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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배임]〈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배임죄 사건〉[공2014하,1923]
판시사항

[1] 채권 담보 목적으로 부동산에 관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대물로 변제하기로 한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소극)

[2] 채무자인 피고인이 채권자 갑에게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 자신의 어머니 소유 부동산에 대한 유증상속분을 대물변제하기로 약정한 후 유증을 원인으로 위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음에도 이를 제3자에게 매도함으로써 갑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하여 배임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피고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는데도, 이와 다른 전제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다수의견] (가)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소비대차 등으로 인한 채무를 부담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하여 장래에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기로 하는 내용의 대물변제예약에서, 약정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여야 할 채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의 사무’에 해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 채무자가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는 예약 당시에 확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가 차용금을 제때에 반환하지 못하여 채권자가 예약완결권을 행사한 후에야 비로소 문제가 되고, 채무자는 예약완결권 행사 이후라도 얼마든지 금전채무를 변제하여 당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를 소멸시키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편 채권자는 당해 부동산을 특정물 자체보다는 담보물로서 가치를 평가하고 이로써 기존의 금전채권을 변제받는 데 주된 관심이 있으므로,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대물변제예약에 따른 소유권등기를 이전받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되어도 채권자는 채무자로부터 금전적 손해배상을 받음으로써 대물변제예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목적을 사실상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대물변제예약의 궁극적 목적은 차용금반환채무의 이행 확보에 있고, 채무자가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채무자에게 요구되는 부수적 내용이어서 이를 가지고 배임죄에서 말하는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여야 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 그러므로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채무자가 대물로 변제하기로 한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관 양창수,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 민일영, 대법관 김용덕의 반대의견] (가) 판례의 축적을 통하여, 등기협력의무 등 거래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고의로 임무를 위반하여 상대방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확립된 법원칙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이러한 법리는 전형적인 배신행위에 대하여는 형벌법규의 개입이 정당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것이다.

(나) 담보계약을 체결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는 담보계약 자체로부터 피담보채권의 발생원인이 된 법률관계와는 별도의 독자적인 신임관계가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보 목적으로 체결된 대물변제예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은 담보로 제공하기로 한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채권자에게 취득하게 하는 데 있으며, 이는 결국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있어 양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 담보 목적으로 부동산에 관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신임관계를 위반하여 당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함으로써 채권자로 하여금 부동산의 소유권 취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대물변제예약에서 비롯되는 본질적·전형적 신임관계를 위반한 것으로서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것이 부동산의 이중매매, 이중근저당권설정, 이중전세권설정에 관하여 배임죄를 인정하여 온 판례의 확립된 태도와 논리적으로 부합한다.

[2] 채무자인 피고인이 채권자 갑에게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 자신의 어머니 소유 부동산에 대한 유증상속분을 대물변제하기로 약정한 후 유증을 원인으로 위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음에도 이를 제3자에게 매도함으로써 갑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하여 배임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피고인이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갑에게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줄 의무는 민사상 채무에 불과할 뿐 타인의 사무라고 할 수 없어 피고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는데도, 피고인이 이에 해당된다고 전제하여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손제현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1.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한다고 하려면 당사자 관계의 본질적 내용이 단순한 채권채무 관계를 넘어서 그들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 있어야 하고, 그 사무가 타인의 사무가 아니고 자기의 사무라면 그 사무의 처리가 타인에게 이익이 되어 타인에 대하여 이를 처리할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라도 그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소비대차 등으로 인한 채무를 부담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하여 장래에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기로 하는 내용의 대물변제예약에서, 그 약정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여야 할 채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의 사무’에 해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채무자가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는 그 예약 당시에 확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가 차용금을 제때에 반환하지 못하여 채권자가 예약완결권을 행사한 후에야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이고, 채무자는 예약완결권 행사 이후라도 얼마든지 금전채무를 변제하여 당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를 소멸시키고 그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편 채권자는 당해 부동산을 특정물 그 자체보다는 담보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로써 기존의 금전채권을 변제받는 데 주된 관심이 있으므로,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대물변제예약에 따른 소유권등기를 이전받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되어도 채권자는 채무자로부터 금전적 손해배상을 받음으로써 대물변제예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목적을 사실상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물변제예약의 궁극적 목적은 차용금반환채무의 이행 확보에 있고, 채무자가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는 그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채무자에게 요구되는 부수적 내용이어서 이를 가지고 배임죄에서 말하는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여야 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채무자가 대물로 변제하기로 한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도4293 판결 등은 이를 폐기하기로 한다.

원심은, 피고인이 공소외인에게 차용금 3억 원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 피고인의 어머니 소유의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유증상속분을 대물변제하기로 약정하였고, 그 후 피고인은 유증을 원인으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음에도 이를 누나와 자형에게 매도함으로써 이 사건 부동산의 실제 재산상 가치인 1억 8,500만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공소외인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이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공소외인에게 이 사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줄 의무는 민사상의 채무에 불과할 뿐 타인의 사무라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이 이에 해당된다고 전제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그러므로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양창수,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 민일영, 대법관 김용덕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신, 대법관 조희대의 보충의견이 있다.

2. 대법관 양창수,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 민일영, 대법관 김용덕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다수의견은 요컨대,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부동산에 관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그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는 ‘자기의 사무’일 뿐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채무자가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수의견은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당사자 간의 신임관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타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가 있는 경우에는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 온 이제까지의 대법원판례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담보계약에 기초한 신임관계도 배임죄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법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도외시한 것이어서 찬성할 수 없다.

나. 배임죄의 본질은 신임관계에 기한 타인의 신뢰를 저해하는 임무위반행위를 함으로써 그 타인으로 하여금 재산상 손해를 입게 하는 데 있고, 이러한 임무위반행위에는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타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가 포함된다( 대법원 1987. 4. 28. 선고 83도1568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이 배임죄의 행위 태양은 일정한 행위 유형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신뢰위반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는 없으므로 형벌법규의 해석을 통하여 일정한 범위로 가벌적 배임행위를 제한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배임죄의 구성요건 자체가 이러한 제한적 해석의 필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해석을 통하여 배임죄의 처벌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함으로써 형사법에 의해 마땅히 보호되어야 할 개인의 재산권이나 개인 간의 신임관계가 그 보호범위에서 제외되어 형벌법규로서의 배임죄가 그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경계하여야 한다.

종래 대법원은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는 경우 외에도 등기절차의 이행과 같이 매매, 담보권설정 등 거래를 완성하기 위한 자기의 사무인 동시에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의 이행인 경우에도 일관하여 이를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보아 왔다( 대법원 1983. 2. 8. 선고 81도3137 판결 , 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1도3482 판결 등 참조). 그 결과 대법원은, 부동산 매매에서 매도인이 중도금을 수령한 후에는 그 계약의 내용에 좇아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여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로서의 자기 사무의 처리라는 측면과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하는 타인 사무의 처리라는 성격을 동시에 가지므로, 이러한 단계에 이른 후에 매도인이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행위는 매수인을 위한 등기협력의무를 위반하는 것으로서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확립하여 왔다( 대법원 1986. 7. 8. 선고 85도1873 판결 , 대법원 1988. 12. 13. 선고 88도750 판결 , 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도3766 판결 등 참조). 부동산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등기를 하여 그 권리를 이전하는 것은 단순히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의무의 이행이 아니라 부동산 거래에서 형성되어 온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의 강한 신뢰관계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매매계약의 이행 내지 등기에 관한 협조·협력의무는 그와 같은 신뢰관계에 따른 의무로 평가될 수 있고( 대법원 2001. 10. 9. 선고 2000다51216 판결 등 참조), 그와 같은 신뢰관계 아래에서 협조·협력의무를 지는 매도인의 지위는 매수인의 권리 취득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판례는 위와 같이 부동산의 이중매도인에 대하여 형법적으로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부동산에 관한 권리이전의 신뢰관계 및 그에 대한 보호 필요성은 매매계약뿐만 아니라 부동산에 관한 권리의 이전·설정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법률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정되는 것이고, 때문에 그동안 판례는 이러한 법률관계에 대하여도 배임죄를 적용하여 왔다. 그리하여 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한 후 그에 따른 등기절차를 이행하기 전에 제3자에게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근저당권설정등기를 하여 준 경우(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7도9328 판결 , 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도11224 판결 등 참조), 부동산에 대한 전세권설정계약이나 양도담보설정계약 후 그에 따른 등기절차를 이행하기 전에 제3자에게 근저당권설정등기나 전세권설정등기를 하여 줌으로써 담보능력 감소의 위험을 발생시킨 경우( 대법원 1993. 9. 28. 선고 93도2206 판결 , 대법원 1997. 6. 24. 선고 96도1218 판결 등 참조) 등에도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판례의 축적을 통하여, 등기협력의무 등 거래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고의로 그 임무를 위반하여 상대방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확립된 법원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이러한 법리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전형적인 배신행위에 대하여는 형벌법규의 개입이 정당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것이다.

다. 이와 같은 판례의 일관된 논리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과 같이 담보 목적으로 부동산에 관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후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임의로 처분한 경우에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수의견이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는 것을 약정에 따른 ‘자기의 사무’에 해당할 뿐 ‘타인의 사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대물변제예약에서 비롯되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신임관계를 단지 민사상 계약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한 것이어서 찬성하기 어렵다.

종래의 판례가 부동산을 이중매매한 매도인에 대하여 배임죄를 인정한 것은 매매계약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지 않았다는 계약상의 단순한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거래 상대방인 매수인의 부동산 등기절차에 협력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매도인이 고의로 신뢰를 저버리고 매수인의 부동산 소유권 취득을 불가능하게 하였다는 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부동산 거래관계의 특성상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그의 소유권 취득을 불가능하게 할 위험을 끼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배임죄의 주체가 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대물로 제공하기로 한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도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있어 부동산 이중매매와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매매의 경우 매도인이 중도금만 받은 단계에서는 매수인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에 대하여 매도인이 잔금과의 동시이행 항변을 주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중매매 시 배임죄를 인정하고 있는바( 대법원 1988. 12. 13. 선고 88도750 판결 등 참조), 대물변제예약을 한 경우에는 장차 채권자가 예약완결권을 행사하면 채무자로서는 그러한 항변조차 못하고 소유권이전등기에 응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이는 마치 매매잔금까지 다 수령한 부동산 매도인의 지위와 유사하다), 실제로 채권자가 예약완결권을 행사한 후에는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현실화되어 민법 제607조 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한 그 소유권 이전이 종국적인 의무가 되므로 당해 부동산을 다시 제3자에게 처분하면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매매를 원인으로 소유권을 넘겨주기로 했던 부동산은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면 배임죄가 되지만, 기존의 채무를 변제하는 대신에 소유권을 넘겨주기로 했던 부동산은 다른 사람에게 처분해도 배임죄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법국가에서는 판례가 법령만큼 구속력을 지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온 판례는 재판의 실제에 있어 법령 못지않게 재판의 준칙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그러한 판례는 논리적으로 일관되어야 하며, 그것이 논리를 떠나 구체적 타당성의 추구를 내세워 사안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면 자연히 예측가능성을 상실하고 그 결과 재판 실무에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같은 이중매매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부동산이면 배임죄가 성립하고 동산이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논거를 부동산이 갖는 재산적 특수성과 등기의무자의 등기협력의무에서 찾는 것(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의 당부는 차치하더라도, 등기절차에 협력하여야 한다는 신임관계에 기초한 임무위반행위라는 면에서 그 행위의 불법성이나 비난가능성의 정도가 매매와 담보 사이에 결정적으로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닐진대, 양자의 형사처벌을 달리하는 것이 그동안 재산의 이중적 처분(매매, 근저당권설정, 전세권설정, 채권양도 등)에 관하여 대법원이 일관하여 취해 온 태도에 비추어 볼 때 과연 논리적으로 온당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라. 다수의견은, 대물변제예약의 궁극적 목적은 차용금반환의무의 이행 확보에 있고, 채무자가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는 계약의 본질적 내용이라기보다는 그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수적 내용에 불과하므로, 채무자가 당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담보계약을 통해 채권자가 취득하는 담보권은 그 자체로 독립된 재산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담보물의 담보가치에 대한 채권자의 신뢰 또한 형사법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고유한 법률상 이익에 해당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대물변제예약 후에 채권자가 예약완결권을 행사하면 채무자는 그 예약 대상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부동산 소유권의 이전이라는 법률관계는 금전채무의 변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금전을 차용하면서 그 담보로 대물변제예약을 하는 경우에 그 대물변제예약은 금전 차용의 전제가 되는 것으로서 금전소비대차 거래의 부수적인 내용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대물변제예약에 의한 채권자의 권리 및 그에 따른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하여야 할 채무자의 의무 이행 내지 그에 대한 신뢰관계는 당사자 사이에서 금전소비대차를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이는 마치 근저당권의 설정을 전제로 금전소비대차를 하는 것과 동일한 구조를 띠는 것으로서, 근저당권설정조건부 금전소비대차에서 근저당권설정등기의 이행이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요소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담보계약을 체결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는 그 담보계약 자체로부터 피담보채권의 발생원인이 된 법률관계와는 별도의 독자적인 신임관계가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보 목적으로 체결된 대물변제예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은 담보로 제공하기로 한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채권자에게 취득하게 하는 데 있으며, 이는 결국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있어 양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의견의 논리대로라면, 신축한 아파트의 시행자가 일부 세대에 관하여는 분양계약을 체결하고 일부 세대에 관하여는 시공자에 대한 공사대금채무의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아파트 전체를 제3자에게 일괄적으로 처분한 경우, 수분양자에 대하여는 배임죄가 성립하지만 시공자에 대하여는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시행자의 배신적 처분행위로 인해 침해된 수분양자의 아파트 소유권에 대한 신뢰와 시공자의 아파트 담보가치에 대한 신뢰를 형법상으로 차별하여야 할 합리적 근거가 무엇인지, 또 위와 같은 결론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다수의견은, 채무자의 배신행위로 인하여 대물변제예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더라도 채권자는 채무자로부터 금전적 손해배상을 받음으로써 대물변제예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목적을 사실상 이룰 수 있으므로 배임죄를 논할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형법상 범죄의 성립 여부를 논의의 차원을 달리하는 민사상 손해배상채권에 견련시키는 것으로서 옳지 않다. 이는 마치 변제의 능력과 의사가 있는 것처럼 기망하여 금전을 차용함으로써 사기죄가 성립한 이상 피해자가 그 금원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취득한다고 하여 사기죄의 성립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나중에 피해자가 실제로 그 금원을 변제받는다 하더라도 사기죄가 여전히 인정되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나아가 다수의견의 위 논거는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채권자는 원래의 채권에 대한 담보를 취득하기 위하여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것인데 그 담보물이 없어진 후에도 채무자의 일반재산으로부터 금전적 손해배상을 받기만 하면 대물변제예약의 목적이 달성된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은 담보계약으로서의 대물변제예약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통상적인 거래에서 채권자는 담보권의 유무에 따라 피담보채권의 원인이 되는 법률행위에 나아갈지를 결정하게 되므로 법률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담보가치의 취득과 보전은 거래당사자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인데, 유독 배임죄의 해석에 있어서만 이를 부수적인 의미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옳지 않고,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마. 끝으로, 거래 현실에서는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대물변제예약이 담보 목적으로 체결된 것인지 아니면 기존 채무의 소멸을 전제로 그를 대체하는 새로운 채무의 내용을 정하기 위하여 체결된 것인지 그 문언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다수의견이 그 중 담보 목적으로 체결된 대물변제예약의 경우에만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라면 이러한 해석은 많은 경우에 형벌법규의 해석에 관한 법적 안정성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다수의견이 후자의 경우에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라면 그 부당성에 관하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이제껏 지적하여 온 논의가 그대로 적용되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아니한다.

바. 결론적으로, 담보 목적으로 부동산에 관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그 신임관계를 위반하여 당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함으로써 채권자로 하여금 그 부동산의 소유권 취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대물변제예약에서 비롯되는 본질적·전형적 신임관계를 위반한 것으로서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것이 부동산의 이중매매, 이중근저당권설정, 이중전세권설정에 관하여 배임죄를 인정하여 온 판례의 확립된 태도와 논리적으로 부합한다. 이들 판례들을 근본적으로 부인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단지 대물변제예약의 경우에만 심정적으로 다소 부당하다는 생각에 달리 취급하다가는 자칫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지 저어된다.

이상의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에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피고인이 대물로 제공하기로 한 부동산을 자신의 누나와 자형에게 임의로 처분한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본 제1심을 유지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배임죄에 있어서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취지를 밝힌다.

3.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신, 대법관 조희대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종래 대법원은 등기협력의무를 매개로 하여 부동산 이중매매, 이중저당 등 일정한 계약 파기 사안에 대하여 형법상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해 왔다.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라고 함은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의 보호 또는 관리의무가 있음을 그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것인데, 매매나 담보권설정 등에 있어서 등기협력의무도 이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채권채무 관계에서 신임관계의 유형과 정도를 구별하지 않은 채 등기협력의무의 존재가 인정되기만 하면 예외 없이 그 의무의 이행불능을 초래한 등기의무자를 배임죄로 처벌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의 태도에 따르면, 이 사건과 같은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의 경우에도 그에 따른 등기협력의무를 지게 되므로 배임죄가 성립된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다수의견은 등기협력의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등기의무자가 당연히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거나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나. 판례는 계약에 따른 등기협력의무가 자기의 거래를 완성하기 위한 자기 사무의 처리라는 측면과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하는 타인 사무의 처리라는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고 보아 이를 부동산 이중매매, 이중저당 등 사안에서 배임죄의 처벌 근거로 삼아왔다( 대법원 1983. 2. 8. 선고 81도3137 판결 등 참조). 그러나 등기협력의무가 부동산 거래에 있어서 배임죄의 처벌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1) 채무자가 계약의 내용에 좇아 채무를 이행하는 것은 ‘자기 사무’의 처리이다. 채무자가 계약에 따른 이행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채권자가 권리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는다고 하여도 그 이행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 넘어 채무자에게 내부적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거나, 나아가 그 의무가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되어 결국 채무자가 타인인 채권자의 사무를 대신 처리하는 관계에 있다고 볼 근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거래에서 매도인이 등기절차이행의무를 이행하는 것 역시 자기 사무의 처리일 뿐이다. 계약에 따른 의무의 이행으로 결과적으로 매수인이 매매계약의 내용을 실현하는 이익을 얻게 된다는 이유로 매도인이 타인인 매수인을 위한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타인인 매수인의 사무를 대신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2)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은 매매와 같이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는 계약의 경우 쌍방이 그 계약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여야 할 채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의 사무’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동산매매계약에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계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그 목적물인 동산을 인도함으로써 그 계약의 이행을 완료하게 되고 그때 매수인은 매매목적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므로, 매도인에게 자기의 사무인 동산인도채무 외에 별도로 매수인의 재산의 보호 또는 관리 행위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아 동산매매계약에서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법리를 적용함에 있어서 계약의 목적물이 부동산인지 동산인지에 따라 차이를 둘 이유가 없다. 목적물이 부동산이든 동산이든 매매목적물에 대한 권리의 변동은 당사자 사이의 합의와 공시방법의 구비에 의하여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 법적 구조가 동일하고, 다만 그 공시방법이 등기 또는 인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동산인도의무는 매도인의 자기의 사무로서 배임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데 반해, 부동산 등기협력의무는 매도인의 자기 사무의 처리인 동시에 매수인인 타인의 사무의 처리가 되어 국가형벌권의 개입이 정당화된다는 논리는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통일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가져온다.

(3) 종전 판례는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에게는 등기협력의무가 있고, 등기협력의무는 자기의 사무라는 성격과 타인의 사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판례가 배임죄의 처벌 근거로 삼은 ‘등기협력의무’라는 용어는 민사적으로 인정되는 ‘등기절차이행의무’와 그 내용이 전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등기협력의무의 내용인즉슨, 매도인이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등기소에 출석하거나 혹은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등기권리자인 매수인에게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등기절차이행의무라는 민사적 의무를 위반하였다면 그에 따른 민사적인 책임을 지는 것으로 충분하고 나아가 배임죄로 처벌하자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등기절차이행의무라는 용어 대신 ‘등기협력의무’를 고안하여 놓고 그 의무는 자기의 사무임과 동시에 타인의 사무라고 하여 그 위반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은, 결국 민사상 채무불이행 사안을 형사처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4) 부동산 소유권이전의무와 대가적·등가적 관계에 있는 반대의무와의 형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계약 당사자 일방에 대하여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한다면 그 반대의 경우에도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균형이 맞다. 그런데 대법원은 부동산매매에서 미리 소유권을 이전받은 매수인이 목적물을 담보로 제공하는 방법으로 매매대금을 마련하여 매도인에게 제공하기로 한 약정에 위반하여 소유권을 이전받은 후에 다른 용도로 근저당권을 설정한 사안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한다(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1도3247 판결 참조). 배신적 행위라는 점에서 하등 다를 바 없는데도 매수인의 채무불이행에는 눈을 감고 매도인의 등기협력의무의 이행불능행위에 대하여만 두 눈을 부릅뜨고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합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다. 배임죄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든, 배임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다. 즉,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을 요하는 진정신분범이다. 따라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임무위배행위가 있었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을 함에 있어서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일은 경계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종래 판례는,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라고 함은 신임관계에 기초를 둔 타인의 재산의 보호 또는 관리의무가 있을 것을 그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중도금 이상을 지급하고도 부동산의 소유권 취득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매수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동산매매의 계약관계가 일정한 정도로 진행된 경우 매도인에게 매수인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신임관계를 인정하여 그가 자신의 사무를 처리함과 동시에 타인의 사무를 처리한다고 평가하여 배임죄로 처벌하여 왔다.

그러나 채무의 이행이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중요하다는 이유로 그것이 자신의 사무임과 동시에 타인의 사무가 된다는 논리는 수용하기 어렵다. 반대의견은 등기절차에 협력하여야 한다는 신임관계에 기초한 임무위반행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는 임무위배 여부를 판단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이러한 신임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될 수는 없다. ‘타인의 사무’는 계약에서 정한 급부의 내용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신임관계 위배를 형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죄형법정주의의 관점에서 엄격하게 해석·적용되어야 한다. 계약상 의무의 이행을 통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재산에 관한 완전한 권리를 취득하게 하기 전에 이를 다시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상대방의 재산 취득 또는 보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이익과 신뢰를 저버리는 것으로서 비난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경우 매도인이 위배한 임무라는 것은 ‘타인을 위한 사무’에 해당할 뿐 ‘타인의 사무’가 아니다. 매도인의 행위가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이전에 과연 그 매도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여야 한다. 매도인의 행위가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하고 그 위반행위가 상대방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거나 그 의무의 불이행이 상대방의 이익과 신뢰를 해친다는 이유만으로 막바로 그 의무불이행에 대하여 배임죄의 죄책을 물을 수는 없다. 배임죄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어야 한다. 매도인에게 부동산 등기협력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무가 매수인의 사무가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그동안 등기협력의무를 매개로 하여 부동산 이중매매, 이중저당 등의 사안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해 온 판례의 태도는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은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채무자가 대물로 변제하기로 한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그 논리의 귀결에 비추어 당연한 결론이다.

라. 설령 등기협력의무의 존재를 매개로 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를 인정해 온 기존 판례의 태도를 전제로 하더라도, 다음에서 보는 이유로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1) ‘타인의 사무’라고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재산보호가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되어야 하고 단순히 부수적 의무가 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따라서 채권채무 관계에서 신임관계의 유형과 정도를 구별하지 않은 채 등기협력의무의 존재가 인정되기만 하면 모두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인 내용이 된다고 할 수는 없고, 계약관계에서 비롯되는 등기협력의무의 내용과 구속력의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므로 그것이 당사자 사이의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되는지 여부를 가려서 배임죄의 성부를 논해야 한다. 부동산 이중양도 사안에서 계약금만 지급한 단계에서는 계약관계의 파기가능성을 이유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고 있는 것도 등기협력의무의 내용과 구속력의 정도에 따라 배임죄의 성부를 달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2)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은 본래의 금전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에 대비하여 담보 목적으로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하기로 하는 약정으로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있다는 점에서는 부동산 이중매매 사안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부동산 이중매매 사안에서 중도금을 수령한 매도인은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지 않는 한 매수인에게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특히 잔금까지 모두 수령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그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주는 것만이 자신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에 반해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채무자는 언제든지 자신의 차용금채무를 변제함으로써 채권자에게 그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양자는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줄 의무가 있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그 의무의 내용과 구속력의 정도에 있어서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3) 부동산 이중매매 사안의 경우 배임죄라는 형사 제재를 통해 얻게 되는 사회적·경제적 효용은 매수인으로 하여금 특정 부동산의 소유권을 애초 약정한 대로 이전받게 하는 데 있다. 부동산 매매에 있어서 매수인은 특정물로서의 부동산의 가치를 파악하여 그 소유권을 이전받을 것을 기대하였다는 점에서 사후에 금전적 손해배상을 받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매매계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다만 손해배상을 통해 그와 가치적으로 동등한 상태를 실현시킬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 이행불능 사유를 초래한 매도인에 대하여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 이외에 별도로 배임죄의 처벌을 통하여 매매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그나마 정당화될 여지가 있다.

이에 반해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배임죄라는 형사 제재를 통해 얻고자 하는 사회적·경제적 효용이라는 것은 채권자의 금전채권을 확보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채권자는 담보물로서의 부동산의 가치를 파악하여 이로써 기존의 금전채권을 변제받는 데 주된 관심이 있으므로 부동산에 대한 담보권의 설정 그 자체보다는 기존 금전채권을 변제받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채권자는 채무자로부터 대물변제예약에 따른 소유권등기를 이전받지 못하더라도 채무자로부터 기존 금전채권을 변제받으면 대물변제예약을 통해 이루고자 한 목적을 사실상 달성하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당사자 사이의 부동산 소유권이전에 관한 신임관계는 본질적·전형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

마. 판례가 등기협력의무를 근거로 하여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해 온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부동산은 다른 재산과 달리 그 재산적 가치가 커서 거래당사자를 보호할 필요 역시 상대적으로 컸고, 또 의용 민법에서 현행 민법으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의사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었던 거래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민법이 시행된 지 반세기가 넘었고 등기를 갖추어야만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관념이 국민들 사이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으며, 부동산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진 재산도 많아졌다. 판례가 동산과 부동산의 이중양도 사안과 부동산 매매계약과 대물변제예약 사안에서 보인 일관성 없는 태도를 버리고, 이제는 원칙으로 돌아가 당사자 사이의 채권채무 관계에서 그 내용이 매매계약이든 대물변제예약이든 그 대상이 부동산이든 동산이든 묻지 않고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한 사안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둘 때라고 생각한다.

바. 반대의견의 주된 요지는, 부동산 이중매매나 이중양도에 대하여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해 온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의 경우에도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되고, 담보계약에 기초한 신임관계의 위배도 배임죄로 처벌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부동산 등기협력의무가 왜 배임죄의 성립 근거가 되는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는 데 여전히 미흡할 뿐 아니라, ‘자기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거나 기껏해야 ‘타인을 위한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볼 수 있을 뿐인 등기협력의무를 위반한 매도인 등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해석함으로써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리고 차용금에 대한 채권 담보를 위하여 대물변제를 약속하였다가 이를 이행하지 못한 채무불이행 사안에 불과한 이 사건 사안의 경우에까지 채무자에게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할 의무가 있고 더욱이 그것이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되므로 배임죄로 처벌하여야 한다는 것은 결국 민사상 채무불이행을 형사처벌하여야 한다는 지나친 주장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주심) 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조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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