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6다260646 손해배상(기)
원고상고인겸피상고인
별지 원고 명단 기재와 같다.
피고피상고인겸상고
인
대한민국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16. 9. 23. 선고 2015나2040959 판결
판결선고
2017. 5. 11,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원고들의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피고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1) 원심은,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한센인 사건법'이라 한다)에 벌칙 적용에서의 공무원 의제 규정이 없는 점에 비추어 한센인사건법 제3조의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라 한다) 위원 및 같은 법 제4조의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 실무위원회(이하 '실무위원회'라 한다) 위원이라는 사정만으로는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 제3호의 공무원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공무원임을 전제로 진상규명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한 변호사 AZ이 소속된 법무법인 FU와 실무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한 변호사 FW이 소속된 FV 법무법인이 원고들의 이 사건 소송을 수임한 행위는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 제3호의 수임제한행위에 해당하여 위 각 법무법인의 이 사건 소송행위 및 이에 따른 원고들의 이 사건 소송행위는 무효라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변호사법 제31조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2) 한편 원심은, 가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과 실무위원회 위원이 변호사법 제31조 제1 항 제3호의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법무법인 FX 및 법무법인 FY이 법무법인 FU 및 FV 법무법인의 이 사건 소송행위를 전부 추인하고, 법무법인 FY, 법무법인 FX 및 법무법인 FQ이 법무법인 FU 및 FV 법무법인과 별도로 원고들을 대리하여 이 사건 소송행위를 한 이상 원고들의 이 사건 소송행위를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이 부분 판단은 가정적 · 부가적 판단에 불과한 것으로서, 앞서 본 바와 같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과 실무위원회 위원을 공무원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한 이상, 위와 같은 가정적·부가적 판단의 당부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므로, 이에 관한 상고이유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나.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1) 원심은, 원고들은 한센병에 걸려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로서, 피고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와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하거나 지휘·감독한 국립소록도병원, 국립칠곡 병원(애생원), 국립부평병원(나병원), 국립익산병원(소생원), 여수 애양원, 안동 성좌원, 밀양 신생원(이하 '국립소록도병원 등'이라 한다)에 입소하여 한센병 치료를 받으면서 거주하다가 1947년경부터 1973년경까지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소속 의사나 간호사 또는 피고가 설치한 의료강습소 출신 의료조수 등으로부터 낙태수술 또는 정관절제수 술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① 피고의 한센인에 대한 산아제한 정책과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은 법률의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수단의 적절성 및 침해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법익의 균형성도 없어, 결국 한센인의 인격권, 평등권, 자기결정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사생활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였다 할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되며, ② 피고가 위법한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하여 한센인 요양소로 하여금 한센인 남녀의 신체를 조사하여 가임 가능성 및 임신 여부 등을 조사하게 하고, 한센인의 남녀 동거를 금지하게 한 것도 한센인의 신체의 자유 및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이며, ③ 피고의 한센인에 대한 산아제한 정책과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은 한센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원천적으로 박탈하여 침해한 것으로서 한센인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① 남녀동거를 원하거나 출산을 원하면 한센인 요양소에서 퇴소할 수 있었더라도, 당연히 환자인 한센인을 치료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한센인 요양소가 정관절제수술을 하여야만 남녀동거를 허용하고 낙태수술을 하여야만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고 한센인 요양소에서 거주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낙태수술 및 정관 절제수술을 강요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그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피고가 한센인 요양소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방치한 것은 위법하며, ② 피고의 한센인에 대한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 그 자체가 위법하므로 한센인이 위법한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에 대하여 동의하였다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고, 설령 한센인이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을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이를 진정한 동의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③ 피고 소속 사설 공무원이 아닌 한센인 요양소 또는 의료강습소 출신 의료조수가 행한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 등에 대하여도 피고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의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의 적법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이어서 원심은 피고 산하 보건사회부(사회부, 보건부) 소속 공무원들이 원고들에 대하여 위법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고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을 받게 하거나 받게 하는 것을 방치하여 원고들의 신체를 훼손하고, 인격권, 평등권,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였다고 하여, 결국, 원고들에 대한 피고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2)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국가배상법상 '법령위반'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다.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하여
그리고 원심은, 한센인사건법의 제정을 통하여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에 대해 지원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실행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 이상,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피해자 등이 국가배상청구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법을 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파생된 법적 의미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취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라고 전제한 후 한센인사건법에 의하여 피해자로 결정받은 원고들로서는 위 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에 대해 신뢰를 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한데도 피고가 원고들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한센인사건법에 의하여 한센인피해사건의 피해자로 결정받은 원고들은 피고가 일률적 · 일괄적으로 그 피해보상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기대하였으나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자 비로소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사정이 있으므로, 진상규명위원회가 최초로 피해자로 결정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2)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멸시효의 기산점과 소멸시효주장 배척에 있어 적용되는 신의칙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2. 원고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불법행위로 입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이를 확정할 수 있고, 법원이 그 위자료 액수 결정의 근거가 되는 제반 사정을 판결 이유 중에 빠짐없이 명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다43165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것이 위자료 액수를 법관이 마음대로 산정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자료 액수의 산정에도 그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한계가 당연히 존재하고, 그 한계를 넘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액수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은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8다3527 판결 참조).
나. 원심은, 원고들에게 행하여진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의 위법성과 그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피고가 한센병의 치료 체계를 확립하고 한센병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계몽정책을 시행한 점, 한센병 환자들을 무상으로 치료하고 그들의 생활 기반을 마련해 주는 등의 도움을 준점, 한센인사건법을 제정하여 위로지원금, 의료지원금, 정착촌 개선 등 현재의 생활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점 등을 위자료 산정 사유로 참작한 후,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는 피고의 위법한 산아제한정책과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로 인한 것이어서 그 발생 원인이 동일한 점, 남성과 여성으로서 받았을 정신적 고통의 경중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의 사정을 들어,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을 받은 원고들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를 일률적으로 2,000만 원으로 정하였다.다.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1) 원심이 설시한 바와 같이 피고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인 원고들에게 시행한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 등은 법률상의 근거가 없거나 적법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는 바, 피고는 원고들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서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였고, 한센인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원고들이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였다.
2) 위와 같은 피고의 침해행위가 정부의 정책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여야 하나, 이 사건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이 행해진 시점에서 의학적으로 밝혀진 한센병의 유전 위험성과 전염 위험성, 치료 가능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한센병 예방이라는 보건정책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그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
3) 설령 원고들이 위와 같은 수술에 동의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동의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침해행위의 상대방인 원고들로부터 '사전에 이루어진 설명에 기한 동의(prior informed consent)'가 있어야 할 것인데, 원고들은 한센병이 유전되는지, 자녀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등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동의한 것으로 보일 뿐 그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기해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원고들을 비롯한 한센인의 형식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4) 더군다나 임신한 여성에게 행하여진 낙태수술은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성과 침습의 정도가 중하고, 형성 중인 생명인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그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경험칙상 강제로 모성을 상실당한 여성의 정신적 고통은 일반적으로 다른 유형의 불법행위로 입게 되는 정신적 고통보다 더 심각하다.
그런데 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230535 판결에서 피고의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한센인 피해사건의 위자료를 이 사건보다 상당히 높은 금액으로 정한 판결이 확정되었는바, 이 사건에서 위자료 액수를 그 사건과 달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라. 이러한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비록 위자료 액수가 사실심법원의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확정할 사항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심은 위자료 산정에 있어서 마땅히 참작하여야 할 제반 사정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음으로써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반하여 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원심판결에는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잘못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원고들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원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 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피고의 상고는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대법관김신
대법관김용덕
대법관김소영
주심대법관이기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