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외조부모가 외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고자 한 사안에서, 비록 친양자 입양의 형식적인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지만, 양육상황, 친양자 입양의 동기, 그 밖의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볼 때 친양자로 될 자의 복리를 위하여 친양자 입양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한 사례
결정요지
외조부모가 외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고자 한 사안에서, 비록 친양자 입양의 형식적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지만 가족질서의 혼란이 초래될 것이 분명하고, 친양자 입양의 동기가 사건본인의 복리보다는 생모의 복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 양육상황·친양자 입양의 동기·그 밖의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볼 때 친양자로 될 자의 복리를 위하여 친양자 입양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한 사례.
청구인, 항고인
청구인 1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동행 담당변호사 정희권)
사건본인
사건본인
주문
이 사건 항고를 기각한다.
청구취지 및 항고취지
제1심심판을 취소한다. 사건본인을 청구인들의 친양자로 한다.
이유
1. 이 사건의 개요
청구인들이 자신들의 외손녀인 사건본인을 친양자로 입양한다는 심판을 구함에 대하여, 제1심법원은 외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는 것은 사건본인의 복리를 위하여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하였고, 청구인들은 이에 불복하여 이 사건 항고를 제기하였다.
2. 기초 사실
가. 당사자 관계
청구인들은 1978. 3. 28.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이고, 사건본인은 2006. 5. 29. 청구인들의 딸인 청구외 1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청구외 2 사이에서 태어난 청구인들의 외손녀이다.
나. 친생부모의 동의
사건본인의 친생부모인 청구외 1과 청구외 2는 청구인들이 사건본인을 친양자로 입양하는 데 모두 동의하고 있다.
다. 사건본인의 양육상황
1) 사건본인의 출생 약 한달 이후 청구외 1과 청구외 2의 사실혼 관계가 파탄됨에 따라, 이 법원은 2008. 7. 25. 사건본인의 친권자로 청구외 1을 지정하였고, 2009. 9. 23. 생모의 성본 변경신청에 따라 사건본인의 성을 생모와 같이 ‘이(이)’로 변경하였으며, 청구외 2는 그 후 새로운 가정을 꾸려 사건본인이나 청구외 1과는 전혀 교류가 없다.
2) 청구인들은 사건본인의 출생 직후부터 청구인들의 주거지에서 청구외 1과 함께 사건본인을 양육해 왔는바, 현재 5세인 사건본인은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청구인들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닌 ‘아빠, 엄마’로 알고 그렇게 호칭하고 있으며, 생모인 청구외 1은 자신의 언니로 알고 ‘ ○○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라. 청구인들의 양육능력
1) 청구인 1은 1953년생, 청구인 2는 1957년생으로 외조부모로서는 비교적 연로하지 않은 편에 속하고, 건강상태도 양호하고 부부관계도 매우 원만하며, 5남매도 모두 잘 성장하여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아무런 문제가 없고, 가족들 간의 관계도 매우 화목하다.
2) 청구인 1은 부동산 개발업체의 대표로서 약 5억 원 상당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월 300만 원 정도의 고정 수입도 있어, 사건본인을 양육하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3) 사건본인의 생모인 청구외 1은 특별한 재산이 없고, 월 70만 원 정도의 수입을 받으며 부동산 중개업체의 경리사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청구인들의 주거지에서 함께 살고 있다.
마. 친양자 입양의 동기
청구인들은 현실적으로 청구외 1이 사건본인을 독자적으로 양육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건본인을 홀로 양육하는 미혼모의 처지로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평생 동안 사건본인을 책임지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청구외 1의 부모된 입장에서는 사건본인을 제3자에게 입양시키고 딸에게 새 삶을 살라고 권유하지 않을 수 없으나, 한편 사건본인의 외조부모 입장에서 보면, 청구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사건본인을 잘 양육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이 이미 갖추어진 상황이고, 사건본인도 이미 5년째 청구인들을 부모로 알고 성장해 왔고, 곧 사건본인의 학교생활 등이 시작할 것을 감안할 때 법률적으로도 청구인들의 친자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도움이 되므로, 사건본인을 제3자에게 입양시키는 것보다는 가족인 자신들이 명실상부한 부모가 되어 주는 것이 사건본인의 복리를 위해서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즉, 청구인들의 딸의 인생을 생각할 때 사건본인을 제3자에게 입양시키지 않을 수 없고, 이럴 경우 제3자 보다는 청구인들이 양친이 되는 것이 사건본인의 복리를 위해서 도움이 되므로, 이 방법이야말로 자신의 딸인 청구외 1과 사건본인, 그리고 청구인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3. 판단
가. 민법의 관련 규정
제877조 (양자의 금지)
존속 또는 연장자는 이를 양자로 하지 못한다.
제908조의2 (친양자 입양의 요건 등)
① 친양자(친양자)를 하려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요건을 갖추어 가정법원에 친양자 입양의 청구를 하여야 한다.
1. 3년 이상 혼인 중인 부부로서 공동으로 입양할 것. 다만, 1년 이상 혼인 중인 부부의 일방이 그 배우자의 친생자를 친양자로 입양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친양자로 될 자가 15세 미만일 것.
3. 친양자로 될 자의 친생부모가 친양자 입양에 동의할 것. 다만, 부모의 친권이 상실되거나 사망 그 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4. 제869조 의 규정에 의한 법정대리인의 입양승낙이 있을 것.
② 가정법원은 친양자로 될 자의 복리를 위하여 그 양육상황, 친양자 입양의 동기, 양친(양친)의 양육능력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친양자 입양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1항 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
제908조의8 (준용규정)
친양자에 관하여 이 관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양자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나. 친양자 입양에 대한 판단 기준
우리의 관습상 양자제도는 원래 가(가)의 계승을 위한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차 “자(자)를 위한” 양자제도로 발전해 오다가 2005년의 민법 일부 개정에 의하여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현재의 친양자 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르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법은 친양자 입양을 위한 요건으로는 ① 3년 이상 혼인 중인 부부로서 공동으로 입양할 것, ② 친양자로 될 자가 15세 미만일 것, ③ 친양자로 될 자의 친생부모가 친양자 입양에 동의할 것, ④ 친양자가 15세 미만일 경우 법정대리인의 승낙이 있을 것만을 규정하고 있고, 제한사유로는 일반 입양의 규정을 준용하여 “양자가 존속 또는 연장자”인 경우만을 금지하고 있을 뿐, 그 이외에 특별한 법률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친양자 입양은 친생부모와의 친족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고, 양부모와는 새롭게 혼인 중의 출생자 신분을 갖게 되는 강력한 신분형성적 효력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여, 민법은 친양자 입양의 경우 일반적인 입양과 달리 ① 가정법원의 심판을 거치도록 하고, ② 가정법원이 친양자로 될 자의 복리를 위하여 그 양육상황, 친양자 입양의 동기, 양친의 양육능력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친양자 입양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친양자 입양청구를 기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친양자 입양의 허용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친양자 입양제도의 도입 경위에 비추어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되, 위와 같은 강력한 신분형성적 효과가 발생함을 고려하여 친양자 입양의 동기와 현실적 필요성, 가족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도 신중히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다. 이 사건의 판단
1) 앞서 인정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신청은 민법 제908조의2 제1항 및 민법 제877조 가 정한 형식적인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고, 청구인들의 양육능력도 충분한 것으로 판단되며, 딸과 손녀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사건 신청에 이른 청구인들의 애달픈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2) 또한 우리 민법은 존속 또는 연장자를 양자로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우리 종래의 관습인 “양자는 양부의 자(자)와 동일한 항렬에 있는 근친의 남자이어야 한다”는 소목지서(소목지서)를 요구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대법원 1991. 5. 28. 선고 90므347 판결 참조), 개별적·구체적인 사정을 살피지 않고 외조부모가 외손녀를 입양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공서양속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3) 그러나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입양의 동기, 현재의 양육상황, 청구인들과 사건본인의 가족관계 등을 종합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은 사유로 이 사건 친양자 입양이 사건본인의 복리를 위하여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가) 가족질서의 혼란 초래
생모가 이미 주1) 사망 하였다거나, 생모와의 현실적 관계가 이미 단절되어 전혀 교류가 없는 경우와 달리 생모가 생존하여 사건본인 및 청구인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이 사건에 있어서, 청구인들이 사건본인을 친양자로 입양하면 외조부모는 부모가 되고, 생모와 사건본인은 자매지간이 되는 등 가족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당장은 사건본인이 청구인들을 부모로 알고 있어 큰 혼란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건본인과 생모 사이의 법률적 친족관계가 단절되더라도 생물학적, 자연적인 혈족관계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고, 오히려 이런 관계의 복잡성으로 인해 가족들의 실생활이 매우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워 사건본인의 정신적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으며, 언젠가 세월이 흘러 결국 사건본인이 자신의 출생을 둘러싼 진실을 알게 될 경우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가족관계의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에 빠지게 될 것임은 명백하다.
따라서 당장은 이 사건 입양을 허용하는 것이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길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언젠가 결국 사실이 밝혀질 때 사건본인의 복리에 오히려 심각한 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나) 친양자 입양의 동기
친양자 입양의 동기가 오로지 자의 복리만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다른 동기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으나, 친양자 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적어도 자의 복리가 친양자 입양의 최우선적인 동기가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청구인들의 주장 자체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입양은 미혼인 청구외 1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사건본인이 더 이상 자녀로 기재되지 않게 함으로써 향후 청구외 1이 보다 쉽게 혼인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주된 동기인 것으로 보이고, 실제 심문 과정에서도 청구인들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굳이 이러한 점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만약 이 사건 친양자 입양이 허용되지 않을 경우 청구외 1의 장래를 위하여 부득이하게 사건본인을 제3자에게 입양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진술하였다.
그렇다면 이 사건 친양자 입양은 그 주된 동기가 사건본인의 복리보다는 오히려 생모의 복리에 있고, 친양자 입양은 생모의 복리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고 판단되므로, 이러한 동기에 비추어 이 사건 친양자 입양이 자의 복리를 위하여 적당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
다) 친양자 입양의 현실적인 필요성
친양자 입양은 일반적인 입양과 달리 친생부모와의 친족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강력한 신분형성적 효력을 가지므로,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반드시 친양자 입양의 방법에 의하여야 할 현실적인 이익 내지는 필요성이 존재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청구인들은 사건본인의 출생 직후부터 함께 거주하면서 생모를 대신하여 사건본인을 사실상 직접 양육해 왔고, 사건본인도 이미 5세가 되어 이와 같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친양자 입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가족관계등록부상 기재가 변동되는 것 이외에 현실적으로 사건본인의 양육환경이나 양육조건이 변경될 여지가 없고, 실제로 현재 상태에서 청구인들이 사건본인을 양육하는 데 어떠한 현실적인 제약이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친양자 입양을 해야 할 현실적인 이유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만약, 청구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사실상이 아닌 법률적 의미의 양육권이라면 굳이 가족관계의 본질을 훼손하는 친양자 입양의 방법에 의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여, 친생부모가 친권을 포기하고 청구인들이 사건본인의 후견인이 되어 양육권을 행사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해결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라. 소결론
따라서 청구인들의 이 사건 친양자 입양 신청은 비록 그 형식적인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지만, 친양자로 될 사건본인의 복리를 위하여 그 양육상황, 친양자 입양의 동기, 그 밖의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볼 때 친양자 입양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4. 결론
그렇다면 청구인들의 이 사건 친양자 입양 신청은 이유 없어 기각하여야 할 것인바, 제1심심판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청구인들의 항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주1) 우리나라도 과거에 소목지서의 예외로서 ‘백골양자(백골양자)’라 하여 손자항렬에 있는 자를 입양하는 관습이 있었으나, 이 경우도 자(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그 손자가 있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어서 부자간이 실제로 형제지간으로 변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