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집15권 1집 7~24] [전원재판부]
1.기초의회의원선거 후보자가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84조를 위반하여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추천받음을 표방하였다는 이유로 공소제기된 사건에서, 기초의회의원선거의 경우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도록 한 같은 법 제47조 제1항이 재판의 전제성이 있는지 여부(소극)
2.기초의회의원선거 후보자로 하여금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없도록 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84조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 부분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적극)
3.다른 지방선거 후보자와는 달리 기초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에 대해서만 정당표방을 금지한 것이 평등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적극)
1.기초의회의원선거 후보자가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84조를 위반하여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추천 받음을 표방하였다는 이유로 공소제기된 사건에서, 기초의회의원선거의 경우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도록 한 법 제47조 제1항은 당해사건에 적용될 법률조항이 아니고, 나아가, 법 제84조와 법 제47조 제1항은 각 그 수범자와 규율내용을 서로 달리하여 법 제47조 제1항의 위헌 여부가 법 제84조의 위헌 여부와 체계적으로 밀접불가분한 관계에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법 제47조 제1항에 관한 위헌심판제청 부분은 재판의 전제성이 없어 부적법하다.
2.선거에 당하여 정당이냐 아니면 인물이냐에 대한 선택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고, 입법자가 후견인적 시각에서 입법
을 통하여 그러한 국민의 선택을 대신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민주주의 이념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 정당의 영향을 배제하고 인물 본위의 투표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구체적 입법의도는 그 정당성이 의심스럽다.
그리고, 후보자가 정당의 지지·추천을 받았는지 여부를 유권자들이 알았다고 하여 이것이 곧 지방분권 및 지방의 자율성 저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기에는 그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막연하므로, 법 제84조의 규율내용이 과연 지방분권 및 지방의 자율성 확보라는 목적의 달성에 실효성이 있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나아가, 법 제84조가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 구현이라는 입법목적의 달성에 기여하는 효과가 매우 불확실하거나 미미한 반면에, 이 조항으로 인해 기본권이 제한되는 정도는 현저하다. 즉, 후보자로서는 심지어 정당의 지지·추천 여부를 물어오는 유권자들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바, 이는 정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려는 기초의회의원 후보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또한, 지방의회의원 선거의 선거기간이 14일로 규정되어 있고 사전선거운동이 금지되는 등 선거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각종의 규제들이 마련되어 있어서 실제로 유권자들이 기초의회의원 후보자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이른바 4대 지방선거가 동시에 실시되고 있는 탓으로 유권자들이 후보자들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일일이 분석·평가하기란 매우 힘든 실정이므로 현실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정당의 지지·추천 여부는 유권자들이 선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후보자의 정당표방을 금지하는 경우에는 유권자들은 누가 누구이고 어느 후보가 어떠한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선거에 무관심하게 되어 아예 투표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할 때, 정당표방을 금지함으로써 얻는 공익적 성과와 그로부터 초래되는 부정적인 효과 사이에 합리적인 비례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워, 법익의 균형성을 현저히 잃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덧붙여, 법 제84조 단서에서는 후보자의 당원경력의 표시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당원경력의 표시는 사실상 정당표방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것이 통상적이어서 법 제84조 본문과 단서는 서로
중첩되는 규율영역을 가지게 되는바, 이로 말미암아 법 제84조는 기초의회의원 후보자로 하여금 선거운동 과정에서 소속 정당에 관한 정보를 어느 만큼 표방해도 좋은지 예측하기 힘들게 하고 국가형벌권의 자의적 행사의 빌미마저 제공하고 있으므로 명확성원칙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법 제84조는 불확실한 입법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다지 실효성도 없고 불분명한 방법으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3.법 제84조의 의미와 목적이 정당의 영향을 배제하고 인물 본위의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하여 지방분권 및 지방의 자율성을 확립시키겠다는 것이라면, 이는 기초의회의원선거뿐만 아니라 광역의회의원선거, 광역자치단체장선거 및 기초자치단체장선거에서도 함께 통용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의회의원선거를 그 외의 지방선거와 다르게 취급을 할 만한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는가를 볼 때 그러한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위 조항은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유독 기초의회의원 후보자만을 다른 지방선거의 후보자에 비해 불리하게 차별하고 있으므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
재판관 한대현, 재판관 하경철, 재판관 김경일의 반대의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에 권력을 수직적으로 분배하는 문제는 서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 조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입법 또는 중앙정부에 의한 지방자치의 본질의 훼손은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 및 정당운영의 비민주성, 지연·혈연·학연이 좌우하는 선거풍토와 그 위에 지방자치를 실시한 경험이 일천(日淺)하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그 밖의 공직선거와 마찬가지로 기초의회의원선거에도 정당추천후보자의 참여를 허용한다면, 정당은 그 후보자의 당락뿐만 아니라 선출된 의원의 의정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지역의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기초의회를 형해화할 수 있다.
생각건대, 이 법률조항은 기초의회의 구성 및 활동에 정당의 영향이
배제된 지역실정에 맞는 순수한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필요불가결한 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말미암아 후보자는 직접 선거권자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이나 정당과 관련된 정보를 줄 수 없고 선거권자로서는 이러한 정보를 알 기회가 제한된다고 할지라도 간접적이나마 자신의 정치적 이념 및 정당과 관련된 정보는 정당의 당원경력의 표시를 통하여 알리도록 배려하고 있으며(법 제84조 단서), 후보자의 정당표방금지로 인한 지방자치의 제도적 보장이라는 이익은 후보자의 공무담임권 및 선거운동 자유의 침해로 입게 되는 손해보다 이익이 더 크므로, 이 법률조항은 과잉입법금지의 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그 밖의 공직선거와 비교할 때에 기초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에 한정하여 정당표방금지라는 정치적 생활영역에 있어서의 차별취급을 한 이 조항은 헌법이 추구하는 지방자치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입법목적에 필요불가결한 것으로서, 그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 또한 필요·최소한의 부득이한 경우로 인정되므로 평등원칙 위반도 없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1995. 4. 1. 법률 제4947호로 개정되고, 2000. 2. 16. 법률 제62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7조(정당의 후보자추천) ① 정당은 선거(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를 제외한다)에 있어 선거구별로 선거할 정수범위 안에서 그 소속당원을 후보자(이하 “정당추천후보자”라 한다)로 추천할 수 있다.
② 생략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1995. 4. 1. 법률 제4947호로 개정되고, 2000. 2. 16. 법률 제62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4조(무소속후보자등의 정당표방금지)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와 무소속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다. 다만, 정당의 당원경력의 표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1997. 11. 14. 법률 제5412호로 개정되고, 2000. 2. 16. 법률 제62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56조(각종제한규정위반죄)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2년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자
가.~다. 생략
라.제84조(무소속후보자등의 정당표방금지)의 규정에 위반하여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한 자
마.~하. 생략
2. 생략
②~③ 생략
2. 헌재 1996. 3. 28. 96헌마9 등, 판례집 8-1, 289
헌재 1994. 7. 29. 93헌가4 등, 판례집 6-2, 15
헌재 1998. 4. 30. 95헌가16 , 판례집 10-1, 327
대법원 1999. 1. 15. 선고 98도3648 판결(공1999상, 326)
대법원 2000. 5. 30. 선고 2000도734 판결(공2000, 1584)
3. 헌재 1996. 12. 26. 96헌가18 , 판례집 8-2, 680
제청법원 대전고등법원
당해사건 대전고등법원 2000노297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
1.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1995. 4. 1. 법률 제4947호로 개정되고, 2000. 2. 16. 법률 제62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4조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
2. 나머지 위헌여부심판제청을 각하한다.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최○용은 1998. 6. 4. 실시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공주시의회의원후보로 입후보한 자로서, 같은 해 5. 19. 09:30경부터 같은 달 20. 16:55경까지 공주시 중동에 있는 자신의 선거 사무실 외벽에 자유민주연합 정당의 표장이 그려져 있고 “최○용 공주시의회의원사무실, 자민련, 54-7000, 52-1661~2”라고 기재된 현수막 2개를 설치하고, 같은 달 20. 같은 동 소재 ○○세차장 앞길에서 자유민주연합 정당의 표장이 그려져 있고 “자민련 공주시부위원
장”이라고 기재된 자신의 명함을 배부하는 등,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84조를 위반하여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2)위 사건의 1심법원인 대전지방법원은 벌금 3,000,000원을 선고하였으나(98고합547), 항소심인 대전고등법원은 위와 같은 표시는 단순히 소속 정당의 당원경력을 표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다(99노516). 그러나, 상고심인 대법원은 위와 같은 행위는 실질적으로 정당으로부터 지지 또는 추천을 받았음을 표방한 것에 해당한다며 위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2000도734).
(3)이에 위 환송사건을 심리하게 된 대전고등법원은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47조 제1항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를 제외한다)” 부분과 같은 법 제84조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 부분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하여 직권으로 이 사건 위헌여부심판을 제청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1995. 4. 1. 법률 제4947호로 개정되고, 2000. 2. 16. 법률 제62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법’이라고 한다) 제47조 제1항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를 제외한다)” 부분과 법 제84조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 부분의 위헌 여부이다. 그 내용 및 관련규정은 다음과 같다.
법 제47조(정당의 후보자추천)①정당은 선거(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를 제외한다)에 있어 선거구별로 선거할 정수범위 안에서 그 소속당원을 후보자(이하 “정당추천후보자”라 한다)로 추천할 수 있다.
② (생략)
제84조(무소속후보자등의 정당표방금지)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와 무소속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없다. 다만, 정당의 당원경력의 표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1997. 11. 14. 법률 제5412호로 개정되고, 2000. 2. 16. 법률 제62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56조(각종제한규정위반죄) 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선거운동과 관련하여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자
가.~다. (생략)
라.제84조(무소속후보자등의 정당표방금지)의 규정에 위반하여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한 자
마.~ (생략)
2. 제청법원의 위헌심판제청이유와 관계기관의 의견
가. 제청법원의 위헌심판제청이유
(1) 공직선거에서 특정 후보자를 추천하는 행위는 그 성질상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이고, 이를 제한하는 법률은 경제적 기본권을 규제하는 법률보다 더 엄격한 기준에 의해 위헌 여부가 심사되어야 한다.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분권, 주민자치’ 등과 같은 추상적, 이념적 구호의 수준을 넘지 못하므로 정당성이 없다. 그리고, 미국식의 예비선거와 같이 지구당과 지역주민들의 여론만으로 공천자를 결정하도록 강제하는 등, 헌법에 더 부합하며 제한의 정도가 더 가벼운 다른 수단들을 강구할 여지가 있으므로, 위 규정들은 최소침해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또한, 법 제84조는 단서에 의하여 허용되는 행위와 본문에 의하여 금지되는 행위의 경계선이 불분명하다. 그러므로, 위 규정들은 정당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법률로서 위헌이다.
(2)정당의 영향력에서 독립할 필요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더욱 요구된다 할 것임에도, 위 규정들은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자에 대하여는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있게 하면서 유독 자치구·시·군의회(이하 ‘기초의회’라 한다)의원 후보자에 대하여만 이를 금지함으로써 합리적 근거 없이 후자를 차별하고 있다.
(3)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1998. 4. 30. 법률 제5537호로 개정된 것) 제87조 단서는 노동조합에 대하여는 특정 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정치활동을 본래의 목적으로 하는 정당에 대하여는 기초의회의원선거에 특정 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게 함으로써 합리적 근거 없이 정당을 차별하는 것이다.
나. 대전지방검찰청검사장의 의견
심판대상조항의 입법취지는 기초의회의 구성 및 활동에 정당의 영향을 배제함으로써 지역실정에 맞는 순수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리고 기초의회의원 후보자에게 정당표방을 금지시킨 것은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효·적절한 수단이고,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정당과 관련
된 정보는 당원경력의 표시를 통하여 알리도록 배려하고 있어 피해의 최소성도 충족하고 있다. 나아가 정당표방금지에 의한 지방자치의 제도적 보장이라는 이익은 정당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입게 되는 손해보다 이익이 더 크므로 두 법익에 대한 균형성도 갖춘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이 추구하는 지방자치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입법목적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의 의견
대전지방검찰청검사장의 의견과 대체로 같다.
3.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
법 제84조는 당해사건에 적용될 법률조항이고, 그 위헌 여부에 따라 당해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은 다른 내용의 재판을 하게 될 것이므로, 위 조항에 관하여는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법 제47조 제1항은 당해사건에 적용될 법률조항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재판의 전제성을 인정할 수 없다. 나아가, 법 제84조는 후보자에 대해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없게 한 조항인 데 반하여, 법 제47조 제1항은 정당에 대해 후보자를 공천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으로서, 각 그 수범자와 규율내용을 서로 달리하고, 또한 법 제47조 제1항은 그 문언상, 정당이 비공식적으로 후보자를 추천(이른바 ‘내천’)하거나 특정 후보자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아니하므로, 제47조 제1항의 위헌 여부가 제84조의 위헌 여부와 체계적으로 밀접불가분한 관계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제47조 제1항에까지 심판의 대상을 확장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제47조 제1항에 관한 부분은 재판의 전제성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제84조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만 본안판단을 하기로 한다.
4. 본안에 대한 판단
가. 정당의 지방선거 참여에 관한 입법의 변천
(1)1988년 지방의회의원선거법의 제정으로 약 30년만에 지방선거가 부활되었다. 그러나, 1990년 지방의회의원선거에 즈음하여 지방선거에 정당의 참여를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 여·야가 찬반양론으로 갈렸다. 당시 여당은 정당의 참여는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정쟁(政爭)으로 인한 지방행정의 혼
란, 지역사회의 분열과 반목 심화 등의 폐해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지방의 자율적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며 정당배제를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야당은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지방선거에 정당의 참여가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고, 그 적합성 여부는 선거과정에서 주민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로 반대하였다. 결국 논란 끝에 시·도의 선거에서만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시·군·자치구의 선거에서는 정당의 공천과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져, 지방의회의원선거법(법률 제4311호)과 지방자치단체의장선거법(법률 제4312호)이 각각 개정 및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2)1994. 3. 16. 기존에 별개의 선거법 체계로 되어 있던 대통령선거법·국회의원선거법·지방의회의원선거법·지방자치단체의장선거법을 단일법으로 통합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법률 제4739호)이 제정되었으며, 동법은 광역자치단체선거에서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선거에서도 정당의 참여를 허용하였다.
(3)그러나 1995. 6.27 지방선거 직전 여당은 다시 지방행정의 탈정치화를 내세우며 기초지방선거에서의 정당배제를 주장하였고, 이에 반대하던 야당과 절충 끝에, 기초자치단체장선거에서는 정당의 참여를 허용하되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는 정당의 관여를 불허하는 선에서 관련법령을 개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법 제47조 제1항 및 제84조의 개정이 이루어져, 부분적으로 자구(字句)만 수정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 법 제84조의 입법취지와 내용
(1) 입법취지
위와 같은 입법변천과정에 비추어 볼 때, 법 제84조는, 기초의회의원선거에 정당이 관여하면 선거가 정당들의 대리전으로 변질되어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유능한 인물을 뽑는 것이 어려워지고 정당이 후보자의 당락뿐만 아니라 의원의 의정활동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쳐 기초의회의 자율적 운영이 어렵게 될 것이라는 기본 인식 하에서 제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정당의 영향을 배제하고 인물 본위의 투표를 유도함으로써 지방분권 및 지방의 자율성 보장이라는 지방자치 본래의 이념이 충실히 구현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위 조항의 입법취지라고 할 것이다.
(2) 구체적 내용
법 제84조에서 행위의 주체는 후보자이다. 정당은 위 조항의 주체가 아니므로, 정당이 독자적으로 특정 후보자를 지지·추천함을 표방하는 경우는 위 조
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위 조항이 규율하는 행위는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하는 것이다. ‘표방’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생각이나 의견 혹은 주의나 주장 따위를 공공연하게 밖으로 드러내어 내세우는 것이므로, 위 조항이 금지하는 행위는 후보자가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혹은 특정 정당으로부터 후보자로 추천을 받았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드러내어 내세우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대법원 1999. 5. 11. 선고 99도556 판결, 공1999, 1206; 대법원 1999. 5. 25. 선고 99도279 판결, 공1999, 1314 등 참조).
그러나, 지지·추천의 의사표시의 방향이 정당으로부터 후보자에게로 향해진 것을 말하므로, 후보자가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적용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1999. 1. 15. 선고 98도3648 판결, 공1999상, 326 참조).
한편, 법 제84조 단서에 의해 특정 정당에서의 과거 또는 현재의 직책 등 당원경력을 표시하는 것은 허용된다.
다. 법 제84조의 위헌 여부
(1)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침해 여부
(가) 후보자가 소속 정당으로부터 지지·추천 받은 사실을 표방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자질과 능력이 소속 정당에 의해 검증되었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 지향하는 정책노선과 실천적 복안 등이 소속 정당이 내세운 정강·정책과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동시에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법 제84조가 기초의회의원 후보자에 대해 이러한 정당표방을 금지하는 것은 결국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위 조항은 특정 후보자가 정당의 지지·추천을 받았는지에 관한 정보가 유권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나)주권자인 국민이 선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후보자에 대한 각종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그러므로, 선거에 있어서는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즉, 후보자로서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식견과 이념을 비롯한 정치적 정체성을 자유롭게 알릴 수 있어야 하고,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후
보자에 관한 각종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헌재 1996. 3. 28. 96헌마9 등, 판례집 8-1, 289, 305 참조). 바꾸어 말하면,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원칙적으로 선거에 있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한껏 보장되어야 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불가피하게 이러한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도출되는 과잉금지원칙은 준수되어야 한다(헌재 1994. 7. 29. 93헌가4 등, 판례집 6-2, 15, 29 참조).
살피건대, 법 제84조의 입법목적과 관련하여 볼 때, 지방분권 및 지방의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하겠다는 것 자체에 대하여는 정당성을 부인할 여지가 없으나, 그를 위해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 정당의 영향을 배제하고 인물 본위의 투표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구체적 입법의도에 대하여는 그 정당성이 의심스럽다. 선거에 당하여 정당이냐 아니면 인물이냐에 대한 선택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고, 입법자가 후견인적 시각에서 입법을 통하여 그러한 국민의 선택을 대신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민주주의 이념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 제84조의 규율내용이 과연 지방분권 및 지방의 자율성 확보라는 목적의 달성에 실효성이 있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즉, 후보자가 정당의 지지·추천을 받았는지 여부를 유권자들이 알았다고 하여 이것이 곧 지방분권 및 지방의 자율성 저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기에는 그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막연하다. 한편, 위 조항 단서에서는 후보자의 당원경력의 표시를 허용함으로써 유권자들이 정당의 지지·추천 여부를 알 수 있는 우회적 통로를 열어 놓고 있고, 후보자가 정당에 대해 지지를 표방하거나 정당이 독자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행위 혹은 후보자가 당선 후에 소속 정당을 위해 의정활동을 벌이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러한 법적 상황에서 단지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정당의 지지·추천 받은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고 하여 과연 정당의 영향이 효과적으로 배제될 수 있을지도 매우 불확실하다. 따라서, 위 조항은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위 조항은 정당표방을 제한함에 있어서 예컨대 파급력이 큰 선전벽보·선거공보·소형인쇄물·현수막 등 특정한 표방수단이나 방법에 한정하여 규제하지 않고 일체의 표방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므로, 기본권의 제한을 최소화해야 하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법 제84조는 법익의 균형성의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고 아니할
수 없다. 우선, 앞에서도 본 바와 같이, 위 조항은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 구현이라는 입법목적의 달성에 기여하는 효과가 매우 불확실하거나 미미하다. 또, 위 조항은 우리나라 정당의 지나친 당 수뇌부 위주의 운영과 지역분할구도를 고려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영향을 배제하는 것이 곧 지방자치의 발전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주민 근거리 행정(住民近距離行政)의 실현이라는 행정적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내의 가치분배에 관한 갖가지 정책을 지방에서 자율적으로 수립해 나가는 정치형성적 기능도 아울러 가지는데, 이러한 정치형성적 기능과 관련하여 정당은 민의의 결집·인재의 발굴·중앙과 지방의 매개·책임정치의 실현 등 여러 가지 순기능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지방자치의 오랜 전통을 가진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 대다수가 정당의 지방선거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 정당의 지방선거 참여로 파생되는 부작용들은 따지고 보면 정당 내부의 분권화 및 민주화가 덜 이루어진 데에서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 그런데, 정당의 지방선거 참여는 오히려 지방의 유능한 인원을 정당에 충원하고 정당의 지방조직을 활성화함으로써 정당의 분권화·민주화를 촉진하는 면도 있다. 더구나, 최근 지역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혁신정당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고, 1인 2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며, 국민참여경선제 등 상향식 공천제도가 활용되기 시작하는 등 우리의 정치환경이 급속도로 발전적 변화를 이룩하는 추세에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향후 정당배제를 통해 얻게 될 이익보다 그로 인한 손실에 더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단순히 정당배제라는 미봉책을 통해 정당참여로 인한 역기능뿐 아니라 순기능까지 함께 제거하는 것은 지방자치 발전의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위 조항으로 인해 기본권이 제한되는 정도는 현저하다. 즉, 위 조항은 일체의 정당표방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후보자로서는 심지어 정당의 지지·추천 여부를 물어오는 유권자들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위 조항에 위반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법 제256조 제1항), 나아가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되면 당선까지 무효로 된다(법 제264조). 그러나, 기초의회의원 후보자의 대다수가 정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려는 정치지망생인 점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전면적 표방금지와 그에 뒤따르는 각종의 불이익은 후보자에게 지나치게 가
혹하다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지방의회의원 선거의 선거기간이 14일로 규정되어 있고(법 제33조 제1항 제3호), 사전선거운동이 금지되며(법 제59조, 제254조 제2항, 제3항), 그밖에 호별방문금지(법 제106조 제1항, 제3항, 제255조 제1항 제17호), 문서·도화 등에 의한 선거운동의 제한(법 제64조 내지 66조, 제255조 제2항 제1호) 등 선거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각종의 규제들이 마련되어 있어서 실제로 유권자들이 기초의회의원 후보자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이른바 4대 지방선거가 동시에 실시되고 있는 탓으로, 유권자들이 후보자들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일일이 분석·평가하기란 매우 힘든 실정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정당의 지지·추천 여부는 유권자들이 선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후보자의 정당표방을 금지하는 경우에는 유권자들은 누가 누구이고 어느 후보가 어떠한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장님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선거에 무관심하게 되어 아예 투표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결과는 유권자들 입장에서 접근하면 후보자의 정치적 실체를 정확히 알고 투표할 수 있기 위한 국민의 알 권리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할 때, 정당표방을 금지함으로써 얻는 공익적 성과와 그로부터 초래되는 부정적인 효과 사이에 합리적인 비례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워, 법익의 균형성을 현저히 잃고 있다고 판단된다.
(다)이에 덧붙여, 이른바 명확성원칙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헌재 1998. 4. 30. 95헌가16 , 판례집 10-1, 327, 342 참조), 법 제84조는 이러한 명확성원칙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즉, 법 제84조 단서에서는 후보자의 당원경력의 표시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당원경력의 표시는 사실상 정당표방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실제로 중앙당에서 당해 선거구의 내부경선을 거치는 등으로 기초의회의원 후보자를 확정한 다음 그에게 일률적으로 그 선거구의 ‘지방자치위원장’ 등 통일적인 당직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후보자를 사실상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방식의 소위 ‘내천’이 있었던 경우에 그 특정 당직을 부각시키는 행위를 단순히 정당의 당원경력을 표시한 데 불과한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정당으로부터의 지지·추천 받음을 표방한 것으로 볼 것인지 문제된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당원경력의 표시로 볼 경우에는 법 제84조 본
문의 취지가 몰각될 것이고, 정당표방으로 볼 경우에는 법 제84조 단서의 취지가 몰각될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도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위와 같은 행위를 당원경력의 표시로 보아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법원과 정당표방행위로 보아 유죄를 인정한 대법원이 서로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인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1999. 1. 15. 선고 98도3648 판결, 공1999상, 326; 대법원 2000. 5. 30. 선고 2000도734 판결, 공2000, 1584 등 참조).
이처럼 위 조항은 본문과 단서가 서로 중첩되는 규율영역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기초의회의원 후보자로 하여금 선거운동 과정에서 소속 정당에 관한 정보를 어느 만큼 표방해도 좋은지 예측하기 힘들게 하고 국가형벌권의 자의적 행사의 빌미마저 제공하고 있으므로, 명확성원칙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
(라)그렇다면, 법 제84조는 불확실한 입법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다지 실효성도 없고 불분명한 방법으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2) 평등원칙의 위배 여부
평등원칙은 입법자에게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자의적으로 같게 취급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교 대상을 이루는 두 개의 사실관계 사이에 서로 상이한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실관계를 서로 다르게 취급한다면, 입법자는 이로써 평등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비교될 수 있는 두 사실관계가 모든 관점에서 완전히 동일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일정 요소에 있어서만 동일한 경우에 비교되는 두 사실관계를 법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 볼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어떠한 요소가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가가 문제된다. 두 개의 사실관계가 본질적으로 동일한가의 판단은 일반적으로 당해 법률조항의 의미와 목적에 달려 있다(헌재 1996. 12. 26. 96헌가18 , 판례집 8-2, 680, 701).
이 사건에서, 법 제84조는 4대 지방선거 중 유독 기초의회의원선거의 경우에만 그 후보자에 대해 정당표방을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위 조항의 의미와 목적이 정당의 영향을 배제하고 인물 본위의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하여 지방분권 및 지방의 자율성을 확립시키겠다는 것이라면, 이는 기초의회의원선거뿐만 아니라 광역의회의원선거, 광역자치단체장선거 및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함께 통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초의회의원선거의 경우와 그 외의 세 종류의 지방선거의 경우는 서로 법적으로 동일한 사실관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초의회의원선거를 그 외의 지방선거와 다르게 취급을 할 만한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는가를 볼 때 그러한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 우선,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경우를 나누어 법적으로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광역과 기초의 차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의 차이에 불과할 뿐, 지방분권이라는 자치기능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초자치단체장선거의 경우와는 달리 기초의회의원선거의 경우에만 정당의 영향을 배제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기초자치단체의 기관 중에서 구태여 정당의 영향을 배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기초의회보다는 집행업무를 담당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초자치단체장은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의 대부분을 지휘·감독하고, 예산을 편성·집행하며, 그를 통하여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등 전국 단위의 공직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지역 사업과 현안들을 추진하고 집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체장선거와 관련해서 정당공천헌금 등 갖가지 부조리가 문제되고 있는 실정에서도 이러한 점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지방 차원에서의 견제와 균형의 실현이라는 지방자치의 기본이념에 비추어 보더라도, 기초자치단체장선거에서는 정당추천후보자를 인정하면서, 그 상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는 정당표방을 금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위 조항은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유독 기초의회의원 후보자만을 다른 지방선거의 후보자에 비해 불리하게 차별하고 있으므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
(3) 소결론
법 제84조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 부분은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배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5. 결 론
따라서 법 제47조 제1항에 관한 위헌여부심판제청은 각하하고, 제84조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 부분에 대하여는 위헌선언을 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와는 달리 법 제84조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헌재 1999. 11. 25. 99헌바28 결정은 이 결정의 견해와 저촉되는 한도 내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한대현, 재판관 하경철, 재판관 김경일의 아래 6.과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6.재판관 한대현, 재판관 하경철, 재판관 김경일의 반대의견
우리 재판소는 1999. 11. 25. 99헌바28 사건에서 법 제84조 중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결정을 한 바 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 법률조항은 법에서 규정한 모든 선거 중 기초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만 정당표방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내용을 입법화하는 문제는 헌법이 지방자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점, 우리의 정치문화와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의식 등 제반 사정을 헤아린 입법재량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입법형성은 그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위헌으로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아가서, 이 법률조항이 입법형성의 한계를 준수한 것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전제조건으로 지방자치제도의 현상과 그 특수성을 먼저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제도의 헌법적 보장은 국민주권의 기본원리에서 출발하여 주권의 지역적 주체인 주민에 의한 자기통치의 실현으로 요약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지방자치의 본질적 내용인 핵심영역은 입법 기타 중앙정부의 침해로부터 보호되어야 함은 헌법상의 요청인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에 권력을 수직적으로 분배하는 문제는 서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 조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입법 또는 중앙정부에 의한 지방자치의 본질의 훼손은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 및 정당운영의 비민주성, 지연·혈연·학연이 좌우하는 선거풍토와 그 위에 지방자치를 실시한 경험이 일천(日淺)하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그 밖의 공직선거와 마찬가지로 기초의회의원선거에도 정당추천후보자의 참여를 허용한다면, 정당은 그 후보자의 당락뿐만 아니라 선출된 의원의 의정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지역의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기초의회의 결정이 정당의 의사에
따라 그 결론이 바뀌게 되는 것을 뜻한다. 기초의회가 정당의 의사에 따라 움직인다면, 기초의회는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상실하여 형해화한 모습으로 남게 된다.
또한, 기초의회의원선거에 정당추천후보자의 참여를 제한하지 않고 허용한다면, 후보자 개인의 능력과 자질보다 소속정당이나 정강·정책이 후보자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기초의회는 국가적인 문제보다 당해 지역 주민들이 그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쟁점을 자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합의제 기관이므로, 기초의회의 구성은 범국가적인 정당의 정강·정책 등 정치색을 띄는 정당추천후보자보다 가능한 한 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유능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뽑는 것이 권력분립과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지방자치의 본질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건대, 이 법률조항은 기초의회의 구성 및 활동에 정당의 영향이 배제된 지역실정에 맞는 순수한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필요불가결한 입법이므로 그 목적의 중요성은 수긍할 수 있다. 이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초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는 정당표방을 할 수 없게 금지하는 수단을 채택한 것은 필요·최소한의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에 해당된다. 이 조항으로 말미암아 후보자는 직접 선거권자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이나 정당과 관련된 정보를 줄 수 없고, 선거권자로서는 이러한 정보를 알 기회가 제한된다고 할지라도, 간접적이나마 자신의 정치적 이념 및 정당과 관련된 정보는 정당의 당원경력의 표시를 통하여 알리도록 배려하고 있어(법 제84조 단서) 피해의 최소성도 충족하고 있다. 후보자의 정당표방금지로 인한 지방자치의 제도적 보장이라는 이익은 후보자의 공무담임권 및 선거운동 자유의 침해로 입게 되는 손해보다 이익이 더 크므로 두 법익에 대한 균형성의 요건도 갖춘 것이다. 따라서, 이 법률조항은 과잉입법금지의 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청구인의 공무담임권(피선거권)과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규정이 아니다.
그 밖의 공직선거와 비교할 때에 기초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에 한정하여 정당표방금지라는 정치적 생활영역에 있어서의 차별취급을 한 이 조항은 헌법이 추구하는 지방자치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입법목적에 필요불가결한 것으로서, 그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 또한 필요·최소한의 부득이한 경우로 인정되므로 평등원칙 위반의 위법도 없다.』
우리는 위 99헌바28 결정의 취지가 여전히 타당하고, 달리 판단할 사정의
변경이나 필요성도 없다고 생각하므로,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한대현 하경철 김영일 권 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주심) 주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