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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다36407 판결
[약속어음금][미간행]
판시사항

[1] 어음행위의 무인성

[2] 발행인 스스로 수취인이 주장하는 어음발행의 원인관계를 자인하고 나아가 이를 수취인이 원용한 경우, 법원이 이에 저촉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원고, 상고인

해남군 수산업협동조합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새천년 담당변호사 심재훈)

피고, 피상고인

주식회사 홍해식품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어음행위는 무인행위로서 어음수수의 원인관계로부터 분리하여 다루어져야 하고 어음은 원인관계와 상관없이 일정한 어음상의 권리를 표창하는 증권이므로, 어음의 소지인은 소지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어음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그가 어떠한 실제적 이익을 가지는지 증명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 대법원 1997. 7. 25. 선고 96다52649 판결 , 대법원 1998. 5. 22. 선고 96다52205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약속어음의 수취인이 그 발행인을 상대로 어음금청구를 하는 경우 어음발행의 원인관계 및 그 원인채무가 이미 변제되었다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발행인 측에서 증명하여야 할 것인데, 이와 같이 발행인이 증명책임을 부담할 사항에 관하여 발행인 스스로 수취인이 주장하는 어음발행의 원인관계를 자인하고 나아가 이를 수취인이 원용한 이상 이 점에 관하여는 재판상 자백이 성립한 결과가 되므로, 발행인으로서는 그 자백이 진실에 반하고 착오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지 않는 한 함부로 이를 취소할 수 없으며, 법원도 그 자백에 구속되어 이에 저촉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 대법원 1993. 9. 14. 선고 92다24899 판결 참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가 원고에게 액면금 1억 원짜리 약속어음 3장(이하 ‘이 사건 어음’이라고 한다)을 발행하였고 원고는 그 어음들의 최종소지인으로서 각 지급기일에 그 지급장소에서 지급제시하였으나 모두 지급거절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원고에게 위 각 어음금 합계 3억 원 및 이에 대하여 각 그 만기일 이후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면서도, 원인채무의 소멸로 인하여 이 사건 어음금채무가 소멸하였다는 피고의 항변을 받아들여 “이 사건 어음은 피고가 원고와의 중도매인 거래약정에 따라 부담하거나 부담하게 될 물품대금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발행된 것인데, 피고가 위 거래약정에 따라 실제로 부담하게 된 76,328,000원의 물품대금채무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후 화해조항이 이행완료되어 소멸하였으므로 그로써 이 사건 어음금채무 역시 소멸하였다 할 것이고, 이와 달리 ‘이 사건 어음은 피고 및 주식회사 누리식품(이하 누리식품이라고만 한다)의 원고에 대한 물품대금채무 및 이자채무, 손해배상채무 등을 담보하기 위하여 발행된 것’이라는 원고의 주장은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원고의 이 사건 청구를 기각한 제1심판결의 결론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앞서 본 재판상 자백의 법리에 어긋난 것으로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어음금청구에 대하여 피고가 제1심 법원에 처음으로 제출한 2005. 8. 19.자 답변서에는 “2004년 1월 원고의 조합장과 소외 1 등이 거래(위판사업)를 하기로 합의하고 원초(마른김을 뜻함) 100만 속을 수매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외상미수금이 5억 원 이상 발생할 때마다 어음으로 1억 원씩 발행하기로 하였다. 2004년 3월까지 원초 약 50만 속이 피고 명의로 천안 및 해남 소재 냉동창고에 입고되었고, 피고는 약속대로 어음을 발행하여 주었다.”라고 기재되어 있고, 이에 대하여 원고가 2005. 9. 23. 제출한 준비서면에는 “피고와 누리식품은 소외 1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동일한 회사인데, 원고가 피고 및 누리식품과의 사이에 중도매인 거래약정을 체결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외상미수금이 5억 원 이상 발생할 때마다 어음으로 1억 원씩 발행하기로 약정하였으며 이 약정에 따라서 피고가 발행한 어음을 수취하였다. 이 사건 어음이 담보하는 원고의 손실금은 물품대금 미수금 95,918,000원을 포함하여 총 769,170,033원으로 예상된다.”라고 하여 피고의 주장을 원용하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으며, 위 답변서 및 준비서면이 2005. 10. 17. 제1심 변론준비기일에 진술간주 또는 진술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다. 또 기록에 의하면 피고는 그 후에도 계속하여 피고가 아닌 누리식품과 원고 사이의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사정, 즉 누리식품으로서는 원고로부터 공급받아 냉동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마른김을 원고의 요구에 따라 다시 원고에게 양도하였으므로 더 이상 원고에 대한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원고의 청구에 대한 항변사유로 내세우는 한편, “피고가 어음의 지급기일을 6월 25일, 8월 23일, 9월 23일로 하여 발행한 이유는, 피고의 거래장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약 5억 원 이상의 물품이 입고가 되면 물품대금으로 1억 원씩 발행하였기 때문이다.”(2006. 1. 12.자 준비서면)라고 하면서 누리식품의 거래장부를 제출하기도 하고, 누리식품 명의로 작성된 확약서(갑 제7호증)에 대하여 “피고가 마른김을 수매하여 천안수협에 보관하면서 천안물류사업소와 체결한 것”이라고 하거나 “피고는 천안수협에 보관하고 있는 누리식품의 마른김 11,602박스를 원고의 요청으로 돌려준 사실이 있다.”(2007. 1. 2.자 준비서면)라고 주장하기도 함으로써, 피고와 누리식품을 혼동 내지 동일시하면서 이 사건 어음이 누리식품의 원고에 대한 물품대금채무의 지급 또는 그에 대한 담보로 발행된 것임을 사실상 자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 사건 어음의 원인채무가 ‘누리식품과 완전히 별개의 회사인 피고’의 원고에 대한 물품대금채무로 한정된다는 피고의 주장과 달리 ‘피고 및 누리식품’의 원고에 대한 물품대금채무의 지급을 담보하기 위하여 이 사건 어음이 발행되었다는 점에 관하여 피고의 자백이 성립한 결과가 되었다 할 것인데, 피고가 그 자백이 진실에 반하고 착오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여 이를 취소한 바 없으므로, 법원으로서는 그 자백에 반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다만, 원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어음이 누리식품의 물품대금채무 외에 이자채무, 손해배상채무까지도 담보하는 것인지 여부는 별론으로 한다).

덧붙여, 기록에 나타난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앞서 본 바와 같은 피고의 구체적인 주장 내용 외에, 누리식품의 마른김 수매ㆍ관리 담당자인 소외 2가 피고측 증인으로 제1심 법정에 출석하여 “원고는 피고 및 누리식품과 거래 당시 미수금 5억 원이 발생할 때마다 약속어음 1억 원씩을 받기로 하였는데, 누리식품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미수금액이 약 20억 5,000만 원에 이르게 되자 누리식품이 발행한 1억 원짜리 약속어음 1장 및 피고가 발행한 1억 원짜리 약속어음 3장을 받은 것이다.”라고 하여 오히려 원고의 주장에 부합하는 취지의 증언을 한 점, 피고는 2004. 1. 19. 원고로부터 76,328,000원 상당의 마른김을 매수한 후 더 이상의 거래가 없었음에도 원고에게 2004. 2. 12.에 1억 원짜리 약속어음 1장, 같은 해 3. 3.에 1억 원짜리 약속어음 2장을 각 발행ㆍ교부한 점, 그런데 누리식품의 물품매수금액은 2004. 2. 11.까지 약 10억 400만 원, 2004. 3. 3.까지 약 20억 5,000만 원이었으며, 이 사건 어음과는 별도로 누리식품이 2004. 2. 12.에 1억 원짜리 약속어음 1장을 원고에게 발행ㆍ교부하였으므로, 결국 원고의 주장처럼 누리식품의 미수금액 5억 원에 대하여 1억 원의 비율로 어음이 발행된 점, 한편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하여 위 물품대금 76,328,000원의 지급을 청구한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로부터 마른김을 인도받음과 동시에 82,000,000원을 원고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의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는데, 그 화해조항에 이 사건 어음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피고는 위 화해조항을 이행하면서도 액면금 3억 원에 이르는 이 사건 어음을 회수하지 아니한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가 증명책임을 부담하는 사항인 이 사건 어음발행의 원인관계, 즉 이 사건 어음이 피고 자신의 원고에 대한 물품대금채무만을 담보하기 위하여 발행된 것이라는 피고의 주장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이와 반대로 판단하여 원고의 이 사건 어음금청구를 배척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재판상 자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채증법칙에 위반하여 증거 없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고,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황식(재판장) 김영란 이홍훈 안대희(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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