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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2014.4.11. 선고 2013구합20974 판결
과거사진실규명결정취소
사건

2013구합20974 과거사진실규명결정취소

원고

주식회사 A

피고

안전행정부장관

환송전제1심판결

서울행정법원 2009. 12. 17. 선고 2009구합11515 판결

환송전제2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10. 9. 30. 선고 2010두1370 판결

환송전제3심판결

대법원 2013. 1. 16. 선고 2010두22856 판결

변론종결

2014. 3. 5.

판결선고

2014. 4. 11.

주문

1. 피고가 2008. 10. 21. 결정한 'A 광고탄압 사건(사건번호: 라 3059)'에 대한 진실규명결정 중 별지 1. 결정요지 마.항, 사항 각 기재 부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A'라는 신문을 발행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언론사이다. 피고는, 2005. 5. 31. 법률 제7542호로 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에 의해 설치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가 2010. 12, 31. 활동을 종료함에 따라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피고로 하는 쟁송에서의 소송업무를 수행하는 자이다(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처리 등에 관한 규정」 제3조 제3항 참조).

나. 원고의 기자들이 1974. 10, 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는 등 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에 항의하는 취지의 활동을 전개하자, 광고주들이 1974. 12.경부터 원고 운영의 언론매체들에 광고를 게재 방영하지 않는 사태(위 사건을 이하 '광고탄압사건'이라 한다)가 발생하였다.

다. 위와 같은 광고탄압이 계속되자 원고는 1975, 3. 8. 경영악화를 이유로 18명의 A기자를 해임하였다. 이에 반발한 원고 소속 언론인들은 원고의 사옥 점거 및 제작 거부를 포함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원고는 1975. 5. 1.까지 116명의 언론인들을 추가로 해임 또는 무기정직에 처하는 징계를 내렸다(1975. 3. 8.자 해임을 '이 사건 1차 해임', 그 후에 일어난 징계를 '이 사건 후속징계', 이 사건 1차 해임 및 이 사건 후속징계를 통틀어 'A 언론인 해직사건'이라 한다).

라. 'A 언론인 해직사건'으로 해직된 언론인들 중 일부(B 외 49명)는 2006. 4. 18.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과거사정리법 제19조에 기하여 '광고탄압사건' 및 'A 언론인 해직사건'에 관한 진실규명을 신청하였고,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 10. 21. 위 각 사건에 대하여 별지 1. 결정요지 기재와 같은 내용의 "진실규명결정"(과거사정리법 제26조 참조, 이하 '이 사건 결정'이라 한다)을 하였다.

마. 원고는 이 사건 결정 중 원고가 정권의 요구대로 언론인들을 해임했다는 부분(별지 1. 결정요지 마.항과 원고에 대해 해직 언론인들에게 사과하는 등의 화해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부분(별지 1. 결정요지 사항, 이 사건 결정 중 위 두 부분을 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에 불복하여 과거사정리법 제28조에 기해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 3. 2. 원고가 과거사정리법상의 이의신청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위 이의신청을 각하하였다. 이에 원고는 이 사건 처분의 적법성 여부를 다투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인정 근거] 갑 제1호증의 1, 2, 갑 제2호증의 1, 2, 을 제10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관련 법규

별지 2. 기재와 같다.

3. 이 사건 소의 적법 여부

가. 피고의 주장

피고는, ①) 진실규명결정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아니어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고, ② 원고는 진실규명결정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 불과한데다가 이 사건 결정은 원고에게 아무런 법적 의무를 부담시키지 않는 권고사항만을 담고 있어, 원고에게는 이 사건 결정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소는 원고적격이 없는 자가 제기한 소로서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

행정청의 어떤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추상적 · 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구체적인 경우 행정처분은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로서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관련 법령의 내용과 취지, 그 행위의 주체 · 내용 · 형식 · 절차,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과의 실질적 견련성, 그리고 법치행정의 원리와 당해 행위에 관련한 행정청 및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1992. 1. 17. 선고 91누1714 판결, 대법원 2010. 11. 18. 선고 2008두16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과거사정리법은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제1조), 과거사정리법은 1945. 8. 15.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 혹사건 등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치하고(제2조, 제3조), 피해자 및 그 유족 등에게 진실규명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제19조).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실규명 신청이 과거사정리법에서 정한 각하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조사개시결정을 하고(제22조), 자료제출요구, 동행명령 등을 통한 조사를 거쳐(제23조, 제24조) 진실규명결정이나 진실규명 불능결정을 한다(제26조, 제27조), 과거 사정리위원회는 조사개시결정이나 진실규명결정 등을 진실규명 신청인과 조사대상자 , 참고인(이하 '진실규명 신청인 등'이라 한다)에게 통지하여야 하고, 진실규명 신청인 등에게는 그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권이 부여되어 있다(제28조).

나아가 과거사정리법은 국가에 대하여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와 가해자를 상대로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제34조), 정부에 대하여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제36조 제1항). 또한 과거사정리법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이 최종 종료될 경우 과거사정리위원회로 하여금 종합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면서, 그 종합보고서에 진실규명사건 피해자 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가가 하여야 할 조치, 진실규명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법적 · 정치적 화해조치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한 권고를 포함하도록 하고, 그 권고사항을 소관으로 하는 국가기관에 대하여 해당 권고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제32조 제2항, 제4항, 제5항). 이에 따라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에 대한 정부의 이행 방향을 수립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관리하는 등 권고사항 이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2008. 1. 8. 대통령령 제20532호로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처리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어 과거사정리법 제32조 제4항에 따른 권고를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제1조, 제2조 제1항 제1호).

그 후 위 규정은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처리 등에 관한 규정」으로 개정되어 권고의 이행계획, 이행상황의 점검·관리와 그 밖에 권고의 이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장관 소속으로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등 처리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라 한다)를 설치하고, 그 아래 실무위원회와 지원단을 두어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의 이행에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제3조 내지 제5조), 심의위원회 위원장은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권고를 접수하면 소관 중앙행정기관을 지정하여 이를 통보하고, 권고의 처리방향 등을 수립하여 실무위원회의 협의·조정을 거친 후 심의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 확정된 권고의 처리방향 등을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즉시 통보하여야 한다(제6조),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를 통보받은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그 권고를 이행하기 위하여 이행계획을 수립하여 심의위원회 위원장에게 제출하고, 심의위원회에서 의결된 이행계획에 대하여 매 분기 말부터 15일 이내에 이행상황 및 결과를 심의위원회 위원장에게 통보하여야 하며, 그 권고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사유를 심의위원회 위원장에게 문서로 통보하여야 한다(제7조 제1항 내지 제3항).

위에서 본 법령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피해자 등에게 명문으로 진실규명 신청권, 진실규명결정 통지 수령권 및 진실규명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권 등이 부여된 점,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지면 그 결정에서 규명된 진실에 따라 국가가 피해자 등에 대하여 피해 및 명예회복 조치를 취할 법률상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점,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위와 같은 법률상 의무를 부담하는 국가에 대하여 피해자 등의 피해 및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로 권고한 사항에 대한 이행의 실효성이 법적·제도적으로 확보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과거사정리법이 규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2) 원고 적격에 관한 판단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라 하더라도 당해 행정처분으로 인하여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당한 경우에는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그 당부의 판단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니, 여기에서 말하는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란 당해 행정처분의 근거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을 말하고 제3자가 당해 행정처분과 관련하여 간접적이거나 사실적·경제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데 불과한 경우는 여기에 포함되지 아니한다(대법원 1994. 4. 12. 선고 93누24247 판결, 대법원 2010. 5. 13. 선고 2009두19168 판결 등 참조).

앞서 본 법령의 관련 규정과 위 증거들 및 갑 제4, 5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은 원고를 가해자인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해직 언론인들에 대한 관계에서는 국가 권력의 억압을 기화로 자사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 책임이 있는 자로 규명하여 '가해자'로 인정하고 있는 점, 국가는 이 사건 결정으로 인하여 가해자로 인정된 원고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으므로, 원고는 이러한 법적 조치를 당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점, 원고를 가해자로 인정한 이 사건 결정은 2008. 10. 29. 언론사에 보도 자료로 배포되었는바, 이 사건 결정이 사실이 아니라면 원고는 자신의 사회적 명예나 신용 등의 훼손으로 인해 인격권을 침해당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점, 당시 원고에 의하여 해직된 언론인들은 실제 이 사건 결정을 근거로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등을 준비하였던 점, 과거사정리법은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조사대상자로 지정된 자에게 통지수령권, 이의신청권 등을 부여하고 있어 법률상 조사대상자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한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되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는 이 사건 결정의 신청자가 아닌 조사대상자로서 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이 기는 하나, 이 사건 결정의 근거법규인 과거사정리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별적·구체적 · 직접적 이익을 가진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원고적격이 인정된다.

3) 따라서 피고의 본안전 항변은 모두 이유 없다.

4.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A 언론인 해직사건'이 과거사정리법의 진실규명 대상 사건인지 여부

1) 원고의 주장

가)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각 호에서 정한 사건들에 한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할 수 있다. 'A 언론인 해직사건'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 또는 제6호에 해당할 여지가 있기는 하나 위 제4호 사유는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을 대상으로 할 뿐이고, 진실규명결정에 따른 '국가'의 의무에 대해서만 규정한 과거사정리법 제34조 내지 제37조 등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제6호 사유 또한 오로지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A 언론인 해직사건'은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사인(私人)에 불과한 원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는 과거사정리법의 진실규명 대상 사건이라고 볼 수 없다.

나) 설사 'A 언론인 해직사건'이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각 호에서 정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하여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다. 다만, 제3조의 규정에 의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의결로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에 의한 재심사유 해당하여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A 언론인 해작사건'에 관하여는 해직 기자들이 서울민사지방법원 75가합2448호로 해고 처분 무효 확인 등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 위 사건은 항소심(서울고등법원 76나2374)과 상고심(대법원 78다304)을 거쳐 판결이 확정되었다. 위 확정 판결에는 재심사유가 없고, 이에 관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의결조차 없었으므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A 언론인 해직사건'에 관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할 권한이 없다.

2) 판 단

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각 호 해당 여부

우선 'A 언론인 해직사건'이 과거사법 제2조 제1항 각 호 소정의 사안에 속하는지에 관하여 본다.

위 사건은 원고가 그 소속 언론인을 해고 또는 무기 정직에 처한 것으로 사인 간의 행위에 해당함은 분명하다. 그런데, 갑 제1호증의 2, 을 제12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보면, 이 사건 결정을 구한 신청인들의 진실규명 신청취지는 원고에 대한 광고탄압과 원고가 내린 해직 및 무기정직에 부당한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하는 것으로서 위와 같은 신청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과거사정리위원회가 'A 언론인 해직 사건'에 부당한 공권력이 개입하였는지 여부를 충실히 조사하기 위해서는 위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였던 원고와 해직 언론인들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조사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1975. 3. 8. 경영악화를 이유로 소속 언론인들을 해임하였는데, 위 경영악화를 가져온 가장 큰 이유는 시기적으로 보아 정권의 광고탄압 외에는 상정하기 어렵고, 원고 소속 언론인들이 이 사건 1차 해임을 광고탄압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하고 사옥을 점거하고 제작거부 농성에 돌입한 결과, 추가로 이 사건 후속징계 조치를 받게 된 점에 비추어 보면 'A 언론인 해직사건' 또한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여기에 더하여 과거사정리법이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제1조),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종합보고서에 포함되어야 할 것 중의 하나로 진실규명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법적 · 정치적 화해조치에 관한 사항에 대한 권고가 있으며(제32조 제4항 제5호), 정부와 과거사정리위원회에게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유족의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해자와 피해자·유족 간의 화해를 적극 권유하도록 정하고 있어(제39조),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사인에 대하여도 적어도 화해를 권유할 권한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와 같이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사인의 행위 형식을 빌려 이루어졌다고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사인에 의한 행위도 과거사정리법의 진실규명 대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점들을 종합하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A 언론인 해직사건'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으로 본 것(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 소정의 사건에 대하여 분류기호 '라'를 사용하여 사건번호를 표기하는데, 'A 언론인 해직사건'에 관하여 '라' 분류기호를 사용하였다)에 어떠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음으로 'A 언론인 해직사건'에 관한 확정판결이 존재함에도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 처분을 내린 것이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2항 본문을 위반한 것인지 보건대, 갑 제3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위 확정판결은 원고 소속 언론인들에 대한 해임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어서 정당하였는지 여부 및 징계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서만 판단하였을 뿐 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또는 징계 대상이 되는 행위가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서 정부의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판단한 바는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갑 제1호증의 2, 을 제12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해직 언론인들의 진실규명 신청취지는 '해고의 유·무효 여부'에 관한 진실규명의 요청이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가 사인에 의한 해고 및 징계라는 외피 하에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에 관한 진실규명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실제 이 사건 결정 또한 해고의 유·무효나 그에 따른 법률상의 보상의무에 관계없이 원고가 'A 언론인 해직사건'에서 역사적인 가해자의 하나가 되었음을 밝히고, 원고와 피해자인 해직 언론인들과의 화해를 권고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A 언론인 해직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하여 과거사정리법 제2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나. 이 사건 처분이 적법절차원칙을 위반하였는지 여부

1) 원고의 주장

가)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원고에게 불이익을 주는 이 사건 처분과 같은 결정을 하면서도 원고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아 적법절차를 위반하였다.

나) 'A 언론인 해직사건'의 경우 당초 확정판결이 있는 사건으로 보아 과거사 정리위원회 내의 소위원회에서 '조사개시결정'{「진실규명 신청 및 조사에 관한 규칙」(이하 '규칙'이라 한다) 제24조 참조)이 이루어지지 않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그와 같은 절차를 위반하면서까지 'A 언론인 해직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다) 'A 언론인 해직사건'에 대한 조사를 담당한 D은 'A 언론인 해직사건'이 원고가 정권의 압력에 편승한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 주문은 이 사건 결정의 주문이 아닌 "일부진실규명"이 되어야 하고 이 사건 처분과 같은 내용은 기재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취지의 "조사결과 보고"를 작성하였다. 그런데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특별한 근거 없이 위 조사결과 보고와 상반된 이 사건 결정을 하여 규칙 제44조, 제45조를 위반하였다.

2) 인정 사실

가) 과거사정리위원회 내에는 소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데(과거사정리법 제6조 참조), 사건이 접수되면 각 소위원회에서 조사개시 또는 각하 결정을 하되, 확정판결이 있는 사건에 대한 조사개시는 소위원회가 아닌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다(규칙 제24조 제1, 3항).

나) '광고탄압사건'과 'A 언론인 해직사건'은 제3소위원회(인권침해규명위원회)에 배정되었다. 개별 사건들에 대한 조사는 소위원회의 실무자들로 구성된 각 팀에서 이루어지는데, 위 각 사건의 경우 E팀에 배정되어 D 조사관이 조사를 담당하였다.

다) 조사를 담당한 실무자들은 조사한 자료들을 토대로 "조사결과 보고"를 작성한다. 소위원회에서는 위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진실규명 여부를 의결하고,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위 소위원회가 심의·의결하여 상정한 조사결과를 기초로 하여 심의·의결한다.

라) D 조사관이 최초에 초안을 작성하여 결재를 올린 조사결과 보고에 의하면 조사개시결정 당시 'A 언론인 해직사건'은 확정판결 사건으로 분류되어 조사개시되지 아니하였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D은 서울고등법원 2011나82331 손해배상 청구사건의 증인신문절차에서 위와 같은 기재는 오기이고 'A 언론인 해직 사건'도 소위원회의 조사개시 결정에 포함된 것이었다고 증언하였다.

마) 'A 언론인 해직사건'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 5. 21. 원고에 대하여 "가. 1974년 12월경 A 주요 광고주들이 광고계약을 해지할 당시 광고 게재 계약서 내지는 광고계약 해지(철회) 통보 관련 서류(A 사사 권4 120쪽, 민족과 더불어 80년 참조), 나, 1975년 7월경 중앙정보부에서 요구한 'A의 결의와 진로' 제하의 문서(A 사사 권4 146쪽 참조), 다. 본 건 관련 F 사장이 정부와 협상을 하였던 관련서류, 라. 광고탄압으로 인한 A의 경제적 피해 내용(위 사사 144쪽 참조), 마. 기타 본 건 관련 참고 자료"에 관한 자료 협조 요청을 하였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그 외에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결정에 원고에 대한 처분도 포함될 수 있음을 고지하였다거나 별도의 의견 제출기회를 제공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다.

바) 한편, D 조사관은 원고가 정권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함에 따라 'A 언론인 해직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부 진실규명결정'(진실규명신청 및 조사에 관한 규칙 제46조의2 제3항 참조)을 하고 이 사건 처분 내용을 결정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고, 위와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 보고가 소위원회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소위원회는 2008. 10. 1. 위 조사결과와 다른 취지의 결정을 내렸고, 과거사정리위원회 역시 2008. 10. 21. 위 조사결과와 다른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인정 근거] 갑 제1호증의 2, 19호증의 1, 2, 을 제60, 61, 62, 66, 79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3) 판 단

가) 의견 제출의 기회 박탈 주장 부분

살피건대, 앞서의 3.항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해 원고는 국가로부터 법적인 화해조치를 부과 받을 가능성이 생기는 등(과거사정리법 제34조)의 법적 불안을 안게 되었고, 국가기관이 공적으로 인정한 사실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는 행정절차법 제21조 제1항에서 정한 침해적 행정처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 처분을 하기 전에 그 내용을 원고에게 통지하거나 의견 제출의 기회를 부여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 원고로서는 '광고탄압사건'의 피해자로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협조하다 느닷없이 이 사건 결정에 따라 가해자가 되어 이에 대한 의견 제출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체 국가로부터 명예를 훼손당하고 의무를 부과 받게 될 지위로 내몰렸으므로 이 사건 처분은 행정절차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한 잘못이 있다.

나아가, 원고는 이 사건 처분에 따라 'A 언론인 해직사건'의 가해자가 되어 과거사정리법 제28조, 제32조 등에서 정한 '조사대상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단된다.

(이 사건의 환송판결인 서울고등법원 2013. 6. 20. 선고 2013누3896 판결 또한 원고가 과거사정리법 상의 '조사대상자'임을 전제로 원고에게 이 사건 처분을 다툴 원고적격을 인정하였다). 과거사정리법은 조사대상자에게 의견진술권, 결정을 통지 받을 권리, 이의 신청권을 보장하고 있는데(과거사정리법 제28조, 제32조 참조),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 처분을 하면서 조사대장자인 원고에게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하였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원고의 이의신청도 각하하였다. 결국, 이 사건 처분은 원고를 과거사정리법상의 조사대상자와 마찬가지로 취급하면서도 조사대상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나) 조사개시결정이 없었다는 주장 부분

앞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A 언론인 해직사건'도 소위원회의 조사개시 결정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므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다) 조사결과와 이 사건 처분의 내용이 다르다는 주장 부분

살피건대, 과거사정리위원회 또는 소위원회가 조사관의 조사결과 보고에 기재된 결론에 구속된다고 볼 수 없고, 조사결과와 다른 결론을 내릴 때에 반드시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도 없으므로 이 사건 처분이 D 조사관의 조사결과 보고와 결론을 달리한다 하여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원고의 이 부분 주장 또한 이유 없다.

다. 이 사건 처분의 재량권 일탈·남용 여부

1) 원고의 주장

이 사건 처분은 정권이 광고탄압 해제를 조건으로 원고에게 소속 언론인들에 대한 해임을 요청하였고, 원고가 이를 수용하여 소속 언론인을 해임한 것처럼 진실규명을 한 뒤, 진실이 위와 같다면 원고에게도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가담한 책임이 있다고 보아 해직 언론인들에 대한 사과, 명예회복 및 피해회복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원고가 1975. 3. 8. 18명의 기자를 해임한 것은 계속된 광고탄압으로 경영상 위기에 내 몰리자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정권으로부터의 언론인 해임 요구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루어진 이 사건 후속징계는 해당 언론인들의 부당한 사무실 점거 및 제작 거부에 대한 정당한 징계였다. 원고는 당시 계속된 광고탄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A 발행을 이어나가려고 하던 때였고, 실제 광고탄압은 'A 언론인 해직사건'이 마무리된 날로부터 2개월이 넘게 경과한 1975. 7. 중순에서야 해제되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 처분은 사실을 오인하여 원고가 정권의 요구대로 언론인을 해임하였다는 진실규명결정을 내리고, 해직 언론인들에게 사과, 명예회복, 피해회복을 권고한 것으로서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2) 사법심사의 기준 및 판단의 대상

가) 사법심사의 기준 과거사정리법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제1조), 이를 위해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치하여(제3조) 위 위원회에 대해 과거사정리법에서 정한 사건들의 진실규명을 하고(제26조) 국가,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하여 취하여야 할 조치 등을 권고할 권한을 부여하였다(제32조). 과거사정리법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라는 아픈 현대사를 겪는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어느 진영에 가담하였는지에 따라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의 화해와 통합을 위하여, 기존의 사법제도 하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전제로 한 '징벌적 정의'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넘어 진실 규명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가해자·피해자가 서로 용서·화해하여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국민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이른바 '회복적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입법되었다. 이와 같은 과거사정리법의 입법취지는 위 법률의 정식 명칭에 '화해'가 포함되어 있는 점,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가해자에 대한 사면, 복권 등의 화해조치를 규정한 점(제38조),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유족의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화해를 적극 권유할 의무를 지는 점(제39조)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문제된 사건의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활동이고, 두 번째는 위와 같이 규명된 진실을 토대로 국가 또는 가해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부분

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기존 사법제도의 징벌적 정의관에 대한 대안적 관점에서 설치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처분에 대한 사법심사는 신중할 필요가 있으나 이와 같은 신중한 사법심사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회복적정의'의 실현 기능이 발휘되는 부분, 즉 당사자들에게 화해와 용서를 권고하는 영역에 대해서만 타당할 뿐,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무엇이 역사적 진실인지를 규명하는 영역까지 사법심사가 자제되어야 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로 규명한 사실이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당사자들이 이를 다툴 기회를 박탈당하면 당사자들은 국가기관에 대한 더욱 큰 불신과 이로 인한 반목을 거듭할 수밖에 없어 과거사정리법이 애당초 추구한 용서와 화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허위의 사실 또는 진실이라고 보기에 부족한 사실을 진실이라고 함부로 규명하여 그로 인해 국민의 명예가 훼손되고, 국민이 이를 전제로 국가로부터 일정한 법적 조치를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사법부로서는 국민의 권익 구제를 도모하고, 과거사정리법의 입법취지가 더욱 잘 구현되도록 그와 같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할 필요가 있다.

나) 이 사건 결정 중 판단의 대상 원고가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처분 중 별지 1. 결정요지 마.항은 앞서 본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 중 진실규명의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사항은 이를 토대로 가해자에게 일정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는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별지 1. 결정요지 마.항 부분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법심사를 통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이라고 보기 부족한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진실로 인정한 것이라면 이를 취소할 필요가 있고, 별지 1. 결정요지 마.항 부분이 취소된다면 이를 전제로 한 사항 부분도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사건 처분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별지 1. 결정요지 마.항 기재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는바, 위 결정 부분은 원고가 소속 언론인들을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규명한 부분으로서 위와 같은 기재는 '광고탄압사건' 당시 원고가 정권으로부터 소속 언론인에 대한 해임을 요구받았고, 원고가 광고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와 같은 요구를 수용하였다는 의미로 읽힌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과연 위와 같은 서술을 과거사정리법에서 정한 '진실'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3) 인정 사실

가) 이 사건 1차 해임에 이르게 된 경위, 원고 회사의 경영 및 노조관계,

(1) G 정책위의장은 광고탄압이 시작되고 약 3개월 뒤인 1975. 2. 3. UPI(United Press International)와의 기자회견에서 "A는 지금 기자들의 지배 아래 있다.

우리는 A가 발행인이나 편집인들의 지배 아래 놓이기를 바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태해결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A의 주장이 통일되고 규율이 잡히기 전에는 아무도 이니시어티브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2) 원고는 1975. 2. 28. 제49회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하였다. 위 주주총회에서는 일부 사원들의 거듭되는 사규문란 행동을 주시하면서 모든 방법을 다하여 조속히 사내의 질서와 기강을 확립할 것을 요망하고,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불요불급한 사업과 기구를 정비하고 기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경영을 합리화할 것을 요망한다는 내용의 결의가 이루어졌다. 위 두 번째 결의에 따른 경비절감의 일환으로 임원 9명(상근이사 8명, 상근감사 1명)이 퇴임하였다.

(3) 이와 함께 원고는 H을 새로운 주필로 선임하였는데, H은 1975. 3. 3. 취임인사말을 통해 사내질서 문제를 집중 거론하였고, 1975. 3. 5. 인사규정과 복무규정이 개정되어 '근무시간 내외를 막론하고 회사의 허가 없는 사내 집회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신설되었다.

(4) 원고는 1975. 3. 8. 편집국의 심의실, 기획부, 과학부 및 출판국의 출판부(위 각 부서를 이하 '1실 3부'라 한다)를 폐지하고 위 1실 3부에 소속된 사원 중 18명을 해임한다는 내용을 공고하였다. 이에 원고 회사 직원들은 "알림"이라는 유인물을 통해 위 18명을 해임하지 않더라도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급여를 자진 삭감하겠다.

고 제안하였으나 이들의 해임 철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 위와 같이 해고된 기자 18명 중에는 전국출판노동조합 A지부(이하 '노조지부'라 한다) 간부가 2명, 한국기자협회 A 분회 집행부의 보좌기관인 자유언론실천 특별위원회(이하 '실천특위'라 한다) 위원이 5명 포함되어 있었다. 원고 회사에 근무하는 노조지부 간부는 11명, 실천특위의 위원은 30명이었다.

(6) 한편, 원고의 노조지부는 1974. 3.경 설립되었는데 위 노동조합 설립 당시 원고의 경영진은 노동조합 설립을 방해하고자 설립 주동자들을 해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적이 있었다. 원고는 1974. 4.경 해고를 철회하였으나 그 후에도 노조지부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7) 또한 원고는 1970년대부터 적자 운영이 본격화되었고, '광고탄압사건'으로 수익이 급감하는 경영상의 위기를 맞게 되어 18명의 기자에 대한 해임과 더불어 1975. 4.부터 발행지면을 감면 (48면에서 40면)하였고, 중견급 사원(임원, 국장, 부장, 차장)의 급여도 삭감하였다. 원고 경영진 측에서는 위와 같이 지면 축소를 계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기자 수를 조절하고자 하였는데, 이 사건 1차 해임에 따라 폐지된 1실부는 A의 운영에 핵심적 부서가 아니어서 이전부터 폐지 논의가 있어왔던 부서들이다.

나) 이 사건 후속징계에서 '광고탄압사건'의 종료에 이르기까지의 상황

(1) 원고는 1975. 3. 10. 위 "알림"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한 기자와 집회에서 H 주필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을 한 기자를 추가로 해임하였다.

(2) 이에 원고 소속 언론인들은 1975. 3. 12. 원고의 사옥을 점거하고 제작거부 농성에 들어갔다. 원고는 같은 날 제작 거부에 동참한 17명의 언론인을 추가로 해임하였다.

(3) 원고는 1975. 3. 17. 새벽 3시경 원고 사옥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던 직원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같은 해 3. 27. 12명의 직원을 해임(또는 사표수리), 7명의 직원을 무기 정직에 처하였다. 원고는 1975. 4. 11. 출근 거부하는 사원 75명을 추가로 무기정직에 처한 데 이어 1975. 4. 15. 및 같은 해 5. 1. 각각 1명의 기자들에게 무기 정직의 징계를 내렸다. 이처럼 원고는 이 사건 1차 해임을 포함하여 총 7차례에 걸쳐 49명의 언론인을 해임하고, 84명의 언론인에게 무기 정직 처분을 내렸다.

(4) 위와 같은 해임 및 정직 이후에도 광고탄압은 2개월 넘게 계속되다가 1975. 7. 중순경에서야 비로소 종료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광고탄압사건'을 지휘한 것으로 여겨지는 I은 원고 측과의 협의가 1975, 6.경 처음 시작되었고 당시 원고의 사장이었던 F이 1975. 7.경 원고의 편집국장 등 주요 간부들의 인사에 있어서 사전에 중앙정보부와 협의할 것이라는 조건을 수용하여 '광고탄압사건'이 종료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협의 개시 시점에 관한 I의 진술은 당시 A 주필이었던 H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5)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원고와 정부 사이의 접촉 및 협상은 1975. 6.경부터 시작되었을 뿐 'A 언론인 해직 사건' 이전에 둘 사이에 접촉 또는 협상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직접적인 자료는 없다. 다만, 1975. 5. 12.부터 그 다음날까지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nternational Press Institute, IPI로 약칭하기도 한다) 총회에서 J 당시 K 사장은 "나(J)와 같이 참석하고 있는 6명의 대표들은 A 광고 사태의 해결을 모색하면서 그 동안에도 꾸준히 당국과 교섭을 해왔고…(중략)… A 광고사태는 A의 발행인이고 경영 책임자인 F 사장과 L 국내위원장인 M 전 A 회장, 그리고 이 사태에 관계되어 있는 주요 광고주와 또 당국자 간에 그 동안에도 긴밀하고도 조용한 접촉이 진행되어 왔습니다...(중략)..… 우리 대표단이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주기를 원하는가에 관해서 질문한 바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F 사장과 M씨는 일치된 의견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즉 그 대답은'…(중략)…우리는 지금 국내에서 조용한 가운데 당국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이야기를 진행 중에 있다.…(중략)…'는 것이었습니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한 적이 있다.

다) 이 사건 처분의 근거과거사정리위원회는 ① 이 사건 1차 해임이 G 정책위의장의 발언 직후에 이루어진 점, (②) J 당시 K 사장이 1975, 5. 중순경 연설을 하면서 그 이전부터 '광고탄 압사건'과 관련하여 당국과 원고 측이 접촉을 하고 있다는 연설한 적이 있는 점, ③ H주필이 이 사건 1차 해임이 광고탄압 때문에 이루어졌고, 원고가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은 있다고 봐야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적이 있는 점, ④ 사옥을 점거하던 원고 소속 언론인들의 강제해산이 경찰력의 비호를 받아 통금 시간에 이루어져 이 부분에 정권의 협조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점, ⑤ 당시 광고탄압이 한창인 상태에서 정부의 적극적 간섭과 개입 없이 개별 언론사들이 임의대로 기자들을 해임시켰다고 보기 어려운 점,

6) 당시 중앙정보부는 언론사들에 대한 인사문제를 핵심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사건 처분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

[인정 근거] 갑 제1호증의 2, 갑 제2호증의 3, 갑 제3호증의 1, 2, 갑 제7, 9, 16, 17, 호증, 을 제2, 5, 8, 22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4) 판 단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 처분의 근거의 하나로 이 사건 1차 해임이 G 정책위의장의 발언 직후에 이루어진 점을 들고 있다. 그런데 G 정책 위의장의 발언은 UPI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고 그 인터뷰 내용에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해임시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도 않으므로 위 발언을 토대로 정권이 원고에 기자 해임 요구를 하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J의 연설을 근거로 'A 언론인 해직사건' 즈음에도 원고와 정부 사이의 접촉이 있었다고 보고 이를 토대로 원고가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고 하나, ① J의 위 연설 내용은 국제기자협회에서 광고탄압 사태로 전 세계 언론인들의 관심과 비판이 집중되던 시기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나온 발언의 일부라는 점, ② 위 연설 내용에 당국의 주체가 누구인지, 위 접촉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도 나타나 있지 않은 점, ③ 그에 반해 당시 '광고탄압사건'을 지휘한 중앙정보부 소속 이나 당시 A 주필로 위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볼 수 있는 H은 모두, 원고와 정부와의 접촉은 1975. 6.경에서야 시작되었다고 진술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연설만을 근거로 원고가 1975, 5. 이전에도 정부와 광고탄압의 해제를 위해 접촉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또한 설사 위 연설 내용을 믿는다 하더라도 그 접촉 과정에서 어떤 내용의 협상이 있었는지 나타나있지 않아 원고와 정부가 접촉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정부가 원고에게 소속 언론인들의 해임을 요구하였다고 추정할 수 없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H 주필의 발언을 이 사건 처분의 근거의 하나로 들고 있으나 갑 제13호증, 을 제5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H 주필이 이 사건 1차 해임이 광고탄압 때문에 이루어졌고 원고가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광고탄압으로 초래된 초유의 경영악화로 인해 비용절감의 차원에서 기자들에 대한 해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 부분에 대해 원고도 일정 부분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볼 여지도 있다(오히려 H은 위와 같은 발언을 한 인터뷰1)에서 이 사건 1차 해임이 그와 같은 요구에 대한 수용이 아니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한편,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인정한 바와 같이 사옥 점거 언론인들에 대한 강제해 산이 통금 시간에 이루어지고 당시 경찰력이 대기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위 강제해산은 원고의 사옥 내에서 벌어진 일로서 통금 시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정부와의 관련성을 추단하기에 무리가 있는 점, 그와 같은 소요 사태에 경찰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대기하고 있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고, 경찰이 강제해산에 가담하였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도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강제해산이 정권과의 협력 또는 정권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 외에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들고 있는 사정들은 모두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일반적 서술로서 그와 같은 시대적 상황만으로 정부가 원고에 대해 언론인 해직을 요구하였다는 사실을 진실로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앞서 인정한 사실과 채택 증거들에 의해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이 사건 1차 해임에 따라 해임된 기자들 중에는 노조지부 또는 실천특위 활동에 가담하지 않은 기자들이 절반 이상 포함되어 있고, 노조지부 간부 및 실천특위 위원들 중 대부분이 위 1차 해임 대상에서 제외되었는바, 그렇다면 이 사건 1차 해임이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만 선별하여 해임시켰다고 볼 수 없는 점, ② 원고로서는 '광고탄압사건'으로 인해 초래된 초유의 경영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구 축소 등을 통하여 비용 절감을 달성할 현실적 필요성이 매우 높았고, 이 사건 1차 해임은 실제 그와 같은 비용 절감을 달성하기 위해 원고가 선택한 다양한 수단 중 하나로서 합리적 경영판단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③ 원고 회사의 경영진은 '광고탄압사건' 이전에도 원고 회사에 설립된 노동조합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소속 기자들을 해고한 적이 있는 등, 원고 회사의 경영진과 기자들 사이의 대립은 '광고탄압사건'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므로 원고에게는 정권의 요구 없이도 자의로 소속 언론인들을 해임할 동기가 충분히 있었다고 보이는 점, ④) 원고가 이 사건 1차 해임 이전에 국가 기관으로부터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의 해임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고 오히려 H 주필과 원고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는 점, ⑤ 그 이후의 이 사건 후속징계는 원고 또는 H 주필에 대한 비판·사옥점거 제작거부 출근거부를 원인으로 내려진 것이어서 징계사유가 있었다고 보이는 점, 16 소속 언론인들에 대한 해직이 광고탄압 해제에 결부된 정권의 요구였다면 해직이 완료된 이후 이른 시일 내에 원고에 대한 광고탄압이 해제되었어야 할 텐데, 원고에 대한 광고탄압은 그 이후에도 2개월가량 지속된 점 등을 종합하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든 사정만으로 원고가 정권의 언론인 해임 요구를 수용하여 소속 언론인들을 해임 및 정직에 처하였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5) 소결

위와 같이 'A 언론인 해직사건'과 정권의 요구 사이에 관련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그 당시 이루어진 G 정책의장의 발언이나 언론에 간섭과 통제가 심했던 시대 상황 등을 근거로 만연히 'A 언론인 해직사건'이 정권의 요구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 부분 진실규명결정(별지 1. 결정요지 마.항)을 한 잘못이 있다.

5. 결 론

따라서 별지 1. 결정요지 마. 항의 진실규명결정 부분은 위와 같은 절차적 실체적 잘못이 있어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하고, 별지 1. 결정요지 사항도 별지 1. 결정요지 마. 항의 진실규명결정 부분을 전제로 내려진 것이어서 별지 1. 결정요지 마.항이 위와 같이 취소되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판사이승택

판사하정훈

판사김태희

주석

1) N 방영된 MBC 프로그램 '0' 제38회 방영물 '자유언론실천선언' 중 H에 대한 인터뷰. 을 제5호증은 위 방송 중 H에 대한 인터뷰 부분만을 녹취한 것이고, 갑 제13호증은 위 방송내용 전부에 대한 녹취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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