자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증거가 없으므로,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피고인의 피해자 살해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에 의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있고,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아니하였더라도 간접증거를 상호 관련하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살인죄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할 것이나, 그러한 유죄 인정에 있어서는 공소사실에 대한 관련성이 깊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또한 시체가 발견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 대하여 살인죄의 죄책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사실이 추가적·선결적으로 증명되어야 함은 물론, 그러한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도10754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아래에서는 피해자가 사망하였는지,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인지 차례로 살펴본다.

나. 피고인과 피해자의 사건 당시 행적

이 법원이 채택·조사한 증거들, 특히 피고인 및 피해자의 금융거래자료에 의하여 인정되는 2008. 3.경부터 2008. 5.경까지 피고인 및 피해자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본문내 포함된 표
일시(2008년) 행적
3. 24.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100만 원 송금
4. 11.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400만 원 송금함
4. 16.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300만 원 송금함
4. 17. 피해자 여권신청
4. 20. 공소외 4가 피해자(전처 공소외 2)에게 50만 원 송금
4. 21. 피해자 여권 발급받음
4. 22. 피해자가 공소외 2와 협의이혼 신고함
4. 25. 10:00 피해자가 용인농협 남동지점 계좌(계좌번호 생략) 개설함
4. 25. 11:40 피해자가 공소외 5에게 스타렉스 차량 매도하고 계약금 670만 원 받음
4. 26. 00:26 피고인과 피해자가 △△△△나이트 출입
4. 26. 02:21 피해자 ▽▽▽여관 숙박
4. 26. 13:00 피고인이 피해자의 위 농협계좌에서 공소외 8 계좌로 490만 원 지급하고, 자신의 계좌에서 50만 원 지급하여 다이너스티 차량 구입
4. 28. 피해자가 휴대전화 번호변경 및 신규개설
4. 29. 15:10경 피고인이 다이너스티 차량등록하고, 정원상사에서 가스충전
5. 2. 18:20 피고인이 공소외 4와 아들 공소외 9를 데리고 아산에 내려가 □□모텔에 묵음
5. 6. 피고인 여권신청
5. 9. 피고인 여권발급
5. 14. 피고인이 공소외 8에게 다시 다이너스티 차량을 460만 원에 판매, ○○○○빌 원룸 퇴거 보증금 2,053,550원 반환받음
5. 15. 피고인, 공소외 4가 중국출국

다. 피해자의 사망 여부

먼저, 현재까지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아니하였으므로 피해자가 사망하였는지에 관하여 살펴본다.

이 법원에서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① 피해자는 1996년 20세의 어린 나이에 공소외 2와 결혼하여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고, 2008. 3.경까지 굴착기 기사로 일하면서 처와 자녀를 부양해 왔다.

② 피해자는 2007. 10.경 피고인을 만난 후, 갖고 있던 굴착기를 매각하고 피고인과 함께 ‘스페어사무실’을 운영한다고 하면서 공소외 2와 불화를 겪다가, 2008. 4. 22. 공소외 2와 협의이혼 신고를 마치고 자녀들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공소외 2에게 자녀들 양육비로 월 1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고 언제든지 자녀들을 보기로 했으며, 이혼한 후에도 공소외 2의 부탁으로 막내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등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지는 아니하였다.

③ 피해자는 부모, 형제, 친구들 사이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2008. 4. 16. 조카 돌잔치에 참석하여 모친 공소외 10을 양평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피해자가 2008. 4. 말경 실종될 때까지 부모, 형제,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적이 없었다.

④ 피해자는 2008. 4. 17. 여권을 신청하고 2008. 4. 21. 여권을 발급받았으나, 해외로 출국한 기록이 없다.

⑤ 피해자는 공소외 2와 이혼한 후에는 피고인의 집 근처 여관에서 투숙하여 생활해 왔으며 피고인과 함께 ‘스페어사무실’을 운영하거나 위조여권 판매사업을 할 예정이었고, 2008. 4. 28. 새로운 휴대전화에 가입하였다.

⑥ 그런데 피해자는 2008. 5.경부터 현재까지 4년이 넘도록 부모, 형제, 자녀, 친구 등 누구와도 연락이 닿은 바 없고,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의료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이용한 바 없다.

위 인정 사실에서 알 수 있는 피해자의 평소 생활태도, 가족들과의 관계, 행적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2008. 4. 28.경 사망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피고인은 2008. 4.경 피해자와 위조여권 판매사업을 동업하기로 하였고 피해자에게 위조 중국 여권을 만들어 주었으므로 피해자가 위조 중국 여권을 가지고 중국으로 출국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믿기 어렵다. 우선 피고인도 인정하다시피 피해자는 중국에 혼자 가서 위조여권 판매사업을 할 수 없다. 피해자는 중국어를 할 줄 모르며, 당시 가진 돈도 없었고, 중국에서 여권판매 사업을 하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였다. 피해자가 2008. 4. 21. 본인의 여권을 발급받고도 이를 이용하지 않고 피고인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고 위조 중국 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출국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만약 피해자가 중국에서 본인의 여권을 판매하려고 했다면 당연히 본인의 여권에 중국으로 출국한 기록이 남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피해자가 중국으로 출국한 기록이 없는 여권을 중국에서 판매한다면 이를 매입한 사람은 위 여권을 이용하여 한국으로 입국이 어려울 것이 명백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피해자가 출국기록이 남지 않는 여권을 중국에서 팔고, 판매상이 위 여권을 한국으로 들여와 이를 한국에서 판매하거나, 태국, 라오스, 미얀마 등에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역시 쉽게 이해되지 아니한다.

라. 피고인의 살해 여부

1) 다음으로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공사현장에서 피해자를 구덩이에 묻어 살해하였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이에 관하여 피고인으로부터 피해자를 구덩이에 묻어 살해하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공소외 4의 전문진술 외에 달리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증거인 공소외 4의 전문진술의 증거능력과 신빙성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를 뒷받침하는 간접사실에 관하여 살펴본다.

2) 공소외 4 전문진술의 증거능력

전문진술은 원래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 규정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으나, 피고인이 아닌 자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이 피고인의 진술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인 때에는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는바(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 ), 여기서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진 때’라 함은 그 진술을 하였다는 것에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고, 그 진술 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대법원 2004. 4. 27. 선고 2004도482 판결 등 참조). 그런데 공소외 4는 피고인과 동거할 당시인 2008. 5. 2. 아산에 있는 □□모텔에서 피고인의 아들 공소외 9를 재우고 단둘이 있는 가운데 피고인으로부터 공소사실 내용을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당시 상황은 피고인의 진술 내용에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소외 4의 전문진술은 증거능력이 있고, 다만 진술의 신빙성이 문제된다.

3) 공소외 4 전문진술의 신빙성

공소외 4의 피고인으로부터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전문진술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빙성이 있다.

① 먼저 공소외 4는 이 법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공개된 법정에서 배심원들이 있는 가운데 선서를 하고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장시간 동안 검사의 주신문과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답하였는바, 진술 내용뿐만 아니라 증인의 모습이나 태도, 말투, 표정, 진술의 뉘앙스 등에 비추어 전반적으로 신빙성이 있다.

② 공소외 4가 신고한 경위를 살펴보면, 공소외 4는 2010. 11.경 피고인과 헤어지고 난 후 2011. 2.경 서울지방경찰청에 ‘피고인이 공소외 1을 죽였다’는 내용으로 처음 제보하였고, 2011. 9. 23. 작성한 자필 우편조서에서는 ‘피고인과 함께 일했던 공소외 1이 피고인보다 2~3살 어렸고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자녀가 3명 있었다’고 특정하였는데, 2008. 5. 15. 피고인과 출국한 후 한국에 입국한 적 없는 공소외 4로서는 피해자의 생사 여부나 실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음에도 위와 같이 제보하였다는 점에서 이를 허위로 꾸몄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수사기관도 피해자의 실종신고 내역, 가족 등 주변인 조사, 출입국 조회, 각종 건강보험 사용내역, 휴대전화 통화내역, 금융거래내역 등을 조사하고 나서야 2008. 4. 이후 대한민국 내에서 피해자의 행적이 전혀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③ 공소외 4는 피고인으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들은 경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2008. 4. 말경 어느 날 피고인은 1시간 정도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별말이 없고 표정이 어두웠으며 평상시와 달랐다. 피고인은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고 갑자기 중국에 가서 살자고 하였다. 피고인이 중국에 가서 할 일도 없고 공소외 4 본인은 현재 불법체류 중이므로 중국에 가면 한국에 다시 나오지 못하므로 갈 수 없다고 설득했다.

그 다음날(처음 우편조서를 작성할 때에는 며칠 뒤라고 진술하기도 하였다)인 2008. 5. 2. 오후에 일을 나갔던 피고인이 갑자기 전화하여 아들 공소외 9를 학교에서 조퇴시키고 아산 온천에 놀러 가자고 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아산에 있는 □□모텔을 예약하고 피고인과 아산으로 놀러 갔다. 아산 □□모텔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노래방에서 놀고 온 후, 공소외 9가 자고 있는데 피고인이 다시 중국으로 가서 살자고 하였다. 그래서 왜 또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자,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공사현장에서 피해자를 묻어 살해하였다고 말하였다. 왜 죽였느냐고 물어보니, 피해자와 스페어사무실을 만들어 사업하려고 했고 피해자가 차도 팔고 돈을 준비해 주었는데 갑자기 사업을 하지 않겠다, 돈을 돌려 달라고 했고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여 집행유예기간 중이고 수배되어 있어 겁을 먹고 그렇게 했다고 하였다.”

공소외 4의 위 진술은 내용이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피고인이 이례적으로 학교에 등교한 아들 공소외 9까지 조퇴시키고 갑자기 아산으로 놀러 간 점, 피고인이 아산에 가기 전에 일을 그만두고 그 뒤로 일하지 않았으며 아산에 다녀온 후에는 중국으로 떠날 준비만 서두른 점, 피고인이 2005. 9.경부터 이미 약 3년간 공소외 4와 동거해 왔고, 중국으로 도피하려고 마음먹은 피고인으로서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공소외 4의 도움이 절실했으며, 중국으로 가지 않으려는 공소외 4를 설득하기 위해서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점, 불법체류자인 공소외 4가 출국한 후에는 다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 2008. 5. 15. 피고인과 함께 중국으로 출국한 점, 피고인도 공소외 4에게 ‘피해자가 죽었다’고 말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믿을 만하다.

④ 또한 공소외 4가 피고인으로부터 들은 범행 동기도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즉, 이 사건 증거들에 의하면, 피해자는 피고인과 ‘스페어사무실’ 또는 위조여권 판매사업을 하기 위하여 피고인에게 2008. 3. 26.부터 같은 해 4. 21.까지 합계 800만 원을 송금하고 스타렉스 차량을 매각하였으며 심지어는 전처 공소외 2와 이혼하고 공소외 2에게 자녀의 양육권을 넘겨준 채 여관방에서 생활해 온 사실이 인정되는 반면, 피고인은 피해자와 동업을 위해 얼마를 투자하였다는 뚜렷한 자료가 없으며(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현금으로 돈을 많이 주어 오히려 피해자로부터 받을 게 있었다고 주장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어떠한 자료도 제출한 바 없다), ‘스페어사무실’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공소외 1은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굴착기 기사로만 일하면서 처와 3명의 자녀를 부양해 왔고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었으며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었으므로 피고인의 꼬임에 빠져 위조여권 판매사업이라는 불법적인 사업을 시도하려다가 이를 그만두고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였고 집행유예기간 중이며 보호관찰까지 받고 있던 피고인은 피해자의 고소를 두려워하고, 한편으로 그동안 피고인의 말에 잘 따라왔던 피해자에게 분노를 느껴 살해를 결심하였음 직하다.

4) 피고인의 피해자 살해사실을 뒷받침하는 간접사실

가) 피해자의 소지품을 불태운 점

공소외 4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옷가지, 휴대전화, 지갑, 신분증을 불에 태우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고, 피고인 역시 피해자의 옷가지를 태운 사실에 대하여는 인정하고 있는바, 이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간접사실이 된다. 공소외 4의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태우고 지갑에서 돈을 꺼낸 후, 지갑과 신분증을 태웠다는 것인바, 위와 같은 증거인멸행위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점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간접사실이다.

피고인의 주장대로 피해자의 소지품 중에 휴대전화와 신분증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와 아무리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불과 100m 내에 여관에 묵고 있으며 거의 매일같이 보아 온 피해자의 소지품을 태운다는 것은 피해자가 실종된 후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는 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피고인의 주장대로 당시 피해자가 활동하는 시기였다면, 피해자에게 소지품을 가져다주었으면 되었을 것이고, 차 안에 있는 피해자의 물건이 필요 없어 치우려 했다면, 그대로 버리는 것으로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지, 굳이 동인교 밑까지 차를 몰고 내려가서 피해자의 옷가지만을 불태울 이유가 없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소지품을 태운 시기에 관하여, 공소외 4가 아산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말을 듣기 전인지 후인지, 또는 평택으로 다이너스티 차량을 사러 갈 때인지에 대하여 공소외 4의 진술에 일관되지 못한 점이 있다. 즉, 공소외 4는 최초로 2011. 9. 23. 작성한 우편조서에서는 아산에 다녀온 후에 평택으로 다이너스티 차량을 사러 가는 길에 피해자의 소지품을 태웠다고 진술하였고, 수사기관에 처음 출석하여 조사를 받을 때는 아산에 가기 전 2008. 4. 26. 평택으로 다이너스티 차량을 사러 가는 길에 피해자의 소지품을 태웠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경찰 제3회 진술조서부터는 아산에 다녀와서 평택으로 가는 길에 소지품을 태웠다고 뒤집었다.

그런데 피해자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2008. 4. 28. 이후 피고인이 피해자의 물건을 태웠음은 분명한 이상(만약 피해자가 활동하는 시기였다면, 피고인은 피해자와 100m 내에 살면서 매일같이 만나는 사이였으므로, 차량 안에 있는 소지품을 피해자가 사는 여관에 가져다주면 될 뿐 다리 밑에서 소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공소외 4의 위와 같은 진술의 번복은 약 4년 전에 일어난 동시다발적인 사건(아산에 다녀온 일, 평택 자동차매매상사에 가서 다이너스티 차량을 매수한 일, 평택 자동차매매상사에 가서 차량 등록한 일, 용인시에서 평택시로 가는 중간에 동인교 밑에서 피해자의 소지품을 태운 일, 평택에 있는 피고인의 누나에게 다녀온 일)을 기억하면서 사건의 선후에 대해 기억이 혼선을 빚은 것으로 보일 뿐, 동인교 밑에서 피고인이 가방에서 피해자의 옷, 양말, 휴대전화, 신분증을 꺼내 불태웠다는 공소외 4의 진술의 신빙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

또한 공소외 4는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이 불태운 물건 중에 피해자의 주민등록증을 보았다고 진술하였으나, 이 법정에서 공소외 2는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해자의 스타렉스 차량 안에 피해자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이 들어 있었다고 진술하므로 서로 모순된다.

그러나 공소외 4가 한국어에 유창하기는 하지만 2005년 한국에 처음으로 입국하여 불법체류자로 살면서 대한민국의 신분증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였고, 따라서 순간적으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이에 더하여 피해자가 2008. 4. 28. 휴대전화를 신청할 때 운전면허증 사본을 통신회사에 제출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평소 지갑에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다닌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소외 4가 당시 피해자의 지갑에서 본 신분증은 피해자의 운전면허증일 가능성이 크므로, 위와 같은 모순점이 공소외 4의 진술을 탄핵할 결정적인 부분이 되지 아니한다.

나) 피고인이 피해자를 찾지 아니함

위 증거들에 의하면, 피해자는 실종될 무렵 피고인의 집 근처 여관방에서 숙박하면서 피고인과 ‘스페어사무실’을 운영하거나 위조여권 판매사업을 진행하였고, 피고인과는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사이였음이 인정된다. 그런데 피고인은 피해자가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후 피해자를 전혀 찾지 않았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1회 전화하니 받지 않았고 피해자가 묵던 여관방에 가 보니 가방이 있어 피해자가 위조여권을 가지고 중국으로 간 것으로 알고 그 후로 찾지 않았다고 진술하였으나, 피고인이 이 법정에서 인정하다시피 피해자는 혼자서 중국에 가서 위조여권 판매사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피고인의 진술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위와 같은 사정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충분한 간접사실이 된다.

다) 갑작스러운 중국행

다음으로 2008. 5. 2. 피고인과 공소외 4가 아산에 다녀온 후 행적을 살펴보면, 피고인과 공소외 4가 불과 13일 만에 급박하게 중국으로 떠난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위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2008. 5. 6. 여권을 신청하여 2008. 5. 9. 여권을 발급받은 사실, 2008. 5. 14. 매입한 지 약 15일밖에 되지 않은 다이너스티 차량을 460만 원에 다시 매도하고,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지번 2 생략) ○○○○빌 102호의 임대차계약을 중도해지한 후 2008. 5. 14. 보증금 정산을 완료한 사실, 피고인이 아들 공소외 9에 대한 전학절차도 제대로 밟지 아니하고 공소외 9를 한국에 남겨둔 채 2008. 5. 15. 공소외 4와 중국으로 먼저 출국하고 곧바로 공소외 9를 중국으로 데려온 사실, 피고인이 보호관찰을 받고 있으면서도 보호관찰관에게 알리지 않은 채 집행유예가 실효될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떠난 사실, 그 후 1개월 동안 중국에서 아무런 할 일 없이 지내다가 2008. 6. 21. 한국으로 다시 입국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러한 사실관계는 피고인이 공소외 4에게 ‘피해자를 살해하여 불안하니 중국으로 가자’고 하여, 갑작스럽게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공소외 4의 진술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간접사실이 된다.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2개월 전부터 중국에 가기로 결심하였고 영구적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고, 만약 피고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피고인이 2008. 4. 26. 피해자의 돈으로 다이너스티 차량을 사고도 2008. 5. 14. 다시 판매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5) 결론

따라서 신빙성 있는 공소외 4의 전문진술과 여러 간접사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구덩이에 묻어 살해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된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공소외 4가 피고인과 헤어지고 위자료 2억 원을 요구하였다가 거절당하자 피고인을 무고하기 위해 허위제보를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소외 4는 피고인으로부터 처음 만났을 때 빌려 간 700만 원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고, 2005. 9.경부터 2010. 11.경까지 피고인과 동거관계를 유지하면서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실현 가능성 없는 위자료 2억 원을 요구하였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해자가 쉽게 발견될 수 없는 곳에서 자살 또는 자연사, 추락사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나, 위와 같은 공소외 4의 전문진술 및 피고인의 행적에 비추어 합리적인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아니한다.

배심원 평결과 양형 의견

1. 유·무죄에 대한 평결

유죄 의견: 9명

무죄 의견: 0명

2. 양형에 대한 의견

징역 15년: 3명

징역 13년: 6명

이상의 이유로,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을 그 희망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최동렬(재판장) 유승원 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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