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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서울고등법원 2011. 2. 11. 선고 2009재노53 판결
[대통령긴급조치위반·반공법위반][미간행]
피 고 인

피고인

재심청구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검사

정용수

변 호 인

법무법인 동화 담당변호사 조영선 외 1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피고인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사건의 경과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나. 이에 피고인이 사실오인과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였는데, 항소심인 비상고등군법회의는 1974. 9. 23. 74비고군형항 제31호 로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을 배척하고, 양형부당 주장만을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후 역시 위와 같은 법령을 적용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12년 및 자격정지 12년의 형을 선고하였다(이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라고 한다).

다. 이에 피고인이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1975. 3. 11. 74도3493호 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라. 그 후, 피고인이 2009. 6. 16. 이 법원 2009재노53호 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였고, 이 법원은 2009. 10. 23.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근거하여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라고만 한다)에 의하여 적법하게 조사되고 수집된 관련 자료에 근거하여 당시 사법경찰관 직무를 수행하던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불법적으로 체포, 감금한 상태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를 가한 사실에 대하여 확정판결에 준할 정도로 충분한 증명이 있는바, 위 수사관들의 위와 같은 행위는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 불법감금), 제125조 (폭행, 가혹행위)에 각 해당한다고 할 것이나, 위 수사관들의 범죄는 이미 공소시효(5년)가 완성됨으로써 그에 관한 유죄판결을 얻을 수 없게 되어 위 재심대상판결 및 그 전심 판결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음에도 위 죄에 대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개시결정을 하였고, 그 이후 항고기간 내에 적법한 항고의 제기가 없어 위 재심개시결정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2. 항소이유의 요지

가. 사실오인

피고인은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거나 긴급조치 제4호를 비방한 사실은 물론 북한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한 사실이 없고, 설령 원심 판시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신의 의견을 진술한 것에 불과할 뿐,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하거나 국가의 존립·안전 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의도가 없었음에도 원심이 수사기관의 피고인에 대한 불법체포, 감금 및 고문 또는 그로 인한 공포 분위기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기초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잘못을 저질렀다.

나. 법리오해

서울 남부경찰서 경찰관들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소외 1을 피고인에게 접근하게 하여 피고인으로 하여금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말들을 하도록 유도하였는바 이는 명백한 함정수사에 해당하고, 함정수사에 기한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임에도, 원심은 함정수사의 법리를 오해하여 이 사건 공소가 적법한 것으로 보고 피고인을 유죄로 처단한 잘못을 저질렀다.

다. 양형부당

피고인에게 유리한 여러 정상에 비추어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3. 피고인의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 주장에 대한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별지 기재와 같다.

나. 이 사건의 재심재판권

긴급조치의 근거법인 유신헌법 제53조 가 1980. 10. 27. 구 헌법(1987. 10. 29. 헌법 제1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의 제정·공포에 따라 폐지됨으로써 유신헌법은 실효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국방부에 설치된 비상보통군법회의 및 비상고등군법회의의 설치 근거인 긴급조치 제2호도 구 헌법의 제정, 공포와 더불어 실효되었다고 할 것인바, 피고인은 군법의 적용자가 아니며 현재 우리나라가 비상계엄하에 있지도 아니하고 또 이건 공소사실이 군형법계엄법이 열거한 어느 죄에도 해당하지 않아 피고인에 대한 재판관할권은 위 비상고등군법회의에 없음은 물론 그에 상당하는 군사법원으로 보이는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도 없고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반 관할법원에 있다 할 것이므로 위 국방부에 설치되었던 항소심판부인 비상고등군법회의에 상응하는 서울고등법원에 이 사건의 재판관할권이 있다( 대법원 1985. 1. 29. 선고 74도350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다. 대통령긴급조치위반의 점에 관하여

⑴ 재심대상판결에서 적용한 법령에 대한 위헌 여부 심사의 가부에 관하여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범죄사실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법령은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이므로, 법원은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법령이 폐지된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 를 적용하여 그 범죄사실에 대하여 면소를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법원은, 형벌에 관한 법령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인하여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된 경우, 당해 법령을 적용하여 공소가 제기된 피고사건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나아가 형벌에 관한 법령이 재심판결 당시 폐지되었다 하더라도 그 ‘폐지’가 당초부터 헌법에 위반되어 효력이 없는 법령에 대한 것이었다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이 규정하는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의 무죄사유에 해당하는 것이지,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 소정의 면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⑵ 긴급조치 제1호, 제4호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의 가부

앞서 본 바와 같이 재심소송에서 적용될 절차에 관한 법령은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이므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현재 시행 중인 대한민국헌법(이하, ‘현행 헌법’이라 한다)에 기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현행 헌법 제76조 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긴급재정경제명령 등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대하여 사법심사배제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다. 더욱이 유신헌법 자체에 의하더라도 그 제8조 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제9조 내지 제32조 에서 개별 기본권 보장 규정을 두고 있었으므로,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이 사법심사를 배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법심사권을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것일 뿐 이러한 기본권 보장 규정과 충돌되는 긴급조치의 합헌성 내지 정당성까지 담보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재심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모든 국민은 유신헌법에 따른 절차적 제한을 받음이 없이 법이 정한 절차에 의해서 긴급조치의 위헌성 유무를 따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 긴급조치의 위헌심판기관

현행 헌법 제107조 제1항 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라고 규정하고, 헌법 제111조 제1항 제1호 는 헌법재판소의 관장사무로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을 규정하고 있다. 위 각 헌법규정에 의하면, 위헌심사의 대상이 되는 ‘법률’이라 함은 ‘국회의 의결을 거친 이른바 형식적 의미의 법률’을 의미하고, 위헌심사의 대상이 되는 규범이 형식적 의미의 법률이 아닌 때에는 그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데에 국회의 승인이나 동의를 요하는 등 국회의 입법권 행사라고 평가할 수 있는 실질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유신헌법 제53조 제3항 은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한 때에는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사전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사후적으로도 긴급조치가 그 효력을 발생 또는 유지하는 데 국회의 동의 내지 승인 등을 얻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고, 실제로 국회에서 긴급조치를 승인하는 등의 조치가 취하여진 바도 없다. 따라서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는 국회의 입법권 행사라는 실질을 전혀 가지지 못한 것으로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대상이 되는 ‘법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권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속한다.

㈐ 긴급조치 제1호, 제4호의 위헌 여부

평상시의 헌법 질서에 따른 권력행사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이를 수습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나, 이 같은 국가긴급권은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하였을 때 그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제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최소의 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국가긴급권을 규정한 헌법상의 발동 요건 및 한계에 부합하여야 하고, 이 점에서 유신헌법 제53조 에 규정된 긴급조치권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는바, 유신헌법제53조 제1항 , 제2항 에서 긴급조치권 행사에 관하여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 극복을 위한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근거하여 발령된 긴급조치 제1호의 내용은 대한민국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대한민국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 및 이와 같이 금지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하고( 제1항 내지 제4항 ), 이 조치를 위반하거나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5항 )는 것이고, 긴급조치 제4호의 내용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라고만 한다)과 이에 관련되는 제 단체의 조직, 가입 및 그 구성원과 회합, 통신 기타 방법으로 연락, 구성원의 잠복, 회합, 연락 그 밖의 활동을 위한 장소, 물건, 금품 기타 편의제공,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 및 이와 같이 금지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제1 , 3 , 6항 ), 이 조치를 위반하거나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하여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이 경우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제8 , 9항 )는 것으로 유신헌법 등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전면금지하거나 이른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여 긴급조치권의 목적상의 한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위 긴급조치가 발령될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 및 사회상황이 긴급조치권발동의 대상이 되는 비상사태로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 내지 국가적 안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상황에서 발령된 위 각 긴급조치는 유신헌법 제53조 가 규정하고 있는 요건을 결여한 것이다.

이처럼 위 각 긴급조치의 내용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 내지 신체의 자유와 헌법상 보장된 청원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1호 및 제4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반되어 위헌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제1호 및 제4호에 의하여 침해된 위 각 기본권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이라고 할 것이어서 결국 이 사건 재판의 전제가 된 긴급조치 제1호 제3항 , 제5항 , 제4호 제8항 을 포함하여 위 각 긴급조치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⑶ 소결론

그렇다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1호 제5항 , 제3항 및 긴급조치 제4호 제8항 을 각 적용하여 공소가 제기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각 긴급조치위반의 점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의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하므로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조처는 그 범죄사실에 적용할 법령인 긴급조치 제1호 및 제4호의 위헌 여부 판단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라. 반공법위반의 점에 관하여

⑴ 이 사건이 함정수사에 기한 것으로 그 공소제기가 무효라는 주장에 관하여

㈎ 범의를 가진 자에 대하여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것에 불과한 수사방법이 경우에 따라 허용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케 하여 범죄인을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함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함정수사에 기한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바( 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1247 판결 등 참조),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해당 범죄의 종류와 성질, 유인자의 지위와 역할, 유인의 경위와 방법, 유인에 따른 피유인자의 반응, 피유인자의 처벌 전력 및 유인행위 자체의 위법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수사기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인자가 피유인자와의 개인적인 친밀관계를 이용하여 피유인자의 동정심이나 감정에 호소하거나, 금전적·심리적 압박이나 위협 등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하거나, 또는 범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범행에 사용할 금전까지 제공하는 등으로 과도하게 개입함으로써 피유인자로 하여금 범의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 대법원 2007. 7. 12. 선고 2006도2339 판결 참조).

㈏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 및 진실화해위원회의 기록에 의하면, 공소외 1이 자신의 국가보안법위반 전력으로 취직이 되지 않고 요시찰대상으로 지목되어 관할 경찰서 정보과 형사로부터 그 동태를 감시당하는 일이 계속되자, 당시 자신에 대한 시찰을 담당하던 서울 남부경찰서 경찰관 공소외 2에게 ‘피고인이 1959.경 상이군인을 규합하여 폭동을 일으키면 영웅 칭호를 받을 수 있다’라고 한 적이 있음을 제보하면서 피고인을 잡는데 협조하면 감시대상에서 제외시켜줄 것을 요청한 사실, 공소외 2는 이 같은 제보에 터잡아 1973. 1. 13.자로 ‘피고인이 고정간첩으로 의심되므로 장기 공작할 것이 상당하다’는 공작첩보보고를 한 사실, 공소외 1이 서울 남부경찰서 정보과 반장인 공소외 3과 위 공소외 2로부터 “서울 남부경찰서의 신설 후 아직 사건 하나 제대로 된 것을 취급하지 못했으니 피고인에 대한 공작에 협조해달라”는 제의를 받은 사실, 공소외 1이 위 제의를 수락한 다음, 수차례 피고인을 만나 피고인의 발언 내용을 녹취하기도 한 사실, 피고인이 원심 판시 범죄사실 제2, 7항의 발언을 한 대상인 공소외 4는 서울 남부경찰서 정보과 형사였던 사실 등은 인정되나, 한편 공소외 1이 비록 수사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피고인에게 개인적 친밀관계를 이용하여 접근한 다음 피고인의 발언 내용을 녹취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고인의 범행에 대한 채증 작업을 하고 이를 토대로 수사기관에 제보한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소외 1이 피고인의 발언 자체를 압박, 위협 등의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유도하거나 그 발언 내용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한 찬양, 고무, 동조하는 것이 되도록 유도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는 이상, 단순히 공소외 1이 피고인에게 접근하여 그의 발언 내용을 녹취하는 등 채증 작업을 한 것에 불과한 것을 두고 피고인으로 하여금 범의를 일으키게 하는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할 것은 아니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⑵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 주장에 관하여

㈎ 피고인이 당심에 이르러 피고인에 대한 검찰관 및 사법경찰관 작성의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 및 피고인 작성의 각 진술서의 기재가 임의성이 없는 진술에 따른 것으로 그 증거능력이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형사소송법 제318조 에 규정된 증거동의의 의사표시는 증거조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취소 또는 철회할 수 있으나, 일단 증거조사가 완료된 뒤에는 취소 또는 철회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취소 또는 철회 이전에 이미 취득한 증거능력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할 것인바( 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2611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원심에서 위 각 증거들을 포함하여 검찰관이 제출한 모든 증거에 대하여 증거로 함에 동의하였고 이미 원심의 증거조사가 완료된 이상, 피고인이 당심에 이르러 위 각 증거들에 대한 동의의 의사표시를 취소 또는 철회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증거능력이 상실되지 않는다.

㈏ 다만, 이 같은 형사소송법상의 증거동의는 소송경제와 신속한 재판의 관점에서 인정되는 것이지 소송관계인에게 증거에 대한 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고, 위 각 증거들이 피고인에 대한 불법 체포, 감금 또는 고문 및 가혹행위 등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면 처음부터 증거동의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므로, 증거동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살피건대, 구 형사소송법(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은, 사법경찰관은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구속사유가 있는 경우에 긴급한 사유를 고하고 영장 없이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고( 위 법 제206조 제1항 ), 이 경우 48시간 이내에 법관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며( 위 법 제207조 제1항 ),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구속한 때에는 10일 이내에 피의자를 검사에게 인치하여야 하고, 검사가 피의자를 구속한 때 또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피의자의 인치를 받은 때에는 10일 이내에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면 석방하여야 한다( 위 법 제202조 , 제203조 )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① 서울 남부경찰서 소속 수사관들이 1974. 5. 19. 17:00경 피고인을 반공법위반의 범죄사실로 체포하였고, 1974. 5. 21. 서울민형사지방법원 영등포지원 판사로부터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같은 날 19:00경 서울 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위 영장을 집행한 사실은 인정되나, 위 구속영장에 발부시각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 위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긴급구속한 후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② 사법경찰관 직무를 수행하던 위 수사관들의 피고인에 대한 구속기간은 피고인을 긴급구속한 때로부터 10일 후인 1974. 5. 28.까지라고 할 것이므로 그 다음 날인 1974. 5. 29.부터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관에게 피고인을 인치한 1974. 5. 30.까지의 기간은 일응 불법 체포, 구금상태였다고 볼 수도 있으나, 위 수사관들이 1974. 5. 29. 피고인에 대하여 긴급조치위반의 범죄사실을 추가하였고, 긴급조치위반자에 대하여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할 수 있으므로( 긴급조치 제1호 제5항 , 제4호 제9항 ), 결국 위 기간 동안 수사기관이 피고인을 불법 체포, 구금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다만, 앞서 본 바와 같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할 수 있다는 긴급조치의 내용이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이므로 수사관들이 비록 그 긴급조치에서 정한 절차대로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였더라도 불법체포, 구금으로 인정될 여지도 있다), ③ 피고인이 위 수사관들로부터 고문 또는 가혹행위를 당하였다는 점에 관하여도 피고인의 진술 외에는 이를 인정할 뚜렷한 자료가 없는 이상, 위 각 증거들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설령 위 각 증거들이 불법 체포, 구금 또는 고문 및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한 내용이 기재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른 증거들에 의하여 피고인의 발언사실은 인정된다).

반공법위반죄의 성부에 관하여

구 반공법(1980. 12. 31. 법률 제3318호 국가보안법의 전문개정에 의하여 위 국가보안법에 통합됨으로써 폐지되기 전의 것) 제4조 제1항 의 죄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국외의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 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하는 것인데, 이를 적용하기 위하여는 그 행위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주관적으로는 반국가단체에 이롭다는 인식이 있을 것을 요하고( 대법원 1983. 2. 22. 선고 82도2658 판결 등 참조), 위 조항에 대응하는 1991. 5. 31. 법률 제4373호로 개정된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과는 달리 법문상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구 반공법 제4조 제1항 에 위와 같은 법문상 명문의 요건이 없다고 하더라도, 위 조항에는 그 법문의 다의성과 그 적용범위의 광범성으로 인하여 형사처벌이 확대될 위헌적 요소가 있으므로 이는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축소하여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한다 함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협 침해하고 영토를 침략하여 헌법과 법률의 기능 및 헌법기관을 파괴 마비시키는 것으로 외형적인 적화공작 등일 것이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 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 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0. 4. 2. 선고 89헌가113 결정 참조).

㈏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원심 제1차 공판기일에 대체로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을 한 바 있고(원심 판시 범죄사실 제4, 5항의 공소외 1에게 북한 방송의 청취를 권유하였다는 내용과 제7항 중 ‘김일성의 통일방식에 협조하면 애국자이고, 반대하면 역적이다’라는 취지의 말과 ‘정부가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하였다’는 취지의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였다), 공소외 1, 공소외 5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도 이에 대체로 부합한다.

그런데 이 부분 각 공소사실에 기재된 피고인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그 당시의 국제정세나 대한민국의 경제실정 비판, 남·북한의 경제사정, 교육·의료정책, 정치상황 등 시사적인 관심사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친분 있는 자들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표명하거나 자신이 우연히 청취한 북한 방송을 인용 또는 일본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 접한 내용을 전달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고, 달리 피고인의 위와 같은 발언만으로 구 반공법 제4조 제1항 의 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으로 객관적으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거나 주관적으로는 반국가단체에 이롭다는 데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으며,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에 호응·가세한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외부에 표시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부족하여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 따라서 검사가 제출한 각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도 북괴활동을 찬양, 고무, 이에 동조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어야 함에도 사실을 오인하거나 구 반공법의 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을 범하였다. 결국 피고인의 항소 논지는 이유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무죄부분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별지 기재와 같은바, 위 제3의 다. 라.항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하거나(대통령긴급조치위반의 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반공법위반의 점)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 및 같은 조항 후단에 의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아울러 권위주의 통치시대에 위법·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오랜 기간 교도소에서 심대한 고통을 당한 피고인에게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하여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피고인의 가슴 아픈 과거사로부터의 소중한 교훈을 바탕으로 사법부가 국민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의 권익을 보장하고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는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형사소송법 제440조 , 형법 제58조 제2항 에 의하여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강형주(재판장) 김경수 이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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