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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9도14770 전원합의체 판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일부인정된죄명: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배임]〈동산담보권 사건〉[공2020하,1905]
판시사항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의미 /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동산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동산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또는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된 경우,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및 이때 채무자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다수의견]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내지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고,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하 ‘동산채권담보법’이라 한다)에 따른 동산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동산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또는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채무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대법관 김재형의 반대의견] 동산 양도담보는 채권담보를 목적으로 동산소유권을 채권자에게 신탁적으로 이전하는 형태의 양도담보인 데 반하여, 동산담보권은 동산채권담보법에 따라 창설된 새로운 형태의 담보물권이다.

담보권설정자의 동산담보권 침해 행위는 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동산담보권 설정 전의 채무불이행과 동일한 차원에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담보약정을 이행할 의무가 채무자 자신의 사무라고 해서 동산담보권 설정 이후의 사무까지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채권자가 동산담보권을 취득한 다음 담보권설정자가 부담하는 담보목적물을 유지·보전할 의무, 나아가 담보권 실행에 협조할 의무는 담보권설정계약 당시와는 그 성질과 내용을 달리한다. 이러한 의무는 계약 당시의 단순한 채권적 의무를 넘어 동산담보권자의 담보목적물에 대한 교환가치를 보전할 의무로서의 내용과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동산담보권은 저당권과 마찬가지로 동산의 교환가치를 지배하는 물권이다. 동산에 대한 직접적인 사용·수익권이나 처분권은 여전히 담보권설정자에게 남아 있고 담보권자는 목적물이 가지는 교환가치만을 파악할 뿐이다. 담보권설정자는 동산을 사용·수익하거나 처분할 수 있어도 동산의 담보가치, 즉 교환가치를 침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담보권설정자가 담보물을 보관하거나 담보가치를 유지할 의무는 담보권자가 동산의 교환가치를 지배할 권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담보권설정자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동산담보권이 침해된 경우와 같은 물권 침해의 경우까지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고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은 오히려 그 의도와는 다르게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 또는 형사처벌의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담보권설정자가 동산에 관하여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이후 담보권자에게 부담하는 담보물 보관의무와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 담보권설정자가 신임관계를 저버리고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함으로써 동산담보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당사자 사이의 본질적·전형적 신임관계를 위반한 것으로서 배임죄에 해당한다.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변호사 정해원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배임의 점에 대하여

가.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내지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고,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하 ‘동산채권담보법’이라 한다)에 따른 동산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동산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또는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채무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나.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공소외 1 주식회사(이하 ‘이 사건 회사’라 한다)의 대표이사인 피고인이 공소외 2 주식회사(이하 ‘○○은행’이라 한다)으로부터 대출받으면서 ○○은행과 이 사건 회사 소유의 레이저 가공기 2대(이하 ‘이 사건 기계’라 한다)를 포함한 기계 17대에 대하여 동산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위 계약에 따라 ○○은행이 그 담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동산담보로 제공된 이 사건 기계를 보관하여야 할 임무가 있었음에도, 피고인은 이 사건 기계를 처분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은행에 재산상 손해를 가하였다는 것이다.

다.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회사의 ○○은행에 대한 채무 담보를 목적으로 이 사건 기계에 관하여 동산담보설정계약이 체결되었더라도 이 사건 회사나 피고인이 ○○은행과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은행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피고인을 ○○은행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이 사건 기계를 처분하였더라도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배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피고인이 이 사건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은행에 대한 채무 변제 시까지 이 사건 기계를 담보 목적에 맞게 보관하여야 할 임무를 부담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2.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의 점에 대하여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사기죄에서의 기망행위와 편취의 범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파기의 범위

위에서 본 이유로 원심판결 중 배임 부분은 파기하여야 하는데, 원심은 이 부분과 나머지 유죄 부분이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하여야 한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김재형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노태악의 보충의견이 있다.

5. 대법관 김재형의 반대의견

가. 동산채권담보법에 따라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다음 담보권설정자가 담보물을 처분하여 담보권자로 하여금 동산담보권을 상실시킨 경우 배임죄가 성립하는가? 이것이 이 사건의 쟁점이다. 이 사건은 동산에 관한 담보약정과 동산담보등기를 함으로써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사안이기 때문에, 동산 소유자가 채권자에게 동산담보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한 상태에서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또는 동산을 점유개정의 방식으로 채권자에게 이전하는 이른바 동산 양도담보를 설정한 상태에서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와는 사안이 다르다. 따라서 이 판결은 담보권설정자가 담보권을 설정한 다음 담보권자의 동의 없이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에 배임죄가 성립하는지를 다룬 최초의 전원합의체 판결이기 때문에,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과는 다른 논리와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다수의견은 동산에 관한 담보권설정자가 담보물을 처분하여 담보가치를 감소·상실시키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로 담보권설정자가 담보권자에게 부담하는 담보물 보관의무와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다수의견은 ‘채무자·채권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나, 이 사건에서는 동산담보권 설정 이후 동산을 처분한 사안에 관한 것인 데다가 채무자 이외의 제3자가 담보권을 설정해 준 경우를 포괄하기 위하여 ‘담보권설정자·담보권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동산채권담보법에 따라 동산담보권을 설정함으로써 담보권자가 동산담보권을 취득한 이후 담보권설정자의 담보물 보관의무와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형법 제355조 제2항 에서 정한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고, 담보권설정자가 담보물을 처분하여 담보가치를 감소·상실하도록 하였다면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법리적인 판단에 앞서 간단한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고려청자에 동산담보권을 설정했다고 하자. 담보권설정자가 담보권자와 고려청자에 관한 담보권을 설정하기로 약정하고 담보권자 앞으로 동산담보등기를 한 것이다. 그 후 담보권자가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자, 담보권설정자가 고려청자를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여 회수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이러한 경우에 담보권설정자를 배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여기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먼저 동산담보권의 법률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이 사건에서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다만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몇 차례 별개의견(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중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별개의견)이나 보충의견( 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중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김재형의 보충의견, 대법원|2017도4027|00|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중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김재형의 보충의견, 대법원 2020. 6. 18. 선고 2019도14340 전원합의체 판결 중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의 보충의견)의 형태로 의견을 개진하였기 때문에 가급적 중복을 피하고 동산담보권에 특유한 사항을 중심으로 그 이유를 개진하고자 한다.

나. 동산담보권은 담보약정에 따라 동산(여러 개의 동산 또는 장래에 취득할 동산을 포함한다)을 목적으로 등기한 담보권을 말한다( 동산채권담보법 제2조 제2호 ). 동산 양도담보는 채권담보를 목적으로 동산소유권을 채권자에게 신탁적으로 이전하는 형태의 양도담보인 데 반하여, 동산담보권은 동산채권담보법에 따라 창설된 새로운 형태의 담보물권이다.

당사자가 동산에 관한 담보약정을 하고 동산담보등기를 해야 동산담보권이 성립하므로( 동산채권담보법 제7조 제1항 ), 동산담보등기는 동산담보권의 성립요건이다. 이 법에 따른 담보등기부는 인적 편성주의를 채택하여 담보권설정자별로 편제하고 있다( 동산채권담보법 제2조 제8호 ). 부동산은 지번으로 특정이 되기 때문에 부동산등기법에서 물적 편성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부동산등기법 제15조 제1항 ), 동산이나 채권은 물적 편성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산담보권이 설정된 다음에도 제3자는 담보목적물의 소유권을 자유롭게 취득할 수 있다. 담보권이 설정되어 있는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소유권 이전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담보권자는 담보목적물의 새로운 소유자에 대해서도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담보권의 추급력이라고 한다.

동산채권담보법에 따르면 담보목적물인 동산에 대한 선의취득이 인정되는데( 동산채권담보법 제32조 ), 평온, 공연하게 동산을 양수한 자가 동산담보권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한 데 과실이 없이 동산을 점유한 경우에는 동산담보권이 설정되어 있는 때에도 양수인은 동산담보권의 부담이 없는 동산소유권을 취득한다. 이것은 민법상 동산에 관한 선의취득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권리자의 희생을 무릅쓰고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공장저당권의 효력이 미치는 동산에 대해서도 선의취득이 인정되고 있다. 이처럼 동산 거래는 선의취득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부동산 거래와 중대한 차이가 있다.

동산담보권은 동산담보등기를 통해서 공시되고 있지만 담보권설정자의 무단 처분으로 말미암아 동산담보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상실할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담보권자는 담보약정과 동산담보등기에 따라 동산담보권을 취득하면서 담보권설정자의 처분행위로 권리를 상실할 위험을 감수하고 담보권설정자로 하여금 담보물을 계속 사용하도록 맡겨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담보권설정자가 동산담보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 형사적 개입이 필요한지, 이를 긍정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규율할 수 있는지 문제 된다.

다. 담보권설정자의 동산담보권 침해 행위는 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동산담보권 설정 전의 채무불이행과 동일한 차원에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어떤 유형의 법률관계에서 배임죄로 처벌할 것인지는 배임죄의 보호법익을 고려하여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요구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형법상 배임죄가 중요한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 해석·적용을 임무로 삼고 있는 법원으로서는 그 처벌 범위를 지나치게 넓혀서도 안 되지만 이를 과도하게 축소해서도 안 된다.

담보권설정자가 담보약정에 따라 목적물을 담보로 제공할 의무와 담보설정 후 담보물을 유지·보전할 의무, 담보권 실행 시 담보물을 인도하고 상대방의 담보권 실행에 협조할 의무를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채무자 또는 담보권설정자 자신의 사무라고 보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견은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후 담보권설정자가 지는 담보물 보관의무와 담보가치 유지의무를 타인의 사무가 아니라고 하면서 목적물을 담보로 제공할 의무는 채무자 자신의 사무라는 판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담보설정 전후에서 실행까지 단계별로 채무자 또는 담보권설정자가 부담하는 의무의 내용이 변화하고 이에 대응하여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 역시 변화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단계별로 부담하는 의무의 법률적 성격을 달리 보는 대법원 판례와 부합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담보를 설정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제3자에게 담보물을 처분하였는지는 쟁점이 아니다. 채무자가 담보약정에 따른 채무를 이행하여 담보물권의 일종인 동산담보권이 성립한 이후 동산담보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배임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다. 담보약정을 이행할 의무가 채무자 자신의 사무라고 해서 동산담보권 설정 이후의 사무까지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채권자가 동산담보권을 취득한 다음 담보권설정자가 부담하는 담보목적물을 유지·보전할 의무, 나아가 담보권 실행에 협조할 의무는 담보권설정계약 당시와는 그 성질과 내용을 달리한다. 이러한 의무는 계약 당시의 단순한 채권적 의무를 넘어 동산담보권자의 담보목적물에 대한 교환가치를 보전할 의무로서의 내용과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헌법 제23조 제1항 은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민법의 물권편과 채권편은 재산권에 관한 민사 법률관계를 규율하고 형법의 재산범죄는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형사처벌 규정이다. 이것은 재산권에 관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법체계를 형성한다.

형법의 재산범죄는 민사법에서 규율하는 재산적 법률관계를 전제로 하고 형사범죄의 성립 여부는 민사상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횡령죄나 절도죄에서 타인의 물건인지를 판단할 때 민법의 소유나 점유 개념에서 출발하고 배임죄에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를 판단할 때 민법상 손해 개념을 기초로 한다. 반면에 민법에서 불법행위나 공서양속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 형법상 범죄의 성립 여부를 고려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민사법과 형사법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지만, 민사법과 형사법은 국가 전체의 법질서를 구성하는 기본법으로서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근대법에서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이 분리되었다는 것을 민사법과 형사법은 달라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법이 발달하면서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법영역에 따라 서로 달리 규율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다.

민법은 재산권을 물권과 채권으로 구분하여 규율하고 있다. 민법전에서 제2편을 물권을 규율하는 물권법이라 하고 제3편을 채권을 규율하는 채권법이라 한다. 물권은 권리자가 스스로 직접적·배타적으로 물건을 지배하는 것을 본질로 하고, 누구에게든지 주장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이다. 채권과 비교할 때 물권의 가장 뚜렷한 특질은 지배권·절대권이라는 데에 있다. 즉 물건을 직접적·배타적으로 지배하고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물권의 특질이다. 반면 채권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채권관계로부터 생기는 권리로서, 제3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 따라서 채권은 원칙적으로 채무자에 의해서만 침해될 수 있을 뿐이며, 채무불이행이 그것이다. 그러나 물권에서는 특정의 상대방이라는 것이 없고 그 효력은 절대적이다.

이와 같이 지배권·절대권이자 배타적 권리라고 할 수 있는 ‘물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민법형법은 여러 가지 구제수단을 마련해 두고 있다. 채권적 청구권에서는 의무자가 처음부터 특정되어 있는 데 반하여, 물권적 청구권은 의무자가 특정되지 않고, 방해하는 자 또는 방해할 염려가 있는 자이면 누구나 의무자가 된다. 물권의 침해가 있으면, 물권자는 물권적 청구권뿐만 아니라 부당이득반환청구권과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통해서도 구제받을 수 있다. 채권 침해에 대해서는 채무자에게 채무불이행책임을 추궁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은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물권의 보호는 형사법적으로도 담보되고 있다. 형법상 재산범죄는 개인의 재산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를 말하는데, 소유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죄(절도죄, 횡령죄 등)와 전체로서의 재산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죄(강도죄, 배임죄 등)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재산범죄는 원칙적으로 특정 재산에 대한 지배권인 물권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그러한 지배권에 대한 침해를 처벌하는 것을 그 구성요건으로 한다. 반면 채권에 대한 침해의 경우는 예외적으로만 형사적 개입을 예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하고 형법상 재산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책임이 성립할 뿐이고 이것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의무까지는 없는 것이 원칙이므로, 불법행위책임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며 더군다나 형사책임까지 지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라. 동산담보권은 저당권과 마찬가지로 동산의 교환가치를 지배하는 물권이다. 동산에 대한 직접적인 사용·수익권이나 처분권은 여전히 담보권설정자에게 남아 있고 담보권자는 목적물이 가지는 교환가치만을 파악할 뿐이다. 이것은 피담보채무가 변제되면 교환가치에 대한 지배상태가 끝나지만, 채무가 변제되지 않으면 담보권자는 교환가치의 실현, 즉 목적물을 처분하여 현금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담보권설정자는 동산을 사용·수익하거나 처분할 수 있어도 동산의 담보가치, 즉 교환가치를 침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담보권설정자가 담보물을 보관하거나 담보가치를 유지할 의무는 담보권자가 동산의 교환가치를 지배할 권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담보권설정자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판례도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판례는 공장저당권이나 저당권이 설정된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배임죄로 처벌해 왔다. 먼저 대법원은 피고인이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공장과 함께 기계에 공장저당권을 설정한 다음 채무 변제 시까지 목적물을 담보 목적에 맞게 보관할 임무가 있는데도 그 임무에 위배하여 기계를 임의로 매도한 사안에서 배임죄를 인정하였다( 대법원 2003. 7. 11. 선고 2003도67 판결 참조). 또한 대법원은 자동차에 저당권이 설정된 경우 자동차의 교환가치는 저당권에 포섭되고, 저당권설정자가 자동차를 매도하여 그 소유자가 달라지더라도 저당권에는 영향이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당권설정자가 단순히 그 저당권의 목적인 자동차를 다른 사람에게 매도한 것만으로는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으나, 자동차를 담보로 제공하고 점유하는 채무자가 부당히 그 담보가치를 감소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배임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0도11665 판결 참조). 이러한 판결에서 공장저당권이나 자동차저당권을 설정한 사람은 목적물을 담보 목적에 맞게 보관할 의무나 담보가치를 부당하게 감소시키지 않을 의무, 즉 담보가치 유지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저버린 행위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한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한 것으로 보아 배임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10년 동안 동산 이중양도, 부동산 대물변제예약, 부동산 이중근저당에 관한 일련의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 위 2019도14340 전원합의체 판결 )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변경했다. 그런데 이들 판결 사안을 살펴보면 채무자의 행위가 계약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하지만 그 행위의 중대성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한 국가의 형벌권이 개입했던 분야임을 알 수 있다. 동산 이중양도 사안은 동산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동산소유권을 이전하지 않고 제3자에게 임의로 처분한 경우에 매도인이 동산소유권을 이전할 채권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부동산 대물변제예약 사안은 채권 담보 목적으로 대물변제예약을 한 채무자가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 채무의 이행방법으로서 약정의 내용에 따른 이행을 할 채무를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부동산 이중근저당 사안도 근저당권설정계약에 따라 채권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할 채무자의 의무를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물권에 대한 보장은 형사법적으로 담보되어 왔고 그에 대한 침해는 위와 같은 채무불이행의 경우와는 달리 보아야 한다. 물권인 담보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은 형법적 평가와 보호가 필요하다. 또한 동일한 동산에 관한 담보물권인 공장저당권 등에 관하여 배임죄 성립을 긍정한 판례가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 부동산 이중근저당 사안 등에서 일련의 전원합의체 판결로 배임죄 성립을 부정했다고 하더라도, 물권 침해에 해당하는 ‘동산담보권 설정 후 무단 처분행위’에 대해서까지 배임죄 성립을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동산 이중양도담보에 관한 위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은 채무자가 채권담보의 목적으로 점유개정 방식으로 채권자에게 동산을 양도하고 이를 보관하던 중 임의로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여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동산 양도담보에 관한 위 판결은 동산채권담보법에 따라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경우와는 동일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동산 양도담보는 동산소유권을 이전하는 형태의 양도담보로서 판례는 그 법적 성질을 신탁적 양도로 파악하고 있다. 그 기능이나 경제적 목적이 채권담보이고 채권자가 채권담보의 목적 범위에서만 소유권을 행사할 채권적 의무를 부담하더라도, 담보목적물의 소유권은 당사자 사이에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합의와 점유개정에 의한 인도에 따라 완전히 채권자에게 이전한다. 따라서 점유개정에 따라 양도담보 목적물인 동산을 직접 점유하는 채무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한다. 그가 채권자의 허락 없이 제3자에게 동산을 양도하는 등 처분한 경우에는 횡령죄가 성립하므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위 전원합의체 판결 중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별개의견 참조). 이와 달리 동산채권담보법에 따라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경우에는 담보권자는 담보권만을 취득하고 담보권설정자가 여전히 동산의 소유자이므로, 담보권설정자가 동산을 처분하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

마. 채무자 겸 담보권설정자의 배신행위로 동산담보물이 처분되어 동산담보권이 상실되더라도 채권자 겸 담보권자는 채무자로부터 피담보채권을 변제받음으로써 동산담보설정계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목적을 사실상 이룰 수 있으므로, 배임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보아야 하는지 문제 된다.

그러나 소비대차계약과 동산담보설정계약은 별개의 계약이다. 채무자가 아닌 제3자가 물상보증인으로서 동산담보권을 설정해 준 경우에는 두 계약의 당사자도 다르다. 사후적으로 채무자가 소비대차계약에 따라 채무를 변제했다고 해서 담보권설정자가 동산담보설정계약을 위반하여 동산담보권을 침해하고 무담보 상태를 초래한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가 소급해서 해소될 수 없다(근저당권설정계약에 관해서는 위 2019도14340 전원합의체 판결 중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의 보충의견 참조).

형법상 재산범죄의 성립 여부는 손해가 나중에 전보되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판단해야 한다. 가령 변제의 능력과 의사가 있는 것처럼 기망하여 금전을 차용함으로써 사기죄는 성립하고 피해자가 나중에 채권을 회수하였다고 하더라도 사기죄의 성립 여부가 달라지지 않는다. 담보권설정자가 담보목적물인 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배신적 행위를 하여 담보권자를 느닷없이 무담보 상태에 빠지게 하였다면 배임죄는 성립하고, 담보권자가 나중에 변제를 받았다고 해서 배임죄의 성립 여부가 달라질 이유가 없다(위 보충의견 참조).

담보권자는 채권에 대한 담보를 위하여 동산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고 동산담보권을 설정받은 것인데, 그 담보물이 없어진 후에도 채무자의 일반재산으로부터 변제를 받기만 하면 동산담보설정계약의 목적이 달성된 것과 같다고 한다면 동산담보설정계약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담보권의 취득과 보전은 거래당사자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인데, 유독 배임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에만 이를 부수적인 의미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근거가 없다.

한편 동산채권담보법에서 담보등기부를 인적 편성주의에 따라 편제하고 있다는 점은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적 편성주의나 인적 편성주의는 등기부의 편제 방법일 뿐이고 동산담보권의 효력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바. 위 라.에서 보았듯이 채무자가 채무담보 목적으로 채권자에게 동산을 점유개정의 방식으로 양도한 후 제3자에게 무단으로 처분한 경우에는 동산소유권이 담보목적의 범위 내에서 신탁적으로 채권자에게 이전하므로, 채무자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서 동산을 횡령한 것으로 보아 횡령죄가 성립하고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동산 소유자가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후 제3자에게 무단으로 처분한 경우에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담보물을 보관하고 담보가치를 유지할 임무를 위배한 것으로 보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 균형에 맞는다.

사. 이 사건의 쟁점은 배임죄의 성립 여부이지만, 이러한 사안에서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배임죄로 처벌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있으므로 이에 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형법 제323조 의 권리행사방해죄는 그 행위의 객체가 ‘자기 소유’의 물건이어야 한다. 물상보증의 경우 담보목적물의 소유자가 아닌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은닉하여 담보가치를 상실시켰다고 하더라도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될 수 없다( 대법원 1984. 6. 26. 선고 83도2413 판결 , 대법원 2003. 5. 30. 선고 2000도5767 판결 참조). 또한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취거’, ‘은닉’ 또는 ‘손괴’가 있어야 하는데, 담보권설정자가 담보목적물을 제3자에게 매도하여 매수인이 선의취득함으로써 담보권을 침해한 경우 ‘취거’, ‘은닉’ 또는 ‘손괴’를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매수인이 동산담보권의 부담이 없는 소유권을 취득한 경우 목적물인 동산의 소재가 불분명한지 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고 볼 수도 없다.

다수의견은 배임죄에서 위임 등과 같이 타인의 사무를 대행하는 경우로 한정하여 그 밖의 경우에는 비범죄화하거나 권리행사방해죄로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듯하다. 대법원은 동산 이중양도, 부동산 대물변제예약, 동산 이중양도담보, 부동산 이중 근저당에 관한 일련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모두 배임죄 성립을 부정하였으나, 실무에서는 위와 같은 사안을 대부분 권리행사방해죄로 의율하고 있을 뿐 비범죄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배임죄와 권리행사방해죄의 징역형 상한은 동일하고 벌금 액수에서만 차이가 있다).

그런데 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권리행사방해죄는 형법 제정 당시 독일 형법 제289조의 질물탈취죄(Pfandkehr)에 영향을 받아 신설되었는데, 질물탈취죄는 질물 등을 탈취하는 경우에 성립하기 때문에 그 적용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특히 판례는 형법 제323조 에서 정한 ‘타인의 권리’에는 제한물권뿐만 아니라 채권도 포함되고 점유를 수반할 필요는 없다고 하고 있다( 대법원 1991. 4. 26. 선고 90도1958 판결 참조). 따라서 이러한 판례에 따르면 단순한 채무불이행만으로도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할 위험이 있고, 이는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 방지라는 형사법의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가 된다. 종래 채권 침해에 대한 형사적 개입은 예외적으로 인정되어 왔으나, 배임죄에 관한 몇몇 판례의 변경 이후 ‘권리행사방해죄로의 쉬운 도피’로 말미암아 오히려 채권 침해에 대한 광범위한 형사 개입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

배임죄의 규율 범위를 좁히기 위한 새로운 이론구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권리행사방해죄의 재발견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배임죄는 임무위배행위가 있어야 하고 재산상의 이익을 얻어야 하며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여야 비로소 그 죄가 성립하는 반면, 권리행사방해죄는 채권이든 물권이든 그 침해가 발생하면 바로 그 죄가 성립되므로, 규율 범위를 좁히기 위한 해석의 여지는 배임죄의 경우가 훨씬 유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 된 동산담보권이 침해된 경우와 같은 물권 침해의 경우까지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고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은 오히려 그 의도와는 다르게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 또는 형사처벌의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

아. 동산 소유자가 동산담보권 설정 후 제3자에게 처분한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할 것인지는 배임죄의 해석·적용 문제이다. 배임죄에 관한 형법 규정이 헌법에 반하지 않는 한 이 규정을 사안에 맞게 적용하는 것은 법원의 임무이다. 입법론으로 배임죄를 일정한 사안에 제한하는 방식으로 개정하거나 배임죄를 아예 폐지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이라거나 사적 자치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추상적인 이유만을 들어 동산담보권 설정 후 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행위에 대해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담보권설정자가 동산에 관하여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이후 담보권자에게 부담하는 담보물 보관의무와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 담보권설정자가 신임관계를 저버리고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함으로써 동산담보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당사자 사이의 본질적·전형적 신임관계를 위반한 것으로서 배임죄에 해당한다.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에서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피고인이 담보로 제공한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판결은 정당하고,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노태악의 보충의견

가. 반대의견은, 동산채권담보법에 의한 동산담보권 설정 후 담보권설정자가 부담하는 담보물에 대한 보관·유지의무 등은 동산담보권자의 담보물에 대한 교환가치를 보전할 의무로서의 내용과 성격을 갖기 때문에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산채권담보법의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반적인 동산 양도담보와 달리 위 법이 적용되는 담보권설정자의 임의 처분행위를 배임죄로 규율해야 한다는 목적론적 해석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배치되어 보인다.

나. 1) 동산채권담보법은 기존 동산담보의 공시가 불충분하다는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동산·채권을 대상으로 한 등기담보권의 도입에 의하여 거래 안전을 도모하면서도 자산유동화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입법되었다( 제1조 ). 그러나 동산담보권도 담보물권으로서 부종성, 수반성, 불가분성, 물상대위의 효력이 인정되고, 그 소멸에 있어서도 피담보채무에 대한 변제 등 담보물권 일반의 소멸사유에 의하여 소멸되는 등( 제9조 , 제14조 ) 동산 양도담보와 그 성립, 효력, 실행 및 소멸에 있어서 기본적 내용은 동일하다(동산채권담보법상 담보약정은 ‘양도담보 등 명목을 묻지 아니하고 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기로 하는 약정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즉 동산채권담보법은 동산·채권담보에 대하여 인적 편성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등기제도를 도입하였으나, 기본적으로 동산 양도담보와 같은 담보물권으로서의 성질은 다르지 않다.

또한 동산채권담보법상 담보권설정자는 ‘법인 또는 상업등기법에 따른 상호등기를 한 자’로 제한되고( 제3조 ), 담보권 실행방법도 경매 청구뿐만 아니라 사적 실행의 방법으로 직접 및 매각 충당을 인정하여 취득정산 외에도 처분정산까지 가능하여( 제21조 ), 기업, 자영업자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동산채권담보법에 의한 동산담보권의 설정, 실행 및 처분 등을 둘러싼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경제적, 사법(사법)적인 규율이 보다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2) 일반적인 동산 양도담보에 있어서 채무자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동산을 담보로 제공할 의무와 점유개정의 방법으로 양도담보권을 설정한 후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는 모두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급부의무이므로 채무자의 담보물 처분행위가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의 핵심 법리이다.

그렇다면 이와 동일한 법률적 성격을 갖는 동산채권담보법상의 동산담보권의 경우에도 동산담보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담보 제공 의무와 담보권 설정 이후 담보물에 대한 보관·유지의무 등은 모두 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내지 담보권설정자 자신의 의무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반적인 동산 양도담보에서 점유개정에 의하여 양도담보권을 설정한 후 담보권설정자가 목적물을 처분한 것이나, 동산채권담보법에 의한 동산담보등기를 하고 담보권설정자가 이를 점유하다가(담보약정상 담보권자가 점유하도록 정할 수 있지만 담보권설정자가 점유하는 경우가 일반적일 것이다) 처분한 것이나, 담보권자가 담보가치를 상실하여 담보권의 목적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3) 동산채권담보법에 의한 동산담보등기에 공신력이 없고, 담보물에 대한 선의취득이 인정될 경우 추급력이 없다는 점은 반대의견도 인정하는 바이다. 따라서 담보권설정자가 담보물을 임의 처분한 경우 그 선의취득에 있어서도 동산 양도담보와 다를 바 없다.

동산채권담보법상 등기제도는 동산에 대한 담보권을 취득하려는 자 등 이해관계인에게 개선된 공시에 의하여 담보권의 존재 및 내용을 보다 쉽게 탐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위함이지 담보권설정자의 임의 처분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동산채권담보법 제64조 에서 담보등기부의 불실기재를 방지하고 등기필정보의 안전과 비밀 확보를 목적으로 하여 이를 위반한 행위에 대하여만 처벌규정을 두고 있을 뿐 담보권설정자 등의 담보권 설정·실행과정이나 그 처분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결국 반대의견에서 말하는 ‘담보권의 추급력’이라는 사유를 들어 양자에 있어 배임죄의 처벌 여부를 달리할 법리적인 이유도 없고, 실질적인 이유도 없다.

다. 1) 반대의견은, 나아가 일반적으로 동산담보에 있어서 담보약정을 이행할 의무가 채무자 자신의 사무라고 해서 동산담보권 설정 이후의 사무까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고, 채권자가 동산담보권을 취득한 다음 담보권설정자가 부담하는 담보물 보관·유지의무 등은 담보권설정계약 당시와는 그 성질과 내용을 달리하는 것으로, 이러한 의무는 계약 당시의 단순한 채권적 의무를 넘어 동산담보권자의 담보물에 대한 교환가치를 보전할 의무로서의 내용과 성격을 갖기 때문에 이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동산 이중양도담보에 관한 위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이 담보물권 설정 전후의 채무자 내지 담보권설정자의 의무는 모두 담보계약에 따른 자신의 사무일 뿐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라고 볼 수 없다고 한 판시에 반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동일한 담보권 침해행위에 대하여 동일한 법적 평가가 내려져야 함은 당연하다.

2) 반대의견은 동산 양도담보의 경우 내부적으로도 그 소유권이 담보권자에게 귀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횡령죄로 처벌되어야 하므로 동산담보권과는 달리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 주장과 달리 위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에서 배임죄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서 타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하는 것일 뿐 어떤 물건이나 권리가 타인에게 귀속되었는지 여부는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지를 판가름할 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참조).

3) 반대의견은, 채권 침해와 달리 동산담보권의 설정 이후 처분행위는 물권에 대한 침해로서 배신성이 크므로 그에 대한 보호도 형법적으로 담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양도담보권 설정 후’ 담보권 침해행위도 배임죄로 규율할 수 없다고 본 위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의 법리에 배치되는 견해일뿐더러 임무위배행위에 대한 배신성의 정도나 비난가능성이 크다는 점만으로 그러한 임무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될 수 없다. 다수의견은, 물권이 채권에 비해 절대적 효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물권에 대한 침해를 배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형법으로 달성하려는 목적만을 강조한 채 죄형법정주의의 목적과 의의를 간과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서, 반대의견이 말하는 것처럼 형사법과 민사법을 별다른 이유 없이 서로 달리 규율하는 것이 아니다.

라. 반대의견은, 공장저당권이나 자동차에 저당권을 설정한 자의 담보물 보관·유지의무를 위반한 행위에 대하여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 판례( 대법원 2003. 7. 11. 선고 2003도67 판결 ,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0도11665 판결 )를 들어 동산담보권 설정자가 부담하는 담보물 보관·유지의무도 타인의 사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배임죄의 성립 여부를 계약에서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타인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것인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동산 이중매매, 부동산 대물변제예약, 동산 이중양도담보 및 부동산 이중저당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매매계약, 담보계약 등에 따른 채무자의 의무는 자신의 의무일 뿐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공장저당권과 자동차 저당권에 관한 위 각 판례는 모두 동산 양도담보와 동일한 동산 담보물권으로서 동산 이중양도담보 등 일련의 전원합의체 판결의 흐름과 그 취지에 비추어 향후 유지 여부를 고려하여야 할 판례일 뿐, 위 각 판례를 들어 동산담보권 설정자의 담보물 보관·유지의무 등이 타인의 사무가 되어야 한다는 근거로 삼기는 곤란하다.

한편 대법원은 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에서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종래의 견해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위 판결은 부동산이 국민의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부동산 매매대금은 통상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뉘어 지급되는데,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대금의 상당 부분에 이르는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지급하더라도 매도인의 이중매매를 방지할 충분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거래의 현실을 고려하여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종래의 판례가 여전히 타당하다는 이유에서 종래의 견해를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 위와 같이 타인의 사무로 볼 수 없다는 중요한 근거는 채무 담보로 채권자에게 동산담보권을 설정한 채무자의 담보물 보관·유지의무는 동산담보계약에 따른 자신의 사무일 뿐이고, 담보약정의 궁극적인 목적과 그에 따른 채무자의 주된 의무는 금전채무의 변제에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의무가 신임관계의 본질적 내용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를 적용할 때 담보의 형식이 저당권설정계약, 대물변제예약 또는 양도담보계약인지 여부나 담보의 목적물이 부동산인지 동산인지에 따라 차이를 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의 논거를 보충한다.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대법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박정화 안철상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김상환 노태악(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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