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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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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법 1991. 12. 30. 선고 91노1359 제2형사부판결 : 상고
[관세법위반등][하집1992(3),431]
판시사항

가. 관세법상 수입의 개념

나. 일본으로부터 외항선으로 운항하기 위해 중고선박을 매수하면서 이를 파나마국에 편의치적한 경우 관세포탈의 구성요건이 되는 수입의 인식 및 관세포탈의 범의 유무

다. 선박의 편의치적이 관세법상의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에 해당하는지 여부

판결요지

가. 관세란 물품이 일정한 관세영역(즉, 국가영역으로부터 보세구역을 제외한 영역)을 드나드는 경우에 부과되는 세금이고, 관세법 제2조 제1항에 의하면 수입이라 함은 외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도착한 물품을 우리나라에 인취하는 것(보세구역을 경유하는 것은 보세구역으로부터 인취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인취란 외국물품을 관세법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내국물품으로서 자유유통상태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나. 피고인이 선박을 일본 선주사로부터 나용선하거나 또는 할부조건으로 매수하여 수리비가 저렴한 국내의 조선소에서 이를 수리하고, 한국선원을 승선시켜 중국과 일본 간의 항로에 투입할 의사로 선박을 파나마 국적으로 편의치적한 경우 이를 국내해운시장에서의 자유유통이나 사용을 위해 수입하려 했다 할 수 없고, 피고인이 수리를 목적으로 한 위 선박의 입항신고에 있어 관세가 부과되는 물품임을 알면서 관세를 납부함이 없이 이를 수입인취하였다고 할 수 없어 관세포탈의 범위를 인정할 수 없다.

다. 편의치적의 관행은 선박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 해운업계의 불가피한 경제현상으로서 세계의 모든 해운국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국제적 관례이며, 만약 편의치적선의 소유를 처벌한다면 우리 해운업계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게 될 뿐 아니라 선주의 영업의 자유 내지 선박국적 선택권을 과도히 제한하여 헌법상의 재산권보장을 침해하게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사회적 상당성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선박의 편의치적이 관세법상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관세포탈죄로 처벌할 수 없다.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및 검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사실관계

원심이 적법하게 조사한 증거들을 기록에 비추어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의 배경 및 경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피고인은 1985. 종전부터 거래관계로 알게 된 일본 동경 소재 뉴세븐트레이딩주식회사(New Seven Trading Co. Ltd)의 사장으로서 중고선박 수출을 업으로 하고 있는 공소외 후꾸찌 도시오로부터 1968년 일본에서 제작된 총톤수 467.23톤의 일본 국적이었던 중고선박 1척을 일화 금 500,000엔에 구입한 바 있었다. 피고인은 위 선박을 파나마 국적으로 치적하여 콜롬비아호라고 선명을 바꾸고 태국, 인도네시아, 호주 등지로 냉동수산물 운반업을 영위하여 오다가 그 운항이익으로 대금을 전액 지급한 후, 1987년 8월경 아프리카의 가나국 소재 선박회사에 위 선박을 미화 금 120,000불에 매도처분하였다.

그 당시 피고인은 위 선박을 소유하기 위하여 1985.3.경 파나마국 파나마시를 소재로 하는 부산 이스턴 쉬핑주식회사(Eastern Shipping Busan S.A., 이하 명목상 회사라 한다)를 설립하였는데, 위 파나마국의 법인등기부상 사장은 피고인이었으며, 부사장은 위 후꾸찌 도시오, 비서는 후꾸찌 카쥬꼬, 회계는 후꾸찌 나미로 등록되었다. 내국인이 해외에 자본을 투자하여 사업을 영위하려면 한국은행으로부터 해외투자허가를 받아야 함에도 피고인은 위 회사를 설립함에 있어서 그와 같은 투자허가를 받았거나 실제로 위 법인에 어떠한 자금도 투자한 사실이 없었으며, 위 회사는 실제상 사무실이나 주재원도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였다.

그 후 피고인은 다시 위 공소외 후꾸찌 도시오로부터 일본에서는 경쟁력이 없어 해외에 매각되는 중고 냉동운반선을 매수하여 운영하여 보라는 제의를 받았다. 피고인이 매수하기로 한 선박은 1975년 일본에서 건조된 총톤수 79.99.톤의 철갑 냉동어선으로서 당시 국적은 일본국, 선명은 제18신영마루호(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한다)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수출입공고(1989.12.9. 상공부 고시 제89-40호)화 대외무역법시행령 제35조의 규정에 의한 수출입 별도 공고(1989.12.19. 상공부 고시 제89-42호) 제1-3조 제2호에 의해 중고선박 중 원양어업용과 냉동운반선은 440톤 이상으로서 선실수요자 확인분으로서 상공부장관이 수입승인(추천)한 품목만이 수입 가능하였고, 그 밖에 위 동종의 선박은 수입할 수 없었다.

피고인과 위 회사간에 1990.6.23. 맺어진 이 사건 선박매매계약에 의하면 대금은 일화 금 2,000,000엔이며, 대금결제는 피고인이 위 선박을 운행하여 얻은 이익으로 지급하기로 약정되었다.

위 계약에 따라 피고인은 1990.9.5 이 사건 선박에 관하여 위 명목상의 부산 이스턴 쉬핑주식회사를 소유자로 하고, 선박명을 제18신영마루호에서 뉴부영호로 변경하여 주한 파나마 대사관에서 파나마 국적으로 등록함과 동시에 가선박국적증서를 교부받은 후, 이를 수리하기 위하여 1990.10.5. 부산항에 입항하게 하였다. 피고인은 수리비가 저렴한 한국에서 1개월 예정으로 위 선박을 수리한 후 선박검사를 받고 한국선원을 승선시켜 중국 산동성에서 일본 하관항까지 피조개를 운반하는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당시 미수교국이었던 중국에 한국의 국적선은 입항할 수 없었다.

피고인은 위 선박이 1990.10.5. 부산항에 입항한 직후 부산세관으로부터 수입금지된 중고어선을 불법 도입하였다는 이유로 범칙조사를 받고 동년 10.16. 구속되었다. 검거 당시 피고인은 이 사건 선박의 선박양도허가서, 수출허가신청서 및 송장과 선박국적증명 등을 소지하고 있었고, 국제상업해상무역선 해상통신허가증상에는 선박소유자 및 주소가 피고인 및 그 주소로 되어 있었다.

그 후 피고인은 금 7,000,000원을 투입하여 위 선박을 수리하였으며, 위 선박은 1991.7.3. 부산항을 출항한 이래 중국 청도항으로부터 일본 하관항 간의 피조개 운송을 위해 운항되고 있다.

2. 검사의 공소사실 및 원심의 판단

검사의 피고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선령이 16년, 총톤수 79.99톤인 이 사건 선박이 현행법상 수입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도 수리를 위한 것처럼 위장하여 수입목적을 달성하기로 마음먹고 1990.6.23. 이를 공소외 뉴세븐 트레이딩주식회사로부터 대금 일화 금 2,000,000엔에 매수한 후 1990.9.5. 주한 파나마 대사관에서 피고인이 이미 1985.3. 경 피고인을 대표자로 하여 설립등기한 부산 이스턴 쉬핑주식회사라고 하는 가공회사를 소유자로 하고, 국적은 파나마국으로, 선명은 뉴 부영호로 각 변경하여 선박국적증서를 받은 다음, 이를 근거로 하여 1980.10.5. 부산항에 입항시킨 뒤, 동 선박이 수리목적으로 입항한 것 처럼 동일자 부산세관에 입항신고하여 불법 도입함으로써 위 선박 시가 금 166,317,410원에 대한 관세 금 2,698,500원 및 방위세 금 2,698,500원을 포탈하였다고 한다.

원심은 검사의 위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이되, 이 사건 선박의 국내도매가격을 금 29,155,000원으로 평가하여 피고인이 사위 기타부정한 방법으로 위 인정 과세가격에 대한 관세 및 방위세 각 금 473,040원을 포탈한 사실을 인정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함과 동시에 피고인으로부터 이 사건 선박을 몰수하였다.

3. 항소이유의 요지

검사의 이 사건 항소이유의 요지는, 피고인은 관세법위반으로 3차례 통고처분을 받는 외에도 다른 전과가 있을 뿐 아니라 현행법상 수입이 금지된 선박을 수입한 이 사건 사안에 비추어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량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며, 원심은 검사가 금 166,317,410원의 추징을 구형하였음에도 압수되지 아니한 이 사건 선박을 몰수한다고 판결하였으니 거기에 몰수 및 추징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는 데 있고,

피고인의 항소이유의 요지는, 피고인은 일본인 친지로부터 이 사건 선박의 운영권을 위임받고 수리비가 싼 한국에서 수리하여 중국과 일본 간의 피조개 운송에 투입하려 했을 뿐 이 사건 선박을 취득한 것이 아니어서 관세포탈의 범의도 없었고, 또 이러한 경우에는 관세포탈죄가 성립되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고, 피고인에 대한 원심의 양형은 사업상 수시 해외출장이 불가피한 피고인에게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하는 데 있다.

4.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먼저 피고인의 항소이유를 본다.

원심은 피고인의 위 공소사실 적시 소위에 대해 이를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관세를 포탈한 것이라고 단정하여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에게 과연 관세포탈이 구성요건이 되는 수입의 인식과 나아가 관세포탈의 범의가 있었는가 하는 점과 피고인이 위 선박을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수입하였는가의 여부에 관하여 차례로 살펴본다.

가. 선박의 특수성과 그 수입에 있어서 관세포탈의 범의

이 사건의 피고인이 외국선박을 실제로 매수 소유하면서 한국국적으로 취득치 아니하고 편의치적국에 등록한 경우, 특히 그 선박이 외항선인 경우에 수입이 이루어졌다고 볼 것인가, 그리고 피고인이 위 일본 선주사와의 매매계약에 의해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하였고 나아가 피고인에게 관세법상의 관세포탈죄가 구성요건으로 규정하는 사실에 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볼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하여는 각별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이 사건 범칙수사에 당한 수사당국의 견해는 관세법상 수입의 개념은 외국물품이 관세선(영해)를 넘어 국내에 인취되는 것을 말하는데, 피고인은 그 소유선박의 입항시에 수입신고 및 면허의 절차를 취하고 관세를 납부하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입항목적을 수리목적이라고 허위로 신고하여 범행을 하였다는 것이고(위 제1항사실관계의 모두에 설시한 바와 같이 피고인이 이전에 같은 형태로 매수하였던 선박은 우리 나라의 항구에 입항한 일이 없어 수입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입건도 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피고인은 위 판시사실과 같이 이 사건 선박에 대한 일체의 권리문서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는 점에 관한 증명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하여 피고인은 위 공소의 후꾸찌 도시오로부터 이 사건 노후 선박의 운영권만을 위임받아 이를 수리하여 중국과 일본 간의 해산물 수송에 투입하여 했을 뿐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한 일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관세란 물품이 일정한 관세영역(즉, 국가영역으로부터 보세구역을 제외한 영역)을 드나드는 경우에 부과되는 세금이고, 관세법 제2조 제1항 에 의하면 수입이라 함은 외국인으로부터 우리 나라에 도착된 물품을 우리 나라에 인취하는 것(보세구역을 경유하는 것은 보세구역으로부터 인취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인취란 외국물품을 관세법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내국물품으로서 자유통상태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선박의 수입에 있어서는 선박이 동산인 보통의 다른 수입 물품( 대외무역법 제6조 제2호 참조)과 다른 특성을 갖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선박은 국적과 선적을 갖고 그 자체가 권리주체로서의 특징을 갖게 되며, 특히 외항선인 경우에는 국제적인 성격을 갖게 되어 국내의 해운시장과는 무관하게 국제간의 항로와 국제해운시장에서 활동하게 되는 점에서 특수성을 갖기 때문이다.

앞서 판시한 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선박을 파나마국에 편의치적한 것을 보면 위에서 본 의미에서 국내 해운시장에서의 자유유통이나 사용을 위해 이를 수입하려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선박 법 제6조 에 의하면 한국선박이 아니면 불개항장에 기항하거나 국내 각 항간에서 여객 또는 화물의 운송을 할 수 없으며, 편의치적선은 국내시장에서 거래될 수도 없고, 담보제공도 불가능하다). 오히려 피고인은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선박을 위 공소외 일본 선주사로부터 나용선하거나 또는 할부조건으로 매수하여 수리비가 저렴한 국내의 조선소에서 이를 수리하고 한국 선원을 승선시켜 중국과 일본 간의 항로에 투입할 의사였다고 봄이 보다 합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위 선박의 대금이 완불되기 이전에 그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피고인이 수리를 목적으로 한 이 사건 선박의 입항신고에 있어 관세가 부과되는 물품임을 알면서 관세를 납부함이 없이 이를 수입인취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대외무역법시행령 제5조 제4호 는 수입이라 함은 매매, 교환, 임대차, 사용대차, 증여 등을 원인으로 외국으로부터 국내로의 물품의 이동과 유상으로 외국에서 외국으로 물품을 인수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관세의 부과에 있어 물건을 인취하게 된 법적인 원인 여하는 문제될 수 없고 따라서 이 사건 피고인이 위 선박의 소유권을 취득한 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외국에서 외국으로 물품을 인수하는 것은 위와 같은 관세법상의 수입개념에는 포섭될 수 없고, 특히 이 사건에서와 같이 관세형법으로서 관세법의 처벌조항을 해석하는 경우에는 위 대외무역법상의 확장된 수입개념을 유추적용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할 것이다).

나.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

(1) 편의치적에 관한 종전의 판례

원심은 피고인이 이 사건 선박을 매수하면서 파나마국에 가공의 회사를 설립하여 편의치적한 사실을 관세법 제180조 가 규정하는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위 선박을 수입한 것으로 판단하였는데, 그렇다면 과연 위와 같이 편의치적의 방법으로 선박을 소유하는 것이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에 해당하는가의 여부에 관하여 보기로 한다.

종전의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실제로 중고 선박을 매수하면서 그로 인한 처벌을 피하기 위하여 혼듀라스에 유령회사를 만들어 그 회사가 위 선박을 매수한 것처럼 위장하고 마치 위 선박의 수리를 위하여 입항시킨 양 부산항에 반입하였다면 이는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관세를 포탈한 것이어서 관세포탈죄를 구성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대법원 1990.3.27. 선고 89도2587 판결 ). 그러나 위 판례에 대하여는 선박국적제도의 의미변화와 이른바 편의치적제도의 실제상 의의에 비추어 새로운 검토를 요한다.

(2) 선박국적제도의 의미변화

근대의 강력한 해운국가는 선박에 대한 국가적 보호를 베푸는 조건으로서 선박의 국적부여에 관해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자국인 소유(property), 자국승인선(seamen) 및 자국내 건조(origin)를 국적 부여의 요건으로 하여 왔다. 등록의 결과 국적이 부여되면, 등록국의 국기를 게양하고 공해를 항행할 자유를 갖게 되었으며, 기국(기국)은 그 국적선박에 대해 보호와 동시에 통제의 권한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주권평등의 국제법 정신에 따라 해운자유의 원칙이 일반화되면서 선박의 국적 여하는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특히 세계2차대전 후부터는 이른바 편의치적을 허용하는 나라가 많아지면서 위 3가지 등록요건 중 어느 요건도 충족하지 않는 등록선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선주들은 선박경영에 있어서 경쟁력에 유리한 쪽으로 국적선택권을 행사하게 되었고, 선박을 소유 운항함에 있어서 ① 납세 ② 안전 및 오염 규제 ③ 자국선원의 승선의무 ④ 비상시의 징발의무 등 여러면에서 부담이 적은 국가의 국적을 선호하게 되었다.

(3) 편의치적에 대한 법적인 평가

이와 같이 이른바 편의치적(flag of convenience, 개방등록제 open registry라고도 한다)의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선박국적제도에 대한 종전의 개념이 변화하여 선주가 소유선박에 대한 국적선택권을 갖게 되고, 이러한 선주들의 수요에 응하여 종전에 요구되던 선박국적 부여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외국선박의 자국 등록을 유치하는 나라들(리베리아, 혼듀라스, 파나마 등 이르바 편의치적국)이 생겨남으로써 탄생하게 되었다. 그 원인은 주로 선진해운국가의 선주들이 선원의 인건비상승, 선원노조의 압력 등으로 국제경쟁력을 잃게 되고, 특히 1980년대에 이르러 국제 해운업계에 몰아 닥친 구조적 불황으로 인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선주들이 그 소유 선박을 대거 편의치적국으로 이적(flagging-out)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편의치적선의 법적인 운영형태를 보면 선주가 리베리아, 혼듀라스, 파나마 등 선박의 국적취득이 용이할 뿐 아니라 선박의 운영에 대해 거의 규제하지 않는 국가에 서류상의 법인(이른바 paper co-mpany라고 한다)을 설립하고, 그 명의로 선박을 등록한 뒤 그 나라의 선박국적증서를 교부받아 그 나라의 기를 게양하여 운항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와 같이 편의치적선은 기국으로부터 충분한 감독과 통제를 받지 않게 되어 선박 운항의 안전도, 선원의 근로조건, 해양오염규제등에 있어서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고, 1958년의 국제연합 해양법회의가 채택한 공해에 관한 조약은 그 제5조에서 선박과 그 등록국 간에 진정한 연계관계(genuine link between the state and the ship)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였고, 1982년의 제3차 해양법회의에서 채택된 해양법조약에서도 그 내용이 그대로 수용되었으나, 그 실효성은 의문시되었고, 그 요건의 존부는 국제해운계에서 계속 논란되어왔다.

그럼에도 편의치적선은 국제해운업계에서 살아 남기 위한 선주들의 해운업 경쟁력 강화노력의 필연적 결과로서 점차 증가하게 되었으며, 각 해운국 역시 이와 같은 경제적인 흐름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원의 해운항만청과 해운산업연구원 및 한국해기사협회에 대한 사실조회 회신에 의하면 현재 세계의 상선대 중 편의치적선의 선복량(선복량)은 3분의 1에 이르고 있다.

(4) 우리 나라에서 편의치적선의 실태

앞서 든 사실조회 의하면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1991년 편의치적선이 1,000톤급 이상은 111척으로 집계되고 있으며(여기에는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Bare Boat Charter with Hire Purchase)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그 미만의 것도 100여 척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이나 대규모 선박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편의치적선은 중소형선박으로서 선원의 경력을 가진 영세해운업자나 외국 선사의 국내 해운대리점업, 선박관리업 또는 운송주선업을 영위하는 중소 해운업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 실정인데, 그것은 영세 해운업자가 손쉽게 중고선박이나마 얻어 경쟁력있는 운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해운선사가 선박을 확보하려면 중고선의 도입, 국적취득 조건부 나용선계약에 의해 국내조선소에서 신조하는 방법 등이 있으나 영세, 중소업자가 위와 같은 방도를 찾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 나라 영세업자가 취득하게 되는 중고선박은 일본으로부터 나용선되거나 매각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의 해운정책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선박거래의 특수한 형태(이른바 (charter back선 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해운회사는 그가 보유한 중고선박 중 인건비의 비중이 높아 적자를 면할 수 없는 중소형선박을 인접 타국, 특히 한국 등의 해운회사에 장기 나용선하거나 매각하고, 상대방 외국선주는 자국선원을 승선시켜 정기용선으로(보통 3년 내지 5년 동안) 원선주에게 재용선하여 원선주의 화물을 계속 운송하여 주고, 그 선박의 대금채무는 용선기간 동안의 용선채권으로 순차 상계하며, 선박대금의 원리금상환이 완료하면 상대방이 선박의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도 이러한 형태로 이 사건 선박을 매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원선주로서는 필요한 선복량을 확보하면서 선원비 차액 만큼의 원가를 절감하게 된다(기록에 편철된 참고자료, 최재수, '선박국적제도의 변질과정에서 본 세계해운의 구조적 변화', 한국해운학회지 제9호 48면 이하 참조).

(5) 편의치적선에 대한 법적 취급의 방향

앞서 본 바와 같이 편의치적선은 자본주의의 경제원리로서 경쟁력향상을 지향하는 국제해운업의 자연스런 경제현상이다. 국제해운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한 이러한 선주의 노력은 저지될 수 없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규제를 감행한다면 나라의 해운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노르웨이나 영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국적선대의 이적을 막기 위해 세금을 감면하거나 선원채용 등 부담면에서 편의치적선과 비슷한 대우를 해주는 제2선적제도를 창설하여 재이적(reflagging)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실정을 보면 해운당국에서도 편의치적선의 소유 및 운영실태에 대하여는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며, 그에 대한 법적인 처우는 단지 위장외국선박으로서 항만국통제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이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관세포달범으로서 규제, 단속되고 있을 뿐 그에 대한 배려나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편의치적선을 보유 또는 운행하는 중소 해운업자들의 이익은 이미 항로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 선사의 기득권보호 노력이나 조선업 육성정책 때문에 항상 무시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해운국가이면서도 선복량의 확보가 충분치 아니하고 1980년대 이래 해운업의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어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고 할 우리 나라의 경우, 편의치적선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정책은 지양되어야 하고, 해운정책당국이 결정한 정책적 문제에 속한다고 할 것이지만 제2선적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법적인 차원에서 선박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적 관례로서 인정될 뿐 아니라 다수의 중소 해운기업이 선박확보를 위해 편법으로 이용하고 있는 편의치적제도는 그 자체가 탈법적인 방법이라거나 사회적 상당성이 없는 부정한 방법이라고 보아 이를 처벌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형법 제20조 참조, 우리의 해운당국과 세관당국도 그것을 불법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특히 이 사건과 같은 사례에서 피고인을 처벌한다면 우선 헌법상 재산권보장과 관련하여 처분의 자유 내지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선주의 선박에 대한 국적선택권을 부당하게 제한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선박에 대한 수입관세는 2.5%에 불과함에도 관세탈죄를 적용하면 필요적으로 그 선박은 몰수되고 몰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 선박의 국내도매가격에 상당하는 액수를 추징하게 되어 있어( 관세법 제198조 ) 그 처벌규정은 엄격하기 때문이다.

편의치적을 적법한 것으로 허용하는 경우에 야기될 폐해에 대하여 우려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첫째로 국적선대의 대량 이적이 우려되고 우리 해운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해운정책상 금융, 항로배정, 화물의 우선적취 등 국가적 지원을 받는 대기업선사가 그 보유선박을 편의치적하리라고 생각되지 않으며( 해운산업육성법 제4조 , 제6조, 제16조 등 참조), 설사 이적한 경우에도 실질상 내국인이 소유하는 편의치적선은 바로 잠재적인 상선대(이른바 지배선단)를 구성하여 우리 나라의 해운력의 일부를 이룬다고 할 것이고, 편의치적선을 규제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중소업자의 선박확보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우려는 큰 문제가 아니다. 둘째로 편의치적선은 국적선과의 경쟁에서 운임을 덤핑하여 항로질서를 교란한다거나, 항행상의 안전기준을 지키지 아니하거나 또는 해양오염 등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하는 점에 대하여는 항만국으로서의 통제(Port State Control)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외국인 소유의 편의치적선이 점증하는 현상을 직시한다면 내국인의 편의치적선 소유를 규제하는 것은 우리 해운업을 위해서도 결코 유리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셋째로 편의치적을 허용함으로써 해운업으로 인한 소득에 대한 과세가 어려워진다는 과세관청의 입장에 대하여는 외환관리를 엄격히 하거나 해외투자로 인한 세원포착에 주의를 기울이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이 사건과 같은 사안에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가져오는 과중한 기본권침해의 정도에 비추어 보면 국고수입이 줄어든다는 단순한 사유만으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아 피고인이 이 사건 선박을 매수함에 있어 파나마국에 편의치적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하더라도 우리 법체제상 사회적 상당성을 결하는 이른바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다. 결 론

결국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이 사건 선박을 수입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을 가졌다거나 따라서 관세포탈의 범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거가 없으며, 피고인이 편의치적의 법적 형식에 의해 선박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소위가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므로 피고인의 소위는 관세포탈의 범죄사실에 관한 증명이 없거나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이 사건 선박에 관한 피고인의 관세납세의무가 성립됨을 전제로 한 방위세법위반의 공소사실 역시 범죄로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이를 유죄로 판단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내지 관세포탈의 법리에 관한 오해가 있다 할 것이고, 이 점을 탓하는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다.

5. 당원의 판단

그러므로 당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변론을 거쳐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인에 대한 검사의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상술한 제2항 기재와 같으나, 이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한편 피고사건이 유죄임을 전제로 하는 검사의 항소는 더 나아가 살펴볼 것 없이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박용상(재판장) 류수열 박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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